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2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가 / 신희정

수선님 2020. 8. 23. 11:56

불교평론[73호] 2018년 03월 15일 (목)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가 

-도덕 교육학자의 눈으로 본 붓다와 붓다의 교육

신희정  fusco@naver.com

 

1. 현대 교육에서 바라본 붓다의 교육 

 

붓다는 교육자인가 아닌가? 현대 교육자의 모습에 빗대어 붓다를 바라보면 붓다는 교육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고, 학문과 기예를 특정한 발달단계에 있는 대상에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교육 본위로 돌아가 교육의 의미를 고찰한 후 교육자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교육은 사람됨을 목적으로 하고, 인격을 도야하며 도덕적 향상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행위이다. 이와 같이 교육을 정의하고 나면 아마 동서고금에서 붓다 이상의 대교육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오랜 실천 수행 끝에 스스로 법(法, dhamma)을 깨달은 자요, 체화된 진리부터 나오는 권위로 대면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깨달음에 이른 방법과 동일한 길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 붓다의 면모는 붓다의 원음에 가장 가까운 초기경전에서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교육자로서 붓다의 면모를 떠올릴 수 있다면 현대 교육에서 바라본 붓다의 교육은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 현대사회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교육과정(敎育課程)에 의해 이루어진다. 광의의 개념어인 교육과정은 ‘교육 목표와 경험 혹은 내용, 방법, 평가를 체계적으로 조직한 교육 계획’으로 정의할 수 있다. 교육과정은 다시 국어, 도덕 등과 같은 교과별 교육과정으로 세분화된다. 여러 교과들의 교육과정의 성격, 목표, 내용, 방법 그리고 평가를 초기경전을 토대로 드러나는 붓다의 교육과 비교해보면, 붓다는 도덕교사로 상정할 수 있다.

 

나아가 붓다의 교육은 도덕 교육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도덕과는 바람직한 인성의 핵심인 도덕성 발달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정서적 · 사회적 건강을 제고함으로써 학교 인성 교육의 핵심 교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붓다의 교육에 있어 도덕 교육적 성격은 《담마빠다》에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모든 일은 마음이 먼저 가고 마음이 가장 중요하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Dh. 1) ……모든 악을 삼가고 선을 행하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모든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이다(Dh. 183). 

 

이 경구는 도덕적 삶에서 마음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붓다의 교육은 첫째 악행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여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 문제와 다름없다. 붓다는 도덕 교육에서 할 수 있는 마음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적 실천을 제공해준다.

 

불교 도덕 교육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박병기는 학교 도덕 교육에서 가르치는 전통 윤리사상이 공통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이와 같은 마음의 문제였고 나아가 마음공부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위한 수양론과 수행론임을 강조하였다. 동아시아 전통 문화권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교육의 본질은 학교 인성교육을 이끌어가는 도덕 교육을 떠나 있지 않다. 그 도덕 교육은 붓다가 여러 상대자와 나눈 대화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마음의 문제를 탐구하고 성찰한다.

 

도덕과 교육은 학생들의 도덕성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전제로 실시되고 있다. 도덕성 발달단계가 낮은 학생들에게는 때론 권위를 앞세워 도덕적 습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학생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따뜻한 관계 형성과 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욱 높은 단계의 학생들에게는 적극적인 도덕적 탐구와 성찰을 제안하고 실천적 대화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학생들이 상대방의 논리를 수용할 수 있는 지혜와 자비를 갖출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도반(道伴)으로서 선생이 필요하다.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붓다는 이와 같은 단계적 접근을 하는 현대 도덕과 교육과 유사한 목표와 방법을 승가(僧伽) 공동체 속에서 실천하는 선생이자 스승이었다. 선생으로서 붓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초기경전은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교육이론으로 활용하고자 할 때의 강점은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스승-제자-대화 내용-대화 방법’이 현대 도덕 교육을 가능하게 만드는 ‘교사-학생-교과 내용-교수 방법’과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초기경전은 서양의 소크라테스가 여러 상대자와 나눈 대화들을 기록한 플라톤의 《대화편》과 동일한 교육적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제 초기경전은 붓다의 《대화편》으로도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도덕교사로서 붓다를 상정하고, 초기경전에서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제도종교로서 불교와 이를 이끈 붓다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켜 보고자 한다. 이것을 위하여 현시대와 미래의 보다 좋은 삶을 위한 지혜의 스승으로서 붓다를 지금 여기에 불러내 보자. 붓다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괴로움을 지혜롭게 해결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혜안을 주는 인생 교사가 되어줄 것이다. 

