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스크랩] 第 三十二 애욕품(愛欲品)

수선님 2017. 12. 24. 12:16

애욕품(愛欲品)

 

애욕품이란 천하게 음란함과 은혜와 사랑으로 하여, 세상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재앙과 해를 많이 일으킨다.

 

마음을 음란한 행동에 놓아버리면, 음욕의 사랑은 가지들을 늘려, 분포를 일으켜 치열하게 성해져서, 지나치게 날뛰어 과일을 탐내는 원숭이와 같다.

 

사랑을 참는 것을 괴롭다고 함으로써, 탐내고 욕심내어 세상에 집착 한다면, 근심과 걱정이 밤낮으로 자라나서, 뻗어남이 덩굴풀이 생겨남과 같다.

 

사람은 은혜와 사랑 때문에 미혹되어, 정욕을 버리지를 못한다. 이와 같이 근심과 사랑이 많으면, 졸졸 흐르는 물이 연못을 가득 채운다.

대저 근신하고 슬퍼하여, 이 세상의 괴로움이 하나가 아닌 까닭은, 단지 사랑이 있는 인연 때문이니, 사랑을 떠나면 곧 근심은 없어진다.

 

이미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근심을 버리라. 사랑이 없다면 어찌 세상이 있겠는가? 근심하지 않고, 물들어 구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편안함을 얻으랴.

 

근심이 있음으로써 죽을 때에는, 그 때문에 친척이 많음을 이룬다. 근심을 건너는 긴 길에, 괴로움을 사랑하면 항상 위험에 떨어진다.

 

도를 행하는 수행자는 욕심과 더불어 만나지 못하여, 먼저 사랑의 근본을 베어내어, 뿌리를 심는 바가 없고, 갈대를 베어냄과 같이 하여 마음에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 없다.

 

나무의 뿌리가 깊고 튼튼하면, 비록 끊어낼지라도 오히려 다시 살아 남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다 제거하지 못하면, 문득 마땅히 도리어 괴로움을 받는다.

 

원숭이가 나무를 떠 난다 할지라도, 벗어남을 얻어 다시 나무로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감옥을 나오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간다.

 

탐내는 마음은 항상 흐름이 되니, 익힘과 교만과 아울러 생각은 음욕에 의하여, 스스로 엎어져서 보는 바가 없다.

 

모든 마음은 흘러서 넘쳐, 사랑의 결합은 갈등과 같다. 오직 지혜만이 이를 분별하여 보아, 능히 마음의 근원을 끊을 수 있다.

 

대저 사랑의 윤택함에 따르면, 생각은 우거져 덩굴이 되니, 애욕은 깊어서 밑이 없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이것을 써서 더한다.

 

생겨난 가지는 끊임이 없어, 단지 써 탐욕을 먹으면, 원망을 길러 무덤을 더할 뿐이니,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이에 급급하다.

 

비록 감옥에 쇠고랑과 자물통이 있다. 할지라도, 지혜있는 사람은 견고하도고 말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보고, 물들어 집착하는 사랑은 몹시 견고하다.

 

지혜는 사랑을 말하여 감옥이라 하니 깊고 견고하여 나옴을 얻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마땅히 끊어서 버리라. 애욕을 보지 않으면 능히 편안하다.

 

여색을 보고 마음에 미혹하여, 생각하기를 무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하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써 아름답고 선하다고 하니, 어찌 그 참다움의 아님을 알 수 있으랴!

 

음란한 즐거움으로써 스스로를 싸는 것은, 비유하면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것과 같다. 지혜 있는 사람은 능히 이를 끊어버려, 돌아보지 않고 서 모든 괴로움을 제거한다.

 

마음으로 방탕과 안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음란함을 보고 써 깨끗하다 하니, 은혜와 사랑의 마음이 성하게 더하여, 이에 따라 감옥을 만든다.

 

마음을 깨달아 음란함을 없애는 사람은 항상 탐욕이 깨끗하지 못함을 생각하여, 이에 따라 사악한 감옥에서 나와, 능히 늙고 죽음의 근심을 끊는다.

 

욕망의 그물로써 스스로를 가리고, 사랑의 뚜껑으로써 스스로를 덮으면, 스스로 방자하여 감옥에 묶이는 것이, 마치물고기가 통발의 주둥이로 들어감과 같다.

 

늙고 죽음을 위하여 엿보는 바는, 송아지가 어미의 젖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애욕을 떠나 사랑의 자취를 없애어, 그물에서 나오면 해치는 바가 없다.

 

도를 다하여 감옥의 묶임을 제거하여, 모든 이것저것을 풀어, 이미 변행을 제도함을 얻으니, 이를 큰 지혜가 있는 선비라고 한다.

 

법에서 멀어져가는 사람에게 친하지 말고, 또한 사랑에 물드는 일을 하지 말라. 삼세를 끊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변행에 떨어진다.

 

만일 모든 법을 깨달아, 능히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사랑하는 마음을 풀면, 이것을 성의에 통한다고 한다.

 

모든 보시 중에서도 불경의 보시가 뛰어나고, 모든 맛 중에서도 도의 맛이 뛰어나고, 모든 줄거움 중에서도 법의즐거움이니, 사랑이 다하면 모든 고뇌를 이긴다.

 

어리석은 사람은 탐욕으로써 스스로를 묶어, 피안에 건너는 것을 구하지 않아, 애욕을 탐내기 때문에, 사람들을 해치고 또 스스로를 해친다.

애욕의 마음을 밭으로 삼고, 음란함과 원망과 어리석음을 씨앗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세상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보시를 하면, 복을 얻음이 한량이 없다.

 

친구들이 적고 재물이 많으면, 상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한다. 즐기는 탐욕의 해침은 목숨을 해롭게 하니, 그러므로 지혜는 욕심을 탐내지 않는다.

 

마음에 옳으면 곧 욕심이 되니, 어찌 반드시 홀로 다섯 가지 욕심뿐이랴! 어기어서 다섯 가지 욕심을 끊도록 하라, 이것을 곧 용감한 선비라 한다.

욕심이 없으면 두려움이 있을 것이 없으니, 편안하고 맑아 근심과 걱정이 없다. 욕심을 제거하여 맺음을 푸는 것을, 이것을 길이 연못에서 나왔다고 한다.

 

내가 너의 근본을 알기를 바란다면, 마음으로써 잘 생각하면 생긴다.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곧 너는 있지 않다.

 

나무를 베어 쉬지 말라, 나무는 모든 악함을 생기게 하니, 나무를 끊고 뿌리를 다 캐내면, 비구는 멸도 한다.

 

대저 나무를 베지 않고, 다소의 나머지 친함이 있으면, 마음이 이것에 묶여, 마치 송아지가 어미를 구함과 같다.

출처 : 불종사
글쓴이 : 현진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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