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경허스님 이야기

수선님 2021. 9. 21. 13:37

1 도인의 탄생

 

 

1) 경허[鏡虛-1846(헌종 12)∼1912]와 만남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신문을 거의 보지 않았다. 신문 뿐 아니라 텔레비젼도 약간의 뉴스를 제외하곤 담을 사이에 쌓은 듯이 멀리 하였다.

 

아내는 볼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고 아무도 없는 집에 고요히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오후의 햇살이 창으로 들어와서 차곡차곡 쌓아 둔 신문지 위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눈부신 광명이 내 손을 잡고 이끄는 듯한 느낌을 따라 눈길이 머문 곳은 최인호씨가 연재하는 길 없는 길 위였다.

나는 무심코 그 글을 읽어가다가 자꾸 빠져 들었다.

 

장안의 유명한 기생과  조선 마지막 왕족의 사이에서 태어난  길 없는 길의 주인공은 대학교수였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 중에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염주에 쓰여진  경허라는 이름의 정체를 찾아서 휴가를 내고  시공을 초월한 여행 중이였다.

 

가끔 양념처럼 사랑 타령도 나오지만 나는 세속의 일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신비한 전설 속의 도인들의 이야기에 온통 사로잡혀서 보지 않고 버릴려고  수북히 쌓아놓았던 신문더미의 아래 부분에서부터 한 부 한 부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들어 보지 못한 낮선 도인들의 이야기가 마치 보물창고에 문을 열고 막 들어선 듯 황홀하게 취하게 했다.

불생불멸의 문 없는 문을 열려고 참선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부족하여 근세의 대 선지식인 경허가 누군지 몰랐고 그의 제자인 만공스님에 대하여도 아는 바가 없었다.

신문을 한 부 한 부 꺼내어 펼쳐서 읽어내려가는 길 없는 길의 여행은 매우 특별하여 나는 주인공을 따라서 신비로운 여행길에 올라 경허의 자취를 따라서 흥분과 환희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거기는 시공을 초월한 무한하고 신비한 공간이였는데 경허선사 뿐 아니라 부처님을 비롯한 무수한 도인들이 총동원하여 등장했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먹고 살기가 힘든지라  잡일이나 거들며  입에 풀칠하려 절에 온 스님도 있었다.

그는 배우지 못한 까막눈이라  팔만 사천이나 되는 경전은 즐비하지만  읽을 수도 없었고  다만 사람들이 찾아와 물으면  척척 대답해 주는 큰 스님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며 절에서  청소하고 밭일하며 지냈다.

그런 어느 날 남들은 멀리서 찾아와 큰스님께 궁금한 것을 묻는데 자신은 직접 모시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깨름직하여 무언가는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달리 물을 만한 것도 없고 해서  하루는  유식쟁이들 흉내 좀 내보려고 전부터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보고 들은 풍월대로  스승님을 찾아가서 넙죽 절을 올리고는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러자 스승님이 대답해 주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니라.'

 

즉심시불이란 풀이를 하면 마음이 부처다 란 뜻인데  글자를 모르는 그는  짚신이 부처느니라 라 는 말로 알아듣고는  꾸벅 절을 올리고 물러나왔다.

문을 열고 나와서 짚 신을 신으려다  짚신이 부처다 라는  스승님 말씀이 떠올라서 황송하여 부처님을 신지 못하고  공손히 머리 위에 바쳐들고  맨발로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제 방으로 돌아와서 짚신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어째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신고 다닐까  이상하게 생각하며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는데 그러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큰스님이 짚신이 부처다 하셨으니 짚신이 부처가 분명할 텐데 그런데 사람들이 짚신을 신고 다니는 것이 괴이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며칠 째 잠도 자지 않고 골똘히 생각했다.

며칠이나 잠을 안자고 고심하다가 그러다 그 만 깜빡 졸다  꾸벅하면서 머리에 이고 있던  부처님을 뚝 떨어뜨렸다.

 

그는 부처님을 떨뜨리고는  놀라서  떨어진 부처님을 얼른 집어드는 순간에 대오했 다.

 

그의 몸에서 삼매의 화광이 뻗어나왔는데 대중이 절에 불이 났다며  물을 들고 몰려가서 불이 솟구치는 방의 문을 여니 그가  단정히 앉아있는데 그의 몸에서  삼매의 화광이  불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행하다가 인연이 익음에  복숭아 꽃이 피는 것을 보며 깨닫고, 기왓장 깨어지는 소리에 깨닫고, 싸우다 화해하며 면목 없다는 말에 깨닫고,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말을 의심하다 깨닫고, 몽둥이로 두둘겨 맞고 깨치고, 차를 마시면서 깨닫고, 마음을 찾아 깨닫고, 손가락을 보고도 깨쳐서 도를 이루는 것이였다.

 

이와 같은 별천지 기쁜 소식들이  가슴속으로 쏙쏙 파고들어와  환희로 물들어서  황홀했다.

 

(자료출처 : 다음까페 도솔천 명상센타)

 

 

2) 탄생과 출가

 

경허는 1845년 8월 24일 아버지 송두옥과 어머니 밀양 박씨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동욱이며 법명은 성우  법호는 경허다.

 

부친을 일찍 잃어 가세가 몰락하니  불심 깊은 어머니 영향으로  형은 공주 마곡사로 출가하고  동욱은 아홉살에 경기도 의왕시 청계사  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절에 가서 물 깃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채소도 가꾸며 잡일을 지냈는데  계허스님은 수행자에게 글은 소용없다고  가르쳐주지 않아서 낫을 옆에 놓고 ㄱ자도 몰랐다.

 

그런데 동욱이  14세가 되던 해에  과거를 보기 위해 절에 머문 선비가  동자 승이 총명하고 영리한 것 같아서  장난삼아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 듯 했다.

짧은 여름 동안 틈틈이 가르쳤음에도  천자문 뿐 아니라  명심보감 논어 맹자를 비롯하여  가르치는 대로 흡수했다.

 

얼마 후에는 과거를 보려고 공부한 선비가  더 가르칠 것이 없는 지경이라 감탄하며  훗날 대성할 인물로 보고  주지스님께 그를 큰 절로 보내  공부시킬 것을 권하고 떠나갔다.

 

그 해 계허스님은 환속하면서  당대 최고의 강백으로 존경받는 만화스님께  경허를 부탁했다.

경허는 계허스님이 써준 서찰을 들고  계룡산 동학사로 찾아가서 당대 최고의 대강백으로 이름이 높던  만화스님 밑에서  부처님 일대시교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먼저 온 동료들과 공부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을 초월했다. 동료들은 스승의 질문에 쩔쩔 매건만 그는  한번 듣고는 외우고 줄줄 해석하는 거였다.

 

만화스님이 보기에 낮에는 잠만 자는 것 같은데 전날 배운 걸 물어보면  불을 켜 놓은 듯이 훤하게 아는 지라 스님은 그의 총명함을 감탄하면서도 다만 잠이 많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잠을 좀 적게 자게 하기 위해서 만화스님은 그에게만 특히 많은 숙제를 내 주었다.

리고 어찌 하는지 옆에서 지켜 보았는데 공부는 할 생각을 않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낮잠을 쿨쿨 자는 지라 괴씸하게 생각하고는 매를 준비하여 호통을 치려고 작심했다.

 

저녁에 학인이 모두 모였을 때 만화스님은 그에게 내어준 숙제를 다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느 새 그 많은 숙제를 다 외우고 해석도 막힘이 없는지라 매우  놀라했다.

 

그는 동학사 뿐 아니라  이름난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듣고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배워서  경 율 론 삼장을 비롯한  모든 경에 막힘이 없었다. 불교 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에도 능통하니  군계 일학이라  23세의 젊은 나이에 대강백으로 추대되어 학인을 가르치게 되었다.

 

훤칠한 키와  수미산도 무너뜨릴 기개에  물 흐르듯 유창한 설법 때문에 찾아오는 학인이 구름과 같았다.

 

3) 죽음을 마주하여

 

그의 나이 34세 되는 무더운 여름 날이였다.

어렸을 적 경허를 보살펴주던 스승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 분은 비록 환속을 했으나 어렸을 적 돌보아주던 스승이 위독하다고 하니 옛 정이 새록새록하여 마지막 길이나 배웅해드리겠다며 등에 걸망을 매고 절 문을 나와 성큼성큼 장대한 몸을 휘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길을 떠나 천안 지방에 이르렀는데 어느 듯 해가 저물어 시장하여 요기도 하고 하룻밤 묵고 갈 생각으로 마을을 찾아갔다.

그런데 마을에는 이상하게도 낮선 손님을 맞는 요란한 개 짖는 소리도 아이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는 마을의 정적을 괴이 생각하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사람을 불렀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다. 비가 내리고 어두운데 대답이 없는 몇 집을 건너서 쓰러져가는 초막 집에서 병든 사람이 겨우 얼굴을 내밀고 하는 말이 무서운 역병(콜레라)이 온 마을을 휩쓸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라 했다. 

 

산 사람은 모두 떠나고 병든 자와 시체와 죽음의 돌림병이 점령한 비가 뿌리는 어두운 마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알았다.