 

2. 붓다는 무엇을 가르치고자 했는가 

 

고타마 붓다는 사문유관(四門遊觀) 후에 늙고, 병들고, 죽음의 문제에 의문을 품고 네 번째 문에서 본 수행자처럼 출가하였다. 인간이 태어나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와 같은 문제는 괴로움을 일으킨다. 인간의 본질적 문제인 괴로움은 붓다 자신의 인생 문제였다. 고타마 붓다는 극도의 고행 수행으로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고귀한 지혜와 탁월한 앎과 봄을 성취하지도 못했다. 고행을 버리고 난 고타마 붓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을 떠올려 본 붓다의 이 순간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른 각자(覺者)로서 붓다의 출현을 알리는 지점이다. 붓다는 괴로움에 대한 철저한 공부와 수행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태, 즉 완전한 행복[涅槃]에 이른다. 깨달음에 이른 붓다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중생들에게도 자신과 동일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붓다의 깨달음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만일 이 사실이 없다면 오늘날의 불교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내용이 붓다와의 많은 대화를 통하여 가르침을 주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 없이 불교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 교사로서 붓다와 그의 교육을 이해하는 데에서 붓다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분리해서 이해하면 안 된다.

 

그러나 그동안 불교계는 붓다의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주된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의 관심 정도에 의해 뜻하지 않게 분리된 붓다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붓다 당시에는 분리될 수 없는 문제였다. 붓다는 “처음도 훌륭하고 가운데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이 풍부하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침을 펴라. 오로지 깨끗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라고 전도 선언문에서 강조하였다. 또한 붓다는 법(法)을 가르치고자 할 때, 바른 법을 어지럽히고 사라지게 만드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그중 하나는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a)이 잘못 구성된 것과 뜻(attha)이 잘못 전달된 것이다. 붓다는 단어와 문장들이 잘못 구성될 때 뜻도 바르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하며 수행자들을 주의시켰다. 또한 법을 전달하고자 하는 자는 깨끗하고 청정한 삶을 통해 드러내어야 한다. 그 삶은 올바른 마음에서 비롯된 올바른 행위의 실천, 즉 ‘도덕함’의 그 자체이다.

 

이와 같이 붓다의 교육에서 깨달음과 가르침의 불이적(不二的) 관계를 이해하고 나면 ‘붓다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을까’에 대한 답으로서 논자가 제안하는 ‘붓다 대화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붓다 대화법이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른 스승 붓다가 자신과 동일한 깨달음이 제자들에게도 실현될 수 있도록 각각의 능력과 상황에 맞는 가르침을 펼친 붓다의 마음 그 자체이다. 붓다 대화법은 깨달음을 내용으로 하고, 가르침을 방법으로 한다. 붓다의 깨달음을 가르친다고 한다면 붓다 대화법을 통해서 깨달음이 드러나게 되므로 결국 붓다 대화법은 가르침이요 동시에 깨달음이다.

 

후대에 빚어진 붓다의 깨달음과 가르침의 분리 문제는 도덕 교육에서 도덕성의 ‘내용’과 ‘형식’의 이항 분리 문제와 비교하여 볼 수 있다. 박병기와 추병완에 의하면 도덕 교육은 한때 도덕 교육의 내용으로서 구체적인 덕을 강조하고 도덕적 습관과 행동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콜버그(L. Kohlberg)에 의해 도덕성은 칸트(I. Kant)와 롤스(J. Rawls) 등의 형식주의 윤리학을 근간으로 삼은 정의(justice) 문제에 대한 도덕적 추론 과정을 통해 발달한다는 주장과 함께 경험 연구가 뒷받침되었다.

 

콜버그의 도덕 추론은 불변의 단계(stage)를 통해 발달하는데, 이 단계는 추론의 구조 즉, 조직화된 사고체계의 형식이다. 콜버그는 도덕적 의사 결정의 과정 자체에 관심을 둔 도덕 교육을 주장하였다. 결국 도덕성의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여 각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두 입장은 인격의 중요성을 직시하면서 최근 통합적 도덕 교육에 합의하였다. 깨달음과 가르침이 처음부터 미분리된 붓다 대화법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통합은 가법적(假法的)이고 병치적인 통합에 불과하다. 붓다의 교육 즉, 붓다 대화법에서는 서양의 도덕 교육에서 제기되는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없다.

