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 - 딴뜨라(탄트라) : 무상요가 수행 II 생기차제, 원만차제
죽음, 중음, 탄생 그리고 생기차제(生起次第)
“무상요가 수행이 [부모에게서 받은] 여섯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수행자의 물리적인 몸을 위주로 하는 것인 이상, 수행의 과정 역시 일반적인 사람의 죽음, 중음(中陰) 그리고 탄생을 그 예로 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인간은 자신들이 가진 물리적인 몸의 특성 때문에
죽음, 중음 그리고 탄생이라는 경험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윤회의 과정을 극복함으로써 불변의 지복과 완전한 공성을 깨우치는 것이지요.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거친 수준의 마음과 풍기가 미세한 차원으로 해체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은 죽음의 정광명을 경험합니다.
이 정광명의 상태에서 중음 상태의 미세한 몸을 생겨나며,
다시 이 중음 상태의 미세한 몸이 정광명의 상태를 거쳐
눈에 보이는 거친 몸을 받는 새로운 탄생의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용수 보살과 성천(聖天, Aryadeva) 보살은 당신들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은 딴뜨라의 주석서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치는 이러한 일반적인 경험의 과정을 수행자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 중음 그리고 탄생의 과정을 아무런 제어 능력 없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법신 보신 화신을 성취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상요가에서는 죽음, 중음 그리고 탄생을
‘삼신(三身)의 근간(gZhi dus kyi sku gsum)’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무상요가의 수행처럼,
어떤 생기차제 수행이든 부처의 결과적 상태인 이 세 가지를 성취(三身)하기 위한 수행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닝마빠 경전에서는 다른 용어를 사용합니다.
부처의 삼신(三身)에 대한 생기차제의 수행을
닝마빠에서는 ‘삼종삼매(三種三昧, Ting nge 'dzin gsum, 또는 三等持)'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진여에 대한 삼매인 진여등지(眞如等持, De bzhin nyid kyi ting nge dzin),
모든 것이 나타난 삼매인 현위등지(現位等持, Rab tu snang ba'i ting nge dzin),
원인적인 삼매인 인위등지(因位等持, rGyu'i ting nge dzin) 세 가지를 말합니다.
요가 딴뜨라와 무상요가 딴뜨라에 일반적으로 다 있는 생기차제 수행은 가끔
(1) 초기 단계, (2) 수승한 왕의 만다라, (3) 수승한 왕의 행위, 세 가지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닝마빠의 삼종삼매와는 다른 것입니다.
요약 하면, 삼신(三身)에 대한 수행은 죽음, 중음 그리고 탄생의 과정을
깨달음의 길로 전환하는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행을 통해 여러분이 실제 죽어가는 과정을 관상함으로써
죽음을 부처의 법신(法身)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관상 속에서 모든 마음의 흐름을 제어하고
그 의식을 움직이게 하는 기반인 풍기(風氣)를 해체시키는 것입니다.
죽음의 과정은 몸 안에 있는 요소들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일어납니다.
보통 이러한 과정은 여덟 단계를 거치는데,
먼저 지대(地大)부터 해체되기 시작하여 수대(水大) 화대(火大) 풍대(風大)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사대(四大)가 해체되고 나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네 가지 단계를 계속해서 경험하게 되는데,
각각 현상심(現象心)인 명백광(明白光),
증장심(增長心)인 증적광(增赤光),
근성취심(近成就心)인 득현광(得玄光),
죽음의 정광명의 순서로 일어납니다.
생기차제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오직 관상을 통해서만 경험하고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경원만차제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좀더 깊고 심오한 실제적인 경험으로 진행시킬 수가 있습니다.
수행자는 결과적으로 죽음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해체의 과정을 실질적인 것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특히 죽음의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나는 극히 미세한 상태의 정광명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죽음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들을 연구합니다.
만약 이러한 죽음의 과정을 천천히 점진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것을 연구하면
무언가 좀더 고무적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해체 과정이 좀더 분명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병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볼 수 있습니다.
고도의 딴뜨라 수행자들은 죽음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들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함몰되지 않고 의식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능력은 오랜 시간 자신의 생을 바쳐 수행해온 결과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죽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죽음의 정광명 상태에서 최대 약 3일 정도를 머무릅니다.
하지만 고도의 성취를 이룬 수행자들은 일주일에서 수주일 까지도 이러한 상태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정광명 상태에 머물고 있는 외적인 징후는 의학적인 사망 판정이후에도 몸이 해체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의사 친구는 수행자들이 경험하는 죽음의 과정을 실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실험 기구를 저에게 남겼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때부터 저는 수행자가 죽기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된 셈입니다.
아마 쉽게 이 실험을 끝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지요.
