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불교

티벳 사자의 서

수선님 2021. 7. 4. 10:56

티벳에선 인간이 죽은 후 부터 환생하기까지 사후의 세계에 머무는 기간이 49일로 알려져 있는데요, <티벳사자의 서>에 보면 49일과 관련한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나와있으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벽운(碧雲) 이경숙 님의 글(마음의 여행, p129~131)중에서 49재 부분을 발췌해봤습니다...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전오식(眼,耳,鼻,舌,身)은 근(根)으로 삼고 있는 육신이 손상을 입으면 그만큼 소멸되며 각각의 식은 부분적으로 소멸되기도 한다. 두 눈 가운데 하나를 잃으면 안식의 일부가 소멸되는 것이고 팔다리를 잃으면 신식의 일부가 소멸되는 것이다. 전오식은 육신의 근이 손상을 입었을 때 즉시 소멸되지 않고 말나식의 기억에 얹혀서 한동안 잔상이 유지된다. 다시 말해 근이 없어진 다음에도 말나식에 새겨진 기억에 의해 한동안은 그 식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전오식 중에 잔상의 유지 기간이 가장 짧은 것은 안식이라고 한다. 그 다음이 이식이고, 비식, 설식, 신식의 순서다. 죽음은 이 전오식의 근이 한꺼번에 손상을 입어 기능이 정지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생전에 근의 일부분이 기능을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식의 잔상이 일정한 기간 동안 유지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부터 사람이 죽은 후 49일 동안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돈다 하여 49재를 지내왔고 절에서도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하나의 의식(儀式)으로 집행하고 있다. 그런데 49일은 바로 한 인간의 모든 식이 그 잔상을 거두는 데 걸리는 기간이다. 맨 먼저 안식이 소멸되는데, 여기에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 다음 일주일 동안 이식이 사라지며 뒤이어 비식과 설식과 신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오식의 잔상이 모두 소멸되는 데는 '5*7=35일'이 걸린다. 전오식의 잔상이 꺼지고 나면 다시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지난 뒤에 제6식인 의식의 촛불이 꺼진다. 의식이 소멸되고 나면 마지막 7식인 말나식이 소멸되어 비로소 한 인간의 생명의 흔적이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죽음 후 이 일곱 가지 식이 소멸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7*7=49일'이어서 죽은 사람의 영이 영계의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49재를 지내는 것이다. 이 일곱 가지 식이 소멸되고 나면 마지막으로 제8식인 아뢰야식만 남는데 이 아뢰야식은 원래 육신에 근을 두고 있지 않아서 육신의 소멸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영혼의 구성체 중 육신에 근을 둔 것은 육신의 사망과 더불어 소멸되고, 육신에 근을 두지 않은 완전히 영적인 부분만 사후에 남는다. 이것이 바로 아뢰야식이다. 이 아뢰야식은 다시 한 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더한 채 영계에 있다가 그 맺은 인연에 따라 다시 새로운 생명의 원인이 된다. 그렇게 해서 생은 반복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49일 동안 일곱 가지 식의 잔상이 서서히 약해져서 꺼져가는 동안 의식의 잔재물은 영계의 기운과 접촉하면서 영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 통과 의례가 끝나는 순간부터 의식은 영원히 잠들게 되는 것이다. 일곱 가지 식이 떠나버린 다음 홀로 남은 아뢰야식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고통받는 존재가 아니다. 인연에 의해서 다시 생명이 되어 7식이 새로 더해질 때까지 그것은 고요한 침잠의 세계며 적막의 바다에 흐르는 파도며 기운일 뿐이다."

   

   

   

   

   

   

   

   

티벳 사자의 서 (바르도 퇴돌 첸모) 와 파드마 삼바바

'티벳 사자의 서'의 원제는 바르도 퇴돌 첸모'로서, 흔히 바르도 퇴돌이라고 부른다.

바르도 퇴돌의 의미는 '죽음과 환생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영원한 자유의 가르침'이다.

'바르도'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중간 상태'이며, '퇴돌'은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른다'는 뜻이다.

바르도 퇴돌은 8세기에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만들어졌고 전한다.

파드마 삼바바는 '연꽃 위에서 태어난 스승(연화上生師)'이라는 의미로, 그의 탄생 설화에는 그의 순수함과 완전함이 담겨 있다.

파드마삼바바는 인도 우디야나(Udiyana) 출신으로 재가수행자로 유명한 탄트라의 대가이며, 신비 과학에 정통한 스승으로서 인도 최고의 대학이며 당시 영적 탐구의 중심지였던 나란다 불교대학의 교수였다.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 토번(土蕃:티베트)왕국의 티송테센(Khri-sroṅ-ide-btsan, 741~797)왕이 티베트 최초의 대사원 삼예사(bSam-yas寺)의 공사가 티베트신들의 방해로 닌힝을 겪자 빠드마 삼바바를 초청하였고 그는 티베트에 들어와서 토착신들을 제압하고 그들로부터 불교를 수호하겠다는 맹세를 받아 냈으며, 삼예사는 775년에 머럿돌을 놓았다.

스승은 악귀를 몰아내고, 그 곳에 사원(삼예사)을 완성시켰으며, 티베트인들은 그를 위대한 주술사로 기억했고, 티베트밀교 4대종파 중 최초인 닝마파(rṄiṅ-ma派)에서는 그를 종조로 받들게 되었다.

그 후 티벳의 히말라야 설산에 머물면서 많은 탄트라 경전들을 인도의 산스크리트 원본으로부터 티벳어로 번역하고, 또한 인간을 궁극의 깨우침으로 인도하는 비밀의 책들을 직접 그 자신의 언어로 썼다.

그리고, 일부는 티벳사원에 보관하였으며 일부의 비밀 서적은 당시 공개할 때가 아니라하여 티벳 전역의 히말라야 동굴 속에 한 권씩 숨겨놓았다.

하지만, 스승은 죽기 전 몇 명의 제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어 적당한 시기에 다시 육체를 갖고 환생하여 그 책들을 찾아내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때가 이르면 그 책을 찾아 세상에 전하기 위해 환생한 튈쿠들은 파드마삼바바의 화신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책을 찾아내기 위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보물을 찾는 자'라 하여 테르퇸이라 불렸으며, 이들이 찾아 낸 파드라마삼바바의 경전은 65권에 달한다고 한다.

바르도 퇴돌, 즉 티벳 사자의 서는 릭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벳 북부 지방의 한 동굴에서 찾아졌고, 이후 티벳과 히말라야 인접국가로 필사본과 목판본이 전해졌다.

이 후 필사본과 목판본이 티벳 지역에 전해지다가 1919년 영국인 에반스 웬츠에 의해 발견되어 '티벳사자의 서'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전해지던 바르도 퇴돌의 필사본을 1919년 다르질링의 한 사원에서 옥스퍼드 대학의 종교학 교수였던 에반스 웬츠가 구하게 되고, 그는 당시 영어와 티벳어,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위대한 학승, 라마 카지다와삼둡의 제자로 입문하여 시킴의 강톡에서 번역작업을 하게 된다.

그렇게 바르도 퇴돌은 라마 카지다와삼둡에 의해 번역되고, 에반스 웬츠가 주석과 해설을 받아 적어 '티벳 사자의 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1927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인쇄되어 서구세계에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한 때 프로이트의 수제자였다가, 인간 존재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스승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심리학의 길을 모색했던 칼 융은 이 책을 평생 곁에 두고 지냈다고 할 정도로 티벳 사자의 서에 큰 영향을 받았다.

2 바르도 퇴돌(티벳 사자의 서)의 내용

바르도 퇴돌의 내용은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과정을 묘사하면서, 사후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든 환상임을 깨달아 해탈에 이르기를 권고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자연법칙으로 이해되고 있는 카르마와 환생에 대한 고대인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죽음은 더 이상의 단절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자에게 탄생과 죽음의 윤회를 넘어서 니르바나의 길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무지의 어둠을 걷어내고 인간 내면에 있는 지혜의 빛을 보도록 도와준다.

