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스님

원효대사 수행담

수선님 2021. 2. 12. 13:43

원효대사 수행담

 

1. 수행修行

 

[금와보살] “어디로 가야하나?”

중이 되겠다며 걸낭을 짊어지고 큰소리치며 집을 나섰으나 정해진 곳은 없었다. 설서당薛誓幢은 통도사通度寺를 생각했다. 통도사는 자장율사慈藏律師라는 당대 최고의 고승이 계셔서 잘만하면 그를 만나 단박에 도들 깨칠 수도 있었다. 자장스님을 만나 뵙고 중이 되러 왔다고 하자 소임所任 스님이 몸을 당기며 물었다.

“잘 오셨습니다. 자장 스님과 안면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누구 소개를 받고 왔습니까?”

“아닙니다.”

또 물었다. ‘우리 절에 아는 스님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불교계에 아는 큰스님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버님이 무얼 하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마奈麻 벼슬합니다.’ ‘그럼 육두품이시군요?’ 그러면서 소임 소님은 다 알았다는 듯 몸을 뒤로 젖혔다.

“자장스님은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더욱이 지금을 출타 중이어서 몇 달 후에나 돌아옵니다. 그 동안 해우소(화장실) 청소나 하시며 지내시다보면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소임 소님은 일어섰다. 여기도 인맥이 있고 품계도 있구나. 설서당은 인맥도 없고 품계도 육두품이었다. 신라에는 성골 진골 하는 골품제骨品制가 있었는데 성골聖骨이 임금이 되고 진골眞骨이 장관이 된다면 육두품六頭品은 차관까지만 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도 하급 관리인 내마奈麻 벼슬에 그쳤다.

‘부처 법은 평등하다고 했는데. 부처 법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누구든지 깨치면 되지 않는가. 깨침에 순서가 있다는 말은 아니니.’ 설서당은 일어섰다.

‘기왕 온 김에 자장암慈藏庵이나 구경하자.’ 통도사 뒤쪽에 있는 자장암을 오르니 이미 참배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난생 처음 금와보살金蛙菩薩을 보았어! 이제는 평생소원을 이룬 것 같아!”

“나도 그래. 몇 년 만에 처음 보았어. 올해는 내 소원이 다 이루어질 거야!”

금와보살이라! 신통력이 대단한 보살이구먼. 설서당은 걸음을 재촉했다. 도중에 내려오는 사람들 모두 감개무량한 모습이었다.

자장암에 이르니 암자는 자그마했다. 그러나 앞이 트여 시원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냥 조용한 절간뿐이었다. 모두 다 다녀간 모양이었다. ‘금와보살이라, 분명히 만났다고 했는데.’ 혼자 중얼거리는데 누가 대뜸 시비를 걸었다.

“날 찾는 사람이 서당이야 몽당이야?”

서당誓幢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이름으로 귀한 집 아들에게 붙인다. 몽당은 당연히 몽당연필 같은 것으로 형편없다는 뜻이고. 자장암 뒤쪽에서 난 듯해 그쪽으로 가보니 역시 아무도 없었다. 한길 남짓한 바위만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아래는 조그마한 옹달샘이 있고. ‘내가 헛소리를 들었나.’ 중얼거리는데 또 소리가 들렸다.

“헛소리는 무슨 헛소리야. 내가 말했는데!”

그래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설서당은 바짝 긴장했다. 귀신인가?

“긴장하긴 뭘 긴장해. 내가 무슨 귀신인가? 바위벽을 보라고, 바위벽을! 그러면 내가 보여. 눈이 있어도 못 보니 형편없는 중생이네.”

그제야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바위벽 중간쯤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다. 그 안에서 작은 청개구리가 얼굴을 내밀며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금와보살이야. 쉽게 말하면 청개구리지. 청개구리 처음 봐!”

여전히 시비조다. 금와보살이 겨우 청개구리라. 기대가 싹 무너졌다. 소임 스님한데도 기분이 언짢았는데 청개구리한데도 시비를 당하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청개구리를 후려치려고 막대기를 집어 들자 청개구리가 더욱 약을 올렸다.

“죽여 봐! 죽여 봐! 어디 살생해봐! 중은 고사하고 중놈도 못 되겠다! 그래 가지고 무슨 도를 깨친다고? 길거리 거지되기 딱 알맞겠다. 지옥에나 탁 떨어져라!”

청개구리는 거침없이 내쏟았다.

“나는 청개구리라 죽어도 상관없어. 이 다음에 천당에 태어나면 되니까. 그런데 너는 뭐야? 명색이 인간인데 절을 받아봤나, 시주를 받아봤나, 공양을 받아봤나, 도무지 받아본 게 있어야지. 아니 지금 오고갈 데조차도 없잖아?

나는 비록 축생이지만 인간들이 나만 보면 깜빡 죽어, 합장을 하지 않나, 절을 하지 않나, 시주를 하지 않나, 공양을 하지 않나. 그런데도 날 비웃어! 거지 중에도 상거지에다 기생오라비 같으리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기는 저 청개구리보다 훨씬 못했다. 아니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설서당은 고개를 숙이고 말 한마디 못한 채 돌아섰다.

 

    

[대안 만남] 한껏 당한 설서당은 서라벌로 향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는지 모두들 종종 걸음을 쳤다. 그런데도 자기는 갈 곳이 없었다. 배는 고팠고 등에 달린 걸낭도 무거웠다. 길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행복하세요, 편안하세요, 부자 되세요.”

대안大安 스님이 외치는 소리였다. 설서당도 대안스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서라벌 사람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도무지 구애됨이 없는 스님이기 때문이었다. 되는 대로 입고, 있는 대로 먹으며, 눕는 대로 잤다. 옷차림도 괴상하고 모습도 이상해서 어찌 보면 거지 중 같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성자聖者라 불렀다. 구리 밥그릇을 두들기며 밥을 얻고는 ‘복 받으세요, 행복하세요’ 하며 축원을 하기도 하고, 흥겹게 춤도 추어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 밥이 남으면 이사람 저사람 구분 않고 나눠주었다. 시샘이니 시비니 욕심이니 교만이니 하는 것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대안스님이 설서당 앞으로 오더니 힐끗 쳐다보고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오갈 데 없이 멍청히 서 있는 꼴이 땡 중이 되려나본데, 차라리 나 같은 거지 중이 되는 것이 어때? 밥은 얻어먹을 수가 있거든. 어때 배고프지?”

사실 배가 고팠다. 점심을 굶은 데다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설서당이 아무 소리 못하자 대안은 설서당을 한 바퀴 빙 돌며 아래위를 죽 훑어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광명운대光明雲臺라! 밝고 빛나는 구름바다라. 그 보기보다 큰데.’

“내가 출세시켜줄까? 차관 정도는 문제없어. 내가 이래봬도 나라 임금을 바로 알거든. 어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나라 임금도 그를 좋아했다.

“저는 중이 되렵니다.”

설서당이 말하자 대안은 ‘그래!’ 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잘 생각해봐. 자네 같은 상相은 잘 안 나와. 하늘이 내린 사람한데만 나와. 중 되기 아깝잖아. 사회에서 출세해서 결혼해 멋지게 사는 것도 좋잖아? 어때?”

그래도 설서당이 중이 되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면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설서당이 따라나서자 ‘오늘은 실컷 먹게 생겼어.’ 하며 뭐가 그리 좋은지 연방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춤을 추네)

나와 우주 있고 없음 가지런히 같은 거라

이 몸 또한 있다 없다 말할 수가 없는 거군

그렇다고 이내 몸을 팽개칠 수 없잖은가?

이럴 때는 노래 좋지 한바탕 노래하네.

나와 우주 있고 없음 가지런히 같은 거라

세상 또한 있다 없다 말할 수가 없는 거군

그렇다고 이 세상을 팽개칠 수 없잖은가?

이럴 때는 춤이 좋지 한바탕 춤을 추네.

 

  

[기생 집] 큰 기대는 안 했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大安이 걸음을 멈춘 곳은 어느 작은 기생집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안이 안으로 들어서며 ‘계시오.’ 하자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중년 주모가 시큰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직 초저녁이라 좀 더 멋진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대안이란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새파란 총각을 대동하고 들어선 대안을 그냥 물리칠 수가 없어 마지못해 ‘안으로 드세요.’ 했다. 눈치를 챘는지 대안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오늘은 큰 인물 한 분을 모시고 왔소. 광명운대光明雲臺란 상을 가진 분이요. 광명운대가 뭔지 아시요. 밝고 빛나는 구름바다라!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이란 뜻이지. 바로 이 총각이 그 사림이니 한 상 잘 차려오시오. 내가 나라 임금을 소개시켜준다고 해도 거절한 사람이요.”

설서당은 민망했다. 자기가 이렇게 초라한 기생집에서 팔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시큰둥한 주모가 설서당의 아래위를 죽 훑어보기만 하자, 곡차(술) 한잔 얻어먹기 힘들게 생겼던지 대안이 또 떠들었다.

“거기다 이제까지 공부만 한 숫총각이요. 이런 기생집은 난생 처음이고. 주모 같은 사람한데는 과분하지. 암 과분하고말고.”

주모가 보기에도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긴 머리에 불안한 듯, 조심스러운 듯,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숫총각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주모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대안스님이 데리고 오신 분이니 어련하시겠어요.”

주모가 일어서자 대안이 못을 박았다. ‘기생집은 난생 처음이니 잘만하면 평생 단골이 될 거요.’ 잠시 후 주모는 과연 푸짐하게 차린 상을 들고는 젊은 기생 하나와 함께 들어섰다.

곡차(술)가 들어가자 대안은 젊은 기생을 덥석 안아 자기 무릎에 턱 앉혔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젊은 기생은 설서당만 쳐다보았다. 설서당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몰랐다.

그 사이 주모가 대신 설서당 옆에 앉아 술을 따라서 입에 갖다 대기도 하고, 아양을 떨며 얼굴을 맞대기도 하고, 여기저기 함부로 만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설서당은 몸을 움찔움찔 했다. 주모는 더욱 재미있다는 듯 연방 까르르 웃으며 설서당을 갖고 놀았다. 설서당은 어머니 외에 난생 처음으로 다른 여자와 살갗을 맞대보았다.

 

 

[대안 토굴] 잠시 후 다른 손님들이 들어서자 갈 때가 되었는지 대안이 일어섰다. 설서당을 보고 덕분에 잘 먹었다고 인사하며 이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한참을 걸어 자기 집이라며 들어선 곳은 서라벌 외곽 산기슭 작은 토굴이었다. 너럭바위 뒤에 작은 터를 닦아 간신히 집을 얽었다. 몸을 굽히고 안으로 들어가니 방은 그런대로 두 사람은 앉을 만했다. 문을 여니 먼 산이 가로막아 아늑한 멋도 있었다.

어쨌든 속을 채웠으니 살 것 같았다. 다시 밖으로 나와 배를 쓰다듬으며 너럭바위에 앉으니 비로소 총총히 빛나는 별이 보였다. 대안이 물었다.

“내일부터 나와 함께 다니려오? 그러면 밥은 얻어먹고 잘하면 기생집도 드나들 수 있다오.”

설서당이 대답을 않자 대안이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일 아침 영취산靈鷲山 늙다리 중을 찾아가보소. 혹 받아줄지 모르니. 그럼 나는 이만 자야겠소. 내일 또 밥 얻으러 가야 하니.”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 코를 골았다.

‘어떻게 한다?’ 설서당은 고민에 빠졌다. 하루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곤은 몰려왔다. 그 동안 대안을 닮았는가. 이내 잠이 들었다.

밤중에 어슴푸레 눈을 뜨니 옆에 누워 있어야할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대안은 저 안에서 벽을 보고 좌선을 하고 있었다. ‘아하, 좌선은 저렇게 하는구나!’

그쯤 생각하고 또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오는 것 같았다. 부스스 일어나니 역시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문을 여니 이번에는 대안이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앞으로 다가서니 비로소 대안의 참 모습이 보였다. 여명黎明을 받아 밝고 환한 얼굴에 자애롭고 감사해하는, 그 어느 것도 거리낌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시장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자라 하는구나.’ 이해가 갔다. 설서당은 저도 모르게 합장하며 인사를 올렸다.

“스님,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이제 새벽이 밝아오는 것 같습니다.”

“뭐, 새벽?”

대안이 놀란 듯 눈을 떴다. 설서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금방 뭐라고 했지?”

“새벽이 밝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래 맞아. 새벽이야, 새벽! 그것 좋지!”

그러면서 말했다.

“자네 법명法名이 없지? 이제부터 자네 법명이 새벽이야! 한자로 쓰면 새부塞部지. 새벽 같이 살기 바라네.”

그러면서 좋아, 좋아 하면서 혼자 좋아했다. 어제 저녁에 남긴 밥으로 대충 아침식사를 때우자 대안은 자기가 끓였다며 따끈한 차를 내놓았다. 처음으로 손님 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드시게, 새벽스님.”

말소리도 하게에서 하시게로 바뀌었다. 둘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향긋한 차를 음미했다. 이제 떠날 준비가 된 모양이었다. 대안이 구리밥그릇을 들고 일어서자 새벽(설서당)도 걸랑을 짊어지고 일어섰다.

풀 이슬이 다 마르지 않아 한동안 말없이 조심스레 내려왔다. 아래 마을이 보이자 드디어 대안 거지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구리밥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중생 노래)

중생을 멀리 말라 부처를 찾지 말라.

중생이 부처이고 부처가 중생이니

중생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아니했고

부처도 단 한 번도 변하지 아니했네.

깨치면 하나요 못 깨치면 둘이라.

중생을 멀리하라 부처를 찾아내라

중생은 중생이고 부처는 부처이니

중생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아니했고

부처도 단 한 번도 멈추지 아니했네.

깨치면 하나요 못 깨치면 둘이라.

 

한바탕 노래를 하고 나니 갈림길이었다. 대안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저쪽으로 가서 그 늙다리 중을 만나보시구려. 나는 이쪽으로 가서 밥이나 얻을 테니.”

새벽(설서당)이 고맙다고 합장을 하자 대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도 좋다는 뜻이었다. 한참을 가던 새벽이 뒤돌아 볼 때까지 대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새벽이 다시 길을 걸어 저 멀리 사라지자 대안은 구리밥그릇을 땅에 내려놓고는 새벽을 향해 합장하며 말했다.

“새벽이라! 좋고도 좋습니다!”

 

 

[낭지스님] “얼마나 늙었기에 늙다리 중이라 하는 거야.”

마을 사람들에게 영취산靈鷲山 노스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차마 늙다리 중이라 할 수가 없어 노스님이라 했다. 가까이 있는 반고사磻高寺에 들렀더니 마당에서 서성이던 한 스님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저 산 위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고 어떤 스님 한 분이 거처한다고 들었는데 여태까지 본 적은 없습니다. 이제까지 내려오는 것도 보지 못했고 올라가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암자 이름도 모르고 스님 이름도 모르며 얼마나 오래됐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 스님을 말할 겁니다.”

고맙다고 인사한 후 그를 찾아 나섰다. 방향을 잡고 산을 오르니 처음에는 길이 있었으나 이내 흐려졌다. 힘겹게 오르니 나무 가지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불쌍했던지 말을 걸었다.

“새벽스님, 나를 따라오시지요. 내가 낭지스님께 안내하리다.”

아하, 그 스님 이름이 낭지朗智구나.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어쨌든 이름을 알았으니 다행이야.

“암자 이름은 뭡니까?”

“원래 이름은 없으나 중국 사람들은 혁목암赫木庵이라 합니다.”

중국사람? 혁목암? 모두가 생소했다. 땀에 젖고 발아래 시야가 트일 즈음 까마귀가 말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혁목암이 보입니다.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까마귀는 훌쩍 날아갔다. 새벽은 저도 모르게 까마귀에게 합장했다. 난생처음 축생에게 합장을 한 것이었다.

얼마 후 마당에 들어서니 역시 너럭바위가 있었고 뒤에 작은 초옥이 보였다. 현판은 없었으나 꽃은 가득했다. 어떤 중늙은이 혼자서 뒷짐을 지고서 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삼베옷을 걸쳤지만 고고하고 단아했다. 새벽이 물었다.

“저, 대안스님의 소개로 낭지 큰스님을 뵈려 왔습니다.”

“뭐, 낭지 큰스님? 그래 그 거지중이 나더러 큰스님이라 하더냐?”

아차, 이분이 낭지스님이로구나! 늙다리중이라 해서 엄청 늙은 줄 알았는데 겨우 중늙은이라! 그리고는 또 놀랐다. 실은 대안스님이 늙다리중이라 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것까지 알까? 어림없지. 시치미를 뚝 뗐다.

“예, 큰스님이라 했습니다.”

“어, 이 돌중 봐라. 출가도 하기 전에 거짓말은 이미 도가 텄구나. 그래 나보고 정말 큰스님이라 했더냐?”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거짓말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스님,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올해 법랍이 어찌 되시는지요?”

“어쭈, 이제는 궁지에 몰리니까 말을 돌릴 줄도 아네. 그래도 먹물은 묻은 모양이지. 법랍法臘을 다 아니. 그래 내 일러주지. 올해가 여기 온지 102년째야. 그 이전은 나도 몰라. 내 나이를 나도 모르거든. 그런 걸 알아서 뭘 해?”

법랍法은 스님이 된 나이를 말한다. 18살에 출가했다면 지금 120살이라는 말이다. 저 나이에 저렇게 젊다니. 대안이 늙다리중이라 부를 만도 했다. 새벽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삼배 예를 올렸다.

“대답도 못하는 돌중이 예의는 아는군. 그래 이름은 뭔가?”

“대안스님이 새벽이라 했습니다.”

“새벽! 그 거지 중이 그래도 이름 하나는 그를듯하게 지었네. 그나저나 나 지금 청량산淸凉山에 설법 들으러 가야하니, 그 동안 반고사로 내려가서 공부 좀 하게. 마음의 때를 좀 벗기라고. 능력이 되면 초장관문初章觀文도 짓고. 뭘 좀 알아야 돌중을 하든지 땡 중을 하든지 하지.”

그러고는 구름을 부르더니 그것을 타고 서쪽으로 휙 날아갔다. 청량산은 중국에 있는 산 이름이다. 구름을 타고 중국 청량산에 가서 설법을 듣는다! 놀란 새벽은 다시 합장했다. 그러나 낭지의 구름 타는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보았다.

‘저렇게 타는구나.’

 

 

[사복 만남] 반고사로 돌아온 새벽은 공부에 전념했다. 정식으로 머리도 깎았다. 그동안 애만 태우던 어머니가 뒤를 봐줘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사실 어머니는 유성流星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새벽을 뱄고, 오색구름이 땅에 덮이는 꿈을 꾸고 새벽을 낳았다. 어머니는 그런 그가 사회에서 크게 성공하길 바랐다. 그랬더니 중이라! 처음에는 반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여 그저 아들이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덕분에 새벽은 반고사磻高寺 경전뿐만 아니라 당시 국립불교대학이라 할 수 있는 분황사芬皇寺 경전까지 다 훑을 수가 있었다. 거기다 불교에서 꺼리는 유교儒敎 도교道敎 선교仙敎는 물론 도참圖讖 비기秘記 참서讖書까지 가리지 않고 다 훑었다. 그러자 몇 년 후에는 초장관문初章觀文을 지을 수가 있었다. 초기 수행자가 처음으로 마음 닦는 법을 쓴 책이었다.

나름대로 자신이 생긴 새벽은 초장관문을 곱게 싸서 낭지를 찾아 나섰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산을 오르다 힘이 들어 너럭바위에 앉았다. 주위를 감상하는데 누가 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니, 저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머리칼이 쭈뼛 섰다. 얼굴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도저히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 방구석에 나뒹굴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쪽으로 오면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어이, 서당薯幢 오랜만이야. 그 동안 잘 있었나. 나 사복蛇福이야.”

“아니 형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참말로 사복 형이구나. 그 사복 형이 어떻게 여길 다 왔지? 어떻게 말을 다 하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그는 서울 만선북리에 살았는데 날 때부터 지체장애아여서 12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다. 항상 뱀 같이 방에 누워있기만 해서 이름이 사복蛇腹 곧 뱀 배였다.

또 그는 애초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과부인 어머니 홀몸에서 태어났다. 서당은 어릴 때 그와 친했는데 그때마다 느낀 점은 장애아치고는 참으로 얼굴이 밝고 환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형으로 따랐다. 그런 사복이 이 험한 산길을 내려오면서 자기를 부르다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진짜 사복 형이 맞아요?”

