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30. 아난존자께서 수다원과에 머문 이유

수선님 2018. 11. 18. 12:52

[문] 아라한들은 해야 할 일[所作]에 관해서는 이미 끝내서 다시는 더 나아가 구할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항상 부처님 곁에만 머물러 다른 곳에서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가?

 

[답] 일체 시방의 중생들도 부처님께 공양을 드려야 하지만, 아라한이 받은 은혜는 무거운 까닭에 더 많이 공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아라한들은 부처님을 좇아 무량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니, 결과 사가 끊어져서 신심(信心)이 더욱 많아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대덕 아라한들은 부처님 곁에서 공덕의 즐거움[樂味]을 느끼고, 공경하고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까닭에 부처님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아라한들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있는 까닭에 부처님의 덕은 더욱 존귀한 것이다. 마치 범천의 사람들이 범천왕을 둘러싼 것 같고, 삼십삼천(三十三天)168)이 석제환인을 둘러싼 것 같고, 귀인(鬼人)169)들이 비사문왕(毘沙門王)170)을 둘러싼 것 같고, 작은 왕들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을 둘러싼 것 같고, 병들었던 사람이 병이 나은 뒤에는 큰 의사171) 곁에 머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라한들이 부처님의 곁에 머무니, 아라한들이 둘러싸고 공양하기에 부처님의 위덕은 더욱 존귀한 것이다.

 

[문] 아라한들은 이미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자신의 이익을 얻었다면, 다시 가르침[法]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반야바라밀을 설하실 때 5천의 아라한이 함께했는가?

 

[답] 아라한들은 할 일을 이미 다하기는 했어도 부처님께서 깊디깊은 지혜

  
  
  
168) 범어로는 trāyastriṃṣa. 욕계 6욕천(欲天) 가운데 두 번째인 도리천을 말한다. 수미산 꼭대기에 있으며, 중앙에 제석천이 있고, 사방에 각각 여덟 명의 신들이 있어 모두 서른셋이 되기에 삼십삼천이라고 한다.
169) 아수라(Asura)를 가리킨다.
170) 범어로는 Vaiśravaṇa.
171) 범어로는 mahāvaid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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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가르침으로써 시험하려 하신 것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물으신 것과 같다. 『바라연경(波羅延經)』172)의 아지타(阿耆陀)의 질문173)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종종의 학인 및
  모든 수법(數法)의 사람들
  이 사람들이 행하는 법을
  여실하게 설해 주시옵소서.
  
여기에서 “무엇이 학인(學人)이고 무엇이 수법인(數法人)인가?”라며 물으셨지만 이때 사리불은 침묵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세 번에 걸쳐 물었지만 세 번 모두 침묵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의단(義端)을 내보이시며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생(生)은 있는가, 없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생은 있습니다.”

 

생이 있는 자는 멸을 이루고자 한다. 유위의 생법인 까닭에 학인이라 하고, 지혜로써 무생법(無生法)을 얻는 까닭에 수법인이라 한다. 이 경의 이 아지타의 질문 가운데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또한 혹은 유루이거나 혹은 무루의 모든 선정(禪定)을 아직 얻지 못했기에 얻고자 하고, 이미 얻은 것을 견고하게 하고 깊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아라한들은 부처님 곁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

 

또한 현전의 즐거움을 위함이기도 하니, 『난타가경(難陀迦經)』174) 가운데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금생의 즐거움을 위해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

 

또한 아라한들은 부처님 곁에서 가르침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싫어하는 일이 없다. 『비로제가경(昆盧提迦經)』175)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곧 사리불

  
  
  
172) 범어로는 Parāyana.
173) 범어로는 Ajitapañha.
174) 범어로는 Nandaka-sūtra.
175) 범어로는 Pilotika-sū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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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로제가176)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법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들으면서 싫어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또한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스스로 일심으로 제자 곁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비난해서 “아라한은 이미 할 일을 다 마쳤거늘, 어찌해서 가르침을 듣는가?”라고 해서는 안 된다.

