碩士學位論文
華嚴敎學의 性起思想硏究
- 賢首法藏을 중심으로 -
指導敎授 張 愛 順
東國大學校 大學院 佛敎學科
金 相 建(性機)
2001
碩士學位論文
華嚴敎學의 性起思想硏究
- 賢首法藏을 중심으로 -
指導敎授 張 愛 順
東國大學校 大學院 佛敎學科
金 相 建(性機)
2001
碩士學位論文
華嚴敎學의 性起思想硏究
- 賢首法藏을 중심으로 -
金 相 建(性機)
指導敎授 張 愛 順
이 論文을 碩士學位 論文으로 提出함.
2002年 7月 日
金相建(性機)의 文學 碩士學位論文을 認准함.
2002년 7月 日
委員長
委 員
委 員
東 國 大 學 校 大 學 院
목 차
Ⅰ. 序 論-------------------------------------------------------------------------1
1. 硏究의 目的-----------------------------------------------------------------1
2. 硏究範圍와 方法------------------------------------------------------------2
Ⅱ. 華嚴性起思想의 形成----------------------------------------------------5
1. 「性起品」의 構造와 위치-----------------------------------------------5
(1) 「性起品」의 構造와 大綱-----------------------------------------5
(2) 『華嚴經』에 있어서 「性起品」의 위치------------------------7
2. 性起思想의 성립배경----------------------------------------------------10
(1) 性起思想의 원류와 전개-------------------------------------------10
(2) 如來藏說과 華嚴性起說의 관계-----------------------------------13
Ⅲ. 法藏 이전 性起思想의 성립----------------------------------------17
1. 杜順의 『法界觀門』성립배경-----------------------------------------17
(1) 杜順의 傳記----------------------------------------------------------17
(2) 杜順의 『法界觀門』-----------------------------------------------19
2. 智儼의 性起思想----------------------------------------------------------22
(1) 智儼의 傳記----------------------------------------------------------22
(2) 法界緣起와 性起----------------------------------------------------24
(3) 菩提心과 性起-------------------------------------------------------28
Ⅳ. 法藏의 敎學과 性起思想----------------------------------------------33
1. 法藏의 傳記----------------------------------------------------------------33
(1) 法藏의 생애----------------------------------------------------------33
(2) 『法藏和尙傳』의 재검토-----------------------------------------36
2. 如來藏과 性起-------------------------------------------------------------41
3. 佛身說과 性起-------------------------------------------------------------47
(1) 佛身과 性起----------------------------------------------------------47
(2) 舊來成佛論-----------------------------------------------------------53
4. 法界緣起說과 性起--------------------------------------------------------58
(1) 法界緣起의 意義----------------------------------------------------58
(2) 十玄緣起--------------------------------------------------------------61
(3) 法界緣起와 性起----------------------------------------------------64
Ⅴ. 法藏의 觀法과 性起思想----------------------------------------------70
1. 十重唯識觀과 性起의 상관관계-----------------------------------------71
2. 『妄盡還源觀』과 性起의 상관관계-----------------------------------75
3. 海印三昧와 性起의 상관관계-------------------------------------------80
Ⅵ. 法藏 이후 性起思想의 전개----------------------------------------86
1. 澄觀의 性起思想-----------------------------------------------------------86
(1) 澄觀의 기본적 입장------------------------------------------------86
(2) 四法界와 性起-------------------------------------------------------89
(3) 靈知不昧의 一心과 性起-------------------------------------------93
2. 宗密의 敎禪一致思想-----------------------------------------------------97
(1) 宗密의 傳記----------------------------------------------------------97
(2) 敎禪一致의 구도---------------------------------------------------101
(3) 敎禪一致 근거로서의 知-----------------------------------------103
Ⅶ. 結 論----------------------------------------------------------------------109
參考文獻-----------------------------------------------------------------------112
ABSTRACT------------------------------------------------------------------119
Ⅰ. 序 論
1. 硏究의 目的
불교는 자기를 자신을 찾아 깨달아서 실천하는 종교로서, 석가모니 이후 불교는 그것을 佛性·如來藏·法性·眞如·眞心·一心·自性淸淨心 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華嚴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에서는 性起라고 표현했다. 불교교학 최고의 완숙기인 화엄종에서 성기라고 주장한 이후 性起를 넘어서는 사상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性起'란 용어는 『60화엄』의 「寶王如來性起品」에서 유래하는 말로서, 「80화엄」에서는 '如來出現'이라 번역되고 있다. 佛의 본질을 현실에 顯現한다는 의미, 즉 如來性의 顯現을 性起라고 보는 것이다. 이 如來出現에 상당하는 性起란 말이 중국 화엄교학 성립기의 지엄에 의하여 주목된 이래로 법장을 위시한 華嚴祖師들에 의해 계속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면서 화엄교학의 핵심교의로 다루어져 왔다.
성기사상은 법계연기의 형성에 주요한 근간이 되고 화엄의 다른 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華嚴禪思想의 기본 골격이 되었으며 다른 교학과 구분짓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화엄교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성기사상에 대한 한국 불교학계의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신라 義湘스님에 의한 한국 화엄학의 커다란 산맥이고, 둘째는 법장교학의 방대함과 난해함으로 인한 접근의 두려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때문에 중국화엄을 대성시킨 법장의 화엄성기사상을 연구 체계화시켜려는 노력은 화엄교학의 핵심사상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불교의 교리적 체계화는 현실적·독창적·종합적 성격을 띤 중국불교에서 더욱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중국불교의 精華라 할 수 있는 隋·唐불교의 여러 宗派 가운데 화엄종의 교학체계는 그 구성과 내용에 있어서 불교사상의 精髓·완성·종합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화엄교학은 縱的인 경전의 측면과 橫的인 교학의 측면을 그 배경으로 삼아 성립했다. 다시 말해서 화엄교학은 『화엄경』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상사적 배경을 통하여 점차 종합적·독창적인 사상으로 완성되었다.
화엄교학은 교리적 측면에서 이전의 불교의 이론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성립했다. 특히 화엄교학의 성립과 체계의 정립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두 요소는 空觀과 如來藏緣起說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화엄교학을 空의 이론에 근거한 여래장연기설로 규정하기도 한다.
법장은 두순의 空觀的 화엄과 지엄의 唯識的 화엄에 근거하면서 『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을 도입하여 華嚴圓敎의 입장에서 性相融會한다. 그래서 『탐현기』「보왕여래성기품」의 주석에서도 여래장계 경론을 자주 인용하여 如來藏과 佛性을 통하여 성기사상을 표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華嚴敎學의 性起思想을 법장을 위시한 두순·지엄·징관·종밀의 화엄오조의 성기사상을 살펴서 화엄오조의 성기사상의 특징과 차이점을 밝힌다. 그리하여 성기사상의 형성과 전개를 고찰한다.
둘째 법장의 敎學에 나타난 性起思想을 살펴서 법장이 성기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던 성기의 교학적 의미와 본질을 밝힌다. 그리고 觀法에서는 성기와 관법이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서 궁극적으로 법장이 실천하고자 했던 性起觀을 고찰한다.
2. 硏究範圍와 方法
이와 같은 연구목적에 맞추어 본 논문은 중국의 隋唐시대를 거점으로 법장의 화엄성기사상을 중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의 일차자료는 『華嚴經』「性起品」과 법장의 『五敎章』『探玄記』『妄盡還源觀』『遊心法界記』를 중심으로, 이차자료는 지엄의 『搜玄記』『孔目章』『一乘十玄門』 징관의 『法界玄鏡』『演義 』 종밀의 『都序』를 참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삼차자료는 제반의 선행연구논문들을 참고할 것이다.