 

돌림병에 걸리면 백약이 무효인지라 그대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병이 휩 쓴 마을은 폐쇠되며 병에 걸린 사람은 산속 이곳 저곳에 버려졌다. 요즘 조류 독감에 걸리면 닭이나 오리를 살처분하고 전염병에 걸린 소나 돼지 등 가축을 무더기로 생매장하듯이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것이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딴 곳에서 죽음과 단둘이 대면하게 되었는데 정신은 아뜩하여 두려움으로 발걸음은 떼어지지 않고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음의 공포로 띵!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전국에서 찾아온 구름 같은 학인들 앞에서는 병이 없고 두려움도 공포도 없으며 죽음도 없다고 쩌렁쩌렁 울리던 음성과 기상과 기개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말할 때에는 이미 도인처럼 막힘이 없었는데 막상 죽음을 앞에서 딱 만나고 보니 깜깜 절벽이였다. 

 

전염병(콜레라)으로 죽은 시체가 딩구는 옆에서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며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던 것이 한낱 문자이고 이해일 뿐, 생사(生死)의 문은 진실로 통과하지 못했음 절절히 깨달았다.

 

그는 날이 밝자 옛 스승을 찾아가던 일을 취소하고 발길을 돌려서  동학사로 돌아왔다.경허가 먼 길을 떠나고 학인들은 한가로웠는데 길 떠난 지가 몇 날도 안 되어 돌아온 경허를  보며 무슨 까닭인지 궁금해하는데 그는 학인들을 불러모아서 각자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일갈하고는 조실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가서 방문 꽉 걸어 잠그었다.

 

그리고 모를 것이 없을 것 같던 일천 칠백 공안 가운데서도 무슨 말인지 유독히 찜찜하던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 라는 화두를 챙겨 들었다.

 

어느 날 영운 선사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서 불법의 대의를 물었다.

 

그러자 선사는 그에게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 라고 대답했다.

불생불멸의 문을 여는 비밀의 경구를  화두라 하고 공안이라고도 부르는데 대표적인 것만 일천칠백가지나 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슨 뜻인지 늘 찜찜하던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여사미거 마사도래)를 들고 진리를 찾아서 죽음을 각오하고 가부좌 틀고 앉았다.

 

밤과 낮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니 거구라  마치 태산이 앉아있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그는 잠이 많아서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라 분심이 일어서 턱밑에 날카로운 송곳을 바쳤다. 

잠깐이라도 꾸벅하면 송곳은 사정없이 얼굴을 푹푹 찔렀다. 송곳에 찔려서 깜짝 놀라 깨면 피가 흘러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아서 머리와 수염은 자라서 긴데  선혈은 낭자하여 얼굴은 온통 핏자국 범벅이니 나찰 귀신도 놀라서 도망갈 지경이였다.

 

그런 어느 날 오랜  출타에서 돌아온 만화스님은 항상 북적이던  학인들이 보이지 않고 절이 절간처럼 조용하여  무슨 일이지 물어보니  경허가 학인을 모두 돌려보내고  방에서 꿈쩍도 않는다는 얘길 들었다.

 

경허가 학인을 돌려 보냈다고 하니 자신의 허락도 없이 돌려보낸  까닭이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시켜  당장 데려오라 전갈했다.

러나 경허는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불러도 대답도 없고  꿩 구어 먹은 소식이라  괘씸히 생각하며  직접 사람들을 대동하고 찾아가서 불렀으나 그래도 문은 잠겨 있는 채로 아무 대꾸가 없었다.

화가 치솟은 만화스님은  잠겨 있는  문을 뜯어서 열라 하었다. 방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경허가 우뚝 앉아있는데  송곳에 찔려 흘린 피가  얼굴에 엉겨 붙어  귀신같은 형상에 깜짝  놀라며 만화는  조용히 문을 닫으라 이르고  시자를 정해  때에 맞춰서 밥을 넣어주라 했다.

 

경허스님은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 털끝만큼도 흐트러짐 없이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공부하니 수마도 항복하여  더 이상 졸리지를 않았다.

 

화두는 여일하고 의식은 또렷했다.세월이 오던지 가는지 맹렬히 정진하던 어느 날이였다. 

절의 학명스님이 탁발을 나갔다가 이 거사댁에 들렸다. 이거사는 오랫동안 참선을 하여 도인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

 

학명스님에게 쌀을 시주하면서 말했다."스님 노릇 잘못하면 스님이 죽어서 마침내 소가 된다지요?" "중이 되어 공부하지 않고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시주물을 받은 지중한 업으로 그 집의  소로 태어나서 시주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학명스님이 무심코 대답하니 "사문이 되어서 그렇게 대답을 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꾸짖었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인지요?"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다! 이렇게 답하셔야지요." 

 

학명스님은 그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죽어서 소로 태어나더라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뜻을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사찰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물었으나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절에는 이거사님 아들인 동은이 동자승으로 경허스님께 하루에 한 번씩 식사를 갔다주고 있었는데 혹시 조실방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있는  경허스님은 알 수 있을 지 모른다면서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학명스님은 제자인 동은시미의 말을 듣고 수긍하며 굳게 잠겨 있는 경허스님의 방문 앞에서 자초자지종을 설명하고 나서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이 치듯 번쩍! 했다.

지극히 묘한 이치의 한마디는 범부를 성인으로 바꾼다고 했다.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성(自性)을 철견하여 깨치니 생사가 없는 옛 고향에 찰나에 이른 것이다.

 

밝은 대낮에 산하대지가 그 모습을 감추지 못하듯이 팔만사천 경전의 묘한 이치가 환하게 드러나니 깨달음,, 무상정각이다!

 

송곳에 찔러서 흐른 피가 엉겨붙어 귀신과 같은 형상에 바위처럼 꼼짝도 않던 거대한 몸을 일으키니 둥근 보름달 아래 형형한 눈빛이 천지를 삼켰다.

 

그 때가 1897년 11월 그의 나이 34세 초겨울 보름 무렵이였으니 말로 아는 것은 생사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절감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태산처럼 앉아 화두를 참구하다가 드디어 타파하고 생사의 관문을 활짝 연 것이다.

 

3) 죽음을 마주하여

 

그의 나이 34세 되는 무더운 여름 날이였다.

어렸을 적 경허를 보살펴주던 스승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 분은 비록 환속을 했으나 어렸을 적 돌보아주던 스승이 위독하다고 하니 옛 정이 새록새록하여 마지막 길이나 배웅해드리겠다며 등에 걸망을 매고 절 문을 나와 성큼성큼 장대한 몸을 휘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길을 떠나 천안 지방에 이르렀는데 어느 듯 해가 저물어 시장하여 요기도 하고 하룻밤 묵고 갈 생각으로 마을을 찾아갔다.

그런데 마을에는 이상하게도 낮선 손님을 맞는 요란한 개 짖는 소리도 아이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는 마을의 정적을 괴이 생각하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사람을 불렀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다. 비가 내리고 어두운데 대답이 없는 몇 집을 건너서 쓰러져가는 초막 집에서 병든 사람이 겨우 얼굴을 내밀고 하는 말이 무서운 역병(콜레라)이 온 마을을 휩쓸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라 했다. 

 

산 사람은 모두 떠나고 병든 자와 시체와 죽음의 돌림병이 점령한 비가 뿌리는 어두운 마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알았다.

 

돌림병에 걸리면 백약이 무효인지라 그대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병이 휩 쓴 마을은 폐쇠되며 병에 걸린 사람은 산속 이곳 저곳에 버려졌다. 요즘 조류 독감에 걸리면 닭이나 오리를 살처분하고 전염병에 걸린 소나 돼지 등 가축을 무더기로 생매장하듯이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것이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딴 곳에서 죽음과 단둘이 대면하게 되었는데 정신은 아뜩하여 두려움으로 발걸음은 떼어지지 않고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음의 공포로 띵!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전국에서 찾아온 구름 같은 학인들 앞에서는 병이 없고 두려움도 공포도 없으며 죽음도 없다고 쩌렁쩌렁 울리던 음성과 기상과 기개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말할 때에는 이미 도인처럼 막힘이 없었는데 막상 죽음을 앞에서 딱 만나고 보니 깜깜 절벽이였다. 

 

전염병(콜레라)으로 죽은 시체가 딩구는 옆에서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며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던 것이 한낱 문자이고 이해일 뿐, 생사(生死)의 문은 진실로 통과하지 못했음 절절히 깨달았다.

 

그는 날이 밝자 옛 스승을 찾아가던 일을 취소하고 발길을 돌려서  동학사로 돌아왔다.경허가 먼 길을 떠나고 학인들은 한가로웠는데 길 떠난 지가 몇 날도 안 되어 돌아온 경허를  보며 무슨 까닭인지 궁금해하는데 그는 학인들을 불러모아서 각자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일갈하고는 조실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가서 방문 꽉 걸어 잠그었다.

 

그리고 모를 것이 없을 것 같던 일천 칠백 공안 가운데서도 무슨 말인지 유독히 찜찜하던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 라는 화두를 챙겨 들었다.

 

어느 날 영운 선사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서 불법의 대의를 물었다.

 

그러자 선사는 그에게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 라고 대답했다.

불생불멸의 문을 여는 비밀의 경구를  화두라 하고 공안이라고도 부르는데 대표적인 것만 일천칠백가지나 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슨 뜻인지 늘 찜찜하던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여사미거 마사도래)를 들고 진리를 찾아서 죽음을 각오하고 가부좌 틀고 앉았다.