“그럼 맞지. 가짜 사복도 있나.”

옆에 앉는 것을 보니 틀림없는 사복이었고 두 다리도 멀쩡했다. 서당이 놀란 표정을 짓자 사복이 설명했다. 사실 그간 와선臥禪을 좀 했다고.

불교에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란 말을 쓴다. 가고 서고 앉고 눕는 것을 말하는데 곧 일체 모든 행동을 뜻한다. 이 일체 모든 행동에서 수행하라는 뜻이다. 그 중 자기는 누워서 하는 선禪 곧 와선臥禪을 주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밝았구나. 다소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그 동안 사복 어머니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와선한다고 어머니를 그렇게 고생 시켜!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사복이 또 설명했다.

이야기인즉 사복과 서당은 전생에 함께 다니며 불경을 공부했는데, 그때 자기 어머니는 경전을 싣고 다니던 암소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짐승이지만 도를 닦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자기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미련이 남아있고, 또 저 어머니(암소)까지 해탈시키기 위해 일부러 남편 없는 과부의 몸으로 태어나 함께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저 어머니의 수행이 거의 다 끝나간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짐승도 도를 닦으면 사람이 되고 해탈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고, 사람도 수행이 깊으면 남의 생사까지 자유자재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새벽(서당)이 머뭇거리자 사복이 말했다.

“낭지가 글을 지으라고 했던가?”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자 어디 한번 보자고 했다. 자기가 미리 한번 봐주겠다고. 조금 전 낭지를 만나고 왔는데 여간 깐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복의 말이라 새벽은 고이 싼 보자기를 풀고 초장관문을 꺼내 건네주었다. 사복이 죽 훑어보더니 몇 군데를 지적했다. 새벽이 알았다며 수정하자, 끝에 시 한 수를 지어 넣으라고 했다. 그래야 품위가 선다고. 새벽은 그의 말대로 시 한 수를 지어 넣었다.

 

서쪽 골짜기 작은 중이 머리를 조아리며,

동쪽 봉우리 큰스님께 예를 올립니다.

작은 티끌을 불어 영취산에 보태고,

잔 물방울을 날려 용연에 던집니다.

 

 

[낭지 호통] 영취산靈鷲山은 원래 부처님이 설법하신 인도의 명산인데 여기서는 부처 법을 뜻하고, 용연龍淵 역시 용의 못인데 여기서는 역시 부처 법을 뜻한다. 이제 자기도 초장관문을 지었으니 곧 부처 법에 일조했다는 뜻이다.

사복이 내려가자 새벽은 다시 산을 올랐다. 한참 만에 혁목암에 도착하니 낭지는 예전처럼 뒷짐을 지고 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맨땅에 엎드려 정중하게 삼배의 예를 올리니 초장관문부터 내놓으라며 손을 내밀었다. 두 손으로 바치니 죽 훑어보고는 호통부터 쳤다.

“이런! 머리만 굴리고 수행은 하나도 없구먼. 머리로만 글을 썼어, 머리로만! 수행이 따라야지, 수행이! 수행이 빠진 글은 헛소리일 뿐이야.”

또 말했다.

“뭐, 어디다가 뭘 보태고, 어디다가 뭘 던져! 이거 순전히 교만덩어리구먼. 이런 글을 가지고도 뭘 보태고 뭘 던진다고 하나!

혹시 오다가 사복 그 얼간이 만난 것 아니야? 제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면서 멍청한 암소까지 건지겠다고 떠드는 그 한심한 얼간이 말이야! 그러니 글이 이 모양이지.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글을 다시 써와!”

낭지는 거침없이 내뱉았다. 남의 자존심까지 건드려 가면서 말이다. 새벽은 할 수 없이 책을 챙겨 다시 내려왔다. 새벽이 내려가자 낭지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 사복 얼간이가 그래도 한 건 했어!”

새벽의 교만을 꺾을 수 있는 빌미를 잘 만들어주었다는 뜻이었다. 끝에 시를 쓰게 한 것 말이다. 물론 글 내용은 그만하면 됐다는 뜻이었다.

반고사로 돌아온 새벽은 다시 공부와 수행에 전념했다. 이번에는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방법을 취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또 한권의 책이 나왔다. 안신사심론安身事心論이었다. 몸도 다스리고 마음도 다스리는 책이었다.

이 책을 들고 다시 혁목암으로 올랐다. 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는 낭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서려는데 서쪽 하늘에 작은 구름 조각이 보였다. 가까이 오는데 보니 낭지였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또 중국 청량산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낭지가 땅에 내리자 새벽은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제는 낭지가 구름을 타는 모습과 내려오는 모습을 다 보았다.

새벽은 예전처럼 정중하게 삼배의 예를 올렸다. 낭지도 이제는 허리를 반쯤 굽혔다. 새벽의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새벽이 새로 지었다며 안신사심론을 올리자 낭지는 받아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잠시 후 새벽을 보고 말했다.

“새벽을 한자로 옮기면 어떻게 되지요?”

새벽이 머뭇거리자 낭지가 혼자 말했다.

“여명黎明 시효始曉도 있지만 원효元曉도 있지요, 처음으로 으뜸으로 밝아온다는 뜻이지요. 이제부터 스님의 법호는 원효입니다. 새벽녘 밝아오는 햇살같이 온 세상을 두루두루 넓게 밝히시기 바랍니다.”

낭지가 새벽에게 원효라는 법명을 내렸다. 이제 원효가 된 새벽은 다시 삼배의 예를 올렸다. 낭지가 말했다.

“반고사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시오. 온 세상을 유람하며 넓고 크고 울타리 없는 공부를 하시오. 거리낌 없는 공부를 하시오. 그러고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시기 바라오.”

원효가 예를 하고 내려가자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서있던 낭지가 두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원효보살님!”

 

 

[암자 수행] 반고사로 돌아온 원효는 짐을 챙겼다. 낭지의 말대로 세상을 떠돌며 울타리 없는 공부를 하기로 했다. 일주문을 나서며 그 동안 초기 공부를 하게 해준 반고사와 스님들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오긴 했으나 또 갈 곳은 없었다. 갈림길이 나타났다.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한가운데 세웠다. 동쪽으로 넘어졌다. 원효는 무작정 동쪽으로 걸었다. 저녁 무렵 도착한 곳은 어느 큰 산 아래였다. 산세가 수려해 장차 대찰大刹이 들어설 명지였다. 이런 산에는 작은 절이라도 있기 마련, 원효는 어렵잖게 절을 찾았다.

잠시 묵자고 했더니 혼자 사는 늙은 스님이 머뭇거렸다. 허드렛일은 자기가 도맡아서 하겠다고 하자 그러면 좋다고 했다. 귀퉁이 방을 얻어 짐을 푸니 마음이 편안했다. 수행할 장소는 마련된 셈이었다.

원효는 행자 노릇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제 그에게는 수행만이 중요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혼자 앉아 수행에 전념했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배불리 먹고 따뜻한 방에 혼자 앉으니 끓어오르는 정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창 젊은 나이! 아리따운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았고, 기생집 여인의 향내가 진동하는 것 같았으며, 심지어 주변 모든 것이 여자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원효는 밖으로 뛰쳐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속으로 소리쳤다.

“나는 새벽이다! 나는 원효다!”

어쨌든 원효의 명성은 바람을 탔다. 도가 높다는 것이 바람을 탄 것이 아니라, 젊은 미남스님이라는 것이 바람을 탔다. 신도들이 갑자기 늘었다. 대부분 여신도들이었다. 게 중에는 또래 처녀도 있었다. 그 처녀는 자기가 불공드릴 때만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가까이 와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쿠 저게 처녀 엉덩이로구나.”

원효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저 엎드린 모습을 도저히 똑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처녀도 자기가 싫지 않은지 될 수 있으면 가까이 와서 거들어 주고 도와주려 했다. 그러다 살짝이라도 부딪치면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밤 중 좌선을 한답시고 혼자 앉으니 온통 그 처녀 생각뿐이었다. 그 처녀가 도대체 선녀냐 마녀냐? 그것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했다.

아하, 그녀는 선녀도 마녀도 아니구나. 그녀는 단지 그녀일 뿐이구나.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뿐이구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그녀가 선녀가 되고, 내가 저렇게 생각하면 그녀가 마녀가 되는 것뿐이구나. 이에 원효는 ‘나는 원효다.’를 외쳤다. 그리고는 그 처녀를 선녀로 만들기로 했다.

 

 

[바위굴 수행] 원효는 또 다시 짐을 챙겼다.

“이번에는 멀리 서쪽 바닷가로 가자.”

지팡이 점도 치지 않았다. 명실상부 운수납자雲水衲子, 발길 닫는 데로 가는 중이 되었다. 며칠을 걸어 도착한 곳은 서해 변산반도였다. 우선 바다 구경부터 실컷 했다. 이제는 급할 것이 없었다. 여자라는 것을 벗어나니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 절이 있었으나 들르지 않았다. 곧 바로 산 위로 올라갔다.

산 위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이고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가슴이 후련했다. 갈매기가 여기까지 날아와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우선 거처할 곳을 찾아야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굴이 뚫린 바위가 있었다. 제법 큰 굴이라 앉는 것을 물론 누울 만도 했다.

‘이런 바위굴이 다 있다니. 부처님이 마련해주신 것 같구나.’ 들어가 앉아보니 발아래는 산하가 펼쳐졌고, 뒤는 막혀 짐승을 막아주었다. ‘여기서 깨쳐야지! 깨치기 전에는 떠나지 않으리라!’ 원효는 굳게 결심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수행이 시작되었다. 여기는 집도 없고 절도 없으며 부모 형제는 물론 도반道伴도 없고 신도信徒도 없었다.

다행히 물은 저 아래 계곡에서 길러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먹는 문제였다. 가장 초보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이었다. 동쪽 암자에 있을 때는 너무 잘 먹어 정욕 때문에 싸웠는데, 여기서는 배고픔 때문에 싸워야 했다. 나무 열매 풀뿌리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되는 대로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문제가 겹쳤다. 이번에는 추위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데도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었다. 누더기 옷뿐이었다. 그것도 넉넉지 못했다. 칡넝쿨을 얽어 대충 옷을 해 입었다. 그 사이 머리는 깎지 않아 산발이 되었고 얼굴은 돌보지 않아 초췌해졌으며 몸은 수축해 갈비뼈가 드러났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는가? 도道를 닦아 무얼 하겠다는 건가? 도대체 도가 있기나 한가? 사회에서 잘하면 성공할 수도 있다. 관리나 화랑이 될 수도 있고. 그러면 결혼해서 편안하게 살 수도 있다. 그러면 됐지, 내가 무얼 잘 났다고 이 고생인가? 남들처럼 그냥 살다가 그냥 죽으면 되지!’ 그러다가 곧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야, 그런 것은 다 끝이 있어. 언젠가는 죽고 없어지거든. 결국 허무한 것이거든.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않아. 나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원해. 모든 허무한 것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진리 말이야.’ 그러고는 노래를 지어 마음을 다잡았다.

 

(발심수행장)

배고프면 열매 따서 주린 창자 달래주고,

목마르면 개울물로 목마름증 식혀준다.

맛난 음식 보양해도 이 몸 깨짐 정해졌고,

편안하게 보호해도 목숨 필히 끝나기만.

메아리친 바위굴을 염불하는 도량 삼고,

슬피 우는 기러기를 마음속의 벗을 삼아.

꿇은 무릎 얼음 되도 불 죌 생각 아니 내고,

주린 창자 끊어져도 먹을 생각 아니 내네.

한세상이 얼마라고 닦지 않고 헛 보내며,

헛된 몸이 얼마 산다 일생 한 번 닦지 않나.

지금 몸은 끝이 있어 다음 몸은 어쩔 텐가.

급하구나 급하구나 어찌 아니 급하겠나.

 

 

[축생 제도] 어느덧 매서운 겨울도 지나가고 봄이 오는 것 같았다. 만물도 소생했다. 따스한 햇살이 이렇게 고마운 줄 몰랐다. 한겨울 무사히 지낸 것을, 따스한 봄소식을 전해준 것을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저 미끄러운 길도 결국 녹는구먼.”

겨우내 오르내리느라 무던히도 애를 먹였던 좁은 비탈길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새벽마다 부처님께 드릴 청정수淸淨水를 긷기 위해 저 비탈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내렸다. 그때마다 자빠지고 엎어지고 했다. 그러던 길이 봄이 되니 별 수 없이 녹는 것이었다.

산발한 머리였지만 아래 계곡에서 오랜만에 목욕도 하고 바위굴 장막도 걷고 봄을 만끽하며 앉았다. 마음이 집중되었다. 이제는 이런 좌선이 일상화 되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듣지 못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 함께 잡아먹자. 저런 청정한 사미(중)는 고기 한 점만 먹어도 천년을 산데.”

“아니야, 어떻게 저런 고상한 사미를 잡아먹나? 무슨 죄를 지으려고.”

“그럼 독을 뿜어 혼이라도 빼먹자. 혼이라도 빼먹으면 마왕은 될 수 있다고.”

“마왕魔王? 그런 것 해서 뭣해. 괜한 업만 짓지.”

“그럼 피 한 방울이라도 빨아먹자. 피 한 방울도 백년은 산데.”

“그래!”

여럿이 모여 무슨 논의를 하는 것 같은데 의견이 잘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슨 일인가 하고 마음을 집중시켜보니 산 속의 온갖 짐승과 곤충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자기를 잡아먹을까 말까하고 말이다.

지난 가을 여기에 처음 올 때는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 들리는 것이었다. 거기다 마음을 집중시켜보니 그들이 회의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다 보이는 것이었다. 원효는 어떻게 하나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의견들이 팽팽히 맞서 좀체 결론을 못 내고 있었다. 가령 늑대가 잡아먹자고 하면 호랑이가 저런 사미를 어떻게 잡아먹느냐고 반대하고, 지네가 독을 뿜어 혼이라도 빼 먹자고 하면 두꺼비가 그것이 죽이는 일 아니냐며 반대하고, 모기가 피 한 방울이라도 빨아먹자고 하면 거미가 뭘 그렇게까지 먹으려 하느냐고 반대하는 식이었다. 결국 결론을 못 내고 티격태격했다. 그러자 개미가 말했다.

“내가 보니 저 사미의 머리가 산발이야. 이제 봄이 됐으니 좀 깔끔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개미들이 저 사미의 머리카락을 잘라 깨끗하게 삭발해드리면 저 사미도 깔끔해서 좋고 우리도 머리카락을 가질 수 있어서 좋지 않을까? 고기나 피보다는 못하지만 말이야.”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모두들 찬성했다. 원효는 놀랐다. 저 개미들이 내 머리를 깎는다고? 어떻게? 그건 그렇고. 이제 보니 저 축생미물들에게도 저런 지혜가 있구나! 이제까지 축생은 축생이고 미물은 미물뿐이라 생각했는데.

“천지동근天地同根이라. 천지가 한 뿌리로구나. 구분이 없구나.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모두에게 부처될 성질이 있구나. 저런 미물들에게도 저런 지혜智慧가 있으니 어찌 부처될 성질이 없겠는가?”

잠시 후 모든 짐승과 곤충들이 원효가 앉아있는 바위굴 앞에 모여들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빙 둘러섰다. 원효는 일부러 가부좌를 튼 채 꼼짝 않았다. 한참을 지났는데도 눈을 뜨지 않자 참다못한 늑대가 캐갱 소리를 냈다. 그러자 호랑이가 눈짓을 해서 못하게 했다. 무료했던지 짐승과 곤충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원효처럼 가부좌를 트는 짐승도 있었다. 그제야 원효가 눈을 떴다.

“오랜만이외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산발한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짐승들은 모두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원효의 숭고함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그때 개미 한마리가 일어서서 몸을 굽히며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보시지요.”

개미가 말했다. 자기들이 긴 머리카락을 깎아드리겠다고. 원효가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다고 하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며 개미들은 원효의 등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원효는 선정에 들었다.

수백 수천 마리 개미가 기어올랐는데도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단번에 밑동까지 자를 수가 없었다. 개미들은 머리카락 한 올을 몇 군데로 나누어 여러 번 잘라야 했다. 그러자 온 머리가 온통 개미들로 뒤덮였다. 그 모습을 보고 누가 말했다.

“머리 모습이 꼭 부처님 상투 같네!”

“그러게 말이야. 꼭 닮았어.”

그러면서 모두 일어나 삼배의 예를 올렸다. 석가모니부처가 도를 이룬 후 상투머리를 하고 계셨는데 지금 원효의 모습이 그 모습과 꼭 닮았다는 것이었다.

한참 만에 머리를 다 깎았다. 개미들도 다 내려왔다. 원효도 다시 까까머리 중이 되었다. 머리카락 한 조각씩을 나눠가진 짐승과 곤충들은 원효가 한마디 해주길 바랐다. 원효가 말했다.

“모두에게 부처될 성질이 있으니, 여러분도 도를 닦아 다음 생애에는 사람이 되십시오.”

짐승과 곤충들에게 사람이 되라고 축원해준 것이었다. 그러자 모두들 감사해 하며 흩어졌다.

 

 

[수신水神] 모두 돌아가자 원효는 물을 길으려 아래 우물로 내려갔다. 이제는 익숙한 길이 되어 힘들지 않았다. 우물 가까이 오니 어떤 말소리가 들렸다. 다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상의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여기는 올 사람이 없는데.’ 조심스레 다가가니 백발노인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하니 저쪽에서 놀라며 먼저 허리를 굽혔다.

“저는 이 산의 산신山神이고 이분은 수신水神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산신이란 분은 허연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왔고, 수신이란 분은 희끗희끗한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왔다. 다투시는 것 같던데 하니 산신이 말했다. 사실 다투고 있다고. 그러면서 말했다.

원효스님이 물 길러 다니는 것이 힘들어 보여서 저 바위굴 안에 석간수石間水를 뚫어주자고 했더니, 수신水神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일종의 수행이라고. 그래서 결론을 못 내고 옥신각신한다는 것이었다. 원효가 말했다.

“뚫어도 좋고 뚫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두 다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뚫어주시면 후세 사람들이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제 떠날 것입니다.”

그러자 수신이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뚫어드리겠습니다.’ 하며 앞장섰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올라서는 바위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에 계셨군요.’ 하며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잠시 후 지팡이 끝으로 한쪽 모서리를 둥글게 긁었다. 바위는 쉽게 파졌다. 표주박이 뜰 정도가 되자 이번에는 지팡이로 모서리를 두어 번 꽝꽝 내리쳤다. 이내 ‘스르르’ 하는 물소리가 들리고 모서리에서 석간수가 흘렀다. 수신이 말했다.

“땅속 저 바위에서 끌어온 물입니다. 잘 드시고 도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예 고맙습니다. 이 물은 후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원효도 정중해 예했다. 두 사람이 사라졌을 때는 석간수 뚫는 법을 이미 다 터득했다.

 

 

[대마왕과 차] 또 떠날 준비를 했다. 한 곳에 오래 있으면 게을러지는 법이다. 크게 깨치려면 크게 닦아야 한다. 원효는 짐을 챙겨 나오며 그 동안 자기를 지켜준 바위굴에 감사의 예를 올렸다.

‘이번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자. 그래서 크게 깨쳐보자.’ 며칠을 걸어 도착한 곳은 천 길 낭떠러지 절벽 아래였다. 바위가 미끄러워 나는 새가 아니면 그 무엇도 올라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여기가 좋겠어.’ 그러면서 구름 조각을 불러 올랐다. 물론 낭지스님한데서 배운 것이었다.

꼭대기쯤 이르자 지팡이 끝을 둥글게 돌려 굴을 파기 시작했다. 굴은 쉽게 파졌다. 사람이 들어가서 앉고 누울 정도가 되자 이번에는 한쪽 모서리를 파고 쾅쾅 내리쳤다. 이내 석간수가 흘렀고 일정량만 고였다. 모자라거나 넘치지가 않았다. 꼭 쓸 만큼만 나왔다. 이 모두가 수신水神한데서 배운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한 수 높은 것이었다.