생기차제에서 경험하는 관상 차원의 죽음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수행자는
공성에 대한 삼매에 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반적인 몸의 요소를 정화하고 법신을 대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의 정광명을 경험한 다음에 바로 중음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처럼,
생기차제를 수행하는 수행자는 공성에 대한 삼매를 이루고 나면 관상 차원의 미세한 몸을 생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경험하는 중음의 요소를 정화하고 성취하는 보신의 수행입니다.
그런 다음, 일반적인 중음신(中陰身, 香食者)들이 죽음의 상태를 떠나
물리적인 거친 몸의 탄생과정을 겪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생기차제의 수행자들은 일반적인 탄생의 요소들을 정화하고 보신을 떠나 화신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생기차제에서 자신을 본존으로 관상하는 자수생기(自手生起)를 담고 있는 수행차제(sādhana)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딴뜨라의 경우는 먼저 원인 집금강(執金剛 혹은 持金剛, Vajrdhara)을 생기한 다음,
결과적인 집금강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야만따까(Yamantaka)-바즈라바이라바(Vajrabhairava) 수행의 경우처럼,]
또 다른 경우는 자수생기를 오현증(五現證, mNgon byang lnga, Abhisaṃbodhis)으로 대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주: 오현증에는 (1) 월륜현증(月輪現證, Zla las byang chub pa, 大圓鏡智), (2) 일륜현증(日輪現證, Nyi ma las byang chub pa, 平等性智), (3) 종자현증(種字現證, Sa bon las byang chub pa, 妙觀察智) (4) 수물현증(手物現證, Phyag mtshan las byang chub pa, 手持物, 成所作智), (5) 전신현증(全身現證, sKu rJogs pa las byang chub pa, 法界體性智)이 있다.)
이와 같이 본존을 자수생기 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생기차제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수행차제와 방법들은 본존을 관상하는 다양한 방식입니다.
모두가 중요한 방식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심오함’과 ‘광대함’을 관상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신성한 본존의 자부심과 그와 함께 이어진 명료한 관상의 힘을 키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본존을 먼저 분명히 일으키고 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신성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개발해야 합니다.
진지한 수행자들은 실질적인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언제나 자신의 정신적인 상태와 깨우침의 정도를 점검합니다.
실제 수행에 들어가서는
침몰(沈沒, Bying ba)과 산란(散亂, rNam par gyeng ba)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의 깊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역주: 수행에 들어가면 다양한 장애들이 수행을 방해하게 된다. 이러한 장애들은 옛날부터 침몰(가라앉음), 산란(산만함), 도거(掉擧, rNampar'phyarba, 들뜸), 혼침(昏沈, rMugs pa, 무기력), 수면(睡眠, gNyid pa, 졸음), 방일(放逸, rGod pa, 흐트러짐) 등의 몇 가지 전문적인 용어들로 표현해왔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나타나는 현상은 방일을 바탕으로 산란과 도거가 생기며, 깨어 있지 않으면 침몰을 바탕으로 혼침과 수면이 찾아온다. 불교 경론에는 여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수행 방법들이 있다.)
그리고 항상 일정하고 흔들림 없는 수행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지(止)를 성취하기 위한 가장 큰 장애는 생각이 밖으로 향하는 것(放逸)입니다.
그래서 산란이나 도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는 들떠서 생기는 도거(掉擧)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욕망하는 바의 대상으로 옮겨갈 때 생기거나, 관상에 너무 집중하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려면 마음을 느슨하게 하고
관상의 집중력을 조금 느슨하게 해서 외부 대상에 대한 관심을 안으로 다시 돌리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분석적인 방법으로써,
언제나 무상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윤회의 속성을 일어나는 생각의 대상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또 확고한 집중의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행의 대상을 명료하게 관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료함이 떨어지면 쉽게 외부의 대상으로 마음이 이끌리며, 지(止)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명료함에는 인식 대상에 대한 명료함과 인식 작용의 명료함(주관적 경험 자체)이라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마음의 명료함을 가로막는 장애는 침몰입니다.
수행 중에 마음의 침몰이 찾아오면, 인식 상태를 좀더 키워야 합니다.
따라서 지(止)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할 때는 항상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즉 너무 느슨해져서 침몰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너무 흐트러져 방일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억하여(憶念) 스스로 깨어(自覺)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완전한 평정의 지(止)를 성취하기 위해 순간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무상요가 수행에서는 스스로를 본존으로 관상하고 몸에 있는 다양한 기맥을 관상하는 수행 대상의 특수성 때문에 지(止)의 상태를 보다 쉽게 이룰 수 있으며, 이 지(止)의 힘으로 몸 안에 있는 기맥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수행을 통해 깊은 경지의 체험을 한 수행자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수행의 방법을 가르쳤고, 그들은 자신의 깊은 경험을 저에게 말했습니다.