 

밤과 낮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니 거구라  마치 태산이 앉아있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그는 잠이 많아서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라 분심이 일어서 턱밑에 날카로운 송곳을 바쳤다. 

잠깐이라도 꾸벅하면 송곳은 사정없이 얼굴을 푹푹 찔렀다. 송곳에 찔려서 깜짝 놀라 깨면 피가 흘러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아서 머리와 수염은 자라서 긴데  선혈은 낭자하여 얼굴은 온통 핏자국 범벅이니 나찰 귀신도 놀라서 도망갈 지경이였다.

 

그런 어느 날 오랜  출타에서 돌아온 만화스님은 항상 북적이던  학인들이 보이지 않고 절이 절간처럼 조용하여  무슨 일이지 물어보니  경허가 학인을 모두 돌려보내고  방에서 꿈쩍도 않는다는 얘길 들었다.

 

경허가 학인을 돌려 보냈다고 하니 자신의 허락도 없이 돌려보낸  까닭이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시켜  당장 데려오라 전갈했다.

러나 경허는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불러도 대답도 없고  꿩 구어 먹은 소식이라  괘씸히 생각하며  직접 사람들을 대동하고 찾아가서 불렀으나 그래도 문은 잠겨 있는 채로 아무 대꾸가 없었다.

화가 치솟은 만화스님은  잠겨 있는  문을 뜯어서 열라 하었다. 방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경허가 우뚝 앉아있는데  송곳에 찔려 흘린 피가  얼굴에 엉겨 붙어  귀신같은 형상에 깜짝  놀라며 만화는  조용히 문을 닫으라 이르고  시자를 정해  때에 맞춰서 밥을 넣어주라 했다.

 

경허스님은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 털끝만큼도 흐트러짐 없이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공부하니 수마도 항복하여  더 이상 졸리지를 않았다.

 

화두는 여일하고 의식은 또렷했다.세월이 오던지 가는지 맹렬히 정진하던 어느 날이였다. 

절의 학명스님이 탁발을 나갔다가 이 거사댁에 들렸다. 이거사는 오랫동안 참선을 하여 도인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

 

학명스님에게 쌀을 시주하면서 말했다."스님 노릇 잘못하면 스님이 죽어서 마침내 소가 된다지요?" "중이 되어 공부하지 않고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시주물을 받은 지중한 업으로 그 집의  소로 태어나서 시주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학명스님이 무심코 대답하니 "사문이 되어서 그렇게 대답을 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꾸짖었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인지요?"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다! 이렇게 답하셔야지요." 

 

학명스님은 그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죽어서 소로 태어나더라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뜻을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사찰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물었으나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절에는 이거사님 아들인 동은이 동자승으로 경허스님께 하루에 한 번씩 식사를 갔다주고 있었는데 혹시 조실방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있는  경허스님은 알 수 있을 지 모른다면서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학명스님은 제자인 동은시미의 말을 듣고 수긍하며 굳게 잠겨 있는 경허스님의 방문 앞에서 자초자지종을 설명하고 나서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이 치듯 번쩍! 했다.

지극히 묘한 이치의 한마디는 범부를 성인으로 바꾼다고 했다.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성(自性)을 철견하여 깨치니 생사가 없는 옛 고향에 찰나에 이른 것이다.

 

밝은 대낮에 산하대지가 그 모습을 감추지 못하듯이 팔만사천 경전의 묘한 이치가 환하게 드러나니 깨달음,, 무상정각(無上正覺)이다!

 

송곳에 찔러서 흐른 피가 엉겨붙어 귀신과 같은 형상에 바위처럼 꼼짝도 않던 거대한 몸을 일으키니 둥근 보름달 아래 형형한 눈빛이 천지를 삼켰다.

 

그 때가 1897년 11월 그의 나이 34세 초겨울 보름 무렵이였으니 말로 아는 것은 생사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절감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태산처럼 앉아 화두를 참구하다가 드디어 타파하고 생사의 관문을 활짝 연 것이다.

 

 

2 생사가 없는 문

 

 

1) 불멸의 진리

 

가계의 문을 열고 찾아 온 손님이 물건을 사지 않고  빈 손으로 나가도 별로  섭섭하지 않았다.

수입이 많다고 좋아하지 않고 수입이 적다고 슬퍼하지 않았다.

 

손님을  공손하게 맞이하고  물건을 판 수익금으로 생활을 할 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이미 오래다. 내 겐 돈의 문제 보다는 생사 문제가 더 중요하고 시급하였기 때문이였다. 

 

오직<불생불멸>이라는 화두를 들고 가부좌를 하고 고요히 앉아 있었는데 이젠 화두가 몽실몽실 익어서 앉으나 서나 오고 가며 이야기 하고 밥을 먹는 중에도 들려 있었다.

 

늦도록 참선하다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도 여일하게 화두가 들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익숙하여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으며 다른 번잡스런 일이나 근심 걱정거리가 떨어져서 더 편안했다.

아내는 정담스런 말도 없고  재미없이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남편을 놓아두고  볼일 보러 나가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가게의 소파에서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신문을 펼쳐  길 없는 길을 읽고 있었다.

 

이야기는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었는데  경허는 돌림병이 점령한 마을에서 죽음과 마주한 후 자신이 깨달았다고 생각하던 것이 한낱 문자이며 알음알이였음을 절감하고 되돌아와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왔네 라는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 중,,

 

<죽어서 소로 태어나도 코뚜레를 뚫을  콧구멍이 없어야 한다> 라는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끝에  우레가 치듯이 번쩍! 우르릉 쾅! 화두를 타파하고 대오하여 경허스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면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는 소를 보고  경허스님이 깨닫는 순간에 나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는 소를  동시에 보았다.

 

번쩍! 우르르 쾅! 무량 겁의 수미산이 무너지며  생사가  없는 불성! 해탈을 깨달았다. 

 

젊은 어느 날, 늙어서 죽음을 맞는 꿈을 꾼 후로 죽음이 너무 두렵고 애통해서  몸부림치며 죽음의 비밀을 찾아 여행을 시작했었다. 죽음의 비밀을 찾아서 다리를 꼬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으면 다리가 끊어질 것같고 핏줄이 터져서 불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었지만 오직 죽음의 비밀을 찾기 위해 화두라는 열쇠를 들고 밤낮 없이 앉아있었다. 

 

그것은 나의 삶의 전부였다.

그러나 영원히 풀 수 없을 것 같았던  수수께끼! 어둠이 내리고 하루가 그냥 지나가면 아, 비밀의 수수께끼는 끝내 풀지 못하고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하는 서글픔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던 날이 얼마던가!

 

그런데 드디어 위대한 진리를  깨달아서 지혜를 완성했으니 이 얼마나 기쁘며,생사가 없는 불멸의 문을 열었으니 얼마나 환희로운가!

 

이런 날이 다 있다니,,, 덩실 덩실 춤을 추고  하늘을 날아다닐 듯 황홀했다.

 

코를 꿸 곳이 없는 구멍이 없는 소를 본 후 부처님에서 조사로 조사에서 선사로 마음과 마음으로 주고 받는 기상천외한  법의 소식을 신기하게 다 알 수 있었다. 깨달음이란 본래 자기의 성품을 깨달은 것이므로  팔만의 대장경을  배운 바가 없으나 한 번 읽고 알 수 있었다.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 보는 듯 했 다.

 

별천지 소식에 돌장승이 벌떡 일어나서  덩실 덩실 흥겨워 춤을 추니  만나는 사람마다  열반을 찾게 된 사연을 말하고  어떻게 수행했으며  어떻게 깨달았다고  생사가 없는 해탈의 노래를 마치 미친듯이 불렀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도 이 사람에게 말하고 저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하며 고해의 바다에서 헤매지 말고 생사를 초월하라며 무애가를 불렀다.

 

2 보림

 

경허스님은 코를 꿸 콧구멍 없는 소를 보고 대오한 후로는 방에서 딩굴딩굴 잠만 잤다.

하루는 만화스님이 그에게 왜 누워만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허가 대답하기를,

"일 없는 사람의 본래 생활입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그냥 누워서 잠만 잤다.

 

머리를 떨구고 언제나 졸고 있나니

조는 일 밖에 별일이 없네.

조는 일 밖에 별일이 없으니

머리를 떨구고 언제나 졸고 있네.

 

누워서 딩둘딩굴 잠만 자다가 시 한 수 써놓고 또 졸다가 봄이 되자 그의 형 태허스님과 어머니가 계신 연암산 천장암으로 가서 보림을 시작했다.

 

보림이란 깨달음 후 도를 숙성시키는 시기다.

 

과일이 달려도 금방 따서 먹을 수는 없다. 일정 기간이 지나 익어야 제 맛이 들고 장을 담그어도 숙성이 되어야 깊은 맛이 우러나는 거와 같으니 보림이란 마치 밥의 찜을 들이는 것처럼 중요한 과정이다.

 

경허는 천장암에서 일 년 동안 보림했는데 그의 보림은 매우 특별했다. 염궁문이라 쓴 자신의 방에서 눕지 않고 자지도 않는 장좌불와를 했는데,옷을 빨지 않고 갈이 입지도 않아서 이가 하얗게 들끓어 살을 파 먹건만 극적거리지도 않았다.

