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어떻게 법념처(法念處)를 관찰하는가?
곧 일체법을 관찰하건대,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으며, 과거․미래․현재의 세상에 있지도 않거늘 오직 인연이 화합한 것으로 허망한 견해에서 생겨나 실제로 정해진 것이 없다.
이 법이 누구의 법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 곧 모든 법 가운데에서 법의 모습을 얻을 수 없다. |
또한 어떤 법이 합하거나 흩어지는 일은 없다.
일체법이 존재하지 않음이 마치 허공과 같고, 일체법이 거짓됨이 마치 허깨비 같으니, 모든 법은 성품은 깨끗해서 서로 오염되지 않는 것이다. |
모든 법은 받아들임이 없으니, 모든 느낌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알 수가 없으니,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 거짓되기 때문이다. |
16) 범어로는 āgantukakleśa. ‘객진(āgantuka)과도 같은 번뇌’라는 뜻이다. |
[761 / 2071] 쪽 |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어떤 법이 같은 모습[一相]이라거나 혹은․다른 모습[異相]임을 보지 않아 일체법은 공하고 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
이때 이렇게 생각한다. |
‘일체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자성이 없으니, 이것이 진실한 공이다. 진실한 공인 까닭에 모습이 없고, 모습이 없는 까닭에 지음이 없고, 지음이 없는 까닭에 법이 일어나거나 혹은 멸하거나 머무름을 보지 않는다.’ |
이러한 지혜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문에 들어간다. |
이때 비록 모든 법의 생멸을 관찰하나 또한 무상문(無相門)에도 들어가나니, 왜냐하면 일체법이 모든 모습을 여읨은 지혜로운 이라야 깨닫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마음을 대상 가운데 묶어두어 모든 법의 모습을 수순하되 몸․느낌․마음․법을 생각하지 않으며, 이 네 가지 법이 처할 바가 없는 줄 안다.
이것이 안의 법념처이다. 밖의 법념처와 안팎의 법념처 역시 이와 같다. |
대지도론 254. ★ 보살의 법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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