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254. ★ 보살의 법념처

수선님 2019. 2. 24. 12:17

보살은 어떻게 법념처(法念處)를 관찰하는가?

 

일체법을 관찰하건대,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으며,

과거․미래․현재의 세상에 있지도 않거늘 오직 인연이 화합한 것으로

허망한 견해에서 생겨나 실제로 정해진 것이 없다.

 

이 법이 누구의 법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 곧 모든 법 가운데에서 법의 모습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어떤 법이 합하거나 흩어지는 일은 없다.

 

일체법이 존재하지 않음이 마치 허공과 같고, 일체법이 거짓됨이 마치 허깨비 같으니,

모든 법은 성품은 깨끗해서 서로 오염되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은 받아들임이 없으니, 모든 느낌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알 수가 없으니,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 거짓되기 때문이다.

  
  
  
16) 범어로는 āgantukakleśa. ‘객진(āgantuka)과도 같은 번뇌’라는 뜻이다.
[761 / 2071] 쪽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어떤 법이 같은 모습[一相]이라거나 혹은․다른 모습[異相]임을 보지 않아

일체법은 공하고 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 이렇게 생각한다.

 

‘일체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자성이 없으니, 이것이 진실한 공이다.

진실한 공인 까닭에 모습이 없고,

모습이 없는 까닭에 지음이 없고,

지음이 없는 까닭에 법이 일어나거나 혹은 멸하거나 머무름을 보지 않는다.’

 

이러한 지혜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문에 들어간다.

 

 

이때 비록 모든 법의 생멸을 관찰하나 또한 무상문(無相門)에도 들어가나니,

왜냐하면 일체법이 모든 모습을 여읨은 지혜로운 이라야 깨닫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마음을 대상 가운데 묶어두어 모든 법의 모습을 수순하되

몸․느낌․마음․법을 생각하지 않으며, 이 네 가지 법이 처할 바가 없는 줄 안다.

 

이것이 안의 법념처이다.

밖의 법념처와 안팎의 법념처 역시 이와 같다.

 

 

 

 

 

대지도론 254. ★ 보살의 법념처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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