[문] 왕사성과 사바제에 많이 머무신 인연은 이미 알았다. 그렇다면 이 두 성 가운데 어찌하여 왕사성에 더 많이 계셨는가? |
[답] 태어나신 땅의 은혜를 갚기 위해 사바제에 많이 머무르셨다. 모든 중생은 모두가 태어난 땅을 생각하나니,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
39) 범어로는 Nairañjanā. |
40) 범어로는 dharmakā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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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논사(論師)들도 |
자신이 아는 법을 사랑하니 |
마치 사람들이 태어난 곳을 생각하고 |
출가를 했으나 여전히 다투는 것과 같네.41) |
법신이 태어나신 땅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왕사성에 많이 머무신 것이다. 부처님들이 모두 법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
과거와 미래와 |
현재의 부처님들이 |
법신에 공양하고 |
공경하며 존중한다네. |
법신이 생신(生身)42)보다는 수승하기 때문에 두 성 가운데 왕사성에 많이 계셨다. |
또한 좌선할 정사(精舍)가 많기 때문인데,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다. 곧 죽원(竹園)43)․비바라발서(鞞婆羅跋恕)44)․살다반나구하(薩多般那求呵)45)․인다세라구하(因陀世羅求阿)46)․살파서혼직가발바라(薩簸恕魂直迦鉢婆羅)47) 등 왕사성에는 다섯 개의 정사가 있는데, 이 가운데 죽원은 평지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이렇게 많은 정사가 있지 않다. |
41) 부처님께서 사바제에 많이 머무신 것은 그곳이 부처님에게는 익숙하고 애정 어린 땅이기 때문이니, 그것은 마치 법을 논하는 논사들이 새로운 것보다는 이미 알던 것에 애착하는 것과 같고,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출가한 이들이 본래 익숙해진 삿된 습을 버리지 못한 채 쟁론을 일삼으면서 이처럼 극히 인간적인 행위나 습관을 비난하는 것은 대꾸할 의미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
42) 범어로는 janmakāya. |
43) 범어로는 Veṇuvana. |
44) 범어로는 Vaibhāravana. |
45) 범어로는 Saptaparṇaguhā. |
46) 범어로는 Indaśailaguhā. |
47) 범어로는 Sarpaśauṇḍikaprābhā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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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제에는 두 곳이 있으니 한 곳은 기원정사(祇洹精舍)48)이고 또한 한 곳은 마가라모(摩伽羅母)49) 강당으로, 세 번째 것은 없다. |
바라나사(婆羅奈斯)50) 나라에는 한 곳이 있으니 사슴숲 가운데 있는 정사로서 이사반타나(梨師槃陀那)51)라 하며, 비야리(毘耶離)52)에는 두 곳이 있으니 하나는 마하반(摩呵槃)53)이고 또한 하나는 미후지안(彌猴池岸) 정사54)이다. 구섬미(鳩睒彌)55)에는 한 곳이 있으니 구사라(劬師羅)56) 동산이다. |
이와 같이 여러 나라에는 한 곳에 정사가 있거나 혹은 빈숲이 있을 뿐인데 왕사성에는 정사가 많아서 좌선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한 곳이기에 여기에 많이 머무셨다. |
또한 여기에는 부나라(富那羅)57) 등 여섯 스승들이 있어 장담하기를 “내가 곧 일체를 갖춘 사람이니 부처와 대론하리라”고 하며, 나아가 장조범지58)와 구가나대(拘迦那大)59)라는 성을 가진 바차(婆蹉)60)등은 모두 외도의 큰 논사이었다. 또한 장자 시리굴다(尸利崛多)61)와 제바달다(提婆達多)와 |
