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스크랩] 27. 父母恩重經(부모은중경)

수선님 2018. 12. 2. 11:53


해인사 학인시절, 장경각 안내소임을 본일이 있다.
 
해인사를 찾는 신도들이나 관광객에게 친절하게 사찰을 안내하고 홍보하는 일이었는데 법당 벽화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소임의 일부분이었다. 그때 벽화의 유래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처음으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독송하게 되었고 새삼 보은인연(報恩因緣)의 지중(至重)을 느낄 수 있었다.
 
해인사의 여러 벽화 가운데 부처님이 해골더미에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리는 장면이 바로 <부모은중경> 서분(序分)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 장면에서부터 보은의 법문이 시작된다. 마른 뼈 무더기에 절하신 까닭을 물었을 때 전생의 조상이거나 여러 생을 거치는 동안의 어버이일 것이므로 예배한다는 부처님의 대답은 사뭇 감동적이다. 이 세상에는 인연아닌 것이 없는 셈이니까.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설하는 경전’이라는 뜻의 <부모은중경>은 <불설부모은중경>이 원제이다. <부모은중경>만큼 부모의 슬픔과 사랑을 깊이있게 이야기한 고전은 없을 것이다. 이 경을 통해 부처님은 효의 윤리와 인간의 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어버이가 자식에게 베푸는 자애의 마음은 한량 없는데 자식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불효와 불의를 일삼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 경전에서는 자식들이 저지르는 불효를 가지가지 예를 들면서 꼬집고 있다. 부처님이 직접 우리 앞에서 꾸짖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어서 헤어짐도 슬프고 괴롭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더욱더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가 먼 길을 떠나가니 어머니 모든 생각 타향에 나가있네’

 

열가지 큰 은혜 가운데, 먼길 떠난 자식을 염려하고 걱정하시는 은혜를 게송으로 말씀하신 내용인데 부모의 탄식과 슬픔이 애잔하게 와 닿는다. 더군다나 출가사문의 길을 걷고 있는 나로서는 몸둘 바를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자은(慈恩)이 있다면 어머니에게는 비은(悲恩)이 있음이다.
 
‘양자식지친력(養自息知親力)’이라는 말이 있듯 누구나 자식을 낳아 길러 보아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게다.

 

<부모은중경>은 효행의 지침서이다. 본문에서는 부모를 위하여 백천 개의 칼과 창으로 자기의 몸을 쑤시기를 백천겁 동안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갚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다만 보답하는 길은 부모를 위해 <부모은중경>을 서사(書寫)하며,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 부모를 위해 죄업과 허물을 참회하는 불교의 회향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기적인 관계속에서 서로에게 감사하고 용서하는 자비의 정신이 부모의 한량없이 크고 깊은 은혜에 보답하는 효행의 근원이다. 나만 존재한다는 아집과 아만을 버릴 때 부모에 대한 경외심과 공경심이 우러나는 까닭이다. 어찌보면 정조대왕이 <부모은중경>의 판본을 만들어 용주사에 봉안한 것도 이러한 불교적 효행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부모은중경>은 그 내용이 짧은 경전이므로 누구나 쉽게 독송할 수 있고 자신의 효행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다. 더군다나 경전이 담고 있는 가르침을 실참실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내 경우에는 기도를 회향할 때 마다 <부모은중경> 사경(寫經)을 꼭 한다. 판본은 모시지 못하더라도 사경본 만큼은 모시자는 생각에서다. 출가의 정신은 적극적인 효의 실천이지만 수행이 따르지 못하면 더 큰 불효의 그림자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가 수행자는 불교적인 자각으로 효의 윤리를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불교에서는 효의 범위를 가족에 국한하지 않고 일체중생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는 혈육지정의 효도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구제하는 대승적인 효를 지향하라는 뜻이다.

 

효의 윤리와 도덕이 흔들리는 오늘날 다른 어떤 경전보다 <부모은중경> 신앙은 절대적이다. 모두가 <부모은중경>의 마음으로 돌아가 귀한 생명을 주시고 깊은 애정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효심이라 믿기 때문이다. 
 

현징/청주 관음사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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