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趙州錄)

조주록 강해 7(33~35)

수선님 2019. 9. 8. 11:27

조주록 강해


원문출처


33. '깨달음과 생것 익히기'

어떤 관리(官人)가 와서 물었다.

“단하스님이 나무 불상(木佛)을 태웠는데 어째서 원주스님의 눈썹이 빠졌습니까?”

“관리의 집에서는 생것을 익히는 일은 누가 합니까?”

“하인이 합니다.”

“그 사람은 솜씨가 좋군요.”

당나라 때의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선사는 장안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가 인연이 닿았는지 마조(馬祖)대사를 찾아가 스님이 되었고, 뒤에 석두희천(石頭希天)의 법을 이었습니다.

어느날 단하선사는 나그네가 되어 잠시 어느 절에 머물렀는데, 매우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방이 하도 차서 단하는 법당의 목불(木佛)을 가져다 쪼개서 불을 지폈는데, 이것을 안 그 절의 원주(절의 총무 격)가 달려와서 펄쩍 뛰며 고함을 쳤습니다.

"어찌 불상을 태울 수가 있느냐?"

불 앞에 앉아 손을 녹이던 단하선사는 지팡이로 재를 뒤적거리면서 천연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부처를 태워서 사리(舍利)를 얻으려 하오." 그러자 그 원주는 더욱 화를 내었습니다.

"나무 불상에 무슨 놈의 사리가 있단 말이오!"

지팡이를 던지고 일어선 단하선사는 손을 털며 말했습니다.

“나무 불상에 사리가 없으면, 양쪽에 있는 두 보살상도 마저 가져다 때야겠군.”

이 소리에 그 원주스님의 눈썹이 빠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단하선사의 목불'이란 이름의 화두인데, 이 일을 두고 어떤 스님이 진각(眞覺)대사라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단하는 목불(木佛)을 태웠고, 그 절 원주는 펄쩍 뛰었는데 누구의 허물입니까?"

진각 대사가 말했다.

"원주는 부처만을 보았고, 단하는 나무토막만을 태웠느니라."

'목불을 태운 사람은 단하인데, 어째서 원주의 눈썹이 빠졌는가?' 이 화두를 끊임없이 의심하면 자신의 눈썹이 빠질 것입니다.

어떤 관리가 조주선사에게 이 화두를 물었는데, 선사는 '당신의 집에서는 고기를 굽고 익히는 일은 누가 하는가?' 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관리는 '하인의 일입니다.' 하고 대답했는데, 선사가 말한, '고기를 익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해서 나온 소리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이 어떤 일인지 짐작이 됩니까? 모르겠으면 한번 깊이 의심해 보십시오. 도를 닦는 일인데 무슨 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여하튼 관리가 하인의 일이라고 말하니, 조주선사는 '그 하인의 솜씨가 참 좋군요!' 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이 말은 참 자신의 솜씨를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참 모습인데 왜 하인의 참 모습을 찾는가?' 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 뜻을 잘 음미해보면 답이 보입니다.

34. '그대는 무얼 보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비목선인이 선재동자의 손을 잡고 티끌 수 만큼의 부처님을 보았을 때 어떻습니까?”

조주선사는 그 스님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보느냐?”

위 스님의 질문은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내용에 대한 것인데, 깨달음의 길을 찾아 나선 선재(善財)동자는 나라소(那羅素)라는 나라에 비목구사(毘目瞿沙)라 불리는 신선을 찾아가 보살행에 대해 물으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경전을 보면,

'나라소국에 이르러 비목구사를 찾아보니 그는 큰 숲속에 있는 전단나무 아래에서 풀을 깔고 앉았는데 만명이나 되는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나서 비목구사는 선재동자에게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대적해서 이길 수 없는 깃발의 해탈(無勝幢解脫)을 얻었노라.” 이 말을 들은 선재동자가 그 해탈의 경계가 어떤지 묻자, 비목선인은 오른 손을 펴서 선재의 정수리를 만지며 선재의 손을 잡았다. 그 때 선재동자는 자기의 몸이 시방으로 십불찰 미진수 세계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 가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 세계와 거기에 모인 대중과 부처님의 상호가 훌륭하게 장엄되어 있음을 보고, 또한 그 부처님이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설법하는 것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화엄경은 석가모니의 깨달은 경지를 그대로 반영하여 설(說)한 경전이라 하며, 세상의 눈으로 읽으면 비현실적인 상황 전개가 많습니다. 그 중심 사상은 이사무애(理事無礙), 사사무애(事事無礙)로서 일체 법의 본체와 현상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서 서로 걸림이 없는 것을 이사무애, 모든 현상은 걸림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비추면서 융합하고 있는 것을 사사무애라 합니다. 예전부터 선재동자는 화엄경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간형의 모델로 신봉되어 왔고, 그는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천하를 탐방하다가,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서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위 입법계품에서 비목선인이 선재동자의 손을 잡으니 한없이 많은 세계의 부처님이 보였다는데, 이 말이 사실입니까? 하고 그 스님이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조주선사는 그 스님의 손을 잡으면서, '그대는 천하를 돌면서 무엇을 보고 다니느냐?' 고 되물었는데 자기 붓다는 보지 않고 남의 보배나 찾아 헤매고 있는 그 스님을 질타하는 뜻으로 말한 것이겠죠.

35. '아이를 낳지 말라'

한 비구니가 물었다.

“무엇이 사문(沙門)의 행위입니까?”

“아이를 낳지 말라.”

“큰스님께서는 상관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대와 관계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비구니, 여자 스님 한 분이 와서 불문(佛門)에 들어서서 도(道)를 닦는 사람들이 할 도리는 무엇인지 가르쳐달라고 하니 조주선사는 '아이를 낳지 말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여승이 화가 좀 났겠죠? 비구니에게 애를 낳지 말라니, 그렇게 모욕스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큰스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텐데요!' 하고 튕겨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한번 봅시다. 조주선사가 그 여스님에게 괜히 실없이 '애 낳지 말라'고 농담조로 말했을까요?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말로 가슴을 한 방 때린 것이니, 말의 의미를 떠나서 속살의 뜻을 단박에 알아채야 합니다. 그 속살의 뜻은 뭣일까요?

완전히 깨달은 사람은 만사(萬事)가 공(空)함을 알아 자신도 없고, 남도 없고, 깨달음도, 부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전강선사의 말대로 없음(無)도 잊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는 얻을 바 없는 것을 얻어야(得) 한다는 뜻입니다. 자, 이럴 때 '아이를 낳지 말라'는 의미가 떠오릅니까? 오직 깊이 의심할 뿐입니다.

"그래도 아이는 낳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 비구니였다면 아마 이렇게 되물었을 것입니다.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의심하십시오. 그 여승이 ‘조주선사와 애기 낳는 일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고 하니 조주선사는 '그대와 관계를 맺는다면 감히 어찌 하겠느냐?' 고 말했는데 어휴, 큰스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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