이제는 여유롭게 먹을거리도 준비했다. 구름을 타고 오르내리며 머루 다래 개암 버섯 참마(薯) 등등을 골랐다. 그리고는 좌선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곳은 애초 장소 선정이 잘못되었다. 원래 대마왕大魔王의 관할구역이었다. 자기 구역을 침범당한 대마왕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어와! 그리고 함부로 바위를 뚫고 물을 끌어와. 거기다 개암 버섯 참마까지 함부로 채취해! 이런 도둑놈 같으리라고!”

대마왕은 마졸魔卒들을 비상 소집했다. 마졸들은 무슨 일인가 놀라 급히 모여들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마졸들은 덩달아 길길이 뛰었다. 무슨 철천지원수 같이 말이다. 하나같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들은 대부분 소 돼지 닭들이었다. 이들이 마귀로 변해서 우마牛魔 저마豬魔 계마鷄魔가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동물들이었다. 원한이 골수에 사무칠 만도 했다. 그래서인지 서로 앞장서서 저 원효를 잡겠다고 선봉을 자처했다.

대마왕의 군제는 좌군左軍 우군右軍 중군中軍 후군後軍인데, 좌군은 우마왕(소)이 맡고, 우군은 저마왕(돼지)이 맡으며, 중군은 대마왕大魔王 자신이 맡고, 후군은 마누라인 대마녀大魔女와 계마왕(닭)이 맡는 형식이었다.

모두 흥분해서 떠들자 대마왕은 총 두목답게 모두를 일단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작전회의를 열었다. 그러자 대마녀가 말했다. 자기들도 명색이 대왕인데 어찌 시정잡배처럼 싸움부터 할 수 있겠느냐고. 한번 예의를 갖춰보자는 것이었다.

곧 대마왕이 직접 나서서 원효를 점잖게 타일러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수행할 것 없이 자기들처럼 놀고먹으면서도 도를 닦고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따라오면 멋진 부하 하나 생기니 좋고, 따라오지 않아도 손해 볼 것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러했다.

점잖은 선비로 변장한 대마왕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부하 몇 사람과 함께 구름을 타고 원효의 굴 앞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허공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좋은 길이 있어서 일러주러 왔다고.

원효도 예의를 차렸다. 차茶를 준비해서는 역시 구름을 타고 밖으로 나갔다. 허공에 마주 앉으며 와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대마왕이 마누라가 일러준 대로 즐겁게 살면서도 부처가 되는 길이 있음을 설명했다. 다 듣고 난 원효가 말했다.

“그렇게 마음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우선 차부터 한 잔 드시지요.”

원효가 차를 내 놓았다. 대마왕이 의심스러워 무슨 차냐고 묻자 원효가 대답했다.

“해탈다解脫茶입니다. 제가 특별히 만든 것이지요. 이 차는 모든 욕심과 번뇌와 어리석음을 내려놓게 합니다. 모든 욕심을 끊고 그대로 해탈시킵니다. 곧 부처가 됩니다. 자, 한 잔 드시지요.”

대마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를 해탈시키는 차였기 때문이었다. 곧 대마왕 세계를 무너뜨리는 차였다.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적당히 얼버무린 대마왕은 도망치듯 돌아갔다.

[마졸 싸움] “당하고 돌아왔어. 말로 될 사람이 아니냐. 누가 먼저 공격하겠소?”

보기 좋게 당한 대마왕은 화가 났다. 그러자 우마왕(소)이 선봉으로 나섰다. 대마왕이 허락하자 길게 뻗은 멋진 두 뿔을 자랑하며 마졸들을 데리고 원효의 굴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큰 뿔로 원효를 향해 돌진했다. 그간 쌓인 원한이 많다는 뜻이었다. 뿔이 굴에 부딪치자 쿵 소리가 산천을 울렸다. 그러든 말든 원효는 좌선만 하고 있었다.

약이 오른 우마왕이 총공격을 명하자 모든 마졸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그러나 굴 입구가 좁아 공격이 여의치 않았다. 밖이 시끄러워지자 원효는 옆에 놓아둔 개암을 한 줌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휙 뿌렸다. 개암은 쇠뭉치가 되어 날아갔다. 그리고는 마졸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마졸들은 소 울음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갔다.

다음에 도착한 것은 저마왕(돼지)이었다. 모두 쇠스랑을 들고 있었다. 굴을 넓게 파서 찔러죽일 셈이었다. 그러나 원효도 그냥 있지 않았다. 꿀꿀 소리가 시끄러워 옆에 놓아둔 버섯으로 큰 문을 만들어 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쇠스랑으로 파고 두들겼으나 버섯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저마왕이 혼자 나섰다. 모두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자기도 뒤로 물러섰다가 힘껏 달려와서는 기다란 엄니를 버섯 문에 꽉 들이밀었다. 그러나 이는 실수였다. 순간 원효가 엄니를 낚아채 굴 안으로 끌어들여서는 내동댕이쳤기 때문이었다. 저마왕은 그대로 뻗어버렸다.

보고를 접한 대마왕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긴 창을 들고 직접 나섰다. 도착하자마자 총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지팡이를 들고 앉아서 싸우는 원효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창이 굴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굴 입구가 좁아 총공격도 어려웠다. 여러 번을 시도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자 부하 마졸이 말했다.

“대마왕님, 창칼로는 안 되겠습니다. 대마왕님의 화공火攻이 어떻겠습니까?”

“화공! 그래 그게 좋겠군.”

대마왕은 모두 물러서게 했다. 자기 주특기인 화공을 쓸 생각이었다. 입으로 불을 뿜는 것 말이다. 모두 멀찍이 물러서자 대마왕은 있는 힘을 모아 입김을 힘껏 뿜었다. 시뻘건 불길이 거침없이 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엇하나 남아나지 않을 기세였다. 이렇게 몇 번을 하자 구수한 고기구이 냄새가 진동했다. 마졸이 말했다.

“대마왕님 이제 그만 하십시오. 원효가 고기구이가 다 된 모양입니다.”

“그렇구나, 이제 그만하자.”

그러면서 화공을 멈췄다. 연기와 김이 걷히자 굴 안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원효가 그대로 앉아 있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원효는 조금도 변함없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면 이 구수한 고기구이 냄새는 무엇이냐? 그러자 원효가 기름이 좔좔 흐르는 돼지 통구이를 앞으로 돌려놓았다. 이제 보니 대마왕의 불로 저마왕을 돼지 통구이로 만든 것이었다.

 

 

[대마녀] “이걸 누구랑 먹나. 곡차도 이미 준비 됐는데. 혼자 먹긴 아까운 걸.”

원효가 중얼거렸다. 그간 석간수로 술을 만들었었다. 기가 질린 대마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도망쳤다. 또 다시 작전회의가 열렸다. 모두 말이 없었다.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마왕이 부인을 돌아보고 말했다.

“당신이 한번 나서보는 게 어떻겠소?”

미인계美人計를 쓰자는 말이었다. ‘자기 마누라까지 내세워!’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형편인지라 대마녀는 참았다. 잘못하면 마왕세계가 모조리 무너지게 생겼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그럼 한번 해보겠다고 하자 계마왕(닭)도 따라 나섰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계마왕은 이내 화려하고 멋진 봉황鳳凰으로 변신했다. 그는 원래 수탉이었는데 잘도 변신한 것이었다. 그러자 대마녀도 변재천녀辨才天女로 변신했다. 변재천녀는 원래 하늘나라 천녀인데 미모에다 모든 악기에도 능한 여인이었다.

잠시 후 그 변재천녀가 다리를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봉황 등 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면서 얇은 천의天衣를 나부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넋이 빠졌다. ‘야, 멋지구나.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없겠구나.’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후 봉황을 탄 변재천녀가 나타나자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원효가 아니었다. 재빨리 젊은 멋쟁이 수행자로 변신해 구름을 타고 정중히 맞으며 눈웃음을 쳤다. 천녀가 말했다.

“어찌 수행자가 여인을 다 유혹하십니까?”

원효도 지지 않았다.

“수행도 좋지만 어찌 젊은 총각이 아리따운 처녀를 그냥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굴 안으로 안내했다. 굴 안에는 돼지 통구이가 기름을 흘리고 있었고, 그 옆의 술잔에는 곡차가 찰랑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천녀는 스스럼이 없었다. 자기가 무슨 애인이나 아내쯤 되는 양 술을 따르며 아양을 떨었다. 마주 앉아 고기를 베어서 먹여주기도 하고 술잔을 채워서 먹여주기도 했다. 어떻게든 원효를 녹여야 했다.

드디어 참을 수 없다는 듯 원효가 천녀를 덥석 안아 자기 무릎 위에 턱 앉혔다. 그리고는 얼굴을 부비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한껏 즐겼다. 젊은 여인의 향기로운 내음이 짙게 깃들었다.

그런데 대마녀로서는 도무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든지 원효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혼절시켜야 하는데 마음만 번할 뿐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엇에 단단히 취하고 홀린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생각한 대마녀는 이 참에 원효를 아예 주색에 빠뜨리기로 했다. 한층 더 아양을 떨고 술잔을 올렸다.

 

 

[대마왕 설복] 한편 마누라를 보낸 대마왕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무 소식이 없으니.’ 그러면서 부하 마졸에게 가보라고 했다. 원효의 무릎에 앉아 술에 취해 서로 토닥이는 모습을 본 부하 마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못하고 달려와서는 대마왕께 보고했다. 직접 확인해 보시라고.

“뭐가 어떻게 됐어?”

대마왕이 직접 나섰다. 술에 취해 둘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본 대마왕은 눈이 뒤집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 마누라 내놔라. 왜 남의 마누라 가지고 장난치느냐?”

무슨 소린가 하고 원효가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이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분고분 내줄 생각이 없었다. 더욱더 꼭 껴안았다. 그럴수록 여인은 더욱더 당겨왔다. 빠져나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마왕이 마누라를 보고 소리쳤다.

“그렇게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저 땡 중이 저 모양이지. 빨리 마녀로 변신하지 않고 뭐하는 거요?”

그제야 놀란 듯 천녀가 순간 마녀로 변신했다. 온통 우글쭈글하고 늙어빠진 할망구 마녀 말이다. 옷은 묵은 때가 찌들었고 이는 다 빠졌으며 입에서는 썩은 냄새가 콜콜 났다. 그런데도 저 원효는 좀체 풀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변함없이 얼굴을 맞대고 부비며 엉덩이를 토닥였다. 마녀인 자기가 봐서도 참 기가 찼다. 자기가 봐도 이렇게 역겨울 수가 없는데 저 원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를 어루만지기 때문이었다.

추한 계획도 통하지 않자 대마왕은 미칠 듯이 날뛰었다. 그렇지만 힘이 달리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때 원효가 대마녀의 얼굴을 부비며 조용히 말했다.

“본디 미추美醜가 없다오. 아름답고 추한 것이 없다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고 추하다고 생각하면 추한 것뿐이라오. 모두가 한 뿌리라오. 조금 전 그대가 가죽주머니에 물을 가득 채우니 팽팽해서 보기 좋았지만, 지금 물을 빼니 이렇게 우글쭈글해서 보기 싫지 않았소. 그렇지만 그대는 변함이 없었소. 나는 변함없는 그대 본모습을 사랑하고 있다오.

그대 마음도 이와 같소. 본디 아름다운 것이라오. 깨끗한 것이라오. 잠시 더러움이 묻었을 뿐이라오. 나는 더러움이 묻지 않은 그대 본마음을 사랑하고 있다오. 자 이제 풀어줄 테니 가서 잘 이야기해보시구려.”

그러면서 마녀를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먹다 남은 돼지 통구이를 지팡이로 탁 쳤다. 순간 돼지 통구이는 잘 익어 먹음직스런 참마(薯)로 변신하고, 대신 옆에 놓아둔 참마는 저마왕으로 변신했다. 저마왕이 꿀꿀거리며 후다닥 뛰쳐나가자 원효는 손짓을 해서 봉황을 불렀다. 봉황은 날아와서 대마녀를 태우고 부리나케 달아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마왕이 무리를 끌고 다시 선정에 든 원효 앞에 나타났다.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희에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자초지종 마누라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 원효가 말했다.

“영웅회수즉신선英雄回首卽神仙 영웅도 고개를 한번 돌리면 신선이 되고, 범부회수즉불타凡夫回首卽佛陀 범부도 고개를 한번 돌리면 부처가 된다오.

개유불설皆有佛性이요, 누구에게나 부처될 성질이 있소. 누구든지 성실하게 살며 도를 닦으면 부처가 됩니다. 하물며 그대 같은 영웅이야!”

또 말했다.

“사람도 중생인지라 먹지 않을 수가 없소. 그 중에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을 먹었을 수도 있소. 이는 자기가 살려고 한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 바라오. 모두들 다음 생애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도를 닦아 부처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마왕 무리는 삼배를 올린 후 돌아갔다. 모두 돌아가자 원효는 설복촉지인說服觸地印을 하며 그들을 축원했다. 원래 부처님은 마귀를 항복시킨 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했는데 이번에 원효는 마귀를 설복시켰기 때문에 설복촉지인을 한 것이었다. 물론 그 모습은 항마촉지인과 같다.

 

 

2. 득도得道

 

[삼매화] “또 움직여 봐야지.”

얼마 후 원효는 절벽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굴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있었던 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본디의 절벽으로 변했다. 자기가 머물렀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위 절벽)

천길 단애 미끌 절벽 죽음 혀를 날름이네.

한 걸음만 삐끗하면 영락없이 채가려고

이 자리서 갈았구나. 이 자리서 닦았구나.

만고윤회 목을 자를 회심의 활인검을!

그 사람 어디 갔나? 소식 전해주지 않고?

그러나 원망 마오. 한탄도 하지 마오.

그 절벽은 아직도 그 자리서 서있으니.

천길 단애 치고 오를 새 사람을 기다리며.

 

‘이제 서라벌로 가 보자.’ 사실 서라벌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수행했다는 자신감도 들고. 서라벌 가까이 오자 의상義湘이라는 이름이 들렸다. 진골 집 귀한 아들인데 출가해서 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인물도 출중해서 처녀들이 꿈에라도 한번 만나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인물이라면 좋은 도반道伴이 되겠어.’ 의상이 머문다는 황복사皇福寺에 들어서자 의상도 원효의 존재를 알아보고 바로 나와 맞았다. 이야기를 해보니 자기보다 여덟 살 아래였지만 도가 보통 높은 것이 아니었다. 선의의 멋쟁이 경쟁자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듣던 대로 인물도 출중해서 처녀들이 오줌을 쌀만도 했다.

이는 의상으로 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 이렇게 학식이 풍부하고 도가 높은 스님은 처음 봤다. 불교 경전에 막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술 비술까지 터득하고 있었다. 자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존경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기는 싫었다.

“스님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친견하신 적이 있습니까?”

원효가 없다고 하자 자기는 있다고 했다. 동해 낙산洛山에 관음보살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칠일 동안 목욕재계한 후 새벽에 방석을 물에 띄었더니 용천팔부의 시종들이 나와서 자기를 홍련굴紅蓮窟로 안내했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하늘을 보고 예를 올렸더니 하늘에서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내려주고 또 동해 용왕이 여의보주를 내려주었다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와 또 칠일 동안 목욕재계하니 이번에는 관음보살이 아름답고 풍만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몸소 나타나서 자기보고 여기다 절을 지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한 의상은 그 거룩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지 황홀한 모습을 지었다. 원효는 저도 모르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답고 풍만한 관음보살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마녀 엉덩이만 토닥인 자기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듯 점심때가 되었는지 의상이 말했다.

“스님 천공天供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천공?’ 원효는 말조차 생소했다. 하늘 공양이 뭐지? 공양은 식사를 뜻해서 알지만 하늘 공양은 처음 듣는다. 의상이 자기가 모르는 것만 묻는 것 같았다. 원효가 없다고 하자 의상이 계속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스님을 만난 기념으로 천공天供을 올려 예를 표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눈을 감으며 잠시 합장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예쁜 천녀天女 두 사람이 각각 공양을 들고 나타나서는 무릎을 꿇고 앉으며 공손히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 대단해!’ 원효는 속으로 놀랐다. 원효가 놀란 표정을 짓자 의상은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서 원효는 수저를 들고 어떻게 했는지 마음으로 관조해보았다. 그랬더니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천녀를 데려와 공양을 올리게 한 것이었다. 사천왕천은 하늘나라 동서남북 네 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인데, 그 중 동쪽 지국천왕持國天王의 천녀를 데려온 것이었다. 지국천왕은 불만인지 투덜투덜했다.

원효는 아리송했다. 관음보살을 친견親見한 걸 보면 자기보다 나은 것 같은데, 천녀를 불러와 자랑을 하는 걸 보면 자기보다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교만만은 꺾어야 할 것 같았다. 겨우 사천왕천 천녀 부른 걸 가지고 이런 교만을 부리다니! 그냥 두면 자칫 큰 인물을 놓칠 것 같았다. 맛있게 먹고 난 원효가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아, 참 잘 먹었습니다. 저녁에도 이런 공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스님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올릴 수가 있습니다.” 의상은 자신이 넘쳤다. 이럭저럭 저녁때가 되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자 의상은 합장을 했다. 그러고는 공양을 청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천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원효는 배가 고픈 듯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의상은 또 합장을 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원효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 의상은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역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저녁을 쫄쫄 굶었다.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의상을 보고 원효가 말했다.

“실수도 있는 법이지요 뭐. 내일 아침 공양이나 잘 먹어봅시다.”

오늘은 포기하고 내일 아침 공양이나 잘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의상은 그렇게 하자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밤사이 배가 고파 애를 먹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자 의상은 온 정성을 다해 합장을 했다. 효험이 있었던지 이내 두 천녀가 공양을 들고 나타났다. 의상이 대뜸 물었다.

“내가 그렇게 청했는데도 어제 저녁에는 왜 오지 않았소?”

천녀들이 말했다.

“사방에 삼매화三昧火가 타올라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삼매화라니?”

“선정禪定으로 놓는 불을 말하는데 사람의 교만심까지 태웁니다. 이는 누구도 못 끕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만이 그 불을 놓을 수도 있고 끌 수도 있습니다. 어제 저녁 그 불은 여기 원효스님이 놓으셨다가 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녀들은 원효에게 새삼 예를 올렸다. 그제야 의상은 원효를 다시 쳐다보며 존경의 예를 표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술수 자랑을 하지 않았다.

 

 

[관음보살] 의상과 헤어진 원효는 혼자 중얼거렸다.

“관음보살이라. 그것도 동해 바다 해수관음海水觀音 보살이라.”

친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상이 했다면 자기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관음보살은 원래 먼 옛날 비로자나불 아래서 도를 닦아 부처를 이룬 분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세상에 나오시자 몸을 낮추어 보살로 변해서는 석가의 구제를 돕는 분이다. 그는 신통한 재주가 있어 몸을 수백 수천가지로 변신할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33관음이다. 해수관음도 그 중의 하나다.

한편 여기는 하늘나라 여래전如來殿, 원효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겠다고 낙산洛山으로 향하자 정작 비상이 걸린 곳은 하늘나라 여래전이었다. 석가여래는 즉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등 중요 인사를 소집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신라는 왕실불교 귀족불교였다. 일반 서민들은 쉽게 불교를 접할 수가 없었다. 큰 절은 몇 개 지었으나 이 절을 활용해서 불교를 넓게 펴는 이가 없었다.

이는 당연히 여래의 평등사상平等思想 개유불성皆有佛性 사상 중생불성衆生佛性 사상에 어긋났다. 여래는 대중불교 민중불교를 원했다. 불교대중화를 원했다. 누구든지 자기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서 깨치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이는 그 동안 풀지 못한 큰 숙제였다.

