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2

관세음보살의 기원

수선님 2020. 8. 2. 11:51

관음신앙 연구 -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천종환

學位論文 (발췌)

 

 

목 차: 생략 

 

국 문 초 록 

본 논문의 목적은 불교의 대표적 신앙인 관음신앙을 종합적으로 조명하여 보는 데에 있다. 본 논문에서는 불교내부의 시각에서만 접근하지 않고 더욱 넓은 시각의 종교학적 관점에서 관음신앙을 조망하여 보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관세음보살의 기원’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관음신앙의 사상적 발전’에 대해서 다섯 개의 절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제3장에서는 ‘관음신앙의 여러 유형’에서는관음신앙이 불자들의 신앙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상세히 고찰하여 볼 것이다.

끝으로 제4장에서는 몇 가지 관음신앙과 관련된 사항들을 탐구하여 보고자 한다.

 

 

머리말

 

흔히 불교라 하면 ‘수행의 종교’라 말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불교는 자력적 수행과 타력적 신앙의 양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절대다수의 재가불자들은 수행이 아닌 신앙을 위해 불교에 귀의한다. 사실 종교의 근본은 신앙과 기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신앙과 기도를 위해서 불교에는 다양한 불보살이 존재한다.

2500년 불교역사 속에는 구원불(救援佛)의 역할을 담당하는 수많은 불보살이 등장하였다. 그 가운에서도 영향이 큰 신앙으로는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약사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을 들 수 있겠다.

 

‘법의 스승’으로서가 아닌 ‘구원불’로서의 석가모니불에 대한 신앙은 부처님 입멸과 더불어 불사리탑 신앙 속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미래불인 미륵보살 신앙은 대승의 불보살 신앙으로서는 가장 초기에 성립되었으며 대표적인 미륵신앙인으로는 중국의 현장삼장을 들 수 있고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성하였다.

아미타불신앙은 이른바 ‘타방불사상(他方佛思想)’의 성립에 따라 동방의 아촉여래신앙에 뒤이어 성립된 것이다. 많은 대승경전에서 미타신앙을 고취하였지만 인도에서는 그렇게 융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북방불교권에서는 대단히 성행하여 ‘정토종’이라는 종파까지 형성되고 수많은 저술과 염불종사가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미타신앙은 관음신앙과 더불어 양대 신앙의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친근한 어구가 그를 잘 말해준다.

질병구제의 역할을 담당하는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은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을 소의로 한다. 인간고통의 중요한 한 부분이 질병이기에 질병을 구제하는 역할로 인해 약사신앙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융성하였다.

밀교의 불공삼장이 열렬히 신봉하였던 문수보살에 대한 신도 면면히 이어 내려와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대산(五臺山)’이라는 문수영장(文殊靈場)까지 성립하였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문수사리(Manjusri) 보살의 기원은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사리불(Sariputta) 존자에 연원한다고 한다.

보현보살에 대한 신앙은 용수보살의 『대지도론』속에 그 사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인도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중국에서는 천태지의 대사의 스승인 혜사선사가 보현신앙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아미산(峨嵋山)’이라는 보현영장까지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다지 신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티베트에서는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많이 신앙되고 있다.

고통 받는 명부(冥府)의 일체중생을 구제한다고 알려진 지장보살은 인도나 티베트에서는 그다지 신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조상 섬김의 전통이 강한 문화권에서는 대단히 환영받고 있다. 요즈음 한국에는 대웅전에 부처님의 좌우보처(左右補處)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안치하는 예가 많아지고 있는 것에서도 지장신앙의 융성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불보살신앙 가운데에도 불교의 역사 속에서 무엇보다 융성하였던 것은 관음신앙이다.

일찍이 대승불교가 행해진 곳에서 관음에 대한 신앙이 불길처럼 일어나지 않은 곳은 없었다4). 먼저 지리적으로 보아서 인도를 시작하여 중국과 한국, 일본 그리고 티베트에 걸쳐서 관음신앙은 한결같이 크게 환영받았다. 그리고 사상적으로 보더라도 선종이건 교종이건 그리고 정토교와 밀교 할 것 없이 고르게 중시된 것은 관음신앙이다. 이렇게 볼진대 분명 불교의 신앙을 대표하는 것은 관음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불교를 대표하는 신앙이지만 관음신앙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진한 상황이다.

(기존의 연구 관련 내용 생략) 

 

 

제1장 관세음보살의 기원 

 

제1절 서론

 

본 장에서는 석가모니와 그 교단의 신통능력, 재가불자들에 의한 불탑신앙, 석가모니의 신격화로 인한 형이상학적 법신불로의 발전 그리고 석가모니불에서 관세음보살에로의 변천 등 다양한 논의를 통하여 역사적인 인물이었던 석가모니가 어떠한 경로로 상주불멸의 구원불인 관세음보살로 다시 신앙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상세히 고찰하여보고자 한다.

 

제2절 석가모니와 불탑신앙 

 

 

1. 석가교단의 신통능력

 

흔히들 말하기를 석가모니가 전한 불교는 ‘법(法)의 종교’라 한다. 그러나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가 진리를 설파하는 ‘설법주(說法主)’로서뿐만 아니라 신통능력을 갖춘 ‘구제자(救濟者)’의 측면도 겸비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1) 쉬라바스띠의 기적

 

