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김성철 교수의 실천불교] 불교적 인지치료

수선님 2021. 8. 1. 12:02

절대긍정과 절대부정 -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누구나 다 그래”식으로 표출

 

상담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적 문제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정서(情緖)장애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認知)장애다. ‘한 맺힘’과 분노 등 감정적인 상처와 왜곡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정서장애에 해당하고, ‘잘못된 생각’이나 ‘어떤 상황에 대한 오해’ 등 앎의 문제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인지장애에 해당한다.

 

불교 유식학의 가르침과 비교하면 정서장애는 ‘번뇌장(煩惱障)’, 인지장애는 ‘소지장(所知障)’에 속한다. 번뇌장의 뿌리는 아집(我執)에 있고 소지장은 법집(法執)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아집)’이 강한 사람은 분노와 탐욕, 교만과 같은 감성적 번뇌가 심하고,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법집)’이 강한 사람은 그런 잘못된 인지로 인해서 ‘괜한 마음고생’을 한다.

 

누군가가 심리적 고통을 겪을 때, ‘들어주기’, ‘칭찬하기’, ‘인정하기’, ‘보살피기’ 등의 방식으로 그의 감성을 보듬어 주면, ‘한’이나 ‘분노’, ‘외로움’, ‘열등감’과 같은 정서적 고통이 치유된다. 정서적 문제들을 치료하고자 할 때, 상담자의 인격이나 능력이 내담자(來談者, Client)의 그것을 능가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애완견과 같은 반려동물을 키울 경우 겉보기에는 우리가 동물을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반려동물에 의해서 나의 감성이 치유된다. 나를 인정하고, 숭배하는 반려동물의 복종이 나의 ‘자존감’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나보다 못난 존재이지만 나의 정서적 문제를 치유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둔한’ 반려동물에 의해서 ‘영민한’ 주인의 ‘상처 난 감성’이 치유된다.

 

그러나 ‘잘못된 정서’가 아니라 ‘잘못된 인지’로 인해서 심리적 고통을 겪는 경우,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영민한’ 내담자는 ‘우둔한’ 상담자에 의해서 설득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기(緣起)와 공(空)의 원리를 활용할 경우, ‘우둔한 상담자’라고 하더라도 ‘영민한 내담자’의 인지적 고통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때 사용되는 원리는 “하나가 곧 무한이고(一卽一切) 하나 속에 무한이 담긴다(一中一切)”는 화엄의 가르침과 “원래 아무 것도 없다(本來無一物)”는 반야 공(空)의 가르침이다.

 

전자는 ‘절대긍정의 원리’, 후자는 ‘절대부정의 원리’다. 그런데 인지적 고통을 겪는 내담자가 있는 경우, 이 두 가지 원리를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누구나 다 그래”라는 조언으로 표출한다. 여기서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조언에는 ‘절대부정의 반야사상’이 배어 있고 “누구나 다 그래”라는 조언에는 ‘절대긍정의 화엄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예를 들어 보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고따미(Gotam1-)라는 여인이 부처님을 찾아와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부처님께서는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 오면 아들을 살려 주겠다”고 대답하셨다. 여인은 온종일 돌아다녔지만 겨자씨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예류과(預流果)의 성자가 되었다고 한다.

 

여인은 “나에게만 죽음의 고통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죽음의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것이다. 반야의 ‘절대부정’과 화엄의 ‘절대긍정’이 함께 하는 자각이었다. 이로 인해서 “나만 그렇다”는 ‘분별의 고통’, ‘인지의 고통’이 사라졌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만 못났다”거나 “나만 괴롭다”거나 “나만 당했다”는 인지적 고통을 겪을 때, 이를 치유하는 ‘공식과 같은 조언’이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화엄과 반야를 활용한 ‘인지치료의 공식(公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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