법장의 화엄성기사상을 논구하기 위해서는 법장을 위시한 두순·지엄·징관·종밀의 화엄오조의 성기사상을 연구범위로 하여, 각 화엄오조의 성기사상과 그 특징들을 본고의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자 한다. 특히 법장의 敎學과 觀法에 있어서 성기에 주목하여 법장 성기의 시작과 끝을 점검하여 궁극적인 법장 성기의 본질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이상의 硏究範圍를 토대로 硏究方法은 먼저 Ⅱ장에서 華嚴性起思想의 形成을 고찰한다. 性起思想의 고찰은 먼저 「성기품」의 검토에서 시작하므로 우선 「성기품」의 구조와 대강을 조사하여 성기사상의 전거를 밝힌후 『화엄경』에서 「성기품」의 위치를 고찰한다. 그리하여 「성기품」이 어떻게 『화엄경』 구성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성기사상의 성립배경으로는 성기사상의 원류와 전개를 고찰하고 또한 여래장설과 화엄성기설의 관계를 살펴서 여래장과 성기의 다각적인 관계와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法藏 이전 性起思想의 성립으로 두순과 지엄의 성기사상을 고찰한다. 『화엄경』 독송과 普賢行을 실천한 華嚴行者로서 종교적 성격이 강한 두순은 『法界觀門』을 중심으로 그의 禪觀 혹은 觀門이 얼마나 화엄적인가를 검토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화엄교학의 初祖라할 수 있는 지엄의 성기사상의 형성을 다루어 초기화엄에 있어서 성기사상의 위치와 법계연기설과의 관계를 도출한다. 또한 菩提心에 근거한 지엄의 실천적 성기관을 논한다. 그리하여 화엄초조로서의 두순과 화엄교학의 소박한 원형을 만들어준 지엄의 성기사상을 고찰한다.
Ⅳ장에서는 法藏의 敎學과 性起思想을 如來藏·佛身說·法界緣起說을 통하여 성기사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如來藏에서는 『기신론』의 如來藏 즉 一心의 문제와 연관하여 여래장연기설에 바탕을 둔 법장의 성기사상을 고찰한다. 佛身說에서는 기본적으로 지엄의 十佛說을 계승하고 있지만, 『五敎章』에서 『探玄記』로의 변화를 살펴서 법장이 주장하는 성기에 부합하는 법장의 佛身을 밝힌후 법장의 舊來成佛論을 검토한다. 그리고 法界緣起說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법계연기의 意義및 十玄緣起 등을 다루면서 染淨合說을 주장한 법장의 법계연기를 논하고자 한다.
Ⅴ장에서는 法藏의 觀法과 性起思想을 十重唯識觀·妄盡還源觀·海印三昧를 통하여 성기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十重唯識觀에서는 십중유식에 나타난 유식·여래장·화엄의 중층적인 구조를 밝히고, 妄盡還源觀에서는 전체적 구조상에서 성기관을 고찰하고 나아가 『기신론』의 인용부분과 관련하여 성기사상을 밝힌다. 그리고 海印三昧에서는 지엄이 해인삼매를 因位로 파악한 것에 대하여 법장이 果로서 파악하고 因位에 화엄삼매를 설정한 것을 살펴서 법장의 해인삼매의 위치와 성기사상을 논구한다.
Ⅵ장에서는 法藏 이후 性起思想의 전개로 징관과 종밀의 성기사상을 살펴 보고자 한다. 시대적으로 禪과 만나게 되는 징관의 성기사상을 살펴서 整合性을 강조하는 법장의 사상에서 벗어나 보다 실천적 색채를 띠는 事理無 의 觀法을 고찰한다. 또한 靈知不昧의 一心이 강조하는 성기의 진수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종밀은 敎禪一致의 입장에서 『都序』의 絶對眞心으로서의 知를 통하여 종밀이 신봉하는 敎의 화엄과 禪의 하택의 敎禪一致思想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상의 연구방법과 범위로 華嚴敎學의 性起思想을 賢首法藏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Ⅱ. 華嚴性起思想의 形成
1. 「性起品」의 構造와 위치
(1) 「性起品」의 構造와 大綱
「性起品」의 구조에 대하여 法藏은 일곱가지 범주로 分科하였는데, 이를 다시 序分·正宗分·流通分으로 配對하면 다음과 같다.
) 『탐현기』16, 대정장 35, p.406上.
「性起品」 科分
加分
序分 本分
請分 十因
「性起品」 正宗分 說分
顯名受持分 十門
流通分 表瑞證成分
偈頌總攝分
序分은 『60화엄』의 제33권 전체에 해당하는데, 이 중에 請分은 請主인 如來性起妙德菩薩이 普賢菩薩에게 '여래·응공·등정각의 性起正法'을 묻는 것이다. 이것이 「性起品」 전체의 主題이자, 正宗分에서 본격적으로 설해지는 내용이다.
) 『60화엄』33, 대정장 9, p.611下.
正宗分은 다시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보현보살이 性起 十門을 하나하나 설하기 전에 性起正法의 불가사의함을 열가지 인연(十因)으로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十因은 다음과 같다.
) 上同, 대정장 9, p.612下.
① 무량한 菩提心을 내어서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기 위하여
② 과거의 무수겁에 모든 선근을 닦은 정직하고 깊은 마음 때문에
③ 무량한 자비로 중생을 救護하기 위하여
④ 무량한 行을 행하여 大願에서 물러나지 않기 위하여
⑤ 무량한 공덕을 쌓아서 마음에 싫어하거나 만족해함이 없기 때문에
⑥ 무량한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여,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⑦ 무량한 방편의 지혜를 내기 때문에
⑧ 무량한 모든 功德藏을 성취하기 위하여
⑨ 무량한 장엄의 지혜를 갖추기 위하여
⑩ 무량한 諸法의 진실한 뜻을 분별하고 연설하기 위하여
이러한 十因은 如來出現의 목적을 나타내는 定型句이다. 이와 비슷한 구절들은 여래장사상을 설하는 『不增不減經』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모두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서 如來가 출현했음을 말하고 있다.
) 『不增不減經』, 대정장 16, p.466上.「善哉善哉 舍利弗 汝爲安隱一切衆生 安樂一切衆生 憐愍一切衆生 利益一切衆生 饒益安樂一切衆生 諸天人故 乃能問我是甚深義」
正宗分의 둘째 性起十門은 總相으로 性起正法을 설하고, 別相으로는 ①身 ②音聲 ③心 ④境界 ⑤行 ⑥菩提 ⑦轉法輪 ⑧涅槃 ⑨見聞恭敬供養所種善根의 아홉가지를 들고 있다.
流通分은 제36권 말미의 "그때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보현보살에게 사뢰어 말씀하였다"이하를 가리킨다. 법장은 流通分을 다시 셋으로 나누었는데, 그 첫째 顯名受持分은 다음과 같은 「성기품」의 열가지 다른 이름을 제시하고 있다.
) 『60화엄』36, 대정장 9, p.629下.「爾時 諸菩薩摩訶薩白普賢菩薩言」
) 上同, 대정장 9, p.629下.
① 一切諸佛微密法藏
② 一切世間不能思議
③ 如來所印
④ 大智光明
⑤ 開發示現如來種姓
⑥ 長養一切菩薩功德
⑦ 一切世間無能破壞
⑧ 隨順一切如來境界
⑨ 令一切衆生皆悉淸淨
⑩ 分別演說佛究竟法
이러한 十名은 대개 性起正法의 불가사의함이나 공덕을 표방하는 이름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중에서 ⑤는 性起의 산스크리트어 원어로 추정되는 tath gata-gotra-sa bhava와 의미상 相通하는 것이다. 다음 유통분의 둘째 表瑞證成分은 性起法門의 뛰어남과 공덕을 설하고 있는 부분이고, 셋째 偈頌總攝分은 重頌으로 「성기품」을 맺는 부분이다.
(2) 『華嚴經』에 있어서 「性起品」의 위치
『화엄경』에서 「성기품」은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성기라는 말이 술어화된 것은 智儼이래의 일이라고 하듯이, 지엄을 비롯하여 화엄조사들의 『화엄경』에 대한 分科說을 살펴보면 「성기품」이 어떤 위치를 부여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鎌田茂雄,「性起思想の成立」『印度學佛敎學硏究』, 5-2, 1957, p.195.
