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어떻게 심념처(心念處)를 관찰하는가? 곧 보살이 안의 마음을 관찰하건대, 이 안 마음에 세 가지 모습이 있으니, 생(生)․주(住)․멸(滅)이다. |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
‘이 마음은 온 곳도 없고, 멸해도 가는 곳도 없으며, 오직 안팎의 인연이 화합해서 생긴 것이다. 이 마음은 일정한 실제 모습이 없고, 실제의 생ㆍ주ㆍ멸도 없으며, 과거․미래ㆍ현재의 세상에 있지도 않다. 이 마음은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으며, 중간에 있지도 않다. 이 마음은 성품 없고 모습 없으며, 또한 내는 이도 없고 나게 하는 이도 없다.
밖으로는 갖가지 뒤섞인 6진(塵)의 인연이 있고, 안으로는 뒤바뀐 생각[心想]이 생멸하고 상속하기 때문에 억지로 마음이라 한다.’ |
[760 / 2071] 쪽 |
이와 같이 마음 가운데서는 실로 마음의 모습[心相]을 얻을 수 없다. |
이 마음의 성품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항상 깨끗한 모습이거늘 객진번뇌[客煩惱]16)의 모습에 집착되기 때문에 부정한 마음이라 한다. |
마음은 스스로가 알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이 마음은 마음의 모습이 공하기 때문이다. |
이 마음은 근본이나 지말에 진실한 법이 없다.
이 마음은 모든 법과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지나간 시간․다가올 시간․현재의 시간도 없으며, 빛 없고 형상 없고 대할 수도 없다.
다만 뒤바뀐 허망에서 생긴 것이다.
이 마음은 공하여 나 없고 내 것도 없으며, 무상하고 진실됨이 없다. |
이것을 일컬어 ‘마음을 수순하는 관법’이라 한다. |
마음의 모습이 무생임을 알면 무생법[無生法]에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이 마음은 남이 없고, 성품이 없고, 모습이 없는 까닭이다. |
지혜로운 이는 능히 아나니, 지혜로운 이는 비록 이 마음의 생멸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도 실제로 생멸하는 법을 얻거나 더럽고 깨끗함을 분별치 않으나 마음의 청정을 얻는다.
이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객번뇌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
이와 같이 해서 안의 마음을 관찰하고, 밖의 마음을 관찰한다. |
안팎의 마음을 관찰함도 또한 이와 같다. |
대지도론 253. ★ 보살의 심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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