바르도 퇴돌에서는 사후세계를 죽음 직후의 사후세계인 치카이 바르도,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사후세계인 초에니 바르도, 그리고 환생의 길을 찾는 사후세계인 시드파 바르도 등의 세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환생까지 49일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사찰에서 행하는 일반적인 천도의식 중에 사십구재가 들어있는 것이다.

티벳 사자의 서로 죽은 이를 돕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 앞에서 승려가 이 책을 소리내어 읽어준다. 시신이 없다면, 영정으로 시신을 대신하고 그 앞에서 읽어준다.

첫째 날부터 열넷째 날까지는 '초에니 바르도' 편을 읽어주며, 열넷째 날부터는 '시드파 바르도'를 읽어주고,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49일간의 바르도 기간이 끝날 때까지 매주 한 번씩 승려가 사자의 집을 찾아가 계속해서 읽어준다.

49일의 의미는 신성한 숫자 7의 제곱수이자, 7이 일곱 번 더해진 수이다.

사십구(49)라는 숫자가 탄생한 배경에는, 윤회계 안에는 일곱세계가 있으며, 각 세계에는 일곱단계의 진화가 있어, 모두 합해 49개의 정거장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비단 티벳인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7은 오랫동안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신성한 숫자로 여겨졌으며, 생명의 일정한 주기와 현상을 지배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첫 번째 단계 '치카이 바르도'에는 죽었을 때 발생하는 죽음의 현상에 대한 몇 개의 가르침과 죽음의 순간에 나타나는 최초의 투명한 빛으로 가는 방법과 사후에 곧바로 나타나는 두 번째 투명한 빛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인간은 죽음 직후에 죽음을 깨닫지 못하여 육체와 의식체가 완전히 분리되는 데 3~4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의식이 빠져나가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이 기간 동안은 시신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장례 풍습도 일반적으로 삼일 동안 시신을 건드리지 않고, 삼일 후에 시신을 상여에 옮긴다.

의식을 전이시키는 방법으로 포와 수행이라는 것이 있다. 포와라 불리는 영적 스승이 죽은 사람의 의식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포와 수행은 밀교의 방편이라서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고, 티벳 사자의 서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간략히 요점만 언급해 본다면 이렇다.

죽어 가는 사람 곁에서 시중을 드는 스승은 사자가 잠에 빠지거나 실신하여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한다.

그러면서 각 감각기관에 연결된 특유의 의식(안이비설신)의 순서대로 분리되도록 지시한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이 서서히 상실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 다음엔 정수리를 통해 육체에서 의식을 탈출시키기 위한 방편을 쓴다. 의식이 빠져 나가는 육체의 문 중 정수리 이외의 다른 문으로 의식이 빠져나가면, 그 의식의 미래는 암울한 윤회세계와 맞닥뜨려진다고 믿기에, 최상의 탈출구는 정수리를 통한 것이라고 믿는다.

의식을 몸에서 끌어내는 작업은 힉! 팍! 이라는 의례적인 외침과 함께 이루어진다.

이 소리를 내뱉기 전에 스승은 정신을 집중하여 방금 죽은 사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영혼이 정수리에 구멍을 만들 만한 힘을 각고 두개골로 올라올 수 있도록 사자 대신 스승이 노력하는 것이다.

일정한 경지에 이르러 혼자 죽을 수도 있는 수행자는, 죽음이 닥쳤을 때, 힉! 팍! 이라는 해방의 소리를 외침으로써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을 놓아줄 수 있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두 번째 죽음의 단계인 초에니 바르도에서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인 가르침을 설하면서 사후세계에 나타나는 환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첫째날부터 일곱째날까지는 평화의 신들이 나타나며, 여덟째날부터 열넷째날까지 분노의 신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인 <시드파 바르도>에는 환생을 갈구하는 사자의 본능과 환생 직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려 보이고 있다.

티벳 사자의 서가 주는 메시지는 죽음의 예술은 삶의 예술만큼 중요하며, 죽음은 삶을 완성시켜주며 한 인간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가지는 마지막 생각이 그 다음 환생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티벳 사자의 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부들은 무지하여 사후세계에 두려움을 가지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기에,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사후 세계에 맞닥뜨릴 존재와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고 용기를 북돋는 말로써 많은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다.

인간은 분명한 의식을 지닌 채 마음의 평정을 이룬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육체의 고통과 질병을 정신적으로 초월할 수 있는, 바르게 훈련된 지성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 삶의 기술을 실천하고 죽음에 임해서는 죽음의 기술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필요로 한다.

에반스 웬츠는 "티벳 사자의 서"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음, 사후세계, 환생의 과학에 공헌한 가치로 따지면, 세계의 성전들 중 그 어떤 것보다 독특하며, 대승불교의 교리를 압축해 놓은 설명서로서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의 결과이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3 바르도 퇴돌에 깔린 메시지

1) 윤회계의 모든 존재들이 처한 상황과 장소와 조건들, 그리고 인간계와 천상계의 지옥계들은 모두 전적으로 현상에 의존한다.

2) 모든 현상은 윤회하는 마음에게만 나타나는 것일 뿐 실제로는 덧없는 것이고, 환영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3) 천신들이나 악마들이나 신령들이나 중생들과 같은 존재들은 사실 어떤 곳에도 없다. 이 모두는 원인에 의존한 현상일 뿐이다.

4) 이 원인이란 육체적인 감각과 변하기 쉬운 윤회의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5) 이 원인이 완전한 깨달음으로 극복되지 않는 한 죽음은 태어남을 뒤쫓고 태어남은 죽음을 뒤쫓게 된다.

6) 사후세계는 그 조건만 다를 뿐 인간 세상에서 만들어진 현상들의 연속이다. 이 두 세계는 똑같이 카르마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7)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이 생에서 어떤 행위들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8) 심리학적으로 그것은 꿈의 연장이다. 꿈꾸는 자의 생각에 담긴 내용들이 곧바로 환영으로 나타난다.

9)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않으면 카르마 법칙에 따라 천상계나 지옥계로부터 또는 바르도 세계로부터 곧바로 인간 세계에 환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10) 완전한 깨달음은 윤회계가 또는 존재 그 자체가 하나의 환영이며 실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깨닫는 데서 얻어진다.

11) 이런 깨달음은 어떤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12) 명상 수행, 다시 말해 '바른 지식'에 이르기 위해 마음을 집중할 수 있도록 사념을 조절하는 수행은 필수적이다.

13) 이 명상 수행은 스승 또는 교사의 가르침을 받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14) 이번 세계의 주기에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위대한 스승은 고타마 붓다이다.

15) 그의 가르침은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죽음과 환생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윤회의 대양을 건너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해 아득한 세월 이전부터 수많은 붓다들이 인간세계에 폈던 것과 똑같은 가르침이다.

16) 아직 환영의 그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 세계나 다른 세계들에 존재하는 영적으로 더 많은 깨달음에 이른 보디사트바들이나 스승들은 자신들보다 뒤쳐저 도의 길을 걸어오는 제자들에게 거룩한 축복과 능력을 베풀 수 있다.

17)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윤회계로부터 해방이며,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있다

18) 이 해방은 니르바나를 실현하는데서 얻어진다.

19) 니르바나는 극락과 천상계와 지옥계와 그 밖의 모든 세계들을 초월한 경지이며, 윤회에서 벗어나 있다.

20) 그것은 온갖 슬픔의 소멸이다.

21) 그것은 존재의 근원이다

   

   

   

티벳 사자의 서 - 죽음학의 백미

   

인간아 너는 너의 의사에 반하여 죽는구나

죽음이 무엇인지를 배우지도 못하고서

죽음을 배울지니라

그러면 그대는 삶까지도 배우게 될 것 이니라

죽음을 배우지 못한 자는 삶까지도 아마 배울 수 없게 될 것이니라....