보기 좋은 관계 아닙니까?
본존에 대한 명료한 관상이 가능해지면 마음은 지(止)의 상태를 오랫동안 계속해서 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감각과 사고를 막아주고, 신성한 자부심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때 수행의 과정을 통틀어 인식의 작용이 일어난 근원인 공성에 대한 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청정법계인 만다라와 그 안에 거주하는 본존에 대해 분명하고 생생한 관상이 가능해집니다.
마치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이것은 생기차제의 첫 번째 단계를 완성한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자신의 몸에서 생기한 미세한 본존들이 찰나의 의식 속에서도 명료한 관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때가 생기차제의 두 번째 단계를 성취한 단계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집중의 상태가 한번 이루어지고 나면, 수행을 좀더 진전시킬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가슴에서 생기한 본존들을 뒤로 되돌리는 것과 같은 방법들입니다.
이러한 수행은 미세한 상징물들과 무드라(mudrā, 印)들을 중앙 맥관의 위쪽 개구(開口)로 돌리고, 미세한 정수(精髓, thig-le)와 종자음(種字音)을 중앙 맥관의 아래쪽 개구(開口)로 돌리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다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진언염송(眞言念誦)을 하는 것입니다.
무상요가에는 만다라에 거주하는 서언존의 서원이 깃든 진언을 염송하는 삼매야염송(三昧耶念誦, Dam tshig gi bzlas pa, 誓言念誦), 분노염송(忿怒念誦, Khros pa bzlas pa), 지금강염송(持金剛念誦, rDo rje bzlas pa), 교염송(轎念誦, 혹은 持廻曲念誦, Khrogs kyi bzlas pa, 가마염송), 명왕염송(明王念誦, Khro bo bzlas pa) 등의 다양한 진언염송들이 있습니다.
진언염송 다음에는 정진이 끝난 뒤에 하는 ‘정진후수행(精進後修行)’을 합니다.
딴뜨라의 수행자는 정전 중에 지혜와 방편의 수행을 절대로 따로 나누어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정진이 끝나 후에도 일상에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진이 끝나고 하는 ‘정진 후 수행’에는 수면요가(睡眠瑜伽), 음식조절, 세욕(洗浴) 등이 있습니다.
진지한 딴뜨라의 수행자들은 용변을 보는 중에도 특정한 수행과 관련한 의식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스승들은 정진 중에 하는 수행과 정진 후에 하는 수행이 항상 서로를 보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정진 후 수행을 하는 동안 수행자는 자신이 정진 중에 했던 수행의 성과를 분명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긴 세월을 수행하고도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태도 습관적인 경향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이것은 수행의 테크닉만 배운 것이지 실질적인 수행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좋지 않은 징조입니다.
약을 먹을 때 중요한 것은 약의 모양이나 색깔, 맛 등이 아닙니다.
그 약이 우리 몸에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가 중요하지요.
만약 오랫동안 약을 먹고도 별 효과를 못보고 있다면, 그 약을 더 이상 계속 먹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수행이 정교하든 간단하든 자신의 전환과 변화를 성공적으로 도와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자기 안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구경원만차제(究竟圓滿次第)
생기차제의 본존요가 수행을 바탕으로 구경원만차제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수행들이 가능해집니다.
생기차제를 고도로 성취하게 되면
수행자는 자신의 몸 안에서 물리적으로 아주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거친 요소들이 녹아고 지복감이 일어나는 물리적인 효과를 경험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구경원만차제의 첫 번째 단계를 이룬 증거입니다.
구경원만차제에는 ‘뚬모(gTum-mo, 發火) 요가’, ‘풍기(rLung) 요가’, ‘사지복(四至福) 요가’ 등 다양한 유형의 수행 방법이 있습니다.
또 풍기요가에는 보병호흡(寶甁呼吸)과 금강염송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나아가 생기차제를 이루고 구경원만차제의 초기단계로 발전한 수행자들은
앞에서 말한 금강의 계율에 따라 배우자(이성의 수행대상)와의 합일을 통한 수행으로 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가의 계율을 받아 지닌 비구와 비구니, 사미와 사미니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수행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좀더 심오한 차원의 구경차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먼저 미세한 몸의 속성을 완전히 터득해야 합니다.
