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사의 어록중에 유일하게 ‘경(經)’ 대접을 받는 것이 혜능(慧能 638~713)스님의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돈황본 <단경>을 알게된 것은 당시 해인총림 방장이던 성철스님의 법문을 통해서였다. 성철스님은 원본인 돈황본을 통해서 <단경>을 공부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스님의 ‘단경지침’이라는 특강을 1987년 해인사 보경당에서 열린 ‘전국 선화자(禪和子)대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전국선화자대회는 초심납자들의 공부길을 제시해주기 위한 특강형식으로써 4강좌중 2강좌가 <육조단경>이었다. <육조단경> 본강의는 당시 봉암사 조실이던 서암스님께서 하셨는데 그 교재가 덕이본 단경이었다. 한 법석에서 돈황본과 덕이본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인연을 갖게된 것이다. 그로부터 단경이 종문(宗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또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육조단경제본집성(六祖壇經諸本集成)’이라는 제목으로 여섯가지 판본을 모아놓은 필사영인본도 접하게 되었다. 원철/은해사 승가대학원
<단경>은 그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법을 전해받는 입지전적인 흥미진진한 구성과 탁월한 안목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널리 읽혀져 왔다. <단경>을 처음 만난 것은 탄허스님 번역본에 의해서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육조스님의 머리가 동쪽으로 건너와 쌍계사에 모셔져 있다는 신앙성이 함께 결부되어 더욱 많이 읽혀졌다. 그러한 ‘정상동래설(頂相東來設)’ 이야기가 부록의 형태로 실려 있는 덕이본 단경이 단연 인기 제일이었다. 탄허스님의 번역본 역시 덕이본(德異本)이다.
1993년 <육조단경>을 자세히 살펴야 할 사정이 생겼다. 돈황본만으로는 단경의 그 고유성과 독자성을 헤아리기 어려워 새로 교재를 만들어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가장 원본으로 추정되는 돈황본과 가장 대중성있는 덕이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사상적인 변질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구절구절 비교하고자 하였다. 그때 마침 컴퓨터가 사찰에도 들어오기 시작한지라 돈황본과 덕이본을 각각 입력시켜 서로 대조하여 일목요연하게 볼수 있도록 하였다. 서문은 덕이본의 법해스님 찬(撰)을 그대로 쓰고 성철스님의 단경지침은 맨 뒤에 발문 형식으로 달았다.
이렇게 만든 책 제목을 <이본대조 육조단경(二本對照 六祖壇經)>이라 붙였다. <육조단경>을 읽어보면 철저하게 자기 내면세계까지 천착해 가는 치열한 안목이 군데군데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단경>의 독특한 관점은 자성불(自性佛)의 강조이다. 삼귀의 역시 기존의 ‘불법승 삼보의 귀의’를 ‘자성삼보귀의’라고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즉 ‘佛이란 깨달음이요, 法이란 바름이요, 僧이란 깨끗함’이라고 정의한 후 ‘자기 마음의 깨달음에 귀의하고 자기 마음의 바름으로 돌아가고 자기 마음의 깨끗함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있다. 이는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이라는 사홍서원 역시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자성번뇌서원단(自性煩惱誓願斷) 자성법문서원학(自性法門誓願學) 자성불도서원성(自性佛道誓願成)’으로 재해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내면의 자성세계까지 제도해야 제대로 된 제도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계(戒) 또한 ‘심지무비자성계(心地無非自性戒)’, 즉 ‘내 마음에 그릇됨이 없는 것을 진정한 계’라고 하여 형식적인 외형의 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내면적인 계에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진정한 계임을 알려주고 있다. <단경>에서는 모든 것을 자성의 문제로 귀착시켜 수행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안목을 열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삼학설(三學說)의 경우 기존의 계율의 실천에 의해 선정을 열고 선정의 실천에 의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통설에 대하여 삼학의 점차적 순서를 무시하고 삼학을 하나로 보는 입장을 견지하여 이것을 돈오설(頓悟說)에까지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신수(606~706)의 북종선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혜능선(慧能禪)의 사상적 완성을 통하여 명실상부한 남종선의 독자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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