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삼매경 56. 12인연(因緣) - 12연기의 실상(實相)을 관(觀)함
問曰, 如摩訶衍般若波羅蜜中言. 諸法不生ㆍ 不滅ㆍ 空ㆍ 無所有ㆍ 一相ㆍ 無相, 是名正見. 云何言無常等觀名爲正見.
答曰, 若摩訶衍中說諸法空無相, 云何言無常ㆍ 苦ㆍ 空等不實. 若言不生ㆍ 不滅ㆍ 空是實相者不應言無相, 汝言前後不相應. 復次佛說四顚倒. 無常中常顚倒亦有道理, 一切有爲無常. 何以故, 因緣生故, 無常因無常緣所生果云何常. 先無而今有, 已有便無. 一切衆生皆見無常, 內有老病死, 外見萬物?落. 云何言無常不實.
問曰, 我不言有常爲實無常爲不實, 我言有常無常俱是不實, 何以故, 佛言, 空中有常無常二事不可得, 若著此二事是俱顚倒.
答曰, 汝言不與法相應, 何以故, 言無法云何復言二俱顚倒, 一切空無所有是爲實不顚倒. 若我破有常著無常, 我法應破而不實我. 有常顚倒破故觀無常. 何以故, 無常力能破有常. 如毒能破餘毒, 如藥除病藥亦俱去. 當知藥妙能除病故. 若藥不去後藥爲病. 此亦如是. 若無常法著應當破不實故. 我不受無常法云何破. 佛言, 苦是四眞諦中言實苦, 誰能使樂. 苦因是實因, 誰能令非因. 苦盡是實盡, 誰能令不盡. 盡道是實道, 誰能令非道. 如日或可令冷, 月或可令熱風可令不動是四眞諦終不可動轉. 汝於摩訶衍中不能了, 但著言聲. 摩訶衍中諸法實相. 實相不可破, 無有作者. 若可破可作此非摩訶衍. 如月初生一日二日. 其生時甚微細有明眼人能見指示不見者, 此不見人但視其指而迷於月. 明者語言, 癡人, 何以但視我指. 指爲月緣, 指非彼月. 汝亦如是, 言音非實相, 但假言表實理. 汝更著言聲闇於實相.
문 대승의 반야바라밀〔마하연(摩訶衍)은 대승(大乘)이고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는 지혜(智慧)의 완성으로 번역한다.〕 가운데서 말하는 것과 같이, 일체의 존재는 생기는 것도 아니요〔不生〕, 소멸하는 것도 아니며〔不滅〕, 공(空)이요, 무소유이며, 일상(一相)이요, 무상(無相)이다. 이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하는데, 왜 무상 등의 관법을 일컬어 정견이라고 말하는가?
답 만일 대승 가운데서 일체 존재의 공(空)과 무상(無相)을 설명하면, 왜 무상(無常)ㆍ 고(苦)ㆍ 공(空) 등이 진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가? 만일 불생(不生)ㆍ 불멸(不滅)ㆍ 공이 참다운 모습〔實相〕이라면 마땅히 모습이 없다〔無相〕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대의 말은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다. 또한 부처님께선 네 가지 전도(顚倒)를 말씀하셨다. 무상(無常) 가운데 항상 전도하는 것 또한 도리(道理)가 있으며, 일체의 유위법은 늘 변한다. 왜냐하면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무상한 씨앗〔因〕과 무상한 주변조건〔緣〕이 발생시키는 결과를 어떻게 항상하다고 하는가? 먼저는 없었는데 지금은 있으며, 이미 있던 것들이 문득 없어진다. 일체의 중생은 모두 항상하지 않음을 본다. 안으로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으며, 바깥으로는 만물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본다. 어찌하여 무상(無常)이 진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문 나는 항상하는 것〔常〕이 진실이고 항상하지 않는 것〔無常〕이 진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나는 항상하고, 항상하지 않는 것이 모두 진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공(空) 가운데의 항상함과 항상하지 않음의 두 가지 사안은 얻을 수 없다. 만일 이 두 가지 사안에 집착한다면 이것은 둘 다 전도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답 그대의 말은 법과 서로 맞지 않는데, 무슨 까닭인가? 법이 없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다시 두 가지가 함께 전도되었다고 말하는가? 일체가 공하여, 존재하지 않는 일이 없는 이것은 진실로 전도된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항상함을 부숴버리고 항상하지 않음에 집착한다면 나의 법은 마땅히 파괴되어야 하니, 진실로 나(我)는 아니기 때문에 항상 전도하는 것을 깨트리기 때문에 무상을 관(觀)한다. 왜냐하면, 무상의 힘은 능히 항상함을 깨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독이 능히 그 밖의 독을 깨트릴 수 있는 것과 같고, 약으로 병을 제거하면 약도 함께 버리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약이라는 것이 병을 미묘하게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병이 낫고서도 약을 버리지 않으면 뒤에는 약이 병이 된다. 이것도 역시 그렇다. 만일 무상법(無常法)에 집착한다면 마땅히 실답지 않은 것을 깨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상법을 수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깨트릴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苦)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가운데서 진실로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누가 능히 약을 사용하겠는가? 고인(苦因)은 참다운 원인인데, 누가 능히 원인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고진(苦盡)은 진실로 소진하는 것인데, 누가 능히 소진하지 않게 하겠는가? 진도(盡道)는 참다운 길인데, 누가 능히 길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해(日)는 혹여 차게 할 수 있고, 달(月)은 혹여 뜨겁게 할 수 있으며, 바람은 혹여 움직이지 않게 할 수 있더라도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는 끝내 움직이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대는 대승 가운데서 요달(了達)하지 못하고, 단지 말소리에만 집착할 뿐이다. 대승 가운데 일체 존재의 참다운 모습〔諸法實相〕의 참다운 모습〔實相〕은 깨트릴 수 없으며 만드는 주체〔作者〕도 없다. 만일 깨트릴 수 있고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대승이 아니다. 마치 달이 처음 생겨서 하루 이틀이 되는 것과 같다. 그것이 생길 때는 매우 미세하여 밝은 눈을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가리켜 보이지만, 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단지 그 손가락을 볼 뿐 달을 못 보고 헤맨다. 눈 밝은 사람은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왜 단지 나의 손가락만 볼 뿐인가? 손가락으로 달의 반연을 삼지만 손가락은 저 달이 아니다. 그대도 역시 이와 같아서, 말소리는 참다운 모습이 아니다. 다만 말을 빌려서 참다운 이치를 표현할 뿐이다. 그대는 더욱 말소리에 집착하여 참다운 모습에는 어둡다."
작은 암자에서 홀로 아주 청정하게 열심히 수행하시는 스님께서 까망콩 농사를 지으셨는데,
올해는 이것처럼 수확이 별로라네요. 내년 콩농사는 풍년이 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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