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경전결집을 준비한 것은 까사빠 존자인데 어떻게 하여 결집을 하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부처님의 열반 소식이 전해지자, 제자들 중에는 비탄에 빠진 비구가 있는가 하면, 놀랍게도, ‘잔소리를 하던 분이 가셨으니 이제는 살았다.’ 하며 반기는 비구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비탄에 빠진 비구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땅을 치고 통곡을 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는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부처님의 4대가 변화했네!’ 하고 그것을 객관화시켜 보지 못하고 비통해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부처님의 열반을 반기는 비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이 다 부처님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 아니었다. 명색이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는 비구가 부처님의 잔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오히려 이것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곁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우리도 아이고, 부처님!, 하고 땅을 치며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거나, 또는 살았다! 하며 반기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어느 시대나 이런 사람들은 꼭 있게 마련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일들과 함께 가게 되어 있다. 색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때나 인간은 똑같은 패턴으로 간다. 이런 조직과 행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계뿐 아니라 색계, 무색계,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지옥계가 다 똑같은 규범으로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법도가 그대로 색계, 무색계에 전해지고 있고, 지옥 아귀, 아수라의 세계에도 역시 그 원리 하에서 운용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특별히 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사는 모든 것들은 한 울타리 안에서 하나의 법 안에서 함께, 그리고 위치는 다르지만 어떤 질서 속에서 상존하고 있다. 그것이 담마, 진리다. 그것을 부처님이 보신 것이다.
그래서 까사빠 존자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이런 비구들도 있구나!” 하고 깜짝 놀라면서 “이러다가는 이 법이 얼마나 가겠는가? 결집을 해야겠다.”하고 염려하면서 결집을 준비하였다. 그래서 경전을 외우게 된 것이다. 결집대회는, 일단 시작하면 1년, 2년씩 걸린다. 그래서 후원자가 없으면 못한다. 미얀마에서는 제 5차, 제 6차 경전결집대회를 개최했는데, 첫 번째가 200만 파운드가 들었고 이것을 2년 동안 국가에서 다 지원해주었다.
나도 미얀마에서 비구 생활을 하면서 포살을 할 때, 비구들이 삥 둘러 쪼그리고 앉은 채 경전을 외우는데 참여하였다. 경전을 외우는데, 외우던 비구가 탁, 막히면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이어서 외우는 것이었다. 결집초기에는 밥만 먹으며 돌아가며 경전을 외우고, 졸면 서로 꼬집어가면서 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나도 울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평소에 경전을 외우는 비구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엿보였다.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경전을 암송했는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암기가 글로 쓰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여럿이 외우니까 틀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판소리를 해 보면 그런 이치를 알 수 있다. 판소리를 이런 식으로 외우면서 하는데 5시간도 계속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산스크리트 어나 한문으로 내려온 경전들은 왜곡된 것이 많으나 빨리어로 구전되어온 경전은 틀리지가 않았다는 것, 필사로 내려온 것은 틀린 것이 많으나 외워서 내러온 것은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이 검증되었다는 사실이다.
빨리어는 그 리듬이 아름답다. 붓땅 사라남 갓차미, 담낭 사라남 갓차미... 음률이 있는데 매우 아름답다. 같은 리듬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장단의 리듬이 있기 때문에 외우기 쉽다. 판소리의 리듬이 5시간씩이나 나갈 수 있는 것은 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가락이 없으면 못 외운다. 마찬가지로 빨리어 경전이 암송될 수 있었다는 것은 장단의 리듬을 타서 외웠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우연은 없는 것, 다 조건이다.
어쨋든 불멸 후 500년 경, 초기의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지고 스리랑카로 건너가 번창하면서 당시 비구, 비구니들은 결집 이래 암송되어 온 경전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눈물겨운 노력을 하였다. 이 피나는 노력은, 암송된 경전이 패엽경에 문자화하기까지 계속되었다. 한 때 스리랑카에는 기근이 들었는데 이때 비구니 계단(戒壇, sima)이 끊어지는 일도 있었다. 풀뿌리를 먹어가며 경전을 외우는데, 탁발을 나가봐야 밥을 안 주니 이것을 이겨내지 못한 비구니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 계단이 끊어지면서 지금도 상좌불교권에는 비구니계단이 없다. 부처님이 만든 계단이 끊어졌기 때문에 누가 그것을 새로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전통을 존중하기 때문에 끊어진 대로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 상좌불교에는 비구니가 없고 8계녀(八戒女)만 있다.
이와 같이 풀뿌리를 먹으면서까지 암송되어 온 경전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 왔기 때문에 야자수 잎에다 문자로 기록한 것이 최초의 경전이다. 빨리어는 문자가 없다. 언어만 있다. 빨리어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 스리랑카의 씽할리어로 적어놓았던 것인데 그것이 영국 사람에 의해 다시 로마문자화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외국어 빨리어 경전이다. 지금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외국어 빨리어 경전은 영어의 알파벳으로 로마문자와 한 것이다. 그러나 한글로 번역된 경전도 같은 빨리어 경전이다. 단지 영어 표기가 아닌 한글 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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