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2

초기 대승경전의 관음신앙과 태허조사

수선님 2020. 8. 23. 11:26

초기 대승경전의 관음신앙과 태허조사

(初期 大乘經典의 觀音信仰과 太虛祖師)

 

 

 

 

 

Ⅰ. 들어가는 말.

 

 

 

현세의 위난을 구제하여 인간들에게 이익을 주는 관음신앙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동양 3국에 전승되어 민중 사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이름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리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관음 실체에 대한 이해의 변화를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좌우간 대승불교 교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폭 넓게 유포된 신앙은 관음신앙이다. 대승불교가 전해는 곳에서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관음신앙은 보살사상의 신앙적 극치라 할 만큼 대승불교권 전역에 개화(開花)하여 민간신앙으로서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대승불교가 흥기하던 기원 전 1세기 경 인도불교사에 나타난 많은 보살들 중 하나였던 관세음보살은 관음 특유의 신앙적 특징과 체계를 갖고, 기원 후 7-8세기 이후의 인도대승불교사의 시말(始末)에 걸쳐 큰 자취를 남기고 있다.

 

법현(法顯)은 A.D. 399년에 중국을 출발하여 인도에 갔는데, 그의 저서 『불국기』에 의하면(399-414), 대승교도들이 관음 등을 신앙했던 그리고 불법이 융성했던 당대의 서천축 마두라(摩頭羅, Mathurā)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관음을 신앙했던 사실들을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마투라(Mathurā)는 서인도불교의 유력한 거점이다. 이곳은 야무나강에 인접한 도시로서 델리보다 약간 동남쪽에 있는 고도(古都)이다. 마투라는 끄리쉬나신앙의 발상지로서 힌두교에서는 중요한 성지인데, 한 때는 불교가 매우 번창하여 오랫동안 설일체유부의 근거지가 되고 있었다. 마투라는 간다라(Gandhāra)와 더불어 인도 불교미술의 2대성지(二大聖地)이다. 이곳은 헬레니즘적 요소를 가졌던 쌰캬․파흐라바(B.C.100 - A.D. 75)왕조 때부터, 왕족에 의한 불탑과 가람 등의 공양이 행해졌다.

 

불상의 조각은 마투라에서 나타난 것은 A.D. 1세기 후반 경이라고 한다. 꾸샤나(Kușāṇa)왕조 대(A.D. 48 - 220)에는 불․보살 상 등이 많이 제작 되었는데, 보살상 중에는 다양한 상호를 가진 관음보살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꾸샤나 王朝의 까니쉬까(Kanișka, 128 즉위)왕에 이르러서는 불교미술의 극성기를 맞아 토속적인 마투라 불상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마투라 불입상. 마투라 출토, 마투라 박물관 소장 출처: 나까무라 하지메 외. 불타의 세계. p.307

 

아잔타 석굴 사원 등 同地方 석굴사원에서는 관음을 본존으로 하는 보문품(普門品) 소의(所依)의 ‘관음제난구제도(觀音諸難救濟圖)’ 등의 관음변상도(觀音變狀圖)가 13 例나 발견되고 있다. 이 아잔타 석굴사원은 부파불교시대인 기원전 2세기부터 대승후기인 7세기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인도불교사의 시대적 특징을 조형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인도에 있어서의 관음신앙은 조형미술사를 통해 나타난 것과 같이 신앙적 발전 양상을 잘 보여주는 실례(實例)이다.

 

초기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은 재가자들의 종교적 요구에 부흥하여 불보살들의 숭배로 성상조성을 대중화 시켰다. 대승보살사상의 신앙적 실천이 대중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성상(聖像)조성이 간과(看過)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상 조상과 대승보살승과의 만남은 대중의 신앙적 실천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었다.

 

초기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종교적 이상을 담은 경전들을 산출(産出)하게 되었다. 초기 대승경전의 형성은 서력 기원전 1세기부터 대승의 최초의 논사인 용수(Nāgārjuna, A.D.150-250)까지 이다. 대승의 초기는 북인도에서는 꾸샤나(Kușāṇa)왕조가 융성하던 시대이고, 남인도에서는 사뜨바하나(Sātvahāna)왕조(B.C.60 - A.D.290)가 지배하던 시대이다. 초기의 대승경전이라는 것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최초로 저술한 용수의 학설에 영향을 끼친 경전류이다. 그러한 초기의 대승경전으로는 『반야경』,『화엄경』,『법화경』및 『무량수경』등의 정토계 경전들을 들 수 있다.

 

관음신앙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사상적 구조 및 신앙적 특징은 초기의 대승경전에 소의(所依)로 나타났다. 이런 관음신앙은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로부터 나타나 1700여년의 불교사와 함께 민족이 공유한 종교체험으로 보편적인 신앙의 하나로 자리잡아온 것이다. 그래서 논자는 본고에서 초기 대승경전에 나타난 경설상(經說上)의 관음신앙을 살펴보고, 태허(太虛, 1904-1979)조사가 20세기 한국에서 어떻게 시간과 공간, 나라와 민족, 승과 속, 계층의 상하 등을 회통할 수 있었던 이념이 무엇인가를 구명함을 목적으로 한다. 본 고에서는 태허 조사의 자료집과 대승불교의 불전을 중심으로 논구하고자 한다.

 

 

 

 

Ⅱ. 般若經說上의 觀音的 信仰

 

 

대승불교의 기본교설인 반야‧공을 설한 반야경전은 대승불전 중 가장 먼저 성립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반야계통의 경(經)에는 송(頌)의 수에 따라 길고 짧은 여러 개의 경(經)들이 있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성립되었다고 간주되는 것은 소품반야인 『팔천송반야(Așṭasāhaśrikā)』이며 이것이 확대되어 25,000송의 『대품반야』가 성립되었다. 그 정요(精要) 만을 설한 소부반야경인 『반야심경, Prājńāpāramitā-hṛdaya-sūtra』의 300송과 『금강반야바라밀다경, Vajracchedikā-prājńāpāramitā-sūtra』의 500송과 같은 것이 있다.

 

『반야경』으로서는 가장 잘 정비된 것은 현장이 번역한 『대반야바라밀다경』600권이다. 이것은 16會(16부분)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반야경』은 초기부터 이렇게 방대했던 것은 아니며, 小經이 몇 권 존재했던 것이 후에 모여서『대반야경』600권이 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지루가참이 번역한 『도행반야경』10권이다.