석가에게도 초월적 구원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입증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이른바 ‘쉬라바스띠의 기적’이 많이 알려져 있다. ‘쉬라바스띠의 기적’이란 평소 기적의 사용을 강하게 금지하던 석가모니가 쉬라바스띠에서 놀라운 기적을 행한 사건을 말한다.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사분율(四分律)』의 권51에는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쉬라바스띠성에 있던 외도들이 빔비사라왕에게 사문 고오타마와 신통을 겨루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석가모니는 때가 되면 신통을 보이겠노라 하였다. 이후 각처에서 기적을 요구하자 석가모니는 마침내 쉬라바스띠성에서 신력(神力)을 보여주었다. 어떤 날은 양치하던 나뭇가지를 땅에 던지니 큰 나무로 변하여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자 대중들이 모두 배불리 먹기도 하였고, 어떤 날은 허공 속에서 설법하였는데 대중들이 그 모습은 보지 못하고 단지 음성만 들었으며, 어떤 날은 한 몸이 여러 몸으로 분신(分身)하기도 하고 새처럼 허공 속을 걷기도 하며 땅위에서 걷는 것처럼 물 위를 걷기도 하였다.>

 

이 쉬라바스띠성의 기적은 ‘사위성(舍圍城)의 신변(神變)’이라고도 불리우며, 불교의 조각미술 소재로 많이 사용되어 인도 꼴까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천불화현(千佛化現, 5세기), 파키스탄 카라치 국립박물관에 있는 쌍신변(雙神變, 2~4세기)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교단 내에는 신통력을 가진 이가 많았다. 석가의 십대제자 중에서 목련존자가 신통제일이었다는 것은 익숙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여성출가자인 우팔라반나도 신통력이 뛰어났다고 하며, 석가의 재가신도인 멘다까의 가족도 뛰어난 신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16나한의 한 분인 빈두로존자도 뛰어난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 사찰에 가면 독성각(獨聖閣)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이 독성각은 빈두로존자를 모셔놓은 곳이다.

빈두로존자는 기적을 사용하다가 부처님에게 심한 꾸중을 듣게 되는데 『사분율』속에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쉬라바스띠성에 계셨다. 성중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향이 좋은 전단나무를 얻게 되어 그것으로 발우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안뜰에 높은 나무를 세우고 그 위에 발우를 메달아 놓고는, “신통력이 있는 사람은 이 발우를 가져가시오”하였다.

이 때 빈두로존자와 목련존자는 함께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는데 빈두로존자가 목련존자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그대에게 신통제일의 이름을 주셨으니 그대는 가서 발우를 가져와 보시오.”

그러나 목련존자는,

“나는 일찍이 재가신자 앞에서 신통을 나타낸 적이 없오. 그대 또한 대신력(大神力)이 있으니 가서 가지도록 하시오”라고 답하였다. 빈두로존자는 목련존자의 이 말을 듣고 허공으로 몸을 치솟아 쉬라바스띠성을 일곱 바퀴 돌고는 장자의 발우를 가지고 허공 속을 날아갔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빈두로존자를 심하게 나무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행한 바는 옳지 않으며 출가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니 어찌하여 재가신자 앞에서 신통을 나타내었느냐? 그것은 마치 음녀가 돈 반 푼을 벌기 위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의 알몸을 드러내 보이는 것과도 같다 하겠노라. 그대 또한 이와 같아 나무발우 하나를 위해 재가신자들 앞에서 신통을 드러내었으니 앞으로는 재가신도들 앞에서 신통을 나타내지 말도록 하라.”>

 

3) 기적사용의 금지 

 

이와 같이 석가교단 내에는 신이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며, 석가는 오히려 신통력의 사용을 강력하게 금지시켰다. 왜냐하면 기적의 사용으로 인해 근원적인 진리추구라는 수행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막기위해서이다. 빈두로존자에게는 음녀에 빗대기까지 하며 신통의 사용을 강하게 비난하였다. 사실 신통경계의 존재는 불가(佛家)에는 흔한 일이며 석가모니 이후 줄곧 신통력의 사용을 절제시켜 오고 있다.

<불교를 믿는 우리 불자들은 무엇보다도 불법(佛法)에 최우선을 두어야합니다. 일부 불자들 중에는 진리보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신통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신통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니, 진리는 대우주 및 우리의 근본 마음자리와 통하는 것으로 언어 이전의 소식이요 현상 이전의 본모습입니다. 이에 비해 신통은 이름과 모양으로 경계를 나타내어 미혹한 중생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물 위를 걷는다든지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전생을 보는 등,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신통이라 하지만 신통은 진리를 요달한 자리가 아닌 기술의 자리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않고서도 신통한 기술을 부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이는 신통력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도를 닦다가 부산물로 생겨나는 신통한 능력들을 따르다 보면, 삿된 길로 빠져들어 다시는 바른 길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을 함부로 나타내지 말 것을 당부하셨고, 신통을 노출시킨 제자 빈두로를 나무라기까지 하셨습니다.>(『천수경 천수신앙』, 혜국, 효림, 2003, 94-95쪽.)

 

초월적인 신통력은 불교의 교리에 의하면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능력에 속한다. 후대로 가면서 이러한 초월능력은 사신족(四神足), 육신통(六神通) 등으로 분류되어 교리 속에 공식적으로 체계화되기에 이르는데 불교의 역사 속에는 신통력을 지닌 이들이 무수히 존재하였다. 

 

석가모니는 신통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석가모니에게 초월적 능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특히 재가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석가모니가 위대한 진리교법과 뛰어난 구원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후대의 재가신자들은 설법주와 구제자라는 석가모니의 양면성 중에서도 초월적 구제자의 측면을 꾸준히 부각시키고 승화시켜 구원불로서의 석가모니로 신격화시켜 나아간다.

 

2. 출가제자와 재가신도

 

석가모니의 입멸 후 석가교단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니 이른바 출가승단과 재가신도이다. 이 중에서 전문적인 수행집단인 출가승단은 세속을 떠나 고요한 숲 속에 머물면서 재가신도들의 뒷받침 속에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정과 사회 속에서 현세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재가신자들은 출가승단처럼 고도의 수행생활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였고, 더 나아가 그들 재가자들의 관심은 수행을 통한 과위(果位) 증득보다는 오히려 현세의 행복과 다음 생의 복된 삶에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재가신자들의 마음에 가장 끌렸던 것은 불탑신앙이었다. 현실의 삶 속에서 구제(救濟)를 바란다고 한다면 부처님의 대자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가자들이 모여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고 구제를 기원하는 곳이 바로 각지의 불사리탑이었던 것이다.