 

붓다의 대화편에서 표면적으로 빈번하게 드러나는 내용은 괴로움이다. 하지만 붓다는 괴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 아니라, 괴로움[苦, dukkha]이 주는 진리[=四聖諦]를 가르쳤다. 붓다는 괴로움을 배움 기제로 활용한 것이다. 괴로움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공통 요소이다. 붓다는 괴로움이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을 바른 앎[智, ñāṇa]과 봄[見, dassana]을 통하여 체득한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를 가르치고자 하였다. 붓다의 깨달음은 괴로움이라는 결과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인가,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과 같은 붓다도 피해갈 수 없는 자신의 괴로움과 절박하게 지속적으로 만나는 구도 과정에서 발견한 연기이다.

 

그리고 붓다는 그것을 가르쳤다. 정리해보면 붓다의 교육, 즉 붓다 대화법은 내용으로서 연기이면서 동시에 형식으로서 연기 또한 내용으로서 마음이면서 동시에 형식으로서 마음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붓다 대화법에서는 서양의 도덕 교육에서 제기되는 도덕성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이항대립의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붓다는 괴로움을 통해 나 자신과 만나고 이때 괴로움을 경험하는 나는 연기된 마음임을 알고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붓다는 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말했던 것이다. 도덕과 교육에서 바라볼 때 이 과정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괴로움을 도덕적 탐구 대상으로 삼는 ‘앎을 전제로 한 봄’으로서 도덕적 성찰과 다름없다. 도덕과 교육은 학생의 경험 세계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둘러싼 현상을 탐구하고 내면의 도덕성을 성찰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과정을 추구하는 ‘도덕함’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초기불교에서 붓다가 제안하는 ‘앎’과 ‘봄’은 도덕 교과의 내용이면서 공부 방법이기도 한 탐구와 성찰에 적용해볼 수 있다. 이때 봄에 치환한 성찰은 탐구보다 외연이 더 넓은 개념이 된다. 붓다의 대화편에서는 반드시 앎이 먼저이고 봄이 이어지는 순서로만 설해진다. 이를 활용한다면 그동안 도덕과 교육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도덕적 성찰은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 대화법은 도덕적 성찰 전통을 이끄는 스승의 면모와 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깨달은 붓다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에 도달한다. 붓다는 괴로움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진리의 매개로 삼고 올바른 삶을 실천하도록 하는 대화를 이끌었다. 붓다는 올바름과 올바른 삶을 대화 과정의 전면에 위시하기보다는 늘 행복과 평온함과 같은 심리적 이익을 중시하였고, 이것을 제자들에게 올바른 삶과 행동의 동기로 제안하였다. 그러므로 붓다가 강조하는 올바른 삶과 행동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한다. 붓다는 이러한 행복이 실현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도덕적 성찰을 통한 윤리 실천을 강조한다. 이때 필수적인 윤리 실천은 붓다의 독특한 사유인 무아(無我)를 이해하고 실천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탐구를 전제로 한 도덕적 성찰을 통해서 가능하다.

 

초기불교에서 붓다가 빈번하게 가르치고 있는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의 삼특상(三特相)은 가치와 당위의 문제가 얽혀 있는 인간의 실존적 삶을 대변하는 논증 구조이다.15) 이것은 무아에 대한 이해와 수행의 실천 윤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윤리적 선택을 고려한 붓다의 기획으로 볼 수 있다. 붓다는 괴로움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진리로 삼아 고통받는 인간의 존재를 직시하게 하였다.

 

붓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의미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게 하였다. 도덕적 성찰을 통한 무아의 이해와 실천은 탐진치(貪瞋癡)를 일으키는 갈애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마음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갈애는 고정불변의 상주하는 ‘나’가 실재한다고 착각하게 하여 집착하게 만들고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또한 붓다가 제안하는 방법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변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고통을 일으키는 갈애를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아를 스스로 포기하는 무아를 이해하고 실천 수행하는 것이다. 논자는 이러한 실천 윤리를 도덕적 성찰로 가능하다고 본다. 붓다는 고정불변의 실재하는 나를 포기함으로써 텅 비워진 그 자리는 서로 의지함에 의해서 존재하는 연기적 관계로 채워진다고 거듭 강조하여 가르쳤다. 