“죽음의 기술”에서

   

이제까지 소위 서구의 과학적인 죽음연구 성과를 소개하였다. 연구 대상은 가사체험, 호스피스기관의 말기환자,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이들이었다. 레이몬드 무디박사, 퀴블러 로스박사, 이안 스티븐슨 박사 등은 이런 분야의 선구자적인 연구자들이다. 모두 정신과의사들이다. 앞의 두 분의 주요 저서들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심지어 퀴블러 로스박사의 말기의 저서가 “인생수업”이란 제목으로 류시화씨가 최근에 번역해 놓았다. 이안스티븐슨박사의 저서 중에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은 "childern who remember previous lives"이다. 아쉽게도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다. 죽음 때문에 머리빡을 쥐어 짜본 경험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뒤를 이어 전생기억하는 어린이들을 연구하고 있는 짐 튜커박사의 “Life before life”도 권하고 싶다. 이 두 책은 우리말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왜 번역가들은 이런 책을 번역하지 않을까? 잘 팔려 돈도 될 터인데....

죽음과 관련된 현상을 연구해본 분들은 동양의 지혜에 감탄한다고 한다. “티벳 사자의 서”를 말한다. 죽음연구 성과를 소개하기로 작정했으니 “티벳 사자의 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법... 왜 감탄하는지 소개해 드리겠다. 대한죽음학회회장이신 최준식교수님의 인터뷰 내용을 상기하면서 읽었으면 좋겠다.

   

-근사체험 연구가 국내에선 낯섭니다. 오히려 물질적 가치관이 주류인 서구에서 연구성과들이 많은 게 놀랍습니다.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과학이나 학문 영역으로 진입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우선 질문에 두 가지 문제가 보이는군요. 제가 겪은 바로는, 서구는 우리 동양보다 물질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앞서 있습니다. 동양이 영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은 우리 동양인들의 환상이죠. 그리고 근사체험이 학문적 영역에 진입 못했다고 하는데, 서구에서는 이미 30여년 전부터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근사체험을 연구하고 그 성과도 놀랍습니다. 근사체험 연구의 의미는 인류가 이 체험을 매개로 사후생에 대해 최초로 접근한 데에 있습 니다. 그전까지 인류는 죽음에 대해 종교의 도그마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근사체험을 분석해서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르도 쇠돌>(Bardo thdol)(중음천도밀법)이라고 하는 티베트의 ‘사자의 책’은 이전부터 비밀스럽게 구전되어 내려오던 것에 근거하여 책을 만든 것이 명백하긴 하지만, 서기 8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티베트에 처음 불교를 전래한 파드마 삼바하바에 의해 문자화 되었다. 이 책은 죽음과 재생 사이에 존재하는 바르도들, 즉 중간단계(초입중음, 중간중음, 만중음)들을 제대로 통과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안내서이다. 그 책이 제공해 주는 정보는 매우 구체적이어서 각기 다른 여러 바르도(중음)들에 머무르는 기간과 그때의 의식 상태 등을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결국 이 책의 목적은 사자로 하여금 그가 여태까지 지나쳐 오면서 이미 친숙해진 환경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게 해주어 해탈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깨달음을 아들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살아 있을 때 수행과 가르침을 통해 얻은 앎은 ‘아들의 지혜’라고 할 수 있으며, 죽은 후에야 비로소 진실로 명확하고 찬란한 ‘어머니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도 쇠돌>의 첫 번째 부분인 ‘치카이 바르도(초입중음)’에는 죽는 순간에 찾아오는 해체의 경험이 기술되어 있다. 사자는 그때 순수 실재의 첫 번째 청명한 빛이 현란하게 비치는 것을 보게된다. 바로 이 순간에 사자가 만약 엄청나게 강렬한 그 빛에 의해 압도되지 않고 그 빛을 알아 보게 될 경우,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직접 원문을 인용해 보겠다(중간중간 생략되어 있음)

“초입 중음의 첫째단계 - 죽음 순간에 원초의 투휘광체(위에서는 ‘청명한 빛’이라 해석했음, 영어는 clear light임), 즉 정수적 지혜를 보게됨.

   

<이같은 여러 천도를 적용시킬 시기에 대하여>

날숨결이 끝났을 때 “생명력”이 몸담고 있는 “중추신경”속으로 내려가느니라. 그때에 “식심”은 자연적 상태의 마음인 눈부신 빛을 경험하고 있게 되느니라. 그리고 생명력은 후방으로 내던져져서 바른쪽과 왼쪽의 신경을 통하여 아래쪽으로 흐르게 되고 여기에서 중음이라고 불리우는 중간상태가 차츰 뚜렷이 보여 지게 되느니라. 이 천도는 생명력이 배꼽의 중추신경을 가로 질러 왼쪽 신경 속으로 달려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적용될지니라. 이 생명력이 움직이는데에 소요되는 필요한 시간이라면 영감(靈感)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또한 한식경(약 30분)동안으로 보면 되느니라.

   

<이 천도의 적용 방법에 대하여>

호흡이 막 멎으려고 할 때에 ‘전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가장 좋으니라.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다음과 같이 임종자에게 타이를지니라.

“ 오! 기품있게 태어난 아무개(임종자의 이름)여. 지금이야말로 그대로 하여금 <진실법계>의 길을 찾을 때가 닥쳐왔소. 그대의 호흡은 바야흐로 멎으려 하고 있소. 그대의 스님은 <투휘광체>와 더불어 그대 앞에 앉아 있소. 모든 사상(事象)은 진공(眞空)으로써 구름 없는 하늘의 허공과도 같으오. 깍지를 벗고 나온 알 모습의 티없이 깨끗한 지금 그대의 지성은 중음동안에서의 진실법계인 중심이 비어 있는 투명한 진공을 경험하려 하고 있소. 이 순간에 그대는 그대 자신을 알도록 하오. 그리고는 그 상태에 머물도록 하오. 나도 또 지금 그대와 함께 앉아 있소 ”

임종자는 마음에 인상심어주기 위하여 호흡이 아주 멎기 직전이라고 이 천도를 임종자의 귓전에서 몇 번이라도 좋으니 반복해서 읽도록 할지니라. 호흡이 멈추려 할 때에 임종자를 오른쪽으로 돌려 눕힐지니라. 이 자세는 <사자가 누워 있는 자세>라고 부르느니라.

목의 좌우에서 벌떡거리는 경동맥의 맥동을 압박할지니라. 그리고 또 임종자가 잠에 빠지려고 하거든 그건 반드시 방해 받아야 되느니라. 그리고 동맥은 기필코 힘세게 압박되어야만 되느니라. 이렇게 하므로서 생명력은 중추신경으로부터 되돌아 올 수가 없게 되어 머리에 있는 브라흐마의 개구(대천문을 말한다)를 통하여 떠날 것이 확실하니라.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천도가 적용되어야 할 때이니라.

이 순간에 달마가야(법신)의 절대적으로 확실한 심체인 진실법계의 투휘광체-중음길에서의 맨 첫 번째의 눈부신 섬광이 모든 임종자들로 하여금 경험되느니라.

호흡의 정지와 영감의 정지와의 간격은 생명이 중추신경 속에 머물고 있는 순간동안이니라. 이것을 일반적으로 의식원리, 즉 영혼이 떠나버린 상태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이 상태가 얼마동안 지속되느냐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니라. 그 이유는 그 임종자의 성질이 선했던가, 악했던가와 신경이나 생명력의 상태에 좌우되기 때문이니라. 안정상태에서의 정신 집중이나 깊은 명상상태에 대한 경험을 다소라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느니라.

