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수요법회입니다)
사성제 수행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면서 수행을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조금은 착각하기 쉬운, 잘못 알기 쉬운 내용들 몇가지를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하자면 수행할 때 우리가 이걸 잘못 착각해서 오류가 생기는 부분을 다 정리한단 생각으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지난번엔 번뇌를 버리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번뇌를 버리는 다양한 방법 중, 번뇌를 버리는 방법이라 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내려놓는다/놓아버린단 말을 절집에서 많이 쓰는데요, 이 내려놓는다/놓아버린다는 말을 잘못 이해하면 수행을 잘못 접근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살펴보려 합니다.
기본적으로 놓아버린단 말은 법으로 말하면 탐욕이 없는 마음을 말하죠. 영어에선 let go. 이걸 잘못 이해하면 무위도식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내려놓는거라고 생각할 위험성도 있어요. 실제로 노력도 내려 놓고, 의욕도 내려 놓고, 오히려 내려놓는다는게 이렇게 되면 선한 마음을 내려놓고 해로운 마음을 계발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거죠.
절에서도 보면 출가해서 출가 생활이 편안하고 이러니까 그냥 편안한 이 생활을 즐기고 수행은 잘 안 하고 그렇게 지낼 수도 있는데, 그런 걸 중국에선 '무위한 도인-하는 일 없이 한가한 도인', '무위도식-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는'사람이 될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 거에 대해 경계하고 그런것이 출가자에게 바람직한 삶이 아니란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경전이나 조사 어록에 보면.
내려놓는단 의미를 명확히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요, 놓는다/놓아 버린다/집착을 버린다/쥐고 있는 것을 놓는다는 것은 놓는거에 대한 툴이 필요한데 진짜 내려놓는단 것이 뭐냐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내려놓는다는건 아무 것도 안 한다, 노력도 안 하고 의욕도 없고 뭐 그런 식으로 하는게 아니라는 거죠. 가끔 가다 보면 그런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스님 부처 되려는 것도 욕심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요. 깨달으려는 것도 욕심이 아니냐고. 이런 식으로 하면 모든 걸 내려놓아야 되는데 뭔가 하려 하는걸 다 욕심이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개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불교에서 말하는 내려놓는다는 건 뭘 내려놓는 겁니까?
해로운 마음을 버린다는 거죠.
그걸 버리는 방법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지혜 또는 유익한 마음을 계발함으로써 해로운 법을 버리는 거지 그냥 무조건 해로운 법이 버려지는게 아니잖아요. 이 유익한 법이라는 건, 그냥 가만히 있다고 계발되는게 아니라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경전에 보면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애쓰고 이런 말들이 나오잖아요. 그런게 그렇게 해야 선한 마음이 계발되는 거지 여러분들이 그냥 일상에 흘러가 버리면 그냥 살아오던 일상의 걸음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죠. 새로운 어떤 선한 법이 계발되기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대로 습관적으로 탐욕을 일으키다거나 성냄을 일으킨다거나 이렇게 되기가 쉽게 때문에 내려놓는다는건 선법/유익한 법을 계발함으로써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거고.
그걸 하기 위해선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네 가지 성취수단이 있잖아요. 4여의족이라 하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주도해서 뭔가 수행을 끌고 가는건데 그 중에 하나가 '의욕' - 뭔가 열의가 충만했을 때 수행을 끌고갈 수 있고, 또 하나는 '노력' - 바른 노력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원하는 걸 성취할 수 있죠. 또 '선한마음'을 계발해서 선한 마음이 축적이 많이 되면 그것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 '지혜'-지혜가 계발되면 지혜로써 우리 수행을 끌고갈 수 있죠.
이 내려놓는다는 의미가 단순히 진짜 물건을 내려놓고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 맘 속에 있는 괴로움을 유발하는, 예를 들어 지금 날씨가 불타고 있는데 이런 건 외부적인 요인이라서 날이 더워서 우리가 고생하긴 하지만 이걸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건 설사 더위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건 한생에 끝나는 거지만, 우리가 잘못해서 번뇌의 불길에 타버리면 한생에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생에도 영향을 주고 그 다음 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어떤 부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것은 대상보다는 우리 마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예요.