물론 그간 두어 가지 방법을 써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혜숙惠宿 혜공惠空 같은 고승을 서민이나 노비로 내보내 서민이나 노비도 불교를 믿으면 깨칠 수 있음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 이상한 사람이나 기이한 술수가로 비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물색한 분이 바로 자장율사慈藏律師였다. 고승에다 왕실의 후원까지 받고 있어 불교대중화를 일으키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문수보살을 내려 보내 일을 해보았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자장율사가 한때 수다사水多寺에 있었는데 문수보살이 꿈에 현신하여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점잖은 노승으로 변신해 나타나서는 ‘태백산 정암사淨岩寺로 가서 나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자장율사는 정암사로 가서 문수보살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문 밖이 떠들썩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시자侍子가 하는 말이 ‘웬 늙은 거지가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고 와서는 함부로 스님 이름을 부르며 만나겠다.’고 떠든다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스님에게 예의를 지키라고 하자 ‘그런 것은 필요 없다.’며 ‘그냥 자장에게 알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옥신각신 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들은 자장은 ‘별 미친 사람이군.’ 하며 내쫓아버리게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늙은 거지는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아상我相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는가?’ 하며 죽은 강아지가 담긴 삼태기를 거꾸로 뒤집으니, 죽은 강아지는 사자로 변하고 삼태기는 보좌로 변하며 자기는 문수보살로 변해서 그 사자를 타고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자장慈藏이 뒤쫓아 가보았으니 이미 까마득히 사라진 뒤였다. 아상 때문에 성인을 알아보지 못한 자장은 부끄러워 결국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아상我相은 자기라는 견해를 말하는데 곧 자기 자신, 자기의 학문, 자기의 명예 등에 대한 지나친 자긍심을 말한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여래전은 고민에 빠진 것이었다. 불교대중화는 피할 수 없는 명제였으나 이를 이룰 사람이 없었다. 아상을 깰 수 있는 사람은 꼭 필요한데 잘 못하면 아상은 고사하고 사람이 다치는 것이었다.

그간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원효였다. 그런데 지금 그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겠다고 길을 나섰으니 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석가여래가 말했다.

“이번 일은 누가 해보겠소?”

아무도 말을 못했다. 이번 일의 비중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문수보살은 아예 뒤로 물러섰다. 자장율사처럼 또 실패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석가여래가 말했다.

“그럼 관음보살이 해보시구려. 지난 번 의상대사도 성공했으니.”

낙산洛山에서 자기가 의상대사를 만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음보살도 주저했다. 의상대사 일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의상대사는 단순히 자기를 친견하는 것이라 자기는 거룩한 모습만 보여주면 되었다. 그러면 의상대사가 스스로 자기임을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아상을 깨는 것이라, 자기가 추한 모습을 보여도 상대가 그것을 자기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었다. 관음보살이 주저하자 여래가 말했다.

“그럼 지장보살도 함께 내려가서 같이 해보시요.”

이렇게까지 말하자 관음보살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경대] 이런 일을 알 리 없는 원효는 낙산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관음보살 친견이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지 마음이 한결 여유로웠다. 하기야 이제는 급할 것이 없었다. 어디 가면 어떤가. 노래가 절로 나왔다.

 

(사대 화합)

이 몸은 사대 화합 아쉬울 것 전혀 없고

이 맘은 생각 화합 아쉬울 것 전혀 없네.

천하 만물 부모 삼고 세상만사 스승 삼아

생활 속에 도 닦으면 곳곳 모두 극락인 걸.

욕심세계 머물지만 욕심 내지 아니 하고

탐욕세계 머물지만 탐욕 내지 아니 하네

가도 그만 와도 그만 한결 같은 마음이니

요동치던 마음자리 그 자리서 멈추누나.

 

사대四大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우리 몸을 말한다.

한참을 가니 넓은 개울이 나타났다. 개울 가운데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 젊은 아낙 혼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빨래할 때마다 흔들리는 엉덩이가 매우 고혹적이었다. 옆을 지나치며 힐끗 내려다보니 힘이 드는지 한껏 익은 복숭아처럼 얼굴이 볼그레했다. 원효가 농을 걸었다.

“물 한 그릇 주겠습니까?”

그러자 여인은 바가지로 물을 떠서 얼굴을 붉히며 건네주었다. 역시 잘 익은 여인이었다. 그러나 물은 벌근 핏물이었다. 이제 보니 자기의 월경대 빤 물을 떠주었던 것이었다. 여인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는지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이래선 안 되지.’ 원효는 그 물을 버리고 다른 물을 떠서 마셨다.

또 얼마를 가니 두 여자 거지가 서로 상대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이 년이 내 서방을 훔쳐갔어.’ 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무슨 구경이 난 듯 히히대며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자 원효가 나섰다.

“왜들 이리 싸우시오? 말로 하시구려.”

그제야 두 거지는 싸움을 멈췄다. 그리고는 원효에게 매달렸다. ‘아이쿠 서방님 저와 같이 가요.’ 졸지에 두 거지에게 매달린 원효는 어쩔 줄 몰랐다. 급히 두 거지를 물리치고 빠져나왔다. 저 거지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을까? 원효는 잠시 생각했다.

또 한참을 가니 길 가에 큰 소나무가 있었다. 넓게 드리워진 가지가 시원한 그늘을 지었다. 자리를 잡으며 둘러보니 옆에 웬 여인의 신발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예쁘게도 생겼군. 그런데 왜 한 짝뿐이지?’ 그러면서 앞을 보니 저 밭에서 어떤 여인 혼자서 보리를 베며 노래를 불렀다.

군역 간 낭군님은 언제나 오시려나.

꽃다운 이팔청춘 다 늙어간다.

긴긴 날 하루는 넘길 수야 있지만

긴긴 밤 하루는 어떻게 넘기려나.

노래 같기도 했고 한탄 같기도 했다. 어찌 보니 아낙 같기도 했고 처녀 같기도 했다. 원효는 또 농이 동했다.

“보리 하나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여인은 가까이 다가와 덜 익은 보리를 건네주었다. 옷은 아낙이었으나 얼굴은 처녀였다.

“왜 덜 익은 보리를 주십니까?”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얼굴만 붉혔다.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왜 혼자서 보리를 베십니까?”

여인이 답했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돼 남편이 군역에 끌려가서 몇 년째 혼자 지내고 있다고. 그러면서 아래 외딴집을 가리켰다. 집은 아담했으나 남자가 없어서인지 쓸쓸해 보였다. ‘저 여인을 따라가 집이나 손봐줄까?’ 그러다 원효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그럭저럭 낙산에 도착하니 날씨가 영 좋지 않았다. 개었다 흐렸다 하는 것이 제멋대로였고 심지어 폭풍우까지 일었다. ‘이거 도무지 되는 일이 없구먼.’ 그러면서 의상의 말대로 칠일동안 목욕재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칠일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풀리지 않았다. 홍련굴紅蓮窟에 들어가기는 고사하고 바다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다시 칠일동안 목욕재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폭풍우가 일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원효는 관음전觀音殿이라도 참배하고 돌아서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관음전에 와보니 지난번 소나무 아래서 보았던 그 신발 한 짝이 여기에도 놓여있지 않은가!

‘신발 한 짝은 소나무 아래 놓여있고, 다른 신발 한 짝은 여기 관음전에 놓여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원효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하, 그 여인들이 모두 관음보살이었구나. 빨래하는 여인, 싸우는 거지 여인, 보리 베는 여인, 이 모두가 관음보살의 화신이었구나. 이제까지 나는 관음보살은 화려하고 거룩하고 풍만하고 장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로구나. 이제 보니 이것도 망상이었구나. 그들이 우리와 똑 같구나. 아니 우리가 곧 그들이구나. 길거리의 저 여인, 저 남자가 모두 관음보살이구나.’

크게 깨달은 원효는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일어서서 두 손을 하늘로 뻗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중생이 부처로다! 일체 중생이 모두 다 부처로다! 저 여인, 저 거지, 저 남자, 저 망나니가 모두 다 부처로다! 단지 자기가 부처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뿐이로다!”

그리고는 중생과 부처를 구분하지 않았다. 부처나 보살을 찾지도 않았다. 사람들 모두를 그대로 부처로 보았다. 곧 아상我相을 깬 것이었다.

이를 본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서로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드디어 성공했군요. 이제 신라 땅에 불교대중화가 일어나겠군요.’ 그러면서 본 모습을 드러내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길거리서 싸웠던 두 여자 거지는 말할 것도 없이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었다.

 

 

[대안 축문] 한층 시야가 넓어진 원효는 다시 서라벌로 향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자신 있었다. 거리낄 것이 없었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행복하세요, 즐거우세요, 부자 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어보나 마나 대안스님이었다.

‘멀리까지도 오셨군.’ 원효는 쉽게 대안을 찾았다. 모퉁이를 돌아오는 대안을 보고 예를 올리니 대안이 말했다.

“원효스님, 그동안 도 많이 닦았다지.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리고 낭지 그 늙다리가 새벽을 원효로 바꿨다고 했나. 할 일 없기는. 자, 그건 그렇고 우리 밥이나 먹읍시다. 오랜 만에 함께 말이요.”

그러면서 나무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마주 앉자 뒤죽박죽이 된 밥이 펼쳐졌다. 둘은 맛있게 그 밥을 먹었다. 다 먹어갈 즈음 어떤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비단옷에 호박장식을 달고 뒷짐을 진 모습이 돈푼깨나 있어 보였다. 가까이 오더니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혹시 대안스님 아니십니까?”

대안이 그렇다고 하자 중년 남자가 말했다. 오늘 저녁 자기 아버지 제삿날인데 축문을 좀 읽어 줄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자기는 천민이라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자 남자는 두 사람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그간 열심히 살았는지 집은 마을에서 제일 큰 기와집이었고 마당에는 큰 잔치를 하는 양 사람들이 북적댔다.

사랑채로 안내 받은 두 사람 앞에 이내 푸짐한 음식이 놓여졌다. 대안의 성품을 잘 아는 터라 고기랑 전이랑 술이랑 가리지 않고 가져왔다. 대안은 이런 음식은 처음 본다며 연신 술을 따르고 연신 먹어댔다. 원효도 함께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밤중이 되자 준비가 다 되었는지 중년 남자가 문 앞에 와서 허리를 굽히고는 공손히 청했다.

“스님 제사준비 다 되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가지요.”

대안이 일어섰다. 원효도 따라 일어섰다. 안방에 들어서니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음식을 차렸고 벽 쪽에는 자손들이 비단옷에 두루마기까지 입고서 죽 늘어섰다. 아들 셋에 손자를 일곱이나 둔 대가족이었다. 대안이 원효를 보고 말했다.

“스님이 축문을 해보시지요.”

그러자 원효가 아는 대로 축문을 했다.

“생사여일生死如一이라. 살고 죽는 것이 본디 같은 것이라.

일체해탈一切解脫하여 극락왕생極樂往生하십시오.”

간단하지만 좋은 글귀로 여겼던지 모두들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대안의 표정은 영 신통치가 않았다. 무슨 축문이 그러냐는 식이었다. 그리고는 중년 남자를 돌아보고 사람들이 생전 부르는 아버님의 성함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중년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까이 와서는 속삭이듯 말했다. ‘마당쇠’라고. 그러자 대안이 제사상을 바라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마당쇠야. 오늘은 네 제삿날이니 네 마누라와 단 둘이 앉아서 실컷 먹고 마셔라. 내 다른 사람들은 다 내쫓을 터이니 그쯤 알고 너희 둘만 앉아서 마음껏 먹고 즐기기 바란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다 내쫓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원효는 깜짝 놀랐다. 축문도 축문이거니와 손자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할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일을 다 했다는 듯 대안은 사랑채로 돌아와 이내 골아 떨어졌다. 원효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누가 부르는 것 같았다. 올 것이 왔는가. 맏아들 중년남자 목소리였다. 날은 이미 밝았고 밖에는 여럿이 웅성거렸다. 대안이 ‘누구시오.’ 하자 ‘접니다.’ 하며 중년 남자 셋이서 함께 들어왔다. 삼형제가 같이 온 것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삼형제는 대안에게 큰 절부터 올렸다. 축문을 잘해 줘서 고맙다며 말이다. 대안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맏아들이 말했다.

어제 밤 꿈에 아버님 내외가 나타나셨는데 대안스님이 다른 사람들을 다 내쫓아서 단 둘이 앉아서 참으로 오랜 만에 푸짐하게 먹었다는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윗사람 눈치 보느라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잘 먹고 간다고 몇 번이고 감사해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두툼한 사례비까지 내놓았다.

‘이거 미안해서.’ 대안은 사례비를 받아 얼른 걸망에 집어넣었다. 집을 나와 동구 밖을 벗어나자 걸망을 내려서는 사례비를 바라보며 새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 돈이면 한 동안 먹을 걱정은 없겠는데!’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반나절도 못 돼 없어질 돈이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원효는 대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대안이 말했다.

“어디로 가려오.”

“서라벌로 가렵니다.”

“그럼 나도 서라벌로 가야겠군.”

둘이서 얼마를 가니 작은 고개가 나타났다. 곧이어 고갯마루에 올랐다. 그러자 어디선가 동물 새끼 울음소리가 들렸다. 작고 가냘폈지만 울음소리는 분명했다.

함께 가보니 큰 바위굴 아래서 갓 태어난 너구리 새끼 두 마리가 눈도 뜨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어미가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는지 절망적이었다.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대안도 포기했는지 축문이나 해 주자고 했다. 그러자 원효가 또 축문을 했다. 축생(짐승)들에게 늘 하는 축문이었다.

“모든 미련을 떨치고 좋은 곳으로 가거라. 이 다음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그러나 이번에도 대안의 표정이 영 신통치 않았다. 역시 무슨 축문이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굴 앞으로 다가가 다 죽어가는 새끼 두 마리를 꺼내서는 자기 얼굴에 부비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애고 불쌍해라.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애고 불쌍해라.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내가 이제 엄마 노릇 할 터이니 잘 먹고 편히 쉬기 바란다.”

그러면서 또 자기 얼굴에 부비고 젖을 먹이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새끼 두 마리는 편안한 듯 대안의 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 모습을 본 원효는 또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는 것은 빈껍데기로구나!’

고개를 내려오니 마을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렸다. 함께 가보니 어느 집에서 굿을 하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굿판을 벌였는데 제법 큰 굿이라 음식도 푸짐하고 사람도 많았다. 부모인 듯한 두 사람이 앞에 걸어놓은 젊은 여자 치마저고리를 보고 연신 허리를 굽히며 절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옆 사람이 말했다. 이 집 처녀가 상사병으로 죽어서 지금 천도 굿을 하는 중이라고.

그런데 굿이 잘 풀리지 않는지 북소리 장구소리가 가락이 맞지 않고 뚱땅댔다. 무녀巫女도 뜻대로 되지 않는지 땀을 뻘뻘 흘렸다. 잠시 후 무녀가 대안스님을 알아보고 달려왔다. 자기가 아무리 빌고 달래도 혼령이 도무지 이승을 떠나지 않으니 스님이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해볼까?”

대안이 나섰다. 나무토막을 주워서 무언가를 다듬었다. 잠시 후 그것을 무녀에게 건네주며 이것을 상 위에 올려놓고 굿을 해보라고 했다. 무녀는 ‘아이쿠 망측해라.’ 하면서 받아갔다. 대안이 건네준 것은 나무로 잘 다듬을 남자 성기였다.

대안이 시키는 대로 그것을 상 위에 올려놓고 한판 굿을 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효과가 없었다. 이번에는 그것을 치마 속에 집어넣고 굿을 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 효과가 없었다. 대안도 이상하다는 듯 원효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기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원효가 말했다.

“스님 제가 한번 해볼까요?”

대안이 좋다는 표정을 짓자 원효가 앞으로 나섰다. 푸짐하게 차려진 상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젊잖게 앉았다. 술을 두 잔 따르게 해서는 하나는 자기 앞에 놓고 다른 하나는 맞은편에 놓게 하고는 치마저고리를 보고 말했다.

“낭자 거기서 뭐 하시오? 이리 와서 술 한 잔 하지 않고!”

그러면서 치마저고리를 내려서 자기 앞에 놓게 했다. 이내 술잔을 서로 맞부딪치는 시늉을 하며 한 잔 죽 들이켰다. 여자 술은 여자 치마저고리에 부어주었다. 한 잔 더 마시자 원효가 치마저고리를 보고 말했다.

“그 내숭 떨지 말고 이리 오시오.”

그러면서 치마저고리를 자기 무릎 위에 턱 얹었다. 그리고는 마치 애인 다루듯 치마저고리를 다독이며 술을 부어주며 말했다. ‘자 한잔 드시고 나도 한잔 주시오.’ 그러면서 자기도 한 잔 따라 마셨다. 몇 번을 이렇게 하자 취기가 도는지 여자가 바짝 당겨 오는 것 같았다. 원효는 치마저고리를 끌어당겨 쓰다듬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일체가 공一切皆空이라오. 사랑도 공이고 미움도 공이고 증오도 공이고 원한도 공이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사람은 누구나 가게 되어 있소. 조금 일찍 가고 조금 늦게 가는 것뿐이오. 그러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오.

여기서 서방으로 구만 리쯤 가면 아미타부처가 계시는 서방정토가 있소. 그곳에는 괴로움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언제나 밝고 깨끗하고 즐겁고 아름답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와 함께 즐기다가 미련 없이 그곳으로 가시요. 여기서 머뭇거릴 필요 없소.’

원효가 알아듣게 쉽게 이야기하자 치마저고리도 다소 느긋해지는 것 같았다. 원효는 또다시 치마저고리를 애인처럼 쓰다듬으며 술을 부어주었다. 처녀의 치마저고리와 원효의 바짓가랑이가 동시에 흠뻑 다 젖을 즈음 원효가 말했다.

“아, 이제 가봐야겠소. 불공드릴 때가 되었으니. 낭자도 늦기 전에 가보셔야지.”

그러고는 치마저고리를 상 위에 내려놓고 헤어지듯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무녀는 신나게 굿을 했다. 혼령이 미련 없이 서방정토로 떠나는 모양이었다. 이를 본 대안이 말했다.

“여자니까 잘도 해내시는구려!”

그러나 속으로 감탄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 보살행菩薩行을 몸소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깜냥에 맞춰 적절히 설법도 하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말이다.

 

 

[단군전] 구리 밥그릇을 두드리며 저쪽으로 가는 대안大安에게 예를 표한 원효는 다시 황복사皇福寺를 찾았다. 역시 의상義湘 뿐이었다. 의상도 반갑게 맞았다. 둘은 마치 친형제처럼 절친한 도우道友가 되었다. 의상이 말했다.

“스님 우리 다시 한 번 중국유학을 갑시다.”

사실 이들은 지난 번 중국 유학을 실행한 적이 있었다.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야 인정받고 이름을 날리는 시대여서 이들도 그를 따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요동성遼東城 부근에서 보기 좋게 좌절되었다. 아니 심한 곤욕까지 치렀다.

당시 고구려와 중국의 국경이 요동성이었는데 때마침 두 나라가 첨예한 대립기라 이곳에서 간첩으로 몰려 온갖 곤욕을 치러다가, 순수한 유학생임이 밝혀져 수십일 만에 풀려났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유학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더 큰 학문이 필요하기도 했고. 결국 두 사람은 다시 걸낭을 메고 일어섰다. 이번에는 육로陸路가 아닌 해로海路를 택했다. 중국과의 교역항인 남양만南陽灣에서 배를 타고 중국 산동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출발하자 정작 소동이 벌어진 곳은 뜻밖에도 아사달阿斯達 단군전檀君殿이었다. 단군할아버지가 ‘자손들이 어떻게 사나.’ 하고 둘러보시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런! 이런!’ 하시고는 즉시 장관들을 소집했기 때문이었다.

국무총리 발귀리發貴理를 위시해서, 국방부장관 부소, 건설부장관 팽우, 농림부장관 고시, 해양부장관 부루, 천문부장과 풍백, 저승부장관 자부 등이 영문도 모르고 모여들었다. 단군할아버지가 말했다.

“모두들 중국 유학을 떠나면 우리 것은 어떻게 되는가?”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며 서로 쳐다보자 단군할아버지가 설명했다. 내용인즉, 외국 가서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모두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두 사람은 남아서 우리 것을 보존하고 개발시켜 세상에 내놓아야 인류에 도움도 되고 당신 체면도 서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특히 종교는 정신적인 것이니 구태여 외국 것을 쫓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남이 하면 우리도 한다는 신념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원효는 이미 충분히 그런 실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상은 이미 출중해서 세상 어떤 사상과도 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 이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 중국 유학을 가면 그의 사상이 곧 중국 사상이 되어버리니, 우리 것은 없어지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러해서 국무총리 발귀리發貴理 주재 하에 즉각 대책회의가 열렸다. 의상義湘은 보내서 중국 문물을 들여오고 원효元曉는 막아서 우리 것을 발전시키자는 것까지는 쉽게 합의했으나 문제는 원효를 막을 방법이었다.