 

3. 붓다는 어떻게 가르쳤는가 

 

거론되는 문제에 따라, 대상과 장소에 따라, 상대자의 지적 수준 및 근기에 따라 알맞은 방법으로 자유자재하게 가르친 붓다의 대기설법(對機說法)은 교수(敎授)로서 일종의 예술에 가깝다. 초기불교의 많은 대화편을 통해 나타나는 붓다의 교수 형태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간관계를 기본 조건으로 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그것은 상황의 조건을 고려하는 붓다의 통찰에 의존한다. 함린(D. W. Hamlyn)은 교수(敎授)가 예술이라고 해도 그것을 구사하는 능력은 학습을 통하여 획득될 수 있고 또 획득되어야 할 능력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붓다 대화법을 이해하고 교육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물이 축적된 서양의 교육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 장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붓다 대화법을 내용과 방법 또는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은 좋지 않다. 김용표에 의하면 붓다의 교육체계에서 방법은 그 내용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역동적 상호연관성이 있다. 붓다의 사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방법만을 차용할 경우, 도덕 교육의 궁극적 목적인 성품 전환에 영향을 끼치는 데 한계가 있다. 붓다 대화법은 테크네(thechne)가 아닌 프락시스(praxis)로서 소크라테스 대화법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진정한 기독교인을 위한 교육을 고민했던 키르케고르(S. Kierkeggard)는 프락시스적 대화를 사용한 교사로서 소크라테스에 주목한다.

 

그가 소크라테스로부터 발견한 교육 방법은 ‘간접전달’이다. 간접전달은 무지를 가장한 소크라테스가 끊임없는 질문으로 학생들을 무지상태의 당혹함(aporia)에 빠지게 만드는 아이러니(eironeia)에서 차용한 아이디어이다. 아이러니와 간접전달의 공통적인 교육 원리는 교사의 지식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접전달로서 대화법은 학생들이 진정한 앎을 위하여 교사에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때 학생들은 교사의 태도에 상심하고 교사 또한 괴로워한다.

 

생로병사와 같은 피할 수 없는 괴로움[苦苦]을 겪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이 오면 일단 피하고 싶을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우리는 괴로움을 겪을 때 그것을 직시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를 원하고 아예 그 즐기기에 집착하고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고(苦, dukkha)는 성스러운 진리임[苦苦聖諦]’을 알게 해주고 고통의 생성과 소멸 과정에 작용하는 연기를 보도록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은 붓다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붓다의 가르침은 대화로써 완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자의 고통은 붓다에게 기대어 해소될 수 없고 스스로 그 소멸에 이르는 길, 즉 8정도를 닦아야 해소되기 때문이다.

 

붓다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이때 붓다의 교육 원리는 간접전달과 비교되거나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직접전달’로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붓다 대화법은 표면적으로는 직접전달이지만, 심층적으로는 간접전달이라는 이중구조를 띤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직접전달과 간접전달이라는 이중구조는 고(苦)를 통해 연기(緣起)라는 진리를 알고 보고 이를 실천하게 하려는 붓다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신심(信心)을 형성하는 종교적 신념 체계로만 받아들일 뿐 고통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게 하는 ‘설득’으로서 붓다 대화법을 생각하는 견해는 많지 않다. 고통은 ‘앎’과 ‘봄’의 대상이고, 그 앎과 봄이 탁월함에 이를 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자들이 앎과 봄의 탁월함에 이르도록 붓다는 공부하고 수행하기를 끊임없이 설득하였다. 그러므로 붓다 대화법은 교육적 전달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간접전달과 직접전달이라는 연기적 이중구조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실천 수행하기를 설득한 것이다.

