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아라한들은 해야 할 일[所作]에 관해서는 이미 끝내서 다시는 더 나아가 구할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항상 부처님 곁에만 머물러 다른 곳에서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가? |
[답] 일체 시방의 중생들도 부처님께 공양을 드려야 하지만, 아라한이 받은 은혜는 무거운 까닭에 더 많이 공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아라한들은 부처님을 좇아 무량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니, 결과 사가 끊어져서 신심(信心)이 더욱 많아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대덕 아라한들은 부처님 곁에서 공덕의 즐거움[樂味]을 느끼고, 공경하고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까닭에 부처님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
아라한들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있는 까닭에 부처님의 덕은 더욱 존귀한 것이다. 마치 범천의 사람들이 범천왕을 둘러싼 것 같고, 삼십삼천(三十三天)168)이 석제환인을 둘러싼 것 같고, 귀인(鬼人)169)들이 비사문왕(毘沙門王)170)을 둘러싼 것 같고, 작은 왕들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을 둘러싼 것 같고, 병들었던 사람이 병이 나은 뒤에는 큰 의사171) 곁에 머무는 것과 같다. |
이와 같이 아라한들이 부처님의 곁에 머무니, 아라한들이 둘러싸고 공양하기에 부처님의 위덕은 더욱 존귀한 것이다. |
[문] 아라한들은 이미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자신의 이익을 얻었다면, 다시 가르침[法]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반야바라밀을 설하실 때 5천의 아라한이 함께했는가? |
[답] 아라한들은 할 일을 이미 다하기는 했어도 부처님께서 깊디깊은 지혜 |
168) 범어로는 trāyastriṃṣa. 욕계 6욕천(欲天) 가운데 두 번째인 도리천을 말한다. 수미산 꼭대기에 있으며, 중앙에 제석천이 있고, 사방에 각각 여덟 명의 신들이 있어 모두 서른셋이 되기에 삼십삼천이라고 한다. |
169) 아수라(Asura)를 가리킨다. |
170) 범어로는 Vaiśravaṇa. |
171) 범어로는 mahāvaidya. |
[145 / 805] 쪽 |
의 가르침으로써 시험하려 하신 것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물으신 것과 같다. 『바라연경(波羅延經)』172)의 아지타(阿耆陀)의 질문173)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
종종의 학인 및 |
모든 수법(數法)의 사람들 |
이 사람들이 행하는 법을 |
여실하게 설해 주시옵소서. |
여기에서 “무엇이 학인(學人)이고 무엇이 수법인(數法人)인가?”라며 물으셨지만 이때 사리불은 침묵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세 번에 걸쳐 물었지만 세 번 모두 침묵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의단(義端)을 내보이시며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
“생(生)은 있는가, 없는가?” |
사리불이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생은 있습니다.” |
생이 있는 자는 멸을 이루고자 한다. 유위의 생법인 까닭에 학인이라 하고, 지혜로써 무생법(無生法)을 얻는 까닭에 수법인이라 한다. 이 경의 이 아지타의 질문 가운데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
또한 혹은 유루이거나 혹은 무루의 모든 선정(禪定)을 아직 얻지 못했기에 얻고자 하고, 이미 얻은 것을 견고하게 하고 깊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아라한들은 부처님 곁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 |
또한 현전의 즐거움을 위함이기도 하니, 『난타가경(難陀迦經)』174) 가운데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금생의 즐거움을 위해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 |
또한 아라한들은 부처님 곁에서 가르침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싫어하는 일이 없다. 『비로제가경(昆盧提迦經)』175)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곧 사리불 |
172) 범어로는 Parāyana. |
173) 범어로는 Ajitapañha. |
174) 범어로는 Nandaka-sūtra. |
175) 범어로는 Pilotika-sūtra. |
[146 / 805] 쪽 |
이 비로제가176)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법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들으면서 싫어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
또한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스스로 일심으로 제자 곁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비난해서 “아라한은 이미 할 일을 다 마쳤거늘, 어찌해서 가르침을 듣는가?”라고 해서는 안 된다. |
비유하건대 배부른 사람도 좋은 음식을 만나면 다시 먹으려 하거늘 어찌 시장한 사람에게 먹지 말라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아라한들은 할 일을 이미 끝냈으되 항상 부처님 곁에서 법을 듣는 것이다. |