저마다 의견을 제시했다. 국방부장관 부소는 무장답게 즉각 원효를 잡아오겠다고 했고, 해양부장관 부루와 천문부장관 풍백은 바람을 일으켜 중국행 배를 막겠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 과격하고 자칫 외교문제가 될 수 있어 머뭇거렸다.

이때 저승부장관 자부가 조용히 일어나 건설부장관 팽우에게 눈짓을 해서는 함께 국무총리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자기의 견해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다 듣고 난 국무총리는 괜찮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을 받은 두 장관은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무덤방] 한편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원효 의상 두 사람이 어느 듯 남양만 가까이 이르렀다. 야트막한 산을 넘어가는데 날이 어두웠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오갈 데 없는 두 사람이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길옆에 작은 토굴이 있었다. 좁지만 두 사람은 누울 만했다.

“이런 곳이 다 있었구먼.”

두 사람은 자리를 잡았다. 이내 골아 떨어졌다. 그간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원효는 목이 말랐다. 어둠 속을 더듬으니 마침 머리맡에 물그릇이 있었다. 원효는 그 물을 달고 시원하게 마셨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원효는 또 목이 말랐다. 어제 밤에 먹었던 물을 생각해 다시 더듬었다. 그랬더니 이게 뭔가! 물그릇은 없고 그곳에는 사람 해골이 놓여있지 않은가. 이제 보니 어젯밤에 마셨던 물은 물이 아니라 사람 해골 물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달고 시원했던 물이 사람 해골 물이라!’ 원효는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밖으로 뛰쳐나와 모두 토해버렸다. 다시 보니 자기들이 잔 곳은 토굴이 아니라 낡은 무덤방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더 이상 갈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하룻밤 더 묵기로 했다. 밤이 되자 이번에는 귀신들이 덤비기 시작했다. ‘왜 내 방에서 자느냐. 왜 내 해골 물을 마셨느냐. 내 해골 물 내놔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여러 귀신들이 떼로 몰려와 해골 물 내놓으라고 덤벼드는 것이었다. ‘어제 밤엔 해골 물을 마셔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오늘 밤은 왜 이럴까?’ 원효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크게 깨달았다.

‘아하, 일체가 마음뿐이구나一切唯心, 일체가 생각뿐이구나. 어제는 몰랐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오늘은 알았기 때문에 탈이 생긴 것이로구나. 마음이 생기니까 탈이 생겼구나. 마음이 없어지면 탈도 없어지겠구나.’ 원효는 밖으로 뛰쳐나와 크게 외쳤다.

 

삼계는 유심이요, 만법은 유식이라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고, 만법은 오직 생각뿐이구나.

마음이 생기니까 토굴과 무덤이 둘이지만

마음이 없어지니 토굴과 무덤이 둘이 아니구나.

마음이 생기니까 갖가지 법이 생기지만,

마음이 없어지니 갖가지 법이 없어지는구나.

마음 바깥에 법이 없는데 또 무엇을 구하겠는가.

三界唯心萬法唯識 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龕墳不二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 心外無法胡用別求

 

그러고는 깨침에 겨워 질퍽한 땅위에서 한바탕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그러고는 그 길로 돌아서서 서라벌로 향했다. 물론 의상 혼자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이 모두가 저승부장관 자부와 건설부장관 팽우가 꾸민 일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애가无㝵歌] 서라벌이 가까워올수록 원효의 춤은 더 정치해지고 더 재미있어졌다.

굽은 호리병을 옆구리에 차고 흔들기도 했는데 이는 흥을 돋우는 일이었고, 오색 비단이 달린 쇠 방울을 두들기며 오가기도 했는데 이는 모든 격식과 형식을 벗어난다는 뜻이었으며, 놀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기도 하고 가을 매미처럼 배를 굽히기도 했는데 이는 어떤 말 어떤 일에도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굽힌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깨침을 얻어 자유스러우니 삼계三界와 두 장애二障를 모두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팔을 세 번 뻗는 것이 삼계 벗어났음을 뜻하고, 발을 두 번 드는 것이 두 장애 벗어났음을 뜻했다.

삼계三界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하니 곧 일체 생사윤회를 벗어났다는 뜻이고, 두 장애二障는 번뇌와 알음알이를 말하니 곧 일체 거리낌을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곧 일체 깨침을 얻어 해탈했다는 뜻이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무애가)

토굴 속에 잠든 원효 해골 물로 깨치고서

굽은 호로 옆에 차고 저자 거리 춤을 춘다.

오색비단 쇠 방울은 모든 격식 벗어났고

두들기며 오고감은 모든 형식 벗어났다.

놀란 자라 움츠린 목, 어떤 말도 숙여듣고

가을 매미 푹 꺼진 배, 어떤 일도 받아든다.

팔을 세 번 뻗는 것은 세 세계의 해탈이요

발을 두 번 드는 것을 두 장애의 해탈이라.

노래 소리 나올 때는 이 세상의 사람이나

염불 소리 나올 때는 저 세상의 사람이네.

언뜻 보니 중생이나 다시 보니 부처로다.

인간 세계 부처세계 자유로이 넘나드네.

 

 

3. 만행萬行

 

[선덕여왕] 원효가 해골 물로 깨침을 얻어 노래하고 춤추며 서라벌로 온다는 소문이 벌써 퍼진 모양이었다. 서라벌에 들어서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혜공惠空스님이 먼저 맞았다.

“그 제법인데. 저 대안大安 거지는 막춤이라 볼품이 없는데, 원효元曉 춤은 제법 짜임새도 있고 율동도 있어 잘만 하면 대성하겠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물론 원효는 혜공과 안면이 없다. 처음 원효가 출가할 때 그를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종적은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삼태기를 뒤집어쓰고 노래하고 춤을 추지 않나, 산속에 쓰러진지 오래여서 구더기가 들끓는다고 소문이 나서 달려가 보면 술에 취해서 시장가에서 나오질 않나, 우물 속에 들어가 몇 달을 좌선해도 옷이 젖지 않음은 물론이요 청의동자가 시중을 들지 않나, 등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남의 집 종이었는데 어릴 때 출가해서 이런 술법을 터득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원효를 보자 마치 천년지기千年知己나 된 것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걸며 농까지 하는 것이었다. 원효도 싫지 않았다. 아니 존경하는 편이었다. 혜공이 말했다.

“할 일 없으면 내일 영묘사靈妙寺나 가보시오.”

영묘사는 서라벌에 있는 절인데 과거부처가 머물던 곳이라 해서 지금도 나라 임금들이 자주 찾아 예불을 올리는 곳이다. 원효가 알았다고 하자 혜공은 몸을 흔들며 저쪽으로 사라졌다.

이튿날 영묘사에 가보니 무슨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중요 전각들은 모두 새끼줄로 둘러쳐져 있고. 특별히 아는 사람도 없는 원효는 한쪽에 비켜 앉아 행사를 구경했다. 그때 어떤 젊은 거지 하나가 들어오더니 새끼줄을 들치고 들어가 불탑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았다. 다 아는 거지인지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효도 그러려니 하며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화려한 행차가 나타났다. 이제 보니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예불을 올리러 오는 것이었다. 원효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선덕여왕은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사시는 분인데 이제 한창 중년이라 신라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 여기서 여왕을 다 뵙는구나.’ 그쯤 생각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마차에서 내린 여왕은 들어오면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원효의 눈과 마주쳤다. 아주 짧았지만 말이다. 원효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다.

무슨 예불을 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 예불이 다 끝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잘 하면 저 여왕과 또 한 번 눈을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원효는 중이란 신분까지 잊고 있었다. 그 사이 여왕이 걸어 나왔다. ‘참으로 아름답고 넉넉한 분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여왕이 원효 앞으로 다가섰다.

“스님 법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원효라 하옵니다.”

선뜻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합장하며 공경을 표했다. 여왕의 체취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다시 쳐다보니 자기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여인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여왕은 끼고 있던 금반지를 조용히 뺐다. 그러고는 머뭇거렸다.

“도리천에 한번 들러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도리천이라니! 원효는 의아했다. 도리천忉利天은 불교 26천天 중 두 번째 천당으로 사천왕천四天王天 바로 위에 있다. 이곳은 고도의 선정禪定에서나 아니면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엘 오라고 하다니! 원효가 머뭇거리자 여왕이 재촉했다.

“곡차를 들고 꼭 찾아오시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거의 강요였다. 그것도 곡차(술)를 들고서 말이다. 이는 살아서 찾아오라는 뜻이었다. 원효가 대답을 못하자 여왕은 다짐을 받겠다는 듯 원효에게로 한 발 다가섰다. 원효는 그제야 얼떨결에 ‘예예.’ 하고 말았다.

그러자 여왕은 돌아섰다. 그리고는 불탑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 젊은 거지에게로 갔다. 자기의 반지를 그 거지의 손 위에 올려놓고는 조용히 돌아섰다. 다시 왕궁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 동안 젊은 거지는 피곤했던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나 여왕의 반지를 본 거지는 그냥 있지를 못했다. 마음에서 심화心火가 일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심화는 새끼줄이 쳐진 중요 전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태워버렸다.

그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원효는 잠시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는 저 불길 속에 자기가 잠시 품었던 모든 연민의 정을 모두 태워버렸다. 애틋한 여인과 근엄한 여왕 사이에서 고뇌하는 눈빛까지도 말이다. 이 거지는 여왕을 사모한 지귀志鬼라는 젊은이였고, 새끼줄을 치게 한 사람은 바로 혜공惠空이었다.

 

 

[오어사] 울적한 마음으로 영묘사를 나오자 혜공이 바로 맞았다.

“그래 불구경 잘 했소?”

엉뚱하게 물었다. 원효도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잘 했습니다.”

“그럼 됐소. 내일 마침 날씨가 좋다하니 우리 오어사吾魚寺 계곡에서 천렵이나 합시다.”

중이 고기잡이라! 그러나 그런 것은 혜공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둘은 오어사 계곡으로 갔다. 다소 깊은 골짜기라 숲은 우거졌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이내 천진난만한 소년들이 되었다. 혜공은 삼태기를 들고 첨벙거렸고 원효는 삿갓을 들고 첨벙거렸다. 얼마 후 고기 몇 마리가 잡혔다. 그러자 혜공이 술수를 부려 보글보글 찌개로 만들었다.

너럭바위에 앉자 혜공은 무엇이 부족했던지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러다 옆 개울물을 떠서는 곡차(술)로 만들었다. 한잔 마시더니 또 무엇이 부족했던지 이번에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물을 한바가지 떠서는 저 앞에 있는 바위벽을 보고 휙 뿌렸다. 물이 묻은 바위벽은 이내 큰 화면畵面으로 변했다. 그러자 용상에 앉아서 대신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동해용왕 이암二巖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암二巖이 물었다.

“스님 또 웬일이십니까?”

썩 내키는 말투는 아니었다.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닌 듯 했다.

“따님들이 답답할 것 같아 세상 구경 좀 시키라고 불렀소이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어찌 다 큰 따님들을 집안에만 붙들어 두고 있소. 세상 구경도 좀 시켜야지.”

“그야 그렇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뭘 그렇게 자주 부르십니까?”

혜공이 적당히 둘러대는데 용왕도 이번만은 지지 않을 기세였다. 사실 동해용왕은 딸을 셋 두었는데 큰딸은 시집을 갔고 둘째 셋째만 장성한 채로 남아있다. 그간 혜공이 가끔 불러서 놀다가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이암은 찜찜했었다. 눈치를 챈 혜공이 말했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원효스님과 함께 있기 때문이요.”

원효란 말이 나오자 용왕은 ‘정말이요?’ 하면서 얼굴을 가까이 내 밀었다. 저쪽에서도 다 보이는 모양이었다. 혜공이 원효를 끌어 바위벽에 바로 비치게 하자 용왕은 ‘정말로 원효스님이군.’ 하며 자기 딸을 올려 보내겠다고 했다. 잘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팔뚝만한 미끈한 잉어 두 마리가 유유히 헤엄쳐 올라왔다. 가까이 오더니 이내 젊고 늘씬한 처녀로 변신했다. 말할 것도 없이 동해용왕의 두 딸이었다. 두 사람은 곱게 인사를 하더니 혜공 원효 사이에 한 사람씩 앉았다. 원효스님 덕분에 아버지 품을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감사해했다. 다소 분위기가 잡히자 술잔이 돌았다. 혜공은 말한 것도 없고 두 처녀도 곧잘 마셨다. 울적한 원효도 주저하지 않았다.

드디어 주기가 올랐는지 혜공은 셋째 용녀를 덥석 안아 원효의 무르팍에 턱 앉혔다. 그러고는 둘째 용녀를 덥석 안아 자기 무르팍에 턱 앉혔다. 이미 얼굴이 불그레한 두 여인도 싫지 않았는지 겉으로만 앙탈을 부렸다. 그리고는 술을 따라서는 서로 먹여주며 호호 거렸다.

‘이 처녀를 선덕여왕이라 생각하면 되는구나. 일체가 마음뿐이니.’ 속으로 생각했다. 눈치를 챈 혜공이 놀렸다. ‘선덕여왕보다 더 젊고 아름답구먼.’ 이후 원효는 일체 거리끼지 않았다. 짙은 농담도 오갔고 짙은 토닥임도 오갔다.

한참 지나자 취한 용녀가 농을 했다. 저 계곡물은 사실 자기들 오줌이라고. 두 분은 모두 자기들 오줌 속에 노는 것이라고. 그러자 혜공이 대뜸 받았다. 그렇다면 똥이 있어야지, 똥과 오줌은 떨어질 수가 없거든. 그러면서 옆의 바위 위로 올라가 똥 눌 자세를 취했다. 원효도 그대로 따랐다. 그 모습을 본 두 용녀는 기겁을 해서 부리나케 잉어로 변해서는 유유히 아래로 헤엄쳐 내려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정말로 똥을 누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쳐다보고 통쾌하게 웃었다. 혜공이 원효의 똥을 보고 말했다. ‘저 똥은 스님이 먹은 고기요.’ 원효도 혜공의 똥을 보고 말했다. ‘저 똥도 스님이 먹은 고기요.’ 그러자 두 똥은 모두 물고기로 변해 퍼덕거리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다시 보니 혜공의 고기는 아래로 헤엄쳐 내려갔고 원효는 고기는 위로 헤엄쳐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두 사람은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었다.

 

(오어사)

죽었다는 소문 듣고 헐레벌떡 달려오니

저 멀리서 혜공법사 뚜벅뚜벅 걸어오네.

죽었다고 하시던데? 죽기는 누가 죽어?

구더기가 버글버글! 장난 한번 해본 거요.

고기나 잡읍시다, 찌개가 보글보글.

볼그레한 용녀가 술잔까지 올리누나!

똥이나 누어야지, 고기 똥을 푸득 싸네.

놀란 원효 경배하자 혜공이 손을 젓네.

대사는 정통이야, 옆길 빠짐 안 되거든.

모든 사람 다 그렇듯, 그냥 똥을 싸야하오.

이상한 똥 싸는 것은 사술이고 요술이지.

정통 불교 세우라고 원효 등을 미는구나.

도행 깊은 원효대사 그냥 갈 리 만무하지.

슬쩍슬쩍 곁눈질해 혜공 술법 터득해서

근엄한 법 설법타가 은근 슬쩍 도술 부려

미혹한 중생들께 큰 웃음을 주는구나.

 

 

[황후의 병] 어느 듯 세월이 흘렀는가. 선덕여왕도 가고 임금도 바뀌었다. 원효의 수행과 도행도 그만큼 깊어졌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대안, 혜공과 진배없었다. 거지 차림이었다.

때 마침 황후가 병이 들었다. 임금은 백방으로 약을 구했다. 명의를 불러 치료도 해보고 백고좌百高座 대회를 열어 기도도 해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백고좌대회는 100개의 불단을 만들어 놓고 100명의 고승을 불러다가 100일 동안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평안을 비는 큰 행사였다. 그래도 효과가 없자 급한 임금은 무당을 불러 물었다. 병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남자 무당이 대답했다.

“이는 불경佛經이 세상에 나오려는 큰 인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해바다 용궁으로 사람을 보내 불경을 가져와서 강연을 해야 황후의 병이 났습니다.”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은 알았으나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서해 용궁으로 가는가?”

무당은 그것까지는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다. 답답한 임금은 백고좌 수장首長을 불렀다. 정신적으로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평안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근엄한 모습으로 들어온 수장이 예를 올리자 임금은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들은 수장은 이내 몸을 움츠렸다. 자기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사항이었다. 임금이 역정을 냈다.

“이렇게 어려울 때 왕실을 돕지 못하다니 말이 되오?”

그간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은데 대한 질타였다. 다급한 수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혹 대안스님이나 혜공스님이나 원효스님께 부탁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평소 스님이 싫어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수장은 말을 못했다. 사실 그간 그들을 싫어했다. 백성들은 모두 그들을 좋아해서 명성이 자자했으나 자기들은 싫었다. 모두 거지꼴이라 자기들 품격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고좌 대회에 한 번도 넣어주지 않았다. 좁은 땅 신라 100명의 고승에 그들은 한 번도 끼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급하니 그들을 찾는 것이었다. 임금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라도 해 보시오.”

 

 

[수장과 대안] 궁을 나온 수장은 여간 자존심 상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별 수가 없었다. 세 사람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찾아야했다.

가장 쉬운 사람은 역시 대안이었다. 온 거리를 돌아다니며 ‘행복하세요, 편안하세요, 부자 되세요.’ 하고 외치기 때문이었다. 그를 만난 상좌(上佐, 수제자)가 정중히 예를 올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대안은 고개만 꺄웃거렸다. 그리고는 말없이 저쪽으로 가버렸다. 무슨 뜻인가. 된다는 것인가. 안 된다는 것인가. 그것도 알지 못한 상좌는 돌아와 그대로 보고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수장이 말했다.

“그 늙은 거지가 구태여 나보고 나오라 하는구먼!”

그러면서 갈 차비를 했다. 근사한 비단 장삼 한 벌을 챙기고서 말이다. 잠시 후 수장은 상좌와 몇몇 시자를 데리고 근엄한 복장으로 대안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비단 장삼을 펼쳐들고는 대안에게로 다가섰다.

“아이쿠, 스님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옷이 이게 뭡니까? 다 떨어진 누더기니. 제가 옷 한 벌 마련해 왔으니 한번 입어보십시오.”

그러면서 비단 장삼을 대안의 어깨에 척 걸쳐주었다. 대안은 이내 입이 ‘헤’ 벌어졌다.

“그것 참 곱고 부드럽구먼. 마치 처녀 젖가슴 같네. 항상 이런 옷을 입고 다니시오. 나는 난생 처음인데.”

반쯤 비꼬는 말이지만 수장은 참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가가 다소 가라앉자 대안이 물었다.

“조금 전 그일 때문에 오셨소?”

수장이 그렇다고 하자 대안이 말했다. 그 일이라면 헛걸음을 쳤다고. 원효한데 시켜야지 다른 사람은 안 되다고. 그러면서 원효의 거처를 일러주었다. 수장이 들어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이로 보나 뭐로 보나. 대안을 작별하고 한참을 가다 상좌가 물었다.

“저 대안스님이 비단 옷 좋아하실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빈대도 안 남는다는 말 못 들었어?”

수장의 대답이었다.

 

  

[원효 승낙] “원효를 만나기 위해 이번에는 거지 굴로 가야한다!”

수장은 한심한 듯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별 수가 없었다. 여럿이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음식을 마련해서는 시자들과 함께 나섰다. 이때 원효는 거지들과 어울려 어느 다리 밑에 있었다.

다리 밑에 오니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이런 곳에 다 있다니. 참 대단하구나.’ 수장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원효에게는 이미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추하다 하는 개념이 없었다. 사람 또한 구분하지 않았다. 고관도 평민도 부자도 거지도 그에게는 똑 같았다.

가까이 온 수장은 스스럼없이 땅 바닥에 턱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원효와 마주했다. 초면이지만 모든 것이 능수능란했다. ‘역시 수장답구먼.’ 원효도 인정했다. 수장이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자 원효가 말했다.

“배가 고프니, 뭐 좀 먹고 합시다.”

“아, 당연히 그래야지요.”

수장은 가져온 음식을 풀게 했다. 푸짐한 음식이 펼쳐지자 뒤에 멀찍이 앉아있던 거지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원효가 와서 먹으라고 하자 모두 제 밥상인양 모여들었다. 한참을 배불리 먹자 거지들은 모두 뒤로 물러났다. 원효도 다시 수장과 마주했다. 원효가 말했다.

