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는만큼 더불어서 성냄도 같이 가라앉죠.
적의가 같이 가라앉게 되는 거예요. 처음엔 졸린데, 나중엔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해태혼침도 가라앉게 되고, 현재에 집중하고 있으니 과거로 돌아가는 후회나 들뜸도 없어지고, 수행이 몸에 잘 붙어 있고 맘이 고요해지니 수행에 대한 확신도 생겨요. 그러면 의심도 사라집니다.
감각적 욕망을 배제하는 걸 필두로 해서 나머지 장애요소가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초선을 이야기할 때 다른 장애요소를 말하지 않고,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부터 나오잖아요. 그 문장을 말하고 나서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이렇게 나가는데, 초선에 들어가는 걸 방해하는 주된 장애요소가 감각적 욕망이라는 거죠. 잘 놓지 못하는 부분이 감각적 욕망이기 때문에 이것을 대표로 설명하는 겁니다.
감각적 욕망이 버려지고, 다른 장애요소가 버려지면 마음이 점차점차 정화되고 청정해지고 또 고요해지고 단순해지고 집중된 상태가 된다는 거죠. 우리가 깊이있는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여실지견-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의 조건이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편견 없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지혜,
여실지견이 일어나는 조건이 바른 삼매입니다.
삼매는 장애요소가 완전히 가라앉은 상태.
장애요소 중 대표적인 것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이게 가라앉게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니 이런 상태에서 대상을 보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이게 부처님께서 삼매를 닦으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죠.
처음에 호흡수행이나 걷기수행을 기반으로 해서 삼매를 닦을 때는 '이것이 해로운 법이다' '이것이 무상고무아이다' 이 정도만 알고 바로 돌아와 호흡이나 자기 몸에 머물면서 삼매를 계발합니다.
삼매가 어느 정도 계발된 다음에는 삼매의 고요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우리가 조사/반조를 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지혜가 계발될 수 있습니다. 선정에 들어갔다면 선정의 힘을 바탕으로 지혜를 계발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강력한 것입니다. 호흡수행과 마음관찰, 걷기수행과 마음관찰이 나아갈수록 처음엔 우리가 생각의 범위를 정리하고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만든 다음에 이 마음을 가지고
조사 반조하는 깊은 사유, 통찰의 과정을 통해 깊이 있는 지혜를 계발하게 됩니다.
특히 장애요소를 처음에 알 때는 '이게 장애요소구나' 하고 바로 호흡으로 돌아왔잖아요. 근데 조사 반조를 할 때는 좀 더 깊이 있게 장애요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데, 불교에서 수행이 깊어지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원인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봐야 해요.
드러난 것을 보는 것만으론 부족하거든요. 원인을 보며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데, 다섯 장애요소가 뭐예요? 감각적 욕망, 적의, 해태혼침, 들뜸후회, 의심인데, 이 요소들 자체엔 어리석음이 없잖아요? 이 장애요소는 우리 마음을 날뛰게 하는 상태를 이야기하는건데, 이것의 원인을 추적해 보면 그 속에 번뇌란 게 있어요.
장애요소만 아는 걸로는 완벽하게 해탈하긴 어려워요. 장애요소는 감각적 욕망을 버리는 것으로 아나함 정도까진 갈 수 있겠죠. 그러나 이거 자체로는 사실 완전히 아라한이 되려면 어리석음이나 탐욕, 존재에 대한 욕망이 다 버려져야 하는데 장애요소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그 속에 어리석음이 있고 또 욕망이란게 숨이 있고 그래요.
그걸 통해 더 깊은 통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불교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과법' 입니다.
다른 종교는 대부분 근본적인 무언가를 상정하는데, 자아라는 식으로, 원인 없이 존재하는 무언가를 얘기하죠 하나님도 그렇고.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조건 발생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깊은 지혜가 생긴다- 이것을 한 마디로 '연기' 라고 이야기하죠.