먼저 지엄은 『搜玄記』에서,
경문을 나누는데 셋이란 것은 序分, 正宗分, 流通分이다. 서분은 方便相이고 정종분은 說體相이며 유통분은 津用相이다.
) 『수현기』1上, 대정장 35, p.16中.
고 전제한 뒤, 이어서 「세간정안품」을 서분, 「노사나품」 이하를 정종분이라 하고 유통분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을 제시한다. 하나는 중국으로 가져온 경에 그 부분이 빠져 있다고 보는 것이며, 또 하나는 衆生心微塵 이하 「입법계품」의 마지막 二頌을 유통분으로 보고 있다.
다시 정종분에 대해서는 信·解·行으로 나누기도 하고 또한 三分으로 나누고 있는데, 제1분인 「명호품」·「사제품」·「여래광명각품」의 三品은 여래의 身口意 三業을 설한 것이라 하며, 제2분인 「명란품」으로부터 「소상품」까지는 方便對治修成因果를, 「보현보살행품」과 「성기품」은 自體因果를 밝힌 것이라 한다. 제3분은 「이세간품」을 託法進修分에, 「입법계품」을 依人入證分으로 해석하고 있다.
) 上同, 대정장 35, p.19下, p.25中, p.28上, p.82中.
그러므로 解에 있어서 因果가 『화엄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修成에 대한 自體의 입장을 「보현보살행품」과 「성기품」에 의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二體가 없으니 뜻은 相이 이것이 아닐 뿐이다. 緣은 다하면 緣이요, 性으로서 보면 곧 또한 性이다.
) 上同 4下, 대정장 35, p.78下.
라고 하여, 修成과 自體는 無二이며 緣은 결국 緣이요 性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自體因果의 果體야말로 『화엄경』의 근본적 입장인 擧果勸樂生信分의 果이여야 하며, 제3분은 法과 人의 입장에서 因果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종분의 三分은 결국 「성기품」을 중심으로 집결되고 있다 하겠다.
다음에 法藏의 五分說은 지엄의 분과설, 즉 정종분의 제3분에 있어서의 2분을 따로 나눈 것이긴 하지만, 이것에 의해 信解行證의 체계가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명호품」 이하를 修因契果生解分에 포함하고 「노사나품」만을 擧果勸樂生信分으로 보며, 다시 所信差別平等成行證入의 五周因果로서 『화엄경』을 개괄하고 있다.
) 『탐현기』1, 대정장 35, p.120上-下, 『탐현기』2, 대정장 35, p.125中.
법장이 『탐현기』에서,
따로 法界를 열어 섭하여 因果를 이루는데 보현법계를 因이라 하고, 사나법계를 果라 한다.
) 上同 1, 대정장 35, p.120上.
고 한 것은 『화엄경』에 있어서의 「노사나품」과 「입법계품」을 始終의 대응에 의해 설명한 것이다. 이것을 다시 因果로서 나타내면,
보현행품에서 平等圓因을 설하고 성기품에서 平等滿果를 설하는 것과 같다.
) 上同 1, 대정장 35, p.120中.
고 하여, 法界와 因果의 相卽은 평등한 圓因과 滿果를 설하는 「보현행품」과 「성기품」에 의해 이해되고 있으나, 특히 法界와 因果를 잇는 중심이 「성기품」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 계환,「중국화엄교학의 성기사상연구」『불교학보』30, 동국대학교출판부, 1993, p.247.
한편 澄觀은 慧苑의 十例分科論을 인용하여 『화엄경소』에서 「보현행품」과 「여래출현품」을 平等因果에, 다시 「여래출현품」은 「이세간품」과 함께 出現因果를 나타낸다고 한다. 따라서 「보현행품」은 출현의 果를 이루기 위한 因行이며, 「이세간품」은 출현의 果로부터 나
) 『화엄경소』4, 대정장 35, p.527下.
타난 行用이라고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래출현품」의 지위에 대하여서도 중생과 여래를 一心의 근원에서 파악하는 점에서 이 품이 『화엄경』의 근본사상을 나타낸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上同 51, 대정장 35, p.887中.
다음 이통현은 「여래출현품」에 대하여 독자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먼저 「세주묘엄품」을 서분, 「입법계품」을 정종분, 「여래출현품」에는 유통부촉의 부분이 있기 때문에 유통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전제한 후 「여래출현품」에 대해서는,
) 『新華嚴經論』8, 대정장 36, p.770中下.
여래출현품에 이르러서는 五位因果가 始終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여래출현품에서 법을 示現한 것이다. 말하자면 始終 五位因果의 원만함을 나타내므로 미간의 광명으로서 문수의 이마를 비추시고 입속의 광명으로는 보현의 입을 비추니, 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體用·因果를 서로 問答한 것이다.
) 上同, 대정장 36, p.771上.
라고 하고 있다. 즉 문수와 보현을 대좌시켜 서로 문답케 하여 여래의 출현을 설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法을 示現하고 있는 「여래출현품」이야말로 『화엄경』 구성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 계환,「중국화엄교학의 성기사상연구」『불교학보』30, 동국대학교출판부, 1993, p.248.
2. 性起思想의 성립배경
(1) 性起思想의 원류와 전개
원래 '性起'란 한역 경전으로서의 『화엄경』 중에서 하나의 품에 주어진 譯語이며 그 원류는 인도불교에서 구할 수 있다. 「성기품」외에 『보성론』의 '如來性起'(Tath gata-utpatti-sa bhava)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인도불교의 사조 중에는 여래장사상을 설하는 경전과 논서에 흐르는 '여래성기'의 개념이 眞如와 法性이 顯現한다는 의미로 파악되어 중국불교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면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이식되었다. 지엄의 「성기품」에 대한 중시는 그가 받은 지론 남도파의 학계에 바탕하고 있으며, 특히 淨影寺 慧遠의 사상은 유심사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혜원은 당시에 불교 백과전서라고도 할만한 『大乘義章』이라고 하는 방대한 저서를 지었는데 이것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하면서 부터 쌓여진 중국불교인의 연찬의 성과라 하겠다. 그 중에서 그는 '性'이라는 글자의 뜻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性'이란 佛性·如來性·如來藏性 등으로 불교에 있어서 중생의 성불 가능을 표시하는 말로써 중요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 고유의 문학으로써 그 배경에 숨어 있는 글자의 뜻과 불교의 사상을 表詮하는 글자의 뜻과의 사이에 깊은 사색이 있었다. 혜원이 性을 해석하며 『大乘義章』「佛性義」 가운데서 네 가지 뜻을 들고 있다.
) 『大乘義章』1, 대정장 44, p.472上中.
種子因本義·體義·不改義·性別義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화엄학에 있어서 '性'에 대한 뜻의 원류가 되었다. 특히 이 중에서 性起의 性에 대한 해석에 중요한 것은 '體義'와 '不改義'이다. 體義란 眞識心·法身·佛性이며 諸法의 自體이다. 또한 不改義란 因體不改·果體不改·因果自體不改·諸法의 體實不改이다. 또한 그의 『大乘起信論義疏』卷上에는 "非改名性理體常故"라고 하는 때의 理는 "理不可變"의 사상이다. 理에 대하여 절대성을 인정하는 생각은 중국에 있어서 육조시대를 통하여 흘러온 것으로서 혜원이 "理體常故"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시대적인 사상의 조류에서 기인한 것이다. 혜원의 性은 眞性으로 이해되며 眞性이란 如來藏性이다. 마찬가지로 「二諦義」에서 四宗을 제시하여 그 第四顯實宗을 해석하는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眞이란 소위 如來藏性이다. 恒沙의 佛法은 同體緣集하여 不離不脫不斷不異이다. 이 眞性緣起는 生死涅槃을 집성한다. 眞이 集하게 되는 까닭으로 眞實이 아닐 수 없다.