누르께한 액체가 시신의 몇군덴가의 열려있는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까지 앞에서 말해둔 것과 같은 천도가 계속하여 반복 되풀이되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사악한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라거나, 건전하지 못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상태는 아주 잠시 동안밖에는 지속되지 못하느니라. 어쩌면 그 시간이라야 아마 한식경 정도나 지속될지 모르느니라.

이 기절 상태는 거의 3일반 동안 계속 되느니라. 그리고 투휘광체로의 천도는 이 온 기간동안에 걸쳐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이 여러 지시사항의 적용 방법에 대하여>

.....

“이제 바야흐로 땅이 물속으로 가라 앉아 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그대의 마음이 미혹되지 않도록 하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지금 그대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이라고 이름하는 것이오. 다음과 같이 결심하오. ‘아! 이제야말로 죽음의 때로다. 나는 이 죽음을 이용하여 불,보살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결심하여 아누다라삼먁삼보리에게 나의 모든 힘을 기울임으로써 모든 인류의 선을 위하여 극락정도의 천상무한광대한 그곳으로 옮겨가 살면서 완전한 해탈을 얻도록 힘쓰련다!’ 이같이 결심을 굳히고서 특히 사후의 법신 투휘광체의 눈부신 빛이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실현될 때에 그대는 그 상태안에 있다는 것을 알으오. 그대는 그대가 지금 있는 무상상징상태, 즉 반야의 최고 은혜를 얻겠다고 다음과 같이 결심하오 ‘내가 설사 그 같은 실현을 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중음만은 인식하도록 하련다. 나는 중음의 합일된 무상체를 익혀 배워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줄만한 불.보살의 모습, 형상으로 나타나도록 하련다. 나는 저 하늘의 허공처럼 끝없으면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련다!’.... ”

“스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지금 원초적인 투휘광체를 경험하고 계시오. 그대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그 상태에 머물도록 힘쓰시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들으오. 지금 그대는 진실법계의 정수적 지혜로부터 방사되는 눈부신 빛을 경험하고 있소. 그것을 인식하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본성이 空인데 태어나면서 부터도 역시 空이며, 그 어떤 특징이나 빛깔로나 형상지워 놓을 수 없는 그대 지금의 知性은 실로 진실법계, 바로 그것이며 全善이오.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그런 ‘비어있는 것’이라고 하는 뜻의 空이 아니라, 방해받지 않으며 맑게 빛나며, 희망에 차고 활기 넘치며 더없는 행복에 젖어있으며, 知性 바로 그대 자신이라고 간주되는 空인 지금의 그대 자신의 知性은 바로 참된 意識 그것이며, 전선한 불타 바로 그 모습이오. 본성이 空이고 그 어떤 것으로도 형상을 이뤄놓을 수 없는 그대 자신의 의식과 빛나며 더없는 행복에 찬 知性, 이 두가지 것은 서로 나누어지지 못하오. 이것들이 한데 뭉쳐 녹여진 것이 다름아닌 바로 완전계발된 상태의 지혜인 달마가야, 즉 法身상태요. 빛나고 空이며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는 無上體로부터 갈라낼 수 없는 자신의 의식은 바로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불변의 빛-불타,아미타불이오. 이것만 알면 충분하오. 부처님과 동등한 상태인 그대 자신의 지성의 空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기자신의 의식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불타인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 상태에 그대 자신을 있게 하는 것이오.”

   

여기서 묘사된 투휘광체가 가사체험자들이 표현하는 눈부신 빛과 유사하지 않은가? 서양사람들은 그 빛을 Christ, God이라 부른다고 퀴블러로스 박사는 말했으며(삶,죽음, 사후의 삶), 사자의 서에서는 그 빛을 자신의 본성인 空에서 방사되는 투휘광체로서 자신의 참된 지성이며 의식이라 하고 있다.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첫째 단계에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또 다른 기회가 찾아 온다. 바로 두 번째의 청명한 빛이 그들에게 비칠 때이다.

   

초입중음의 둘째단계 - 죽음 순간에 제 2의 투휘광체를 봄

....

마지막 날숨이 멈춰진 때부터 약 30분 쯤 뒤에 망자의 위쪽으로 두 번째의 투휘광체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망자가 생전에 쌓은 선 또는 악의 카르마에 의하여 영혼은 바른편 또는 왼편의 어는 신경줄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서 육체에 나있는 여러 구멍들 중에 ... 떠나가느니라. ... 마음의 맑은 상태가 찾아드니라...

거의 30분동안 지속되는 원초투휘광체 상태의 시간은 신경의 기능력상태에 좌우되기도 하고, 생전에 망자가 이 천도의 實修를 쌓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갈 때, 그 영혼은 ‘이것이 죽은 건가, 안죽은 건가?’고 독백하리라. 그러나 망자는 결정할 수가 없느리라. 왜냐하면 그는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니라. 이들이 울며 슬퍼하는 목소리를 듣기까지 하느니라. 하지만 업력에 의해 만들어져 나오는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무서운 환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느니라. 또 ‘죽음의 신들’에 의하여 불러 일으켜진 무서운 요괴나 이것들에 의한 경험같은 것도 아직은 기미를 보이지 않느니라....

이때에 완전히 투휘광체속에 들어가 있는 영혼들도 있고, 때로는 불.보살과 신들의 환각을 보고 있는 영혼들도 없지 않느니라....

중음의 첫째 단계 그것이 최고이니라.

그렇지 못했을 경우이면 이번의 이 명료한 재차의 천도에 의하여 중음의 제 2단계에 있는 동안에 그의 지성은 일깨워져서 해탈을 얻게 될 것이니라.

중음의 두 번째 단계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의 몸은 빛나는 환각적인 몸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성질로 변화된 모습이 되느니라. 이 영혼의 모습을 “思考體”라 하느니라. 자신이 죽었는지 여부를 알고 모르고와는 관계없이 빛나는 상태가 망자에게 찾아오게 되느니라....

중음길 두 번째 단계는 “思考體”에게 이상한 환각들이 차츰 뚜렷하게 보여지기 시작하느니라. 식심(識心, 영혼)은 그 활동이 제약된 굴레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방황하고 있느니라. 이때에 이 특별한 천도가 능률적으로 적용되기만 한다면 목적은 아마 성취될 것이니라.

카르마가 빚어 만들어 내놓은 환각이 나타나기에는 아직은 이른 때 인만큼 망자는 해탈을 성취하겠다고 하는 그의 목적을 벗어나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니라....

   

   

이번 기회도 놓치게 되면 다음에 찾아 올 바르도 기간에 그들은 여러 가지로 계속되는 경험을 해나가야 하는데, 이들 단계에서 그들의 의식은 점차 해탈의 진리와는 멀어져 가고 다시 환생하는 길로 접어든다.

‘쵸니드 바르도(중간중음)’, 즉 ‘실재(진실법계)를 경험하는 바르도’의 단계에서 사자는 계속해서 여러 신들과 만나게 된다.

   

중간중음이라는 이름의 중음길 제3단계 - 카르마의 환각이 나타나서 다가온다.

....

이 3단계에서는 생전에 쌓은 업에서 빚어나오는 환각이 빛을 내기 시작하느니라.

이때쯤에는 망자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기곁에는 제물이 차려져 있고, 의복은 수의로 갈아 입혀졌으며, 침상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을 아마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니라.