 

3. 불탑신앙

 

석가모니가 입멸하자 그 유골을 나누어 중인도에 있는 여덟 개의 나라에서 각각 사리를 모시는 탑을 세운 것이 불탑의 시원이다. 

한국에는 이른바 오대(五大) 적멸보궁이라는 유명한 불교성지가 있는데 언제나 참배객과 기도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신라시대의 자장율사가 중국 유학에서 돌아오면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왔는데, 이들 사리를 경관이 수려한 다섯 곳에 나누어 탑을 세워 안치했는 데에서 유래한다. 한국불자들은 부처님 입멸 후 2500년의 시간 흐른 지금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최고의 성지로 여기며 먼 길을 찾아 참배하고 기도드린다.

(현재 한국의 오대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 정암사, 영월의 법흥사)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당시의 인도 불탑에는 순례자의 숙사나 우물, 목욕을 위한 연못도 있었다 한다. 이는 곧 당시의 불탑은 오늘날로 치자면 ‘사찰(寺刹)’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던 셈이다.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는 오대적멸보궁 참배는 인도에서의 이러한 불탑신앙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절 석가의 신격화 

 

1. 구원불로서의 석가

 

불탑에서 신앙되는 부처님은 중생을 구제하는 위신력(威神力)을 가진 부처님이다. 불탑을 예배하고 신앙함은 부처님의 인격적 불멸(不滅)을 믿는 것이며 불탑신봉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부처님의 현존(現存)이다.

 

1) 신격화되는 석가모니

 

① 『잡아함경』

초기의 불전에 속하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이미 신격화가 진행되고 있는 석가모니불에 대한 묘사가 들어 있다.

그 가운데의 하나를 살펴보자.

<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에 머무실 때였다.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발우를 들고 여러 비구승과 더불어 성 안에 들어가 걸식하셨는데 몸은 금산(金山)처럼 빛나고 얼굴은 보름 달 같았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발로 성문의 끝을 밟으시니 온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신력(神力)을 나타내 보이시자 모든 사람들은 소리 높여, “기특하도다. 일찍이 부처님처럼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미증유한 법을 나타낸 이는 없었다”하고 외쳤다.

이 때 부처님의 몸에서 천 개의 해처럼 광명을 두루 비추시자 사람들은 부처님의 광명을 입어 시원하기가 전단향으로 몸을 바른 듯

하였다.>

 

초기불전인 『잡아함경』을 통하여 이미 석가모니불에 대한 신격화가 상당히 진전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후대의 불전으로 갈수록 석가모니에 대한 신격화는 훨씬 고도로 진행된다.

 

② 아바다나 문학작품

대장경 가운데에서 본연부(本緣部)에 속하는 경전들을 읽어 보면 석가모니가 구원불로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담긴 경전이 보인다. 이들은 이른바 ‘십이분교(十二分敎)’의 하나인 《아바다나(Avadana)》에 속하는 경전으로, 《비유(譬喩)》라 번역되기도 한다. ‘교훈비유’의 뜻을 지니는 이들 《아바다나》는 『아함경』이 완성된 후에 독립적으로 저술된 것이며, 현재 많은 《아바다나》 문학작품이 남아 있는데 특히 서력기원 전후의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많다 한다.

이들 《아바다나》 문학작품을 통하여 인간 석가모니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제는 구원불로 신격화, 초인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③ 『찬집백연경(撰集百緣經)』

오나라 지겸(支兼)에 의하여 역경된 『찬집백연경(撰集百緣經)』(A.D.223-253)은 석가모니의 행적에 관련된 일백 가지 설화를 모아 편찬한 것으로, 이 경전 속에서의 석가모니는 신비적 초월능력을 갖춘 구제불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불탑건립과 공양에 대한 권유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이 경전은 아마도 불타입멸 이후 불탑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던 재가신도들을 위하여 불탑신앙의 전문가들에 의하여 구성되어졌을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석가모니의 초월적 구원능력을 전하는 사례 둘을 옮겨 보자.

 

【제13 법호왕청불세욕연(法護王請佛洗浴緣)】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그 때 슈라바스띠성 중에 오백명의 상인이 있어 다른 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고자 길을 떠나 광야 가운데에 이르러서는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아갈 바는 알지 못하는데 마침 무더위는 극심하여 목이 말라 거의 죽게 되었다. 이 때 각각의 상인은 여러 천신(天神)들에게 엎드려 절을 하며 도와줄 것을 간구하였지만 아무 감응도 없었다. 그 때 상인 중에 한 명의 불교신자가 있어 무리들에게 이야기 하였다.

“여래 세존께서는 언제나 대비심으로 주야에 걸쳐서 중생을 관찰하여 누군가가 고액(苦厄)을 받으면 가서 구제하십니다. 우리들은 지금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 불타》를 불러 고액에서 벗어납시다.”

그 때에 상인들은 이 말을 듣고 같은 목소리로 《나무 불타》를 부르며, “원하옵건대 이 갈증을 구제하여주소서”하고 기도하였다.