) 上同, 대정장 44, p.483上.
여기에서 眞性緣起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후에 지엄에 의하여 法界緣起染門의 攝末歸本에 위치 지워지게 되었다. 혜원은 『화엄』『열반』『유마』『승만』 등의 모든 경전에 대해서도,
만약 그 實은 논한다면 모두 법계연기의 法門을 밝힌다. 그 行德을 말하자면 모두 이 眞性緣起의 所成이다.
) 『大乘義章』1, 대정장 44, p.483中.
라고 말하여 眞性緣起를 모든 경에 설해진 法門의 원리적인 근거로 삼았다.
혜원에 있어서 연기되는 제법은 空이며 無自性인데 어찌하여 참된 性을 설하는 眞性緣起라 하는 것일까? 그는,
저 淸淨法界門 중에 일체의 義를 갖춘다. 諸法緣起하여 서로 集成한다. 空에서 法을 論한다면 法으로써 空 아님이 없고 性에 근거하여 法을 辨한다면 法으로써 性 아님이 없다.
) 上同, 대정장 44, p.477下.
라고 말하여 法의 근거를 性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럼 이와 같은 혜원의 性에 대한 해석이 지엄에 의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 鎌田茂雄,「唯心과 性起」『화엄사상』, 平川彰·梶山雄一·高崎直道편, 정순일역, 경서원, 1996, pp.272-273.
지엄의 唯淨인 성기는 이론적인 해석상 「성기품」에서 설하고 있는 내용이 된다. 그러나 그의 성기설을 고찰하면 만년에 이르러 계통화되는 성기사상에의 분명한 실천적 측면이 『搜玄記』에서 보이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현기』에서 「성기품」의 성기라는 말에 대한 해석에서,
性이란 體이며 起란 心地에 現在할 뿐이다.
) 『수현기』4下, 대정장 35, p.79中下.
라고 하였다. 性을 體로 하는 것은 혜원의 性에 대한 해석에서 그 두 번째 뜻을 받아들인 것이다. '性은 體性이다'라고 하는 '體性'이란 果의 體性이며, 出纏如來의 果性의 事를 '性'이라 한다. '起란 心地에 現在함이다'의 心地란 중생 각자의 마음을 가리킨다. 出纏의 果佛이 중생 각자의 心地, 즉 이 현실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에 현재함을 말한다. 不起로서의 성기는 적극적으로는 性德顯現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지엄에 있어서 논리적으로는 唯淨의 법계연기로서의 성기이며 그것이 바로 실천상에서 중생 개개의 身心에 현현되는 작용이 성기였다.
) 鎌田茂雄,「唯心과 性起」『화엄사상』, 平川彰·梶山雄一·高崎直道편, 정순일역, 경서원, 1996, p.274.
이처럼 지엄은 지론종 남도파 혜원의 '性'에 대한 해석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혜원의 性에 대한 해석은 제8眞識을 佛性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원인과 근거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하여 지엄의 性에 대한 해석은 因果의 두 측면을 포함하면서도 결과의 측면에 중점을 둔다. 나아가 지엄은 성기의 해석가운데 '起'의 의미를 중생 각자의 '心地에 現在할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지엄은 여래장이나 불성 대신에 '心地'라는 구체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성기설이 혜원의 이론적 교학에서 벗어나 실천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吉津宜英,「緣起と性起」『東洋學術硏究』22-2, 東洋學術硏究所, 1983, p.61.
(2) 如來藏說과 華嚴性起說의 관계
화엄교학의 성기설은 『60화엄』의 「寶王如來性起品」의 성기라는 개념에 유래한다. 그런데 『80화엄』에서는 동일한 내용이 「如來出現品」으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性起와 出現은 같은 말이고 성기는 '佛性現起' 혹은 '體性現起'의 줄임말이다. 그밖에 「보왕여래성기품」의 別譯經으로서 西晋의 축법호가 역출한 『如來興顯經』과 티베트譯( phags-pa de-bshin-g egs-pa skye-ba byu -ba bstan-pa, 西藏譯 出現品)이 현존한다.
『화엄경』이 편찬되기 이전에 「보왕여래성기품」에 해당하는 『여래성기경』이 『십지경』이나 『불사의해탈경』처럼, 독립된 경전으로 유포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여래성기경』의 산스크리트語本이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경전에 대한 原語도 단지 'tath gata-gotra-sa bhava'로 추정할 뿐이다. 이러한 추정은 여래의 種姓·本性을 의미하는 gotra와 출생·출현·발생·산출·현현 등을 의미하는 sa bhava가 결합하여 性起로 번역되었다고 볼 수 있다. sa bhava의 동의어로 sarga, utpatti, upac ra, prabh vita, utpanna등이 있다. 산스크리트 원어에 비추어 볼 때 출현이라는 말이 더욱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타발타라가 『60화엄』에서 性起라고 번역한 것은 이 용어가 『화엄경』 이해의 전체적 기조를 이루고 있고, 본체와 현상을 포괄하는 구체적 표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 高崎直道,「The Tath gat tpattisa bhava-nirdesha of the Avata saka and the Ratnagotravibh ga -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term 'tath gata-gotra-sa bhava'(如來性起) -」『印度學佛敎學硏究』, 7-1, 1958, p.346.
『여래성기경』에 바탕을 둔 성기설은 『여래장경』을 거쳐 『보성론』에 이르는 사상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화엄교학의 성기설은 이러한 사상적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이것을 종합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다. 또한 이것은 성기의 내용에 대한 관점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高崎直道는 성기의 의미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 性起=如來出現=成覺(지혜의 완성) : '性'은 여래성 즉 원인으로서의 여래장, '起'는 부처의 三身(法身)의 결과를 의미한다.
② 性起=如來出現=法身의 顯現(자비의 示現) : '性'은 法身, '起'는 중생을 포함한 如來功德(法身의 성질)과 業(法身의 작용)을 의미한다.
③ 性起=如來出現=眞如·法性의 顯現=法界(本體의 顯現) : '性'은 眞如, '起'는 본래적으로 여래와 중생 모두가 진여의 현현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기의 세 가지 의미 가운데 『여래성기경』은 주로 ②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③을 포함하고, 『보성론』은 ②와 ③의 의미를 기초로 하여 ①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화엄교학에서는 ③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그 가운데 ①②③의 세 가지를 모두 종합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 高崎直道,「華嚴敎學と如來藏思想」『華嚴思想』, 法藏館, 1960, p.328.
위와 같은 성기의 의미에 대한 분석적 고찰을 통하여 볼 때,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에 있어서 화엄의 성기설과 여래장설의 구체적 관계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인도불교에 있어서 양자의 관계는 『여래성기경』에서 여래장설로의 전개 양상을 띠고 있다. 여래장설에서는 『여래성기경』에서 제시한 法身의 顯現으로서의 성기의 의미를 중생 각자가 간직한 여래장으로 파악하여 그 보편적 원인으로서의 내재성을 강조하고, 중생이 지향해야할 궁극적 목표로 전개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과론적으로 여래성의 본질적 공통의 기반 위에서 여래를 여래장의 구체적 결과로 보고, 중생을 여래가 될 수 있는 공통적 원인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래성기경』의 발전형태가 여래장설의 성립과 전개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중국의 화엄교학의 성기설은 여래장계통의 경전에서 제시한 이론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종합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전개 양상을 통하여 여래장설의 궁극적 발전 형태가 바로 화엄교학의 성기설이라는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여래장설의 입장에서 보면, 여래장설의 초월적 방향이 화엄의 성기설이고, 내재적 방향이 유식의 아뢰야식설이라는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 중국의 화엄교학은 성기의 해석에 있어서 여래장계 경전의 이론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예건대,『승만경』, 대정장 12, p.222中과『여래장경』, 대정장 16, p.457下 등의「如來之藏常住不變」의 이론과『대승기신론』, 대정장 32, p.575下, p.576上의「相大 謂如來藏具足無量性功德故」,「如實不空 以有自體具足無漏性功德故」의 이론, 그리고『불성론』, 대정장 31, p.795下의「約從自性來 來至至得 是名如來」의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 鎌田茂雄,「性起思想の成立」『印度學佛敎學硏究』, 5-2, 1957, p.195.