그의 가족친지들이 울며 애통하는 모습을 보고 듣고 할 것이니라. 망자의 혼령은 이들을 볼 것이며, 자기더러 왜 갔느냐고 목이 터져라 애통해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니라. 망자의 혼령 역시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너무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가족 친지들을 불러댈 것이니라. 그러나 유족들이나 친지들은 혼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느니라. 그탓으로 망자는 화를 내기 시작할지 모르느니라.....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 십분 정신차려서 들으오. 중음에는 여섯가지 상태가 있소. 자궁안에 있는 동안의 자연스러운 상태의 중음과 꿈속같은 상태의 중음과 깊은 명상속에 있는 사이의 안정되고 황홀스러운 느긋한 중음과 죽음순간의 중음과 진실법계의 눈부신 빛을 경험하는 동안의 중음과 윤회적 존재와는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절차의 중음, 이 여섯가지요. ... 그대는 이중에 3가지의 중음을 아마 경험하게 될 것이오. 죽음순간의 중음, 진실법계를 경험하는 동안의 중음과 다시 태어날 자리를 찾고 있는 동안의 중음이 그것이오. 이 3가지 중에 그대는 어제까지 죽음순간의 중음을 경험했던 것이오. 진실법계의 투휘광체가 차츰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지만 그대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오. 그래서 그대는 여기까지 떠돌아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오.

그대는 지금부터 중간중음과 만중음, 이 두가지 중음을 경험하려고 하고 있소, 부디 이 순간만이라도 미혹되지 말고 내가 그대를 인도해 주려고 하는 일에 대하여 계속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오.....

이 중간중음에 들어서 있는 그대에게 그 어떤 두려움이나 겁을 주는 것들이 닥칠지라도 다음 언구를 잊지마오....

‘정신차릴지어다! 나에게 진실법계의 불확실한 경험이 차츰 그 모습을 나타낼 때 요괴와 같은 환각에 대한 외포와 두려움과 겁스러워지는 생각을 떨어버리고 비록 그 어떤 환상이 나타날지라도 그 모두를 내 자신의 의식이 그 같은 환각의 모습으로나 또는 내 자신의 의식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로서 인식하게 되어지이다. 이런 것들 모두를 나는 중음길에 있어서의 요괴의 성질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어지이다. 내가 더 없이 완전한 자신을 성취하려는 이 중요한 순간에 내 자신의 사고형태가 모습으로나 그림자로서 나타난 평화의 신이라거나 분노의 신이라거나 하는 그 집단의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지이다!’

그대의 육체와 마음이 따로따로 갈라져 있는 이때, 마치 봄철에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여 가고 있는 신기루와도 같은 식으로 나타나서는 예민하고 섬광을 뿜으며 빛나며 눈부시며 빛을 뿜고 그런 광경으로 된 휘황한 무서운 순수한 진실의 빛을 아마 경험하고 있을 것이오. 이같은 환경속에 있다고 해서 그 모습에 외포당하거나 무서움을 느끼거나 겁먹거나 하지마오. 이건 그대 자신의 참된 바닥 성질에서 내뿜어지는 빛이니 이걸 올바로 인식하시오.....

지금 그대의 몸은 자신의 성벽, 즉 선천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정욕의 만족을 위하여 달렸던 그 소질에 의하여 형성된 “思考體”라고 불리워지는 심령체요. 그대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몸을 벗어난 이후부터 지금의 그 몸은 그 어떤 것이 덤벼들건간에 소리나 빛이나 방사선같은 것으로서는 도저히 그대의 몸에 상처를 내게 할 수는 없소. 그대는 죽어지지 아니하오.

이같은 현상들이 그대 자신의 사고형태라는 것을 안다는 것쯤이야 그대에게 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오. 이것이 바로 중음이라는 것을 아시오....

그대가 만일 지금 그대의 몸이 사고형태, 즉 육신이 없는 의식의 덩어리이며, 앞에 나타나는 이 모든 환상은 바로 나의 사고체에서 뿜어나오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또 만일 그대가 이 천도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대가 인간계에 살던 동안에 그 어떤 명상이나 삼보께 귀의를 했다할지라도 이 뿜어나오는 빛은 그대를 떨게 해 놓을 것이고 메아리치는 음향은 그대를 아마 주눅들게 할 만하오.

이천도의 중요한 열쇠를 그대가 알고 있지 못한다면 뿜어나오는 빛과 소리와 방사선을 인식할 수가 없게 되어 그대는 윤회라는 고통스런 굴레 속을 떠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오색 빛에 둘러싸여 있는 평화이 신들, 분노의 신들, 문을 지키는 신들의 강력한 모습을 보는 것과 동시에 사자들은 여러 색깔의 몽롱한 빛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빛은 각자의 개인적인 구역, 즉 자기네들이 태어날 수 있는 곳을 직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의 영역, 굶주린 귀신의 영역, 또는 지옥의 영역 중 어는 곳으로 배정된다.

   

평화제신의 여명

첫째날부터 일곱째날까지

... 누차 거듭되는 천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가 업장 때문에 중음기간 49일간을 모두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때, 우선적으로 평화의 여러신들의 여명이 차츰 뚜렷해지기 시작.....

첫째날이란 망자가 죽어서 다시 탄생길로 역행하고 있는 도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죽은 뒤 3일반부터 4일째까지 이니라...

“... 그대는 이 사흘 반 동안을 기절하고 있었소. 그대는 아마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하는 생각을 품게 될 것이오. 그대는 지금 중음길을 맞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오. 그때 그대 앞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아마 전혀 서로 다른 현상으로 경험하게 될것이오. 거기에서 그대가 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방식은 發光과 神들이오. .... ..

   

분노제신의 여명

여덟째날부터 열네째날까지

.....

   

평화의 신과 분노의 신들은 각 그 파트너로 한그룹을 이루며 대 만다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빛에 이끌리다 보면 정신의 해탈은 얻지 못하고 환생하는 쪽으로 빠지게 되기가 십상이다. 사자가 처음 두 단계의 바르도에서 주어진 해탈의 기회를 놓쳐 버렸을 경우에는 ‘환생을 찾는 바르도’라는 뜻의 ‘시드파 바르도(만중음)’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단계에 서 사자는 자기가 바르도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신체는 커다란 물질로 되어 있지는 않으나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운동력과 견고한 물체도 통과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자가 생시에 쌓은 업보(도덕적 선과 악의 총계)는 그가 이 바르도에서 행복하게 지낼 것인가 아니면 비참한 지경에 떨어질 것인가를 결정한다. 나쁜업을 많이 쌓아 놓은 이는 지독히 굶주린 짐승이나 사납게 몰아치는 자연의 힘에 휘말려 심한 고통을 당할 것이며, 반대로 좋은 업을 많이 쌓은 이는 즐거운 안락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 나쁜 업도 남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좋은 업도 쌓지 못한 이들은 이 단계에서 별 특색이 없는 우둔함과 무관심의 상태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이 바르도에서 찾아 볼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사자들의 왕이자 판관인 다르마 라쟈가 업의 거울로 사자의 지난 행적을 조사한 후에 내리는 심판이다. 이 거울에는 살아 있을 동안 행한 모든 선행과 악행이 모조리 다 나타나는데, 흰색과 검은색 조약돌의 형태로 그 행위의 경중을 가늠한다. 심판대 뒤에는 여섯 갈래의 길이 뻗어 있으며, 사르도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받드시 깨달아야 할 점은 이런 모든 존재와 사건이 다름아닌 바로 그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며, 그래서 본질적으로 공허한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런 깨달음의 기회를 놓쳐 버린다면 어쩔 도리 없이 다시 세상에 환생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바르도 쇠돌>이 제공해 줄수 있는 최선의 가르침은 어떻게 하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자궁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 주고 그나마 제일 조건이 좋은 환생을 선택하도록 도와 주는 일이다.

   

중유신. 그탄생과 비범한 기능

..