경허선사는 일 년간 장좌불와의 보림을 끝내고 이가 들끓던 옷을 벗어 팽개치고 붓을 들어 글을 쓰니,

 

아, 슬프고 슬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까

(중략)

홀연히 코뚜레를 꿸 곳이 없다는 말에

몰록 삼천대천 세계가 내 집임을 아니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할일 없어 태평가 부르네.

 

코를 꿸 곳 없는 소를 본 후 경허스님은 치열한 보림을 했는데 나는 서점에서 한 권 두 권 책을 사서 보았다.

 

세치 혀를 꺼내어 가야산을 쩌렁쩌렁 울리던 성철스님의 뜻이 간절한 육조단경을 비롯한 마조 서당 백장 황벽 조주스님 등 대선사들의 글을 읽었는데 힌 구름이 머무는 높은 봉의 암자에 사는 신선을 만난 듯이 신비롭고 경이로움에 전율했다.

 

육조 단경을 읽으며 육조대사가 제자들에게 유마경을 인용하며 안 이 비 설 신 의 여섯 문으로 도적이 들락거리나 뜻의 문을 굳건히 지키면 된다는 말씀에 지혜가 열렸다.

 

안 이 비 설 신 의는 눈, 귀, 코, 혀, 몸, 뜻이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뜻으로 분별하는 그것은 도적놈이 성곽을 들락날락 하는 것과 같은데 다만 뜻의 문을 굳게 지킨다는 것은 주인이 지혜로워서 고요하고 평온하다는 것이다. 

 

마음에 지혜의 달이 떠서 밝으니 태평성세가 아니겠는가. 

육조 혜능께서 그의 제자 회양에게 말하길,

"그대의 문하에 미친 말이 나와서 세상 사람들을 모두 밟아 죽일 것이네."

라고 예언했는데 그 미친 말은 소의 걸음에 호랑이 눈을 가진 특이한 용모의 마조(馬祖)스님이였다.

 

마조스님께 하루는 풍체가 좋고 음성이 우렁찬 무업스님이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는데,

"법당은 훌륭한데 부처가 없구나."

라고 말했다.

 

그러자 무업스님이 대답했다.

"문자 공부는 대략 하였읍니다만 마음이 부처란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그 마음이라네."

그래도 알 수가 없는지라 다시 물었다.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전하신 법이 무엇입니까?"

"아,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다시오면 가르쳐 주겠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라."

무업스님이 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 순간,

'여보게!"

하고 그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서서 마조스님을 보는데,

"무슨 물건인가?"

하고 물었다.

그 말에 무업스님이 문득 깨닫고 큰 절을 올렸다.

 

나는 그 말에 천여년 전 마조스님이 불쑥 나를 부르며 무슨 물건인지를 추궁하는 듯 하였다.

마조도인의 추궁에 한 물건을 문득 보니 코를 꿸 구멍 없는 텅 빈 허공이 눈을 뜨고 살아나니 텅 빈 공(空)이 형상(色)이요 형상(色)이 공(空)인 즉, 본향(本鄕)이다.

 

보고 듣는 이것은 싯다르타 태자가 이천오백 년 전 새벽 별을 보던 물건이며 영상회상에서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보이며 말이 없으니 사람들은 그 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하나 가섭 만이 빙그레 미소하므로 모든 법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하던 달마에서 조사와 선사로 주고 받던 형상이 없는 그 물건이였다.

 

배 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 오고, 가며, 보고, 듣고, 말도 하나, 자취도 없고 형상도 없는 불생 불멸하는 우주의 참 주인인 것이다.

 

도인의 기행(奇行)

 

 

1) 알몸을 보이다

 

경허도인이 천장암에서 머물고 있을 때다. 어느 날 만공스님이 경허선사를 찾아갔는데 방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그런데 방에 누워있는 스승의 배 위에 커다란 독사가 혀를 날름대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스님, 조심하세요. 스님의 배 위에 뱀이 올라가 있습니다."

만공의 호들갑에 경허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싫컨 놀다 가게 그냥 놔두어라."

뱀이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하라는 말에 만공은 걱정이 되었으나 조심스럽게 방을 나왔는데 한참 후에 경허선사의 배 위에서 놀던 뱀이 스르르 내려와서 숲 속으로 사라져 갔다.

경허스님이 진리를 깨달아서 천하 제일의 도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어느 듯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그는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에서 딩굴며 배고프면 먹고 쿨쿨 잠만 잤다.

사람들은 그에게 깨달은 경지를 설해 주기를 바랐으나 거절하고 잠만 자는 도인의 방을 둘러보고 발길을 돌리곤 했다.

매번 설법을 청해도 거절하므로 사람들은 도인의 어머니인 박씨에게 설법해 주기를 부탁해보라고 청했다. 도인 아들을 둔 그녀를 무척 부러워하며 아들에게 설법해 주기를 청하므로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싫지 않게 생각하던 어머니는  보살들의 성화에 못 이긴 척 하루는 아들 도인을 찾아가서 넌지시 말했다.

"스님, 계시오."

"예, 어서 오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요?"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님이 법문해 줄 것을 바라는데,, 설법해 주면 안 되겠어요?"

어머니는 사람들이 존경하는 아들 도인에게 깍듯이 존칭을 써가며 설법을 해주기를 청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청에 냥종하게 거절하고 잠만 자던 경허는 어머니의 부탁에 쾌히 승낙했다.

"예, 알았습니다. 이번에 어머니를 위한 법회를 열겠습니다."

아들이 자신을 위하여 쾌히 법회를 열겠다고 하니 박씨는 매우 기뻤다. 사람들에게 도인이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여 깨달은 후에 첫 법회를 개최하겠다는 뜻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갔다.

깨달은 후 한 번도 법을 설한 바가 없던 경허가 드디어 법회를 열겠다고 하니 첫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산 속의 작은 암자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산중의 작은 암자는 어느 새 곧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들이 첫 법회를 당신을 위해 열겠다고 하니 어머니 박씨는 잔뜩 기대하고 예쁘게 단장하여 경허가 설법하는 맨 앞줄에 앉았다.

드디어 경허가 천천히 단상에 오르고 사람들은 마른침을 꼴깍 꼴깍 꼴깍 삼키며 주시하는데 그런데 경허는 단상 위에 올라서 아무 말 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깨달은 도인의 첫 법문이 무언지 궁금해하며 왜 옷을 벗는 것인지 옷을 벗는 일거수 일투족까지 유심히 살피며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대중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하여 하나하나 옷을 벗으니 웃옷을 벗고 또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벗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히려 더 조마조마했다.

이제 남은 건 달랑 팬티 한 장뿐이었다. 마지막 남은 팬티를 보며 대중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뭇 시선 앞에서 그는 이윽고 팬티까지 홀랑 벗었다.

그러자 여인들은 발가벗은 그의 알몸을 보고 기겁을 하여 벌떡 일어나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발가벗은 알몸을 드러낸 경허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들어 저를 잘 보십시오."

라고 말하니 옷을 홀랑 벗은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해괴한 일이라며 놀라서 부랴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경허는,

"어릴 적 어머니는 나를 발가벗기고 몸을 씻겨주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건만 몸이 변하여 장성하였다고 벌거벗을 몸을 보고는 흉측하다고 눈길을 돌려 떠나시는구나!"

라고 말하고는 커다란 주장자를 세 번 쿵쿵 법상을 울리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 무슨 소식인가!

어릴 적 그때나 장성한 지금이나 경허는 변함이 없건만 그러한 아들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아들이 이미 장성했다고 몸뚱이를 보고 어머니는 피해서 떠나갔다.

세월을 따라 변해 가는 몸이 진실인가? 한결같이 보고 듣고 아는 물건이 경허인가?

그 후 그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하는데 어머니 박씨는 어찌 되셨을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는 살불살조의 가풍이니 어머니는 그 장면에서 큰 가르침을 받고 아들에 대한 집착과 애착을 훌훌 벗고 마침내 성불하였으리라 나는 믿고 싶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상식을 초월하는 경허의 행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길을 가다가 부처를 마난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인다고 하는 살불살조의 기상이 희미하던 조선 말엽의 불법의 맥을 활활 타오르게 하지 않았나 하는 경외심으로 전율했다.

 

그 날 이후로 경허선사는 바랑하나 매고서 이곳 저곳 구름처럼 떠다니며 인연 따라 제도하니 선사의 법이 곳곳에 퍼지면서 사찰마다 선원개설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해인사의 하안거 결제일에 경허선사는 법상에 올라서 주장자를 높이 들어서 한 획을 그으며 말했다.

"이 주장자에 부처를 비롯한 모든 조사와 선사가 들어있다."

또 한 획을 그으며 말했다.

"이 주장자를 따라 불조와 조사와 선사가 따라서 왔다."

또 한 획을 그으며 말했다.

"불조를 비롯한 조사와 선사들이 이 주장자를 따라서 갔다. 알겠느냐?"

