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2

진흙탕 위에 피어난 연꽃 사이버 불교의 미래

수선님 2020. 10. 11. 11:08

진흙탕 위에 피어난 연꽃


사이버 불교의 미래









전국 승가대학 학인논문 공모전에 제출함


















운 문 승 가 대 학   대 교 과 


운   성


2 0 0 5

 








 <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Ⅱ. 사이버 시대에 종교가 설 자리   ․ ․ ․ ․ ․ ․ ․ ․ ․ ․ ․ ․ ․ ․ ․ ․ ․ ․ ․ ․ ․ ․ ․ ․ ․ ․   3
  1. 사이버 시대의 도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
  2. 혼돈의 뒤안길에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


Ⅲ. 진흙탕 속에 피어난 연꽃, 사이버 불교     ․ ․ ․ ․ ․ ․ ․ ․ ․ ․ ․ ․ ․ ․ ․ ․ ․ ․ ․ ․  7
  1. 현대인의 종교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7
  2. 산사에 맡겨온 세상의 질문들  ․ ․ ․ ․ ․ ․ ․ ․ ․ ․ ․ ․ ․ ․ ․ ․ ․ ․ ․ ․ ․ ․ ․ ․ ․ ․   11
  3. 각 종교계의 대응실태 - 불교를 중심으로 타 종교와 비교분석  ․ ․ ․ ․  14
    (1) 타 종교계의 대응실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4
       1) 카톨릭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4
       2) 기독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4
       3) 원불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5
    (2) 불교계의 대응실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6
       1) 스님들의 정보화 인식에 대한 비판적 분석   ․ ․ ․ ․ ․ ․ ․ ․ ․ ․ ․ ․ ․ 16
       2) 불교계 사이버 포교의 현주소    ․ ․ ․ ․ ․ ․ ․ ․ ․ ․ ․ ․ ․ ․ ․ ․ ․ ․ ․ ․ ․ ․ 17
  4. 사이버 불교의 포교론적 함의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
    (1) 신 사이버 대중견성운동      ․ ․ ․ ․ ․ ․ ․ ․ ․ ․ ․ ․ ․ ․ ․ ․ ․ ․ ․ ․ ․ ․ ․ ․ ․ ․ 19
    (2) 인터넷 불교공동체의 필요성      ․ ․ ․ ․ ․ ․ ․ ․ ․ ․ ․ ․ ․ ․ ․ ․ ․ ․ ․ ․ ․ ․ ․ 20 
    (3) 네티즌과 불교사이트의 만남     ․ ․ ․ ․ ․ ․ ․ ․ ․ ․ ․ ․ ․ ․ ․ ․ ․ ․ ․ ․ ․ ․ ․  21
   
 (4) 사이버 불교 성공을 위한 제언   ․ ․ ․ ․ ․ ․ ․ ․ ․ ․ ․ ․ ․ ․ ․ ․ ․ ․ ․ ․ ․ ․ ․ 23

 

Ⅳ. 맺는 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5


참 고 문 헌







Ⅰ. 들어가는 말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친숙하기 그지없는 사이버(cyber)1)라는 용어가 민중들 사이의 생활용어로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990년대 중반부터이지만, 그 잠재력은 실로 폭발적이라 하겠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 심지어는 우리의 관심 주제인 종교와 정신의 분야까지도 이제  그 활동의 주무대를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실제 사이버 대학, 사이버 은행, 사이버 상거래, 사이버 민주주의, 사이버 패션, 사이버 교회와 법당 등에서 보듯, ‘사이버’는 더 이상 ‘가상의 공간’이라는 사전 상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접두어이자 엄연히 또 하나의 ‘생활공간’이 되고 있다. 거기다 각종 대화방, 뉴스 그룹, IRC(Internet Replay Chat) 채널, 인터넷 카페 및 동호회, 온라인 회의와 포럼 및 MUD(Multi-User Dungeon)게임2)을 통한 사회적 교류와 놀이문화의 증가는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공동체’를 형성시키고, 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밑바닥으로부터 혁명이 일어나고 있어, 이제 사이버 공간은  현대인들에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실존의 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세간계의 흐름에 비해 종교계, 특히 불교계의 정보화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인데, 아직도 일부 스님들 사이에는 인터넷 또는 사이버공간이라고 하면 단지 컴퓨터라는 기계 부속품들의 조합, 내지는 그것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이며, 특히 수행자들이 멀리해야 할 환의 세계, 가상의 허망한 공간이라는 선입견이 남아, 굳이 전자파를 맞아 가며 애써 시끄러운 세상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들이 뿌리 깊게 남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4년 간 운문승가대학 학인으로서, 운문사 홈페이지와 인터넷 카페 ‘운문에 구름 걷히면’을 운영하는 소임을 맡아, 3년간의 수습기간과 1년간의 정식소임 기간 동안 현재 불교계의 사이버 포교가 갖고 있는 밝고 어두운 양면을 두루 보면서 스님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포교현장에서 얼마나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급속히 변화해 가는 정보통신혁명의 뒤안길에서 세상의 속도감에 미처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해 사회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발 빠르게 그 물결에 겨우 자신을 편입시켰다 해도 근원적인 존재의 물음을 붙들고 사상적, 종교적 방황을 거듭하다 마지막으로 불교사이트를 만나게 된 사람들까지, 비록 눈앞에 마주 앉아 서로를 느낄 수는 없지만, 홈페이지라는 또 하나의‘도량’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각을 보며, 남녀노소, 빈부귀천, 일체의 관념을 뛰어넘어 궁극에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해탈의 삶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설사 ‘불교’를 입에 올리지 않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산사의 스님들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들을 분석해 보면 결국 ‘가장 불교적’인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특히 불교는 타 종교에 비해 정보화 인식과 종단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시대인들의 존재의 고통을 가장 명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희망을 가진 종교로 부각되고 있고, 실제 많은 이들이 갖가지 불교사이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불교사이트 방문자들의 기대와 열망에 비해 지금 불교계 사이버포교 현장의 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지난 세기 ‘물질’의 극점에서 신물을 느낀 사람들은 다시금 ‘정신’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고, ‘웰빙 신드롬’3)의 주역인 N세대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한꺼번에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방황하고 있다. 밤새워 컴퓨터 게임과 채팅으로 이 사이트와 저 사이트를 유영하다, 충혈된 눈으로 이른 새벽 PC방을 빠져나오는 네티즌들의 심리가 어디에 배경을 두고 있는 것인지, 단순한 비판을 쏟아 붓기 이전에 먼저 따뜻한 관심을 갖고 그들의 마음의 문제를 탐구해 볼 일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고, 현장에서 느낀 답답함을 단순히 토로하는 차원을 넘어, 불교정보의 수요자와 공급자의 상호관계를 각각의 관점에서 충분히 고려하고, 역사적 흐름 위에서 어느 한 쪽의 주장에 치우치지 않고 현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보고자 했으며, 이러한 고찰을 통해 문제해결의 중심에 서야 할 사부대중, 특히 스님들의 의식 전환에 관심을 기울였다. 종교, 특히 불교가 이 시대에 맡아야 할 몫을 제대로 찾아내려면 바로 이러한 시류(시류)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없이는 편협되거나 자칫 우리만의 잔치로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통신혁명이라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 자신들이기에, 현재진행형인 이 물결의 흐름을 단정지어 정의내리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또한 근거자료도 주로 설문조사 결과와 필자의 웹사이트 운영 경험에 의지하였는데, 시간 관계상 웹사이트 운영 현장의 정보 공급자(운영자)와 수요자(회원들)를 직접 만나 각 관점에 따라 조사해 볼 수 없어, 공인기관에서 이미 이루어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하고 거기에 필자의 주관적인 분석을 덧붙여 본 논제의 자료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점이 아쉽다.   