 

大品 第 85 中의 學般若品에서는 “...菩薩摩訶薩 知一切法 但假名己 學般若波羅蜜多...” 라 하여, 五蘊‧四諦‧十二緣起에 걸친 空學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초기 대승보살들이 반야경전에 등장하여 學般若行을 수행하고 無上正等菩提를 얻게 된 것은 空思想이 보살사상의 뚜렷한 대승적 전환을 가능케 하였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나아가 “般若波羅蜜 是諸佛母”, “般若波羅蜜多 是諸菩薩母”라 하여, 般若로 부터 불보살이 출생한다고 설하고 있다. 대승보살은 般若를 모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

 

관음보살 또한 마찬가지로 이러한 수행과정을 거치게 되었는데, 그 반야의 완성자로서, 반야사상과 관음신앙과의 뚜렷한 상징적 만남은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에서 나타난다. 관음보살의 반야수행기록은 대품반야 연기품 초두에 多衆菩薩들 중 25번째의 보살로 관자재보살마하살이 등장한다. 현장신역 대품반야 第2‧3‧6‧10 會의 緣起品 중에는 “觀自在菩薩”로 表記되어 있고, 구마라집구역 마하반야바라밀다경 서품1에는 “觀世音菩薩”로 번역되어 있다. 보살을 수식하는 문구의 내용들은 신역 대품과 별 차이가 없다.

 

이상의 大品般若經 緣起品 또는 序品 그리고 勝天王般若經波羅蜜經에서는 觀音은 多衆菩薩들 중의 하나일 뿐이며, 특별한 신앙적 특징이나 지위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般若經典의 精要인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은 般若行을 닦는 수많은 보살들의 수평적 관계를 초월하여 觀自在菩薩을 般若의 완성자 즉 空의 체득자로서 설하고 있다.

 

소품반야경 제 9에서는 “行般若波羅蜜菩薩 須菩提 菩薩成就二法 惡魔不能壤 可等二 一者觀一切法空 二者不捨一切衆生... 復有二法 惡魔不能壤 何等二 一者隨說能行 二者諸佛所念” 이라 설하고 있다. 반야사상이 추구하는 이상적 보살상은 一切法空을 체달한 지혜로 중생을 제도하는 자비의 실천자이다. 관자재보살의 名義自性에 이러한 반야와 주제의 이상적 만남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설하는 관자재보살은 대승보살 필수의 사상적 입문이라 할 수 있는 반야수행을 완벽하게 행하고, 구제의 신앙적 실천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관자재보살은 아직 신앙적 위상을 갖는 것은 아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無上 歸依處는 오직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일 뿐이다. 반야사상은 명주설(明呪說)을 통하여 삼매를 얻게 하는 신앙적 특징을 갖고 있다.

 

「소품 반야바라밀경」 권 2 「명주품」에서는 부처님이 석제환인(釋提桓因, Śakra-devānāṃ Indra)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라 하시고, 만일 아수라가 도리천(忉利天)과 더불어 공투(共鬪)하고자 할 때, 반야바라밀을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로 칭명하면 아수라의 惡心이 滅한다.” 하였다. 따라서 “般若波羅蜜 是大明呪 般若波羅蜜 是無上呪 ... 是無等等呪”라 하고, 과거 미래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이 呪로 말미암아 阿褥多羅 三藐 三菩提를 얻었고 얻을 것이라 하였으며, 善男子‧善女人이 ‘誦念般若波羅蜜하면 現世福德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毒不能傷 火不能燒 終不橫死하며, “若官事起에 官事卽滅” 이라고 한 것은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의 稱名觀音과 매우 유사한 내용으로 전조(前兆, omen) 라고 볼 수 있다. 이 ‘無上‧ 無等等의 般若呪’는 대승보살의 심오한 관문을 ‘稱名三昧’를 통해 민중신앙화한 대중적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관자재보살은 深般若를 성취한 모범적 표상으로 나타날 뿐 그 신앙적 구조는 이 경의 총결분(總結分)인 “이 까닭에 반야바라밀다는 이것이 큰 신기로운 주며, 큰 밝은 주며, 위없는 주며, 등에 다시 등 없는 주임을 알라. 능히 일체 고를 없애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기에 짐짓 반야바라밀다주를 설하노니 이르되,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Ⅲ. 華嚴經說上의 觀音信仰

 

 

『화엄경』은 매우 방대한 문헌으로서 본래는 독립적으로 유통되던 여러 經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스끄리뜨 본으로 현존하는 부분은 두 개의 품(品)인데, 그 중하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보살도를 10단계로 서술한 『十地經, Daśabhūmika-sūtra』이고, 다른 하나는 『화엄경』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입법계품, Gaṇḍavyūha-sūtra」이다.

 

『십지경』은 보살이 서원을 세우고부터 갖가지 보살행을 실천하여 佛位에 이르기까지를 십지, 즉 10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十地는 옛 佛傳에 설해져 있던 것을 채용하여 구성한 것이다. 前六地 에서는 각각 육바라밀을 행하고, 제 6 現前地에서 반야바라밀에 의해 연기설을 唯心으로 관하여 깨우친다. 제 7 遠行地에서 보살은 성문 등의 二乘을 遠離하며, 제 8 不動地 이후 佛을 대신하여 중생제도에 힘쓴다. 제 7지 이상은 각각 方便‧願‧力‧智의 바라밀을 행하며, 이를 모두 합하여 10바라밀이라 한다.

 

『입법계품』은 善財童子의 구도이야기다. 동자는 문수보살의 권유로 갖가지 직업의 사람들을 찾아 가르침을 얻고, 최후로 보현보살 아래에서 깨달음에 들어간다. ‘法界’는 법의 본질, 진리로서, 入法界는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경』은 그 교리를 모두 10항목씩 정리한 것에 그 특색이 있다.

 

『화엄경』에는 漢譯으로 40卷本, 60卷本, 80卷本의 3종이 있으나 중국에서는 5세기(421 A.D.)에 佛馱跋陀羅(Buddhabhadra, 359-429)에 의하여 한역하여 34품⦁60권본의 『대방광불화엄경, Mahāvaipulya-Buddha-avataṁsaka-sūtra』이 가장 널리 사용되어 왔다. 『화엄경』은 그 후 實叉難陀(Śikṣānanda)가 7세기 말엽(699A.D.)에 다시 한역하여 39품⦁80권이 되었다. 실차난타의 한역은 불타발타라의 한역보다 약 10분의 1가량이 더 많다. 이러한 사실은 대승 경전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교정과 증광, 축약을 거듭했음을 보여 준다. 현재의 『화엄경』은 편집되었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의 한역 別行經 等이 있는데, 그 중 般若多羅(Prājṅātāra)譯 40권본인 『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가장 자세한 品名의 번역이다.