맥관(脈管, rtsa) 풍기(風氣, rLung) 정수(精髓, Thig le, 明点, 菩提)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몸 안의 어떠한 곳에서 어떻게 미세한 작용을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맥관(脈管, rtsa)을 살펴보면, 몸 안에는 가장 미세한 차원의 중심 맥관이 세 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중앙 맥관과 좌우 맥관이라고 하며, 더불어 다섯 군데(정수리, 목, 가슴, 배꼽, 비밀스러운 곳)의 맥관과 정수가 모이는 지접을 맥륜(脈輪, Cakra)이라고 합니다.
(*역주: 이 경우 맥륜의 숫자는 다섯 군데에서 일곱 군데까지 필요에 따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세 개의 주요 맥관은 다시 몸 전체에 세분하여 72,000개의 맥관을 형성합니다.
하지만「대보적경불위아난설처태회제십삼(大寶積經佛爲阿難說處胎會第十三)」같은 경전에서는 몸 안에 80,000개의 맥관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맥관들을 타고 흐르는 풍기(風氣, rLung)들에는
일반적으로 다섯 가지 주풍기(主風氣)와 다섯 가지 부풍기(副風氣)를 합해 열 가지 주요한 풍기가 있습니다.
(*역주: 주풍기(主風氣)에는 생명풍기(生命風氣), 상승풍기(上昇風氣), 편만풍기(遍滿風氣), 화주풍기(火住風氣 또는 等住風氣), 하강풍기(下降風氣)가 있으며, 부풍기(副風氣)에는 운동풍기(運動風氣), 집중풍기(集中風氣), 완전풍기(完全風氣), 강운풍기(强運風氣), 확운풍기(確運風氣)가 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른 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이 풍기들의 기본적인 역할이 변하지는 않는다.)
또 정수(精髓, Thig le, 明点, 菩提)에는 하얀 요소(白菩提)와 빨간 요소(赤菩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깔라자끄라(Kalacakra, 時輪) 딴뜨라에서는
(1) 이마의 미간에서 각성(覺性)을 유지하는 정수,
(2) 목에서 꿈과 이어지는 정수,
(3) 심장에서 깊은 잠과 이어지는 정수,
(4) 배꼽에서 제 4의 단계(絶頂)를 이어주는 정수와 같은 네 가지 유형의 정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깔라짜끄라 딴뜨라에서는 이에 관한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깔라짜끄라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수행자의 몸 안에 있는 맥관 풍기 정수들을 포함한
모든 내적인 요소를 내계(內界) 깔라짜끄라라고 부릅니다.
이 내계 깔라짜끄라는
딴뜨라의 수행자들이 특정한 딴뜨라의 수행을 통해서 정화해야할 내부의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깔라짜끄라는 수행의 대상과 알아야할 범주를 외계(外界) 깔라짜끄라, 내계 깔라짜끄라, 대안(代案) 깔라짜끄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자기 몸의 미세한 속성에 대한 직관을 바탕으로 몸 안에 있는 미세한 장소들을 본 후에
수행자들은 수행을 통해 그러한 장소들을 통과합니다.
그 결과 수행자는 거친 수준의 마음과 그 의식을 움직이는 풍기의 흐름을 유도하여 녹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수행자는 가장 미세한 차원인 정광명의 본래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완성하는 공성의 지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마치 보물의 창고를 여는 열쇠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열쇠를 가지고, 구히야삼마자(Guhyasamaja, 비밀집회) 딴뜨라에서 말하는 방편을 사용하여 청정환신(淸淨幻身)을 성취할 수가 있고, 깔라짜끄라(Kalacakra, 時輪) 딴뜨라에서 말하는 공성신(空性身) 또는 족첸(Dzog chen, 大究竟 혹은 大圓滿)이나 짜끄라삼바라(Cakrasamvara, 總攝輪)에서 말하는 홍신(虹身, 무지개 몸) 등을 성취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완전한 부처의 경지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깨어있는 동안 스스로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얻고 나면,
꿈속에서도 이와 같은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행들을 ‘구류융합교수법(九類融合敎授法, gDams pa bsre ba skor dgu)’이라고 하는데, 각각 깨어있는 동안의 세 가지 융합, 잠들어 있는 동안의 세 가지 융합, 죽음에서의 세 가지 융합이 있습니다.
(*역주: 이 아홉 가지는 보통 융탐졸화(融貪拙火, ‘Dod chags bde chen dang bsre gtum mo), 융진환신(融瞋幻身, Zhe sdang den ed bsre ba sgyu lus), 융치광명(融痴光明, gTi mug mi rtog pa dang bsre pa 'od gsal), 졸화환신융합(拙火幻身融合, gTum mo dang sgyu lus bsre la nyin mo bsgom), 몽경광명융합(夢境光明融合, rMi lam dang 'od gsal bsre la mtshan mo bsgom), 중음전이융합(中陰轉移融合, Bar do dang 'pho ba bsre la 'chi khar bsgom), 근수졸화융합(勤修拙火融合, Gang zag brtson 'grus can la gtum mo), 나태몽환융합(懶怠夢幻融合, Le lo can rmi lam), 수단전이융합(壽短轉移融合, Tshe thung 'pho ba dang bsre ba)을 말한다.)