“조금 전에 뭐라고 말씀하셨지요?”

온 이유를 재차 물었다. 수장도 재차 설명했다. 원효가 대답했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그걸 감당합니까? 궁중에는 고승대덕이 많을 텐데.”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었다. 백고좌대회에 한 번도 초청 받지 못한 데 대해서 말이다. 세속 모든 인연을 끊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다. 수장도 그걸 인정했다. 그러나 지지 않았다.

“이번 일은 스님밖에 할 분이 없습니다. 대안스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더욱이 황후의 병환에 관련된 일이니.”

황후란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원효가 아예 뒤로 물러앉았다. 그제야 수장은 자기가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사람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뒤에 앉아있던 젊은 거지 하나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원효를 보고 말했다.

“스님 그 불경을 구해 와서 제 다리도 좀 고쳐주세요.”

병을 고치기 위해 불경을 구하려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자기 다리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모양이었다. 잠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본 원효는 고개를 바로 하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드디어 원효가 승낙했다. 수장은 감사하다며 돌아섰다.

 

 

[용궁 난리] 지팡이를 짚고 서해바다에 이르니 서해용왕 검해鈐海가 이미 사람을 보냈다. 그를 따라 용궁에 이르자 검해鈐海가 반갑게 맞았다. 마주 앉자 검해가 말했다.

이 용궁에 수백 년 묵은 철궤鐵櫃가 있는데 그 속에 불경佛經이 들어있다고. 그런데 그 내용은 물론 책 이름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또 자기들은 그 불경을 읽을 능력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방치해두었는데 이제 때가 됐는지 스님이 불경을 가지려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불경을 풀이하면 자기들에게도 좀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어렵지 않다고 하자 검해가 밖을 보고 소리쳤다.

“예, 수정水晶아, 그 철궤 좀 들고 나오너라.”

자기 딸을 부르는 것 같았다. ‘예’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다소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방문이 열리고 한창 처녀티가 나는 젊은 아가씨가 낑낑대며 철궤를 들고 와서는 방바닥에 쾅 놓으며 푸념을 했다. ‘무슨 철궤가 이렇게 무거워!’ 그러자 녹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버지 검해가 원효스님 앞에서 무슨 무례냐고 하자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제멋대로 행동했다. 원효가 보니 참 자유스런 아가씨였다. 예쁘게 생긴 것과는 달리 말광양이 같기도 하고.

딸이 나가고 둘만 남자 함께 철궤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녹이 쓸어 쉽게 열리지가 않았다. 한참을 낑낑 대며 실랑이를 벌이는데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곧이어 왕궁 금위대장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금위대장이 보고했다. 지금 왕궁 바깥에서 중국中國과 해동海東의 천병天兵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급히 성루에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두 나라 천병들이 하늘과 땅과 물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중국은 황제皇帝가 교룡 기린 봉황 거북 4령四靈을 거느렸고, 해동은 치우蚩尤가 청룡 백호 주작 현무 4신四神을 거느렸는데, 교룡은 청룡과 싸우고 기린은 백호와 싸우며 봉황은 주작과 싸우고 거북은 현무와 싸우는 형식이었다. 누가 우위라 할 것도 없이 막상막하여서 사방천지가 온통 싸움판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나는 어느 쪽에도 원수진 일이 없는데. 항상 공정하게 대했는데.’ 두 나라 중간에 낀 용왕은 난처했다. 그러다 자세히 보니 중국은 용궁을 공격하는 형태였고 해동은 용궁을 방어하는 형태였다. 이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중국 측이 원효를 보자 ‘원효가 저기 있다. 어서 잡아라.’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해동 측도 ‘원효스님을 보호하라. 어서 피신시켜라.’ 하며 대응했다. 놀란 용왕은 원효부터 숨기기로 했다. 급히 딸 수정을 불러 엄명했다. 딸 자기 방에 모셔놓고 절대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딸 아이 방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원효가 내려가자 용왕은 소리쳐 황제와 치우를 불렀다. 그리고는 왜 남의 땅에서 싸우느냐고 따졌다. 두 사람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용왕은 수긍이 갔다. 그리고는 자기가 해결하겠으니 그 동안 싸우지 말고 꼼작 않고 있으라고 했다. 두 사람도 동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 나라의 입장이 똑 같은 것이었다. 신라도 황후가 병이 나서 불경을 구하는데 중국도 황후가 병이 나서 불경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라가 한발 빨랐던지 원효가 먼저 용궁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니 중국에서는 불경을 손에 넣던지 아니면 원효를 막아야 했다. 그래서 원효를 잡으려 한 것이었다.

상황을 판단한 용왕은 문제 해결자가 하늘나라 석가여래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싸움을 중지시키고는 하늘나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여래전] 하늘나라 여래전如來殿에 도착하니 석가여래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거느리고 이미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볼멘소리로 항의하자 석가여래가 웃으며 설명했다.

“미안하오, 일이 그렇게 됐소이다.”

그러면서 설명했다. 사실 그 불경은 원효보살만이 풀이하고 강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풀이할 수도 없고 풀이해도 효과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효보살한데 시킨다는 게 그만 일이 이렇게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 황후는 원효보살이 풀이한 책만 봐도 저절로 병이 낫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용왕은 원효보살의 풀이를 중국에 보낸다는 약조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두 나라 황후의 병이 모두 낫는다는 것이었다. 다 듣고 난 용왕은 그렇다면 자기가 해결하겠다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석가여래가 덧붙였다.

“그 책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바다 생물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소. 병을 고침은 물론이요 잘하면 마왕도 될 수 있기 때문이요. 더구나 바다 생물 모두가 원효보살을 탐낼 거요. 특히 암컷들이 그럴 거요. 그의 살점을 한 꼭지만 먹어도 천년 마왕이 될 수 있는데다, 그와 잠자리만 한번 해도 천년 마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요.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요! 답답한 용왕이 돌아보자 여래가 말했다.

“원효보살을 뭍으로 내보내는 일은 수정공주水晶公主에게 맡기고, 경을 풀이하는 일은 대안성자大安聖者에게 맡기면 되오.”

용왕은 알았다고 예를 한 후 물러났다.

 

     

[철궤 열기] 용궁으로 돌아와 황제皇帝와 치우蚩尤 두 사람에게 석가여래의 말을 전하자 두 사람도 수긍하고 천병을 끌고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저 철궤를 열어 빨리 풀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용왕 원효 수정 셋이 함께 모여 철궤를 열기 시작했다. 갖가지 공구가 동원되었다.

그런데 용왕이 보니 원효와 수정의 태도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말도 하지 않고 외면하다시피 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찌 보면 연인 같았고 어찌 보면 부부 같았다. 전혀 스스럼이 없었다.

‘그것 참, 나는 싸움판에서 죽으라고 애를 썼는데 저것들은 따뜻한 방에서 장난만 쳤나.’ 그제야 원효의 안전을 꾀한답시고 원효를 딸아이 방에 머물게 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철궤가 열렸다. 그런데 이게 뭔가? 보자기에 고이 싸인 불경이어야 하는데 온통 뒤죽박죽 둘둘 말린 종이뭉치 아닌가? 여기저기 흩어진 것을 누가 되는대로 급히 주워 모아 그대로 둘둘 말아서는 집어넣고 급히 뚜껑을 닫은 것 같았다. 용왕은 이해가 갔다. 바다 생물들이 탐낸다는 석가여래의 말씀 말이다.

원효가 종이뭉치를 펼치려하자 용왕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빨리 장딴지를 내놓으라고 했다. 원효가 다리를 뻗고 장딴지를 내놓자 ‘털북숭이 장딴지네요.’ 하며 수정이 다가왔다. 스스럼없어하는 딸의 눈치를 보며 용왕은 둘째 손톱으로 장딴지를 죽 그었다. 장딴지는 이내 열렸다. 그러자 그 속에 종이뭉치를 집어넣고는 급히 닫고 약을 발라서는 본 모습으로 돌아오게 했다.

용왕이 이처럼 급히 서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바다생물에게 혹 불경을 빼앗길까 염려해서였다. 일이 잘 되었는지 용왕은 뭍으로 나가거든 자기처럼 해서 경전을 꺼낸 후 다시 약을 바르면 된다며 약병을 건네주었다. 이제 뭍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 일은 석가여래의 분부대로 수정공주가 맡았다.

[문어 여왕] 막상 임무가 주어지자 말광양이 처녀는 어디 가고 단단히 무장한 낭자만 남았다. 머리를 묶어 뒤로 젖히고 착 달라붙는 바지에 보검을 찬 것이 영락없는 여전사 모습이었다. 이번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듯 ‘그 먹물은 무서운데!’ 하며 수정도 바짝 긴장했다.

사실 이 용궁에서 뭍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문어왕국을 거쳐야한다. 주인은 천년 묵은 암컷 문어인데 그 술수가 소문나 있었다. 웬만한 동물은 상대가 안 됐다. 수정공주와도 막상막하였다. 그런 문어가 만약 불경과 원효를 한꺼번에 얻는다면 석가여래가 우려한 천년 마왕이나 천녀 마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거기다 지혜도 보통이 아니었다. 지난번 원효가 용궁으로 들어올 때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둔 것은 돌아갈 때 원효와 불경을 함께 잡기 위해서였다. 이제 수정공주는 그런 문어여왕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출발 준비가 되자 수정공주는 똑 같이 생긴 수정水精 구슬 두 개를 꺼내서는 하나는 자기 허리춤에 차고 다른 하나는 원효의 허리춤에 채워주며 말했다. 위급하면 이 구슬을 보고 자기를 부르라고, 그러면 자기가 바로 나타나겠다고. 원효가 알았다고 하자 이내 출발했다.

밖을 나오니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잔잔한 모래가 한없이 펼쳐졌는데 커다란 해조류의 흔들리는 모습이 별천지 같았고 그 사이로 한가로이 오가는 물고기는 천국 같았다. 서해 용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모양이었다. 둘은 서로 쳐다보며 정겹게 걸었다.

얼마를 가니 이번에는 양 옆으로 산호초 절벽이 나타났다. 형형색색의 아름답고 화려한 산호초 절벽 사이로 넓고 긴 길이 나 있었다. 원효는 그 황홀함에 넋이 나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수정이 경고했다. 지금 문어왕국에 들어섰다고. 어쩌면 문어여왕이 지금쯤 나타날 수도 있다고.

그러나 오래 생각할 것 없었다. 저 앞에 그 문어여왕이라는 여인이 바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원효가 보니 그 여인이 그렇게 자비스럽고 너그럽고 풍만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처음 관음보살을 친견하겠다고 낙산으로 향했을 때 생각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원효는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도 수정은 그녀를 보자마자 보검을 겨누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왜 이러시느냐고 점잖게 물었다. 그래도 수정이 계속 몰아붙이자 원효는 오히려 수정이 야속했다.

드디어 수정의 보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그녀도 어느새 보검을 빼어들고는 대응했다. 치열한 결투가 벌어졌다. 땅에서 싸우다 하늘로 치솟고 하늘에서 싸우다 땅으로 내려왔다. 원효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수정이 조금 우세하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캄캄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원효는 무엇이 자기를 휙 낚아채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는 어느 외딴 주막집 들마루였다.

산을 넘어가야 하는지 저쪽 들마루에는 등짐을 진 장사꾼 서넛이 바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주막집 여주인은 능수능란했다. 이쪽저쪽을 오가며 일을 잘도 처리했다. 술잔을 놓으며 생긋 웃는 모습이 한꺼번에 남자 서너 명은 다룰 것 같았다.

길이 급했던지 장사꾼들이 일어서자 주막에는 원효와 여주인 단 둘만 남았다. 여주인은 주저 없이 원효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술잔을 올리며 아양을 떨었다. 원효도 싫지 않았다. 낙산으로 갈 때 잘 모르고 지나쳤던 월경대 빠는 여인, 보리 베는 여인처럼 느껴졌다.

여인은 점점 더 적극적이었다. 둘 뿐인데 뭘 그러시냐며 연방 술잔을 올리며 원효의 뺨에 얼굴을 갖다 대기도 하고 윗옷을 풀기도 했다. 드디어 허리띠까지 풀었다. 그러자 수정이 준 구슬이 데구루루 굴렀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원효는 구슬을 집어 들고 바라보았다. 보검을 들고 자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수정공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소리치자 동시에 수정공주가 칼을 든 채 앞에 나타났다.

여기서 뭐하느냐는 듯 원효를 힐끗 쳐다본 수정공주는 곧바로 여주인에게 칼을 겨누었다. 여주인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순간 거대한 암문어도 변신했다. 천 년을 묵어서인지 온통 붉고 울퉁불퉁한 모습이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여덟 개 팔에 칼을 하나씩 들고는 수정공주에게 덤벼들었다. 원효도 이제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지팡이를 들고 함께 대들었다.

한동안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다 수정의 보검이 문어의 팔 하나를 잘랐다. 피가 흘렀다. 그래도 문어는 덤벼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효의 지팡이가 문어의 또 다른 팔 하나를 잘랐다. 그제야 문어는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저쪽으로 슬금슬금 도망쳤다. 동시에 주막집도 사라지고 화려한 산호초 절벽 사이에 서 있는 두 사람만 남았다. 수정이 대들었다.

“그렇게 여자한데 혹 해서야 어찌 우리 약속을 지킵니까?”

“아니요, 아니요, 약속은 꼭 지킵니다. 이번엔 저 문어 먹물에 약간 취했기 때문이요. 미안하오.”

원효는 사정했다. 사실 문어 먹물에 좀 취하기도 했다. 수정공주도 이 점 인정했다. 수정이 ‘알았어요.’ 하자 둘은 다시 화해가 되었다. 이들은 수정의 방에 있을 때 어떤 약속을 했었다.

 

   

[불경 인계] 뭍으로 나오니 세상은 역시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다. 녹음이 우거졌고 새들도 지저귀었다. 얼마를 가니 저 앞에 먼지가 일었다. 급했던지 상좌上佐가 수하 승려와 호위병을 데리고 불경을 받으려 말을 달려오는 것이었다. 나무 그늘에 앉자 원효가 물었다.

“황후의 병환은 어떻습니까?”

“여전합니다.”

원효는 다리를 뻗고 앉았다. 둘째 손톱으로 장딴지를 죽 그어 불경 뭉치를 꺼내서는 상좌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용왕이 준 약을 발라 원상태로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빨리 돌아가서 병을 고치라고 하자 모두들 말을 달려 되돌아갔다. 원효는 날아갈 듯 홀가분했다. 큰 짐을 벗은 느낌이었다. 노래와 춤이 절로 나왔다. 호리병을 옆에 차고 한바탕 흔들었다. 어디로 간다? 대안스님이나 혜공스님이 있으면 곡차나 한 잔 할 텐데. 그러면서 상주尙州로 향했다. 상주는 당시 신라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한편 왕궁에서는 상좌가 가져온 종이 뭉치를 앞에 놓고 고민에 빠졌다. 불경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종이뭉치인데다 임금을 비롯한 수장 상좌 고승들이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보았으나 내용은 물론 종이뭉치의 순서조차 맞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세상에 없는 처음 보는 불경이었다. 답답한 임금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또 대안스님을 들먹였다. 또 한 번 부탁해 보자고. 모두들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어느 저자거리, 수장首長이 상좌들과 함께 대안大安을 만나고 있었다. 대안은 또 거지 차림이었다. 지난번 건네준 비단옷이 벌써 다 떨어질 리가 없는데 말이다. 수장이 경전 뭉치를 꺼내놓고 사실 이야기를 하자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대안은 비단옷만 쳐다보았다. 그 사이 주위에 있던 거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대안을 보고 말했다.

“스님, 저도 비단옷 한 번 입게 해 주세요.”

“저도 한 번 입게 해 주세요.”

수장은 자기 비단옷을 벗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옷을 벗어 거지에게 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좌와 시자들도 모두 비단 옷을 벗어 거지들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다 떨어진 삼베옷을 입었다. 그제야 거지들은 물러갔다.

“어디 봅시다.”

대안이 불경 뭉치를 펼쳤다. 서른 장 남짓했다. 두어 번 반복해서 뒤적이더니 차례를 맞췄다. 제목을 보니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이었다. 금강삼매경이라! 물론 이 세상에 없는 불경이었다. 곧 새로운 불경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었다. 대안도 감격스러운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수장이 말했다.

“스님, 어서 이 경을 풀이해서 황후의 병을 고치시지요.”

대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경은 본각本覺과 시각始覺 곧 바탕 깨침과 처음 깨침을 다루었는데 이 경을 풀이할 사람은 원효밖에 없소. 다른 사람은 누구도 할 수가 없소. 빨리 그를 찾아가 풀이하게 하시오.”

원효대사가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건 걱정 말라며 자기가 직접 편지를 써 주었다.

 

 

[원효 풀이] 상좌와 수행원들이 급히 말을 달려 상주尙州로 향했다. 상주에 이르니 원효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사실 이야기를 하고 대안의 편지를 건네자 ‘대안스님이 나를 쉬지도 못하게 하시는군.’ 하며 투덜댔다. 그러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이미 연통이 되어 가는 곳마다 도움을 줄 것이라 하자 원효는 그런 것은 필요 없다며 순한 황소 한 마리와 벼루와 붓만 달라고 했다. 그것을 마련해주자 원효는 황소의 두 뿔 사이에 벼루를 얹고 자기는 황소 등에 앉아서 서라벌로 향하며 불경을 풀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원효를 각승角乘 곧 쇠뿔 중이라 불렀다.

상좌가 얼마나 걸리겠냐고 묻자 한 보름이면 서라벌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상좌가 보름 후에 분황사에서 임금과 황후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큰 법회를 열어 강연을 듣고 황후의 병을 고치자고 했다. 원효가 좋다고 하자 상좌는 곧바로 서라벌로 향했다. 원효도 이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속을 한데다 황후의 병까지 걸린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정작 초조한 사람은 바로 백고좌 수장과 그 무리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처지였다. 원효가 풀이를 못해도 문제지만, 풀이를 해서 황후의 병을 고쳐도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속된 말로 자기들은 개털이 되기 때문이었다.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드디어 원효가 서라벌 가까이 와서 가끔 기생집에도 드나들며 곡차도 마신다는 소문이 들렸다.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도 말이다. 이는 원효가 풀이를 다 끝내 모든 준비를 다 마쳤음을 뜻했다.

또 이런 말도 들렸다. ‘지난 번 서까래 백 개를 구할 때는 자기가 들지 못했지만, 대들보 하나를 구할 때는 오직 자기만이 들었다’고.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백고좌대회에 한 번도 초청받지 못한 것을 뜻했다. 곧 수장과 상좌 등을 비꼬는 말이었다. 수장과 상좌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상좌가 말했다.

“스님, 원효의 그 풀이서書를 훔치면 어떨까요?”

“풀이서書를 훔쳐?”

상좌가 설명했다. 풀이서를 훔쳐서 원효가 강연을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동안 원효는 한 것이 없게 되니 이는 왕을 기만한 것으로 처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자기들이 그 훔친 풀이서를 가지고 강연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수장이 동의하자 이내 솜씨 좋은 사람이 물색되었다. 워낙 급하다 보니 누가 암고양이고 누가 수고양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솜씨 좋은 사람도 별 수가 없었다. 자기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밤이고 낮이고 몇 번이나 원효의 거처를 들락거리며 뒤졌으나 도대체 풀이서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풀이서를 짓지도 않았다고 단언했다.

 

 

[대안 훔침] 일이 이쯤 되자 수장과 상좌는 또 다시 머리를 맞대지 않을 수 없었다. 상좌가 그 솜씨가家의 말대로 풀이서書를 짓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하자 수장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 생각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풀이서를 지어서 어딘가에 숨겼는데 지금 자기들이 못 찾는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태평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상좌도 수긍했다. 그나저나 이제는 더 기다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상좌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훔치는 일을 대안大安 스님에게 부탁해보면 어떻겠냐고!

다른 사람도 아닌 대안스님을 들먹이자 수장은 그게 말이나 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상좌도 지지 않았다. 자기가 보기에는 명성과는 달리 대안도 자기들과 똑같이 별 수 없이 재물과 명예를 탐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재물로 유인하면 틀림없이 먹혀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수장은 지난번 비단옷을 받고 ‘헤’ 웃던 대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망성이 있어보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어느 조용한 방, 수장과 대안 단 둘이 마주 앉았다. 사방은 휘장이 둘러쳐져 그 어떤 말소리도 새나가지 않았다. 수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스님, 스님도 이제 연세가 지긋하신데 어디 거처할 곳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명성도 좋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떠돌 수만은 없으니.”