 

이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에서는 선재동자가 문수사리의 지시에 따라 53선지식을 두루 만나서 問法하게 되는데, 관자재보살도 그 선지식들 중의 한분으로 등장하여 法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의하면, 관자재보살은 보타낙가산에 상주하면서 大悲의 法門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險道 ‧ 熱惱 ‧ 愚癡 ‧ 繫縛 ‧ 殺害 ‧ 貧窮 ‧ 不活 ‧ 惡名 등의 모든 공포를 벗어나게 하고자 일체 중생의 等身을 나투어 여러 가지의 방편으로 그 所應에 따라 구제한다는 것이다. 이 품에서는 선재동자가 남방 補怛洛迦(Potalaka)山에 이르러서 觀自在菩薩(Avalokiteśvara)을 參禮하고서 ‘菩薩大悲速疾行解脫門(mahā-karuṇāvilamba-bodhi

-sattva-caryā-mukha)’의 法門을 듣는다고 설하고 있다.『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언급되지 않은 관자재보살의 住處가 南方의 補怛洛迦山이라고 다음과 같이 나온다.

 

 

於此南方 有山 名補怛洛迦 彼有菩薩 名觀自在

 

 

이 補怛洛迦山은 印度 南海의 섬으로서 기후가 좋아 꽃과 나무가 많고 樹林이 울창한 산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 『화엄경』說에 의하여 관음의 此土住處(常住 根本道場)가 補怛洛迦山으로 밝혀지고 따라서 觀音道場(住處)신앙도 생겨나게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唐代에 번역된 80華嚴과 40華嚴에는 이 산명이 補怛洛迦山으로 되어 있어서, 후대에 오면서 觀音住處인 것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華嚴의 法界에 들어와 있는 관자재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자신이 성취한 菩薩大悲(速疾) 解脫門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하여 주고 있다.

 

 

나는 이 菩薩大悲行門으로 평등히 일체중생을 교화하되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나니, 善男子여, 나 또한 이 大悲行門에 의해서 항상 一切如來所에 있게 되며, 또 널리 일체중생 앞에 나타난다. 나는 布施‧愛語‧利行‧同事로써 중생을 섭취(攝取)한다. 或 色身을 나투어 중생을 섭취하며, 或 種種不思議 光明網으로 중생을 섭취하며, 或 音聲으로써 或 威儀로써 或 說法으로써 또는 神變을 나투어 그 마음을 깨닫게 하며, 或은 同類의 形으로 化現하여 그와 함께 共居하면서 성숙케 한다.

 

 

이 품에서는 無上正等正覺菩提心을 발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순례하여 보살도를 성취해 가는 과정인데, 관자재보살은 第 28번째 善知識으로 자신이 이미 성취한 보살도로써 가르치고 있다. 이 經文에서는 관자재보살이 이 大悲行門을 수행한 것은 항상 一切衆生救護를 願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어서 經文에서는 그 救護의 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險道의 공포로부터, 熱惱의 공포, 迷惑의 공포, 繫縛의 공포, 殺害의 공포, 貧窮, 不治, 惡名, 於死, 大衆, 惡趣, 黑闇, 遷移, 愛別, 怨會, 逼迫身, 逼迫心과 일체 憂悲 等의 공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공포를 消滅시켜주기 위하여 이 大悲行門을 수행하였다.

 

 

 

위에서 설한 내용은 生老病死, 憂悲苦惱, 愛別離苦, 怨憎會苦 등 중생의 정신적 고통과 자연이 주는 고통(險道‧熱惱), 사회인으로서 겪는 고통(繫縛‧殺害‧惡名,大衆 等), 경제적 고통(貧窮, 不治 等) 등 중생의 구체적 고통의 상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 구제의 방편에 있어서도, 중생을 수순하여 “나를 생각하거나 나의 이름을 부르거나, 나의 이름을 부르거나, 나를 보는 이 모두 일체의 두려움을 여의게 하고는 다시 그들로 하여금 阿褥多羅三藐三菩提 心을 발하여 영원히 물러서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

 

「입법계품」에서는 관자재보살이 갖는 선지식으로서의 역할로 인해, 선재동자에게 보살도를 가르치고, 世間의 현실 구제상에 머물지 않고, 중생의 영원한 해탈을 발원하는 관자재보살의 미래지향적인 大悲가 돋보인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의 중심내용이 發菩提心과 菩薩道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화엄경』의 관자재보살은 세간적 고통의 구제는 물론 久遠한 解脫境인 法界에로의 안내자(善知識)가 되어 一切衆生으로 하여금 法界의 無碍한 주인이 되게 한다.

 

 

 

 

Ⅳ. 法華經說上의 觀音信仰

 

 

『법화경』의 원명(原名)은 산스끄리뜨어로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이다. 이것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서진(西晉)의 축법호(竺法護, 231-308)는 ‘Saddharma’를 ‘正法’이라는 의미로 번역(286)했고, 후진(後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 343-413)은 ‘妙法’이라고 번역(406)했다. 또 ‘puṇḍarīka’는 '백련화(白蓮華)'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흰 연꽃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법화경』의 원제(原題)에 대하여 축법호는 『正法華經』10권 27품으로, 구마라집은『妙法蓮華經』7권 28품으로 번역하였다. 한역으로서는 구마라집譯의 『묘법연화경』이 표준시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통용되고 있는 『법화경』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다. 또 다른 하나는 훨씬 나중인 601년에 사나굴다(闍那崛多)와 달마급다(達磨笈多)가 공역한 『첨품묘법연화경(添品妙法蓮華經)』이다. 중국에 전해진 『법화경』은 여섯 번이나 한역되었으나 이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위에서 기술한 세 종류가 현존하고 있다.

 

『법화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으로서 초기불교와 부파불교 그리고 초기 대승불교로 이어지는 사상체계를 결론지은 초대승사상(超大乘思想)이다. 讚佛의 信仰과 佛塔崇拜⦁經典受持功德 等 초기대승불교 흥기의 信仰的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채, 一乘(ekayāna) 혹은 一佛乘을 창도한 『법화경』은 觀音所依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現傳하는 관음신앙의 자료를 통해서 중국에 관음신앙이 비롯된 것은 축법호(231-308)가 『正法華經』을 번역(286)하고 부터라고 한다. 이 『정법화경』은 나중에 구마라집(344-413)에 의해 번역된 현행 『묘법연화경』 7권의 異譯이므로 그 내용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묘법연화경』에는 2末卷인 7卷에 「觀世音菩薩普門品」을 品數로는 25번째에 담겨 있고, 『정법화경』에서는 末卷인 제 23품으로는 「光世音普門品」을 수록하고 있다. ‘관세음(觀世音)’과 ‘광세음(光世音)’이라는 보살명(菩薩名)의 첫글자가 다를 뿐 品名도 普門品이 같고 그 經說 내용도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중국의 초기 관음신앙은 『정법화경』의 「광세음보문품」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관세음신앙’이 아니라 ‘광세음신앙’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정법화경』이 이미 번역,流布되어 있었지만 본격적인 관음신앙은 구마라집(344-413)이 번역(406)한 『묘법연화경』이후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관음신앙은 구마라집역에 의해서 ‘觀世音’이라는 菩薩이름이 비로소 써진 후부터 보급이 더욱 속도를 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은 菩薩이름이 ‘光’字가 ‘觀’字로 바뀐 것 뿐이지, 그 經說의 내용이나 신앙의 성격은 동일하다. 다만 구마라집譯이 譯語가 유창하고 중국사회에 流通하기 쉽도록 되어 있어서 크게 관음신앙이 홍포되었다. 따라서 「光世音普門品」은 그 그늘에 가리워져서 그에 의한 신앙은 저절로 觀世音菩薩쪽에 흡수되어 버렸다고 볼 수가 있다. 觀音의 漢譯名은 竺法護에 의해 ‘光世音’으로 번역되어 ‘救世利生’의 大悲菩薩로 신앙받아 오다가 구마라집에 의해 ‘觀世音’으로 번역되었으며, 다시 唐의 玄奘(602-664)에 의해서 ‘觀自在’로 번역되었다.