48) 범어로는 Jetavanavihāra. 수닷다 장자가 기수급고독원에 석존과 제자들을 위해 세운 승방이다. 기원정사란 ‘급고독 장자(Anātapiṇḍaka)가 봉헌한 원림’이라는 뜻이다. 사위성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
49) 범어로는 Mṛgāramātṛprāsāda. 마가라모 강다에 얽힌 이야기가 있으니, 앙가(Ańga)라는 장자의 딸이 부처님의 교화에 의해 예류과를 얻었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Pūrṇavaddhana에게 시집을 가서 시아버지[舅]를 부처님께 귀의시켰다. 시아버지는 이를 기뻐해 ‘그대는 나의 어머니이다’라고 말했던 것에서 녹자모(鹿子母)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50) 범어로는 Vārāṇasī. |
51) 범어로는 Ŗṣipatana. |
52) 범어로는 Vaiśālī. |
53) 범어로는 Mahāvana. 대림정사(大林精舍)라고도 한다. 베살리 교외에 있는 숲으로, 여기에 중각강당(重閣講堂)이 있었다. |
54) 범어로는 Markaṭahradatīra-vihāra. 지금의 Avanti근처에 있는 석굴. 『잡아함경』 제9권에 의하면 마하가전연이 여기에서 바라문을 교화했다고 한다. |
55) 범어로는 Kauśambī. |
56) 범어로는 Kuśinagara. |
57) 범어로는 Purāṇa-kaśapa. 육사 외도 중 한 사람. |
58) 범어로는 Dīrghanakha. |
59) 범어로는 Kokanada. |
60) 범어로는 Vatsagotra. |
61) 범어로는 Śrigup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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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阿闍貰)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부처님을 해치려고 음해하며 불법을 믿지 않고 제각기 질투를 품었다. |
이러한 무리들이 있는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여기에 많이 머무셨다. 마치 독초가 나는 근처에는 반드시 좋은 약초가 나는 것과 같으니, 이런 게송이 있다. |
비유하건대 사자는 |
모든 백수의 왕이거늘 |
작은 벌레를 보고 소리 지르면 |
무리의 비웃음을 산다네. |
호랑이나 이리 등의 |
맹수들 사이에서 |
기지개 켜고 크게 소리 지르면 |
지혜로운 사람들 옳다고 여기네. |
모든 논사들이 사나운 호랑이 같거늘 |
이 무리 사이에서 두려움 없으시고 |
크게 지혜로운 이, 아는 것 많아 |
이런 무리 사이에서 으뜸이시라. |
이렇게 크게 지혜롭고 아는 것 많은 사람들이 왕사성에 많이 사는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많이 계셨다. |
또한 빈바사라왕이 가야사사(伽耶祀舍)62)에 왔을 때, 그는 부처님과 그 밖의 머리를 묶은[結髮] 천 명의 아라한을 청해 공양했는데, 그때 부처님께서 왕을 위해 설법해 주어 수다원도(須陀洹道)63)를 얻게 했다. |
62) 범어로는 Gayaśirṣa. |
63) 범어로는 śrota āpatti-phala. 예류과(預流果)라고도 한다. 깨달음의 흐름에 드는 경지로, 이른바 성자의 초입에 드는 경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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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는 부처님께 청하기를 “부처님과 스님들이 저의 왕사성에 오셔서 목숨이 다하도록 저의 의복․음식․침구․의약 등을 받아 주십시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모두 공급하겠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 곧 그의 청을 받아들이셨다. 그러므로 왕사성에 많이 머무셨다. |
또한 염부제의 사방 가운데 동쪽을 으뜸으로 여기니, 해가 처음 뜨기 때문이다. 이런 차례로 남쪽․서쪽․북쪽을 치는데 동쪽에서도 마가다가 으뜸이요, 마가타에서도 왕사성이 으뜸이다.