) 高峯了州,「如來出現の思想と華嚴經結構の意圖」『華嚴論集』, 國書刊行會, 1976, pp.57-58.
화엄교학의 성기설은 그 바탕에 如來藏·佛性을 전제하면서도 그 결론에 있어서는 『화엄경』의 입장 즉 깨달은 부처의 시각, 보살의 海印三昧의 禪定, 事事無 의 종합적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如來藏·佛性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나 그 접근방식에 있어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즉 인도의 여래장경전에서는 현실적 측면에 근거하여 佛性의 내재성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적 가능태에서 이상적 완성태로 나아갈려는 수행중심의 지향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도인의 염세주의적 세계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반면에 화엄교학에서는 본래적 측면에 근거하여 佛性의 顯現을 강조함으로써 현실 자체 속에서 本體의 卽自性, 同時性, 統一性을 자각하는 先驗的(a priori)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인의 현실적이고 낙천주의적인 세계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鎌田茂雄, 한형조 역,『화엄의 사상』, 고려원, 1987, pp.50-52.
이와 같이 여래장설과 화엄성기설의 관계는 '性'의 측면보다는 주로 '起'의 측면에서 그 입장을 달리한다. 이것은 단적으로 중국의 화엄성기설이 여래장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상적 전개는 넓은 의미에서 여래장설에 대한 새로운 시각 혹은 발전의 형태로 볼 수도 있고, 좁은 의미에서는 그것을 화엄만의 독자적, 특수적 전개형태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간에 여래장설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Ⅲ. 法藏 이전 性起思想의 성립
1. 杜順의 『法界觀門』성립배경
(1) 杜順의 傳記
杜順(557-640)은 본래 法順인데 성이 杜氏이므로 일반적으로 杜順이라고 한다. 두순은 실천적 종교적 성격이 顯著하다. 그의 傳記를 통하여 이 점을 살펴보면 『續高僧傳』 杜順傳에,
釋法順은 姓이 杜氏로 雍州萬年에서 태어났다. 인품이 부드럽고 惡을 따르거나 생각지 않았으며, 고생을 꺼리지 않았다. 18세에 출가하여 因聖寺의 僧珍禪師에게 師事하면서 定業을 受持하였다.
) 『續高僧傳』25, 대정장 50, p.653中.
라고 하였다. 僧珍은 姓이 魏氏로 즐겨 淸貧에 만족하여 항상 山野에 살며 道를 닦은 수행자였다. 두순은 馬頭의 靈窟에 살고 있는 禪師에게 깊이 귀의했다. 晩年에 終南山의 동쪽 驪山에 隱栖하여 오로지 定業을 닦다가 貞觀14년 84세로 南郊의 義善寺에서 입적하자, 樊川의 北原에 묻었다고 한다.
제자에 지엄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두순을 모시고 때로는 華嚴·攝論을 講하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法藏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엄이 두순에게 師事한 것은 12세 때인데, 두순은 그의 首弟子인 達法師에게 그를 맡겨 가르치게 했다. 또 樊玄智가 16세로 출가하여 京師의 城南에서 두순에게 입문했는데, 두순은 그에게 『화엄경』 독송에 전념하여 이 경에 의해 普賢行을 닦을 것을 권했다고 한다.
) 上同, 대정장 50, p.654上.
) 『화엄경전기』3, 대정장 51, p.163中, 『화엄경전기』4, 대정장 51, p.166下.
두순은 僧珍의 師風을 전하여 오로지 『화엄경』에 의해 禪觀을 닦아 보현행을 체득한 것이다. 두순의 主著인 『法界觀門』을 제창한 澄觀도 말하기를 두순은 京北杜陵 사람으로 성품이 고결하였으며, 항상 스승 없이 화엄을 業으로 삼았고, 지금도 安南의 華嚴寺에 그의 塔이 있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傳記가 있다고 했는데 그 傳記는 분명치 않다. 『五敎止觀』의 뒤에 붙어 있는 終南山杜順禪師緣起라고 제목한 一篇도 史料로 삼기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志磐은 僧珍을 "聖僧道珍"이라 하고, 두순은 항상 사방으로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하며 스스로도 淨土를 찬탄하는 『五悔文』을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 『연의초』15, 대정장 36, p.116上, 『법계현경』上, 대정장 45, p.672上.
) 『불조통기』29, 대정장 49, p.292下에서 道珍이라 한 것은 廬山에 살면서 항상 彌陀業觀을 닦았다고 전하는 道珍(『속고승전』16, 대정장 50, p.550下)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의 제자로는 智儼 이외에 達法師, 樊玄智, 曹城慧靈丘李氏子의 이름이 알려질 뿐이다.
두순의 著書로는 『五敎止觀』과 『法界觀門』의 2部가 傳存하고, 기타 『五悔文』『十門實相觀』1권, 『會諸宗別見頌』1권이 알려져 있다. 諸錄에 『華嚴敎分記,』『華嚴經五敎分記』라고 記載된 것은 법장의 『오교장』과 혼동한 것 같고, 또는 『五敎心觀』이라고 한 것은 『五敎止觀』을 誤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五敎止觀』은 두순의 저작이 아니라고 논증되어 있다. 그 이유중 첫째는 이것을 법장의 저작이라고 보고, 『유심법계기』는 이것을 재수정한 것이라고 論證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시 법장 이후 징관 이전에 중국에서 제작된 것이라 추정한다. 그 要旨는 이 책의 조직인 五門의 細註에 보이는 것처럼 小·始·終·頓·圓의 五敎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은 『유심법계기』의 五門에 상당한다. 이러한 五敎의 조직(교판)은 법장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지엄에 있어서도 아직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그러므로 두순에게 이미 論破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 보아도 阿賴耶識·獨影·帶質·影像 등 玄 의 번역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본문 중에 "如我現見佛授記寺門樓"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佛授記寺가 存續했던 연한에 의해 그 저작 연대가 대략 결정되므로, 결코 두순의 저작 일수 없다고 論破하는 것이다.
) 『義天錄』1, 대정장 55, p.1166下.
) 『東域錄』, 대정장 55, p.1161下.
) 『圓超錄』, 대정장 55, p.1133下, 『東域錄』대정장 55, p.1146上.
) 結城令聞,「華嚴五敎止觀撰述者論敎」『宗敎硏究』新7-2, 1930, pp.73-93.
) 鈴本宗忠,『原始華嚴哲學の硏究』63, 東京, 大東出版社, 1934, pp.81-128.
) 結城氏는 685-710년 경이라 하고 鈴本氏는 685-750년 경이라 한다.
이제 이 문제는 여기서 그치고 두순의 대표 저서인 『法界觀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 杜順의 『法界觀門』
두순의 전기에서 알수 있듯이 두순은 일생을 『화엄경』의 독송과 보현행을 실천한 普賢行者였다. 그러면 그의 실천을 나타내는 의미의 '觀門' 혹은 '觀法'은 얼마나 화엄적인 것인가.
먼저 '觀'(Vipa yan )은 '止'( amatha)와 함께 불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지엄은 이 '觀'의 내용에 대하여 "內心을 照察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觀門에 의하여 內心을 성찰함은 바로 자신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가장 깊은 체험의 세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 『수현기』3上, 대정장 35, p.53上.「內心照察 名之爲觀」
다음으로 '觀法'의 法이란 바로 法界(dharm dhatu)를 의미한다. 지엄은 『공목장』에서 법계를 정의하여 말하기를,
무슨 이유로 이를 法界라 하는가. 일체의 성문 연각과 제불의 妙法이 所依의 相이기 때문인데 善法眞如와 같다.