 

오늘까지도 佛子들의 心誦經으로 되어있는 般若心經(玄奘譯)은 그 첫머리가 ‘觀自在菩薩’로 시작된다. 그런데도 정착신앙으로는 觀自在菩薩보다 ‘觀世音菩薩’로 ‘稱念’이 일반화되어있다. 그래서 오늘날도 ‘觀自在’신앙이라 하지 않고 ‘觀世音’ 신앙으로 통칭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구마라집역의 普門品을 중심으로 하는 ‘관세음신앙’이 그만큼 佛子들의 마음에 깊고도 널리 자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신앙의 사조가 우리나라(고구려⦁백제⦁신라)에 傳來되어 오늘날 까지도 유포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도 고찰한 바와 같이 佛菩薩 等의 名號와 般若波羅蜜 等의 이름을 부르는 ‘稱名’사상을 菩薩道의 주요한 방편(upāya)으로 받아들이고, 大乘思想을 대중화한 것은 초기 대승불교의 반야경전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용수(A.D. 150-250)의 『十住毘婆沙論』卷 第 5에서는 菩薩이 쉽고 빠르게 不退轉位에 오르고, 阿縟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룰 수 있기 위해서 易行道를 說한다고 하면서, 佛菩薩의 名號를 稱念하는 易行方便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이러한 대승보살로서 중생의 가장 原初的이며 보편적인 상응의 매체 즉 특수 다양한 異類들의 모든 소리(音聲)를 耳根의 神通力으로 관찰하며 無不得自在로히 구제함의 그 相應을 稱其名號로 易行의 門을 열어놓았다.

 

佛菩薩의 名號들은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앙적 특징과 고유한 德相 또는 구제의 영역이나 方便등을 함축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大乘義章』에서는 “體를 나타내는 것은 ‘名’이 되고, 德을 상징하는 것을 ‘稱’이라”고 하였다. 또 『華嚴經探玄記』第四에서도 “體를 부르는 것은 ‘名’이 되고, 德을 상징하는 것은 ‘號’가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一心으로 특정의 ‘名號’를 부르거나 思惟記憶 하면 災難 또는 罪障을 소멸하고 해탈하게 되며, 또 往生할 수 있는 실천의 방편이 된다는 것이다.

 

佛菩薩 등의 名號를 부르는 稱名思想은 초기불교의 阿含經 類에서 처음 나타나 있다. 增一阿含經 卷 47에 “모두 南無佛하고 稱하면 釋師最勝者가 능히 安隱을 베풀어 모든 苦惱를 제거케 한다.” 고 하였고, 雜阿含經 第47에서 “세존을 따라 듣고 稱名祝願의 인연을 가져 모두 천상에 태어났다.”고 하였다. 초기 불교에서는 출가자들에게 四諦⦁十二緣起 등의 敎相을 베풀어 ‘阿羅漢’果를 얻어 해탈하게 하는 반면, 재가자들에겐 布施와 持戒를 통하여 세속적인 功德(puṇya)을 얻어 '生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阿含에 있어서 '南無思想'은 在家者들에겐 ‘生天’, 出家者에게는 涅槃, 즉 阿羅漢果를 얻는다는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南無(歸依)의 稱名’, 稱佛菩薩名의 신앙적 방편을 적극 수용하여 그 꽃을 피운 것은 초기 대승의 『반야경』 等에서이다. 초기 대승의 『반야경』類에서는 佛菩薩 等의 名號와 般若波羅蜜 等의 이름을 부르는 稱名을 菩薩道의 주요한 방편으로 받아들여 대중화시켰다. 즉 大乘에 있어서는 稱念의 方便이 易行門이라 하여 그 稱念의 結果가 小劣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어느 누구나 稱名의 門을 통해 해탈하고 無上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稱名 思想은 구마라집역 『妙法蓮華經』의 제 25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다.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관세음보살의 名號를 듣고 일심으로 칭명(稱名)하면, 관세음보살이 즉시에 그 音聲을 관하시어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위의 인용문에서 인지되는 바와 같이 관음신앙의 세간방편은 ‘一心稱名’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法華經』의 난해한 敎相이나, 그 외의 특별한 전문적 敎說이 없으며, 단지 ‘一心稱名’만으로도 관세음보살은 “卽是觀其音聲하고 皆得解脫”케 한다고 했다. 위에서 인용한 「관세음보살보문품」의 문장이 뜻하는 것은 『법화경』에 나타난 관음신앙의 실천체계인 칭명사상의 구조를 나타낸 것이고 또 불교의 해탈 二門 중에 타력문의 실천체계를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나타난 관음신앙의 실천체계인 칭명사상은 초기불교의 칭명과는 다르게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가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법화경』의 칭명사상은 힌두교의 성전인 『Bhagavadgītā』(이하 『Gītā』로 약칭함) 의 Bhakti-yoga의 영향으로 출가자나 재가자의 聖俗, 男女, 身分高下, 人種의 차별 없이 가장 보편적인 체계로 대승불교가 행해지는 곳에서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초월하여 폭 넓게 유포되었다.

