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따와나 일묵스님

욕망-이해하면 버려진다(3/4)

수선님 2020. 1. 12. 11:07

(2018년 일요 법회입니다)

2편링크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에 대해 되게 집착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고 사기꾼이야, 그럼 그걸 정확히 꿰뚫어 아는 순간 그 마음이 탁 놓아지고 더 이상 그걸 붙드려는 마음이 안 생깁니다. 이런게 지혜의 힘이거든요. 우리가 그런 욕망의 위험함, 욕망이 갖고 있는 결점, 이런 것들을 우리가 정확히 파악하면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게 되는거죠. 욕망을 길들이는 지혜를 계발해야 합니다. 욕망을 버리려면.

대념처경에 보면, 여러분들이 욕망을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가 나옵니다. (법요집 신판)펴 보세요. 215페이지 한 번 펴 보세요. 거기 보면 욕망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하는지가 잘 나옵니다. 215페이지 제일 밑에 단락.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고,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분명히 안다.

어떻게 하면 제거한 감각적 욕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분명히 안다.

이게 뭐냐 하면, 욕망을 단순히 억누르고 참고 도망가고 이런 게 아니라 이 욕망의 본질을 이해하라는 겁니다. 아 이게 욕망이구나, 욕망이 없을 때 마음 상태는 또 어떤 상태고. 이 두 가지가 비교가 돼야 여러분이 욕망이 사라진 상태의 이익을 알아야 여러분이 이걸 버릴 수 있거든요.

그리고 욕망이 어떤 원인으로 일어나는지, 전에 없던 욕망이 일어나는 원인이 있을 거 아니예요. 그 욕망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고, 일단 일어나면 이걸 어떻게 버리는지 알고, 버리고 나선 다시 안 일어나게 하는, 예방하는 방법도 알고. 이 지혜를 터득했을 때 소위 말해서 여러분들이 욕망을 길들이는 지혜가 생겼다. 욕망을 제어하는 지혜가 생기는 거죠. 그러면 욕망이 맥을 못 추는 겁니다.

그렇게 지혜를 계발해서 버려야 되지 이걸 억지로 억누르거나 이런 방향으로 해선 안된다. 그리고 이거 보세요. 욕망 자체는 장애 요소잖아요. 여러분에게 해로운 겁니다. 그치만 이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이 욕망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그 욕망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걸 어떻게하면 버리는지 알고 그러면 지혜로써 이걸 대처하게 됩니다.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일어난 번뇌를 어떻게 하는가로 굉장히 다르게 된다

그래서 이걸 대처를 잘하면 뭐가 생깁니까? 탐욕에 대한 지혜가 생기죠. 탐욕을 이해하는, 통찰하는, 꿰뚫어 아는 그런 지혜가 생긴다 이거죠.

바깥에 있는 대상들이 여러분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아주 멋진 시계가 하나 있다, 그럼 그 시계에 대한 탐욕이 일어날 수 있어요. 이건 시계 자체가 탐욕은 아니죠. 시계 때문에 우리 마음에 탐욕이 일어나는 거죠.

여러분들이 이런것도 중요한 이해거

든요. 프레임의 전환입니다. 밖의 대상은 탐욕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긴 하지만 결국 우리 마음에서 탐욕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걸 알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탐욕을 일단 알아차려야 하고, 대상으로 가지 말고 우리 마음에서 일어난 이 탐욕을 잘 이해하고 알아차리면 탐욕을 버리는데 있어서 출발점이 되고 그 자체가 탐욕이 커져 나가지 않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건 '화'하고 똑같습니다. 화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탐욕도 대상 탓을 하지 말고, 대상은 조건입니다. 대상 자체가 탐욕은 아니죠. 이 대상을 조건으로 탐욕이 일어나는 거지, 대상 자체가 탐욕은 아니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럼 이걸 어떤 식으로 버리느냐 하면, 처음엔 제일 중요한 지혜는 감각적 욕망이란 게 위험하다는 걸 첫째 여러분이 이해해야 합니다. 이 자체가 행복이 아닌 괴로움을 이끌어 내는 요소다. 위험하다. 이걸 이해하는게 중요한대요. 이건 여러분들이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뽀딸리아경' 이 있습니다. 맛지마니까야에 보면. 거기 보면 이 감각적 욕망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결점 이런 걸 열한가지 정도의 비유로, 우리는 이걸 행복이라 착각하지만 사실은 이게 가지고 있는 괴로움의 요소가 훨씬 많다. 행복이 요만큼이라면 행복은 조금이고 재난, 그걸로 인해 파생되는 괴로움이 훨씬 더 많다는 거예요. 감각적 욕망이라는 게.

여러분들이 실제로 이렇게 어떤 거를 드라마를 보거나 이럴 때도 사실은 즐거운 거 같지만 그 속에서, 드라마란 게 원래 반대되는 상황들을 만들어 놓으니까 드라마에서 나쁜 짓 하는 사람 보면 화 내다가 좋아하다가 화 내다가 좋아하다 이라는데 나중에 그걸 재밌었다 그러거든요. 전체적으로. 실제로는 화도 엄청나게 내고 있었던 거예요. 그 속에. 본인들이 잘 모르는 거죠. 우리가 살면서, 실제 남녀가 사귈 때도 싸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투정하고 싸우고 이런게 많은데 좋은 것만 우리가 취하고 좋은 것만 이해해서 그걸 전부라 생각하죠.

