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대승불교의 성립배경

수선님 2020. 3. 8. 11:30

둘째주. 대승불교의 성립배경과 원류

▒ 3강. 대승불교의 성립배경 ▒

‘대승’이란 말은 범어인 마하야나(Mahayana)를 번역한 말이다. Maha는 ‘크다’, ‘수승하다’란 뜻이고 ‘Yana″는 ‘탈 것’, ‘가르침’이란 뜻이다. 육지에서는 수레가 탈 것이며, 물에서는 배가 탈 것이다. 따라서 대승은 큰 수레, 큰 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승은 열반의 언덕을 향해 건너가는 크고 빠른 배이다. 그래서 나와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갈 수 있다. 그런데 ‘대승’이란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이 스스로를 높이는 말이다. 이에 대응되는 말로서 ‘소승’은 작은 배, 열등한 가르침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소승은 혼자서 똑딱선을 타고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을 의미한다.

소승이란 말은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의 편견이 담긴 말이기 때문에 남방불교에서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국, 한국, 일본 티벳 등의 북방불교를 대승이라 부르고, 스리랑카와 미얀마, 타일랜드 등의 남방불교를 소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남방불교에서는 ‘소승’이란 말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말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테라’(Thera)불교라고 부른다. 이 말은 장로불교(長老佛敎), 상좌불교(上座佛敎)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대승불교는 언제,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대승불교가 일어난 연대는 학자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 기원전 1세기 경으로 추측한다. 불멸 후 100년 경 불교 교단은 계율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서 보수파인 상좌부와 진보파인 대중부로 분열된다. 그 이후 400여 년 간 20여 개 부파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부파불교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 부파불교에 대한 반동운동으로부터 일어나게 된다.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은 부파불교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했다. 그렇다면 부파불교는 어떠한 한계를 지니고 있을까?

첫째로 부파불교는 지나치게 이론적 체계를 중시했기 때문에 이론과 실천의 괴리가 생겼다. 불교는 본래 해탈의 길이다. 부처님이 평생 가르치신 것도 이론이 아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는 실천적인 삶의 길이었다. 따라서 불교의 생명은 실천에 있다. 부처님이 어려운 형이상적인 문제를 중시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파불교에서는 부처님이 거부한 문제들을 현학적 이론으로 치장하였다. 결과적으로 부파불교는 불교 본래의 실천적 생명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부파불교의 한계점은 대중과 멀어졌다는 데 있다. 부파불교는 승원 불교, 학문 불교, 출가중 위주의 불교였기 때문에 생활과 유리되어 특히 재가의 대중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부처님은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과 출가중들을 위한 가르침을 함께 펼쳤다. 그런데 부파불교는 출가위주의 불교를 중시했기 때문에 재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부파불교는 동체자비라는 이익중생의 측면을 소홀했던 것이다.

불교는 본래 모든 사람들이 깨쳐서 진리의 생명수를 마시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부파불교는 승원을 중심으로 수행도 엄격하고 계율도 세밀하고 복잡하여 전문 수행인들만 도달할 수 있는 아라한과를 목표로 했다. 일반인들이 이러한 전문적인 수행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재가중들이 할 일은 깨쳐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출가중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보시 등에 있었다. 즉, 아라한과는 출가해서 본격적인 수행을 거쳐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재가인들은 선행을 쌓는 일에만 열중해야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부파불교의 한계 때문에 대승을 일으킨 사람들이 그들을 ‘소승’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소승’이란 말은 본래 히나야나(Hinayana)란 말로서, ‘작은 배’, ‘비좁은 가르침’, ‘열등한 가르침’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부파불교 사람들은 이 말을 아주 싫어한다. 소승이란 말속에는 대승적 편견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승불교는 이런 부파불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사람들에 의한, 모든 사람을 위한 가르침으로서의 불교를 강조했다. 그래서 그들은 ‘큰 배’란 의미를 지닌 대승으로 자처했던 것이다.

이처럼 대승불교는 부파불교가 부처님 정신에서 유리되었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은 일체의 모든 생명을 건지려는 폭넓은 가르침을 폈는데, 부파불교는 개인의 완성에만 치우쳤기 때문이다. 또한 부처님은 중생의 괴로움을 멸하는 산 가르침을 폈는데, 부파불교는 경에 대한 주석 등 현학적인 문제에 빠지게 되었다. 부파불교가 대중들로부터 멀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승불교를 일으킨 사람들은 “부처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불교 회복 운동을 전개했다. 즉, 대승불교는 본래 부처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부처님 참 불교 회복운동, 새로운 불교운동이었다.

그러면 대승불교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을까? 새불교 운동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의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그 주류는 스님들이 아니라 재가의 대중들이었다. 이 점이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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