“... 그대는 잘 들으오. 지옥계, 천상계, 그리고 이 중음계에서의 탄생은 비범한 탄생이라고 불리워지는 종류임을 유의하오. 중간중음동안에 있어서 평화의 신들과 분노의 신들에게서 나오는 빛을 경험하고 있을 때, 그대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죽은 뒤 약 3일 반동안을 깜빡하고 기절해 있었오. 그리고 지금 그대가 이 기절로부터 깨어났을 때 그때의 식심(識心.영혼)은 다시 그 원모습의 상태가 되어 육신을 떠나 떠올라가서 자기가 육신을 취하여 그안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본래의 자신의 영혼 모습과 닮아 있는 발광체가 앞쪽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경전은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고 있소. ‘전자와 창출되는 자와의 모습은 서로 비슷해서 외견상으로는 인간의 몸체를 가지고 모든 지각과 기능과 거침세없는 움직이는 힘을 부여받아 카르마의 절대한 힘을 소유하고 같은 성질의-중유신으로서의 존재의-순수한 천안에게만 보이느니라’ .... 망자는 여기에서는 마치 생전에 피와 살이 있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성벽을 지닌 육체와 비슷한 몸체를 갖게 될 것이고 이 몸뚱이에는 고귀한 운명이라는 것을 타고난 자만이 갖출 수 있다고 볼수 있는 모종의 상징이라거나 완전한 미를 제수받게 될 것이오. 욕망에서 생겨난 그대의 몸은 중음동안에 지성구조에서 만들어내진 환각이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욕망체라고 불리워지오. 이때에 만약 그대가 천상계로 점지받아 태어날 운명을 지녔다면, 천상계의 비젼이 아마 그대에게 나타나 보일 것이오. 마찬가지로 그대가 만약 아수라계, 또는 인간계, 또는 축생계... 지옥계로 태어날 운명을 지녔다면 그 세상의 비젼이 그대에게 나타나 보일 것이오.

따라서 이 경전의 인용문구중의 ‘전자’라는 말은 3일반전까지 살아있던 그 동안의 성벽 때문에 생전에 가지고 있던 혈육으로 이루어진 그 육체와 꼭 같은 성질의 물질적인 육체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대는 착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 뜻이오. ‘창출되는 자’란 말이 이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것은 드디어는 그대가 재탄생할 미래장소의 비젼이 그대에게 나타나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오.

따라서 ‘전자와 창출되는 자’란 표현은 지금 그대로부터 버려진 이승의 육체와 재탄생에서 떠맡게 될 미래의 육체를 가리키는 말이오.

이때에 그대앞에 나타나 보이는 비젼에 따르지 마오. 매혹당하지 마오. 겁약되지 마오, 만약 우매성 탓으로 그대가 이 환상들에게 호의를 품게 된다면, 그대는 윤회육도의 굴레속을 헤매게되어 고통을 참아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버리오......

   

“... 다시 잘 들으오. ‘모든 지각과 기능과 거침새없이 움직이는 힘을 부여받아’란 그대가 설혹 생전에 소경, 귀머거리, 또는 절름발이였었더라도 이 사후계에서는 그대의 눈은 형태를 볼 수 있겠고, 그대의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오. 모든 감각기관은 손상되어 있지 않고 정상적이며 더구나 매우 예민하고 완전하오. 그 때문에 바르도체, 즉 중유신은 ‘모든 지각과 기능을 부여받아’라는 말이 붙게 된 것이오.

이같은 상태는 다름아닌 그대가 죽어서 중음을 방황하고 있다고 하는 징후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도록 노력하시오. 자신은 지금 중음이라고 하는 죽음으로부터 재탄생 사이의 중유신이라고 하는 생명적인 몸, 영혼의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시오. 배웠던 바를 생각해 내시오. 부디 배웠던 생각을 기억해 내시오.

‘거침새 없는 움직임’이란 방해받지 않는 활동이란, 욕망체인 그대의 지금의 몸체, 즉 그대의 지성은 생전의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서 물질적인 육체가 아니기 때문에 거침새 없이 바위라거나 언덕, 자갈이라거나 대지, 집이라거나 수미산 그자체가지도 곧장 관통해서 빠져나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오. ..

이건 다름아닌 그대가 지금 중음길을 방황하고 있다고 하는 징표요. ...

   

그대는 정말로 기적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소. 그러나 이건 그 어떤 삼마디에서 얻어진 소산도 아니고 그 힘은 자연적으로 그대에게 저절로 딸려오게 되어 있는 것이오. 이건 카르마의 힘이라고 하는 것의 성질이오.

그대는 순식간에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사대륙을 가로질러 나갈 수가 있소. 그대가 가고자 하는 곳이면 우주 공간의 어디든지 순식간에 도착할 수가 있소. 그대는 어느 누가 허리를 굽히거나 손을 앞으로 뻗든지 할 아주 짤막한 시간사이에 자기가 가고 싶은 어느 곳으로도 갈 수가 있소. 하지만 이같은 환각이나 변형의 능력을 바라지 마시오. 부디 욕심 부리지 마시오...

   

'같은 성질의 순수한 천안에게만 보인다‘는 뜻은 이러하오.

중음기간의 중유신으로서 머무는 동안에는 동질적인 구조(또는 같은 지식수준)를 가진 영혼들끼리는 서로 볼 수 있다는 뜻이오.

예를 들면 천상계에 태어나기로 점지된 사람끼리는 서로를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애착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비깊은 신인 관세음보살게 명상하시오.

‘순수한 천안에게만 보인다’는 뜻은 공덕을 쌓아 순수하게 태어나는 천상계는 깊은 명상을 實修한 사람들의 천안에게만 보인다는 뜻도 의미하오. 그렇다고해서 깊은 명상을 실수하는 사람들이면 항상 서로를 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오.

의식이 이들 위로 정신적으로 집중될 때에 한해서 이들을 볼 수 있는 것이오. 깊은 명상을 실수하고 있는 때마저도 사람들은 미혹되기 쉽고 이들을 볼 수 없는 것이오”

   

“.... 지금 그대처럼 중유신이란 성질의 몸체를 가지고 있는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다른 사람을 보듯이 지상계의 낯익은 장소라거나 친족들을 볼 수가 있을 것이오.

그대는 그대의 친족들이라거나 친구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볼 것이오. 하지만 대답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그대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그대는 ‘나는 죽은 사람이구나. 아! 어찌하면 좋을까?’하고 생각을 하고는 아마 대단한 불행을 느낄는지 모르오.....

   

그대가 영원히 계속해서 불어대는 카르마의 바람결에 따라 여기 저기로 떠밀려 다니고 있을때, 그대이 지성(영혼)은 어디 쉬어갈 물체하나 없는 바람결에 휘둘려 날리는 깃털 모양일 것이오.

그대는 아마 하염없이 부지불식간에 방황을 계속하고 있게 될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렇게 비애하지만 마시오. 아마 어슴프레한 잿빛 광선이 밤낮없이 비춰주고 있을 것으로 보오. 이같은 중음이라고 하는 중간상태 속에 그대는 1주일간, 또는 2,3,4,5,6,7주일간, 49일째까지 이를지 모르오. 일반적으로는 이 만중음의 불행을 22일간 경험하게 된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소. 하지만 카르마의 결정력 때문에 일정한 기간이 정해져 있지는 아니하오.

이때쯤 되면 도저히 견디어낼 수 없는 카르마의 세찬바람이 그대를 무서운 돌풍 속으로 내몰 것이오. 이걸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건 그대 자신의 환각이오. 끔찍스런 어둠이 줄곧 그대앞에 나타나올 것이오. 그리고 ‘매우쳐라! 쳐죽여라!’하는 등의 무서운 으름장이 들려올 것이오. 하지만 두려워하지마오..... ..

이 모든 것들은 그대 자신의 분노와 욕망과 우매성의 환상이오. 이때에 그대는 이야말로 중음의 막다른 시기인 만중음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하시오. ....

그대는 그대의 집이나 안면있는 자나 친족 등 그리고 자신의 시체까지도 보게 될지 모르오. 그리고는 ‘정말로 나는 죽은 자로구나. 어쩌면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될지 모르오. 격렬한 슬픔으로 앞뒤가 막혀져서 이같은 생각만이 그대에게 우러나질도 모르오.‘오 어쩌면 좋으랴. 나는 육신을 부여받지 못한 신세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고 그대는 자신이 가질 육신을 구하러 여기저기로 방황할지 모르오...