여기에는 12억의 집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아사세왕은 백성들이 줄어든다 하여 왕사성을 버리고 그 곁에다 다시 하나의 작은 성을 만들었으니, 길이와 너비가 각각 1유순(由旬)이요 이름은 파라리불다라(波羅利弗多羅)64)로서 그것마저도 다른 성들 가운데서 가장 크거늘 하물며 본래의 왕사성이겠는가. |
더구나 여기에는 사람들이 모두 총명하고 배운 것이 많고 아는 것도 많지만 다른 곳엔 이런 일이 없다. |
또한 어떤 사람이 반드시 도를 얻고자 한다면 때와 장소와 사람을 기다리는 법인데, 부처님은 석제환인(釋提桓因)65)과 8만 하늘의 무리들이 마가다국의 석실(石室)66)에서 도를 얻게 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여기에 많이 머무셨다. |
또한 그 나라는 풍요해서 걸식하기가 쉽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
또한 세 가지 인연 때문이니, 첫째는 빈바사라왕이 칙령으로 궁중에서 항상 천 사람의 비구에게 공양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수제가(樹提伽)67) 같은 이는 비록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항상 하늘 세계의 부귀와 쾌락을 누렸고 또한 부귀한 우바새68)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요, 셋째는 아파라라(阿波羅羅)69)용왕이 착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 부처님의 |
64) 범어로는 Pāṭaliputra. |
65) 범어로는 Śakradevendra. |
66) 범어로는 śailaguhā. |
67) 범어로는 Jyotiṣka. 왕사성에 살던 가장으로, 그의 아들이 병이 들자 부처님을 초청해 가르침을 듣게 했다. |
68) 범어로는 upāsaka. 재가의 남자신도. 원래는 출가자를 받드는 사람들을 의미하던 말이다. |
69) 범어로는 Apalāla. 용왕이 머무는 샘. 『대당서역기』에 구체적인 언급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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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되어서 세상의 굶주림을 없애기 위하여 항상 단비를 내려주어 나라가 풍요롭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는 장로 마하가섭이 가르침을 집성하고자 생각했다. |
‘어느 나라가 풍요하고 걸식도 하기가 쉬워서 결집을 빨리 마칠 수 있을까.’ |
그리고는 다시 생각했다. |
‘왕사성의 빈바사라왕은 명을 내려 항상 천 명의 비구에게 음식을 베풀었다. 빈바사라왕이 죽더라도 이 법은 끊이지 않으리니, 여기에서는 음식을 얻기가 쉽고 가르침을 결집하기도 쉬우리라. 다른 곳에는 이처럼 항상 공양하는 일이 없다. |
만일 걸식을 할 때 외도들이 와서 토론을 하자 할 수도 있는데, 토론을 하자니 결집을 중단해야 되고, 토론을 피하자니 외도들이 말하되 ‘사문들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
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가장 뛰어난 천 명의 아라한을 가리어 기사굴산으로 데리고 가서는 경장을 결집하고자 했다. |
이 세 가지 인연 때문에 마가다국은 걸식하기가 쉬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아함(阿含)과 비니(毘尼)에서 말하기를 “비야리(毘耶離)국에는 때때로 흉년이 든다”고 하였고, 『항난타바난타용왕형제경(降難陀婆難陀龍王兄弟經)』70)에서 말씀하시듯이 사바제국에도 기아가 있으며, 또한 다른 나라에도 굶주리는 일이 있는데, 마가다국에는 이런 일이 없다. 그러므로 마가다국은 풍요롭고 걸식하기 쉬운 줄 아는 것이다. |
또한 왕사성은 산중에 있어서 한가하고 고요한데, 다른 나라의 정사는 평지에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드나들면서 오가기 쉬운 까닭에 조용하지 못하다. |
또한 이 산에는 정사가 많은데 좌선하는 사람들이나 성인들이 모두가 조용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에 많이 모여 산다. 부처님은 성인으로서 좌선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왕사성에 많이 머무르셨다. |
70) 타바난타용왕(陀婆難陀龍王)이란 목건련에게 굴복한 용왕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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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 때문에 왕사성에 많이 머무르셨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24.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많이 머무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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