그 때에 여래께서는 멀리서 뭇 상인들이 부처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시고 그들 상인들이 있는 곳에 이르시어 큰 비를 내려 목마름을 없애주셨다.>

 

【제16 불현제석형화바라문연(佛現帝釋形化婆羅門緣)】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죽림에 계실 때였다. 그 때 왕사성에는 리차(梨車)라는 이름의 재상이 있었는데 삿되고 그릇된 견해를 받들고 인과를 믿지 않았다. 그는 아사세태자를 시켜 반역을 일으켜 부왕을 살해하고 대신 왕이 되게 하였다. 이어서 모든 신하들에게 칙령을 내리어 부처님에게 찾아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모든 바라문들은 이 말을 듣고 부처님에게 가지는 않았지만 비밀히 모여서는 함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무 구담사문! 이 모임에 오시어 저희들의 청을 들어주소서.” 이 때 여래께서는 언제나 자비심으로 낮과 밤에 걸쳐 중생을 관찰하시고 누군가 건질 이가 있으면 가서 제도하셨는데, 모든 바라문들의 선근이 무르익은 것을 아시고 몸을 변화시켜 제석천의 모습을 하고는 허공을 타고 오시어 바라문의 모임에 들어 가셨다.>

 

④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

『본연부』경전에 속하는 『대방편불보은경』속에서도 석가모니는 때로 구원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나의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에 한 명의 비구가 있었는데 몸에 창질이 있어 온 몸에 피고름이 흘렀다. 그러나 모두들 그를 싫어하여 어떤 사람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 때에 여래는 신력(神力)을 나타내어 욕계(欲界)의 모든 하늘이 알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제석천왕은 무량한 권속들과 함께 앞뒤에서 부처님을 둘러싸고 온갖 하늘 꽃을 비내리고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며 허공에 머물렀다. 그리고 백복(百福)으로 장엄된 미묘한 물병을 손에 들고 청정한 대비(大悲)의 정수(淨水)를 가득 담아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 편에 머물렀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병든 비구의 처소로 가시어 정수리의 광명을 놓아 그 비구를 비추시니 비구의 고통이 곧 멈추었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 제석천왕으로부터 물병을 받아 병든 비구의 머리에 부으시고 왼 손으로 비구의 몸을 어루만져주시니 몸의 모든 창병이 부처님의 손길을 따라 모두 나았다. 몸이 모두 낫자 비구는 기쁨이 한량없어, “나무 석가모니! 나무 대자비부(大慈悲父)! 나무 무상최승의왕(無上最勝醫王)! 오늘 저의 몸이 모두 나았나이다”하고 찬탄하였다.>

 

이상과 같이 『찬집백연경』과 『대방편불보은경』을 통하여 구원불로 신격화된 석가모니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제 부처님은 대자대비의 관찰자로서 항상 세간을 관찰하여 중생의 고난을 구제하러 간다. 이는 석가모니의 존재가 ‘설법주(說法主)’가 아닌, 뛰어난 능력과 초월적 예지를 갖춘 ‘구제자(救濟者)’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구원불로서의 석가모니는 여러 면에서 대자대비와 무량응신 그리고 자재신력을 갖춘 관세음보살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뒷날 어느 시점에서인가 석가에서 관음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2) 견불체험

 

불자들이 많이 독송하는 『법화경』「여래수량품」에는 아래와 같이 불탑예배를 통하여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내가 열반에 드는 것을 보고 널리 사리탑에 공양 올리며

모두가 그리움과 사모의 정을 품어 목마르게 앙모(仰慕)하는 마음을 내는도다.

중생들이 굳은 믿음을 갖고 또한 곧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을 친견하고자 자신의 신명을 아끼지 아니하면

그 때 여래와 제자들은 함께 영축산에 출현하여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노라.>

 

위 「여래수량품」을 통하여 불사리탑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지극한 정성으로 예배하는 불자들의 모습을 상상하여 볼 수 있다. 「여래수량품」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불탑예배를 통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고자 함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인도의 붓다가야에는 지금도 오체투지의 예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다.

 

인도를 여행해서 붓다가야의 정사를 방문한 사람은 그곳에서 티베트인들이 오체투지의 예배를 반복해서 올리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사이엔가 그의 눈앞에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것이다. 불탑을 참배하고 지극히 기도를 계속할 때 사람들은 석가모니불을 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일념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고행적인 예배를 계속하다보면 마음이 삼매에 들고 그 삼매 속에 부처님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이른바 관불삼매이다.

 

석가모니불의 현존을 확인한 불자들은 구원불로서의 석가모니불에 대한 교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

 

2. 상주불멸의 법신불로

 

1) 법신불(法身佛)

 

대승불교 교설 가운데에 법신불의 개념이 있는데, 이 법신불의 개념은 이미 원시불교시대에도 등장하지만 본격적으로 그 사상이 정립되는 것은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러서이다. 부처님의 몸을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의 둘로 나눌 경우 색신불이란 색신 즉 육체를 가진 부처님이요, 법신불이란 법 즉 진리를 몸으로 하는 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의 본질은 영원불멸의 진리인 법 그 자체이며, 이 불멸의 진리, 보편의 법을 부처님의 참된 몸이라고 하여 법신(法身, dharma-kaya)이라 하며, 이에 대하여 유한의 시간 속에서 입멸한 석가모니를 색신(色身,rupa-kaya)이라 부르는 것이다.

불탑에서의 견불체험이 뒷받침되어 석가모니는 입멸과 함께 소멸되어버린 과거의 부처님이 아니라, 이제 영원히 자신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구제하여 준다는 상주불멸의 법신불로 승화되어 모든 중생들의 구원자가 되어 갔다. 그리하여 석가모니는 이제 더 이상 유한한 육신을 가진 역사 속의 생신(生身)이 아니라, 우주에 영원히 머물면서 광대한 위신력을 지닌 법신불(法身佛)로서의 부처님으로 초인화된 것이다.

아래에서는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열반경』과 『법화경』 그리고 『화엄경』을 통하여 법신불로 승화된 석가모니불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열반경』에서의 법신불 선언

 

『열반경』은 불타석가모니가 지상에서의 80년 생애를 마감하며 최후에 남기는 설법형식으로 경전이 진행된다. 최후의 설법 속에서 석가모니는 이제 자신은 유한한 육신의 불타가 아니라 무량억겁토록 멸하지 않는 법신불임을 선언한다.