 

위의 註38) 인용문에서 본 바와 같이 ‘音聲’이 救濟 또는 멸제의 방편이 되고 있다. 現存最古의 「관세음보살보문품」別行疏에는 天台智顗(558-592)의 『觀音玄義』이다. 지의의 『觀音玄義』에서는 “普門品이 感應으로서 宗을 삼는다.” 하였으니, 普門品의 신앙적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왜 音聲(소리)이 感應의 가장 보편적이고 世間的 敎化方便이었을까? 『法華經 玄義』卷 제 8에서는 敎說의 구체적 표현에 있어 稱名 等을 依持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佛‧菩薩이 聲을 그 기초로 하여 衆生을 敎化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聲音)는 뭇 중생의 가장 原初的인 相應의 매개체이다. 또한 소리(聲音)는 文字(知識)文化의 特權이 除外된 傳達 매체의 大衆性 혹은 普遍性을 갖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在世時 敎說이 佛音聲에 기초했고, 그 이후 結集(Saṁgῑti)에 의한 文字經典의 形成期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佛說의 傳承 또한 口傳의 傳統을 갖고 있어 音聲 敎體의 論議가 중심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法雲(465-527)의 『法華義記』卷 제 8에서는 “三業中 口業이 行하기 제일 쉬우며, 또한 사바세계는 음성으로써 佛事를 짓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의 三業을 모두 觀하고 있지만 중생의 편에 서서 ‘觀世音’이라는 名義를 갖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법화경』 卷 7 제 25「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다른 종교에서 기도의 대상이 되는 최고의 신과 같이 설하고 있다.

 

 

여러 가지 형상(種種形)으로 모든 국토에 노닐면서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반드시 一心으로 觀世音菩薩을 供養하여야만 한다.

 

 

불란서 신학자 랙탄티우스(Lactantius,270-340)는 종교가 ‘믿는자’와 '믿어지는 대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정의를 인용해 볼 때 衆生이 一心으로 관세음보살을 ‘稱名’하여 부르는 음성(音聲)에 의해, 感應道交 應現한다는 관세음보살 신앙은 타력적 신앙의 패러다임의 기본원형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兩 구절이 뜻하는 것은 각각 힌두교의 성전인 『기따(Gītā)』실천철학의 '信愛(Bhakti)'에, '恩寵(Prasāda)'에 유래한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불교도의 입장에서는 註 50는 기원자의 ‘관음기도 정근’에, 註 51은 ‘관세음보살의 加被’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원자가 얼마만큼 순수일념으로 ‘칭명’하느냐에 따라 그에 상응한 ‘加被’를 입을 수가 있다. 위에서 인용한 『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의 문장이 뜻하는 것은 『법화경』에 나타난 관음신앙의 실천체계인 칭명사상의 구조를 나타낸 것이고 또 불교의 해탈 二門 중에 타력문의 실천체계를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에서는 인간이 현실에서 겪게 되는 苦難의 여러 가지 諸相과 希望을 一切救濟하고 成就케 하여 解脫케 하는 관세음보살의 救濟相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보여지는 예는 인간의 현실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당면하는 상황을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설해지던 당시의 사회의 두드러진 災難을 열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事故와 災難이 오늘날의 현대사회 우리 주변에서도 不斷히 발생하고 있다.

 

『觀音義蔬』는 여러 가지 苦難의 諸相을 다음과 같이 三分하여 해석하고 있다.

 

 

火⦁水⦁羅刹⦁刀杖⦁鬼⦁枷鏁⦁怨賊의 七難은 口機의 感應이라 하고, 貪⦁瞋⦁癡 三毒은 意業에 感應한 바이며, 求男求女의 希望을 성취시킨 것은 身業에 感應한 바이다.

 

 

관세음보살은 現實苦難의 衆生을 구제하는 것을 本願으로 하고 衆生의 苦惱를 없애 안락 시키기 위한 方便의 敎化相을 33應身으로 각기 差別한 變化의 몸을 나투어 一切衆生을 다음과 같이 구제한다 하였다.

 

 

佛身⦁辟支佛身⦁聲聞身⦁梵王身⦁帝釋身⦁自在天身⦁大自在天身⦁天大將軍身⦁毗沙門身⦁小王身⦁長者身⦁居士身⦁宰官身⦁婆羅門身⦁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長者⦁居士⦁宰官⦁婆羅門婦女神⦁童男⦁童女身⦁天⦁龍⦁夜叉⦁乾達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喉羅伽⦁人非人⦁執金剛神.

 

 

이와 같은 관세음보살의 33應身은 무애자재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宇宙에 存在하고 一切生命의 實相을 설명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세음보살의 무한한 능력은 종교적 신앙이 되고 또한 구원을 약속받는 세계라 할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으로 열려있는 완전무한한 門 즉 普門(samanta-mukha)示現해서 衆生을 敎化하는 것은 관음사상이 처음이다.

 

관세음보살은 示現한 뜻이 衆生苦惱의 現場에 있다는 것이다. 本 經文에서의 관세음보살은 자연환경이 가져다주는 物理的 災難과 社會의 구조적인 죄악과 모순, 物質所有의 경제적 마찰, 그리고 인간의 生得的 苦痛인 三毒 等 衆生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모든 고난을 해탈시키고, 나아가 지혜와 복덕으로 충만한 미래를 희망케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思潮는 비쉬누(Viṣṇu)신의 化身사상과 매우 유사한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법화경』의 梵本의 교정과 영역에 종사했던 和蘭의 H. Kern은 『법화경』의 관세음보살은 『Gītā』의 Viṣṇu신과 유사함을 발견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Eliot도 그의 『Hinduism&Buddhism』에서 H. Kern이 주장한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에서의 관세음보살은 초기대승보살의 ‘學般若’의 不退轉位 等 大乘을 익히고 完成해 가던 利他發願 단계를 벗어나, 완벽한 利他의 化身으로, 관음신앙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Ⅴ. 淨土經說上의 觀音信仰

 

 

깨달음을 그 보편적 목적으로 했던 초기 대승불교도 諸佛‧菩薩들에 대한 信仰이 出現됨에 따라 새로운 信仰의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諸佛의 因緣土인 佛國土說과 그 淨土에 가서 出生하고자 하는 本願과 往生思想이다. 그 대표적인 佛國土가 極樂 곧 淨土이며, 그 極樂世界와 往生을 說한 經典이 淨土係 경전들이다. 정토교에서는 ‘淨土三部經’이 말해지는데, 이것은 『무량수경』2권과 『관무량수경』1권, 『아미타경』1권이다.

脇侍로서 觀音을 詳述한 것은 『觀無量壽經』이다. 『관무량수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대세지보살과 함께 一佛 二菩薩, 卽 淨土三尊의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관음신앙이 정토사상에 의해 더욱 고무된 것은 往生의 方便(upāya)이 易行道인 念佛門이기 때문이다.

 

淨土經典인 『無量壽經, Sukhāvatīvyūha』卷 下에서는 현실의 괴로움을 생생하게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부자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돈(錢)과 재물(財物)에 눈이 어두워 있다. 그래서 걱정이 떠날 날이 없다. 불안 끝에 방황하고 .... 욕심에 쫓기느라 조금도 마음 편할 겨를이 없다.

