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趙州錄)

조주록 강해 8(36~38)

수선님 2019. 9. 8. 11:28

조주록 강해


원문출처


36. '조주는 시골뜨기'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주의 주인공입니까?”

“시골뜨기다.”

'조주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앞에서 나온 질문이죠? 여기서 주인공이란 청정법신 자성, 자기의 본래면목, 곧 붓다인 마음이죠. 이제는 '내 마음이 부처다' 라는 생각 정도는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도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올 때까지는 밑바닥에 깔린 제일 큰 밑천이 될 것입니다.

'내 주인공은 촌놈(한자어로 田庫奴)이다.' 라고 말했는데, 앞에서는 '나는 너보다 못해!' 라고 대답했죠? 깨달으면 모든 알음알이(知識)가 떨어져 나가고, 당장 대응할 일이 없으면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니 멍청한 시골뜨기와 같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7. '왕의 선타바(仙陀婆)'

한 스님이 물었다.

“왕이 선타바 (仙陀婆)를 찾는 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대는 노승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느냐?”

선타바(仙陀婆)란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원래 소금, 그릇, 물, 말(馬)의 네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선타바! 하고 외칠 때 이를 듣는 사람이 영리하면 위 네 의미 중에서 어느 것을 말하는지 금방 알아채서 그것을 가져온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열반경에 보면, 한 왕의 시종이 매우 영리하여 "선타바(仙陀婆)!" 하고 부르기만 하면 밥을 가져 오고, 또 부르면 차(茶)를 가져 오고, 무엇이든지 임금이 생각하는 대로 다 가져왔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타심통처럼 남의 마음속을 눈으로 들여다보듯이 환히 아는 경지를 말합니다. 이런 경우 선가에서는 지음(知音), 즉 소리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소리만 알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을 즉시 마음에 돌이켜 빛을 쏘듯이 비추어낸다는 뜻입니다. 이게 깨달음입니다.

그러므로 위 질문은 아는 사람에게는 '깨달음이란 왕이 선타바를 찾는다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은 것과도 같습니다. 임금이 생각하는 대로 시종이 척척 가져다 바치니 참으로 신통한 노릇인 것처럼, 불성이 깊은 상근기의 수행자는 스승이 아무 말도 안했는데도 그 무언(無言)의 가르침에 금방 깨달음의 눈을 뜨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확실히 깨친 선사는 무심에서 나오는 대로 척척 질문에 대답하는데 이치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으니, 우리 마음(부처)의 능력은 가늠할 수가 없는 불가사의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전에도 어느 외도(外道, 불교가 아닌 다른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가 석가모니에게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말 있음(有句), 말 없음(無句)을 떠나서 불법의 궁극적인 진실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했는데, 석가는 단지 침묵만을 지켰습니다. 그러자 그 외도는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도를 체득하게 해 주셨습니다." 라고 찬탄하며 물러갔습니다. 옆에 있던 아난이 "외도는 부처님에게서 무엇을 얻었기에 도를 체득했다고 합니까?" 라고 묻자, 석가는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린다."고 대답했습니다. 감이 홍시처럼 말랑말랑 익으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듯이 훌륭한 수행자는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알아채고 바로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경봉스님은 이 선타바와 깨달음에 대하여 평하면서, '왕의 마음을 읽어내는 이 도리는 번갯불에 바늘귀 꿰듯 해도 오히려 느린 것이다. 이 도(道)는 듣고서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부처를 이룰 인연을 심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어떤 복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이것은 금강쇠를 머금은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마음 밭에 심으면 보리의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라고 설파하신 적이 있습니다.

조주선사는 그 스님이 '왕이 선타바를 찾는다'는 말의 의미를 물은 질문에 “그대는 노승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느냐?”고 대답했는데, 언제 그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뭔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왕이 선타바를 찾는다는 말은 마침내 그대의 본래 성품을 보고 마음대로 쓰게 된다는 뜻이라고 답해 준다면 얼마나 친절하다고 감사를 표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런 말은 제자를 망하게 하는 노릇입니다. 스승이 도(道)의 이치를 수학문제의 정답을 풀어주듯이 가르치다가는 깨달음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꼴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해설하는 것은 현대 사람들은 이러한 선문답을 허황된 이야기로 생각해서 가까이 하려고도 하지 않으니, 그 참된 이치를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라는 뜻에서 가끔씩 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주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스님의 마음에 충격을 주어서 어쩌면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바로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려는 뜻입니다. 또한 자신의 성품을 본 사람은 이미 세상의 왕이 아닌 법의 왕(王)과 같습니다. 다시 선타바를 찾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의 왕에 빗대어 법왕인 나, 조주가 무엇을 더 찾을 필요가 있겠는냐 라고 반문하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숨겨진 뜻을 몇차례 말로써 설명해준들 깨달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 깊이 의심하여 참구하지 않으면 또 다른 상황이 닥칠 경우 눈먼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38. '현묘함을 구하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함 가운데 현묘함(玄中玄)입니까?”

“무슨 현 가운데 현을 말하느냐? 일곱 가운데 일곱이고, 여덟 가운데 여덟이다.”

임제종의 주인공 임제의현선사의 다른 가르침에 삼현삼요(三玄三要)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 말에 3가지 요점(要點)이 들어 있고, 한 요점에 3가지 현묘함(玄)을 갖추고 있음을 뜻하는 것인데,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금새 찾을 수 있습니다. 임제선사는 제자들에게 마음공부 시키는 방법을 많이 가르쳤는데, 그 어떤 형식적인 말이나 가르침의 이론도 펼치지 않은 조주선사는 이런 질문에는 짜증을 많이 냅니다. 자기 마음, 자기 부처 하나 알면 되는 것인데 무슨 놈의 경전이고, 이론이나 풀어내는 말이 필요하단 말이냐? 라고 자주 질책을 합니다.

그냥 7中7이고 8中8일 뿐이야. 무슨 신묘(神妙)하고, 고준하고, 어떠니 저쩌니 아무 쓸데없다는 뜻입니다. 마음 속에 마음 있고, 마음 밖에 마음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텅 비었는데 그 안에 무엇을 담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현묘함이고 조잡함이고, 3현 3요, 사빈주 이론이든 모두 헛된 모양(相)이니 공(空)할 뿐입니다.

금강경의 사구게인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만약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님을 볼 수 있다면 즉시 여래를 본다.' 이 말은 이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진리로 남을 것입니다. 공(空)이 모든 것을 품고 있습니다. 텅 빈 것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완비하고 있는 공(空)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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