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33. 보살의 지위

수선님 2018. 11. 25. 13:13

8. 초품 중 보살(菩薩)을 풀이함
  
[經] 다시 보살마하살1)들이 있었으니

[論] [문] 위로부터 세면 먼저 보살을 들고 차례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차례로 해야 한다.

보살은 부처님의 다음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래로부터 센다면 먼저 우바이를 들고 우바새․비구니․비구․보살의 순서가 되어야 하거늘 이제는 어찌하여 먼저 비구를 말하고 다음에 세 대중을 든 뒤에 보살을 말하는가?

 

[답] 보살은 비록 부처님의 다음이지만, 번뇌가 다하지 못했으므로 먼저 아라한을 말한 것이다.

아라한들은 비록 지혜가 적으나 이미 익었고, 보살들은 비록 지혜는 많으나 번뇌가 다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아라한을 먼저 말한 것이다.

 

불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비밀스런 것[秘密]2)이요, 또한 하나는 드러내 보이는 것[現示]3)이다.

 

드러내 보이는 것 가운데

부처님과 벽지불과 아라한은 모두가 복전이 되니, 그 번뇌가 다하여 남음이 없기 때문이다.

  
  
  
1) 범어로는 bodhisattva-mahāsattva. ‘깨달음을 추구하는 위대한 유정’ 혹은 ‘깨달음의 소질을 지닌 위대한 유정’ 이라는 뜻. 소승의 수행자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스스로 불도를 추구하면서 타인을 구제하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대승의 수행자.
2) 범어로는 abhisaṃdhidharma.
3) 범어로는 prakāśita-dh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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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것 가운데 설하는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4)을 얻고 번뇌가 이미 단절되었으며, 6신통(神通)을 갖추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드러내 보이는 법인 까닭에 먼저 아라한을 말하고 나중에 보살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보살은 방편(方便)5)의 힘으로써 현전에서 5도(道)에 들어가 5욕(欲)을 감수하며 중생을 인도한다.

만일 그가 아라한 위에 있다면 모든 하늘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마땅히 의괴심을 내게 되리라.

 

그러므로 뒤에 말하는 것이다.

 

 

[문] 아라한의 뒤에 있는 것은 그렇다 하겠는데, 어찌하여 우바새와 우바이의 뒤에 있는가?

[답] 네 무리는 번뇌[漏]가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머지않아 다하게 될 것이므로 통틀어서 성문의 무리[聲門衆]6)라 한다.

 

만일 네 무리의 중간에서 보살을 말한다면 그것은 불편해진다. 비구니의 경우, 무량한 율의을 받아 지니기에 비구의 뒤에 두고 사미의 앞에 놓는다. 부처님께서는 의법(儀法)이 불편하므로 사미 뒤에 비구니를 있게 하신 것이다. 이 보살들 역시 마찬가지로 마땅히 학인은 세 무리 위에 있어야 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뒤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또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보살의 공덕과 지혜는 아라한이나 벽지불을 초월한다. 이러한 이유로 달리 말한다”라고 했다.

 

[문] 성문의 경전[聲門經]에서는 네 가지 대중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어찌해서 달리 보살 대중을 말하는가?

 

[답] 두 가지 도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의 도요, 둘은 보리살타(菩提薩埵)7)의 도이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네 가지 대중은 성문의 도요, 보살마하살은 보리살타의 도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문의 법을 설한 경의 초두에는 부처님이 어느 곳, 어느 장소에 계시면서 보살과 함께하셨다는 경우는

  
  
  
4) 범어로는 anutpattika dharma-kṣānti. 일체법의 생함이 없는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함. 곧 일체법이 불생불멸임을 확신하는 것.
5) 범어로는 upāya-kauśalya.
6) 범어로는 śrāvakasaṃgha.
7) 범어로는 bodhisatt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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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고, 다만 부처님이 어느 곳, 어느 장소에 머무시면서 비구와 함께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예컨대 부처님께서 바라내(波羅柰)8)에서 다섯 비구와 함께하셨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곧 “부처님께서는 가야국9)에서 천 명의 비구와 함께하셨다” 혹은 “부처님께서는 사바제10)에서 5백 명의 비구와 함께하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 경의 첫머리에서 “보살 약 천 인과 함께하셨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문] 보살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집을 떠난 이[出家]와 집에 머무는 이[在家]이다. 집에 머무는 보살은 모두 우바새․우바이에 속한다고 말하며, 집을 떠난 보살은 모두 비구․비구니 가운데 속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하여 따로 말하는가?

 

[답] 모두 네 가지 대중 가운데 있지만, 따로 말해야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보살은 반드시 네 가지 대중에 속하게 되지만 네 가지 대중이 보살에 속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이 그러한가? 성문의 사람ㆍ벽지불의 사람 혹은 하늘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사람 혹은 스스로의 삶을 즐기고 구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네 종류의 사람은 보살에 속하지 않는다.

 

또한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어 온갖 이름과 생사의 모습을 모두 끊어 삼계(界)를 벗어났기에 중생의 범주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성문의 사람 역시 아라한도를 얻고서 멸도한 뒤에는 더 이상 중생의 범주에 떨어지지 않거늘 하물며 보살이겠는가.

 

파라연우바시난(波羅延優波尸難) 가운데 게송이 있다.

  
  이미 멸도해 자리[處]가 없어도 다시 나오는지
  영원히 멸했다면 나오지 않는지
  이미 열반에 들었다면 영원히 머무르는지
  
  
  
8) 범어로는 Bārāṇasi.
9) 범어로는 Gayā.
10) 범어로는 Śrāva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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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컨대 크신 지혜로 그 진실을 말해 주시옵소서.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적멸이란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인연과 이름과 모습을 파괴하나니
  온갖 언어 길을 이미 초월하여서
  일시에 다함이 마치 불이 꺼짐과 같네.
  

아라한조차도 온갖 이름을 다 끊었다.

그러니 하물며 보살은 온갖 법을 끊고 실상을 알고 법신(法身)11)을 얻었거늘 어찌 이름을 끊지 못하랴.

 

그러므로 마하연의 네 가지 대중 가운데서 보살을 따로 말하는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33. 보살의 지위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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