중음기간 동안에 그대가 재탄생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이같은 불행의 경험이 생기게 되오. 그대가 아무리 자신이 가질만한 육체를 찾아보려 할지라도....

   

.........이정도로 인용을 마친다.

   

   

가사체험과 임종을 맞는 사람들에서 얻은 자료들과 너무도 유사하지 않는가? 가사체험과 임종을 맞는 사람들에서 얻은 자료는 반쪽짜리다. 다른 반쪽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이들에서 얻는 자료다.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이들은 단지 이전생을 기억하고, 전생과 관련된 몸의 상처, 행동 양식 등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전문적인 학술잡지에는 기술할 수 없는 것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전생과 현생 사이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종류로 분류가 된다. 이곳 지구에 메여 돌아다닌 경우와 천상계에 머문 경우다. 그 예를 소개하겠다.

2005년까지 전산화한 1100예 중에서 25예에서 이전인격의 장례식이나 시체 처리를 기억한 것이 정확한 것이 확인되었다(69예중 25예에서 정확함이 확인되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유언으로 화장한 후 어떤 나무아래에 묻어달라고 하였는데, 그 딸이 뿌리가 너무 깊어 묻지 못하고 뿌렸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현생에서 꼬마가 언급한 경우이다. 한 예는 죽은 후 여러 날 동안 공중에 떠 다니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우는 모습과 자신의 시신을 보았음을 말하고, 자신처럼 많은 사람들이 떠 다녔다 했고, 그러다 빛을 보고 빛한테 가니 새로운 가정에 오게 됐다고 말한다. 몇 예에서는 장례식 후 오랫 기간동안 머무는 경우를 있다 한다. 인도의 한 예에서는 전생과 현생의 기간이 11년이 차이가 있었는데, 전생의 집주위에서 머물렸고, 나무에서 살았다고 하였고, 전생의 동생의 결혼식에도 갔었다고 하고, 그때 벌어진 상황을 이야기 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였다. 전생이 죽은 지역 근처에서 머문 경우도 있는데, 살해된 곳 근처의 대나무위에서 7년 동안 머물었다고 말했고, 7년 후에 전생의 엄마를 보기 위해 비오는 날 찾아나섰다가 시장에서 길을 잃고 미래의 아버지를 보고 그 남자와 같이 버스를 타고 태어날 집으로 갔었다고 말한 경우인데, 이 애를 임신할 쯤에 비오는 날 그 지역에 모임이 있어 갔었다고 애 아버지는 기억하고 있었던 예였다.

위 예들은 중간기간을 지구에 머물던 경우들이고, 다른 곳에서 머문 경우도 있다. . 한 예에서는 another realm에서 다시 태어날 것을 결정했던 일을 기억했는데, 다른 존재가 지구로 내려오는 그의 결정을 도와주었다고 하였다. 이 아이는 죽은 후에 위로 떠 올라갔고, 천국에 대해 이야기 했고, 천국에서 신과 동물을 보았다고 했다. 또한 여러 생을 기억했고, 동물도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에서도 천국에서 신을 만났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돌아 올때 신이 녹색화살이 있는 명함 같은 카드를 주었다고 했다. 이 아기는 하늘나라에서 그의 할아버지의 친구 분을 만나 할아버지와 놀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예에서도 하늘나라에서 먼 친척을 만나 가까운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친척이 총에 맞아 죽었음을 확인한 경우였다.

