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따와나 일묵스님

원인을 찾는 방법 1-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가 있다(1/3)

수선님 2020. 1. 12. 11:01

(2018년 수요 법회입니다)

지난번까지 지난시간에 우리가 수행하면서 착각하기 쉬운 불교 자세라든가 태도 이런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오늘은 우리가 우리한테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원인을 찾는 그 이야기를 자주 말씀드렸는데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이 뭔지를 먼저 파악하는게 인제 수행에선 되게 중요한 거고 불교에서도 되게 중요한 부분인데

이 원인을 찾는 거를 너무 자기식으로 찾게 되면 그게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찾게 되는게 아니라 좀 핀트가 어긋날 수가 있다 그랬죠 그쵸?

근데 이제 부처님께서 이런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이 12연기거든요.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해소가 되는데 겉가지 원인을 찾아갖고는 그 문제가 해소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왜 노병사가 일어나느냐 이랬을 때 그것을 세균 때문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근원적인 원인이 안된다는 거죠. 부처님은 그런 거에서 가장 근원적인 거, 뭐냐 하면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존재로서 태어났기 때문에 노병사가 일어난다. 원인도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랬잖아요. 그 원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데, 그것을 체계적으로 하나의 ㅐ턴을 보여주신 가르침이 12연기란 말이예요.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것이 왜 태어나는가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많은 가르침이 있잖아요. 자아가 변해서 일어난거다 또는 우연히 발생한거다 이런 다양한 게 있는데 부처님께선 그게 업에 의해서 태어난다, 업이란 존재에 의해서 태어난다 이런 식으로 원인을, 아주 근원적인 원인을 추구해서 나중에 이걸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니까

태어남의 원인은 무명과 갈애란걸 알게 된거죠.

그래서 우리가 원인을 찾아 나갈 때 참고로 하고 가장 좋은 모델로 쓸 수 있는게 12연기의 가르침을 활용하면 그게 인제 문제의 근원적인 원인을 찾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은 제가 다 설명 안드리고 제일 기본적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업을 짓는데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게 뭐냐, 의도적 행위-다시 말하면 업이 일어나는데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건 무명이더라. 12연기의 시작이 뭡니까?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일어난다.

이렇게 이야기하신거죠. 무명 때문에 행이 있다는 이 부분을 오늘 조금 설명드릴 거예요. 이걸 이해하시면 우리한테 일어나는 업들이 다 무명이란 걸 기반으로, 조건으로 해서 일어난다는 걸 이해할 수가 있을 겁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는데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모든 의도적 행위들의 밑뿌리엔 무명이 바탕이 돼 있더라. 그래서 무명이란 걸 바탕으로 해서 일어난다는 걸 설명하려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은 뭘 무명이라 합니까? 무명이 빨리어론 아위짜인데, 위짜=없다거든요. '아'는 부정어예요. 위짜란 게 보통 '명지'라고 번역하죠. 지혜를 의미합니다. 지혜가 없는 상태를 무명이라 하는데, 무명은 경전에 보면 무엇을 무명이라 하는가 하는 '무명경' 이란 경이 있어요. 괴로움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무지-이것을 일러 무명이라 하고 이렇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설명이 돼 있습니다.

사성제를 모르는 것을 무명이라 정의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결국 윤회를 하는 이유가 사성제에 대한 바른 통찰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사람들이 왜 태어나서 이렇게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가를 보니까 그 원인을 추적해 나가다 보니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진리를 모르는 것, 존재라는 것의 본질을 모르는 무명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업이란 것이 일어나고 그 업 때문에 다시 태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더라.

무명을 버리면 윤회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죠.

무명은 특히 진리에 대한 무명, 존재의 본질, 실상, 사성제에 대한 진리에 대한 어리석음-이것을 무명이라 하는 거죠. 그래서 세속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의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고 보시면 돼요.

세속적으로 어리석다는 건 무식한걸 말하는건데, 여기서 말하는 건 진리를 제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특히 존재 자체가, 존재가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무상, 고, 무아라는 진리. 존재가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이런 사성제에 대한 진리를 모르는 걸 무명이라 하고요, 의도적 행위란 것은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일어난다.

빨리어로 쌍카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쌍카라라는건 뜻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여기선 의도를 이야기한다고 보시면 돼요. 우리가 뭘 할 때 나쁜 의도를 일으키기도 하고 좋은 의도를 일으키기도 하잖아요. 그 의도를 행이라고 표현했고, 그냥 의도라고 하지 않고 여기선 의도적 행위 즉 몸으로써 짓는 행위, 말로써, 예를 들어 내가 살생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이런 거는 몸으로 짓는 행이라고 하고, 말로써 거친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 하거나 그런건 말로 짓고, 사견을 갖거나 집착하거나 화를 내거나 이런 건 마음으로 짓는, 그런걸 통틀어 의도적 행위가 일어난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가 일어난다

무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의도적 행위가 경전에 보통 3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덕스럽지 않은 행위, 덕스러운 행위. 그 다음에 흔들림 없는 행위, 표현을 이렇게 했는데 이건 좀 어려운 말이고 불선한 행위-덕스럽지 않은 행위란 해로운 업을 짓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에 덕스러운 행위란 욕계 선업과 색계 선업까지를 덕스러운 행위라고 하고, 흔들림 없는 행위를 무색계 선업. 그래서 결국은 인제 무명을 조건으로 불선한 의도도 일어나지만, 불선한 행위도 일어나지만 또 뭐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욕계 선행, 색계 선행, 무색계 선행까지도 일어난다는 거예요.