또한 부처님께서 해탈법 가운데 머무셨고 아라한들 역시 해탈법 가운데 머물렀다. 법에 머무는 자에 상응하는 권속들이 장엄을 이루는 것이다. 『전단비유경(栴檀譬喩經)』177)에서 말씀하셨다. |
“어떤 전단 숲에는 이란(伊蘭)178)이 둘러싸고, 어떤 이란 숲에는 전단이 둘러싼다. 또한 전단이 있으면 전단이 숲을 이루고, 이란이 있으면 이란이 저절로 둘러싼다. 부처님이나 아라한 역시 이와 같다.” |
부처님께서는 훌륭한 법의 해탈에 머무셨고, 아라한들도 훌륭한 법의 해탈에 머무니, 법에 머무는 자에 상응한 권속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179) |
대중이 둘러싼 것은 마치 수미산왕180)을 10보산(寶山)181)이 둘러싼 것 같고, 횐 코끼리 왕[白香象王]을 여러 횐 코끼리가 둘러싼 것 같고, 사자의 왕을 사자들이 둘러싼 것 같으니, 부처님 역시 그러하시다. |
부처님은 위없는 복전(福田)이기에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머무시는 것이다. |
[經] 오직 아난만을 제하니, 그는 배움의 경지[學地]182)에서 수다원을 얻었 |
176) 범어로는 Pilotika. |
177) 범어로는 Candanopama-sūtra. |
178) 범어로는 Eraṇḍa. |
179) 곧 부처님과 아라한들의 관계는 마치 ‘어떤 전단숲이 전단에 둘러싸인 격’이라는 것이다. |
180) 범어로는 Sumerurāja. |
181) 범어로는 daśaratana-parvata. |
182) 범어로는 śaikṣabhūmi. |
[147 / 805] 쪽 |
을 뿐이었다. |
[論] [문] 어째서 아난만은 제외되었는가? |
[답] 위에서 찬탄한 것은 아라한들인데, 아난은 그 범주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아직도 배우는 경지에 있어서 애욕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문] 대덕 아난은 제3의 스승이며 대중의 법장(法將)183)으로, 열반의 종자를 심은 지 이미 한량없는 겁을 지났고,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어 법장(法藏)을 지녔다. 대덕이시고 예리한 근을 지닌 분이거늘 어찌하여 아직껏 애욕을 여의지 못하고 배우는 경지의 사람으로 있는가? |
[답] 대덕 아난은 본래 서원을 세우기를 “나는 들은 것 많은 무리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사람이 되리라” 했다. 또한 모든 부처님의 법에 의하면 아라한은 할 일을 이미 끝낸 자이기에 시중들고 공양하는 사람이 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며, 불법 안에서 능히 큰 일을 마치고 번뇌의 도적을 부숨으로써 부처님과 더불어 해탈의 평상에 나란히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
또한 장로 아난은 갖가지 경전을 듣고 지니고 외우고 관찰하였으므로 지혜는 많으나 마음을 거두는 힘이 적었다. 만일 두 가지 공덕이 균등하였더라면 누가 다한 경지[漏盡道]184)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 아난은 배우는 사람으로서 수다원의 지위에 머무른 것이다. |
또한 세존께 시봉하기를 탐내었기 때문이다. 아난은 부처님의 시중을 드는 사람으로서 생각했다. |
‘내가 일찍 누가 다한 경지를 얻으면 문득 세존과 멀어져서 시봉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리라.’ |
그런 까닭에 아난은 비록 아라한의 도를 얻을 수 있었으나 스스로 억제하여 취하지 않은 것이다. |
또한 처(處)와 때[時]와 사람[人]이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처(處)에도 능히 법을 결집할 천명의 아라한이 아직 기사굴산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처(處)이다. 세존께서 떠나실 때[時]에 도착하지 못 |
183) 범어로는 dharmapati. |
184) 범어로는 āsravakṣaya-mārga. |
[148 / 805] 쪽 |
한 채 장로 바기자(婆耆子)185)가 곁에 있지 않았다.186) 그러므로 장로 아난은 누가 다하지 못한 것이다. |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것과 법을 결집할 대중이 모인 것과 바기자가 설법을 권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여서 누진도를 얻게 되는 것이다. |
또한 대덕 아난은 세상의 법을 싫어하는 생각이 적어서 다른 사람만 못했기 때문이다. 아난은 여러 세상마다 왕족으로 태어나 단정함이 견줄 데 없고 복덕이 한량이 없었다.
세존께서 친히 가까이해 주시고 항상 부처님을 시중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
‘나는 부처님을 친히 가까이 모시었기에 법의 보장(寶藏)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누진도법(漏盡道法)을 잃을 일은 두렵지 않다.’187) |
이런 일 때문에 그다지 부지런히 힘쓰지 않았던 것이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30. 아난존자께서 수다원과에 머문 이유
'대지도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32. 재가자는 출가자의 공덕의 훌륭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0) | 2018.11.25 |
---|---|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31. 아난이라는 이름의 유래 (0) | 2018.11.25 |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29. 믿음과 지혜가 최고의 보물이다. (0) | 2018.11.18 |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28. 아라한의 경지 (0) | 2018.11.18 |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27. ★ 공덕이 없거나 적은 자는 해탈하지 못한다. (0) | 2018.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