<이 때에 세존께서 가섭에게 이르셨다.

“선남자여! 여래의 몸은 상주불멸(常住不滅)의 몸이며 무너뜨릴 수 없는 몸이며 금강(金剛)의 몸이며 음식 먹는 몸이 아니니, 곧 법신(法身)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다면, 이와 같은 몸을 저는 보지 못하였고, 오직 무상(無常)하며, 부수어지며, 보잘 것 없는 음식 먹는 몸만을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대는 지금 여래의 몸은 견고하지 않아 무너지며 범부의 몸과 같다고 이르지 말라. 그대는 이제 여래의 몸은 무량한 억겁(億劫)토록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으며, 인간이나 하늘의 몸이 아니며, 음식을 먹는 몸이 아님을 마땅히 알라. 여래의 몸은 청정무구(淸淨無垢)하여 머물 바 없는 곳에 머물며, 형상이 아니고 모양이 아니되 또한 모든 모습으로 장엄하였나니, 여래의 법신(法身)은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였느니라. 그대는 오늘부터 언제나 오롯한 마음으로 이 뜻을 사유할지니, 마땅히 사람들을 위하여 여래의 몸은 곧 법신(法身)임을 설하도록 하라.”>(『北本大般涅槃經』卷第三「金剛身品」)

 

『열반경』「금강신품」에서의 이 선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입멸을 바로 눈앞에 두고 최후의 설법을 하면서 석가모니는 자신의 참된 모습이 영겁의 법신불임을 밝히고 미래가 다하도록 불자들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눈앞의 현실세계 밖에 보지 못하는 범부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진여법계의 실상에 대해서 부처님의 참된 뜻을 담은 경전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몸은 이렇게 영겁불멸의 절대적인 법신불이라는 불타관은 이후 대승불교사상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3) 『법화경』에서의 상주불멸 선언

 

『법화경』「여래수량품」의 게송부분은 《자아게(自我偈)》라 하여『화엄경』과 더불어 대승불교 양대 경전의 하나인 『법화경』의 핵심 사상을 이루면서 예로부터 중시되어 왔고, 현재 한국불교에 있어서도 중요시 되어 많이 독송되고 있다.

 

《자아게》에서는 부처님의 참된 몸은 멸도하지 않고 영겁토록 머문다고 선언된다. 즉,

<내가 부처의 몸을 얻은 이래 지내온 모든 겁의 수는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의 겁이로다.

헤아릴 수 없는 중생에게 항상 법을 설하고 교화하여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한 이래로 생각할 수 없는 겁이 되도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멸도(滅度)하지 않아 항상 이 곳에 머물러 법을 설하노라(常住此說法). 모든 공덕(功德)을 닦으며 마음이 유화(柔和)하고 뜻이 질직(質直)하면 모두 나의 몸을 친견할지니 나는 항상 이 곳에서 법을 설하고 있노라. 여래는 세간의 아버지이니 너희들의 모든 고난 구제하노라. 앞 못 보는 범부들을 위하여 영원히 머물면서도 열반에 들었다 하노라.>

 

『법화경』「여래수량품」에서 선언된 부처님의 탄생과 입멸 그리고 영겁의 구원불이 된 과정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래수량품」에 의하면 석가모니불은 실은 무량원겁(無量遠劫) 이전에 부처를 이룬 광겁의 성존으로서 진여법계에 머물다가 지상에 인간의 몸으로 화현하여 팔십년 동안 중생을 교화하고 다시 진여법계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지만 열반을 보여 입멸에 든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며 사실은 멸도하지 않아 영겁토록 법신불로서 이 땅에 머물면서 세간 일체중생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고난을 구제하는 상주불멸의 구원불인 것이다.

이렇게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게 되면 석가모니는 불자들에게 영겁불멸의 대위신력을 갖춘 구원불로 새롭게 태어나게되는 것이다.

 

4) 『화엄경』의 부처님

 

대승불교경전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화엄경』 속에서도 부처님은 위대한 법신불로 찬탄된다.

 

「세주묘엄품」에서 묘사되는 부처님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적정(寂靜)의 해탈이신 하늘과 인간의 주(主)시여! 시방세계에 현신하지 않음이 없으시네.

광명이 비추이어 세간에 가득하니 이 무애(無碍)의 법은 엄당천(嚴幢天)이 보는도다.

일체 세간의 참된 도사(導師)께서 구원자가 되고 귀의처가 되어 출현하셨네.

중생들에게 두루 안락한 곳을 보이시나니 봉월천(峰月天)이 이에 깊이 들어갔도다.

삶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 그리고 근심과 슬픔의 고통은 세간을 핍박하여 잠시도 쉼이 없네.

부처님께서 애민히 여기사 모두 건질 것을 서원하셨으니 무진혜광천(無盡慧光天)이 능히 알도다.

부처님의 몸은 두루 하여 법계와 같으시고 널리 중생에 감응하여 현신(現身)하시네.

가지가지 가르침의 문으로 언제나 교화하고 가르치시며 법(法)에 자재하여 능히 깨닫게 하시네.>

 

이 《세주묘엄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부처님은 절대적인 능력과 초월적인 예지를 갖추고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주재자로서 온 법계에 영겁토록 머물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광대한 위신력을 지닌 법신불이 된 것이다.

 

( 대승의 보살계를 설하는 『범망경(梵網經)』속에서는 법신불과 석가불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본원불과 화신불로 설명한다. 「이 때 석가모니가 연화장세계의 백만억 자금강빛 광명의 궁전으로 가서 비로자나불을 뵙자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은 광명의 체성인 본원성불의 상주법신삼매(虛空光體性本原成佛常住法身三昧)’를 나타내어 대중들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백아승지겁 동안 마음자리를 수행하여 범부의 지위를 버리고 정각을 이루어 비로자나불이라 이름하며 연화장세계의 바다에 머무노라. 천백억 석가는 모두 나의 화신이며 나는 본원(本原)의 부처님이노라.”)

