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일체법에 두 종류가 있으니, 색법(色法)과 무색법(無色法)이다.
색법은 분석해서 미진(微塵)에 이르면 흩어져 멸해 남음이 없으니, 이미 단바라밀품(檀波羅蜜品)에서 보시할 물건을 파하는 데서 말한 바와 같다. |
무색법은 다섯 감정으로는 알 수 없는 바이기 때문이고, 뜻과 감정이 생기고 머물고 멸할 때에 관찰하기 때문에 마음에 몫[分]이 있음을 안다.
몫이 있기 때문에 무상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공하고, 공하기 때문에 있지 않나니, 손가락을 튀기는 사이에 예순 시각이 있으며, 낱낱 시각 가운데 마음에 생멸이 있다.
상속되어 생하는 까닭에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믿는 마음, 청정하고 지혜로운 선정의 마음임을 안다. |
수행자는 마음의 생멸을 관찰하기를 마치 흐르는 물의 등잔불같이 하니, 이것을 공(空)의 지혜의 문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한때엔 생겼다가 다른 때엔 멸한다면 생멸한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은 응당 항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극히 짧은 시각 가운데에는 멸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일시에 멸함이 없다면 끝끝내 멸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위의 법에는 모두 세 가지 모습이 있다” 하셨다. |
[593 / 2071] 쪽 |
만일 극히 짧은 시간에 생겨나서는 멸함이 없다면 유위의 법이 아닐 것이요, 만일 극히 짧은 시간에 마음이 생하고 머물고 멸한다면 어째서 단지 먼저 생겼다가 나중에 멸한다고만 말하고 먼저 멸했다가 나중에 생긴다고 하지는 않는가? |
또한 만일 먼저부터 있던 마음이 나중에 생기는 것이라면, 마음이 생기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미 먼저부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먼저부터 생함이 있었다면 생이 일어날 바가 없을 것이다. |
또한 생과 멸은 성품이 서로 다르니, 생에는 멸이 있을 수 없고, 멸에는 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동시[一時]라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생함이 없다.
만일 생함이 없다면 머물고 멸함도 없다. 생함과 머무름과 멸함이 없다면, 곧 마음에 속하는 법도 없다.
마음에 속하는 법이 없다면 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법이 없게 된다. 모든 행(行)에 색도 없고 무색법도 없는 까닭에 무위법 역시 없다.
왜냐하면 유위(有爲)를 인함으로써 무위(無爲)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유위가 없다면, 곧 무위 역시 없는 것이다. |
또한 만들어진 법이 무상함을 보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은 법이 항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만들어진 법이 존재하는 법이라고 본다면, 만들어지지 않은 법은 마땅히 없는 법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한 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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