라고 물으나 대중이 아무 대답이 없자 뚜벅뚜벅 걸어 방으로 들어갔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야리까리한 말과 행동에 뭇 사람들이 현혹되어 선사의 주장자에 코가 꿰어 줄줄이 도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2) 호랑이에게 법문하다

 

승보 사찰인 송광사에서 불상을 새로 개금하여 점안식을 한다는 방이 붙으니 전국 각지에서 스님들과 신심 깊은 불자들이 며칠 전부터 모여들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점안식 증명법사로 초대된 경허스님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점안식 전날 늦어서야 어슬렁거리며 송광사로 찾아왔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는 점안식을 위하여 새로 단장하여 준비된 법상 위로 올라가서 바랑 속에서 사 가지고 온 개고기와 술을 꺼내어서 공양주 보살을 불러 말했다.

"고기는 불에 굽고 술은 따뜻하게 데워 오시게."

 

증명법사의 영이라 거절할 수가 없어서 공양주 보살은 고기를 불에 노릇하게 굽고 술을 데워서 대령하니 그는 법상에서 술과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법당에서 술과 고기를 먹는 광경을 보고는 모두 땡중이라고 수근거렸다. 특히 젊은 수좌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증명법사고 뭐고 당장 쫓아버릴 태세였다. 그러나 나이 많은 어른 스님들이 젊은 스님들을 겨우 겨우 달래서 진정을 시켰다.

그리하여 무시하게 하룻밤을 지내고 그 다음 날 점안식이 있는 이른 아침이 되었다. 이른 아침 경허선사는 뒷산으로 산보를 나가서 넓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 호랑이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호랑이들은 마치 스님에게 절을 올리고 법문을 듣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이로운 광경에 놀라워했다.

경허선사는 눈을 감고 한참 후에 눈을 뜨고 호랑이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알겠느냐! 이제 그만 돌아가 성불하거라."

그러자 집채만한 호랑이들이 조계산의 숲 속으로 사라지므로 땡중이라 얕보던 젊은 스님들은 입이 붙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선사의 법력에 대중들은 과연 명불 허전이라며 탄복을 했다.

 

           

3) 축지법

 

어느 날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마을로 탁발을 갔다 돌아오던 중이였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은 보리쌀이 바랑 속에 불룩하게 들어있는데 젊은 만공스님이 바랑을 매고 헉헉거리며 경허선사의 뒤를 따랐다. 

만공스님이 무거운 바랑을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경허스님이 물었다.

"무겁냐?"

"예. 무겁습니다."

"내가 축지법을 가르쳐주랴?"

"예! 어서 축지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경허스님이 축지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짐이 무거워서 힘들게 끙끙거리는데 축지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좋아하며 축지법을 어서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그는 축지법을 배워서 눈 깜짝 할 사이에 절에 당도하고 싶었던 것이다. 초롱초롱 눈빛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만공스님에게 잘 보라면서 경허스님은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물동이를 인 아낙에게 다가가서는 불쑥 입을 맞추었다.

젊은 아낙은 경허가 갑자기 다가와서 입을 맞추니 깜짝 놀라서 물동이를 내 던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이 고함을 쳤다.

"저기 있는 중놈을 잡아라!"

마을 사람들이 중 놈 잡아라! 소리치며 때를 지어 달려오니 두 스님은 엣 뜨거라 기겁을 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불이 나게 도망치다가 사람들이 더 쫓아오는 기색이 없자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경허스님은 숨을 몰아쉬면서 제자인 만공스님에게 물었다.

"그래 내 축지법이 어떤가? 그 짐이 무겁더냐?"  

"하,하,하, 도망치기에 바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어느 새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고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경허선사의 축지법은 미완성이라 한 번 듣고 웃으면 비로소 완성된다.

 

4) 나를 때려라

 

술을 좋아하던 스님은 한 잔 걸치고 얼굴을 붉게 단청하고 터벅터벅 걸어서 절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 때 마을 어귀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는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슬슬 다가갔다.

스님은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들고 다니던 주장자를 내어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 주장자로 날 때리면 내 주머니 속의 과자랑 또 돈을 몽땅 다 주겠다."

힘들게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방망이로 때리면 주겠다고 하니 궁핍하여 끼니를 이어가기도 어려운 시절에 제사 때에나 겨우 맛볼 수 있는 사탕을 주고 또 귀한 돈까지 덤으로 주겠다고 하니 아이들은 좋아라 하며 한 아이가 스님의 주장자를 냉큼 넘겨 받아들고는 스님을 아프지 않게 살짝 때렸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스님을 때렸으니 이제 과자와 돈을 주세요."

그런데 스님은 아이에게,

"너는 나를 때리지 못했다. 그러므로 돈도 과자도 줄 수가 없구나."

라고 말하며 돈도 과자도 주지 않았다.

 

그 아이가 생각하기에 너무 살살 때려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는 이번에는 주장자를 높이 들어 조금 세게 때렸다. 그리고는 과자와 돈을 달라고 했다.

이번엔 안 때렸다고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과자와 돈을 달라고 하는데 그래도 스님은 자신을 때리질 못했다고 시침을 떼자 화가 난 아이는 힘껏 몽둥이를 들고 인정사정 보지 않고 선사를 내리쳤다.

그런데 몽둥이로 힘껏 때렸는데도 스님은 아픈 내색이 없었다.

아이는 다시 힘껏 몽둥이를 휘둘러 선사를 때렸으나 그래도 묵묵 부답이었다.

그만 아이가 때리다가 지쳐 쓰러지자 그들 중에서 제일 키가 크고 건강한 대장인 듯 싶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녀석이 주장자를 넘겨받았다.

힘깨나 쓸 것 같은 녀석은 주장자를 꼬나 들고 선사에게 말했다.

"아프더라도 절대 제 잘못은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덩치가 큰 어른스러운 아이는 주장자를 들어서 선사를 힘껏 내리쳤다. 곧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며 항복을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런데 선사는 아픈 표정도 없고 돈도 과자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아이는 장작을 패듯이 더욱 힘차게 선사를 내리쳤다. 그래도 선사는 꿈쩍 하지 않자 도리깨질하듯이 몽둥이를 휘두르다가 그도 지쳐서 주장자를 내려놓으며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과자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죠?"

라고 반문하니 도인은 그제야 껄껄 웃으며 이제야 나를 바로 맞추었다며 거리에서 탁발한 돈과 과자를 아이들에게 몽땅 주고 콧노래를 부르며 떠나갔다.

곡차 한잔 걸쳤으면 조용히 지나갈 일이지 애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어서 싫컨 얻어 맞고 과자와 돈까지 털리고는 뉘엿뉘엿 저무는 서산 속으로 흥얼거리며 사라졌다.

  

 

5) 독약이 무효

 

술을 무척 좋아하여 저녁마다 술 심부름을 하던 관섭스님이 술 심부름이 지겨워서 경허스님께 고기에 비상(독약)을 뿌려서 노릇하게 구워 술과 함께 드렸다.

그리고 문구멍으로 몰래 들여다보는데 경허선사는 술을 마시고 독약을 뿌려서 노릇노릇하게 구운 고기를 안주감으로 툭툭 털며 먹었다. 한 말이나 되는 술과 독약을 뿌려 구운 고기를 안주감으로 모두 먹어치웠다.

그는 술과 고기를 다 먹고는 졸리는지 깊은 잠에 떨어졌다.

 

경허는 독약을 뿌려 구운 고기를 술과 함께 모두 먹고 잠에 떨어지니 관섭은 이제 큰스님은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매우 화가 나서 한 짓이지만 순간의 분노로 큰스님을 독살했다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긴 밤을 홀로 꼬박 세워야 했다.

그런데 아침 먼동이 트자 경허도인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일어나서 경내를 돌아다니는지라 그는 휴~ 깊은 한 숨을 내 쉬었다. 독약도 무심 도인에게는 본래의 성품을 잃고 독약으로써의 본분을 잊는가 보다.

천만다행으로 큰스님이 멀쩡하므로 관섭은 십 년 감수하였으나 그 일이 마음에 늘 죄책감으로 남아있었다.

 

어느 날 관섭은 만공스님께 그 사실을 고백하면서 깊이 참회했다. 관섭의 말을 묵묵히 들은 만공스님은 큰 허공은 독도 해칠 수 없는 모양이라고 말하면서 여러 대중이 모인 가운데 그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산스님이 말했다.

"난 경허스님을 위해서라면 누가 뭐라하든 술과 고기를 대접하겠소."

그 말을 들은 남전 스님이 말했다.

"난 스님을 위해서라면 닭이 아니라 소도 잡아서 드리겠네."

그러자 만공스님이 말했다.

"나는 경허스님을 위해서라면 무어든지 할 것이오. 깊은 산중에서 양식이 떨어져서 공양을 올릴 것이 없다면 내 살을 베어 드릴 것이며, 마실 물이 없으면 나의 피를 드시게 하여 목숨을 보존하여, 세상에 나가서 중생을 제도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경허를 위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드리겠다니 법을 위하는 구도 정신과 스승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이 얼마나 높은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6) 술을 먹고 싶으면

 

경허스님의 명성이 전국을 울리므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가서 불법에 대하여 물으면 아무 말이 없이 그냥 묵묵히 있었다. 그런데 누구든지 곡차를 올리면서 법문을 청하면 따라주는 곡차를 벌컥벌컥 마시며 하루 종일이라도 신이 나서 법문을 했다.