 

제4절 석가에서 관음으로 

 

조선시대의 대유학자였던 이황의 호는 퇴계(退溪)였다. 살아 생전에는 ‘이황’으로 불리웠겠지만 선생의 사후 후인들은 ‘퇴계선생’이라고 불렀다. ‘이황’이라는 직접적인 지칭보다는 학문과 인품의 이미지가 담긴 ‘퇴계선생’이라는 명칭이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원불로 승화된 부처님에 대하여 ‘석가모니’라는 지칭보다는 보다 보편적이며 종교적인 명칭이 더욱 어울렸을 것이다.

 

『시아귀감로미다라니신주경(施餓鬼甘露味陀羅尼神呪經)』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대비관세음(大悲觀世音)이시며 가릉빈가의 음성을 가지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가지가지 교묘한 언사로 감로의 법을 열어보이셨도다. 이 방편의 문으로 간곡히 나에게 부촉하시니 나는 부처님의 지엄한 가르침에 의하여 이를 널리 유포시키리라.>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다른 호칭으로 ‘대비관세음(大悲觀世音)’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비관세음(大悲觀世音)’은 모든 중생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는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언제나 함께 하면서 세간의 음성을 관찰하시는 석가모니불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1. 관음의 탄생

 

앞 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석가모니 입멸 후에 재가신자들은 불탑신앙과 견불체험을 통하여 석가의 초인성과 영원성을 믿게 되고 마침내는 석가모니불이 상주불멸 대위신력의 법신불로 승화되게 되었다. 그러나 법신불로 승화된 석가모니불이라 하더라도 불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석가모니는 역사 속에 출현한 유한한 육신의 과거불이라는 인식이 강하였을 것이다.

구원불로서의 석가모니불에게는 진리의 스승이라는 인상이 짙은 ‘석가모니불’보다 대비관찰자로서 온갖 고난을 구제하는 이미지가 강한 ‘관세음보살’이 더욱 적합한 것이다. 그리하여 불탑신앙 안에서 형성되어 온 대비 관찰세간자로서의 부처님이 세간의 음성을 관찰 하시는 분, 즉 관세음보살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석가모니불에서 관세음보살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우리는 경전의 기술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에서는 관음의 석가기원론에 대해서 상세히 논구하여 보기로 한다.

 

2. 석가기원론의 근거

 

관세음보살은 다름 아니라 역사적 실존인물이었던 석가모니가 신격화되고 다시 구원불적 이미지가 짙은 ‘관세음(觀世音)’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는 점은 아래의 세 가지 경전적 근거에 의하여 논증될 수 있을 것이다.

 

1) 대해(大海)의 흑풍(黑風) 인연담

 

석가모니불의 중생구제 활동이나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설하는 경전들을 비교 검토하여 보면 관음의 석가기원론을 뒷받침하여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보문품』과 『찬집백연경』에 나오는 ‘대해(大海)에서 만난 흑풍(黑風) 인연’을 들 수 있겠다.

 

『찬집백연경』에 나오는 인연담과 『보문품』에 나오는 인연담을 대비하여 보자.

 

【찬집백연경】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성중에 한 사람이 상인들을 이끌고 대해(大海)에 들어가 진기한 보물들을 구하여 돌아오는 길에 흑풍(黑風, 큰 폭풍우)을 만나 타고 있던 배가 표류하여 나찰의 귀신국에 떨어지게 되었다(黑風 吹其船舫 飄墮羅剎鬼國). 그 가 운데에 한 불자가 있어 여러 상인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 세존이 계시니 언제나 대비의 마음으로 낮이나 밤이나 중생을 관찰하여 고통과 액난에 처한 이를 구하여주십니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도록 합시다.”>

 

【관세음보살보문품】

<만약 금은(金銀) 등의 보물을 구하러 대해(大海)에 들어갔다가 흑풍(黑風)을 만나 타고 있는 배가 표류하여 나찰의 귀신국에 떨어지더라도, 그 가운데의 한 사람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표류하던 모든 이들은 나찰의 환난에서 벗어나리라.>

 

위의 경문비교를 통하여 두 경전에 등장하는 인연담이 실은 같은 것이지만 다만 그 구원의 주체가 석가모니불에서 관세음보살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후대로 가면서 불자들의 고난을 구제하여주는 구원불의 명칭이 ‘석가모니불’에서 ‘관세음보살’로 자연스럽게 대체된 것이다.

 

2) 석가와 관음은 같은 대비관찰자

 

석가모니불이 변신하여 관세음보살이 되었다는 점은 ‘관세음(觀世音)’이라는 명칭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석가와 관음은 둘 다 ‘대비관찰자(大悲觀察者)’로서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불탑신앙 안에서 성장했던 대비 관찰자 석가모니의 이미지와 관음신앙의 근본 소의경전인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선설된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를 비교하여 보면 그 둘이 너무나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불탑신앙 속에서 성립된『찬집백연경』에서 불타석가모니가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과 『보문품』에서 관세음보살이 고뇌 속의 중생을 건지는 모습을 비교하여 보자.

 

【찬집백연경】

< 여래세존은 언제나 대비심으로 주야에 걸쳐서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고통과 액난을 받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구제하십니다. 우리들도 지금 모두 다 함께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이름을 칭념하여 이 고액을 벗어납시다.>

 

【관세음보살보문품】

< 만약 어떤 중생이 온갖 고뇌(苦惱)를 받을 때에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名號)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즉시 그 음성을 관찰(觀察)하여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주느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관세음(觀世音)이라 이름하노라.>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은 각각 ‘중생을 관찰하는 이’, ‘세간의 음성을 관찰하는 이’로서 둘 다 〈대비관찰자〉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찬집백연경』에서는 관찰세간의 주체가 석가모니불이었는데, 『보문품』에서는 세간의 음성을 관찰하는 주체가 관세음보살일 뿐이다.