Ⅱ. 사이버 시대에 종교가 설 자리


  1. 사이버 시대의 도래
  인류는 농업혁명을 거쳐 수렵사회에서 농업사회로, 산업혁명을 거쳐 산업사회로, 그리고 이제 정보통신혁명을 거쳐 ‘정보화 사회’로 발전해 오면서, 각 시대마다 생산 토대, 즉 생산시설과 원자재의 구입, 생산 활동의 전개 및 상업의 형성 요소가 변화해 왔는데, 19세기 이전의 농경사회는 ‘토지’가, 19세기 말 산업사회는 ‘자본’이, 그리고 이제 정보화 사회는 바로 ‘정보’가 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바탕이 되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 내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되게 된다. 
 ‘정보’는 특정한 개인이나 그룹, 조직 등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행위를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지식의 부분집합4)으로서, 아직 평가되지 않은 단순한 여러 사실들에 불과한 데이터(data)를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공, 처리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정보는 가치판단이나 논리적인 일관성을 요구하지 않으며, 특히 0과 1의 이진법적 기호로 모든 것을 부호화시킨5) 코드화된 정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무한으로 증대시킬 수 있어 원본과 복제의 차이성이 사라지고, 시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워 과거 ․ 현재 ․ 미래가 따로 없어지는데, 정보를 생성, 가공, 전달, 이용 및 축적을 의식적으로 행하는 활동의 총체를 가리켜 ‘정보화’라 하고, 경제활동의 중심이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재화의 생산에서 ‘서비스나 정보, 지식’의 생산으로 이행된 사회를 가리켜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현실공간에 비해 정보를 동시다발적으로 무한히 넒은 지점까지 전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사회의 거의 모든 정보의 원천이 지금 컴퓨터 속으로 집적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중요한 삶의 요소인 컴퓨터를 소유하지 못하거나, 인터넷 공간에 자신의 전자주소(e-mail)를 가지지 않은 사람, 전자메일 등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능력이 없는 사람, 소위 ‘컴맹’은, 적어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내 집이 없는 사람 즉 '디지털 홈리스(digital homeless)'로 간주되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 인터넷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체세력을 가리켜 ‘네티즌’이라 부르는데, 대학문화 매거진 ‘씽굿(think good)’이 취업사이트 ‘파워잡(power job)’과 함께 지난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대학생 4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생 전자제품 보유현황’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이른바 ‘4PD족’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4P’란 핸드폰 · 컴퓨터 · MP3 · 프린터기의 4개의 ‘P’와 디지털카메라를 뜻하는 ‘D’가 합성된 말로서,  4PD족들은 단 1시간이라도 이 4PD와 떨어지면 생활이 멈추어 버릴 만큼, 마치 어느 노트북 광고에서처럼 무인도에 떨어져도 이 물건들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소위 디지털 세대들이다. 이들은 ‘N세대’ 혹은 ‘네티즌’이라 불리는데, 이들에게 우리가 특별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바로 그들이 인류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희망이기 때문이다.6)
 2. 혼돈의 뒤안길에서
  그러나 급속한 발달의 뒤안길에는 늘 어둠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보화 사회의 심장부인 사이버공간은 다양한 측면에서 장점 못지않은 폐단을 낳고 있는데, 실제 정보화에 대한 스님들의 부정적 견해도 대부분 이 폐단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의 부정적 측면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비판하는 것은 스님들의 의식전환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단지 비판에만 그친다면 무의미하므로 더 나아가 이러한 폐단이 우리 사회의 단면임을 인정하고, 그 혼돈 속에서 함께 대안까지 모색해 봄으로써 사이버 포교가 나아갈 방향까지 정리하려 한다.
   첫째, ‘익명성’. 즉 문자 정보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과 목소리 등 발언주체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점을 악용한 문제인데, 익명의 군중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가상공간 공동체(cyberspace society)를 형성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 대해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근거 없는 비방, 명예훼손, 집단 소외 내지는 사회적 매장이라는 성숙되지 못한 대화 태도를 보여,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이 폭력성에 젖어들게 되는 문제를 낳는다.
  둘째, 사이버 공간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의 출발과 도착점이 오로지 억눌렸던 ‘욕망’의 분출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현실 공간에서 분출하지 못하는 욕망, 지난 권위주의 시대에 억눌렸던 욕망들을 사이버 공간 상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그것도 보이지 않는 대상들을 향해 마음껏 배출하면서, 자신들에게 그러한 특권이 부여되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엽기문화’, ‘포르노그라피’의 경우7)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전부를 거는 무모함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원색 그대로 청소년들, 심지어 아동들에게까지 그대로 노출되어, 현실과 가상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 채 즉흥적으로 일어난 범죄 및 성의식 문란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셋째, 마우스 한 번의 클릭으로 사회 전반의 문화적 컨텐츠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문화적 평등’은,  반대로 쓰레기 정보들에 여과 없이 접근하게 해 자칫 전체 대중의 문화가 저질화 될 수 있다. 각종 포르노 사이트를 흉내낸 성범죄, 폭력, 사이버 원조교제, 자살 사이트, 사이비 종교 사이트, 여기에 인터넷 게임중독, 다중자아분열증, 인터넷 중독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 및 수면 부족이 야기한 정상적인 현실생활에의 피해 등 수많은 문제들이 그것이다. 사이버 공간 속에 널려 있는 쓰레기 정보들을 어떻게 청소할 것이며, 그러한 정보를 생산, 유포하는 이들과 이를 찾아다니는 수요자들의 의식의 근본적인 전환에 대하여 특히 우리 종교인들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넷째, 자아정체성의 혼란. 인터넷에서는 현실공간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주로 쓰는 신체의 사회적인 흔적들, 예를 들면 성별, 나이, 인종, 직업, 학력, 지적 수준, 생활습관, 성격, 때로는 종교나 가치관들을 모두 배제한 채, 오직 ID나 아바타라는 기호화된 분신을 통해서 그가 공개하고 싶어하는 부분의 정보만이 그에 관한 자료로서 제공된다. 이런 점을 활용해 현실 속에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인격을 자유로이 창조하게 되는데, 특히 요즘 인터넷 속에 자아를 표현하는 분신인 ‘아바타(Avatar)’8)의 경우, 자신의 꿈을 현실 속에 차근차근 실현해 나아가기 보다는, 가상공간에서 의도된 분신인 아바타로 표현되는 ‘가상의 삶’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본래의 자신을 놓쳐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한 사람이 여러 인격을 가지는 다중인격증 장애를 일으키거나, 현실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이버공간에서 포장된 자신을 실제 자신으로 착각하고 진실이 결여된 일회용 만남(각종 채팅사이트의 난무)에 참다운 자신을 상실하기도 한다.
  컴퓨터를 열면 그 속엔 하루 종일 들여다보아도 심심하지 않은 무궁무진한 세상이 펼쳐지지만, 막상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은 상대적으로 더욱 더 소외될 뿐이다.  그것은 존재 근원적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겉모습으로 포장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자성자리를 밝히려는 참선공부에 깊은 관심이 모이고 ‘선 관련 사이트’들이 인기를 모으는 현상도 사이버공간 속에서 이러한 ‘자아정체성의 혼란’ 문제와 결코 별개가 아닐 것이다. 네티즌들이 컴퓨터 앞에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바른 ‘수행’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불교적 컨텐츠가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가야겠다. 
  다섯째, 정보의 보안 문제. 예컨대 미국에서는 운전면허의 교부와 관리를 행하는 DMV(자동차관리처)에는 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주소, 이름, 연령, 성별 이외에도, 그 사람의 신체적인 특징을 표시하여 신장, 체중, 눈과 머리의 색깔 등의 정보가 전자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불교사이트를 운영할 때 회원들의 정보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적 보안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섯째,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 모든 문명의 이기가 그러하듯, 멀티미디어 환경이 잘 정비되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점차 정보가 풍부해지는 반면, 혜택을 받기 위해 십 수 년을 기다려야 하는 오지의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으며, 정보 환경이 구비되어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멀티미디어에 직접 접근하는 사람과 접근하지 않는 사람과는 격차가 생긴다.
  절에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도심 사찰 뿐 아니라, 산간이나 농촌지역의 사찰에서 이러한 사찰공간의 장점을 잘 활용해, 삼보정재를 투자, 사찰 내 훌륭한 정보화 시설을 갖추어 무료 전산교육을 베풀어 누구나 사찰 내에 컴퓨터실을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사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도 불교적인 정보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다양한 생활정보들을 편리하게 제공받을 수 있게끔 ‘수요자를 배려한’ 컨텐츠 개발에 조금이라도 힘을 쏟는다면, 이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효율적인 ‘정보의 평등’을 가져올 뿐 아니라, 사찰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대중 속에 ‘열린 광장’이 되어 자연스러운 포교의 장으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과연 인간의 본성은 선인가 악인가’를 논해야 할 만큼 사이버 공간의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수많은 폐해만큼이나 자연과 본연의 양심(불성)을 어서 회복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 또한 높다는 것이다. 월드와이드웹9)을 처음 세상에 소개한 팀 베르너 리(Tim Berner Lee)는 ‘자신이 고안한 웹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바 있다.
 

  “웹의 진정한 목적은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정보 공간’을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보편성이 가장 본질적인 고려 대상이었습니다. 하이퍼텍스트 링크는 어떤 것이라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이든 지역적이든 세계적이든, 간단한 초고든 잘 완성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두 번째 꿈이라면 웹이 아주 일반적으로 쓰여서 우리가 일하고 놀고 사회를 엮는 현실의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상호작용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컴퓨터로 분석하고 우리가 하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들고 우리의 개성을 살려 어떻게 하면 함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충분한 고민과 다각적인 측면의 이해 없이, 단순한 이분법의 논리로 사이버공간의 부정적인 면만 보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이들에게, 그의 답변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사이버 공간이 단순한 욕망의 분출구로 남을 것인가, 서로가 서로를 살려가는 상생의 장으로 빛을 발하게 할 것인가.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우리의 나아갈 방법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 좀 어색하고 불편하며, 기존의 틀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줄기차게 달려도 따라잡기가 힘이 드는 엄청난 속도감이 좀 부담스러울 뿐이다. 계절이 바뀌면 그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듯, 인터넷 문화는 이제 우리 스님들에게도 입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옷으로 다가왔으며, 그런 의미에서 사이버 공간은 엄연한 ‘또 하나의 도량’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Ⅲ. 진흙탕 속에 피어난 연꽃, 사이버 불교



 1. 현대인의 종교관
  전 세계 종교별 신도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 <표 1>과 같이 불교 5.7%, 그리스도교(개신교+천주교) 33.7%, 이슬람교 19.2%, 힌두교 13.7%로 불교 신도수는 4번째인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교

기타

무종교

신도

323,894

1,927,953

1,099,634

780,547

5,254

517,669

1,061,474

5,716,425

비율

5.7%

33.7%

19.2%

13.7%

0.1%

9.1%

18.5%

100.0%

<표 1> 전 세계 종교별 신도수 현황10)