“그야 그렇지만 어디 능력이 돼야지요.”

그러자 수장은 묵직한 보자기를 상 위에 올려놓고 탁 펼쳤다. 누런 황금덩어리가 빛을 발했다. 대안은 당연히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것이 황금덩어리구먼요.”

“제가 스님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님이 거처할 작은 암자도 하나 마련해드릴까 합니다.”

“아이쿠 이렇게 고마울 데가! 기왕이면 큰 걸로 하나 주십시오.”

대안은 이내 침을 흘리며 바짝 당겨 앉았다. 그렇게만 해 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막상 협상이 시작되자 피차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대안도 보기와는 달리 재물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서로 밀고 당긴 끝에 결론을 얻었다. 대안이 원효의 풀이서를 훔쳐서 건네주는 대신, 수장은 서라벌 최고의 큰 절을 대안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안은 어렵잖게 원효를 찾았다. 그리고는 풀이서를 한번 보자고 했다. 강연하기 전에 자기가 미리 한번 봐주겠다고. 실수하면 큰일이니까. 그러자 원효는 장딴지를 그어 풀이서를 꺼내서는 대안에게 넘겨주었다.

‘저기다 숨겼으니 아무도 못 찾지.’ 대안은 풀이서를 받아서는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다섯 권으로 풀이했는데 역작임이 틀림없었다. 물론 다소 미비한 점이 있지만. 대안이 말했다.

“내가 가져가서 한번 읽어보고 내일 갖다 드리리다.”

원효는 두 말 않고 승낙했다.

 

 

[임금 앞] 이튿날 해가 넘어가는데도 대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이 강연 날인데 큰일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대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원효는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그럴 분이 아닌데.’ 그러나 현실이었다.

그러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원효가 풀이서를 잃어버렸느니, 누가 훔쳐 갔느니, 심지어 풀이서를 짓지도 않고서 지었다고 하느니 등등이었다.

소문을 들은 임금은 화가 꼭뒤까지 났다. 그간 황후의 병을 고치기 위해 풀이서 하나만 믿고 참고 또 참아가며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하다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즉시 금위대장을 불렀다. 그러고는 수장首長 대안大安 원효元曉 세 사람을 무조건 잡아들이라고 명했다.

얼마 후 임금 앞에 세 사람이 앉혀졌다. 옆에는 금위대장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고. 수장은 두려운지 안절부절 못 했고, 대안은 역시 거지차림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임금도 이성을 잃었는지 말이 거칠었다. 마치 죄인 다루듯 했다. 먼저 원효를 보고 물었다.

“그래 풀이서를 짓기나 했소?”

“예 지었습니다.”

“그러면 그 풀이서가 지금 어디 있소?”

“대안스님이 가져갔습니다.”

이번에는 임금이 대안을 보고 물었다. 그 풀이서를 가져갔느냐고. 그러자 대안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딱 잡아떼었다. 원효는 어이가 없어 멍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더 놀란 사람은 바로 수장이었다. ‘아니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자기가 가져와서 분명히 나한데 줘놓고는!’ 그러면서 대안을 멍히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러나 대안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자기만 빠져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임금이 금위대장을 보고 불같이 소리 질렀다. 원효를 끌어내어 즉시 참형하라고! 놀란 금위대장이 주저하자 임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다시 소리쳤다. 지금 당장 끌어내지 않고 뭐하느냐고!

그제야 하는 수 없다는 듯 대안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 만약 원효를 참형하면 그 불경을 풀이할 사람이 없어진다고. 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원효에게 단 삼일 간 말미를 주어서 다시 풀이서를 짓게 하자고. 그래서 삼일 안에 풀이서를 지으면 강연을 해서 황후의 병을 고치고, 그렇지 못 하면 그때 가서 원효를 참형하라고. 듣고 보니 그럴 듯해 임금은 한번만 참아보겠다며 엄히 명령했다.

“단 삼일 간 말미를 줄 테니 원효스님은 금위대장과 함께 지금 바로 분황사로 가서 다시 풀이서를 지으시오. 그리고 삼일 후에 분황사에서 강연하시오. 그 동안 절대로 밖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원효가 알았다는 듯 합장하자 이번에는 금위대장을 보고 명했다.

“지금부터 삼일 간 원효스님을 분황사에 유폐시키니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시오. 만약 그 동안 원효스님이 밖으로 나가거나, 다른 한 사람이라도 안으로 들어가면 그때는 금위대장을 참형하겠소!”

금위대장은 벌벌 떨었다. 화가 다소 풀렸는지 임금은 모두 물러가라고 했다. 밖으로 나오자 수장은 천하다며 대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싫은 모양이었다. 그가 간 얼마 뒤 금위대장의 손에 이끌려 분황사로 들어가는 원효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대안은 조용히 합장했다. 그리고는 하늘에 고했다.

“이제 해동론海東論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명을 다 받들었습니다.

제 임무도 드디어 다 끝났습니다.

저에게 이런 큰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삼일 후 원효는 풀이서를 다시 지었다. 원래 다섯 권이던 것을 세 권으로 압축했다. 따라서 내용이 전번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짜임새가 있었다. 원효는 이를 ‘금강삼매경소’라 했다. 이 소疏를 가지고 임금과 황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인 가운데 강연했다.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환호했으며 황후와 모든 환자들은 모두 병이 다 나았다.

이로서 원효는 어머니의 꿈도 이뤘다. 유성流星이 품에 들어오는 꿈이 해동론海東論 나오는 것이었고, 오색구름이 땅에 덮이는 꿈이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권짜리 소疏는 당연히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중국 사람들은 이 소疏를 논論으로 고쳤다. 그래서 ‘금강삼매경론’이 되었다. 대안은 이를 해동론海東論이라 했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부처님 말씀이 경經이고, 보살이 쓴 글이 논論이며, 고승이 쓴 글이 소疏다. 여기의 보살은 문수보살 보현보살 또는 마명보살 용수보살 같은 분을 말한다. 중국 사람들은 원효를 보살로 보아 원효성사元曉聖師라 했다. 성聖은 부처나 보살에게 붙인다. 또 중국 사람들은 법장法藏을 향상香象이라 하고 원효元曉를 구룡丘龍이라 해서 대비했다. 향상은 중국의 아름다운 코끼리란 뜻이고 구룡은 우리나라의 용이란 뜻이다.

이 경론經論은 둔황敦煌을 거쳐 불교의 본고장 인도까지 들어갔다. 그 쪽 사람들은 이 경론을 히말라야의 불사약 아가타阿伽陀보다도 더 효력이 있다고 했다.

논이 나온 것은 대안 스님의 각고의 노력 덕뿐이었다. 처음 원효가 곡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말을 한다고 들었을 때 혹시나 했었다. 그랬더니 역시 그러했다. 다섯 권짜리는 다소 미비했다. 금감삼매경은 곡차나 마시며 풀이할 경經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풀이할 경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다시 풀이하게 한 것이었다. 그동안 돈도 벌면서 말이다. 물론 이는 부처님의 큰 뜻이기도 했다. 어쨌든 대안은 자기 임무에 충실했다.

대안이 돌아섰을 때는 또 거지였다. 수장에게서 받은 서라벌 큰 절은 거지 부랑자를 위한 사회복지관으로 내놓았고, 몰래 받은 황금붙이는 그 운용비로 다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도끼 노래] 명성이 자자했지만 원효는 수정공주水晶公主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길거리를 돌며 노래를 불렀다.

“자루 빠진 도끼를 주십시오.

하늘 받들 기둥을 찍으려니.”

이 이상한 노래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황후도 마찬가지였다. 황후는 이제 원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있었다. 임금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냐고. 임금이 대답했다.

“흠, 이것은 대사가 과부를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겠다는 뜻이요. 본디부터 자루가 없는 도끼는 처녀이고, 지금 자루가 있는 도끼는 유부녀이니, 자루가 빠진 도끼는 과부가 아니겠소.”

아이 망측해라, 황후가 얼굴을 붉히자 임금이 계속했다. 마침 우리 요석공주瑤石公主가 과부이니 그를 대사에게 시집보내자고. 요석공주는 임금의 둘째 딸인데 그녀의 남편은 지난 번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했었다. 그래서 지금 홀로 지내는데 이제 그녀를 원효에게 시집보내자는 것이었다. 황후도 싫을 리가 없었다. 임금은 즉시 궁인宮人을 시켜 원효를 데려오게 했다.

궁인이 원효를 찾으니 그는 문천蚊川 개울에 들어가 첨병대고 있었다. 고기를 잡는 건지, 잘못해서 빠진 건지는 몰라도 옷은 이미 다 젖었다. 궁인은 할 수 없이 그를 데리고 가까운 요석궁으로 들어갔다. 요석공주가 얼굴을 붉히며 반가이 맞았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했다. ‘그 참 이상하네, 처음 볼 텐데 구면 같으니.’ 궁인은 고개를 꺄우뚱하며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요석공주가 말했다.

“여자라 하니까 빨리도 오셨군요.”

“아니요, 그간 보고 싶어 죽을 번했소.”

사실 이 여인은 요석공주가 아니라 수정공주다. 지난 번 서해 용궁에 있을 때 원효 수정 요석 셋이 합의했었다. 수정공주와 요석공주가 서로 몸을 바꾸어 살자고. 과부로 친정에 와서 혼자 사느니 차라리 멀리 떨어진 용궁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더 났다며 요석공주가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이 사실은 이들 셋만이 안다. 다른 사람들은 알 리가 없다.

요석으로 바뀐 수정과 함께 사는 원효는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원효는 생활에 방해가 될까봐 머리도 기르고 평복을 입어 이름도 소성거사小性居士라 바꿨다. 곧 평범한 시민이 되었다.

 

 

[삼신할머니] 그러나 원효의 노래 소리를 듣고 정작 화를 낸 사람은 뜻밖에도 하늘나라 삼신할머니였다.

“아니, 그래. 애를 낳는 것은 내 소관인데, 원효 제가 뭔데 멋대로 애를 낳고 말고 해. 뭐 하늘을 받들 기둥을 찍어? 누구 마음대로. 요새 사람들은 도무지 예의가 없다니까!”

삼신궁三神宮에서 하느님과 함께 꽃구경을 하면서 화를 내자 하느님이 말렸다.

“여보, 요새 사람들은 다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리 화를 내시요.”

“아니 그럼 당신은 속도 없소. 자기 것을 다 빼앗아 가는데 그냥 있으란 말이요.”

그러면서 삼신할머니는 아기 창고에 들어가서 커다란 씨 항아리를 단단히 단속했다. 이 항아리에서 씨를 하나 꺼내서 내려주면 아기가 태어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를 점지點指라 하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는지 밖으로 나오자 평민 원효가 잰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하느님과 삼신할머니께 정중히 절을 하고는 말했다. 훌륭한 아들 하나만 점지해 달라고. 아무래도 아들이어야 하늘을 받들 기둥이 될 것 같았다.

화가 풀리지 않은 삼신할머니는 완고했다. 그러자 하느님이 이런저런 예를 들어가며 화를 풀어주었다. 하느님은 아무래도 남자여서 남자 사정을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이 안 되느라고 이때 문득 동방東方 청제靑帝 부부가 나타났다. 삼신궁三神宮 꽃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꽃구경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꼈던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삼신할머니가 대충 이야기를 하자 청제가 화를 되레 더 냈다.

“아, 여기도 그런 일이 있었구먼요. 우리 집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요새 사람들은 누구 집 할 것 없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니까요. 부끄럽지만 저희 집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이번만은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려고 벌을 주어 내쫓았습니다.”

이번에는 삼신할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청제가 대답했다. 자기 셋째 딸의 혼처를 어릴 때 정해놓았는데 이 딸이 장성하자 자기 말은 듣지 않고 하찮은 수비병과 눈이 맞아 놀아났다는 것이었다. 삼신할머니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자기들은 왕족이고 수비병은 서민이라 만약 결혼하면 모두 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몇 번을 타일렀으나 말을 듣지 않아 벌을 주어서는 모두 지상으로 내쫓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벌을 주었느냐고 묻자 대답이 너무 맹랑했다. 딸은 우렁각시로 만들고 수비병은 학鶴으로 만들어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삼년 기한을 주고 그 안에 만약 서로 만나면 천생연분으로 인정해서 결혼을 시키고 그렇지 못하면 평생 그렇게 살게 했다는 것이었다.

학이 우렁이를 보면 잡아먹는 것이라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하자 그래도 자기는 아량이 있다는 것이었다. 곧 한밤중 두 시간은 모두 사람 모습으로 돌아오게 했으니 그 시간에 만나서 하늘나라로 올라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성이 있냐고 묻자 그건 그렇지만 자기는 이미 그렇게 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원효가 들어도 기가 막혔다. 도무지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이었다. 자기 말이 전혀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적당히 하고는 물러났다. 그 후 일 년 뒤 요석공주는 예쁜 옥동자를 낳았으니 바로 설총薛聰이었다.

원효가 택한 방법은 삼신할머니보다 한 단계 앞선 것이었다. 삼신할머니는 다소 성숙한 아기씨를 보관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주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 원효가 택한 방법은 마음 근원에 그대로 파고들어가서 아무 것도 없는 공空의 상태에서 초기 아기씨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아기씨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도리천] 설총이 다소 자라자 요석(수정)은 원효에게 다시 머리를 깎으라고 했다. 자기한데만 매여두기에는 너무 큰 인물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낼 때가 되었다.

요석의 말대로 원효는 다시 까까머리가 되었다. 그러나 왠지 쑥스러워 모자를 둘러썼다. 거사 차림이었다. 그러고는 요석과 설총의 배웅을 받으며 걸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걸낭에는 곡차 한 병도 들어있었다. 생각나면 드시라고 요석이 챙겨준 것이었다. 자연히 발걸음도 가벼웠다.

한참을 가니 영묘사靈妙寺가 나타났다. 영묘사는 지난번 지귀志鬼의 심화心火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다. 중요 전각만 남고 다 없어졌다. 문득 선덕여왕이 생각났다. 도리천을 찾아달라고 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기는 얼떨결에 대답했고. 그런데 도리천이 어디일까? 거의 강압적으로 승낙을 요구받던 선덕여왕을 떠올리며 원효는 고개를 저었다.

또 한참을 가니 이번에는 사천왕사四天王寺가 나타났다. 이는 근래 지은 절이었다. 이 절을 보고서야 원효는 비로소 선덕여왕의 말을 깨달았다. 자기 무덤을 찾아와 달라는 말임을!

사천왕천四天王天은 불교 천당 가운데 제일 아래인데 그 바로 위가 도리천忉利天이다. 여왕이 묻힐 때는 사천왕사가 없었으나 그 후 사천왕사가 새로 들어섰으니 곧 여왕의 무덤이 도리천이 되는 셈이었다. 여왕은 죽기 전에 자기 무덤 아래 사천왕사가 들어설 것을 미리 알았다. ‘역시 대단한 여왕이야!’ 그러면서 선덕여왕의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은 아담한 정원이었는데 사방은 높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담에는 넝쿨 꽃이 만발했다. 그 한 가운데는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고. 길게 쳐진 병풍을 마주보며 원효는 주저 없이 술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요석이 준 곡차를 꺼내 놓았다.

새삼 보니 병풍은 화려했다. 붉은색 자주색 흰색 삼색 목단牧丹 병풍이었는데 우리나라 것이 아니었다. 중국 당나라 것으로 당태종唐太宗이 선덕여왕께 특별히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병풍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목단은 원래 향기가 약해 나비가 잘 찾지도 않지만 이번 것은 일부러 그리지 않은 것이었다. 곧 당 태종이 홀로 사는 선덕여왕을 비웃은 것이었다.

잠시 후 선덕여왕이 시녀 두어 명과 함께 병풍 뒤에서 나타났다. 얇은 치마가 하늘거리는 평복에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했다. 원효를 보더니 시녀들에게 물러가라는 눈짓을 했다. 모두 물러가자 여왕은 눈을 살짝 흘겼다. 너무 늦게 와서 얄밉다는 뜻이었다. 서로 마주 앉자 이내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나비들이 나타나 서로 쫓고 쫓으며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 병풍 목단 꽃 위에 앉기도 했다.

둘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동안 정겨운 시간이 흘렀다. 선덕여왕이 물었다. 이렇게 맛있는 곡차를 어디서 구했느냐고. 원효는 오다가 적당히 구했다고 둘러댔다. 요석이 준 것이라 해서 괜히 여왕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왕은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자기가 목단 꽃으로 변신할 테니 원효는 나비로 변신해줄 수 있겠느냐고. 그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자 여왕은 이내 아름답고 화려한 목단 꽃으로 변신했다. 그러자 원효도 화려하고 멋진 나비로 변신했다. 그리고는 꽃 위를 훨훨 날았다. 잠시 후 나비는 꽃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꿀을 찾아 헤맸다. 향기로운 꿀을 흠뻑 들이킬 즈음 목단 꽃잎이 파르르 떨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꽃은 다시 여왕으로 돌아왔다. 나비도 이내 다시 원효로 돌아왔다. 여왕이 말했다. 이렇게까지 자기를 이해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이제는 미련 없이 도리천으로 가겠다고. 선덕여왕이 일어서자 원효도 일어나서 정중히 배웅했다.

“스님, 왜 여기 혼자 앉아 계세요?”

누가 자기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돌아보니 지난번 절뚝거리며 불경을 구해 와서 자기 다리 좀 고쳐달라고 부탁하던 그 젊은 거지였다. 자기의 강연을 듣고 이제는 건강한 다리를 되찾은 것 같았다. 원효가 놀라 둘러보니 자기는 선덕여왕 무덤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해는 한창 중천에 떠 있는데.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러나 그런 것은 알 필요가 없었다. 꿈이면 어떻고 생시면 어떠냐. 중요한 것은 선덕여왕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고, 그녀의 소원을 풀어주어 도리천으로 올라가게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원효는 홀가분했다. 기분 좋게 일어섰다.

 

    

[우렁각시]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가는데 문득 지난 번 하늘나라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그래 오늘이 바로 그 삼년 째 되는 날이로구나. 그것 참.’ 그러면서 끌끌 혀를 찼다. 다시금 생각해도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였다.

개울둑을 따라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데 해는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 곧이어 어둠이 깔렸다. 빨리도 지는군. 그러자 저 멀리 가느다란 불빛이 보였다. 무작정 가니 개울가에 큰 주막이 있었고 천년주점千年酒店이란 깃발이 나부꼈다.

‘이 너른 들판에 외딴 주막이라.’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불은 켜져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당도 들마루도 텅 비었다. ‘여보세요.’ 하고 소리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이 어디 간 모양이지.’ 그쯤 생각하고 오갈 데 없는 원효는 들마루에 앉아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은 자꾸 깊어 가는데 오가는 사람도 없고 배도 고팠다. ‘하기야 이런 외딴 주막에 올 사람도 없지.’ 원효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방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묘령의 여인이 고운 한복을 입고서는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원효에게 다가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자기가 모시겠다며 원효를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었고 아랫목에는 따뜻한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마치 신혼 방 같았다. 원효가 아래쪽에 자리 잡자 여인은 위쪽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는 술을 따라 공손히 올렸다. 술잔을 받으며 힐끗 쳐다보니 여인의 얼굴에 순간 수심이 스쳤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여인은 아무 일도 아니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즐거운 듯 술을 따라 올렸다. 자기도 정겹게 마시면서 말이다. 마치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여인 같았다.