) 『공목장』1, 대정장 45, p.542中.
고 하였다. 그러나 법장은 『기신론의기』에서 "의지하여 聖法을 내기 때문에 法界"라 한다고 하며, 이는 『弁中邊論』의 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계를 事法界와 眞實法界로 나눈 것은 法上이며 이것을 다시 三法界, 四法界, 五法界, 十法界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 『기신론의기』中, 대정장 44, p.252上.
) 『十地論義疏』1, 대정장 85, p.765下.「法界有二種 一事法界 二眞實法界」
) 두순,『법계관문』의 삼중관과 대비시킨 것이다.
) 징관,『법계현경』上, 대정장 45, p.672下, 『연의초』1, 대정장 36, p.2下.「事法界 理法界 理事無 法界 事事無 法界」
) 『탐현기』18, 대정장 35, p.441上.「法法界 人法界 人法俱融法界 人法俱泯法界 無障 法界」
上同, pp.440中-441上.「有爲法界 無爲法界 亦有爲亦無爲法界 非有爲非無爲法界 無障 法界」
) 『탐현기』18, 대정장 35, p.451下.「正報法界 依報法界 現相法界 表義法界 言說法界 義理法界 業用法界 說往因法界 結自分法界 推勝進法界」
두순의『법계관문』은 수당시대에 중국불교의 새로운 형성을 나타내 보일 뿐만 아니라 화엄철학을 종교로서 성립시킨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 鎌田茂雄,「華嚴敎學の根本的立場」『華嚴思想』, 法藏館, 1982, p.424.
또한 十玄門의 명칭이 최초로 지엄의 '十玄門'에 나타난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 사상적 근원은 그의 先師인 두순의 『법계관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十玄門에 나오는 十門중 최소한 七門은 이미 『법계관문』의 第三 周遍含容觀에 그 뜻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두순은 『법계관문』을 통하여 화엄철학의 근저를 구축하고 자신의 종교적 체험의 세계를 표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화엄종 성립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후 지엄이 스승의 설을 이어받아 『十玄門』과 『搜玄記』 등에서 화엄철학의 중심을 계승하고 법장에 이르러 그 교리적 조직이 대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징관, 종밀에 이르러 더욱 완성되면서 宗名과 宗祖가 확립되었다.
그러면 十玄門의 사상적 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두순의 『법계관문』의 내용가운데 十玄門과 관련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法界觀門』이다.
『法界觀門』은 그 原典이 지금 현존하지 않고 징관의 『華嚴法界玄鏡』, 종밀의 『注華嚴法界觀門』 등의 저술에서 주석을 달고 있어 그 내용의 일부를 알 수 있다. 『법계관문』은 『화엄경』에 기초한 法界觀을 나타내는 것으로 『화엄경』이 설한 진리를 실천의 입장에서 과문으로 조직한 것이다.
『법계관문』의 특징은 華嚴法界에 悟入하기 위해 세 가지의 문을 열어 화엄의 깊은 이치를 나타내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法界三觀이다. 『법계관문』의 내용은 단순히 經文의 해석이 아니고 철두철미한 觀行의 저술이다. 우선 法界三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法界三觀
① 眞空觀 → 理法界에 해당
② 理事無 觀 → 理事無 에 해당
③ 周遍含容觀 → 事事無 에 해당
이상의 세가지 法界觀 중에 第③周遍含容觀에서 바로 事事無 을 설하는데, 여기에서는 다시 十無 門을 설하고 있다.
十無 門
① 理如事門 → 앞의 第② 理事無 와 같다.
② 事如理門 → 앞의 第② 理事無 와 같다.
③ 事含理事門 → 앞의 第② 理事無 와 같다.
④ 通局無 門 → 個物은 個物로써 각각 독립과 동시에 普遍을 具象.
⑤ 廣狹無 門 → 十玄門의 '廣狹自在無 門'에 해당.
⑥ 遍容無 門 → 一과 一切의 원융을 이야기함 : 相卽相入義.
⑦ 攝入無 門 → 一切를 一法에 對함.
⑧ 交涉無 門 → 一에 一切가 入하는 것을 설함.
⑨ 相在無 門 → 同時交參無障無 門 - '同時具足相應門'과 관련.
⑩ 簿融無 門 → 相卽相入의 설명으로 원융무애를 설함.
종밀의 『注華嚴法界觀門』에서 보면 "將此十門 遍配一切法義 方成十玄之義…"라 하여 十玄이라는 단어를 주석에 사용하였듯이 위의 十無 門 가운데 처음의 三門을 제외하고는 모두 十玄門의 事事無 法界의 설명과 일맥상통함을 찾아 볼 수 있다.
) 『주화업법계관문』, 대정장 45, p.692中.
일단 두순의 『법계관문』에 나타나는 法界三觀은 十玄門으로 발전하여 가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엄의 『일승십현문』은 『법계관문』의 十無 門에서 발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황규찬,「十玄緣起의 無 法門義 小考」『한국불교학』20, 한국불교학회,
1995, p.546.
『법계관문』의 사상은 두순 자신의 禪觀에서 『화엄경』의 法門을 파악하여 그것을 실천적 체계로서 논리화시킨 것이다.
) 高峯了州, 계환 역,『화엄사상사』, 보림사, 1988, p.121.
2. 智儼의 性起思想
(1) 智儼의 傳記
智儼의 생애를 고찰하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자료는, 현존하는 것으로 법장의 저술인 『華嚴經傳記』이다. 道宣의 『續高僧傳』에는 智儼傳이 독립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杜順傳속에 두순의 弟子로서 부수하여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가장 구체적인 지엄전은 법장의 『華嚴經傳記』로서 지엄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 『속고승전』, 두순전, 대정장 50, p.654上.「弟子智儼 名貫至相 幼年奉敬 雅遵餘度 而神用淸越 振績京皐 華嚴攝論 尋常講說 至龕所化導鄕川 故斯塵不終矣」
) 『화엄경전기』3, 대정장 51, pp.163中-164中.
지엄의 俗姓은 趙씨이며 長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현재 甘肅省인 天水에서 태어났다. 지엄의 아버지 景은 당시 申州錄事參軍이라고 하는 지방관리였으며, 어머니는 梵僧의 태몽을 꾸고 지엄을 잉태하였다고 한다. 지엄은 어려서부터 비범함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특히 놀이에 있어서도 흙덩이로 佛塔을 만드는 등, 불교적인 정서를 어릴 때부터 자연적으로 지니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大業9年(613) 지엄의 나이 12세 때 그의 스승 杜順과 만나게 되는데, 두순은 지엄의 집에 찾아와서 지엄의 양친에게 지엄은 본래 자신의 자식이니 돌려달라고 해서 데리고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두순의 나이는 57세로 추정한다. 두순은 지엄을 데리고 가서 그의 首弟子인 達法師에게 양육을 부탁했다고 한다. 얼마 후 隋나라 말기 大業11년(615)에 승려가 되어 普光寺의 法常·辨法師·琳法師·至相寺 智正 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학문의 중심은 처음에는 『섭대승론』의 연구에서 뒤에는 『화엄경』의 연구로 이어졌던 것 같다. 이 사이에 梵文에도 통달하였다.
) 木村淸孝,『初期中國華嚴思想の硏究』, 春秋社, 1977, p.373.
