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125. 많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작은 고통쯤은 인내하라.
20 팔다리를 보시하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지옥고의 경중을 따지지 못하니
무지에 대한 두려움은 한이 없네.
이것은 경중의 차이를 따지지 않아서 생기는 퇴굴심이라는 것입니다. 잘 따져 보면 퇴굴심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21 백 천만 겁 무량한 세월 동안
이 내 몸은 수없이 잘리고
찔리고, 태워지고, 찢겼지만
아직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지금까지 업과 번뇌에 이끌려 악도나 인간의 몸을 받은 후에도 “잘리고, 찔리고, 태워지는”는 고통은 수없이 받아왔습니다. 그것도 의미 없이 말입니다. 이런 고통을 당했기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내보일 만한 것도 없이 말입니다.
보살도를 익힌 다음에는 다소 어렵더라도 노력하고 애쓰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2 내가 깨달음을 이루기까지
그 고통은 유한하니,
이는 병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는 고통과 같네.
궁극적인 고통을 없애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시적인 어려움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중병을 고치기 위해 수술을 받는 것처럼, 일시적인 고통을 자처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3 모든 의사는 치료를 할 때
작은 고통으로 큰 병을 없애네.
그러므로 많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작은 고통쯤은 인내할지니.
24 최고의 명의는
평범한 치료를 하지 않고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수많은 중병을 치료하네.
25 부처님께서도 (보살행을 닦으실 때) 처음에는
하찮은 푸성귀 따위를 베푸셨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마침내 자신의 몸까지 베푸셨네.
26 내 몸이
푸성귀처럼 여겨질 때
몸을 보시하는 것이
무엇 그리 어렵겠는가?
어째서 이런 것이 가능한가 하면
27 죄악을 끊었으니 고통은 없고
지혜로우니 걸림이 없네.
보살은 전도몽상과 죄악으로
몸과 마음을 해칠 까닭이 없네.
“죄악을 끊었으니 고통은 없고 지혜로우니 걸림이 없네.”
나가르주나 보살은 [고귀한 화환]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에게 육신의 고통이 없다.” 즉 보살지에 있는 보살에게 육신의 고통이 없고,
“마음의 고통이 어디에 있을까.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시니 그로 인해 세상에 오래 머무시네.
그러므로 성불이 오래 걸린다 해도 지혜로운 이는 나태하지 않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악을 끊었으니 고통은 없다.” 고 하신 것은 지혜로 무아의 진여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일체가 환과 같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려움을 자처하신 것은 자량을 속히 쌓을 수 있는 이익으로 아시기 때문이며
지혜롭기에 싫어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심과 실집(實執)의 뒤집힌 분별 때문에 육신을 ‘나’로 집착하거나 귀하게 여겨 육신의 고통을 참지 못하거나
멀리 내다보지 못해 “몸과 마음을 해칠 까닭이 없네.”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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