 

우리는 위의 경문비교를 통하여 〈대비관찰자〉로서 세간의 중생을 구제하는 주역이 석가에서 관음으로 변하면서 명칭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뜻으로 살펴보면 “중생세 간(衆生世間)의 온갖 음 성(音聲)을 관 찰(觀察)하시는 보살 ”이란 의미이다. 관세음보살이란 명칭은 별도의 고유한 인명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관찰하는 그 기능적인 면에서 유래한 것이다.

 

3) 『관찰세간경』에서의 석가와 관음경전 속에서의 관음 

 

대장경 속에는 부처님의 전기를 담은 문학 작품인 이른바 ‘불전문학(佛傳文學)’이라는 것이 있다. 대표적인 불전문학으로는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과거현재인과경』, 『불본행경(佛本行經)』, 『불소행찬(佛所行讚)』, 『일백오십찬불송』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한역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백여년 전에 영어로 번역되었을 정도로 중요시되고 있는 『마하바스뚜(Maha-vastu, 大事)』라는 불전(佛傳)이 있다. 이『마하바스뚜』안에는 석가와 관음의 유사성을 전하는 『관찰세간경(觀察世間經, Avalokita-sutra)』이라는 독립된 경전이 들어 있다.

그럼『관찰세간경』의 일부를 옮겨 보자.

< 이러한 보살행에 의해 성취된 (석가모니)부처님의 위신력을 존경하여 불탑을 공양하면 불길이나 독, 흉기가 그를 해칠 수 없고, 현세에서의 모든 비참(悲慘)이나 병고를 벗어나 천수를 누리게 되며, 삼독(三毒)을 여의게 되며, 사악한 도적도 그를 이길 수 없고 그리고 죽은 후에는 천계(天界)에 태어나 무량한 복을 얻으리라.>

 

또한 『관찰세간경』에서는 이어서,

< “나는 큰 고난이 있는 유정을 해탈시켜 주리라. 나는 온 세계의 눈먼 이를 위해서는 눈이 되어 주리라... 나는 고뇌있는 모든 이를 해방시켜 주리라">라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관찰세간경』의 부처님 모습에 대해서 일본의 불교학자 방강량음(芳岡良音)은「관세음보살의 기원」이라는 논문

에서 아래와 같이 평한다.

<『대아미타경』에서 “공포와 현관(縣官)에서 해탈시켜 준다”하고, 『법화경보문품』에서 “물과 불의 재난, 원적(怨賊)의 위해(危害) 그리고 현관(縣官)의 구금(拘禁)에서 벗어나게 하며 삼독을 여의게 한다”하는 관음의 이익신앙의 내용이 위의 『관찰세간경』에서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상에 의해서 관음신앙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두루 세간을 관찰하여 고난 속에 있는 유정들을 해탈시켜 준다하는 전승으로부터 성장하여 왔다는 것이 명백하여진다 하겠다.>

 

이렇게 『관찰세간경』을 통하여 석가모니의 구원활동상에는 이미 관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보게 된다. 관음은 다름 아니라 구호중생자로서의 석가모니가 대비관찰자인 관세음으로 변신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경전적 근거에서 상세하게 살펴본 것처럼 불탑신앙안에서 형성되었던 ‘대비(大悲)로 중생을 관찰하시는 석가모니불’ 관념이 ‘세간의 음성을 관찰하시는 관세음보살’이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바뀐 것이 명백하여진다 하겠다.

 

3. 고또오 다이요오 선생의 관음신앙 연구

 

불교학계의 권위자들이 모여서 만든『망월불교대사전』의 집필에도 참여한 바가 있는 저명한 불교학자 고또오 다이요오(後藤大用) 선생이지은 『관세음보살의 연구(觀世音菩薩の硏究)』는 관음신앙의 연구에 이정표적 역할을 하는 역작으로 여겨진다. 『관세음보살의 연구』에서

고또오 선생은 「관음기원론」이란 장을 통해 관음의 석가기원론을 힘껏 제창한다.

<무릇 종교는 교조(敎祖)의 인격 활동을 초점으로 하여, 그 교리신조를 받드는 신도의 귀의와 앙모에 의하는 것이건대, 관세음보살의 기원도 또한 불타석가모니의 인격적 활동이 그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정법(正法)의 인격화에 의해 형이상학적 법신불이 된 석가여래는 마침내 어린 아이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그리워함과 같이 귀의 갈앙하는 중생의 정념(情念) 속에서 자비로운 얼굴과 온화한 용모를 지닌 관세음보살로서 감응 현현하게된 것이다.

 

고또오 선생은 관음신앙 연구에 일생을 바친 분이다. 선생이 스스로, “나는 어려서부터 관음신앙의 혜택을 입어 긴 세월 관음을 첨앙(瞻仰)하면서 그 본체를 구명(究明)하는 것을 위없는 즐거움으로 삼아왔다... 30년 동안 불전조록(佛典祖錄)은 물론 동서고금의 서적을 섭렵 독파하면서 관세음보살에 관한 탐구편력(探求遍歷)의 여행을 계속하여, 비가 오는 아침이나 눈이 내리는 저녁에도 사색을 집중하여 검토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는 관음신앙 연구에 관한 대가(大家)라 할 수 있다.