  최근 발표된 한국갤럽의「200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 종교 인구는 20년 전의 50% 미만에서 현재는 57%로 높아졌는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사회 ․ 문화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우면 종교적 욕구는 다소 축소되고, 사회가 급변하고 불확실해질 경우, 특히 지금과 같은 사회적 대변화로 의식의 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일수록 종교가 성행하였다. 실제 절에서 신도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당장 사는 것이 편안하면 사람들은 종교 자체를 잊고도 충분히 행복해 하지만, 온갖 장애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느낄 때라야 비로소 기도를 하고 절에 가서 법문을 듣고 와야겠다는 간절한 구도심이 생긴다는 사실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산업화와 정보화의 급속한 사회변화의 뒤안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결국 종교에서 위안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
  그럼 어떤 종교에 호감을 갖고 있는가. 단정하긴 어렵지만 현재 주로 사이버 신행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종교 신자들의 답변을 통해 대략적인 기호를 추론해 보겠다.
  우선 네티즌들의 각 종교에 대한 호응도와 활동현황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 최고의 페이지뷰(page view)를 자랑하는 포털 사이트인 Daum12)의 종교 카테고리에 포함된 각 종교의 인터넷 카페 수를 검색해 보면 2005년 10월 8일 오후 2시 현재, 기독교 110203개, 천주교 11704개, 불교 6091개, 원불교 1014개, 기타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불교는 카페의 수에서부터 천주교, 기독교에 비해 열세일 뿐 아니라, 더 중요한 회원 수나 회원들의 활동 정도 및 카페 업데이트와 오프라인 상의 만남까지 자세히 비교해 보면 타 종교에 비해 매우 열악한 수준에 있다. 그러나 인터넷 카페는 그 추구하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카페 운영자의 능력과 열정이 그 카페의 회원 수 및 활동정도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카페 수나 랭킹 순위만 보고 네티즌들이 선호하는 종교가 이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카페를 개설하는 즉시 전체 카페수가 올라가므로 이 수치만으로는 타 종교에 비해 불교계가 얼마만큼 사이버 포교에 적극적이지 못한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또한 2004년 4월, 인터넷 종교 사이트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13)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총 329명의 불교인 중 ‘남자’는 180명으로 54.7%, 여자는 149명으로 45.3%이었고, 연령대별로는 ‘20대 이하’가 48.9%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30대가 33.7%, 40대 이상이 17.3%였으며, 학력별로는 ‘대졸 이하’가 76.9%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응답자의 70.8%가 스스로를 ‘중산층’에 속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균 주당 6.49일 동안 하루 평균 3시간 58분 30초의 시간, 즉 일상생활의 61.5%를 인터넷 이용에 쓰고 있었으며, 불교 사이트 이용자의 3/4이상이 ‘6년 이상 불교를 믿고 있다’고 했는데, 여러 종교들 중에도 특히 불교를 믿게 된 동기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사람이 응답자의 62.3%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막상 ‘불교 교리에 대해서는 스스로 잘 모른다고 생각’ 하는 응답자는 28%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11.2%에 비해 2배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하고 있는 경우는 34%에 불과한 반면, ‘신도단체 등의 활동에 참여 않는다’는 부정적인 응답은 무려 90%에 달했고, ‘사찰에 직접 가지 않고 방송이나 비디오, 카세트 법문 테이프나 MP3, 인터넷 영상 미디어를 통해 종교의식에 참여하거나 법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용자가 64.7%였으며, ‘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집에서 종교의례를 올리는 방식에 대해 찬성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45.3%는 찬성을, 15.8%는 반대를 답했는데, 이 결과는 가톨릭 신자의 27.5%와 개신교 신자의 33.7%가 미디어 매개신행에 반대하고 있는 데 비해, 불교신자들의 미디어 매개 신행에 대한 호응도가 더 높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위의 조사결과는 종교인구 전체를 놓고 본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전체인구의 의견을 완벽히 담아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도출된 불교사이트 이용자들의 특징이 고스란히 조계종에서 발표한 ‘포교취약계층’의 특징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 자료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실제 사찰의 포교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종교 활동의 양태는, 설사 마음이 힘들어 평안을 얻기 위해 절을 찾는다 해도 그것은 소위 ‘보살님 군단’으로 불리는 일부 성인들의 특권처럼 되어있어서, 대부분의 사찰의 규모와 관계없이 남성이나 청년층, 특히 아동 및 청소년층에게는, 법당에서 절을 하고 스님들께 삶의 고민을 터놓는다는 것이 보통 급한 마음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므로 여전히 사찰의 문턱은 높아만 보인다. 최근 불교계 내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런 현상이 다소 줄고 있기는 하지만, 어쩌다 용기를 내어 직접 절을 찾았더라도, 기존 사찰의 스님과 신도조직이 보이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 때문에, 선뜻 법당을 찾아 절을 하거나 스님들에게 인생의 고민을 터놓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들이 불교 포교 상 ‘취약계층’에 속하고 있으며, 위에서 보았듯 바로 그들이 일상생활 중 61.5%를 사이버 공간에서 보내는 소위 인터넷 세대들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그들의 절반 이상이 20대에서 30대로서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주역들이라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사실이다. 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는 종교는 오프라인의 실제 사찰보다 더 접근하기 용이하므로, 자신의 인생의 궤도를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하고도 새로운 실험의 장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응철 교수는 이 주제에 대해 “종교적 욕구가 어떤 종교로 향하고 혹은 어떤 종교 활동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현대인이 종교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접근성, 익명성, 불구속성, 체험성, 복합성 등의 특징과 부합하는 종교, 신행활동을 지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하고, “특히 인터넷을 생활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현재의 청소년과 청년층이 사회의 중추가 되는 20년 정도 이후에는 사이버 종교 활동의 빈도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14)고 밝힌 바 있는데 무척 시기적절하고 중요한 지적이라 본다.
  여기에 불교 내에 종교 활동으로서 요즘 외국인들까지도 한국 방문 시 종교를 초월해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Temple Stay : 산사체험, 단기출가 등)’ 를 연결 지어 볼 수 있는데,  이런 ‘열린 장’을 통해 굳게 닫혔던 산문(산문)이 활짝 열리고, 불교문화 체험 및 출가와 선(선)수행 등의 체험을 산새 지저귀고 꽃 피며 물 흐르는 산사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요즘의 템플스테이는 단지 수련회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기서 만난 도반들은 다시 포털사이트 아래에 카페나, 싸이월드에 등록된 각 수련생들의 미니홈피를 상호 연결한 클럽 개설로, 자신들이 함께했던 수련회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감동적이던 법문 혹은 불교지식들을 남겨 공유하고, 지속적인 공부와 대화 그리고 오프라인에서의 만남15)을 통해 ‘평생 공부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이 결코 온라인(on-line) 만으로는 충족될 수는 없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이버세대들은 종교적 체험을 원하되, 종교조직에 구속받지 않고도 충분히 자유롭게, 언제 어디서나 현실공간에서보다 더 깊은 불교 공부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통로로써 불교사이트나 카페를 찾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구나 사이버 세대들의 전반적인 특징을 고려해 볼 때 이 현상은 앞으로 계속 확산될 것으로 예측되므로,  이제 ‘사이버 포교’ 라는 주제는 이 시대의 모든 종교인들이 한 번 쯤 꼭 고려해 볼 포교방법이라 생각한다.
  위 조사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또, 비종교인을 대상으로 가장 호감을 느끼는 종교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결과 ‘불교’라는 응답이 37.4%로 가장 높게 나왔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인터넷 포교에 혼신을 다하고 계시는 법상스님이 어느 글16)에서 “무교(무교)는 불교(불교)다”라고 표현하신 것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는데, 실제 홈페이지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매일같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비종교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다음 내용은 운문사 홈페이지 e-mail로 들어온 한 네티즌의 글이다.
 

 “매일같이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사건들은 차라리 모르면 좋을 만큼 심성을 거칠게 만들며, 과연 저 사악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본성이 부처이긴 한 건지 의문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히 ‘혼돈의 시대’입니다. 진정 이제는 이 마음의 움직임을 편히 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속에도 질서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서 뭔가를 공부하고 이루어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겠지요. 미운 마음, 좋은 마음까지 다 버리지 않고 포용하면서 중심이 설 수 있는 그런, 시원한 법음이 저나 제 주변에 많은 이들에게 정말이지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의지를 해 보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차원으로는 해결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불교에 귀의하게 된 인연은 이제 돌아보면 자연스런 통과의례 같은 게 아니었나 생각되며,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스님 ! 이젠 진정 ‘자신’을 알고 싶습니다. 온갖 복잡한 그물로 얽혀있는 디지털 세계에 신물이 나서 한동안은 아날로그적인 삶을 스스로 선택해 보기도 했었지만, 이제 어디서나 홈페이지를 통해 절에 와서 기도하고 법문 듣고 마음이 밝아지고, 정신이 오롯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더 이상 두렵지는 않습니다. 이제야 ‘기술’이란 것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 인간이 쓰는 것이라는 이치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인연에 감사드리고, 널리 잘 쓰고 싶습니다.”


  위 편지를 보내온 네티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끼며 숱한 종교적 방황 끝에, 도리어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현대문명의 이기’를 매개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경우이다. 비단 이 한 분의 경우만이 아니라, 방문객들이 사찰 홈페이지를 찾아오게 된 인연을 들어보면 대부분 위 거사님의 경우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희망’을 안고 불교사이트를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불교가 하나의 ‘문화’로 시작되지만 점차 ‘종교’로 다가서게 된다. 특히 자신의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불교도의 객관적인 눈으로 다른 종교와 불교를 비교분석하여 결국 불교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현대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의 기준이 어디에 있으며, 그에 따라 종교를 대하는 태도도 과거의 맹신적인 태도에 비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2. 산사에 맡겨온 세상의 질문들
  이제 불교가 사이버 공간 속으로 들어가야 함은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사이버 불교를 통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어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불교 사이트를 이용하는 응답자 중 54.4%의 절반이 넘는 인원이 불교 정보 획득 및 교리학습을 위해 불교 사이트에 가입한다고 답했고,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21.6%, 신도들 간의 교류를 위해 가입했다는 답은 9.1%에 그쳤다.
  2003년 5월 20일에 처음 개설된 포털사이트 Daum의 불교 인터넷 카페로 등록되어 10월 20일 현재 회원 수 686명의 랭킹 80단계(활동의 양질을 비교하여 각 카페에 0에서 210단계까지의 랭킹순위가 매겨짐)에 있는 ‘운문에 구름 걷히면’17)을 예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카페는 회원들이 처음 가입할 때 첫째 ‘운문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둘째 ‘당신은 이 도량에서 무엇을 만나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응답하도록 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주로 운문사의 아름다운 풍경과 전반적인 산사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회원들이 이 도량(카페)에서 자신, 부처님 말씀(불교적인 모든 정보 포함), 스승, 도반, 이웃들을 만나고 싶다고 대답했다. 실제 카페 활동 현황을 살펴보면 회원들이 불교카페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여실히 볼 수 있는데, 카페의 전체 메뉴는 다음과 같다.
 

