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스크랩] 63. 大乘本生心地觀經(대승본생심지관경)

수선님 2019. 2. 3. 11:58


대학에 입학한 직후, 내 가슴에 와 닿았던 부처님 말씀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수를 거쳐 후기 대학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지 일류를 향한 재수의 방편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항상 다른 곳에 있을 수 밖에. 그런 내게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화엄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재수냐? 불교냐?의 기로에 서고 만 것이다. 햄릿보다 더한 번민이 계속되었다. 궤도를 수정키로 한 것은 달포를 방황한 후였다. 그 날 이후 ‘일체유심조’는 번민이 아닌 불은(佛恩)으로 내 마음 속에 자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의 참 뜻을 이해한 것은 불과 5년 전이었다. 다섯 글자를 이해하는데 무려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 셈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들이 귀찮게만 여겨졌다. 그리하여 때로는 연구실 형광등을 소등한 채로, 또 어떤 때는 아예 문을 잠그고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시간에 충실하였다. 성격탓이 아니라 그만큼 일이 바쁘고 밀린 일이 산더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대상포진으로 강의고 뭐고 뒷전으로 미룬 채 2주일을 쉬어야 했다. 그리고 2년 후, 이번엔 강의 도중에 쓰러지는 일까지 생겼다. ‘이러다가 잘못 되는 것은 아닐까? 일체가 유심조라고 했는데…’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무리하지 말라는 무언의 충고인 것을, 그제야 편안한 마음으로 불청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때 펼쳐든 것이 바로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이다. 10여년 전, 모 잡지사의 청탁으로 이 경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일체유심조’가 설해진 화엄은 물론 반야·유마·법화·열반 등 대승의 경전이 총망라된 이 경전으로 대승불교사상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경의 어제서문(御製序文)에는 당나라 고종(650∼683) 때, 현재의 스리랑카인 사자국 왕이 범본(梵本)을 보내주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 경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7세기 무렵일 것이다. 그 후 원화(元和) 년간(806∼820)에 반야삼장 등 8인이 왕명에 의해 8권 13품으로 한역하였는데, 이 한역본은 현재 대정장(大正藏) 제3책에 수록되어 있다.
 
이 경은 석가모니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 문수사리·미륵 등 여러 대보살들을 위하여 설하신 것이다. 경의 줄거리는 출가하여 아란아에 머물 때 어떻게 심지(心地)를 관해야 망상을 없애고 불도를 성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의 이름을 <대승본생심지관경>이라고 한 것은 이 경을 설할 때 여러 가지 본생설화와 비유를 곁들여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가위주의 수행을 권하고 있는 이 경의 중심사상은 경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심품(觀心品)’에 있다. “마음으로써 주인을 삼아라. 마음을 잘 관하면 해탈할 수 있다. 중생의 마음은 마치 대지와 같다. 오곡과 오과가 대지에서 생산되듯이 심법은 여래를 낳는다. 이러한 인연으로 삼계는 오직 마음이고, 마음을 이름하여 지(地)라고 한다”며 심지를 관하는 법을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을 <본생심지관경> <심지관경>이라고 약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이 경의 중심사상은 이른바 부모·중생·국왕·삼보의 네 가지 은혜와 보은이 설해진 ‘사은품’과 ‘보은품’에 있다. <대보적경>이나 <정법염처경>에서도 사은에 관한 언급이 있지만 이 경에서처럼 그 체계나 수행법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나아가 미륵신앙이나 대승계를 설하여 출가자 본연의 자세를 밀교적 수행법으로까지 연결짓고 있다. 그리고 보은은 무상보리의 마음을 내어 불도에 들고 삼보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하여 이 경을 설한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내가 갈 길을 밝혀준 <대승본생심지관경>. 이 경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성렬/조선대 교수·철학과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