원인도 자기 입맛대로 찾으면 효과가 떨어져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절대 생기지 않는 그런, 진실된 원인을 찾아야 되거든요. 그런 원인을 찾는 노하우는, 스스로 찾긴 좀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원인을 찾는데 있어서 소스, 연기법입니다. 12연기.12연기에 나오는 11가지 인과관계 있잖아요. 부처님께서 현재 존재가 있으면 이 존재가 왜 생-노병사를 겪느냐, 결국 태어났기 때문에 노병사가 있다. 이렇게 가장 근원적인 원인을 추적해서 우리가 윤회를 하고 괴로움이 일어나는 구조를 정확하게 분별한 거기 때문에 12연기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원인을 찾는 데 있어서 아주 효과적이고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그걸 다 설명해드릴 수는 없고, 그 중에서도 당장 활용할 수 있는걸 몇가지 말씀드렸는데 성냄이 일어날 때는 그 속에 항상 뭐가 있다 그랬어요? 우리가 원하는 게 없으면 화가 날 수가 없잖아요. 뭔가 내가 집착하는게 있으니까 화가 일어나는 거거든요. 성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화 속에 내가 뭐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한 번 보세요
내가 만약 이걸 가지고 싶은데 누가 이걸 가져갔어, 그럼 화가 난단 말이예요. 근데 내가 이거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 그럼 누가 가져간다고 화가 나겠어요? 안난다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뭔가 집착하는게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것이 사라질까봐. 집착하는게 없는 사람은 화라든가 두려움 같은게 생길 수가 없겠죠. 화의 원인을 찾을 때는 그 속에 있는 집착을 찾아 보는 게 좋구요.
그럼 집착은 왜 일어납니까?
욕망이란게 일어나는 건, 결국 그 욕망이란 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결국 그걸 추적해 들어가면 어리석음이 숨어 있습니다. 잘못 알기 때문에 집착한다는 거죠. 안 죽으려 발버둥치는 것도, 우리 존재가 죽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쵸? 근데 영원히 사려고 하는, 영원하지 않다고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꾸 거머쥐게 되는 거죠.
그리고 감각적 욕망이 행복입니까? 괴로움입니까?
(괴로움이요)
정말 괴로움이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부처님은 괴로움이라 그러죠. 이게 괴로움임을 진짜 이해한 사람은 이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겠죠. 그러나 이걸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이것도 안 즐기고 어떻게 살아' 이렇게 되겠죠?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을 일반적으로 행복이라 인식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습성화돼 있기 때문에. 이것도 괴로움을 행복으로 잘못 아는 어리석음이 숨이 있는 거죠. 그리고 여러분이 자만을, 내가 잘났어 이런 것도 그 속엔 뭐가 숨어 있겠어요? '내가 있다' 라는, 부처님께선 무아라고 했는데, '내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이런 집착이 일어난다는 거죠, 그쵸?
이런 집착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 속엔 이 현상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어리석음이 숨어 있고, 이 어리석음 때문에 집착이 일어난다. 이걸 잘 이해하면 탐욕을 버리려 하기보단 탐욕 속에 숨어 있는 어리석음을 버리려 하는게 훨씬 효과적이예요.
제가 그런 비유를 가끔 들었지만, 술을 끊으려 하는 사람이 그냥 술을 안 먹으려 억지로 참는 것만 갖고는 술이 잘 안 끊어지는데, 술이 위험하다는 동영상이나 교육을 자꾸 받다 보면, 술이 괴로움이구나 생각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술에 대한 애착을 놓기가 쉽죠. 술은 행복인데 내가 참는다, 그렇게 하면 안 놔 지거든요. 그래서 그런 어리석음을 자기 스스로가 알게 되고 통찰이 깊어지면 놓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그리고 해태 혼침은 기본적으로 탐욕과 성냄이 바탕이 돼 있어요. 탐욕 성냄을 버리는 방법을 알면 해태 혼침도 버리기 쉽습니다. 해태 혼침은 따분해서 일어날 수도 있고, 내가 너무 즐기다 보면 늘어져서 일어날 수도 있거든요.
의심은 뭐가 바탕이 돼 있겠어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니까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계속 헷갈리겠죠? 장애요소를 추적해 나가 보면 다 그 밑바닥에 탐진치가 숨어 있어요. 특히 어리석음과 갈애라고 하는 집착이라고 하는 것이 숨어 있고요.
초보자들은 감각적 욕망에 사견이 함께합니다.
감각적 욕망이 행복이라 집착하는 사견이 있어요. 보통은 욕망과 사견이 같이 있어요. 욕망과 사견이 함께 결합하여 더 강한 욕망으로 나타나는 거고, 사견이 버려지면 관성이 남아서 자기도 모르게 집착하는 정도가 됩니다. (계속)
[출처] 장애요소(번뇌)를 버리는 방법-제따와나 일묵스님(2/3)|작성자 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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