대 메뉴

소 메뉴

등록글수(개)

오늘은 좋은 날

한 줄로 그린 내 마음(오늘 나의 마음가짐)  참 좋은 인연(첫 가입 인사) 차 한 잔 하실래요(영상 편지)  언론에서 본 오늘의 불교  운문지기 합장

1061 5421051  41  27

운문 다르마

사자후(법문방) 부처님 닮아가기(불교 기초교리 및 경전 공부방) 내곁에 극락정토 (쉽고 재밌는 불교이야기들,                  ‘느낌이 있는 글’ 등 영상 플래쉬로 만나는 불교) 가릉빈가(명상음악 감상방)  내 삶을 바꾼 이 한 권의 책(불교관련 책 소개) 부처님께 띄운 편지

  50 103 242  201  36 129

운문 지대방

담소 위로받고 싶은 날 스님!스님!(스님과의 대화방) 나무 꽃 새 그리고...(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

 614  99 231 161

운문 사랑

따끈따끈 운문소식(운문사 행사공지) 여기는 운문사(운문사 풍경사진)

  52 113

운문 곳간

나눌수록 부자되는 곳간(참여할만한 좋은 행사들 소개 및 초대) 이런 풍경 어때요?(회원들의 작품사진방)

  94 112

 

 <표 2> Daum 카페 ‘운문에 구름 걷히면’의 전체메뉴 및 각 등록글 수


  각 메뉴를 분석하면 오늘은 좋은 날은 회원들 간의 인사 및 그 날 하루 동안의 소식공유 등 불자로서의 친목도모를, 운문 다르마는 큰스님들의 법문 및 불교 교리공부를, 운문 지대방은 편안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절집의 지대방 역할을, 운문 사랑방은 운문사 소식을, 운문 곳간은 함께 나눌 만한 좋은 행사들이나 자료를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단 각 메뉴가 처음 개설된 시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위에 등록된 글 수로 각 메뉴의 선호도를 판단할 수는 없고 글 등록에는 소극적이나 등록된 글에 대한 조회 수는 높은 경향이 있으므로, 소메뉴 별로 개설시기와 글등록 수 및 조회 수와 꼬리글 등 회원들의 반응을 여러 측면에서 모두 고려해 볼 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단연 매일 도반들과 하나의 간결한 문장으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한 줄로 그린 내 마음’이었고, 다음으로는 불교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법문방, 경전공부방, 특히 영상 및 플래쉬를 이용해 전달하는 쉽고 재미있는 불교 이야기방,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스님과의 고민 상담방, 운문사 소식 공지방 등의 순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인기 있는 메뉴의 경우 운영자 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카페 회원들의 신원은 공개와 비공개를 본인이 자유롭게 하도록 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고, 글쓰기의 내용이나 꼬리글의 반응 등을 토대로 볼 때  회원 수는 재가신도, 스님들, 타 종교인들, 무교(무교)인의 순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위 분석결과는 이 카페가  ‘운문사’라는 특정 사찰에 대한 특별한 인상과 관심을 갖고 찾아온 사람들의 동호회 형식이라는 점, 또 주관식 질문의 경우 표현의 차이에서 오는 통계화의 어려움 등이 있지만, 이를 통해 지금 동시대의 사부대중들이 불교에 거는 기대치가 주로 어느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을 보다 일반화시킨 다음 조사를 통해 정리해 보면, ‘일반적인 불교 사이트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49.5%가 정보의 공급처, 22.8%가 친목 장소, 15.8%는 신앙 활동의 매개체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사이버 법당 등의 가상적인 성소(성소)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6.7%, 문화 공간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5.2%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산사음악회나 산사체험, 다도시연 등을 살펴볼 때 불교는 종교로서보다 또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에 반하여, 아직 불교 사이트에 대한 네티즌들의 인식은 ‘불교정보를 얻어 공부 하고자’ 하는 데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네티즌들이 가장 바라는 컨텐츠는 가장 불교적인 정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 외에도 불교사이트에서 만족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긍 정 적

유 보 적 (보 통)

부 정 적

교리 이해도 향상

76.6

19.8

3.6

소속감 고취

64.4

28.6

7.0

종교적 가르침의 이상화

57.2

33.4

9.4

신앙만족도 향상

56.8

35.0

8.2

대인관계 확장

51.4

38.3

10.3

유대감 확산

49.5

37.4

13.1

자원봉사 활동의 참여

47.4

40.7

11.9

신앙심의 신장

46.5

43.2

10.3

 

 <표 3> 불교 사이트의 효용성 평가

  

  <표 3>에서 불교사이트 이용의 효용성 평가 결과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편이다. 특히 교리 이해도의 향상과 소속감 고취에서 효용성이 높은데, 이는 각자 처한 장소에서 부담 없이 언제든 원하는 내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온라인의 장점 때문이다. 불교사이트에서 제공되는 각 사찰의 크고 작은 행사소식이나 법문 및 불교적 컨텐츠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3. 각 종교계의 대응실태 - 불교를 중심으로 타종교와 비교분석


 (1) 타종교계의 대응실태
   1) 카톨릭교
  『신약성서』 <요한복음>의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라는 표현에서 말씀(logos)은 하느님과 동격을 부여받고 있고, 『구약성서』 <창세기>가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라고 시작하고 있듯이, 기독교와 카톨릭의 경우 말로 인해 태어났고 말로 확장되고 말로 살고 있기 때문에, 말과의 친화성이 가장 뛰어난 인터넷 미디어 문화에 대해서도 그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이해할 정도로 다른 어느 종교보다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카톨릭의 경우, 94년 전국 각 교구를 하나로 연결하는 대규모 인터넷 연결 사업인 ‘모세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부터, 틈틈이 재정과 인력에 여유만 있다면 교황청을 중심으로 전체 수도회와 각 교회지부와 신도단체 및 신도 개인의 홈페이지까지 관통하는 인트라넷을 구축하려 노력하였으며, 여기에 2004년부터는 정식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 산하 매스컴위원회의 한 분과로 ‘문화사목분과’를 신설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인터넷 문화 창조에 기여하는 전문적인 연구 및 활동 인력 모집과 정기적인 학술행사를 계속하고 있다.18)
 
   2) 기독교
  기독교의 경우, 96년 전산화추진위원회 설립 후 2003년 전체 교회의 노회 ․ 총회가 연동되는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중앙기관 중심의 체계적인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이에 위에서 밝힌 포털 사이트 다음카페의 종교 카테고리에서도 기독교가 단연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 활동 내용의 양과 질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재 Daum에 등록된 인터넷 카페들을 인기도 순으로 배열해 봤을 때 상위 5위는 모두 ‘기독교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의 포교방식도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적극적이고 공세적인데, 예컨대 전혀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또는 불교사이트에 가입한 사람들의 신용정보를 입수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언제든지 당신의 부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라는 내용의 e-mail이나 쪽지를 지칠 줄 모르고 보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심지어 사찰 홈페이지에도 이런 메일을 보내곤 한다.
  이와 같이 교회 활동에 대한 동참 권유, 설교나 관련자료 게시, 관련 사이트 링크, 성경공부를 위한 정보 제공, 교회 내부 모임이나 의견 교환 및 친목 도모 등 다양한 서비스가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또한 이미 대부분의 성직자들도 예배의식이나 경전, 교리 등에 대한 정보, 기도의 소재나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정보 획득에 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정보획득과 함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얻은 정보가 ‘자신이 이 교회에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선택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교회의 사이버 전도 방식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십분 활용해 사회적 약자, 예컨대 청각장애인, 동성애자, 홈리스 등 직접 종교 활동에 나서기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매일 찬송가를 얹은 아름다운 영상메일을 보내거나, 기도와 교리에 대한 학습, 토론, 삶의 고민을 터놓는 대화와 상담 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유익한 생활정보까지 제공하여 그들의 삶에 실질적인 힘이 되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를 위해 교단 차원의 기술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전도에 쏟아 붇는 기독교단의 노력에 비하여 실제 얻어지는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원인으로는 기독교 교리의 한계와 사이버 세대의 감성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코드를 꼽을 수 있겠다.
   3) 원불교
  원불교의 경우도 인터넷 포교에 모범을 보이고 있는데, ‘불법의 시대화 ․ 생활화 ․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종교인만큼 종교적 깨달음을 사회적으로 회향하는 데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93년 PC통신에서 최초로 ‘천리안 원불교 동호회’가 열렸는데 이는 아직 ‘사이버’라는 용어조차도 익숙하지 않았던 불교계에 비해 정보화시대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매우 앞선 것이었다. 원불교 교도들 사이의 친목과 대화뿐만 아니라 출 ․ 재가 간의 대화, 교화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 및 상담이 이루어졌으며,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 회원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그 사회적 영향력이 컸다.  2000년에는 ‘인터넷 교당’이 설립되어 전국적인 사이버 원불교의 거점으로 대활약을 하고, 교무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인터넷 교육 실시로 교단 전산화의 토대를 닦아 놓았다. 이런 숨은 노력의 결과 점차 각 지방교구나 교당별 독자적인 방이 개설되었는데, 주목할 부분은 교무가 운영하는 ‘교리문답방’의 경우, N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일반 종교사이트와 달리 교단의 ‘원로’가 직접 인터넷 공간으로 들어와 교리에 대한 깊이있는 해석과 법문을 내려주기 때문에 이용자의 범위가 일반교도와 타종교연구자들, 청장년 및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확대될 뿐 아니라 그 질도 향상되는 성과를 얻고 있다. 또한 원불교 교당관리 행정시스템 구축을 위해 95년 WMIS(Won-Buddism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과 96년 교당관리 프로그램인 ‘보은이’를 개발해 전국에 보급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4년 5월 1일자로 숙원사업이던 원불교종합정보시스템인 ‘원티스(www.won.or.kr)’를 개통하여 단순 행정체계 뿐만 아니라 교단의 모든 정보화에 관련된 원불교의 인터넷 환경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였다.19)

