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163. ★ 항상함/무상함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불생불멸 !

수선님 2019. 1. 20. 13:07

[문] 어떻게 모든 법의 실상을 관하는가?

 

[답] 모든 법은 티[瑕]도 틈[隙]도 없어서 깨뜨리거나 무너뜨릴 수 없으니,

이것이 법의 실상임을 관찰해서 안다.

 

[문] 일체의 언어는 모두 대답할 수 있고, 깨뜨릴 수 있고, 무너뜨릴 수 있 다.

그런데 어찌하여 말하기를 ‘파괴할 수 없는 것이 모든 법의 실상’이라 하는가?

  
[589 / 2071] 쪽

[답] 모든 법은 깨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불법 가운데에서는

일체의 언어의 길을 지나고 마음의 작용도 사라져서 항상 불생불멸함이 마치 열반의 모습과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의 모습이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뒤에 없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먼저는 있다가 나중에 없어지는 것이라면 이는 단멸(斷滅)이 된다.

 

또한 모든 법은 영원함[常]일 수도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영원하다면 죄도 복도 없고, 죽이거나 해침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목숨을 살려주는 복도 없고, 수행하는 이익도 없으며, 속박도 해탈도 없어서 세간이 곧 열반일 것이다.

이러한 여러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은 영원함이 아니다.

 

만일 모든 법이 무상하다면 이는 단멸이 되나니,

또한 죄도 복도 없고, 이익도 손해도 없고, 공덕과 업도 없으며, 인연과 과보도 잃을 것이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은 무상함도 아니다.

 

 

[문] 그대가 말하기를 “불법에서는 항상하다 하여도 진실이 아니요, 무상하다 하여도 진실이 아니다” 하는데, 이는 옳지 못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불법 가운데에서는 항상함 역시 진실이요, 무상함 역시 진실이기 때문이다.

 

항상함이란 수연(數緣)이 다하고 비수연(非數緣)이 다한 것이다.

허공은 나지도 머물지도 멸하지도 않는 까닭에 항상한 모습이라 한다.

무상의 모습이란, 5중(衆)이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까닭에 덧없는 모습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항상함과 무상함이 모두 진실치 않다” 하는가?

 

[답] 성인은 두 가지 말씀이 있으니, 첫째는 방편의 말씀이요, 둘째는 곧은 말씀이다.

방편의 말씀이라 함은 사람을 위하는 인연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한다 함은 중생들을 위하여 ‘이는 항상함이다. 이는 무상함이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니,

대치실단(對治悉檀)7)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일 무상이라 말할 때에는 중생들이 삼계에서 쾌락에 집착함을 뽑아 주고자

부처님께서도 생각하시기를 ‘어찌하여야 중생들로 하여금 애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셨다.

  
  
  
7) 범어로는 prātipākṣika-siddhānta. 네 가지 실단의 하나.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미혹을 대치하고 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590 / 2071] 쪽
 그러므로 다음의 게송과 같은 무상의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무생(無生)의 법을 관한다면
  생법을 여읠 수 있고
  무위(無爲)의 법을 관하면
  유위를 여읠 수 있다.
  

 

어찌하여 생생(生生)을 인연화합이라 하는가?

 

곧 무상하고 자재하지 못하고 인연에 속하며, 노병사의 모습ㆍ속이는 모습ㆍ파괴하는 모습이 있으면 이를 생생이라 한다. 이는 곧 유위법이니, 대치실단(對治悉檀)에서 설한 바와 같다.

 

항상함과 무상함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니, 두 가지 모두에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법이 항상함도 아니요 무상함도 아니라 한다면 이는 우치한 논리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있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없음이 무너지고,

없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있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무너진다면 다시 무슨 법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대지도론 163. ★ 항상함/무상함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불생불멸 !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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