밤중이 깊어지자 여인은 술에 취했는지 아예 원효의 무릎 위에 앉았다. 갖은 아양을 떨며 원효를 유혹했다. 원효도 싫지 않았다. 원효가 이제 잠자리에 들자고 하자 또 한 번 수심이 스쳤다. 원효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밤중이 넘어서려 하자 여인이 말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자고. 그러고는 잠시 밖에 나가 소피를 보고 오겠다고 했다. 원효가 그렇게 하라고 하자 여인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효는 여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여인이 돌아오자 원효는 여인의 손을 끌었다. 그러자 여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렸다. 무슨 일이냐고 또 묻자 여인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역시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시간은 막 밤중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때였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날갯짓 소리 같기도 했고 옷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무슨 소린가? 원효는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랬더니 이게 뭔가? 어떤 젊은 선비 하나가 흰 도포를 입고서 환하게 밝은 마당 한가운데서 멋 떨어진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학춤이었다. 선비는 온통 춤에 몰입했는지 주변상황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훨훨 나는 도포자락은 넓은 마당이 좁은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은 울며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감격에 겨워 흐느꼈다. 드디어 하늘나라 옛 애인 수비병을 만난 것이었다. 그가 이렇게 멋진 학춤을 추며 나타날 줄은 정말 몰랐다. 물론 자기가 천년주점을 차려놓고 삼년간이나 기다린 정성이기도 했고. 선비는 흐느끼는 여인을 가운데 앉혀놓고 몇 바퀴나 돌면서 춤에 몰입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여인은 아버지 청제靑帝의 미움을 사서 지상으로 쫓겨난 셋째 딸이었다.

사실 셋째 딸은 자기 혼자라도 천상으로 올라가려 마음먹었다. 삼년 기한이 다 차는데다 원효와 잠자리만 한 번 해도 영원히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옛 애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울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사람으로서 옛 애인을 만난 것이었다.

둘은 껴안고 한동안 울었다. 그러다 정신이 들었는지 원효에게 돌아와 감사의 예를 올렸다. 이제야 그 뜻을 알겠다고. 원효가 날씨도 쌀쌀하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자 둘은 고맙다고 인사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원효는 걸낭을 짊어지고 주막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풀 속 청개구리가 놀렸다.

“죽 쑤어 남 준 스님,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야 이놈아, 죽은 누가 쑤어? 곡차만 한 잔 얻어먹었지. 내가 네 놈 같은 줄 알아.”

“스님, 저에게도 한 말씀을!”

“열심히 울면 돼. 네 직분이 우는 것이니까. 그 놈 참 똑똑하네. 단박 낌새를 아니!” 원효의 대답이었다.

 

 

[청허세계] 고선사高仙寺에 이르렀다. 그간 원효는 여기저기 많은 절을 지었다. 만행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절 짓기를 원했고, 그때마다 장소와 구조를 설명해 주면, 사람들이 그대로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고선사는 좀 특이했다. 지은 절이 아니었다. 통째 옮겨온 절이었다. 고구려는 말기에 절들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중 아담한 절 하나를 골라 술수를 부려 이곳 신라로 통째 옮겨왔다.

뒷짐을 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고선사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데 사복蛇福이 문득 나타났다. 그의 출몰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형님으로 모시는 터라 깍듯이 인사하니 사복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말했다.

“옛날 자네와 내가 경전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으니 장사나 지내세.”

곧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이었다. 집에 가보니 과연 어머니는 죽어있었다. 이 어머니는 전생에 자기들 경전을 싣고 다니던 암소였다. 둘은 상여를 꾸며 둘러메고 활리산活里山으로 올라갔다. 자리를 잡자 사복이 원효를 보고 축문을 지으라고 했다. 원효가 축문을 지었다.

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이 괴로우니.

죽지 말지어다 나는 것이 괴로우니.

사복이 말했다. 웬 축문이 그리 기냐고. 원효는 할 수 없이 고쳐지었다. ‘죽고 나는 것이 괴롭다死生苦兮.’ 그제야 되었는지 사복도 한 수 지었다.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가 사라수 나무 사이에서 열반하셨는데

지금 그와 같은 이가 있어 연꽃세계에 들어가려 한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띠 풀 줄기를 뽑았다. 그랬더니 그 속에 맑고 청허한 세계가 나타났다. 칠보로 장식한 난간에 장엄한 누각이 인간세상이 아니었다. 사복이 어머니를 업고 들어가자 땅은 합쳐졌고 원효는 돌아섰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저 위에서 사복이 또 자기를 불렀다. ‘청허세계淸虛世界에 들어갔는데 웬 일이냐.’ 다시 산을 오르니 사복이 너럭바위에 앉아있었다.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사복이 말했다. 시끄럽고 미안하고 불쌍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다고. 무슨 말인가 쳐다보니 사복이 계속했다.

청허세계 바로 아래가 지옥세계인데 그곳 사람들이 받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었다. 죄를 지어서 받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들이 받는 고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책임은 전쟁을 일으킨 사람에게 있으니 벌을 주려면 그에게 주어야지 왜 단순히 전쟁터에 끌려가 자기가 살겠다고 죽고 죽인 사람들까지 벌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점은 사복과 원효의 맹점이기도 했다. 자기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풀 수 없는 문제 말이다. 물론 지금은 삼국통일기이지만 원효가 생각하기에는 고구려가 망해도 안 되었다. 고구려가 망하면 그들이 차지했던 저 넓은 요동 땅이 이민족에게 넘어가는 것은 불 보듯 번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자기 나라 신라가 망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으로 임금을 뽑아놓고 자기들은 명예롭게 퇴진하는 것인데, 말이 쉽지 그게 씨나 먹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했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복은 지체장애아여서 군역을 면했고, 원효는 승려여서 군역을 면했다.

그 사이 애꿎은 젊은이들만 전장 터에 끌려가서, 아무 원수진 일도 없는 사람들과 죽고 죽이면서 싸우고는 지옥에까지 끌려가 고통을 받는 것이었다. 이는 원효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복이 돌아가자 원효는 생각했다. 지옥의 책임자인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보고, 안 되면 지옥 자체를 부숴버리자고.

 

 

[지옥 파괴] 단단히 지팡이를 쥐고 지옥문에 이르자 첫째 관문 진광대왕秦廣大王이 이미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왕十王의 첫째답게 위엄도 있고 무예도 있었으며 도산지옥 책임자답게 늘어뜨린 칼에는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런 위엄과 엄포도 원효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애꿎은 지옥 중생을 구한다는 일념 앞에, 원효의 높은 수행 앞에 진광의 무예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음먹고 칼을 휘둘렀지만 번번이 지팡이에 막혔고 몇 합을 겨루자 진광은 꽁무니를 뺐다. 원효는 도산지옥을 두들겨 들판으로 만들고는 칼끝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편히 쉬게 했다.

둘째 관문은 초강대왕初江大王 송제대왕宋帝大王 둘이 지켰다. 첫째 관문 소식을 듣고 나름대로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화탕지옥 흑승지옥 대왕답게 함께 원효를 묶어서 끊는 탕 속에 집어넣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도 헛된 공상이었다. 원효가 허를 찌른 것이었다. 다 썩어 문드러진 송장거지로 변신해 다가가자 퀴퀴한 거지 냄새에다 송장 썩은 냄새까지, 도저히 숨을 쉬지 못하자 코를 막고 달아났던 것이었다. 이는 미추가 본디 한 뿌리(미추동근美醜同根)임을 모르는 그들에게 혜공의 술법을 적용한 것이었다. 그들이 달아나자 원효는 화탕지옥과 흑승지옥을 두들겨 온천탕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모두들 따뜻한 물에서 목욕을 했다.

셋째 관문은 검수지옥 오관대왕五官大王, 발설지옥 염라대왕閻羅大王, 독사지옥 변성대왕變成大王 셋이 지키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원효를 막지 못했다. 원효가 이번에는 관음보살로 변신해서 무력화시킨 것이었다.

관음보살이 다가가자 원효가 변신한 것임을 알면서도 차마 공격하지 못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원효는 지옥을 두들겨 거대한 연회장으로 만들었다. 오관대왕의 칼은 젓가락으로 만들었고, 염라대왕의 거울은 불판으로 만들었으며, 변성대왕의 독사는 장어로 만들었다. 그러자 지옥 중생들이 지글지글 끓는 불판에서 맛있게 장어를 구워먹었다.

넷째 관문은 태산대왕泰山大王, 평등대왕平等大王, 도시대왕都市大王, 전륜대왕轉輪大王 넷이 지키고 있었다. 원효도 이제는 본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관문이 지장보살이라 예의도 지켜야 했지만 이번만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원효는 우선 말로 시비를 걸었다. 태산대왕을 보고 말했다.

“반갑소이다. 태산대왕泰山大王, 그대 같이 마음이 태산 같고 장중하니 지옥 중생들이 얼마나 다행이겠소. 고맙소이다.”

태산대왕은 어리둥절했다. 사실 자기는 태산 같이 큰 톱을 가지고(거해지옥)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번에는 평등대왕을 보고 말했다.

“평등대왕平等大王, 그대야 말로 성인이요. 석가여래께서 그렇게 강조하시는 불신평등佛身平等 진여평등眞如平等 같은 평등사상을 실행하려고 이름까지 평등이라 했으니 말이오.”

평등대왕 역시 어리둥절했다. 원래 자기는 평평한 쇠판 위에 사람을 눕혀놓고(철상지옥) 괴롭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원효는 도시대왕都市大王을 보고는 도시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아줘서 고맙다고 했고, 전륜대왕轉輪大王을 보고는 국제대회에도 오륜기가 있어 나라를 빛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말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음을 알았던지 모두들 한꺼번에 공격했다. 태산대왕은 큰 톱을 들었고, 평등대왕은 철퇴를 들었으며, 도시대왕은 장창을 들었고, 전륜대왕은 보검을 들었다.

잠시 치열한 결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별 것 아니었다.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원효가 두 동강 세 동강 났기 때문이었다. 싱겁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두 동강 세 동강을 내도 원효가 끊임없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도 그 모양이었다.

한참을 이러다 보니 제풀에 힘이 빠졌다.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보니 바닥에는 잘려진 나뭇가지 지푸라기들만 가득했다. 그런데도 원효는 또 저쪽에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놀란 네 사람은 그대로 지장보살에게로 달려갔다.

 

 

[지장보살] 원효가 본 모습을 드러내 지장전地藏殿에 들어서니 지장보살은 선정에 들어있었다. 옆에는 비서실장 도명존자道明尊者와 호위대장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시립해 있고. 뒤에는 시왕十王이 분을 못 삭이듯 씩씩대고 있었다. 원효가 정중히 예를 올리자 지장보살도 황급히 내려와 예를 갖추었다. 마주 앉자 지장보살이 말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온통 지옥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람을 보고 왜 이제 오느냐고 하시다니. 모두 어리둥절 하자 지장보살이 말했다. 우선 원효보살님께 예부터 올리라고. 그러자 모두들 마지못해 예를 올렸다. 지장보살이 말했다.

사실 이 지옥은 없어져야 할 곳이라고. 부서져야 할 곳이라고. 떨쳐야 할 곳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매일 ‘지옥을 떨쳐내자離地獄, 지옥을 깨부수자破地獄’ 하고 축원하지 않느냐고. 이제 여기 원효보살이 모처럼 그 일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또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깨쳐서 부처가 되는 것이지 지옥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의 임무가 지옥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따라서 열심히 수행해서 부처가 됨은 물론이요, 어떤 죄인도 증오해서는 안 된다고. 모두들 불쌍히 여기고 가엽게 여겨서 언젠가는 이 지옥을 빠져나가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나아가 깨치게 해야 한다고. 그제야 사람들은 알아듣고 지장 원효 두 보살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예를 올렸다.

분위기가 다소 진정되자 전륜성왕이 원효를 보고 물었다. 조금 전 그렇게 동강을 냈는데도 다치지 않으셨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 지장보살이 웃으며 대신 답했다.

“그때 원효보살은 공空에 들어가 있었소. 따라서 그대들은 원효보살을 칠 수가 없었소. 공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수십 수백 년을 싸워도 결과는 마찬가지요. 괜히 손만 아프지, 원효보살 손끝하나 건드리지 못하오.

설혹 그대들이 공까지 따라간다 해도 마찬가지요. 칠 수가 없소. 공에는 칠 사람도 없고, 칠 대상도 없기 때문이요. 자타가 모두 공이 되어 아무것도 없는데 누가 누구를 치겠소. 바로 이 자리가 깨침의 자리요, 해탈의 자리요, 부처의 자리입니다. 이제 원효보살은 여러분들에게 그 자리를 직접 보여드린 것입니다. 여러분도 노력하면 그 자리에 이를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러자 모두들 진심으로 원효에게 예를 올렸다. 원효는 너무 과분한 칭찬이라는 듯 고개 숙여 답했다. 그리고는 지옥문을 나왔다.

 

  

4. 열반涅槃

 

[척판구중擲板救衆] 오늘은 한가했다. 마루에 걸터앉아 탁 트인 저 앞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오어사吾魚寺 계곡에서 혜공스님이 바위에 물을 뿌려 화면畵面 만드는 것이 생각났다.

‘나도 한번 해볼까.’ 원효는 물을 가득 물고는 옆의 바위를 향해 훅 뿜었다. 곧이어 화면이 나타나고 세상 이곳저곳을 비췄다.

‘그것 참 재미있는데.’ 원효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세상 곳곳이 보였다. 별별 광경이 다 있었다. 그러다 눈이 한 곳에 멎었다.

‘가만 있자. 저게 뭐지. 아니 큰일 났구나.’ 자세히 보니 중국 어느 지방에 큰 장마가 졌는데, 마침 절 뒤에 있는 산이 물을 먹어 잠시 후면 무너져서 그 아래 있는 절을 덮치게 생겼다. 그러면 지금 예불 보고 있는 스님들은 물론 모처럼 모인 많은 신도들도 그대로 묻히게 생겼다. 원효는 즉시 판자를 구해 몇 자 휘갈겨 쓰서는 공중에 휙 던졌다.

한편 여기는 중국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자 누가 밖에서 소리쳤다.

“저게 뭐지. 공중에서 빙빙 도는 것이!”

모두들 밖으로 뛰쳐나왔다. 과연 무슨 판자 같은 것이 공중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순간 뒷산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며 아래 있는 법당을 그대로 덮쳤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법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발짝만 늦었어도 큰일 날 번했다.

그러자 빙빙 돌던 판자가 땅으로 내려왔다. 둘러서서 살펴보니 판자에는 여덟 글자가 쓰여 있었다.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擲板救衆’ 곧 신라 원효가 판자를 던져 많은 사람들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스님들은 신라 땅에 성인이 있어 자기들을 구했음을 알고 예를 올렸다. 얼마 후 천명이 넘는 스님들이 신라로 건너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오랜 뒤 원효가 중얼거렸다.

“이제 저들도 도를 깨치게 해야지.”

그러고는 천명의 스님들에게 영을 내렸다. 몇 월 며칠 어느 산등성이 넓은 들판에 모두 모이라고. 모두 모이자 원효는 큰 바위에 올라서서 자기가 터득한 화엄華嚴의 미묘한 법을 모두 설해주었다. 그 법문을 들은 스님들은 모두 도를 통했고 그 자리에서 모두 바위로 변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 불렀고 그 벌판을 화엄벌이라 불렀다. 곧 천명의 성인이 탄생한 산이고, 화엄의 묘한 법을 설한 벌판이란 뜻이었다.

 

(천성산 화엄벌)

기우뚱 기암절벽 순식간에 덮치려네.

깜짝 놀란 원효대사 급히 적어 휙 던지다.

저게 뭐야? 모두 나와. 그 사이에 무너지네.

신라 원효 중원대륙 수천 생명 구하도다.

신라 땅에 성인 있군! 화엄벌에 모여더니

바위 위에 높이 서서 사자후를 토하도다.

모두 깨쳐 성인되니 천성산 이름했네.

지금은 모두 가고 황량함만 남았구나.

깨치면 미련 없어 돌아볼 것 전혀 없지.

무슨 흔적 남기는 것 그것 또한 욕심이야.

그런데도 미혹 중생 괜한 미련 가져서는

다 떠난 벌판에서 무언가를 찾는구나.

 

 

[원효 열반] 그 후 오랜 뒤 어느 늙은 기생 방, 늙은 기생이 공손히 무릎을 꿇고 원효에게 술잔을 올리고 있었다.

“스님 이제야 한잔 올립니다. 어서 드세요.”

자기 같이 늙고 천한 기생이 원효스님을 다 모시다니! 꿈만 같았다. 원효도 싫지 않은지 늙은 기생을 무릎에 앉히고서 좋아 좋아 하면서 연방 술을 마셨다. 이 기생은 원효가 총각 때 대안스님을 따라 처음 들렀던 바로 그 젊은 기생이었다. 그녀도 이제 늙었다.

바로 이 시각, 시장거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저기 원효스님이 나타나셨네.”

“맞아 이번엔 여기서 무애无㝵 춤을 추시는구먼.”

아니나 다를까 원효가 호리병을 허리에 차고 몸을 흔들며 저쪽에서 다가오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도 따라서 춤을 추었다.

또 바로 이 시각, 분황사 대법당, 원효가 많은 군중들 앞에서 금강삼매경을 설하고 있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핵심을 파고드는 설법이라 모두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어느 한 구절도 놓칠 수 없었다.

또 바로 이 시각, 대궐 안, 구더기가 들끓는 다 썩어문드러진 시체를 놓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무리 원효대사지만 신성한 대궐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아니야, 원효대사가 모든 것이 무상함을 설하고 계셔.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업 짓지 말고 덕을 지으라고 설하고 계셔.’ 비단 옷을 입은 고관들은 나름대로 한마디씩 했다.

또 바로 이 시각, 남양만 무덤 방, 원효가 밝은 빛을 뿜으며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다 썩은 해골이 놓여있고. 원효가 빛을 놓아 해골을 해탈시키는 중이었다.

한편 여기는 고선사 원효 방, 원효가 혼자 앉아서 화엄경을 풀이하고 있었다. 사실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화엄경 풀이에 전념했다. 그러다 원효는 책상을 물리고 붓을 놓고는 뒤로 돌아앉았다. 활짝 열린 방문으로 익어가는 봄날 만발하는 꽃내음이 풍겨왔다. 이제는 갈 때가 되었다.

그때 황소 한 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금강삼매경을 풀이할 때 타고 다니던 그 황소임을 단박 알아봤다. 그도 늙었는지 힘이 빠져보였고 멍에와 코뚜레와 고삐가 그대로 달린 것으로 보아 어디선가 겨우 도망쳐온 것 같았다. 힘겹게 산 증표였다.

원효가 아는 체 하자 황소도 반가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원효는 왼쪽 손바닥을 펴서 무릎 위에 얹었다. 여원인與願印, 곧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었다. 순간 황소의 멍에와 코뚜레와 고삐가 탁 풀어져 땅에 떨어졌다. 드디어 황소가 모든 굴레를 벗은 것이었다. 황소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마음껏 눈물을 흘렸다.

원효도 새삼 몸을 가지런히 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열반(죽음)에 들었다. 한바탕 꿈이 끝난 것이었다. 순간 기생방에 앉아서 늙은 기생을 다독이던 원효도, 시장거리에서 춤을 추던 원효도, 분황사에서 쩌렁쩌렁 설법하던 원효도, 대궐 안에서 썩어가던 구더기 원효도, 무덤방에서 빛을 발하던 원효도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는 모두 그 자리에 좌선을 한 채 환하게 빛을 뿜으려 조용히 열반에 든 원효보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제야 사람들은 원효보살이 정말로 열반했음을 알고 주저앉아 예를 올렸다.

험난한 시대에 태어나 온갖 고뇌를 다 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살며 이 땅에 대중불교 민중불교를 펴서 자기 같이 힘들고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도를 닦으면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깨우쳐준 큰 보살이 떠났음을 안 것이었다.

원효가 떠나자 그를 그리워한 사람들이 흙으로 소상塑像을 빚어 분황사에 모셨다. 아버지를 그리워한 아들 설총이 예를 올리자 소상이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한 갓 꿈, 세월이 지나자 분황사도 시들어졌고 소상도 사라졌으며 고선사도 물에 잠겼다. 이를 본 후세 사람들은 원효보살을 그리워하며 시 한 수를 올렸다.

 

(뿔 탄 수레)

뿔 탄 수레 경을 펼쳐 사자 소리 울려내니

춤을 추는 호롱박이 수만 거리 걸렸구나.

밝은 달밤 요석궁의 봄 꿈 홀연 지나가고

문을 닫은 분황사엔 소상마저 비었구나.

천백으로 몸을 나눠 수만 거리 누빈 것도

천백으로 술수 부려 수만 사람 구한 것도

한바탕의 광대놀음 돌아보니 구름이요

한바탕의 봄꿈놀음 돌아보니 허공이네.

 

-----원효대사 수행담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강 승 환 올림

 

 

 

 

 

 

 

 

 

 

 

 

[출처] 원효대사 수행담|작성자 강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