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만일 일체의 업이 모두 공하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보시 등은 착한 업이고, 살생 등은 나쁜 업이고, 그 밖의 동작은 무기업이다” 하셨는가? |
[답] 모든 업 가운데는 하나조차 없거늘 어찌 셋이 있겠는가.
왜냐하면 행하는 때[時]가 이미 지났으면 지난 업은 없는 것이요, 아직 이르지 않았더라도 역시 지난 업은 없는 것이요, 현재 지나가고 있는 때에도 역시 지난 업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난 업은 없는 것이다. |
[767 / 2071] 쪽 |
[문] 이미 지난 곳에는 없어야 되고, 아직 이르지 않은 곳 역시 없어야 되겠지만, 지금 지나가는 곳이라면 마땅히 지나는 업이 있어야만 되지 않겠는가? |
[답] 지금 지나가는 곳에도 역시 지난 업은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지난 업을 제하고는 지금 지나는 곳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만일 지난 업을 제하고도 지금 지나가는 곳을 얻을 수 있다면, 여기에 마땅히 ‘간다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서 지금의 가는 곳을 제하면 곧 가는 업도 없고, 가는 업을 제하면 곧 지금의 간다는 것도 없다. |
이들은 서로 간에 반연하는 까닭에 지금의 가는 곳에 감이 있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
또한 지금의 가는 곳에 지난 업이 있다면 지난 업을 떠나서 마땅히 지금 가는 곳이 있어야 하고, 지금의 가는 곳을 떠나서 마땅히 지난 업이 있어야 한다. |
[문] 만일 그렇다면 무슨 허물이 있다는 것인가? |
[답] 한때에 두 가지 가는 업[去業]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가지 지난 업이 있다면, 두 가지 가는 이[去者]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는 이를 제하고는 감도 없고, 가는 이를 제하고는 지금의 가는 곳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는 곳이 없는 까닭에 가는 이도 없다. |
또한 가지 않는 이 역시 가지 않는 까닭에 가는 업이 없나니, 만약에 가는 이와 가지 않는 이를 제하면 셋째의 가는 이는 없다. |
[문] 가지 않는 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은 그럴 수 있겠지만, 가는 이야 어찌하여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
[답] 지난 업을 제하고는 가는 이는 얻을 수 없고, 가는 이를 제하고서는 지난 업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일체의 업이 공한 것을 정업이라 한다. |
보살들은 일체의 업의 평등에 들어가서 삿된 업으로써 악을 이루지 않고, 바른 업으로써 선을 이루지도 않는다.
곧 짓는 바가 없어서 바른 업도 짓지 않고 삿된 업도 짓지 않는다. 이것을 진실한 지혜라 하니, 이것이 곧 정업이다. |
또한 모든 법의 평등한 가운데에서 바름도 없고 삿됨도 없으니, 여실하게 모든 업을 알며, 여실하게 알고 난 뒤에는 짓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다. |
이 같은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바른 업만 있고 삿된 업은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의 정업이라 한다. |
정명(正命)이라 했는데, 보살은 일체의 생활수단이 모두 바르고 삿되지 않으며, 희론 아닌 지혜에 머물러서 정명을 취하지도 않고 삿된 생활 방법을 버리지도 않는다.
또한 바른 법에 머무르지도 않고 삿된 법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항상 청정한 지혜에 머물러서 평등한 정명에 들어간다.
곧 정명과 사명을 보지 않으니, 이처럼 진실한 지혜를 행하므로 정명이라 한다. |
만일 보살마하살이 능히 37품을 관한다면 성문․벽지불의 경지를 초월하게 되고,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점차로 일체종지를 성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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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257. 보살의 정업(正業) & 정명(正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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