그것을 보고 만공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만인에게 평등해야할 도인이신데 곡차를 올리면 법을 설하고 그렇지 않으면 한 말씀도 하지 않으니 어찌 그렇게 편협하십니까?"

"이 사람아 법문이라는 것은 술김에나 하는 것이지 맑은 정신에는 할 것이 못되네."

라고 웃으며 말했다.

 

불법이란 한 법도 없으며 한 법도 없는 법을 설하는 것이니 한 법도 없는 법을 목숨을 걸고 배워야 한다. 석가모니께서 팔만사천의 법을 설하고도 임종에 이르러 한 법도 말한 바가 없다고 한 그 뜻이다.

 

칠갑산 장곡사에 머물 때였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곡차와 파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안주를 정성껏 마련하여 잔치가 벌어지게 되었다.

술자리가 거나하게 무르익었을 무렵 만공스님이 선사께 물었다.

"스님 저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마시지 않습니다. 파전도 굳이 먹으려 하지 않고 생기면 안 먹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어떠하신지요?"

경허는 제자의 태클에 곡차를 한 잔 들어서 단숨에 쭉 마시고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네 벌써 그런 무애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나는 그런 줄을 몰랐네. 그려.

나는 그렇지 못하다네. 술을 먹고 싶으면 좋은 밀씨를 구해서 밭을 갈아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꾸어서 추수하여 누룩을 만들어 좋은 술을 빗어서 이웃과 함께 즐겁게 마실 것이네.

또 파전을 먹고 싶으면 파씨를 구해서 밭에 뿌려서 김을 매고 가꾸어서 파전을 만들어 여럿이 모여 맛있게 먹을 것이라네."

만공은 스승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경지는 땅과 같고 스승의 경지는 하늘과 같은지라 진땀이 흐르고 등골이 오싹하며 정신은 아득했다.

 

 

 

7) 문둥병 여인과 동침

 

경허선사가 해인사의 조실로 있을 때의 일이다.

겨울의 세찬 바람을 타고 눈이 휘몰아치는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경허선사는 만공과 함께 마을에서 산사로 돌아오다가 길에 얼굴을 보자기로 감싼 초라한 형색의 여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인은 추위에 얼어 죽어가고 있었다. 숨결이 끊어질 듯 희미한 여인을 경허스님은 얼른 등에 엎고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인을 방에 눕히고 손으로 주무르고 자신의 체온으로 언 몸을 녹여주었는데 한참 만에야 여인은 제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옆에서 간호해주는 경허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고 매우 행복해하며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허선사는 여인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만공스님을 불러서,

"여보게 만공, 내가 부르지 않으면 아무도 내 방으로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게. 그리고 끼니마다 밥은 두 사람의 몫을 넣어 주시게."

라고 제자에게 명을 내렸다.

 

만공은 스승의 명을 따라 대중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경허선사의 방을 지키며 외부로부터 출입을 차단했다. 누군가 조실 스님을 뵈려고 찾아오면 도인께선 지금 주무신다 라고 얼버무리며 돌려보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조실 스님의 방에 이방인이 있다는 그래서 두 사람의 몫의 공양을 조실 방으로 들며 보내고 있는데 이방인이 여인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소문은 부풀려지고 있어서 이대로 놔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만공스님은 경허스님의 방문 앞에서 불렀다.

"스님, 스님 계십니까?,"

"누구냐?"

"만공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찾지 않으면 오지 말라고 했거늘 왜 왔느냐. 그냥 물러가 있거라."

물러가라는 말에 하고 싶은 말은 하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자 큰스님이 꼼짝 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생각하며 이상한 소문은 증폭되어 대중의 눈치가 심상치 않으므로 만공은 다시 경허스님을 찾아갔다.

밖에서 불러도 대답이 없는지라 방문을 열고 슬며시 들어섰는데 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경허선사는 여인에게 자신의 팔을 팔베개로 내어주고 자신은 여인의 배 위에 다리를 올려 걸친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는데 잠든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여인은 심한 나병에 코가 문드러지고 살이 썩어서 진물이 흐르고 손가락의 몇 마디가 떨어지고 없었다.

 

옷은 피고름과 오줌에 절었으며 살이 썩는 악취가 진동하며 도저히 코를 막지 않곤 서있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만공은 아찔한 현장을 목격하고 곧 문을 닫고 나와서 저녁 무렵에 다시 조실 방의 문을 두드렸다.

"스님께서 여인을 방에 들인지가 벌써 열흘이나 지났습니다. 대중이 눈치를 챈 듯하니 이제 그만 돌려보내시기 바랍니다."

 

나병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 혹시 스승에게 옮길까 걱정하면서 대중이 눈치챈 것 같다며 여인을 더 머무르게 할 수 없음을 단호히 아뢰자 한참 침묵하더니 말했다.

"하룻밤 더 재우고 내일 떠나 보낼 것이니 내일 아침에 오시게."

다른 사람 같으면 한 시간도 함께 한 방에서 지낼 수 없을 것 같은데 열흘을 껴 앉고 지내고 무엇이 아쉬워서 하루를 더 지낸 다음에 떠나도록 하겠다니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만공스님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컴컴한 이른 새벽에 조실 방을 찾아 여인을 데리고 나왔다. 나병에 정신 이상인 듯한 여인은 헤어지며 경허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작별을 아쉬워서 눈물을 글썽이는 여인을 대중이 눈치채지 않게 조심스럽게 데리고 경내를 나와서 잘 가라며 배웅해 주었다.

 

추위에 얼어서 죽어 가는 문둥병에 걸린 거지보다 남루하고 온 몸에 피고름이 흐르는 여인을 자신의 체온으로 녹여서 살려주고 한 방에서 열흘이 넘게 잠을 자고 밥도 먹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지내다니,,

그것은 마치 스승 경허가 제자인 그에게 '너는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묻는 듯하였다. 또 한번 스승의 도력에 깊이 탄복하니 대 도인의 경지가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무애행이다.

 

4, 도인의 숲

 

 

 

1)수월선사

 

 

경허선사의 법제자로는 수월, 만공, 혜월, 한암이 있다. 맏이 격인 수월선사는 한반도의 북쪽인 만주땅 간도에서 상현달이 되고, 만공선사는 한반도의 중앙인 덕숭산에서 보름달이 되고, 혜월선사는 한반도 아래 남쪽에서 하현달이 되었으며, 한암선사는 오대산에서 천 년의 학이 되었다.

 

상현달이 된 수월스님은 경허스님이 천장사에 있을 때에 늦깎이 출가를 하였다.

그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극하게 독송하였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언제나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다가 크게 깨쳤다.

수월선사는 주문을 열심히 염송하다가 자성을 깨쳤으니 주력을 하던 염불을 하던 화두를 들던지 한가지를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면 자기의 성품을 깨달아서 생사를 초월한다.

그런데 사람이 평생을 살며 공부해도 생사를 초월하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 생각 저 생각에 끌려다니며, 옳고 그름과, 사랑하고 미워하며, 크고 작고, 높고 낮음의 분별에 휘말려 천지를 돌아다니므로 그런 까닭으로 철벽과 같은 업의 두께를 뚫지 못하는 것이다.

 

종이에 렌즈로 빛을 모으면 불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렌즈로 빛을 모으다가 힘들다고 쉬거나 빛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불을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치로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면 틀림없이 도를 성취한다.

 

수월스님은 경허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발심하여 항상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였다. 어느 날 대중들과 함께 방안간에서 쌀을 찌었다. 수월스님은 방앗공이 앞에서 쌀을 골고루 손으로 젖고 다른 사람들은 방아다리를 밟으며 쿵덕 쿵덕 방아를 찧었다.

그런데 방아 다리를 밟던 사람이 방아다리를 놓았는데도 방아 머리가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았다. 방아다리가 내려가지 않으므로 이상하여 살펴보니 수월스님이 피곤하였던지 방앗공이 안에 머리를 넣고 쿨쿨 자고 있었다.

 

만약 커다란 방아 머리가 내려갔다면 분명 수월스님은 머리를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방아 머리가 들려서 내려가지 않았다고 하니 바르게 수행하는 사람은 선신(善神)이 보호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허구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수월스님은 만공스님의 방에 숭융 한 그릇을 가지고 와서 말했다.

"여보게 이것을 숭융이라 하지말고 숭융이 아니라고도 하지말고 한 마디 일러보게."

그러자 만공 스님이 숭융 그릇을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것을 보고 수월스님은,

"옳다! 옳다!"

라고 말하며 큰 소리로 웃고 나서,

"나는 이제 한반도 북쪽으로 올라가서 상현달이 되어 법을 펴려고 하니 만공 자네는 반도의 중앙에서 보름달이 되어 법을 펴시게. 그리고 혜월은 반도의 아래에서 하현달이 되어 중생들을 제도하도록 하세."

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만공과 해월은 사형인 수월의 의견에 동의하므로 수월은 걸망을 매고 터벅터벅 걸어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스님이 만주에 도착하자 이방인을 맞이하는 개들이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만주 사람들은 민심이 흉흉하고 도적과 산적이 날뛰므로 집집마다 개를 풀어놓고 키웠다. 만약 낮선 사람이 마을로 잘못 들었다간 사나운 개에게 물려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낮선 사람을 보고 짖기 시작한 덩치가 커다란 만주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하며 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 밤에 누군가 개에게 물려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덩치가 송아지만큼이나 큰 개들이 수월스님에게 몰려가서 마치 오랜 주인을 반기는 듯 살랑살랑 꼬리를 치면서 반겼다. 사나운 개들이 낮선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했다니 참으로 기이하지 않은가.  