지엄이 『화엄경』 사상에 눈뜨게 된 계기는 智正으로부터 『화엄경』의 강의를 받은 뒤 地論南道派의 조사인 慧光의 『華嚴經疏』를 접하게 된 데 있다. 지엄은 이 책을 통하여 '別敎一乘無盡緣起'를 희열 속에서 대부분 납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異僧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六相'의 의미를 통달하고 마침내 一乘이 진의를 깨쳐 『화엄경』의 주석서인 『搜玄記』(『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5권을 저술하고 한 종파의 계승자로서 독립하였다. 그때 지엄의 나이 27세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貞觀2년(628) 지엄은 한 종단를 통솔하는 위치에 섰다. 그렇지만 그는 그 후에도 그다지 적극적인 사회적 활동을 행하지 않은 듯하다. 만년인 顯慶4년(659) 전후에는 終南山 至相寺에서 장안의 雲華寺로 옮긴다. 다시 淸淨寺로 이전하지만 그 사이 눈에 뜨이는 대외적 활동으로는 雲華寺 시대에 沛王 賢의 講主가 되었던 사실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지엄은 아마 인생의 대부분을 자신의 수행과 의상·법장 등의 제자에 대한 교육에 전념했던 것이다.
임종시에는 문도들에게 "나의 이 幻軀는 緣에 따라 無性이다. 지금 잠시 淨方으로 가서 연화장세계에서 노닐겠다. 너희들도 나를 따라 이 뜻을 같이 하여라"는 유언을 남기고 總章원년(688) 10월 29일 淸淨寺에서 입적하였다. 지엄의 임종에서 지엄이 空觀에 철저하면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서 노사나불의 연화장세계에로 2단계의 왕생을 확신하고, 태연하게 죽음을 맞은 것이 엿보인다.
) 『화엄경전기』3, 대정장 51, p.163下.
그리고 지엄의 저서를 살표보면 木村淸孝박사는 모든 자료속에 지엄의 저서 중 그의 眞撰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①『搜玄記』5권 ②『五十要問答』2권 ③『孔目章』4권 ④『華嚴一乘十玄門』1권 ⑤『金剛般若經略疏』2권 ⑥『無性釋攝論疏』4권 ⑦『供養十門儀式』1권의 7書를 들고 있다. 이들중 完本으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①-⑤까지의 5書이며, 一部만이 현존하는 것은 第⑥書이며, 제⑦書인 『供養十門儀式』은 目錄上에 명칭만 전해지고 있다. 지금 完本으로 현존하고 있는 5書중에 『華嚴一乘十玄門』은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지엄의 저술로 인정되어 왔는데, 근래에 지엄의 저서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출되고 있지만, 本稿는 전통적인 입장을 따르기로 하겠다.
) 木村淸孝, 前揭書, p.388.
) 石井公成,「一乘十玄門の諸問題」『佛敎學』12號, 吉津宜英,『華嚴一乘思想の硏究』, p.32이하 참조, 또한 吉津박사는『華嚴一乘十玄門』은 법장 이후의 누군가에 의한 僞撰으로서 이 문헌을 가지고 지엄의 사상을 논하는 것은 중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지엄의 眞撰으로 전해지는 것은 5部이다. 이중 화엄관계 4部의 저서를 통하여 지엄의 華嚴宗祖師로서의 위치와 화엄교학을 고찰할 수 있고, 나아가 화엄교학의 기초적 확립을 찾을 수 있다.
(2) 法界緣起와 性起
법계연기설의 개념과 구성은 지론종 남도파의 교학적 흐름 속에서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화엄적 일승의 입장에서 성기설과의 관계를 통하여 법계연기설을 조직한 것은 화엄종의 지엄이다. 지엄의 법계연기설은 구체적으로 두순의 법계관문과 지론종의 法上과 혜원의 여래장연기설(법계연기설)을 계승하여 성립했다.
지엄의 성기에 관한 언급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의 성기사상은 우선 화엄의 독특한 법계연기설 형성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근간이 되고 있다. 지엄의 법계연기설은 일찍이 『搜玄記』「十地品」 第6地의 주석 중에 보인다. 이것은 화엄성기사상의 최초 문헌이기도 하다.
) 전해주,『의상화엄사상사연구』, 민족사, 1994, p.50.
법계연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要門으로 간략히 攝하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凡夫染法에 근거하여 緣起를 분별함이며, 둘은 菩提淨分에 근거하여 연기를 밝힘이다.
) 『수현기』3下, 대정장 35, p.62下.
여기서는 緣起的 존재양상 전체가 법계연기로 포섭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크게 凡夫染法의 입장과 菩提淨分의 입장으로 이분되고 있다. 지엄은 여기서 染淨二門을 다시 세분하여 설하고 있다. 그러한 법계연기의 구조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 上同, 대정장 35, pp.62下-63下.
本有
菩提淨分(淨門) 本有修生
修生
修生本有
法界緣起 眞妄緣集門
緣起一心門 攝本從末門
凡夫染法(染門) 攝末從本門
依持一心門
이 중 染門의 법계연기 즉 染緣起는 第6現前地의 '三界虛妄 但是心作'을 해석한 것이다. 곧 緣起一心門의 眞妄緣集門은 전체적으로 十二因緣이 一本識의 활동에 의한 것으로서 眞妄의 別이 없다고 보는 입장으로 本識을 眞妄和合識으로 본 것이다. 攝本從末門은 一切의 현실인 十二因緣을 다만 妄心作이라고 보는 입장으로 唯心을 妄心으로 본 것이다. 다음 攝末從本門은 12인연이 그 본성으로서의 眞心作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에 一切法을 그대로 佛性이라고 보고 『대반열반경』과 唯心的 세계를 설하는 『화엄경』「십지품」 및 『십지경론』의 文을 요약 인용하여 眞心作을 중명하고 있으며 이를 不空如來藏에 해당시키고 있다.
) 『南本涅槃經』25, 대정장 12, p.786上中下, 『南本涅槃經』32, 대정장 12, p.818下.
) 『60화엄』25, 대정장 9, p.558下.
) 『십지경론』8, 대정장 26, p.169上.
그리고 染門緣起 중 또 다른 依持一心門은 十二緣生이 아뢰야식을 의지한다. 제6·7식 등 諸識도 아뢰야식에 의해 성립한다는 연기의 방식으로 역시 『기신론』과 『십지경론』을 인용하고 있다. 緣起一心門에서는 染淨이 體에 卽하여 不分이나 이 依持一心門은 能所가 같지 않으므로 둘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 『대승기신론』, 대정장 32, p.577中.
) 『십지경론』8, 대정장 26, p.169上, p.170下.
다음으로 법계연기의 淨門은 本有·本有修生·修生·修生本有의 四門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생에게 淨性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淨性이 자각되는 과정을 4가지 측면에서 파악한 것이다. 그런데 지엄은 이 4門 중에서 修生과 修生本有만이 現前地에 해당하고 本有와 本有修生은 「性起品」에 있다고 설하고 있다. 이 二門이 「성기품」에 있다고 함은 『십지경』과 『십지경론』을 소의로 하는 地論宗에의 비판으로 보여진다. 이 「성기품」의 성기의 입장에서 모든 연기설을 攝하고 集成하려고 함이 추정된다. 이 점이 지엄 법계연기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수현기』3下, 대정장 35, p.62下.
) 上同, 대정장 35, p.63上.
) 石井公成,「智儼の性起說」『フィロソフィア』67號, 1979, p.139.
그리고 本有와 本有修生 또는 「性起品」과 「普賢菩薩行品」은 自體因果로 설명되기도 한다. 즉 「보현품」은 因, 「성기품」은 果라고 한다. 이러한 自體因果는 곧 性起의 因果이니 離言絶相인 性起에 因果가 있는 데 대해 지엄은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 『수현기』4下, 대정장 35, p.78下.「이것은 一乘華嚴法界緣起가 自體因果를 밝힌 것이며 因은 普賢이요 果는 十佛世界라고 하는 말과 동일 취지라 하겠다.」
性起는 말이 끊어지고 相을 여윈 것인데 어찌하여 因果가 있는가 二義가 있으니 첫째는 經內에서 因中에 性起를 가리고 果中에 性起를 밝히는 까닭이다. 둘째는 性은 不住를 말미암은 까닭으로 起요, 起時에 相을 여의고 法에 수순하는 까닭에 因果가 있다.