무상요가의 가장 수승한 근기를 가진 수행자는 바로 이 생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또 중간 정도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는 중음 상태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하근기의 수행자들은 다음의 생에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무상요가의 중근기와 하근기 수행자들에게는 전이(轉移, 'pho ba, 遷識) 수행을 전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에는 또 ‘전이입사(轉移入舍, 'pho ba sgrong 'jug, 遷識入舍)’ 수행이 있는데,
이것은 수행자 개인의 의식이 자신의 몸을 떠나 방금 죽음에 든 중생의 몸으로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주로 다루고 있는 딴뜨라의 가르침은 티벳 불교 까규빠 전통의 핵심으로써 인도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나로빠(Naropa)께서 여러 가지 딴뜨라들을 참고하여 전하신 ‘나로육법(Naro chos drug)’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겔룩빠(dGe lug pa, 善宗者, 승원이름) 역시 ‘나로육법’의 수행을 강조합니다.
(*역주: 겔룩빠 종파의 나로육법 전통은 ‘쫑카빠 대사께서 정리하신 나로육법’에 근거하고 있다.)
또 사꺄빠 전통에서는 ‘람대(Lam dre, 道果)’ 수행을 강조하며,
닝마빠에서는 족첸 수행전통인 ‘심정수(心精隨)’ 수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무상요가의 구경원만차제를 담고 있는 수행입니다.
구역전통(舊譯傳統): 닝마빠의 무상요가
[*역해: 티벳 불교는 역사적인 이유로 해서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한다. 이교도였던 10세기 랑다르마(Langdarma)라는 왕의 훼불정책으로 중앙 티벳의 불교는 거의 초토화 되다 시피 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티벳 불교는 전후의 흐름이 여러 가지로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10세기 이전에 인도 불교의 경전들을 번역하고 수행해 온 전통을 구역전통(舊譯傳統, rNying ma)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10세기 이후 새로운 종파들의 성립과 함께 들어온 경전들을 번역하고 수행해온 전통을 신역전통(新譯傳統, Sarma)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종파별로 보면, 구역전통은 닝마빠를 중심으로 이어졌고, 신역전통은 까규빠, 사꺄빠, 겔룩빠(또는 신(新) 까담빠)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랑다르마 왕 이후 전개된 실제 티벳 불교의 양상을 보면, 구역전통이나 신역전통 할 것 없이 4대 종파들 모두 서로가 서로의 이론과 수행을 보충해주면서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티벳 불교를 놓고 어느 한 종파의 이론만을 가지고 우열을 나누거나 특정한 수행방법만을 고집하는 것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의 부분적인 시비밖에 되지 않는다.
더불어 티벳 불교의 위대한 스승들은 종파를 떠나 거의 모든 수행 전통을 다 섭렵하신 분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전체를 살펴보고 난 다음,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 전통을 따라 공부하는 것이 티벳 불교를 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역전통(舊譯傳統)은 ‘족첸(Dzog chen, 大究竟 혹은 大圓滿)’ 수행을 위주로 하는 티벳의 4 대 종파 중 제일 오랜 된 ‘닝마빠(rNying ma pa, 舊派)’이다.
이 종파에서는 전체 수행 과정을 아홉 가지 단계로 되어 있는 ‘구부승(九部乘)’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구부승을 살펴보면, 처음 세 단계는 각각 성문승(聲聞乘) 독각승(獨覺乘, 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의 단계이며, 그 내용은 현교의 체계 안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다.
이 삼부승(三部乘)은 그래서 ‘고통의 직접적인 근원에서 생긴 승(乘)’들이라고 한다.
다음 세 단계는 각각 작법(作法) 딴뜨라, 행법(行法) 딴뜨라, 요가(瑜伽) 딴뜨라이다.