수월도인은 산새나 동물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특히 커다란 호랑이 두 마리가 마치 귀여운 강아지나 호위병처럼 스님을 촐랑촐랑 따라다녔다고 한다.

스님 곁에 언제나 졸랑졸랑 따라다니는 호랑이를 보고는 찾아온 손님이 무서워하면 곁에 있는 호랑이에게 말했다.

"손님이 너희들을 무서워하니 손님이 떠날 때까지 멀리 가서 놀다가 오너라."

호랑이는 스님의 말을 알아듣고 얼른 숲 속으로 어슬렁거리며 사라졌다가 손님이 떠나가면 어느 결에 다시 나타나서 도인의 주위를 맴돌았다.

때론 호랑이를 타고 다니고 천진한 아이처럼 어울려 장난하며 놀기도 하였다는데 맹수의 왕은 도인을 척 알아보는가 보다.

 

만약 누구라도 수월선사처럼 산새와 이야기하고 자연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탐욕과 분노의 불을 끄고 살생의 마음이 완전히 소멸된 순백의 눈처럼 깨끗한 무구의 대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탐진치(탐냄 성냄 어리석음)가 가득한 사람이 무심도인을 흉내내어 맹수에게 다가갔다가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니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수월선사는 오두막 같은 초가 삼간에서 살면서 스승 경허에게 배운 짚신을 삼아서 나무에 걸어놓고 오가는 사람들이 신도록 하였으며 나라를 빼앗기고 고국을 떠나 타국을 떠도는 허기진 나그네에게 밥을 차려주기도 했다. 또 멀리까지 찾아와서 스님에게 도를 배우려는 학인을 위하여는 손수 땔나무를 준비하고 탁발하면서 공부를 성취하도록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지했다.

 

그는 특별히 높은 법상을 올라가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이야기하듯이 법을 설했다. 그러므로 말씀은 많이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흰 구름처럼 청량한 바람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구도자를 돌보고 가르쳤다. 상을 드러내지 않는 고요하고 잔잔한 대자유인의 경지가 이 아닐까. 

햇볕이 따사로운 날, 도인은 냇가에서 깨끗이 목욕을 하고는 짚신을 머리에 얹은 채로 고요히 열반(죽음)에 들었다.

 

2) 만공선사

 

 

만공은 1871년 3월 7일 전북 태인면 상일리에서 아버지 송신통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도암이다.

도암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 후 11살 되는 해에 어머니를 따라 금산사로 불공을 드리러 갔다. 그곳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부처님을 보고는 탄성을 지르며 출가하여 스님이 될 것을 결심했다.

 

당시는 숭유억불정책을 쓰던 때라 승려를 천하게 생각했다. 선비의 가문에서 태어난 도암이 출가를 하겠다고 말하니 집안 식구와 친척들까지 극구 말렸다.

그러나 도암은 14세 되던 해에 나무를 하러 간다고 말하고는 지게를 등에 지고서 몰래 산을 넘어 절로 찾아갔다. 금산사로 가면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소년은 일부러 먼 길을 걸어서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무작정 절을 찾아갔다.

 

마침 눈에 띄는 절을 찾아가서 그곳 스님을 찾아뵙고,

"중이 되려고 왔습니다."

중이 되고 싶어서 지게를 지고 집을 몰래 빠져나와 절을 찾아왔다는 소년을 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 먼 길을 걸어 옷에 먼지가 묻고 지쳐 보였으나 아이가 총명하게 보여 장차 큰 법의 그릇이 될 것을 예감했다.

 

스님은 소년이 배가 고파 하는 것을 알고 우선 부엌에서 밥을 차려 주었다. 도암은 스님이 차려주는 밥을 허겁지겁 맛있게 뚝딱 치웠다. 밥을 먹고 난 초롱초롱한 소년을 앉혀 놓고,

"큰 나무가 목수를 만나면 대들보가 되지만 나뭇꾼을 만나면 땔감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또 좋은 흙이 훌륭한 도공을 만나면 청자가 되지만 옹기 장수를 만나면 죽사발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니, 그러니 너는 여기에 머물지 말고 곧 진암노스님을 찾아가거라."

라고 말했다.

 

도암은 그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새겨듣고 진암스님을 찾아가기로 작정했다. 다음날 일찍 주지스님이 차려준 밥을 먹고 또 정성스럽게 싸 준 주먹밥을 챙겨들고 다시 험하고 먼 산길을 걷고 걸어서 진암노스님이 계시는 동학사까지 찾아갔다.

 

가시덩굴에 긁히고 찢겨 몸의 곳곳에 피가 맺혔으며 때로 끼니를 굶으면서 동학사로 찾아가서 진암 노스님을 찾아뵈었다. 진암 노스님은 어린 도암의 방문을 받고 유심히 살펴보니 법의 그릇이 될 것을 한 눈에 알아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양간으로 데리고가서 밥을 차려주었다.

그리하여 도암소년은 그곳에서 할아버지처럼 자상한 도암스님께 머리를 깎고 행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절을 찾아가서 출가를 하였으니 숙세의 인연이 깊었던가 보다.

그는 진암스님을 모시고 행자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그곳에 경허스님이 찾아왔다. 

진암스님은 자신이 보석처럼 아끼던 만공을 경허에게 보여주며 큰 재목으로 키워줄 것을 각별히 부탁했다.

경허선사는 동학사에 도착하였을 때 자신을 맞던 만공이 법기임을 알고 쾌히 노스님의 부탁을 쾌히 받아들였다. 노스님은 경허의 대답을 듣고 반기며 만공을 불러서 경허스님게 큰절을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예야, 이제부터는 경허 큰스님을 따라가서 공부하도록 하여라."

그런데 만공은 인상을 찌프리며 싫다고 했다. 정든 노스님 곁을 떠나서 수염이 긴 무섭게 생긴 낮선 스님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그것은 두 사람은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 날 저녁에 마침 법회가 열렸다. 법회에는 절의 모든 대중이 다 참석했는데

먼저 동학사 강주스님이 법상에 올라서 법을 설하기 시작했다.

"나무는 곧아야 쓸모가 있고 그릇도 찌글어 지지 않아야 쓸모가 있다. 그와 같이 사람도 불량하지 말고 착하고 정직해야 하는 것이다. 알겠는가!"

라고 법문을 끝내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강주스님 법문이 끝나고 명성이 높은 경허도인께 법을 설해 줄 것을 대중이 청했다. 대중의 뜻을 따라서 경허는 법상에 올랐다. 눈이 부리부리하며 장대한 몸집에 수염을 길게 기른 선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법당을 울렸다.

"큰 나무는 대들보로 쓰고, 작은 나무는 서까래로 쓰며, 곧은 나무는 곧은 대로 쓰고,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로 쓴다. 큰그릇은 큰 대로 쓰고 작은 그릇은 작은 대로 쓰니 그릇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적재적소에 쓰인다.

 

사람도 불량하면 불량한 그대로 바르고 착하면 착한 대로 바르니, 이 세상 모든 것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분별을 떠나면 일체 만상이 부처님이요, 관세음보살이 아님이 없구나!"

라고 강주스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씀을 하고 주장자를 쿵쿵 울리고 법상에서 터벅터벅 내려왔다.

만공은 경허스님의 법문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었는데 경허의 법문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라고 배웠는데 착한 사람도 바르고 불량한 사람도 바르다고 하는 법문을 듣고는 이상한 법문에 환희심이 났다. 만공은 경허가 훌륭한 분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 경허스님 방으로 찾아가서 말씀을 드렸다.

"저,, 스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승낙해 주십시오."

만공 소년을 지그시 바라보며,

"언제는 싫다고 하더니 이제는 따라가겠다고? 나도 마음이 바뀌었다. 너와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고 그만 돌아가거라."

라고 말하며 만공을 돌려보냈다.

 

다음 날 선사는 바랑을 챙겨서 동학사를 떠나는데 만공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경허가 떠나는 길에 뒤를 졸랑졸랑 따라 나섰다.

경허선사는 만공이 졸랑졸랑 따라오는 것을 보고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만공을 천장암으로 데리고 가서 월면이라는 법명을 내려주었다.

만공은 스승 경허로부터 월면이라는 법명을 새로 받고 열심히 공부했다.

 

경허선사는 만공을 천장암에 머물게 하고 그는 전국의 이곳 저곳을 돌며 법을 폈는데 스승이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절을 비우는 중에도 만공은 잡일도 하고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이제 어떤 경전에도 막힘이 없을 만큼 자신이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소년이 천장암으로 놀러왔다. 그 소년은 절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만공을 보고 말했다.

"스님, 저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만공은 이 때다 싶었다. 드디어 자신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할 때가 되었다고 좋아하며 소년에게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엇을 물어보려고 하느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 보거라."

청년 만공은 어린 소년에게 자신 있는 말투로 무어든지 물어보라고 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소년이 묻는 것은 만법귀일 귀일하처(萬法歸一 歸一何處)라는 화두였다.