  지금까지 카톨릭, 기독교, 원불교의 사이버 포교의 역사와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이들 모두 불교계에 비해 훨씬 앞서 있다. 그것은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을 앞서 인식하고 교단의 시급한 과제로 정하여 교역자들에게 지속적인 관련교육과 연구토양을 마련해 준, 교단 지도부의 열린 사고와 결단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 불교계의 대응실태
   1) 스님들의 정보화 인식에 대한 비판적 분석
  사이버공간은 앞에서 보았듯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한계지워진 가상의 공간을 뛰어넘어, 이제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엄연한 생활공간이자 또 하나의 사회로 정착되어 우리의 삶 자체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는 ‘실존의 틀’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거대한 시대의 흐름일지라도, 이미 세간을 떠나 산사에 파묻히기로 작정한 스님들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쯤으로 간주되고, 자연히 정보화 물결에서 뒤떨어진 스님들의 현실이 동시대인들, 특히 젊은 네티즌들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만을 고수하다가 보다 효과적인 포교를 해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스님들이 사이버 포교 및 컴퓨터 기능을 익히는 데 대하여 망설이는가?’라는 주제로 실제 주변 스님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토대로 하여 그 유형을 나누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 속의 복잡한 내용들이 내면수행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아서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유형, 둘째 실제 포교현장에서 뛰는 동안 사이버포교가 무척 효과적일 거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웹사이트를 운영하려면 전문적이고 어려운 컴퓨터 지식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유형, 셋째 이 모든 것들이 세간의 무상(무상)한 환(환)이요 그림자일 뿐이므로 컴퓨터는 포교현장에서 활동할 스님들에게나 필요하고, 선승인 자신은 굳이 사판(사판)의 업(업)을 익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하는 유형이 있다.
  그러나 한국갤럽20)이 지난 1984년부터 5년 또는 7년 단위로 진행하는 정례 조사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성인 남녀 1500명에 대한 면접 조사에 따르면 ‘왜 종교를 가집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라는 답변이 전체의 67.9%를 차지했고 ‘복을 많이 받기 위해’와 ‘죽은 다음 영원한 삶을 얻으려고’가 각각 15.6%와 7.8%로 뒤를 이었다. 사람은 신체적,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살 수 없으며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고 나면 정신적인 갈구로 이어지게 되어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바로 종교가 출현하게 된 원인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X세대와 Y세대, N세대를 거듭하며 겉모습이 달라지는 듯해도, 그 밑바닥에는 ‘보다 널리, 보다 깊이 다 함께 평화로울 수 있는 길’에 대한 변함없는 열망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사이버 공간은 그 편리함에 비례하여 수많은 병폐를 낳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지금 우리는 극심한 혼돈을 겪고 있다. ‘우리가 지금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를 자문하는 것은 결코 세속화이거나 수행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세상은 이미 우리에게 떠나온 곳이지만 동시에 언젠간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다. 깊은 산중토굴이나 선방에서 용맹정진을 하시는 선승조차도, 상호 연기하는 법계에서는 세상 그 무엇과도 서로 끊임없이 파장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이치에서 볼 때, 본래부터 정해진 ‘이판승’도 ‘사판승’도 없으며, 이것을 분별하고 있는 그 마음작용이 이미 유무의 단견에 떨어진 게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실제로 수백 권의 책이나 수백 개의 Tape를 가벼운 MP3 한 장 속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한가? 뿐만 아니라 DVD나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큰스님의 법문 및 경전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가? 이처럼 첨단과학 기술의 편리는 누리면서도, 사이버 포교를 외면하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쁜 일상에 부대끼다 겨우 용기를 내어 사찰 홈페이지를 찾아 거기서 스님들의 감로수 같은 법음을 듣고 마음의 평안 찾아보려는 중생들의 아픈 사연도 단지 가상이고 환일 뿐인가? 법계의 이치로 관할 때 과연 환 아닌 경계가 따로 있는가?
  서울에 갈 때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비싼 비용을 쓰더라도 KTX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까닭은, 비싼 비용 못지않게 시간적, 육체적 에너지가 절약되고 그 만큼 다른 일에 쓸 수 있기 때문이듯이, 포교 방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욱 편리하고 빠르며 비용까지 적게 드는 방법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승가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이나 관념과 다르고 낯설다고 해서 세속적이라고 비방하며 거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전문적인 컴퓨터 기술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복지관에서 무료로 배운 간단한 워드작업능력과 인터넷 활용능력만으로도, 내 작은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개설해 짧고 가볍지만 지속적인 법문과, 단지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뿐’인 조그만 상담코너 하나에서도, 마치 먹물이 들 듯, 사람들은 서서히 저 의식 밑바닥으로부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한 걸음과 한 생각이 모두 화엄법계 속에서 일어나는 연기무아(연기무아)의 도리라면, 결국 불법문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수행’ 아님이 없다. 인드라의 그물코에 박힌 수많은 작은 구슬들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비추며 살고 있으므로, 동시대인들의 당처(당처)를 함께 이해하고 고민하려는 모습은 오히려 종교인의 ‘본분사’가 아니겠는가.

   2) 불교계 사이버 포교의 현주소
  정부는 올해 ‘e코리아’를 ‘u코리아’로 발전시킨다는 계획 아래 유 ․ 무선 인터넷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타 종교계에서는 발 빠른 움직임으로 정부차원의 지원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반하여, 불교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려는 적극적인 활동은커녕, 종단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조차도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조계종의 경우 다른 종단에 비하여 활동적인 편이지만, 전국 25개 교구본사 홈페이지는 비록 존재는 하지만 실제 활용은 저조한 편이며 새로운 내용으로 업데이트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며 내용면에서도 부실하다. 여전히 홈페이지가 없는 사찰도 많은데, 이것은 한 마디로 ‘생각은 있으나 실천력은 별로 없는 상태’21)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5년 7월 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실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오는 11월 1,300년 불교역사상 처음으로 개통을 앞두고 있는 ‘조계종 국제 사이트’를 위한 자문위원회 위촉장 전달식으로,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첨병 역할을 할 이 사이트는 조계종단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이며, 이러한 인터넷 환경 불사와 함께 조계종은 스님들에 대한 인터넷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22)

  국제사이트 개설은 그동안 한국불교가 티벳불교나 일본 및 베트남 불교에 비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잘 인정받지 못했던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인 외국어 서비스의 부재를 개선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바이다.
  또한 2002년 4월 한 달간 전국 사찰과 불교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불교정보화 실태조사23) 결과를 보면, 대상 단체를 사찰, 교육기관, 단체, 기관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사찰의 컴퓨터 보급률이 가장 낮았다. 이것은 많은 사찰이 산중에 위치하여 정보매체에 익숙하지 않거나 또는 사찰 업무나 신도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신도관리와 포교활동을 위하여 컴퓨터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컴퓨터가 있더라도 이를 이용하는 업무는 주로 종무관리, 자료관리, 인쇄 및 개인 업무에 그칠 뿐이고,  ‘스님들의 인식부족’으로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각 사찰에 홈페이지 운영 비율은 전화설문조사 결과24)로 알 수 있는데,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13.3%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수치는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사찰 중 7.2%에 불과한 것으로 매우 저조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홈페이지 운영이 얼마나 사찰운영에 있어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11.9%가 매우 효과적, 40.2%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35.2%는 그저 그렇다, 12.1%는 효과 없는 편, 전혀 효과 없음이라는 답은 0.6로 거의 전무하여, 전반적으로 사부대중들은 홈페이지를 개설해 운영하는 것이 사찰 운영과 포교에 효과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단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사찰에서는 그 이유로 운영할 인력 부족과, 운영효과에 대한 의구심을 꼽았고, 다음으로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해 줄 수 있는 정보의 부재와 인터넷 환경 결여, 비용부담 문제를 들고 있었다.
  또한 불교계 내부로부터 ‘불교 정보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전체 조사대상자 1,203명 중 89.1%인 1,072명이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그 이유로는 포교 활성화,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 정보 공유, 업무의 효율성 제고, 소속감 강화 등을 꼽고 있다.
  불교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으로는 불교계 전체를 연결해 주는 거시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56.5%로 절반 이상이었고, 다음으로 종단 차원, 소속 교구본사 중심, 유관단체나 기관 차원, 교육기관, 불교 언론기관 순으로 나왔다.    실제 불교사이트를 운영하다 보면 수요자들의 욕구에 비해 혼자서 모든 정보를 다 제공하기에는 벅찬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 때문에 종합 불교정보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개설되어 있는 불교 포털사이트인 조계종 달마넷이나 사찰넷, 현대불교신문의 부다피아, 성철넷 등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며 네티즌 사이에서도 그 실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4. 사이버불교의 포교론적 함의
  (1) 신사이버 대중견성운동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각각타(자각각타)이다. 2천 6백여 년 전 한 역사적 인물이 이룬 깨달음이 지금까지도 소중한 까닭은, 부처님만의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정진한다면 그와 똑같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지금까지도 그 제자들은 스승과 같은 공명(공명)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로 용맹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근기의 사람들이 깨달음을 성취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각자 지금 필요로 하는 부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중생세계에는 대기설법(대기설법)이 필요하고, 그래서 포교 방법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조계종 종단의 3대 사업이 ‘도제양성 ․ 포교 ․ 역경’인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무엇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지, 깨달음의 결과를 어떻게 회향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부처님은 살아계신 동안 그 시대 대중들의 근기에 맞는 대기설법으로 이른바 ‘대중견성운동’을 이끄셨다. 그 분이 깨달은 후 7일간의 명상 끝에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 뜻이 어디에 있는가? 저 수많은 불보살님들의 원력이 그러하듯 진정한 대승(대승)의 정신은 ‘내가 부처를 이루는 일(자각)’과 똑같은 크기로 ‘우리 모두가 부처를 이루도록 돕는 일(각타)’에 있다. 이 일 자체가 이미 그대로 ‘수행’이므로 수행자가 처한 곳이 선방이든 포교원이든 강원이든 산중이든 저자거리이든 모두 ‘포교 현장’이어야 한다. 만약 내 작은 고민을 털어놓은 상대가 다름 아닌 ‘마음을 닦는 스님’일 경우,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로서 기대와 존경을 받고 있는 스님의 한 마디는 어느 누구의 말보다 몇 배의 파장효과를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효과적인 포교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 <표 4>에서는 인터넷 인구 3,000만을 훨씬 넘은 현 한국사회에서, 어떤 매체가 가장 정보전달에 효과적이며, 정보화 시대에 맞는 포교방법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인 매체