마음 속에 있는 번뇌, 해로운 마음들 또는 장애요소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마음 한쪽에 선한 마음을 계발함으로써 지금까지 해 오던 탐욕이나 성냄, 어리석음 이런 불길을 꺼지게 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내려놓음이 의미하는 거예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내려놔 지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항상 대상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대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야 된다. 마음 속에 있는 번뇌-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불길을 꺼야 진짜 수행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걸 하기 위해 네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의욕이예요.
네 가지 성취 수단 중 하나로 '의욕, 하고자 함'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빨리어로는 찬다라고 이야기하죠. 이 찬다는 뭔가 의도적으로 하려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이 찬다와 로바를 잘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바라는 이 탐욕은 그 대상에 대해 달라붙어 안 떨어지려는 마음이 로바에 해당합니다. 찬다가 있는 마음은 의욕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이예요. 찬다가 없으면 수동적이고, 수행을 해도 바람직한 찬다가 있으면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려 하고, 찬다가 약한 사람들은 누가 시키면 좀 하는거 같다가 계기가 없으면 안 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찬다-의욕이라는게 우리 삶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통 그런 말 하잖아요. 삶에 의욕이 없다. 이런 동력을 제공해 주는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세속적으로 보면 욕망이죠. 욕망을 가지고 이루고, 뭔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고 그쪽으로 계속 노력하는 의욕을 일으키는 거죠. 사실 욕망이 있는 사람이 의욕도 강한게 일반적이죠. 이런 걸 한마디로 로바찬다라고 말할 수 있고, 까마찬다라 할 수도 있어요. 까마는 욕망, 감각적 대상, 집착하는 마음 이런 걸 다 포함하는 거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까마, 이 욕망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 하고 이게 뭔가 의욕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많죠.
내가 사회적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 열심히 일해서 그걸 성취한다거나 권력을 얻기 위해 열심히 정치를 한다거나 이런게 다 그렇죠. 세속적으로 뭔가를 이루어내는 데는 역시 욕망이 큰 동력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을 까마찬다라고 하고 또 이것은 우리가 세속적인 걸 하는데 큰 동력이니까 실제 수행하는데 상당히 방해가 되잖아요. 그래서 이걸 오장애 중 가장 중요한 걸로 들죠.
근데 욕망으로 뭘 이루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욕망 자체가 동력이 되는 건 맞는데 이런 욕망이 바탕이 됐을 때 적절한 욕망이 됐을 땐 문제가 안되는데 욕망이라는 건 일반적으로 브레이크가 없잖아요. 자기가 멈출 수 있는게 아니라 그냥 가 버리는 거라서 그걸 멈추기가 힘들기 때문에 욕망이 바탕이 되면 뭔가 무리수가 따르고 과하게 멈추게 되고, 나중에 보면 잘못된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그래서 이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표현하잖아요. 내리면 죽을 거 같고, 올라타면 갈 수밖에 없게 되기가 쉬운데. 이런 까마찬다란 것이 세속적으로 뭔가 이루게 하는 동력이 되긴 하지만 그것이 유발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선 이건 지혜로운 자라면 좇아갈 부분이 아니다.
그럼 수행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 옛날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 젊은 애들한테. 그럼 스님이 수행하는 것도 욕심 아니냐.
부처가 되려는 것도 욕심 아니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데 이건 의욕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호흡 수행을 하려고 의욕을 일으키고, 걷기 수행을 잘하려고 의욕을 일으키고, 마음을 관찰하려 의욕을 일으키는 거는 그건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 밑뿌리에 욕망이 바탕이 되어 있는가 지혜가 바탕이 되어 있는가
지혜가 바탕이 된 빤야찬다가 되면 그건 굉장히 유익하다는 거죠.
[출처] 수행상식 바로 알기-제따와나 일묵스님(1/3)|작성자 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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