 

비유하건대 배부른 사람도 좋은 음식을 만나면 다시 먹으려 하거늘 어찌 시장한 사람에게 먹지 말라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아라한들은 할 일을 이미 끝냈으되 항상 부처님 곁에서 법을 듣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해탈법 가운데 머무셨고 아라한들 역시 해탈법 가운데 머물렀다. 법에 머무는 자에 상응하는 권속들이 장엄을 이루는 것이다. 『전단비유경(栴檀譬喩經)』177)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전단 숲에는 이란(伊蘭)178)이 둘러싸고, 어떤 이란 숲에는 전단이 둘러싼다. 또한 전단이 있으면 전단이 숲을 이루고, 이란이 있으면 이란이 저절로 둘러싼다. 부처님이나 아라한 역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훌륭한 법의 해탈에 머무셨고, 아라한들도 훌륭한 법의 해탈에 머무니, 법에 머무는 자에 상응한 권속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179)

 

대중이 둘러싼 것은 마치 수미산왕180)을 10보산(寶山)181)이 둘러싼 것 같고, 횐 코끼리 왕[白香象王]을 여러 횐 코끼리가 둘러싼 것 같고, 사자의 왕을 사자들이 둘러싼 것 같으니, 부처님 역시 그러하시다.

 

부처님은 위없는 복전(福田)이기에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머무시는 것이다.

 

[經] 오직 아난만을 제하니, 그는 배움의 경지[學地]182)에서 수다원을 얻었

  
  
  
176) 범어로는 Pilotika.
177) 범어로는 Candanopama-sūtra.
178) 범어로는 Eraṇḍa.
179) 곧 부처님과 아라한들의 관계는 마치 ‘어떤 전단숲이 전단에 둘러싸인 격’이라는 것이다.
180) 범어로는 Sumerurāja.
181) 범어로는 daśaratana-parvata.
182) 범어로는 śaikṣabhū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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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뿐이었다.

 

[論] [문] 어째서 아난만은 제외되었는가?

[답] 위에서 찬탄한 것은 아라한들인데, 아난은 그 범주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아직도 배우는 경지에 있어서 애욕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 대덕 아난은 제3의 스승이며 대중의 법장(法將)183)으로, 열반의 종자를 심은 지 이미 한량없는 겁을 지났고,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어 법장(法藏)을 지녔다. 대덕이시고 예리한 근을 지닌 분이거늘 어찌하여 아직껏 애욕을 여의지 못하고 배우는 경지의 사람으로 있는가?

 

[답] 대덕 아난은 본래 서원을 세우기를 “나는 들은 것 많은 무리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사람이 되리라” 했다. 또한 모든 부처님의 법에 의하면 아라한은 할 일을 이미 끝낸 자이기에 시중들고 공양하는 사람이 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며, 불법 안에서 능히 큰 일을 마치고 번뇌의 도적을 부숨으로써 부처님과 더불어 해탈의 평상에 나란히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로 아난은 갖가지 경전을 듣고 지니고 외우고 관찰하였으므로 지혜는 많으나 마음을 거두는 힘이 적었다. 만일 두 가지 공덕이 균등하였더라면 누가 다한 경지[漏盡道]184)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 아난은 배우는 사람으로서 수다원의 지위에 머무른 것이다.

 

또한 세존께 시봉하기를 탐내었기 때문이다. 아난은 부처님의 시중을 드는 사람으로서 생각했다.

‘내가 일찍 누가 다한 경지를 얻으면 문득 세존과 멀어져서 시봉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리라.’

 

그런 까닭에 아난은 비록 아라한의 도를 얻을 수 있었으나 스스로 억제하여 취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처(處)와 때[時]와 사람[人]이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처(處)에도 능히 법을 결집할 천명의 아라한이 아직 기사굴산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처(處)이다. 세존께서 떠나실 때[時]에 도착하지 못

  
  
  
183) 범어로는 dharmapati.
184) 범어로는 āsravakṣaya-mār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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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채 장로 바기자(婆耆子)185)가 곁에 있지 않았다.186) 그러므로 장로 아난은 누가 다하지 못한 것이다.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것과 법을 결집할 대중이 모인 것과 바기자가 설법을 권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여서 누진도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덕 아난은 세상의 법을 싫어하는 생각이 적어서 다른 사람만 못했기 때문이다.

아난은 여러 세상마다 왕족으로 태어나 단정함이 견줄 데 없고 복덕이 한량이 없었다.

 

세존께서 친히 가까이해 주시고 항상 부처님을 시중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나는 부처님을 친히 가까이 모시었기에 법의 보장(寶藏)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누진도법(漏盡道法)을 잃을 일은 두렵지 않다.’187)

 

이런 일 때문에 그다지 부지런히 힘쓰지 않았던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30. 아난존자께서 수다원과에 머문 이유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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