 

붓다 대화법은 설득의 이중구조 속에서 교육적 참의미가 드러난다. 1차 설득은 완결된 가르침이 되는 ‘앎(ñāṇa)과 봄(dassana)의 탁월함’에 도달하기 위한 선정 수행으로 유도한다. 완결된 가르침은 실현된 가르침으로 곧 깨달음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붓다가 모든 대화 상대자에게 펼친 보편적 형태의 가르침이다. 보편적 가르침은 계행[戒]과 삼매[定]와 지혜[慧] 의미에 대하여 각각 설명하고 계행을 철저히 닦은 삼매, 삼매를 철저히 닦은 지혜, 지혜를 철저히 닦아야 하는 삼학(三學)의 마음계발로서 공부와 수행이다. 이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고 초기불교 대화편 전체에 흐르는 핵심적인 가르침이기에 대화 상대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반복’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완결된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실현되지는 못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본래 차별이 없어 평등하지만,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듣는 사람에게 제약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때문에 2차 설득이 발생한다. 이때 붓다는 제자의 능력과 때에 따라 적절한 표현과 다양한 방법으로 특수성을 띠는 가르침을 펼친다. 특수성을 발휘하는 붓다 대화법은 ‘대기설법(對機說法)’과 ‘차제설법(次第說法)’으로 나타난다. 동일한 내용이라도 질문, 비유, 과제 탐구, 무기(無記) 등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붓다의 가르침은 2차 설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차, 2차로 구분한 설득의 이중구조는 시간적이고 논리적인 구분이 아닌 이를 포함한 상호 조건에 따라 성립하고 발생하는 연기적 관계이다. 붓다의 대화는 일방적인 법의 공표를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고 늘 대상을 두고 행해졌다. 붓다의 가르침은 늘 그 대상이 할 수 있는 것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므로 붓다 대화법은 그 대화가 구현될 진리로서 법이 실현될 누군가가 있을 때만 의미가 있으므로 상대자와 제자들의 조건에 따라 성립하고 발생하는 설득이었다. 설득의 연기적 이중구조 관계는 교육 사태에서 보다 잘 규명된다. 교사 차원의 붓다는 설득으로서 ‘지혜[般若, ñāṇa]’와 ‘자비(慈悲, mettākaruṇā)’의 이중구조를 연기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무엇보다 붓다 대화법의 존재 의미와 실현은 대화 상대자로서 학생에 의해 결정된다. 상대방 없는 대화가 있을 수 없듯이 붓다 대화법도 그 법이 구현될 누군가가 있을 때만 법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학생 차원에서 붓다 대화법은 설득의 이중구조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아마도 학생 차원에서 붓다의 설득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면 붓다 대화법은 ‘이해의 차원’에 머물러 ‘체득의 차원’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고통과 감각적 즐거움에 매여 그것이 괴로움인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은 일차적으로 직접전달이어야 한다.

 

깨달음을 이룬 스승인 붓다의 차원에서 지혜와 자비는 완전한 깨달음 상태로 동일한 것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이 둘은 구분해서 다가온다. 학생 대부분은 붓다와의 대화 중에 자기 자신은 따로 전제해 두고 붓다의 가르침을 마치 괄호를 치는 것처럼 붓다의 대화 내용과 그것을 듣고 있는 자기 자신을 분리하게 된다. 그 순간에 개념과 사유, 분별에 익숙한 그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은 마음으로 마음이 전달된 지혜가 아닌 지식일 뿐이다. 이것은 죽은 가르침이다. 이럴 때 붓다는 이해의 차원에서 보편적인 가르침을 반복하고 동시에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체득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대기설법과 차제설법으로 더욱 친절하게 다가갔던 것이다.

 

결국, 붓다 대화법은 스승에게 의지해서 도달하는 진리가 아닌 ‘설득’의 연기적 이중구조로 된 미완성된 깨달음이다. 미완결적인 붓다 대화법은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모든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mā pamādattha jhāyatha)[DN. 16].”라는 붓다의 마지막 짧은 유훈을 제자들이 마음속에 새겨 불방일(不放逸) 정진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고 실현되는 깨달음이 된다. 

 

4.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경쟁과 그로 인한 갈등이 심한 사회는 도덕 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자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욕망 충족을 위해 치밀한 계산을 하게 된다. 욕망 충족을 위한 손익의 계산은 일견 도덕의 본질과 무관해 보일 수 있지만, 현대인의 삶에서 특정 선택의 순간들과 그에 수반되는 도덕적 실천 문제에서 손익의 계산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지 오래다. 타자와 어울려 살아가며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도록 하는 도덕 교육은 이러한 손익의 문제와 얽혀 더욱 실천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도덕적이면 손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도덕과 윤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자발적으로 찾지 못하는 형편이다. 더불어 사는 인간다움을 발휘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도덕 교육은 붓다의 교육과 다르지 않다. 붓다의 교육은 인간의 욕망이 향하는 파국적 선택을 막고 올바름의 실천을 통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이것은 교육내용으로서 깨달음과 교육방법으로서 가르침이 미분리된 붓다 대화법의 실천으로 가능할 것이다.