 

또한 『無量壽經』卷 下에서는 “무릇 천인이나 인간을 비롯하여 미물, 곤충에 이르기 까지 모두 여러 가지 악한 일을 하려고 한다.”는 등 五惡을 들어 중생에게 괴로움이 내재하고 있음을 敎示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무량수경』은 現實의 괴로움을 파악하여 어떻게 극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관세음보살은 現實苦難의 衆生을 구제하는 것을 本願으로 하고 衆生의 苦惱를 없애 안락 시키고자 하는데에 커다란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희망의 빛을 던져 주는 내용이 『관무량수경』에서 다음과 같이 敎示하고 있다.

 

 

蓮華 속에서 12大劫을 채우면 蓮花가 피고, 꽃이 필 때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 곳에 이르러 大悲의 음성으로 實相을 설해 罪法을 멸해 주리라. 그러면 그것을 듣고 歡喜하여 菩提의 마음을 일으키리라.

 

 

이 觀을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재앙을 만나지 않고 온갖 업장을 깨끗이 무량겁의 생사 중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보살의 이름만 들어도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인데 하물며 그 모습을 똑똑히 관하는데 있어서랴.

 

위와 같이 관세음보살은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멸하여 주는 大慈大悲의 보살이며, 불교가 자비의 종교임을 보여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慈悲를 본체로 하고 현세의 拔苦與樂을 서원으로 하는 관세음보살은 우리 衆生들의 一心稱名에 응하여 구제하기를 그치지 않는 보살인 것이다. 그래서 『관무량수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稱念을 제시하고 있다.

 

 

上品上生人은 復有三種衆生이 當得往生하리니 何等爲三고, 一者는 慈心不殺하여 具諸戒行이요, 二者는 讀誦大乘方等經典이요, 三者는 修行六念하고, 廻向發願하여 生彼佛國함이다. 見此功德하여 稱一日乃至七日하면 卽得往生하리니 生彼國時에 此人精進勇猛故로 阿彌陀如來가 與觀世音菩薩 及大勢至와 無數化佛과 百千比丘인 聲聞大衆과 無量諸天과 七寶宮殿의 觀世音菩薩이 執金剛臺하고 與大勢至菩薩로 放大光明하여 照行者身하고 ... 如彈指頃에 往生彼國하나니 ... 光明寶林이 演說妙法하나니 聞己에 卽悟無生法忍하고 經須臾間 에 歷事諸佛호대, 次第受記하고 還至本國하여 得無量百千陀羅尼門 하나니, 是名上品上生者라.

 

 

위의 인용문에서 上品上生者는 一日乃至 七日의 稱念으로도 無生法忍(anutpattikadharma

-kṣānti)을 얻고 授記(vyākaraṇa)까지 받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下品衆生은 觀音의 大乘說法을 듣고서야 無上道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念佛門이 易行門이나 관세음보살은 下品을 위해서 大乘経을 說해준다고 한다. 또 그 경전說上에 있어서는 소리로만 만날 수 있었던 自證의 境界에 極相의 莊嚴을 施設하여 佛國土를 常設하고 눈으로도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이 淨土經典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대세지보살과 함께 無量壽佛의 脇侍菩薩로 극락정토에 있으면서 此土衆生을 提接하고 있음을 설하고 있다.

 

 

 

 

Ⅵ. 太虛大宗師의 20세기 한국불교 혁신으로서의 佛入宗

 

 

太虛(1904-1979)大宗師는 ‘대한불교 관음종’의 전신인 佛入宗을 창종하여 불교혁신을 주창한 선각자였다. 태허조사가 불입종을 창종한 시대적‧사상적 배경은 1945년 8.15해방부터 1957년 一乘佛敎顯正會의 창립기간까지의 기간, 그리고 불입종이 창종 되었던 1965년 전후의 당시 불교계의 제반 동향 그 자체가 불입종 창종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배경을 알 수 있는 것은 태허조사의 입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조선시대의 불교, 일제하의 불교, 1945-1960년대의 불교계의 현실을 破邪顯正한 理念이 아래 글에서 나타난다.

 

 

회고컨대 실로 한국불교는 이조 500년의 기나긴 시간속에 억류와 배척으로 인하여 잔영화되었으며, 일제 36년 동안 일본불교의 상륙으로 혼돈을 거듭하였고 엄청난 박해를 감수해야만 하였다.

 

또한 해방과 동시에 밀어닥치는 이교도들의 기승을 받아 찌들고 초토화된 와중에서 정화라는 미명하에 극을 달리는 자체의 분쟁으로 새 시대의 감각과 역사의 조류에서 낙오된 채 기운을 차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하에서도 분명한 것은 흩어진 참행자들의 뜻에 의하여 불교중흥의 헌신적인 노력이 역사와 사회의 요청으로 태동되기 시작하였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불타의 정법(正法) 교화기관으로써 교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 놓은 것이 다름 아닌 본 불입종인 것이다.

 

불입종은 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르는 한국불교의 사명감과 호국의 사도로써 낡고 병들은 이 나라 불교계의 망집을 깨고, 불타의 일대사 인연법(一大事因緣法)을 오직 일불승법화문(一佛乘法華門)으로 개창하여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행원을 일으켰으며, 이에 나아가도록 걷고, 이에 합치도록 모이며, 이에 신명을 바칠 수 있도록 노력하여, 구경에는 이에 머물게 하고져 참 불교의 생활 신조를 선포하였단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 사람의 이념창출은 시대적‧사상적 배경에서 나온다. 태허대종사는 서울 출생으로 경성고등예비학원을 졸업하시고 ‘救世利生’의 願으로 일제하인 1930년(26세) 선암사로 입산 출가하여 당시 대강백인 김경운 회상에서 교학을 익혔다. 스님은 1년 후(1931년, 27세)에 일본 경응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한 후 중국의 유람을 거쳐 서울로 1940년 경에 돌아왔다고 한다. 태허스님은 해방과 함께 경기도 소요산 白雲庵에서 기도를 1946년에 시작하여 1949년 까지 3년 동안에 걸쳐서 천일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 기도의 공덕으로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1950년에 현재의 서울시 동대문구 숭인동에 妙覺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6.25 동란(1950년)때는 경북 상주 白華山에서 白華庵을 창건하고 그 절에서 5년간의 法華信仰硏究로 정진 수도 하셨다. 서울 탈환과 더불어 스님은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중생들의 ‘轉迷開悟’를 위하여 3년을 하루 같이 거리 說法을 하셨다고 한다. 1957년(53세)에는 새로운 불교의 지향을 위해 法華行者를 규합하여 한국불교의 敎宗的 뜻을 法華一門으로 그 맥을 세우는 작업으로 一乘佛敎顯正會를 창도하시어 회장에 머물면서 새로운

法華門을 개설할 뜻을 세우셨다. 마침내 스님은 1965년(61세) 12월 5일에 새로운 불교운동에 대한 원력을 구현하기 위해 대한불교 불입종을 창종하셨다.