인쇄 매체

전파 매체

전달 방법

사람

벽화, 조각

종이(책)

TV,라디오

인터넷

정보 형태

시청각(소리, 모습)

시각 (문자, 그림)

시청각 (문자, 소리, 그림, 동영상)

전달 속도

느리다

느리다

보통

빠르다 (실시간)

전달 범위

좁다

좁다

넓다

넓다

매우 넓다

정보의 지속성

짧다

길다

짧다

길다

정보 전달의 정확성

전달자의 기억력에 의존

정확하다

정확하다

정보의 수정 및 보완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쉽다

휴대성

쉽다

어렵다

쉽다

보통

사용 난이도

쉽다

쉽다

쉽다

보통

전달 방향

쌍방향

단방향

단방향

쌍방향

전달 효과

매우 크다

보통

크다 

매우 크다

 

<표 4> 정보 전달 매체의 특성25)



  위 분석에서 전파 매체가 가장 효과적인 정보 전달의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매체의 사용과 휴대가 쉽지 않은 점은 최근 지속적인 기술발전으로 이동통신을 통한 인터넷 활용이 가능해짐에 따라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불교는 효용성의 측면에서 볼 때 조계종단의 3대 사업을 모두 이룰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부처님께서도 이 시대에 살고 계셨다면 당연히 인터넷을 이용한 포교에 앞장섰으리라는 예측은 사이버 옹호론자의 주장이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포교 방법에서 직접적인 만남(대인매체)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겠지만, 이 방법은 육체적, 시 ․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에 비해 하루 평균 3시간이 넘게 인터넷 공간 속에 머무르는 현대인들에게 컴퓨터 한 대만 있다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만남과 대화가 가능한, 전파매체를 활용한 사이버 포교는 이 시대에 적합한 포교방법이라 생각된다.
  부처님께서는 살아생전 일평생을 ‘걸어 걸어서’ 대중견성운동을 이끄셨다면, 이제 우리 제자들은 스승의 덕화와 더불어 현대의 과학기술의 효능에 힘입어 ‘가만히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보며’ 더욱 효율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교회에서 사이버세계를 표현하듯, ‘신이 내린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인터넷 불교공동체의 필요성
  사이버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대중견성운동이 확산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인터넷 불교공동체이다.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지금도 학자들 간에 첨예하게 논쟁이 일고 있는 부분이 바로 ‘공동체 해체 시대인가, 아니면 황금시대인가’라는 논의이다. 컴퓨터에 의존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네티즌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공동체 해체 시대론’과, 반대로 과거의 공동체는 권위적이고 지역적이었던 데 반해, 사이버공동체는 다양한 계층의 욕구를 담아낼 뿐 아니라 전통적인 공동체의 맹점까지 보완하여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공동체 황금시대론’이 그것이다.   
  인터넷 초기 공동체는 각 대학원의 연구자들 상호간에 자료 공유를 위한 사설게시판 혹은 뉴스 그룹이라는 형태의 ‘유즈넷’이었다면, 9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형태의 동호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해, 온라인상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매개로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형태로 발전되어 오다가, 최근에는 오프라인에까지 활동범위를 연장할 정도로 그 공동체적 성격을 점점 명확히 해 나가고 있다.
  불교계의 인터넷 공동체 모범 사례로는 조계종 불광사 홈페이지와 해인사 홈페이지를 들 수 있겠는데, 광덕스님 추모 홈페이지에서 시작되어 초기에는 주로 사찰 홍보를 목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점차 불광 법회, 출판부, 월간 불광, 유치원 등의 영역으로 확대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청년회, 학생회, 스님과 장년층 신도 조직에 이르기까지 사찰의 전 구성원들의 가상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26)

  해인사 역시 홈페이지 개편 이후 고려대장경에 관한 정보 뿐만 아니라 ‘도반과의 만남’이라는 메뉴 아래에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해 사부대중들이 그 공간 안에서 서로 소모임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특히 유명한 ‘해인사 수련회’ 졸업생들이 각 기수별로 동호회를 만들어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데, 이것이 네티즌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어 지난 2004년 조계종 홈페이지 경연대회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다른 사찰수련회 동문 모임을 촉진시키고 있다.
  물론 인터넷 가상 공동체는 자신의 생활 중 최소한의 부분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탈근대 공동체 현상으로 보거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면서 서로 필요한 만큼만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미국식 개인주의적 공동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지 이제 이러한 가상 공동체들이 전체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여론의 주체가 되고 있다. 또한 불교의 소중한 메시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동시대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 그것을 수용해 보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는데, 이 공동체라는 방식은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어느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불교계 전체의 인식변화와 종단적인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공동체 운동’인 것이다. 이를 통해 소외되고 상처받은 수많은 네티즌들이 불교적 세계관으로 치유되어 보다 나은 삶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운동의 중심에 서야 할 종교지도자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3) 네티즌과 불교사이트의 만남
  인터넷 포교를 하면서 얻게 된 중요한 인터넷 사이트 수요자들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사이트라고 해서 현실공간처럼 예의를 다하고 존경하고 조심스러워 하지 않으며, 그래 주기를 바란다는 건 종교인의 기대일 뿐, 인터넷 공간 속에서 종교 사이트나 종교인들은 동등하거나 혹은 경쟁적인 관계로서 함께 갈등과 조화를 거듭하며 성숙해 가는 수평적 동반자일 뿐이다.
  둘째 네티즌들은 ‘마니아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언제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이트를 찾아서 떠나고 머무름이 자유롭다.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처럼 한 번 할머니가 다닌 절에 그 며느리와 손자며느리까지도 계속 다녔던 것과는 달리, 언제든 즐겨 찾는 사찰사이트를 바꿀 수 있고 바꾼다 해서 민망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터넷 사회의 ‘사회적 권위’란 곧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홈페이지에 다녀가고 나의 홈페이지에서 컨텐츠들을 스크랩하거나 즐겨찾기 하여 애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셋째 사이버 공간에서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접속하거나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불교사이트에 대한 사용자들의 충성도나 결속력은 현실공간에서만큼 기대하기는 어렵다.
  넷째 네티즌들은 텍스트 형식보다 영상 미디어 형식의 자료에 더 호응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 운문사 홈페이지의 경우에도 ‘느낌이 있는 글’과 ‘영상 일주문’의 인기가 높다. 참고로 불교신문27)에서 선정한 가 볼만한 사이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흥사(www.daeheungsa.com) ‘세간한담’ ‘ 인터넷 법문’
미황사(www.miwangsa.com) ‘별이야기’ ‘ 한문학당’ ‘ 수행이야기’ ‘풍경소리’
운문사(www.unmunsa.or.kr) ‘느낌이 있는글’ ‘ 논문 및 영상자료실’
 인터넷 카페 '운문에 구름이 걷히면' (cafe.daum.net/unmun4)
법주사(www.pubjusa.or.kr) ‘주지스님 법어’
송광사(www.songgwangsa.org) ‘자유게시판’
현덕사(www.hyundeoksa.or.kr) ‘현종스님의 글 문언’
대원사(www.daewonsa.or.kr) ‘자비신행회 독서토론회’ ‘ 현장스님 설법’
백양사(www.baekyangsa.org) ‘산중한담’ ‘ 산사의 풍경’ ‘스님과의 대화’ ‘서옹스님 법문’
불회사(www.bulhoeasa.org) ‘수불회’
통도사(www.tondosa.or.kr) ‘월하스님 법문’
안국선원(www.ahnkookzen.org) ‘수행일기’

  이들 사이트의 공통점은 똑같은 부처님의 말씀이라도 다양한 내용적 ․ 기술적 고민을 거쳐 불교적 세계관에 깃든 맑고 청량한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어떻게 해야 이 한 마음을 잘 쓸 것인가’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상 그 어떠한 문명에서도 그것이 이상적인 문명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의 증대와 인간성의 회복이 동시에 담겨져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근거 없는 장밋빛 유토피아를 꿈꾸는 기술 결정론이나, 컴퓨터 자체조차 익힐 필요가 없는 부정적인 뒷골목의 문화로 치부하는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론은 지양하고, 우선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정확한 숙지와 이해를 통해 공개적인 장에서 충분한 토의와 대화를 통해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정보화 시대에 대응해 온 불교계의 모습, 특히 사부대중의 중심에 서 있는 스님들의 정보화에 대한 인식실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이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브래셔(Brasher)는 그의 저서에서 "현재 및 미래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인터넷상에 출현하고 있는 종교 활동, 즉 온라인 종교(online religion)"라고 말한 바 있다.28) 물론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이버 공간은 무수한 제 문제들로 갖은 병폐를 낳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으나, 혼돈 그 자체를 버리려는 순간 또 다른 혼돈을 일으키고 마는 법계의 이치를 잘 살펴, 가장 불교적인 방식으로 이 시대를 극복해 가야 할 것이다. ‘혼돈’ 그 자체 속에 엄연히 깃들어 있는 ‘질서’ 찾기, 이것이 바로 종교계가 사이버 공간에 더욱 눈빛을 밝혀 가야 하는 중요한 까닭이며, 불교의 역할에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는 시대인 것이다.
  