이들은 모두 의례나 외부적 청정 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외부승(外部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들은 단식(斷食) 금식(禁食) 등과 같은 특정한 물리적 참회를 위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금욕적 성취를 위한 딴뜨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가지 내부 딴뜨라에는 ‘마하요가(Mahayoha, 大瑜伽)’ ‘아누요가(Anuyoga, 隨瑜伽)’ ‘마하아띠요가(Mahatiyoga, 最上瑜伽)’가 있다. 이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성문승: 이 승의 제자들은 승가 계율의 여덟 가지 별해탈계(別解脫戒)중에 하나를 받아 지닌다. 이들은 인무아(人無我)는 알고 있지만, 법무아(法無我)는 아직 덜 깨우친 상태다. 몸과 마음은 고요한 집중의 수행(止)을 통하여 편안해진다. 이들은 사성제와 십육행상(十六行相 간다라 지역 설일체유부 학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無漏智는 사성제의 16行相뿐이라고 하는데, 즉 苦(Duhkha), 空(Sunya), 無常(Anitya), 無我(Anatmaka)등 苦諦의 四相과 因(Hetu), 集(samudaya), 生(Prabhava) , 緣(Pratyaya)등 集諦의 四相, 滅(Nirodha), 靜(Santa), 妙(Pranita), 離(Nihsarana)등 滅諦의 四相, 그리고 道 (Marga), 如(Nyaya), 行(Pratipada), 出(Nairyanika)등 道諦의 四相등 모두 十六行相에 대한 관찰 또는 簡擇하는 수행을 하며, 사도(四道: 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의 수행을 통하여 그들 자신의 평화와 지복을 이룬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수다함과(須陀含果), 사다함과(斯陀含果), 아나함과(阿那含果) 그리고 아라한과(阿羅漢果)의 네 가지 성취를 이루게 된다.
(2) 연각승(緣覺乘): 이 길의 제자들은 성문승(聲聞乘)들이 하는 것처럼, 여덟 가지 별해탈계중에 어느 하나를 지켜 나간다. 그들은 인무아(人無我)를 깨우치고 있으며, 법무아(法無我)에 관해서는 사물의 무아(相無我)는 알지만, 의식의 찰나는 존재 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고요한 집중을 수행하며, 연기법(緣起法)에 근거한 사성제의 16행상(行相)을 수행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위해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다.
(3) 보살승(菩薩乘): 이 길의 제자들은 모든 사람과 현상계는 어떠한 자아(自我)나 실체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위의 두 승(乘)과 같은 수행을 병행하지만, 모든 중생들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부처의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해 수행한다. 이렇게 모든 중생을 위해 깨닫고자 하는 것을 ‘보리심(菩提心)’이라고 하며, 대승의 길을 위의 두 승들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이다. 더불어 이들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육바라밀을 수행한다. 이들은 사성제를 관하고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의 두 가지 무아에 대해서 수행하며, 보살의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을 수행한다. 삼세겁(三世劫, 三阿僧祇劫)을 수행한 후에 이들은 대반열반(大般涅槃, 완전한 깨달음)에 든다. 이를 성취한 후에도 이들은 유정세계(有情世界)에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투기를 계속한다.
이어지는 딴뜨라의 육부승(六部乘)들에 대해, 고(古) 딴뜨라인 ‘삼상명등(三相明燈: 三相은 宗法, 同品, 異品을 말함)’에서는 딴뜨라의 길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목적은 같으나 미망(迷妄)에서 헤매지 않고,
방편은 다양하나 어려움이 없다.
이는 예리한 지성을 지닌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승(Tantrayana)은 수승하다.
모든 승(乘)들의 목표는 깨달음 또는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수행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급 승(乘)들에서 수행자는 부정(不淨)한 것들을 피하고자 하거나
부정에 대한 정화를 위한 다양한 방편을 수행한다.
하지만 딴뜨라의 길에서는 부정한 것들 그 자체가 깨달음의 한 방편으로 사용된다.
딴뜨라의 목적은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완전하고 청정하게 보는 것이다.
이것이 딴뜨라에서 부처의 경지를 성취하는 방편이다.
다음은 삼부외전(三部外傳) 딴뜨라에 대한 설명이다.
(1) 끄리야(Kriya, 作法) 요가:
이 길의 제자들은 신(身) 구(口) 의(意) 삼문(三門)을 청정히 하는데 집중한다.
이들은 대부분 채식을 하고 단것과 유제품 등으로 생활한다. 모든 것은 절대 진리(眞諦)안에서 동등하다.
그러나 상대진리(俗諦) 안에서는 본존을 주존(主尊)으로서 생각하고 수행자 스스로를 종자(從者)로 생각한다.
자기 앞에다 본존을 관상하고 헌공하며 기도문과 진언(眞言)을 염송(念誦)한다.
이 단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행자 스스로를 본존으로 관상하지 않는다.
본존의 청정한 신(身) 구(口) 의(意)를 명상하는 것으로 제자는 본존의 가피를 받는다.
이러한 수행을 열여섯 생 동안 수행한 제자는
뜨리꿀라 바즈라다라(Trikula Vajradhara, 三系 金剛持)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2) 짜리야(Cariya, 行法) 요가:
이 길을 수행하는 제자들은 철학적으로 다음에 나오는 요가 딴뜨라와 같은 관점을 지니며,
수행방식에 있어서는 위의 끄리야 요가와 같은 방법을 따른다.
