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무슨 까닭으로 대승경전은 첫머리에서 보살 대중과 성문 대중을 다 말하는데, 성문경전은 첫머리에 비구 대중만을 말하고 보살 대중은 말하지 않는가? |
[답] 두 승(乘)의 이치를 변별하기 위해서이다.
불승(佛乘)12)과 성문승13) 가운데 성문승은 협소하고 불승은 광대하며, 성문승은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스스로를 위하고, 불승은 일체를 이익되게 한다. |
또한 성문승은 대개 중생이 공(空)함을 설하고, 불승은 중생의 공함과 법의 공함을 겸하여 말한다. |
이와 같이 갖가지로 분별해서 이 두 가지 길을 설명하는 까닭에 마하연의 경전에서는 성문의 대중과 보살의 대중을 겸하여 말한다. |
마하연을 찬탄한 게송이 있다. |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
능히 모두에게 즐거움과 |
11) 범어로는 dharmakāya. |
12) 범어로는 buddhayāna. |
13) 범어로는 śrāvakayāna. |
[160 / 805] 쪽 |
이로움과 진실한 법으로써 |
위없는 도법을 얻게 하도다. |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
일체를 사랑하고 가여워하는 까닭에 |
머리나 눈까지를 보시하니 |
버리기를 마치 초목과 같이 하네. |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
청정한 계를 호지(護持)하기를 |
마치 이우(犛牛)14)가 꼬리를 아끼듯 하니 |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네. |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
위없는 인[無上忍]을 얻나니 |
몸을 찢거나 자르더라도 |
마치 풀을 끊는 것같이 여기네. |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
정진함에 싫증내거나 게으르지 않고 |
힘써 행하여 쉬지 않으니 |
대해를 헤엄쳐 건너는 이 같네. |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
한량없는 선정을 널리 닦아서 |
신통과 성도(聖道)의 힘을 얻고 |
14) 이우(犛牛)란 남방에 사는 소의 일종으로 자신의 긴 꼬리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마치 이우가 꼬리를 소중히 다루듯이 계를 지킬 것을 의미한다. |
[161 / 805] 쪽 |
청정하여 자재함을 얻네. |
이 대승을 얻은 사람은 |
모든 법의 모습을 분별하여서 |
진실한 지혜를 깨뜨리지 않나니 |
이 가운데에서 이미 갖추어 얻네. |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
한량없는 연민의 힘으로 |
치우친 두 법에 들지 않고 |
온갖 법을 균등하게 관찰하네. |
나귀ㆍ낙타ㆍ말ㆍ코끼리 등의 탈것은 |
비록 같은 듯하나 견줄 수 없나니 |
보살과 성문승도 그와 같아서 |
크고 작음을 견줄 수 없네. |
대자비로 축(軸)을 삼고 |
지혜로써 두 바퀴를 삼고 |
정진으로 좋은 말을 삼고 |
계와 정(定)으로 재갈을 삼네. |
참는 마음은 투구요 |
총지(摠持)15)는 고삐이니 |
마하연의 사람이 타는 승(乘)은 |
능히 일체를 건너네. |
15) 범어로는 dhyā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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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성문의 경전은 첫머리에서 비구 대중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대승의 경전 첫머리에서는 보살 대중만을 말하지 않는가? |
[답] 마하연은 광대하여서 모든 승(乘)과 모든 길이 다 마하연에 들어간다. 성문의 탈것은 협소하여서 마하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항하가 큰 바다를 받아들이지 못함은 그것이 협소하기 때문이요, 큰 바다가 모든 강을 다 받아들임은 그것이 광대하기 때문이다. |
마하연의 법도 그와 같으니, 게송으로 말하리라. |
마하연은 바다와 같고 |
소승16)은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이네. |
작은 까닭에 큰 것을 용납하지 못하니 |
그 비유 또한 이와 같도다. |
[문] 무엇을 보리라 하며, 무엇을 살타라 하는가? |
[답] 보리17)는 모든 부처님 도[佛道]를 이름한다. 살타18)란 중생(衆生) 혹은 대심(大心)이라 불리니, 이 사람은 부처님들의 공덕을 모두 다 얻고자 하되 그 마음을 끊을 수 없고 깨뜨릴 수 없음이 마치 금강의 산과 같기 때문이다. 이를 대심이라 한다. |
게송으로 말하리라. |
모든 부처님의 법과 |
지혜와 계율과 선정으로 |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니 |
이를 일컬어 보리라 하네. |
16) 범어로는 hinayāna. ‘작은 탈것’이란 의미로 대승의 입장에서 상좌부 등의 전통적 출가주의 교단을 폄하해 부르던 말이다. |
17) 범어로는 bodhi. |
18) 범어로는 satt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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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 움직일 수 없어 |
능히 참고 도를 이루려 하되 |
끊이지도 깨지지도 않기에 |
그 마음을 살타(薩埵)라 부르네. |
또한 좋은 법을 찬탄하는 것을 살(薩)이라 하고, 좋은 법의 특징[體相]을 타(埵, vat)라 하나니, 보살의 마음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있기 때문이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고, 일체법의 진실한 성품을 알기 때문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기 때문이고, 일체 성현들이 칭찬하는 바이기 때문에 이를 보리살타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 가운데서는 불법이 으뜸인데, 이 사람이 그 법을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모든 성현들의 찬탄을 받는 것이다. |
또한 이 같은 사람은 모든 중생들이 생․노․병․사에서 해탈케 하기 위하여 불도를 구하니, 이를 보리살타라 한다. |
또한 세 가지 도법을 모두 보리라 하나니, 첫째는 불도(佛道)요, 둘째는 성문도요, 셋째는 벽지불도이다.
벽지불도와 성문도는 보리를 얻어도 보리라 하지 않으니, 부처님 공덕 가운데 있는 보리만을 보리라 칭한다.
이를 보리살타라 한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34. 보리살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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