그래서 감각적 욕망을 뼈다귀에 비유해요.

이 뼈다귀엔 살은 없고 뼈만 있는데 그런데도 고기 냄새가 나요. 그래서 가 뜯어 먹으려면 먹을 건 없어. 감각적 욕망이 딱 그렇다는 거예요. 겉으론 행복으로 포장돼 있지만 여기서 행복 얻으려 좇아가다 보면 결국 헐떡거리기만 하지 만족이 안돼. 하나 얻으면 둘 얻고 싶고, 둘 얻으면 셋 얻고 싶고, 끝없이 달리게 만든다는 거지. 겉으론 행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결점, 괴로움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포장된 행복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는 거야.

화같은 경우는 당장 자기 마음이 괴로우니까 버리고 싶어합니다. 근데 이 욕망이라는 것은 그 즐길 때 달콤함이 있어요. 감각적 욕망의 가장 큰 유혹이 달콤함이예요. 그 달콤함 속에 독이 들어있는지 모르고. 그 달콤함에 빠져서 거기 좇아가는 그런 모습이죠. 먹을 땐 달콤하지만 그걸 먹고 나면 갚아야 될 빚이 있는 거예요. 그거 때문에 오는 괴로움이 있다는 거죠.

경전에 보면 부처님이 감각적 욕망을 뭐로 비유하냐 하면 빚에 비유합니다.

사채빚같은 빚. 제가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빚에 비유한다니까 빛-라이트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수행에서 행복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서 행복을 일으킬 수 있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저기 멀리 가서 행복한가.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할 수 있으면 뭐러 돈 들여서 시간 버리고 이렇게 할 이유가 별로 없겠죠 그쵸? 그래서 우리가 놓아버리는 걸로 인해서-출리의 행복- 벗어남의 행복은 여러분 마음에 의지하거든요. 욕망은 대상에 의지해요. 대상이 변하면 그거에 따라 우리도 동요하게 돼 있어요. 우리가 욕망을 버리는건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만 바꾸면 바로 일어난다고 했어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건 대상에 의지하는게 아니라 우리 마음만 바꾸면 된다.

마음에 있는 번뇌를 버리면 된다.그리고 이런 걸 바탕으로 해서 지혜가 생긴다. 향상으로 인도하는 지혜가 생긴다.우리가 탐욕이나 성냄이 있으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못 보죠. 그리고 당장 여러분이 호흡 수행을 할 때면 욕망이나 화가 작용을 하면 호흡에 절대 마음이 붙어있지 않아. 일로 갔다 절루 갔다 화 냈다가 욕망으로 좇아갔다 이렇게 왔다갔다 시간이 가는데 이 두 가지가 가라앉으면 내가 호흡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저절로 호흡으로 마음이 머물러 있게 되죠.

그래서 이것은 삼매에도 들 수 있게 하고, 또 그런 삼매에 들게 되면 우리 마음이 탐욕이나 성냄이 없는 마음은 깨끗하고 청정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지혜가 생깁니다.

제가 옛날에 대부란 영화 좋아했는데, 뭐 남자들은 대부분 좋아합니다. 남자들은 그런 느와르에 대한 그런게 있죠. 거기 참 재밌는 대사가 있어요.

적을 미워하지 마라.그럼 판단력이 흐려진다.

이런 말이 나와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 때 화가 작용하거나 집착이 작용하면 판단 자체가 뒤엉켜 버립니다. 절대 지혜롭게 판단이 안돼요.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것은 안 보려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그건 진리에 접근하기 어려워요. 우리가 삼매를 닦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욕망과 성냄을 가라앉히면 마음에서 균형이 생겨요.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어지니까 정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균형감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삼매를 닦는 거죠.

우리가 집착하는 가장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나라고 하는 존재거든요.

특히 나라고 하는 존재는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집착을 해요. 나중에 보면 이거 자체가 변하기 마련이거든요. 조건 따라 일어나니까. 그래서 이건 변하기 마련이니까 영원하지도 않고 내 것도 아니고 불완전해요. 그라믄 이걸 알면 여기에 대해서 계속 달라붙는 마음이 없어지고 마음이 어떻게 되겠어요? 점차 이 대상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집니다. 멀어지기 때문에 멀어지는 그런 지혜를 염오의 지혜라고 하거든요.

그러다가 이게 완전히, 아이고 더 이상 볼 것도 없네, 하고 욕망을 놓아버리면 그것이 이욕.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분리. 욕망이 없어지고 대상 자체로서 보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이것이 탐욕없음의 이익이라는 거죠. 선정에 들어가게 되는. 지혜를 닦게 해 준다.

욕망을 쫓아가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삶인가, 거기에 너무 인생을 다 바치는건 너무 아깝습니다.

물론 세속에 살다 보면 그런걸 완전히 벗어나진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걸 벗어나려 노력하는 쪽으로 가야 사람이 향상되고 성장을 할 수 있게 되는거죠. 그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