 

불교는 배움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 원리와 방안을 함의하고 있다. 박병기에 의하면 불교는 붓다나 그 아래 단계의 아라한과 보살이라는 이상적 인간상 속에서 자신들이 보편적 진리라고 믿는 다르마(dharma)가 실현될 수 있다. 또 누구나 그런 가능성을 믿는 것에서 시작해서 온전한 상태에 이르는 배움 과정 전체를 중시한다. 또는 이 인간상에 이르는 과정은 단순히 이론적 지향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영역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당위적 과제로서 수행론이자 공부론으로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앞서가는 사람이 스승이자 선생(先生)이지만, 도(道)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함께 도를 향해 가는 도반(道伴)이기도 하다.

 

결론 없는 결론으로 끝나는 소크라테스 대화법과 달리 붓다 대화법은 논리적으로 결론을 유도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화편에서 붓다의 가르침이 끝나면 제자들은 환희하며 기뻐한다. 이러한 차이는 배움과 가르침에서 궁극적 목적에 이르게 하는 다음과 같은 대화법의 단계 설정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소크라테스는 ‘앎→행’으로, 붓다는 ‘앎(ñāṇa)→봄(dassana)→행’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앎이 곧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인간 지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스승이었고, 앎과 행 사이를 방해하는 다른 심리적 기제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붓다는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괴로움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활용하여 배움과 가르침의 기회로 삼았다. 붓다는 괴로움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그 과정을 진리로써 아는 ‘앎’과, 이 과정을 방해하는 여러 심리적 요인들의 발생 과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봄’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앎과 봄’이라는 실천수행을 통해 성품 전환과 삶의 태도를 스스로 바꿀 수 있게 하였다. 붓다 대화법을 현대 교육에 적용한다면 물질적 좋음만을 위하여 맹목적으로 내달리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나친 경쟁 속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불만족에 의해 도주와 탈주를 일삼는 학생들이 스스로 합당한 선택을 하여 올바르고 행복한 삶에 이르도록 도와줄 수 있다.

 

또한 붓다 대화법은 마음발달의 통합적 도덕 교육이다. 붓다의 마음은 서양의 도덕 심리학이 분절적으로 밝힌 도덕적 인지, 정서, 동기 등과 같은 도덕성의 구성요소들을 통합한다. 또한 도덕성의 여러 구성 요소의 관계를 규명해준다. 다른 교과와 차별되면서 보다 올바른 인간의 정신 의식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도덕 교육은 마음과 논리가 통합된 마음발달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성찰하여 마음속에 일어나는 비윤리적인 악의 뿌리인 탐욕, 분노, 무명의 잠재적 경향을 스스로 뽑게 만드는 것이다. 즉, 덕 있는 행동 자체보다 덕 있는 성품을 기르는 것이다. 마음발달의 통합적 도덕 교육으로서 붓다 대화법은 학생들이 내면의 윤리적 성향 혹은 성품에 근거하여 자연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붓다의 계 · 정 · 혜 삼학을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마음발달에 근거한 통합적 도덕 교육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붓다 대화법은 감각적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끝자락에서 도덕적 탐구를 기반으로 하는 도덕적 성찰과 구체적인 실천수행 방법으로 도덕 교육을 뒷받침해줄 것이다. ■ 

 

 

 

신희정 

창원중앙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사. 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한국교원대학교 석 · 박사 과정 졸업. 주요 논문으로 〈초기불교 수행법의 도덕교육적 의의: 사띠(sati)수행을 중심으로〉(석사 논문), 〈중학교 도덕교과서의 불교서술 체재와 내용〉 〈초기경전에 나타난 ‘붓다 대화법’의 도덕교육적 함의〉(박사 논문)가 있으며, 불교 도덕교육론을 공부하고 이를 도덕교육에 적용하고 있음.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가/신희정

불교평론[73호] 2018년 03월 15일 (목) 붓다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가 -도덕 교육학자의 눈으로 본 붓다와 붓다의 교육 신희정 fusco@naver.com 1. 현대 교육에서 바라본 붓다의 교육 붓다는 교육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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