주요한 차이점은 본존을 친구나 가까운 친척처럼 관상하고,
관하는 대상을 가라앉혀 안정시키는데 집중하는데 있다.
이 수행을 통하여 일곱 생 안에 금강지(金剛持, Vajradhara)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3) 요가딴뜨라(Yogatantra,, 瑜伽):
이 길의 제자들은 모든 존재가 어떠한 개념화(생각으로 만든 것)로부터도 자유로운 절대 진리 안에 있으며, 공성(空性)이고 정광명(淨光明)이라는 견해를 가진다.
이들에게 상대적 진리안의 모든 현상들이라는 것은 본존들이 거주하는 청정한 만다라가 구축(構築)된 세계일뿐이다.
이들은 보통 신(身) 구(口) 의(意) 삼문(三門)을 맑히는 데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수행을 계속하면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삼문의 정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들의 수행은 속성(屬性)을 가진 것(有相)과 속성을 가지지 않은 것(無相)의 두 가지의 형태를 띤다.
처음 단계에서 제자들은 자신을 본존으로 관상하며,
그 다음 지혜존(智慧尊)을 청(請)하여 그들이 관상하고 있는 서언존(誓言尊) 속으로 융해(融解)시킨다.
그리고 헌공을 올린다.
그 다음 단계에서, 수행자는 모든 현상계와 그 자체에 아무런 속성이 없는 절대 자성(自性)과 불이(不二)의 진여(眞如)인 본존들의 본래 성품에 집중함으로서 수행을 완성한다. 다음은 삼부내전(三部內傳) 딴뜨라들에 관한 설명이다.
앞의 외전(外傳) 딴뜨라들에서는 이제(二諦: 眞諦와 俗諦)에 대한 구별이 있었고, 본존들은 그들의 배후자들과 함께 관상되지 않았으며, 오종육(五種肉)을 먹을 수가 없고, 한 생에서 구경(究竟)의 결과를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내전(內傳) 딴뜨라에서는 두 가지 진리(二諦)를 둘이 아닌 하나로 보며, 오종육(五種肉)과 오감로(五甘露)를 섭수(攝受)하고, 본존들을 배후자와 함께 관상함으로서 이 생에서 구경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 내전 삼부승의 딴뜨라들은 근기가 수승한 수행자를 위한 아주 특별한 수행의 방법들이다.
(1) 마하요가(Mahayoha, 大瑜伽):
이 길의 제자들은 모든 사물들을 어떠한 집착도 없이 그대로 향수(享受)한다.
절대 진리 안에서 모든 사물들은 법신(法身)이며, 마음의 본체(本體)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생겨난 것들과 분별(分別)과 현상들은 상대적(세속적) 진리 안에 머무르지만,
그 자체는 본존의 신성한 모습들이다.
마하요가의 수행자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본존으로 대치하여 정화하고,
둘이 아님에 대한 가피와 명료(明瞭)함 그리고 무분별(無分別)에 집중한다.
(2) 아누요가(Anuyoga, 隨瑜伽):
이 수행은 본존의 관상에 그렇게 많이 집중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는 구경원만차제(究境圓滿次第)의 가피와 명료함 그리고 무분별을 강조 한다.
이들은 몸속에 있는 맥관(脈管, rTsa) 풍기(風氣, rLung) 정수(精髓, Thig le,明点, 菩提)에 대한 요가를 수행한다.
이 단계의 수행자들은 모든 현상이 청정한 만다라에서 자생(自生)한 공성(空性)이며, 위대한 지복(至福)임을 관한다. 이 딴뜨라 안에는 해탈의 길(解脫道)과 방편의 길(方便道)의 두 가지 길이 함께 들어있다.
해탈도에서 수행자는 무분별의 지혜(無分別慧)를 수행하고, 모든 현상을 본존과 본존들의 청정한 국토로 본다.
방편도에서 수행자는 몸의 네 군데 또는 여섯 군데 맥륜(脈輪, Cakra)을 활용하여 청정한 지혜를 성취한다.
이 수행을 통하여 수행자는 현생에서 부처의 경지를 이루게 된다.
(3) 마하아띠요가(Mahatiyoga, 最上瑜伽):
이 수행은 닝마빠 최고의 가르침이며, 전적으로 닝마빠에서만 행해지는 가르침과 수행이다.
족첸(Dzo gchen, 大圓滿) 수행자들은 모든 현상이 현혹(眩惑)된 마음으로 나타난 환영(幻影)임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이 모든 현상은 허망(虛妄)한 것인데,
이들의 본래 성품은 개념화(생각으로 이름 붙여진 것)에서 자유로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성(自性)을 통해서 보면 모든 존재들은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법신(法身)의 차원에서 보면 모든 현상은 본래 청정하다.
