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서 하는 것,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
위빠사나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대상에 다양하게 마음을 보내서 순간적으로 집중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좌선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닙니다. 먹을 때, 걸을 때 일상생활을 할 때 모두 알아차리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릴 때, 아는 힘과 바른 이해가 수행에 필요하다고 했는데 바른 이해란, 일상생활을 할 때 끊임없이 부딪히는 곳에 가서 붙여서 알아차리려고만 하지 말고, 온 대상, 그러니까 부딪힌 대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고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보는 것, 이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바른 이해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휩쓸리지 않은 채 그냥 받아들여서 객관화시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일상의 하는 일, 모두를 그때마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선만이 수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선과 걷는 수행인 경행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수행이 있습니다. 먹을 때, 잘 때, 일어나서, 청소할 때 이럴 때를 말한다. 일상을 수행의 연장이라고 봅니다. 그때 이것을 특별히 수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고 있는 일을 아는 것’, 설거지 할 때 설거지 하는 것을 아는 것, 청소할 때 청소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 그렇게 알아버리면 노동에서 수행으로 바뀌어버립니다.
이것이야말로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것입니다. 빨래할 때도 무엇 할 때도 저는 무슨 일을 할 때 알아차림으로 하면 수행으로 바뀌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설거지는 왜 하는가. 깨끗이 하려고? 설거지는 깨끗이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든 것입니다. 바닥 청소도 깨끗이 하려고 하니까 부담스럽습니다. 깨끗이 하려는 것은 욕망입니다. 바라는 마음입니다. 실제로 청소는 먼지가 있어서 하는데 깨끗이 하려고 하면 욕망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욕망이 전제되어 있는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할 때 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일상의 노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수동적이었다가 능동적으로 바뀌게 되고 삶의 질이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없어지니까 오히려 선택해서 하게 됩니다.
설거지할 때는 차거움, 뜨거움, 손의 움직임,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다 보면 설거지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대상일 뿐이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저도 요즘에는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우다보니 청소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전에는 청소가 필요에 의해서 한다는 마음으로 편했는데 이제는 깨끗이 하려는 마음, 바라는 마음이 생겨서 좀 부담스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바라는 마음이 이것을 불편하게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필요에 의해서 하면 그것 자체가 수행이 되어 삶의 질이 높아집니다. 괴로움으로부터 일상의 수행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청소를 더럽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깨끗이 하되, 깨끗이 하려는 마음 없이 그냥, 있어서 한다는 마음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만화그릴 때도 어떻게 하려는 마음 없이, 있어서 하려고 할 때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잘 그리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이 그럴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자체가 수행으로 가는 길입니다. 수행을 직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위빠사나는 집중의 종류가 다릅니다. 찰나의 느낌을 느끼면서 하면 완전이 수행으로 바뀝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적입니다. 느낌이 수반하면 사마타에서 위빠사나 수행으로 넘어옵니다. 느낌에 의해서 알아차림이 지속됩니다. 느낌을 통해서만이 3법인을 알게 됩니다. 느낌을 볼 수 있어야 무상을 봅니다. 절을 할 때도, 지금까지 3천배 하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자기 몸을 굽히는 것, 닿는 것, 무거운 것, 가벼운 것 등 몸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는 것이 수행입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절하면서 몸을 학대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공덕이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집중의 힘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집중에 의해서 번뇌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은 하지만 지혜는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낌을 느끼면서 하면 재미가 있고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지켜보다 보면 알아차림이 유지가 되고 느낌을 통해서 무상을 느끼게 되고 그 안에 엄청난 것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목표는 있으되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막 일련의 상태로 오는 것은 사마타고 집중을 위한 것이지만 위빠사나는 가벼운 것, 무거운 것, 그리고 하고 싶어 하는 의도, 일어나려는 의도, 일어날 때의 가벼움, 당김 등을 보면 몸과 마음을 통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속성인 3법인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하면 수행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우리는 남이 갖지 않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을 하나 손에 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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