  (4) 사이버 불교 성공을 위한 제언        
  세상의 동업대중들과 함께하면서 물들지 않고 그들의 정신문화를 선두에서 이끌어 줄 책임 있는 스님들 및 교계지도자들이, 다함께 한 번쯤 고민해 보아야 할 논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불교사이트나 각 포털사이트의 지식검색을 통해 ‘불교정보’를 검색할 때, 왜곡, 오류, 편향된 그릇된 지식들이 어떤 항의나 교정 없이 버젓이 유포되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종단 차원의 ‘사이버 불교정보를 바로 세우는 전담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고, 전문적인 ‘사이버 포교사’를 양성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이미 운영 중인 사이버 법당이나 불교 웹사이트 및 카페 등을 분석해, 사이버포교라는 이 교화방식이 전체 포교방법론에서 볼 때 어떠한 의의와 효과를 보이고 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증명해 내어, 불교계 내에 사부대중들의 정보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셋째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방법으로 스승과 제자라는 차원에서의 기존 대화방식은 더 이상 사이버 공간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므로, 기본적인 사이버 예의를 갖추되 쌍방향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사이트 내에 ‘커뮤니케이션 방’같은, 편하고 부담 없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운영자나 회원 누구라도 서로를 통해 배워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것, 즉 이제 운영자와 회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넷째 구체적인 목표와 주요 이용자 대상을 한정해 보고, 그에 따라 운영전략과 기술 및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해야 하며, 이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가능하도록 종단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는 ‘올 테면 오고 안 와도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는 통하지 않는다. 불교의 수많은 주제들 중에서도 ‘경전’하면 어느 사이트, ‘참선수행’하면 어느 사이트, ‘커뮤니티 연결’ 하면 어느 사이트라는 우리 홈페이지만의 고유하고 전문적인 요소를 특화해 살리는 것도 좋겠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어디서나 금물인 것이다.
  다만 바쁜 시대에 즐겨 찾는 사이트에서 오늘의 날씨나 세간의 뉴스 및 불교계 뉴스 등 웬만한 정보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길 바라는 네티즌들을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불교 종합 정보 사이트’들을 링크시켜 놓는 방법이 있다. 모든 서비스를 다 제공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무작정 투입만 한다고 해서 그 사이트가 성공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이버 공간 역시 대기설법이 필요한 공간인 것이다.
  특히 사이버 세대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마니아 문화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골라 ‘즐겨찾기’를 하다가도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는 것인데 오히려 그것이 사이버 시민들의 기본 권리로 여겨지기 때문에 현실공간에 비해 대단히 냉정하고도 개방적이다. 이러한 그들의 성향을 잘 고려해서 사이버 포교에 임해야 할 것이다. 똑같은 불교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갈 수 있는데, 앞으로 불교계의 주역이 될 N세대 스님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다섯째 자기정체성을 상실하여 혼란스러워 하는 대중들을 위해 가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극복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불교교리에서 찾아내고, 아울러 대중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제 문제들을 점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신행상담의 창구가 필요하다. 
  지금 사이버공간에서는 웰빙 물결을 타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명상족들을 겨냥하여 우후죽순 생성되고 있는 제3의 수행법들과 각종 사이비종교 사이트들이 정통불교인 양 난무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이버 공간에서도 ‘선지식의 사자후’가 절실하다. 촌철살인의 죽비를 잡고 정법과 사법을 철저히 가려 말세중생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이끌어 줄, 실참(실참)의 경력이 있는 제방의 수행자들의 관심이 절실한 때이다. 산중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그 분들의 사자후가 사이버 법당에서도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한 모금의 시원한 청량수로 다가올 것이다. 최근 부다피아 등에서 종단의 각종 영상법회를 서비스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향후 이러한 서비스가 더 확대되어야 하리라 본다.
  여섯째 이러한 일은 한 개인의 신심과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며, 종단의 원로 및 각 교구의 소임자 스님들을 비롯한 사부대중 전체의 관심과 지원을 필요로 한다. 한 번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고 하여 사이버 포교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기적절한 업데이트와 네티즌과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낌없는 지원이 계속되어야 한다. 한 번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할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닌데, ‘왜 자꾸 돈을 들여가며 업데이트를 하려 하는가’라는 이해의 부족이 사이버포교를 더욱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장 눈앞에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골방에 박혀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는 담당 소임자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심받거나, 하는 일이라고는 도대체 컴퓨터 앞에서 노닥거리는 것뿐인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이는 승가의 전통적인 노동과 달리 일종의 정신노동이기 때문에 자칫 오해받기 쉽다. 현재 불교사이트들은 소임자들의 ‘공심(공심)’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나마 소임자마저 육체적, 정신적인 한계에 도달할 경우에는 사이트의 문을 닫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또는 ‘어차피 이런 일은 세속적이어서 스님들이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며 재가신도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만만치 않다. 기술적인 보완을 위해서는 재가자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사찰 고유의 정서와 수행자의 향기가 그대로 표현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가능한 스님들 중에서 전문적인 사이버포교사를 양성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이버포교 전담부서’를 종단 내에 설치하여 전문 인력을 꾸준히 양성하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Ⅳ.  맺 는 말



  지금까지 사이버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종교인들이 설 자리를 찾아보았다. 정보통신혁명의 물결 속에 변화되고 있는 현대인들의 종교관과 세상이 산사의 스님들에게 거는 기대를 정리해 보았고, 이에 대한 불교계의 대응실태를 타 종교계의 현황과 비교 분석해 보면서 불교계 사이버 포교의 현주소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사이버 불교가 갖는 포교론적 함의를 훑어보면서 이 시대에 가장 공감될 수 있는 형식인 ‘신사이버 대중견성운동’을 통해 부처님의 전법정신이 계승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보았다. 아울러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인터넷 불교공동체의 필요성과 네티즌의 성향에 눈높이를 맞춘 불교사이트 운영방안 등-을 제언하여 사이버 불교의 미래를 짚어 보았다.
  짧은 기간이나마 불교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많은 점을 느꼈으며 그것은 필자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눈앞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가상공간 속에서의 만남이었지만, 필자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올리는 작은 글과 불교 메시지를 담은 사진 한 장, 영상법문 한 구절에서도 감동을 받는 네티즌들을 보면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는 평화에 대한 갈망과 영적 성숙을 향한 진지한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정보화라는 세상의 시류는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진정한 수행은 자리와 이타를 겸비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자체가 활발발한 수행의 현장이라 생각한다. 인터넷도 하나의 방편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중생의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고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 결국 정보화 시대의 과제들은 경제․기술적인 추진력과 사회․문화적인 견인력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인간이 정보화의 부속물이 아니라 스스로 기술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수처작주 입처개진) ‘휴머니즘의 복원’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정신문화를 이끌어갈 책임을 지고 있는 종교인들에게 사이버 세계는 외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똑같은 ‘칼’도 강도가 쥐면 살인(살인)의 도구요, 의사가 쥐면 활인(활인)의 도구가 되듯이,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은 문명의 이기는 인간의 영혼을 갉아 먹는 악의 화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법한 수행자 한 사람의 향기가 소리 없이 우주법계를 정화시킬 수 있듯이, 사이버포교사 스님 한 사람이 전하는 청정무구한 원각의 향기가 사이버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갈 때, 진흙탕 위에 피어난 연꽃처럼 사이버 공간은 그대로 불국토로 화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이버포교를 담당하는 스님들 스스로가 컴퓨터와 세상, 그리고 자신의 본래면목을 하나로 회통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다른 웹사이트와 차별화된 가장 불교적인 사이버 도량을 일굴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권위를 내려놓고 대중들과 기꺼이 ‘도반’이 되겠다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사이버공간은 지금 ‘진흙탕’이 되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연꽃은 깨끗한 물이 아니라,  다름 아닌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 않던가.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전법을 위해서라면 거칠고 험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를 선택해 찾아가셨던 것처럼, 시끄럽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저 사이버공간이 바로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이다.  사이버 공간을 있는 그대로 진리가 현현하는 당처로 전환시키는 일은 바로 진흙탕 위에 연꽃 한 송이를 피워 올리는 일과도 같다. 부처님의 법은 청정하고 화려한 대웅전의 법좌에 앉아 어려운 한자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뒷골목 구석에 함께 앉아 ‘지금 그들이 가장 공감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쉽지만 깊이 있게’ 전할 때 더욱 간절한 울림이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인식을 함께 할 수 있는 스님들이 더 많이 나와 사이버 포교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사부대중들의 참여와 장기적인 종단의 지원, 제방 각처 원로스님들의 관심과 이해가 사이버 포교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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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버라는 말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줄임 말로, 1948년 미국의 수학자 노베르트 위너(N. Wiener)가 창안한 새로운 학문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기계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이건 동물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이건 통제와 소통이론의 모든 영역을 가리키기 위해 키잡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인 사이버네틱스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N.위너는 「사이버네틱스-동물과 기계에서의 제어와 통신」(1948)에서 이 이론을 제기했는데, 조타수, 통치자 또는 조종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kubernetes'에서 이 단어를 도입하여, 거친 대양을 항해하는 ‘조타수’처럼 독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자립적인 개인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사이버네틱스는 생물 개체의 행동과 통신기계 동작의 평행성, 동형성에서 출발하여, 기계적, 생체계, 조직사회에서의 제어와 통신 또는 정보 전달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같은 방법이라는 견해에서 위너의 연구는 시작되었다.
     또한 위너의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정의 이후 ‘사이버’라는 말은 『American Heritage dicthinary』에서 “전자적, 기계적, 생물학적 체계의 통제과정, 특히 이러한 체계에서의 정보 흐름에 대한 통제과정을 연구하는 이론”으로 재정의 되었다. 또한 ‘사이버네이트(Cybernate)'라는 파생어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동통제 하는 것 또는 그렇게 통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T. Leary, loc, cit
2) MUD (Multi-User Dungeon) : 통신망을 통해 동시에 여러 명이 진행하는 게임의 한 가지. 어드벤처, 다중참여 역할게임(RPG, Role Playing Game), 시뮬레이션 게임 등이 있다. 사용자는 머드 게임(MUD)을 제공하는 서버 컴퓨터에 접속한 후에 각각 하나의 역할을 맡아 3차원 시뮬레이션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가상 세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가운데는 계속 진행되는 모험 게임도 있고, 교육적인 목적의 게임도 있으며 단순히 친목 도모를 위한 게임도 있다.