한편으로 보면 잘 이해가 안되죠. 무명을 조건으로 해로운 행위가 일어난다. 욕계 불선한 행위가 일어난다. 이건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인데 무명을 조건으로 욕계 선업도 일어나고, 선한 행위가 일어나고, 색계 선한 행위가 일어나고 무색계 선한 행위가 일어난다. 이거는 말이 안되잖아요. 말이 안되는게 아니라 좀 이해가 안되는데 그렇게 네 가지 업이 일어난다는 그걸 좀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좋을거 같아요.

무명이란 게 단순히 불선한 행위에 대한 조건이 될 뿐 아니라, 선한 행위에 대해서도 조건이 된다는 거죠.

쉽게 생각하면, 여러분이 무명에 압도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해로운 행위가 일어나겠죠 불선한 행위. 어리석음에 압도돼 버리면 해로운 행위가 일어나는데 그게 아니라 무명의 위험성을 우리가 알잖아요. 부처님께서 '알고 짓는 행위보다 모르고 짓는 행위가 더 위험하다' 하셨죠. 왜 그렇습니까? 위험하단 걸 모르면 그걸로 자기가 다 불타고 그것에 의한 과보가 나타날 때 즈음에야 안다는 거예요. 그치만 그것이 위험한 줄 아는 사람은 적당히 하다가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발을 빼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무명은 해로운 업이 일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거죠.

무명에 압도가 되면 해로운 업이 일어나는데, 무명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게 되죠. 이걸로부터 벗어나려 애를 쓰는 걸로 선업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보시를 많이 하면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 거긴 행복한 곳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 선업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전에 그런 질문도 있었는데 우리가 욕심이란 것도 세속적으로 보면 뭘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잖아요. 근데 이런 거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내생이나 현생의 행복을 위해 도움이 되긴 하는데 윤회를 끊는 방향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선업을 짓는 것도 기독교나 이슬람 등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도 내생에 천국에 태어나기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런 것도 선업이 아닌 건 아니예요. 불교에서 봤을 때. 근데 이건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 태어나면 영원히 살거란 어리석음이 있는 거죠.

불교적으로 보면 영원한 건 없잖아요.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가 일어난다. 이걸 역으로 쳐 보면 뭐냐 하면, 여러분이 일으키는 모든 업에는 다 뭐가 조건이 돼 있다는 거예요? 그쵸. 특히 해로운 법이 일어나는 데는 다 무명이 바탕이 돼 있고, 해로운 업이 일어날 때하고 불선한 업이 일어날 때랑 선한 업이 일어날 때 무명이 작용이 달라요. 해로운 업은 무명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죠. 함께 일어나거나. 앞에 일어나는 무명이 뒤에 일어나는 무명이나 해로운 업을 지원하거나 이런 경우가 많은데, 함께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데. 선한 업 같은 경우는 함께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무명과 선한 업이 함께 일어날 순 없죠. 그렇죠? 무명이 앞에 일어났던 무명에 대한 위험성, 그런 걸 통해 선업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금 방향이 달라요.

해로운 업 같은 경우는 무명이 함께 일어날 수도 있지만, 선한 업은 무명과 함께 일어날 순 없어요. 지원하는 조건이 되는 거지.

예를 들어서, 내가 무명에 빠져 있었는데 어떤 어리석음 때문에 아주 작은 동물을 죽여도 괜찮다 생각하고 막 죽이다가, 아 이건 어리석음이었구나 죽어도 괜찮은게 아니라 큰 과보를 받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이것이 어리석음이었다는 걸 이해하면 이걸 바탕으로 다음에 살생을 하지 않는 쪽으로 작동할 수 있잖아요. 이건 앞에 일어났던 어리석음이 뒤에 일어나는 선업의 조건이 되는거죠.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죠?

보통 선한 행위가 일어날 때는 무명이 직접적으로 동시에 일어난다기보단 이런 걸 구태여 표현하자면 강하게 의지하는, 앞에서 일어난 일에 의지해서 뒤에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그러면 제가 간단하게 의도적 행위라는 건 한 마디로 쩨따나(?), 부처님께선 의도를 업이라고 했죠. 의도는 업이란 말과 같이 이해해도 됩니다. 무명 때문에 업이 일어난다 이해하면 돼요.

행이나 업이나 비슷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