고또오 선생은 석가에서 관음으로 명칭이 변화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타를 경애 갈앙하고 있었던 신도들에게 있어서 불타입멸의 소식을 접하게 되자 그 근심과 통곡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타에 대한 공경과 찬앙(讚仰)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신도들에게 있어 이제 불타입멸 후에 희구하는 바는 「있지 않으면 안되는 구세주」였다. 이를 원시적인 소박한 표현으로 나타내면 「중생의 음성을 관찰하는 구세자(救世者)」이며, 「아발로끼따-슈와라(Avalokita-svara), 관찰세간음성」 즉 관세음(觀世音)이었다. 그리고 이 현실세계에 영겁토록 상주하여 우리들 고뇌의 중생을 구제하여 준다고 믿어지게 된 것이다. 인간으로서 이 지상에 태어났던 불타 고오타마가 관세음보살로서 귀의 예경 받기에 이른 것은 특별히 기이하다거나 불가사의한 것은 아니며... 인간으로서의 석가모니가 관세음보살로 응화한 것은 당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석가모니가 변신하여 관세음보살로 재탄생하였다는 논리는 고또오 선생만의 입장은 아닐 것이다. 기록으로 전해오는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애정을 갖고 깊이 연구하여보면 석가에서 관음으로 변신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인 것이다.

 

4. 관음의 기원에 관한 다른 이론들

 

그런데 관세음보살의 기원에 관해서는 위와는 다른 몇 가지의 견해가있다. 이들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되기에 간략하게나마 검토하여 보기로 한다.

 

1) 관음은 미타의 협시보살이라는 견해

몇 가지 불전(佛典)에 의거하여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의 관계 속에서 출현하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즉 관세음보살은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서 현재 아미타불의 교화를 돕고 있으며, 미래에 아미타불이 입멸하면 그 뒤를 이어 성불하여 극락세계의 교주가 된다는 논지이다. 이 논지에 의하면 관음의 기원은 타방세계인 서방극락에 머물고 있는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셈이다.

그러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관계에 대해서는 장을 달리 하여 상세히 논의하겠지만(Ⅳ-1), 불교역사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관음신앙은 미타신앙과는 전혀 독립적인 것이다. 미타신앙과 관음신앙은 그 출발이 다르며 전혀 내용이 다른 신앙이지만, 미타신앙인들이 관음신앙을 내부로 흡수하고자 하여 미타의 협시로 삼은 것이다.

 

2) 힌두교의 영향

관음신앙은 힌두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관세음보살의 별칭인 관자재보살은 어원적(語源的)으로 보면 범어《아발로끼따,Avalokita》와 《이슈와라, Isvara》의 합성어이다. 여기에서《이슈와라(Isvara, 自在主)》는 힌두교의 절대신을 가리키는 용어이기에, 그러므로 관음신앙은 힌두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뒷장에서 상세히 살펴보는 것처럼(Ⅱ-2) 관음신앙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힌두교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힌두교에서 관세음보살의 신앙이 발생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관음신앙은 이제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불탑신앙 속에서 내부적으로 형성된 불교 고유의 신앙이기에 힌두교 유래설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3) 그리이스 종교와 힌두교의 융합

관세음보살의 범명 《아발로끼떼슈와라, Avalokitesvara》중에서 《아발로끼따, Avalokita》는 당시 인더스강 주위의 그리이스 식민지에서 융성하게 숭배되었던 《아폴로, Apolo》신과 어음(語音)을 같이 하며 《이슈와라 Isvara》는 힌두교의 절대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 그리이스 종교와 힌두교의 양측에서 영향을 받아《아발로끼떼슈와라,Avalokitesvara》라는 범명을 구성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아발로끼따 Avalokita》라는 단어의 용례는 위에서 살펴본『찬집백연경』처럼 불교내부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희랍신인 아폴로에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추리라고 생각된다.

 

4) 『관세음보살왕생정토본연경』

불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조리(早離)와 원리(遠離) 형제 이야기가 있다. 이들 어린 형제가 계모에 의해 남해의 무인고도에 버려져 굶어죽어가면서도 일체의 고난 받는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원력을 세워 다음 생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관세음보살왕생정토본연경(觀世音菩薩往生淨土本緣經)』에 실려 있다.

그런데 이 경전은 대장경에도 실려 있지 않은 출처불명의 경전이다. 대장경 『본연부』에는 석가모니의 전생 행적을 전하는 많은 본생담이 실려 있는데, 관음에 관한 이 설화도 일종의 설화적 본생담으로 보아야 하며,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 학술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제5절 결론

 

종교는 성장을 계속하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생각해 본다. 처음 땅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시간이 흐르면서 줄기와 가지가 생겨나고 이어서 큰 나무로 성장하여 가듯이, 교조(敎祖)에 의해 인류역사의 대지 위에 뿌리를 내린 종교의 나무는 세월이 지나면서 혹은 후인들에 의해 혹은 다른 종교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을 계속한다. 종교가 한 그루 나무처럼 성장하는 좋은 예를 그리스도교의 성모마리아 신앙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위대한 종교가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는 이천년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하여 신도들의 끊임없는 신앙과 그를 통한 종교 경험 속에서 이제는 하늘나라에 영원히 머물면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천상의 모후(母侯)’로 승화되어 있는 것이다.

오랜 옛날 인도 땅에 태어나 위없는 인품의 향기와 진리의 빛으로 중생들을 교화하다가 열반에 든 석가모니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신격화되고, 다시 그의 다른 이름이자 구원불적 측면이 강한 호칭인 ‘대비관세음’으로 바꾸어 불리어지게 된다. 즉 역사적인 석가모니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법신불로 신격화되고, 후에 이 상주불멸의 법신불은 광대한 신령감응(神靈感應)을 갖춘 관세음보살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관세음보살은 허구적 가공의 불보살이 아니라 역사적 실존인물에 뿌리를 둔 불교의 구원불인 것이다. 이후 관음신앙은 다음의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처럼 대승불교 운동의 한가운데에서 대승의 찬란한 교리들과 힌두교의 여러 신앙들을 흡수하면서 성장을 계속하여 나간다.

 

 

 

 

 

 

 

 

 

[출처] 관세음보살의 기원|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