3) 웰빙(well-being) : 한국사회에서 90년대 후반에 들면서 주로 20~30대를 중심으로 주도되어 온 이른바 ‘잘 살기 운동’ 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육체적인 질병 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 라는 규정은 진정한 웰빙(잘 사는 삶)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신적 ․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라는 표현에서 보듯, ‘진정 잘 산다는 것’은 외적인 조건 만이 아니라 ‘내면의 정신건강(spiritual health)’까지를 포함한 조화로운 삶, 즉 남이 뭐라든 내 마음이 편한 것이 최고인 삶을 의미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웰빙의 개념 정의는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어, 올바른 가치관의 중심이 서 있지 못할 경우, 자칫 본래의 뜻이 변질되고 또 다른 소비행태의 하나로 전락하여 결국 사회 구성원들 간에 위화감만 심화시키고 마는 엉뚱한 현상을 낳기도 한다. 따라서 웰빙의 진원이 소비 욕구(needs)의 본질적 변화에 있다는 점, 무분별하고 성취 지향적이어야 했던 기존의 삶의 방식인 ‘생존’에서 이제 삶의 ‘질’로 변화하게 된 의식혁명과 관련이 있다는 점 등의 웰빙의 등장배경을 잘 살펴보는 일은, 이 시대에 종교인들이 설 자리가 어디인지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4) 권용혁, “정보화 시대의 삶과 규범”  
5) 디지털화 :  MIT 미디어랩의 소장인 네그로폰테에 의하면, 디지털화의 기본단위는 비트(bits)이다. 비트는 정보 DNA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원자로서, 0과 1로 간주된다. 0과 1을 이진법으로 순열조합할 때, 엄청난 확장이 가능한데, 신호의 디지털화란 바로 신호를 잘게 쪼개어 샘플화(sampling)함으로써 이 신호를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6) 대학문화 매거진 ‘씽굿’ (www.ucpress.co.kr) ․ 취업사이트 파워잡 (www.powerjob.co.kr)
7) 엽기문화는 현실 공간의 주류층이나 기득권층에게는 거부감이 있지만, 네티즌들에게는 친숙한 용어로, 찌르고 자르고 죽이는 효과 등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요소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다양한 정지와 운동의 이미지효과를 주어 대중 앞에 보였을 때, 만든 이나 감상하는 이들 모두가 미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르노그라피의 경우,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포르노인가의 문제는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인터넷 문화 속에서의 포르노에 대한 현실은 이미 영화나 비디오를 통해, 포르노를 볼 수 있는 권리 행사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적 사람들 - 이들은 ‘우리는 포르노를 볼 권리가 있다!’라는 구호를 외친다-에 의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8) 아바타는 원래 화신(화신)을 의미하는 힌두어로 인도 종교에서 현자인 크리슈나를 비쉬누 신(보존의 신)의 아바타라고 표현했다. 즉 아바타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한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모습이나 이름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나타낸다. 요즘 아바타는 채팅이나 게임 또는 전자메일을 보낼 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네티즌들이 아바타에 열광하고 그를 장엄하는데 정성을 기울이는 까닭은 현실 속에 자기 불만족이나 욕구표출의 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익명성을 활용해 자신의 욕구에 따라 다양한 아바타를 설정해 활동하는 네티즌들도 있어, 더 이상 진득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는 우직한 사람이 미덕인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9) 사이버 공간의 다른 이름인 인터넷이 대중들의 안방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한 컴퓨터는 아무나 다가갈 수조차 없는 거대한 몸집에 엄청나게 비싼 고압장인 계산기라 전문엔지니어들이 폐쇄된 유리방 안에서 조심스럽게 마치 그를 신처럼 대하였으나, 1975년 이 거대 컴퓨터는 조그만 차고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다시 태어나 가볍고 값싼 생활용품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여기에 실리콘밸리의 반도체산업의 눈부신 도약이 한 몫을 한다. 거기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컴퓨터와 컴퓨터 간에 네트워크 연결, 즉 인터넷이 등장함에 따라 60년대 히피 세대의 후손들은 과거 그들의 공동체를 향한 좌절된 열망을 컴퓨터 통신으로 만들어진 사이버 공동체 속에서 찾아내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3년 월드와이드웹(www)이라는 신기술이 대중적으로 실현되고, 기존의 불친절하고 지루하던 딱딱한 글자 위주의 인터페이스가 여러 방법의 미디어를 함께 사용하는 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작게는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실시간 MUD게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하고 있다.
10) 문화관광부, 한국의 종교현황 (서울 : 문화관광부 종무실, 1998), pp. 17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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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 통계 기준 : UN 인구 통계 기준, 1994.
11) 참조 : 김응철, 「불교의 사이버 사회 대응 양상」, 불교평론 제8권 제 2호, 2005년 여름, pp. 21-25.
12) 다음 포털 사이트 www.daum.net
13) 박수호, 「불교인의 사이버 신행과 특징」, 『불교평론』2005 여름 제 8권 2호, pp. 42-57
    박수호, 「인터넷 이용과 종교의식 : 한국 인터넷 종교 사이트 이용자를 대상으로」,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4.
    이 설문조사는 인터넷 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되었으며,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 등 3개 종교 사이트 이용자에 한해 무작위 표집을 통해 표본을 추출하였다. 최종분석에 사용한 표본의 수는 1,110명이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이다. 이 중에서 불교인의 수는 329명이었고, 한편 설문지는 응답자들의 인터넷 이용 실태, 종교성, 종교 사이트 이용 실태, 종교의식 등을 확인하기 위한 척도들로 구성하였다.
14) 김응철, 「불교의 사이버 사회 대응 양상」, 『불교평론』2005 여름 제 8권 2호, pp. 21-25
15) 요즘 인터넷 동호회나 카페 등의 활동 시, 온라인 상에서 대화 중 갑자기 ‘번개’처럼 “대구지역에 있는 회원들은 지금 몇 시 까지 어느 장소 앞에 다 모이자” 라고 즉석해서 약속을 하고 실제 만남을 가지는 것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번개 혹은 벙개’ 라는 말로 통하고 있으며, 이 만남이 회원들 간에 규칙에 의해 정기적일 경우에는  ‘정모’ 라는 표현하며 정기모임을 갖는다.
16) 법상/사이버 생활도량 ‘목탁소리’ 법사, 「사이버 포교, 한번 저질러 보자」, 『계간 운문』 통권 76호, p.22
17) Daum Cafe ‘운문에 구름 걷히면’  http://cafe.daum.net/unmun4
18) 박문수, 「가톨릭의 인터넷 활용 실태와 한계」, 『불교평론』, 2005 여름.
19) 이한메, 「원불교 원티스(WTIS) 구축의 현재와 미래」, 『불교평론』, 2005 여름.
20) 한국갤럽 사이트 http://www.gallup.co.kr/
21) 김재경, 「불교 사이트의 현황과 문제점」, 불교평론 제 8권 제 2호, 2005년 여름, pp. 28-31
22) “사이버 공간 ‘연화 세계’ 넓힌다”,  경향신문,  2005.7.13.

 

23)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불교방송, 불교TV, 현대불교신문사가 공동 주최.
24) 이상병, 「정보화 시대의 인터넷 불교포교 연구」, 동국대학교 불교학 석사학위논문, 2004, pp. 11-19.
25) 김정욱 , 「불교 포교에 있어서 인터넷 활용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8, p. 5.
26) 참조글 : 유권준, 「인터넷 불교 공동체를 만들자」, 『월간 봉은』 <인터넷의 세계>, pp. 24-25.
27) 이상균 기자, 『불교신문』, 2003. 9. 6.
28) Brasher, B., Give Me That Online Religion, San Francisco: Jossey-Bass, 2001.

 

 

 

 

 

[출처] 진흙탕 위에 피어난 연꽃 사이버 불교의 미래|작성자 노원앙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