만공은 그동안 스승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틈틈이 공부하여 불교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경전의 어느 부분에 대하여 물으면 막힘 없이 잘 대답할 수 있을 텐데 만 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는 입이 딱 붙어버렸다.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만공에게 소년은,

"스님도 모르시군요,"

라고 말하며 휭하니 떠나갔다.

소년이 멀리 사라지고 난 뒤에 충격으로 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만공은 이곳에서 바쁘게 일만하다가는 멍청이 밖에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랑을 매고 천장암을 떠나 봉곡사로 갔다. 그곳에서 소년이 묻던 만법귀일 귀일하처라는 화두를 참구하기 시작했다.

만법귀일 귀일하처(萬法歸一, 歸一何處)-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화두를 들고 밤낮으로 정진하다가 그의 나이 25세, 새벽에 종을 치면서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일체가 마음을 따라 이루어 진다)' 라는 글을 외우다가 문득 마음이 열렸다. 환희였다.

 

다음 해 걍허스님이 그가 있는 봉곡사로 찾아왔다. 만공은 스승을 뵙자 반가움에 절을 올리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씀드렸다.

경허는 만공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고 나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과연 불 속에서 핀 연꽃이로구나!"

도암노사가 경허에게 만공을 맡기면서 불 속의 연꽃이라 하더니 과연 불 속에서 핀 연꽃이라고 감탄하면서 토시와 부채를 꺼내 놓고 물었다.

"토시를 부채라 해야 하느냐? 부채를 토시라 해야 하느냐?"

"토시라 해도 맞고 부처라 해도 맞습니다."

제자의 답변에 스승은 다시 물었다.

"게송에 돌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건 무슨 뜻이냐?"

스승이 묻는 돌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뜻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만공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푹 숙이자,

"그것도 모르면서 옳고 그름을 말하느냐!"

라고 호통을 치며 만법귀일 귀일하처는 버리고 조주의 무자 화두를 들라고 했다.

 

만공은 만법귀일 귀일하처라는 화두를 버리고 스승이 새로 내려준 '무'자 화두를 들고 공부했다.

그의 나이 31세 되는 해, 고요히 앉아 참선을 하던 중에 새벽 종소리가 '댕-' 하고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대오했다.

 

34세에 마침내 스승의 인가를 받으니 만공도인은 덕숭산 수덕사에 주석하며 한반도의 중앙에서 보름달이 되었다. 만공이 주석하고 있는 수덕사에는 항상 많은 학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만공스님은 헌헌장부로 기골이 장대하였으며 힘도 장사였으니 청산리 전투에서 이천오백의 독립군으로 오만이나 되는 왜군을 무찌른 민족의 영웅인 김좌진장군과 팔씨름을 하여 이겼다는 일화가 있다.

 

만공스님이 장사라는 말을 들은 청년 김좌진은 힘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지라 그 이야기를 듣고 호기가 일어 만공스님을 찾아갔다. 그는 다짜고짜 결투를 신청했는데 만공스님은 결투를 신청하는 김좌진에게 웃으면서 자신은 수행자이므로 결투를 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청년 김좌진은 막무가내였다. 꼭 한판 벌여서 승부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막무가내인 우락부락한 장골의 청년에게 결투를 허락하며 물었다.

"결투는 어떤 방법이 좋겠소?"

"스님이 좋을 대로 마음대로 정하시오."

"그럼 좋소. 팔씨름은 어떻겠소?"

"팔씨름? 좋소."

"그런데 조건이 있소?"

"무슨 조건입니까? 무슨 조건인지 말씀해 보시오."

"조건이란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청을 들어 주는 것이오."

"좋습니다. 내 목숨을 걸라고 해도 기꺼이 걸겠소!"

 

김좌진은 자신이 있었으므로 어떤 조건이라도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서로 조건을 합의하고 넓은 마당에서 절구통에 판자를 깔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팔씨름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도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김좌진은 온 힘을 다 하여 만공을 넘어뜨리려고 힘을 써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그와 대적하고 있는 만공은 힘을 다하지 않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어느 쪽에도 팔은 기울지 않아 승부는 나지 않았는데 마침내 김좌진은 손을 놓으며 졌다고 스스로 항복했다.

만공은 힘을 다 쓰지 않고 균형을 잡고만 있었던 것인데 힘을 다해 지친 김좌진은 스스로 백기를 들고 어떤 벌칙이라도 받을 것이니 조건을 말하라고 했다.

 

만공은 껄껄 웃으면서,

"어떤 조건이라도 따를 것이오?"

"그렇소 어떤 조건이라도 따를 것이오!"

만공은 기골이 장대한 김좌진을 물끄러미 보더니,

"내가 그대의 머리를 깎아 줄 것이니 중이 되시오."

중이 되라는 말에 김좌진은 무릎을 끓고서,

"나보고 죽으라면 죽을 것이나 중이 되라고 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애걸복걸했다.

만공은 그가 출가하여 수행하면 큰 도인이 될 테인데 라고 아쉬움으로 중얼거리며 그가 훗날 대장군으로 명성을 크게 날리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그대의 손이 넘어가지 않았으니 그대는 진 것이 아니오. 그러니 개의치 말고 어서 돌아가시구려."

훗날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한 김좌진 장군을 정답게 배웅해 주었다.

 

만공은 열심히 수행하다가 벽이 뻥 뚫려서 벽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후로 신통이 열려서 사람들의 길흉사를 손바닥 들여보듯 잘 알아 맞추었다.

하루는 경환이란 사미가 경허스님께 야단을 맞고 도망쳤는데 아무리 부르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경허스님은 만공이 잘 맞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라 만공을 불러서 말했다.

"내가 경환이를 야단쳤는데 경환이가 보이지 않는구나, 너는 경환이가 어디 갔는지 알겠느냐?"

만공은 경허의 말에 잠깐 생각하더니 스승에게 말했다.

"경환이는 지금 나무 위에 올라가 숨었습니다."

"밤중에 더구나 바람도 심하게 부는데 그 애가 어떻게 나무 위로 올라갔겠느냐?"

하고 의아해하니 만공스님은 틀림없다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하하,, 경환아 이놈아. 나는 너가 나무 위에 올라가 숨은 것을 다 알고 있다. 어서 빨리 내려오지 못할까!"

하고 호통을 치니 아이는 훌쩍거리며 마당의 큰 나무에서 내려와 울며 용서를 빌었다.

 

다음 날 경허는 만공을 조용히 불러서 말했다.

"각(覺)에서는 신통이라는 것이 수행을 방해하는 한낱 마구닐 뿐이다. 때로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더라도 다시는 결코 삿된 짓거리는 하지 말거라!"

하고 제자를 호통치며 크게 꾸짖었다.

신통은 천안통(세상의 모든 현상을 보는 것), 천이통(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것), 타심통(타인의 생각을 아는 것), 숙명통(과거 현재 미래생을 아는 것), 신족통(순식간에 이동하는 것), 누진통(번뇌가 모두 끊어진 평화), 여섯 가지 신통이 있다.

그 중에 누진통이 으뜸이다. 대각이란 생노병사가 없는 열반인데 열반에 이르기 전에 요상한 신통을 보물처럼 생각할까봐 그래서 노파심에서 엄하게 금했을 것이다.

 

그 날 후로 스승의 말씀을 따라 사람의 미래를 보아주거나 예언을 금하였는데 대각을 이룬 후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신통을 사용하기도 했다.

민공스님이 마곡사 주지를 할 때 31본산 주지 회의가 있었다.

만공스님도 그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일본 총독 미나미도 본산 주지 회의에 직접 참석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불교처럼 비구승려를 대처승으로 바꾸려고 했다.

이에 다른 스님들은 일본 정부의 뜻을 찬성했다.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 만공이 홀로 벌떡 일어나서,

"본연이 청정한데 산하대지가 어떻게 나왔는가!"

할을 하고는,

"청정 비구를 대처승으로 바꾸려고 하였던 전 총독 데라우찌는 지금 지옥에 떨어져서 무수한 고통 속을 헤매고 있다. (총독을 향하여)그대는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 않다면 청정한 비구승을 대처승으로 억지로 바꾸려하지 말라!"

 

31본산 주지들에게도 정신을 차리라 하며 회의장을 쩌렁쩌렁 울리도록 일갈했다.

이에 미나미총독은 만공의 기세에 눌려서 자리를 뜨고 말았는데 그 날 저녁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만해 한용운스님이 찾아와서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만공 아주 잘했네. 내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데 이왕이면 그 놈들을 주장자로 한 방씩 갈겨주지 그랬나, 하하하..."

"에끼 이 사람아, 미련한 곰은 방망이를 쓰지만 큰 사자는 할을 한다네"

1946년 10월 20일 선사의 나이 75세 되는 해에 깨끗이 목욕하고 거울을 보면서 "오늘 자네와 인연이 다하여 이별해야겠네."

껄껄 웃으며 말하고 누워서 잠을 자는 듯 조용하게 적멸에 들었다.

 

 

 

 

 

 

 

 

 

 

 

경허스님 이야기

1 도인의 탄생1) 경허[鏡虛-1846(헌종 12)∼1912]와 만남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신문을 거의 보지 않았다. 신문 뿐 아니라 텔레비젼도 약간의 뉴스를 제외하곤 담을 사이에 쌓은 듯이 멀리 하였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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