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말하기를 “32상(相)25)의 업을 심은 뒤 이러한 사람을 보살이라 한다”고 한다. |
[문] 언제 32상의 업의 인연을 심는가? |
[답] 3아승기겁을 지난 뒤에 32상의 업의 인연을 심는다. |
[문] 얼마나 되는 시간을 아승기(阿僧祇)라고 하는가? |
[답] 하늘이나 인간 가운데 능히 셈을 안다 하여도 궁극의 수효는 알지 못하니, 이것을 1아승기라 한다. |
예컨대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이라 하고, 둘에 둘을 곱해 넷이라 하고, 셋의 셋을 곱해 아홉이라 하고, 열의 열을 곱해 백이라 하고, 열의 백을 곱해 천이라 하고, 열의 천을 곱해 만이라 하고, 천의 만을 곱해 억이라 하고, 천만의 억을 곱해 나유타(那由他)26)라 하고, 천만의 나유타를 빈바(頻婆)27)라 하고, 천만의 빈바를 가타(迦他)28)라 하고, 가타를 지나면 아승기라 하나니, 이와 같이 세어서 3아승기가 된다. |
첫째 아승기를 세어서 차면 둘째 아승기를 세고, 둘째 아승기가 차면 셋째 아승기를 센다. 마치 산수법과 같아서 하나로부터 세어 백을 다 세면, 다시 하나에 이르러 시작한다. |
25) 범어로는 dvatriṃśa-lakṣaṇa. 32상이란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인간이 지니는 상서로운 서른두 가지 신체적 특징을 말한다. 원래 인도에서 전륜성왕이 지닌 특징으로 알려졌던 것이 부처님에게 전용되었다고 한다. 32대인상(大人相)이라고도 한다. |
26) 범어로는 nayuta. 나유타란 지극히 큰 수를 가리키는 말로 천만, 천억 혹은 여기에서 말하듯 천만억에 상당한다. |
27) 범어로는 bimbara. |
28) 범어로는 gata. |
[167 / 805] 쪽 |
이와 같이, 보살도 한 아승기가 지나면 다시 하나로부터 시작한다. |
처음의 아승기 동안에는 내가 부처를 이룰 것인지 이루지 못할 것인지를 모르고,
둘째 아승기 동안에는 마음으로는 비록 내가 부처를 이룰 것임을 아나 입으로 “내가 부처를 이루리라” 하지 못하고,
셋째 아승기에는 마음은 명료히 자기가 부처를 이를 것임을 알고 입으로도 말하되 두려움이 없이 “내가 오는 세상에는 부처를 이루리라” 발언한다. |
석가문부처님께서도 과거의 석가문부처님으로 부터 자나시기불(剌那尸棄佛)29)에 이르러 최초의 아승기가 되니, 이 동안의 보살은 여자의 몸을 영원히 여의셨다. |
자나시기부처님으로부터 연등부처님까지가 두 번째 아승기다. 이 동안의 보살은 일곱 송이의 청련화로 연등부처님께 공양하고, 사슴 가죽의 옷을 깔고 머리칼을 풀어 진흙을 가리니, 이때 연등부처님께서 그 자리에서 수기를 주시되 “그대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불리리라” 하셨다. |
연등부처님으로부터 비바시30)부처님까지가 셋째 아승기이니, 만약에 세 아승기겁이 지나면, 이때 보살은 32상의 업의 인연을 심게 되는 것이다. |
[문] 32상의 업은 어디에다 심는가? |
[답] 욕계에서 심고, 색계나 무색계는 아니다.
욕계의 5도(道) 가운데 인도(人道)에서 심는 것이다.
사천하(四天下)에서는 염부제(閻浮提)에서 남자의 몸으로서 심고 여자의 몸으로는 심지 못한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실 때 심고 부처님이 나타나시지 않을 때엔 심지 못하며, 부처님 몸에 의해 심고 다른 곳에 의해서는 심지 못한다. |
[문] 32상의 업의 인연은 신업․구업․의업 중 어느 업으로 심는가? |
[답] 의업으로 심고, 입이나 몸의 업으로는 심지 못한다. 왜냐하면 의업은 예리하기 때문이다. |
[문] 의업에는 6식(識)이 있다. 이 32상의 업은 이 의업이 종자가 되는가? 아니면 이 5식(識)이 종자가 되는가? |
[답] 의식(意識)으로 심고 5식으로 심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5식은 |
29) 범어로는 Ratnaśikhin. |
30) 범어로는 Vipaśyin. |
[168 / 805] 쪽 |
분별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의업으로 심는 것이다. |
[문] 어느 모습[相]31)을 처음으로 심는가? |
[답] 어떤 이는 말하기를 “발이 편안히 서는 모습을 먼저 심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먼저 편안히 선 뒤에야 나머지 모습의 인연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한다. |
또한 어떤 이는 말하기를 “검푸른 눈의 모습을 최초로 심는다. 이 눈이 있어야 대자(大慈)로써 중생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한다. |
이러한 두 이야기에 옳은 말이 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모습이 인연 화합할 때 최초로 심는 것이다. 어째서 반드시 발을 안립(安立)하는 일이 최초가 되겠는가? |
[문] 한 생각으로 심는가? 여러 생각으로 심는가? |
[답] 서른두 가지 생각으로 서른두 가지 모습을 심고 하나하나의 생각으로 하나하나의 모습을 심는다. 하나하나의 모습에 백 가지 복덕이 장엄되어 있는 것이다. |
[문] 어느 만큼을 하나의 복덕이라 하는가? |
[답] 어떤 이는 말하기를 “업보가 있으니, 전륜성왕이 사천하에서 복락을 받아 자유자재한 것을 한 복덕이라 하고, 이와 같은 백 복덕이 한 모습이다”고 했다. |
또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석제환인이 되어 두 하늘에서 자유자재하게 되는 이것을 한 복덕이라 한다”고 했다. |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이 되어 욕계 안에서 자유자재하게 되는 이것을 한 복덕이라 한다”고 했다. |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처(補處)의 보살32)을 제하고 나머지 모든 중생이 누리는 복덕을 한 복덕이라 한다”고 했다. |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천지의 겁이 다한 뒤에 모든 중생들의 복덕을 함께하기에 삼천대천세계가 과보로서 성립되는데 이것을 한 복덕이라 한다”고 했다. |
31) 범어로는 lakṣaṇa. |
32) 범어로는 saṃnikṛṭṭabodhisattva. |
[169 / 805] 쪽 |
또한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 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비유로써 알 수도 없다. 삼천대천세계의 일체 중생들이 모두 눈이 멀었을 때 어느 한 사람이 치료해서 고쳐 주면 이것이 한 복덕이라 한다”고 했다. |
나아가 일체의 사람들이 모두 독약에 중독되었을 때 어느 한 사람이 치료해서 낫게 하거나,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을 어느 한 사람이 구제해서 벗어나게 하거나, 모든 사람이 계를 깨뜨리고 바른 견해를 깨뜨렸을 때 어느 한 사람이 가르쳐서 맑은 계행과 바른 견해를 얻게 하거나 하면 이러한 것들을 한 복덕이라 한다”고 했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36. 삼아승기겁 뒤에 부처의 32상의 인연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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