 

불입종은 「佛之知見 開‧示‧悟‧入 」의 法華經上의 一佛乘 行願思想을 宗旨로 삼았다. 스님께서는 종도들에게 부처를 생각하되 안목이 되게 하고, 불법을 말하되 등불이 되게 하며, 불교를 수행하되 길잡이로서 겨레를 위하여야 된다는 뚜렸 하고 확고한 행원사상을 설하셨다고 한다.

 

태허대종사는 ‘一佛乘行願思想’으로 그 당시 불교 현실의 모순, 문제점을 破邪顯正하려고 하였다. 그러면 그 당시 불교계의 문제점을 김광식의 견해를 통해서 알아본다.

 

 

- 정화운동에서 불교적인 방법보다는 공권력에 의존

- 해결 방법에 폭력이 등장

- 자주성 상실(사법부에 의존, 재판 속출)

- 승려의 정체성 논란(대처승)

- 승려의 자질 문제(급조승, 행정승) 대두

- 선 우선주의, 수좌 중심주의 팽배

- 교학불교의 후퇴

- 신도의 배제, 사부대중의 후퇴

- 대처승과 연계된 불교문화(염불, 의식, 포교사, 법사, 불교미술 등)의 퇴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태허대종사의 성찰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즉 변증법의 회통으로 불입종의 대두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태허대종사는 「一佛乘行願思想」을 종도들에게 어떻게 교육시켰는가를 『佛宗大意』에서 그 내용을 알아보자.

 

 

겨레를 위하여 눈이 되겠다.

겨레를 위하여 등불이 되겠다.

겨레를 위하여 길잡이가 되겠다.

 

이는 불입종의 종도들의 행원(行願)인 동시에 다생다겁의 인행(因行)으로서 부처가 될 성종(聖種)을 육성하여 부처를 이룰 혁범성성(革凡成聖)을 궁극의 목적으로 우선 우리 민족이 다 같이 부처님 이름아래 모이게 하여 원력(願力)과 법력(法力)과 불력(佛力)으로 부사의(不思議)의 묘익(妙益)을 받아 모든 사람의 눈이 되고 등불이 되어 길잡이로서 한사람이라도 남김없이 법화묘리(法華妙理)의 지상극락을 누리고자 함이 석가세존의 사도(使徒)로서 원행을 닦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불교의 정수를 지귀(至貴), 지요(至要)하게 파악해 나가는 선봉장이 「불입종도」의 사명인 것이다.

 

 

태허대종사는 불입종의 정체성으로 겨레의 불교를 주창하였다. 겨레라는 개념은 중생을 재해석한 태허의 한국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허의 겨레관은 개인과 국가와의 연관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국가(國家)가 천하를 도외시(度外視)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개인 <국민>은 결코 국가를 떠날 수 없다.

 

즉 개인(個人)의 성불(成佛)을 쌓아서 국가의 성불로 하는 것이다. 국가(國家)의 성불(成佛)을 기하는 이유(理由)는 기필코 천하(天下)의 도의(道義)안에 통일(統一)하여 진리정도(眞理正道)의 실현경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함이 불종(佛宗)의 개삼현일(開三顯一)의 파사현정(破邪顯正)주의이며 행지행원(行持行願)인 것이다.

 

여기에서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관점에서 겨레가 등장하였다. 이런 논지는 “사회와 중생을 떠나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 종교를 발생시킨 근원이 바로 중생이요, 사회이기 때문에 종교와 국가‧사회‧가정‧개인은 바로 하나인 것이다.” 스님은 자신과 국가와 불법이 불이(不二, advaita)로 보고 개인과 국가와의 연관성의 논지를 전개한 것이다.

 

이런 논지로 개인의 성불을 통해 국가의 성불(불국토실현)을 실현해야 한다는 佛入宗의 이념을 다음과 같이 주창하였다.

 

 

 

이에 나가도록 걷고

이에 합치도록 모이며

이에 안심되게 행하고

이에 머물도록 노력한다.

 

 

이것이 불종(佛宗)의 이념(理念)이며 이상(理想)이고 신앙(信仰)이라, 이 의의(意義)를 충족할 수 있게 법화경을 믿는다. 이 의의(意義)를 발휘할 수 있도록 행한다.

 

이것을 떠나서는 신앙(信仰)도 수행(修行)도 증오(證俉)도 성불(成佛)도 없다. 이 일대원(一大願)을 생명으로 하고 정신으로 한다. 이 활기정력(活氣精力)에 의하여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도(利道)하여 같은 동포를 구제(救濟)해야 한다. 자신은 어찌 되든지 불석신명(佛惜身命)으로 홍법망구(弘法忘軀)한다. 왜냐하면 나라를 떠나 국민이 없고 국민을 떠나 나라 없듯이 법화경을 떠나 우리들은 없다. 이 법화경 정신(精神), 이것이 우리들의 정신(精神)이다. 법화경의 목적이 곧 우리들의 목적(目的)이다.

 

 

태허조사는 위의 一大願을 생명으로 세상을 이도(利道)하여 동포를 구제해야 한다는 실천이념을 정립함으로써 종단 존립의 당위성을 설정했다. 태허조사는 佛宗의 三大誓願 즉 겨레를 위한 눈, 등불⦁길잡이를 3大 강령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이념의 배경은 『법화경』의 일불승(一佛乘)사상으로부터 유래되었음이 인지된다. 태허스님은 한국의 스님으로서 한국불교의 문화적⦁기반 위에서 수행하였다.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금강경』⦁『화엄경』⦁『법화경』등을 주요경전으로 수행 하고 있다. 이러한 경전을 통해서 수행한 후 스님은 『법화경』의 一佛乘사상에 경도되어 스님적으로 彩色되고 棈想된 것이 태허조사의 이념이다. 이런 논거를 방증할 수 있는 것이 『佛宗大意』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경전 가운데 최고위인 이 법화경은 또한 철학적 사상적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인생의 목표를 자상하게 가르키고 신앙태도의 새로운 면모를 밝힌 점으로 경(經)중에 제일이라 할 수 있는 반면 위의 논한 바 부처님의 출현하신 본회가 가장 잘 밝혀진 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태허대종사는 부처님의 知見을 증득케 하는 최상의 방편으로 법화의 神秘 神力을 나타내는 念誦呪力 ‘梵音’을 그대로 경창한다. “나모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南模薩達摩芬多利伽修陀羅; Namo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 그리고 "일할때나(行) 머물러 있을 때(坐), 쉴 때(住)나 잠잘 때와 몸이 불편할 때(臥) 항상 끊임없이 염송하여 믿는 마음을 차돌과 같이 다져야한다."고 주장하셨다. 다시 강조하시기를 '하나의 불심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는 길'은 오직 大悲神呪인 「나모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 뿐입니다." 고 주장하셨다. 그래서 불입종 종도대중의 신원(信願)은 「나모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를 염송하는 것이라고 설하셨다.

