坐禪三昧經 좌선삼매경

[스크랩] 좌선삼매경 60. 12인연(12연기)의 공(空)을 설함

수선님 2018. 12. 16. 11:47

좌선삼매경 60. 12인연(12연기)의 공(空)을 설함

 

問曰, 佛言十二因緣, 無明緣諸行. 汝云何言無因果.

答曰, 先以被答, 不應更難. 若難者更當答. 佛言, 眼因, 色緣癡邊生邪憶念. 癡是無明. 是中無明何所依住. 若依眼耶. 若色中耶, 若識中耶164). 不應依眼住, 若依眼住, 不應待色常應癡. 若依色住, 不應待眼, 是則外癡何豫我事. 若依識住, 識無色ㆍ 無對ㆍ 無觸ㆍ 無分無處. 無明亦爾, 云何可住. 是故無明非內, 非外非兩中間, 不從前世來, 亦不往165)後世, 非東西南北四維上下來. 無有實法, 無明性爾. 了無明性則變爲明. 一一推之癡不可得. 云何無明緣行. 如虛空 不生ㆍ 不滅ㆍ 不有ㆍ 不盡ㆍ 本性淸淨, 無明亦如是. 不生ㆍ 不滅ㆍ 不有ㆍ 不盡ㆍ 本性淸淨. 乃至生緣老死亦爾.

菩薩如是觀十二因緣, 知衆生虛
繫在苦患. 亦度耳, 諸法若有實相難可得度. 思惟如是則破愚癡.

부처님께서는 십이인연 속의 무명을 조건〔緣〕으로 하여 여러 행(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인과(因果)가 없다고 말하는가?

먼저 이미 대답했으니, 마땅히 다시 논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일 논란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다시 대답하리라. 부처님께서, "눈이라는 원인〔因〕과 물질이라는 대상〔緣〕에 의해 어리석음의 주변〔癡邊〕에서 삿된 억념(憶念)이 발생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리석음은 무명(無明)이다. 이 가운데의 무명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물게 되는가? 눈에 의지하는가? 혹은 물질 가운데 의지하는가? 혹은 의식 가운데 의지하는가? 마땅히 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만일 눈에 의지하면, 마땅히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항상 어리석어야 마땅하다. 만일 물질에 의지하면, 마땅히 눈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곧 바깥의 어리석음인데 어떻게 나의 일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가? 만일 의식에 의지하여 머문다면, 식은 물질이 아니고, 대립함이 없으며, 감촉이 없고, 분별이 없으며, 처소가 없고, 무명도 역시 그러한데, 어떻게 머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무명은 안도 아니며, 바깥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다. 전생(前生)에서부터 오지 않았으며, 또한 내세(來世)로 가지도 않는다. 동서남북, 사유, 상하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참다운 존재란 있을 수 없으며, 무명의 본성이 그렇다.

 

무명의 본성을 요달(了達)하면 변하여 밝음이 된다. 하나하나를 추궁(推窮)하면 어리석음은 얻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 무명은 행에서 연유하는가? 허공이 불생(不生)ㆍ 불멸(不滅)ㆍ 불유(不有)ㆍ 부진(不盡)하고, 본성이 청정하듯이 무명도 역시 그렇다. 불생ㆍ 불멸ㆍ 불유ㆍ 부진하고 본성이 청정하다. 내가 태어남이 늙고 죽음에서 연유하는 것도 역시 그렇다.

보살은 이와 같이 십이인연을 관(觀)하고, 중생들이 헛되이 괴로움과 근심에 묶여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중생은 제도하기 쉽지만, 여러 존재가 만일 참다운 모습으로 지니고 있다면 제도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사유하여 어리석음을 깨트린다.             

 

 

 

 



출처 : 무인아제
글쓴이 : 무인아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