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256. ★ 보살의 팔정도 - 정사유(正思惟)란 무엇인가?

수선님 2019. 2. 24. 12:17

8성도분이라 했는데, 정견(正見)․정방편(正方便)․정념(正念)․정정(正定)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으니,

이제 정사유(正思惟)만을 말하리라.

 

  
[766 / 2071] 쪽

보살은 모든 법이 공하여 얻을 바 없음에 머무른다.

이러한 <정견> 가운데서 정사유의 모습을 관찰하여 모든 사유는 모두가 삿된 사유임을 안다.

 

나아가 열반을 사유하고 부처를 사유함도 또한 이와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일체의 사유의 분별을 끊는 것을 정사유라 하기 때문이다.

 

사유와 분별은 모두가 진실치 못하고 거짓되고 뒤바뀐 것을 따르기 때문에 있을 뿐으로

분별ㆍ사유의 모습이란 모두 없는 것이다.

 

보살은 이처럼 바른 사유 가운데 머물러서 바르거나 삿됨을 보지 않고 모든 사유와 분별을 초월하나니,

이것이 정사유이다.

 

일체의 사유와 분별은 모두가 평등하며, 평등하기 때문에 마음이 집착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일컬어 보살의 정사유의 모습이라 한다.

 

 

 

정어(正語)라 했는데, 보살은 일체의 말이란 모두가 허망하고 진실치 못하고 뒤바뀐 것을 따라 모습을 취하고 분별해서 생겨나는 것임을 안다. 이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말[語]에는 말의 모습이 없어서 일체의 구업(口業)이 멸하고 모든 말의 진실한 모습을 아는 이것이 정어이다.

이러한 말은 모두가 온 곳도 없고, 사라져도 가는 곳도 없다.’

 

이러한 보살이 정어의 법을 행해 말한다면, 이는 모두 실상 가운데 머물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경에서 말하기를 “보살이 정어에 머무르면 청정한 구업을 짓고 일체의 언어의 실상을 알며, 비록 말하는 바가 있으나 삿된 말에 떨어지지 않는다” 했다.

 

 

 

정업(正業)이라고 했는데,

보살은 일체의 업은 삿된 모습이고 허망하고 진실이 없으며, 모두가 짓는 모습이 없음을 안다.

 

왜냐하면 어떤 업도 정해진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지도론 256. ★ 보살의 팔정도 (팔성도분)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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