인도불교에서 해탈의 길은 自力의 門(聖道門)과 他力의 門(易行道)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태허대종사가 제시한 ‘나모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 念誦呪力은 他力의 門으로 인도불교의 수행법(Sādhana)인 ‘칭명’의 영향을 받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창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9년 1월에 불교재산 관리법이 폐지되면서 대한불교 불입종의 종명은 재단법인 대한불교 관음종으로 바뀌었다. 관음종의 소의경전과 이념 그리고 3대 강령은 불입종의 신앙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불입종은 법화대비주인 범음주력 「나모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만을 염송 한다면, 관음종은 ‘관세음보살’을 一心稱名과 念誦梵音을 그대로 공유 경창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도의 78%가 관세음보살을 一心稱名하는 信仰체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앞에서도 고찰한 바와 같이 『법화경』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타난 실천체계인 稱名의 구조는 초기불교의 칭명과는 다르게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가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법화경』의 관음신앙은 어느 누구나 신앙의 입문과 실천에 있어서 아주 쉬운 普遍性의 方便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승불교가 전하는 곳 마다 僧과 俗, 신분의 高下, 男女老少 관계없이 가장 보편적인 신앙의 하나로 자리 매김 될 수 있었다. 그러한 전통이 한국불교에 면면이 이어져 오늘 날 재단법인 대한불교 관음종은 한국 현대 불교종단의 중심부에 있고, 교세가 5대종단의 위상을 갖고 있다.

 

 

 

 

Ⅶ. 맺음말

 

 

본문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관음신앙은 어느 누구나 신앙의 입문과 실천에 있어서 아주 쉬운 보편성의 방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승불교가 전하는 곳마다 가장 오랫동안 폭넓게 流布되어 오늘 날 한국불교의 어느 종단, 어느 佛敎人이라도 관음신앙을 受容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佛菩薩 등의 名號를 부르는 稱名思想은 우리가 一心으로 특정의 ‘名號’를 부르거나 思惟記憶하면 災難 또는 罪障을 소멸하고 해탈하게 된다고 하는 논리이다. 대승불교가 흥기하던 기원 1세기경 인도불교사에 나타난 수많은 보살들 중 관세음보살의 신앙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대승보살을 대표하는 신앙적인 상징이 되었다.

稱名思想은 초기 불교의 『增一阿含經』(『大正』2, 805c)과 『雜阿含經』(『大正』2, 340b)에 나타나 있다. 초기불전에서는 ‘칭명’하면 在家者들에겐 ‘生天’, 出家者들에게는 涅槃 즉 阿羅漢果를 얻는다는 교설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南無(歸依)의 稱名’ 稱佛菩薩名의 信仰的 方便을 적극 수용하여 그 꽃을 피운 것은 초기 대승의 『般若経』等 에서이다. 초기 대승의 반야경류에서는 佛菩薩 等의 명호와 ‘般若波羅蜜’ 等의 이름을 부르는 칭명을 菩薩道 주요한 方便으로 받아들여 대중화시켰다.

 

반야사상과 관음신앙과의 뚜렷한 상징적 만남은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에서 나타난다. 관음보살의 반야수행기록은 대품반야 연기품 초두에 多衆菩薩들 중 25번째의 보살로 관자재보살마하살이 등장한다. 현장신역 대품반야 第2‧3‧6‧10 會의 緣起品 중에는 “觀自在菩薩”로 表記되어 있고, 구마라집구역 마하반야바라밀다경 서품1에는 “觀世音菩薩”로 번역되어 있다. 보살을 수식하는 문구의 내용들은 신역 대품과 별 차이가 없다. 이상의 大品般若經 緣起品 또는 序品 그리고 勝天王般若經波羅蜜經에서는 觀音은 多衆菩薩들 중의 하나일 뿐이며, 특별한 신앙적 특징이나 지위를 갖지 못했다. 초기 대승경전으로서의 반야경에 등장한 보살들은 學 般若行, 즉 6바라밀 중 지혜(반야) 바라밀을 수행하는 空의 실천자로서 나타나고 있다.

 

『화엄경』의 관음신앙은 제 25「입법계품, Gaṇḍavyūha-sūtra」에 나타난다. 「입법계품」의 관세음보살은 第 28번째 선지식으로 세간적 고통의 구제는 물론 久遠한 解脫境인 法界 에로의 안내자가 되어 一切衆生으로 하여금 法界의 無碍한 주인이 되게 한다고 한다.

 

『법화경』의 관음신앙은 제 25「관세음보살보문품」에 나타나 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의 관세음보살은 초기 대승보살의 ‘學般若’의 不退轉位 等 大乘을 익히고 完成해가던 利他發願에 단계를 벗어나 완벽한 利他의 化身으로 관음신앙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淨土經典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대세지보살과 함께 阿彌陀佛의 脇侍菩薩로 극락정토에 있으면서 此土衆生을 提接하고 있음을 설하고 있다. 이런 칭명사상은 淨土經典에서 滿開되었다. 太虛(1904-1979)大宗師는 ‘대한불교 관음종’의 전신인 ‘佛入宗’을 창종하여 20세기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一佛乘行願思想’으로 破邪顯正한 선각자였다. 불입종을 창종할 당시 한국불교의 문제점에 대한 태허대종사의 성찰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변증법의 회통으로 불입종이 대두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태허대종사는 佛入宗의 三大誓願 즉 겨레를 위한 눈, 등불‧길잡이를 3大 강령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스님의 이념은 자신과 국가와 佛法이 不二(advaita)라는 체험의 예지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다. 물론 이런 사상의 배경은 『법화경』의 一佛乘사상으로부터 유래되었음이 인지된다.

 

태허종사는 '一佛乘行願'을 증득케 하는 최상의 방편으로 법화의 神秘 呪力을 나타내는 念誦呪力 ‘梵音’ "나모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南模薩達摩芬多利伽修陀羅)” 를 一心으로 염송할 것을 주장하셨다. 태허대종사가 제시한 이 念誦呪力은 인도불교의 수행법(Sādhana)인 ‘칭명’의 영향을 받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창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65년에 창종된 佛入宗은 1989년 1월에 불교재산관리법이 폐지되면서 종명이 재단법인 대한불교 관음종으로 바뀌었다. 관음종의 소의경전과 이념 그리고 3대 강령은 불입종의 신앙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관음종에서는 관세음보살을 一心稱名과 念誦梵音을 그대로 공유 경창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도의 78%가 관세음보살을 一心稱名하는 信仰체계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관음종은 ‘칭명’신앙체계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한국 현대 불교 종단의 중심부에 있고, 교세가 5대 종단의 위상을 갖고 있다.

 

 

 

 

 

[출처] 초기 대승경전의 관음신앙과 태허조사|작성자 만남 창조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