또 어떤 예에서는 죽은 후 자신이 위로 들려 올라갔고, 새처럼 날았다고 했고, 왕혹은 통치자를 만나 그의 궁에서 놀았다고 했고 배고프면 음식을 생각만 하면 나타났다고 했고, 먹지 않고 음식을 보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껴 실제로 먹을 필요가 없었다고 했고, 왕이 새로 태어날 집으로 가라고 한 후에 그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했다. 다른 예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말했는데, “위로 올라가니 수염이 기른 신성한 남자가 있었고, 그들이 나의 기록을 조사했고, 다시 돌려보내라 말했다. 그곳에는 방들이 있었고, 신(God)의 집을 보았다. 그 집은 매우 좋다. 당신은 그곳에 있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 기원문들은《바르도 퇴돌》과 관련된 테르마 경전의 모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기원문들은 모두《바르도 퇴돌》자체에서 헌신적인 수행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으며, 그중 몇몇 싯구는 죽은 사람을 향한 가르침으로 인용된다. 종종 단순히 '기원문'으로 번역되는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은 '소원의 길'이다. 그것은 외부에 있는 신에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정화하고 지도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마음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선한 욕망을 일깨움으로써 영감으로 작용하며, 그 영감은 목표로의 이행을 이끈다.-----------------------------------------------------------------부처님들과 보살님들께 구원을 청하는 기원문 누구든지 죽을 때가 되면 그는 항상 부처님들과 보살님들께 구원을 청해야 한다. 삼보님께 물질적 정신적 공양물을 바치고 손에 향기로운 향을 들고 다음의 말을 강하게 집중하며 말해야 한다."오 자비롭고 모든 것을 아시며 사랑과 다섯 종류의 눈을 갖추고 계시며, 모든 중생들의 보호자이신 시방에 계신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이시여, 자비의 힘으로 이곳에 오셔서 이들 물질적 정신적 공양물을 받아 주소서.오 자비로운 분이시여, 당신은 생각이 미치는 범위를 넘어 분별의 지혜와 사랑의 자비, 효력 있는 행위, 그리고 보호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 자비로운 분이시여, 이 사람(이름)은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선택의 여지없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런 피난처도 보호자도 협력자도 없습니다. 이 생에서의 빛은 꺼졌고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는 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업의 힘으로부터 쫓기고 있고 광활한 황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런 견고한 바탕이 없는 곳으로 가고 있으며 큰 싸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는 엄청난 악령들에 의해 붙잡혀 있습니다. 그는 죽음의 왕이 보낸 사자(使者) 때문에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의 업 때문에 그는 존재 후의 존재(윤회)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친구 하나 없이 홀로 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오 자비로운 분이시여, 그(이름)의 피난처가 되어 주소서. 그는 아무런 피난처가 없습니다. 그를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 주소서. 엄청난 바르도의 어둠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시고, 엄청난 업의 폭풍이 그를 비켜 가게 하소서. 엄청난 죽음의 왕의 공포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시고, 바르도의 길고 위험한 좁은 길에서 그를 이끌어 주소서. 오 자비로운 분이시여, 당신의 자비를 아끼지 마시고 그를 구원하소서. 그를 삼악도에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시옵소서. 이전에 맹세했던 당신의 서원을 잊지 마시고 신속하게 자비의 힘을 보내 주소서.오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이시여, 그(이름)를 위하여 당신의 자비와 숙련된 수단을 아끼지 마시고 그를 자비로 잡아 주소서. 중생들이 악업의 힘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내버려두지 마옵소서. 삼보님들이시여, 바르도 상태에서 고통받을 때 피난처가 되어 주소서."이 기원문을 스스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깊은 헌신의 마음으로 세 번 읽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들음을 통한 대 해탈》과〈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로부터 구원을 청하는 기원문〉, 그리고 〈두려움을 막아 주는 바르도 기원문〉을 읽어야 한다.------------------------------------------------------------------여섯 바르도의 중요한 싯구지금은 탄생의 바르도가 나에게 밝아오는 때인생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나는 게으름을 버리고 공부와 반성과 명상의, 정신을 흩뜨리지 않는 길로 들어가투영들을 만들고 그 길에 주의를 기울여 삼신(三身)을 깨달으리라.지금 내가 인간의 몸을 한 번 받았으니마음이 방황할 시간이 없도다. 지금은 꿈의 바르도가 나에게 밝아 오는 때부주의한 무지의 시체 같은 잠을 버리고정신을 흩뜨리지 않고 내 생각들을 그 본연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리라.광휘 안에서 꿈을 제어하고 변형시켜짐승처럼 잠자지 않고잠과 수행을 완벽하게 하나로 통일시키리라.지금은 깊은 명상의 바르도가 나에게 밝아오는 때모든 산만함과 혼란스러움을 버리고집착과 동요가 없는 무한한 상태에서 머물며영상화 수행과 완성 수행, 이 두 수행을 굳게 하고이 명상의 시간, 행위에서 벗어나 일념으로 혼란스런 감정의 힘에 빠지지 않으리라.지금은 죽음의 순간의 바르도가 나에게 밝아오는 때모든 집착과 갈망을 버리고정신을 흩뜨리지 않고 가르침의 선명한 자각 안으로 들어가의식을 태어나지 않은 마음의 공간 속으로 방출하리라.이 살과 피로 이루어진 몸을 떠날 때나는 그것이 덧없는 환상임을 알리라.지금은 다르마타의 바르도가 나에게 밝아오는 때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버리고 무엇이 나타나든 그것은 나의 투영임을 알아차리며그것이 바르도의 환영임을 알리라.이제 이 중대한 시점에 이르렀으니나는 내 자신의 투영들인 평화와 분노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지금은 생성의 바르도가 나에게 밝아오는 때마음을 일념으로 집중하고선업의 결과들을 오래 유지하도록 노력하며자궁 입구를 닫고 그 반대의 것을 생각하리라.지금은 인내와 순수한 생각이 필요한 때질투심을 버리고 신들과 그 배우자들을 명상하리라.멀리 벗어난 마음으로 죽음이 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의미 없는 행위들을 실행하여빈손으로 돌아가 이제 완벽한 혼란의 상태가 되었구나.필요한 것은 성스러운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그런데도 바로 이 순간 어째서 진리를 수행하지 않는가?거룩한 성취자는 이렇게 말씀하신다."만일 네가 마음속에 스승의 가르침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너는 너 자신을 기만하는 것 아닌가?"' 라고.-----------------------------------------------------------------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로부터 구원을 청하는 기원문스승님들, 원불님들, 다키니님들께 존경의 예를 올립니다.큰 사랑으로 우리들을 좁은 길에서 인도해 주소서.혼란으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숙고와 명상공부의, 정신을 흩뜨리지 않는 빛의 길을 따라신성한 계보의 스승님들 제 앞에 나투시고그의 배우자 다키니님들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소서.강한 무지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다르마다투 지혜의 밝은 빛의 길을 따라신성한 비로자나 부처님 제 앞에 나투시고 그의 배우자 우주 공간의 여왕님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 가소서."강한 적대감으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 거울 같은 지혜의 밝은 빛의 길을 따라신성한 금강살타님 제 앞에 나투시고그의 배우자 붓다로차나님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소서.강한 자만심으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평등한 지혜의 밝은 빛의 길을 따라신성한 보생 부처님 제 앞에 나투시고그의 배우자 마마키님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소서.강한 욕망으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분별하는 지혜의 밝은 빛의 길을 따라아미타 부처님 제 앞에 나투시고그의 배우자 판다라바시니님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소서.강한 질투심으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모든 행위를 성취하는 지혜의 밝은 빛의 길을 따라신성한 불공성취 부처님 제 앞에 나투시고그의 배우자 삼마야타라님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소서.강한 무의식의 성향들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내부로 향한 지혜의 밝은 빛의 길을 따라비드야다라 전사님들 제 앞에 나투시고그의 배우자 다키니님들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소서.사납고 혼란스런 투영들로 인하여 제가 윤회계를 방황할 때모든 두려움을 버리는 빛의 길을 따라신성한 평화와 분노의 신들 제 앞에 나투시고그들의 배우자 다키니님들과 공간의 여왕님들 제 뒤에 나투소서.바르도의 위험한 좁은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시고완전한 부처님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소서.공간의 원소가 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푸른색 부처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소서.물의 원소가 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하얀색 부처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소서.흙의 원소가 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노란색 부처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소서.불의 원소가 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붉은색 부처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소서.공기의 원소가 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초록색 부처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소서.원소들의 무지개가 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모든 부처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소서.빛과 소리와 광선들이 적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시고무한한 평화와 분노의 신들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하소서.모든 소리들이 제 자신의 소리임을 알게 하시고모든 빛들이 제 자신의 빛임을 알게 하시고모든 광선들이 제 자신의 광선임을 알게 하시고바르도가 제 자신임을 자발적으로 알게 하시고제가 삼신(三身)의 세계에 이르게 하소서.------------------------------------------------------------------두려움을 막아 주는 바르도 기원문제가 인생의 여행에서 그 끝에 도달하여이 세상의 친지들은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고홀로 바르도 상태에서 방황할 때평화와 분노의 부처님들이시여, 자비의 힘을 보내주시어빽빽한 무지의 어둠을 걷어 주소서.사랑하는 친구들을 떠나 홀로 방황할 때제 자신의 투영들의 텅 빈 모습들이 나타납니다.부처님들이시여, 자비의 힘을 보내주시어바르도의 공포가 나타나지 않게 하소서.다섯 가지 지혜의 밝은 빛이 비칠 때두려워하지 않고 제 자신을 알아차리게 하소서.평화와 분노의 신들이 모습을 나타낼 때두려움 없이 확신하며 바르도를 알아차리게 하소서.제가 나쁜 업의 힘으로 인하여 고통받을 때평화와 분노의 부처님들이시여, 고통을 걷어 주소서.다르마타의 소리가 천 개의 천둥소리처럼 울릴 때그 소리가 대승의 가르침 소리로 변하게 하소서.제가 피난처 없이 저의 업에 따를 때평화와 분노의 부처님들이시여, 저의 피난처가 되어 주소서.제가 무의식적 성향들의 업으로 고통받을 때희열의 삼매와 광휘가 일어나게 하소서.생성 바르도에서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순간유혹자의 거짓 가르침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제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원하는 곳에 도착했을 때악업으로 인한 환영의 공포가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야생의 육식동물이 으르렁거릴 때그 소리가 진리의 소리 여섯 음절이 되게 하소서.제가 눈과 비와 바람과 어둠에 쫓길 때분명하고 신성한 지혜의 눈을 받게 하소서.바르도에서 같은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질투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의 세계에 태어나게 하소서.심한 갈증과 허기가 열망에 의해 일어날 때갈증과 허기, 더위와 추위의 고통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제가 결합해있는 미래의 부모님을 볼 때평화와 분노의 부처님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을 보게 하소서.다른 이들을 위하여 제가 태어날 곳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좋은 징조와 함께 완벽한 몸을 받게 하소서.스스로 완벽한 인간의 몸을 얻어저를 보거나 듣는 사람은 모두 즉시 해탈되게 하소서.제가 저의 악업을 따르지 않게 하시고제가 지닌 공덕만 따르게 하소서.제가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지 바로 그곳에서금생의 원불을 정면에서 만나게 하소서.제가 태어나는 순간 걷고 말하는 법을 알아과거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을 얻게 하소서.상중하의 세 배움의 단계에서제가 단지 듣고 생각하고 봄으로써 이해하게 하소서.어느 곳이든 제가 태어나는 땅이 축복 받게 하소서.그래서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게 하소서.오 평화와 분노의 부처님들이시여, 저와 다른 이들이 바로 당신 그대로, 당신 자신처럼 되게 하소서.당신의 모습과 당신의 상(祥)스러운 표시를 지니고당신의 수행원들과 당신의 긴 수명과 당신의 세계를 허락하소서.사만타바드라, 평화와 분노의 신들, 무한한 자비, 순수한 다르마타의 진리의 힘,그리고 일념으로 명상 수행하는 탄트라의 제자들,그들의 축복으로 이 기원문이 이행되게 하소서.

 

 

 

 

 

 

 

 

[출처] 티벳 사자의 서|작성자 불교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