수행의 차원에서 보면 모든 현상은 수용(受用)도 거부(拒否)도 없다.
오히려 모든 존재들은 법의 성품(法性)이 나타난 것일 뿐이다.
또 족첸의 가르침에는 심식부(心識部, Sems sde), 공행부(空行部, kLong sde), 비결부(秘訣部 또는 訣竅部, Man ngag gi sde)의 세 가지 범주가 있는데, 이 가르침들은 모든 존재가 바로 법이 그대로 나타난 상태임을 보여주는 가장 심오하고 직접적인 수행 방법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수행자는 청정함을 유지하는 수행을 지속하고,
그 지혜를 안정시켜서 세속의 부정한 것들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획득한다.
이렇게 해서 마음의 본성에 대한 수행을 완성하면,
모든 존재들은 광대무변한 법의 성품(法性)인 법신(法身)으로 녹아든다.
이상은 닝마빠 구부승을 개괄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무상요가의 수행 방법들은 대부분 신역전통(新譯傳統) 학파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닝마빠(rNying ma pa, 舊派)’ 종파에는 ‘마하아띠요가(Mahatiyoga, 最上瑜伽)’라고 부르는 ‘족첸(Dzog chen, 大究竟 혹은 大圓滿)’ 전통의 무상요가가 있습니다.
족첸 수행은 기본적으로 (1) 심식부(心識部, Sems sde) (2) 공행부(空行部, kLong sde) (3) 비결부(秘訣部 또는 訣竅部, Man ngag gi sde)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문헌들이 어느 정도 구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세 가지 범주의 가르침을 아주 상세하게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가르침은 보통 비결부의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앞의 심식부와 공행부 수행은 직접적인 비결부 수행을 위한 기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식부와 공행부의 공성에 대한 가르침은 닝마빠 구부승(九部乘) 중에 나머지 여덟 가지 수행 단계(八部乘)와 구분되는 특징적인 설명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세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비결부 가르침의 본래 목적은 청정한 내방광법신(內放光法身)과 본래의 외방광보신(外放光報身)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몇몇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직접적이고 비약적인 수행을 통해서 이 두 가지 깨달음의 몸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닝마빠 족첸 수행의 바탕(基)의 완성, 수행(道)의 완성, 결과(果)의 완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러한 내용들은 오직 수행의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특히 닝마빠의 스승인 롱첸 랍잠빠(Longchen Rqabjampa, 1308-1363)의 ‘족첸에 대한 가르침의 보물창고(Theg mchog mdzod, 最乘寶庫)’를 통해 그 심오함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족첸에 대한 근본 경전과 자주(自註)는 내용도 아주 간단할 뿐만 아니라 축약이 심해 난해한 단어들이 많아서 이해하기 조차 힘듭니다.
롱첸 랍잠빠의 또 다른 논전인 ‘법의 형상에 관한 보물창고(Chos dbyings mdzod, 法相寶庫)’ 역시 족첸 수행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이 두 번째 논전이 족첸 수행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입니다.
족첸 수행은 이상의 두 가지 논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때만 성공적으로 입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뀐켄 직메 링빠(Kunkhyen Jigme Lingpa)의 ‘깨달음의 속성에 관한 보물창고(Yon tan mdzod, 功德寶庫)’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족첸 수행에 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족첸을 직접 수행하고 깨달은 많은 스승들이 가르친 내용들에 의지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짧은 내용으로 이루어진 족첸의 경전만을 가지고 이것을 수행해내기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보통 가장 짧은 반야부 경전을 이야기 할 때, 그냥 ‘아(ĀḤ)’자 하나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단순한 글자 하나가 모든 현상의 공성을 다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 글자 하나를 반복해서 바라보고 염송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한 글자 안에 모든 공성에 대한 가르침을 다 담으실 수 있지만, 그것을 공부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직 충분한 근기가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족첸의 수행도 그와 같이 단순하고 심오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신뢰할만한 설명을 충분히 공부한 후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원인과 조건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모든 현상은 그 자체의 성품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현상은 무자성(無自性)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공하다.’라는 중관 귀류논증 학파의 결론을 우리는 처음부터 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족첸 수행도 그와 같이 고도의 깨달음을 성취하신 스승들께서 가르치신 아주 간단한 내용이지만,
만약 수행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그것을 쉽다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닝마빠 구부승(九部乘)의 가르침 중에 가장 간단한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 바로 족첸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 아닙니까?”(달라이 라마 법문 중에서)
[예비이론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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