) 上同.
그리고 緣起的인 실천과 性起는 같지 아니하여, 前者는 緣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아니하나 後者는 緣이 없어도 손괴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엄은 性起의 性을 順理의 行性, 즉 진실 그 자체의 실천의 본성으로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普賢行이 성기에 속함은 「보현품」의 주석에서 밝히고 있다.
) 上同.「問起時離與緣修何別 答緣修離緣則不成 性起無緣卽不損故別也」
) 上同.「其普賢行亦如性起 分順修生也」라하여 分으로는 修生을 따르기도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엄은 「보현품」의 性起 설명에 이어서 「성기품」의 주석에서 性起 인식을 보다 주체적인 것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性이란 體이며 起는 心地에 現在함이다. 이는 즉 起相을 만나 實에 들어감이다.
) 『수현기』4下, 대정장 35, p.79中下.
여기서 性起란 本有인 體가 중생심에 나타나 있는 것이 된다. 性을 體라고 한 것은 그 體性은 果의 體性이며 出纏如來의 果性의 事를 性이라고 한 것이다. 出纏의 果佛이 중생심에 현재하는 것이다.
『수현기』에 나타난 이같은 성기의 파악은 지엄의 성기사상의 총 결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목장』의 性起品明性起章에서 한층 명확하게 된다.
성기는 一乘法界緣起의 궁극을 밝히는 것이다. 本來究竟하여 修造를 여의니 무슨 이유인가. 離相이기 때문이다. 起는 大解·大行·離分別의 菩提心 가운데 있으므로 이름하여 起라 한다. 이것은 緣起性에 의하기 때문에 설하여 起라 하니, 起는 곧 不起이며 不起는 곧 性起이다. 널리 經文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 『공목장』4, 대정장 45, p.580下.
지엄은 성기를 一乘法界緣起之際라 하며, 起의 不起性을 지적하고 있다. 연기하는 제법을 無自性에 근거하여 不起의 起로 파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本來究竟 離於修造'라 하여 성기의 本有性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역시 菩提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성기의 해석은 本有를 기본 입장으로 하면서도 항상 本有修生의 菩提心에 있어서 성기를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지엄의 성기설에서 볼 때 법계연기의 극치가 性起이므로 연기와 성기 사이에는 본질적인 상위는 없다. 그러나 또한 양자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물론 아님을 알 수 있다.
) 전해주,『의상화엄사상사연구』, 민족사, 1994, pp.57-58.
(3) 菩提心과 性起
지엄은 성기의 실천적 계기로써 보리심을 강조하고 있는데, 菩提心은 일생을 끊임없이 정진을 거듭한 수행자였던 지엄의 수행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엄은 성기의 分齊에 대해 始終相對와 闊狹相對가 있다 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성문 연각뿐만 아니라 세간아래 지옥까지도 성기의 분제에 포함된다고 하고 있는데 이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起'가 '在大解大行大見聞心中'이라는 것은 단순히 解·行·見聞이 아니라 大解·大行·大見聞心 속에 있는 성기의 起를 의미한다. 이 경우는 보리심을 발한 뒤가 성기로 간주되는 것이다.
) 『수현기』4下, 대정장 35, p.79下.
다음의 문답 서술에서 지엄성기사상의 중심과제를 요약할 수 있다.
묻되 성문 등에게 성기가 있다고 한다면 왜 경문에 二處에서는 根을 내지 않는다고 하는가. 답하되 不生이라는 것은 菩提心性起의 싹이 나지 않는 것이며, 果葉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것까지 없다고 한다면 미진 가운데도 경이 있다고 한 말과 다르게 되니까 그 비유에 비추어 알라. 다시 자세히 분별하면 지옥에는 果葉은 없지만 성기의 體가 있고 성문에게는 體도 果葉도 있다.
) 上同.
앞서 성기는 大解·大行·大見聞心에서 일어난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성문 연각에게도 있다고 하니 이는 명백히 모순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성문 연각에게 성기를 인정하면서도 지옥과 深坑의 두 곳에서는 성기의 根이 나지 않는다는 경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결국 지엄의 대답은 지옥중생과 성문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쪽이든 성기의 體가 있는 한 起는 일견 소멸된 듯이 보여도 體의 필연적인 전개로서 반드시 실현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一微塵 가운데 經이 있다고 하는 경문이 의의를 갖게 된다.
) 『60화엄』35, 대정장 9, pp.623下-624上.
뿐만 아니라 성문과 지옥은 성기의 싹이 서로 다르다고 했는데 그것은 모순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一切善根에 邪가 있고 正이 있다. 다만 菩提에 順하면 無間人天의 善根이 모두 性起요 菩提에 順하지 않는 것은 性起가 아니다.
) 『수현기』4下, 대정장 35, p.81上.
성문과 지옥은 성기의 싹이 서로 다르지만 그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一切 善根은 삿된 선근과 올바른 선근이 있기 때문에 선근이기만 하면 무조건 다 좋다고 치부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단지 그때 올바르고 삿된 기준은 무엇에 의하는가에 대해서는 보리에 수순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차이난다고 하고 있다. 즉 보리에 수순하고 따르는 것이라면 설사 人天의 선근과 같은 천박한 것이라도 다 성기에 들어가지만 보리에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나 보여도 성기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문과 지옥이 있어도 다 성기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지엄은 결론짓고 있다.
) 계환,「중국화엄교학의 성기사상연구」『불교학보』30, 동국대학교출판부, 1993, pp.253-255.
지엄은 또 『공목장』에서,
성기는 一乘法界緣起의 궁극을 밝히는 것이다. 本來究竟하여 修造를 여의니 무슨 이유인가. 離相이기 때문이다. 起는 大解·大行·離分別의 菩提心 가운데 있으므로 이름하여 起라 한다. 이것은 緣起性에 의하기 때문에 설하여 起라 하니, 起는 곧 不起이며 不起는 곧 性起이다.
) 『공목장』4, 대정장 45, p.580下.
라고 하였으니 不起로서의 성기는 적극적으로는 性德顯現의 뜻이요 논리적으로는 唯淨의 법계연기로서의 성기이나, 실천상으로는 중생 個個의 身心에 顯現되는 用이 성기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본래적 혹은 本證的 입장을 의미해서 여래의 大解·大行·離分別의 보리심 중에 있음을 起라고 한다는 것이다. 보리심은 중생이 菩提를 구하려고 일으키는 마음인데, 여기서는 大解·大行·離分別이라고 하는 여래의 경계에 攝해지는 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初發菩提心은 성기에 포섭되는 것이다.
) 전해주,「華嚴經의 發菩提心에 對한 硏究」, 동국대학교대학원 석사논문, 1983, pp.42-43.
또한 지엄은 법계연기의 淨門四門중에서 本有를 설명하면서 「성기품」의 예를 들어 "중생의 마음 가운데 微塵의 經卷이 있고 菩提의 大樹가 있어 衆聖이 共證하나 사람이 證하는 바는 전후가 같지 아니하다. 그 樹는 分別의 다름이 없어 本有라 한다."고 하고 있다.
) 『수현기』3下, 대정장 35, pp.62下-63上.
여기에서 本有라는 면에서 緣의 문제로 시각을 옮기면,
緣에 의하여 善을 生한다. 緣에 據함 자체는 妄法이나 거기서 발하는 眞實의 智는 普賢의 智와 합치한다. 이 智는 진리 그 자체에 順하는 것으로 緣에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修生은 곧 本有로서 同性이 발함을 알라. 그래서 성기품에서 보리심을 이름하여 성기라 하였다.
) 上同, 대정장 35, p.63上.
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엄은 성기의 사상에 의하여 현실의 緣에서 본래적인 진실 그 자체로 향하는 깨달음의 길(智·菩提心)인 연기적 입장을 本有修生이라 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성기의 본질이 '智' 즉 '菩提心'과 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의 菩提心은 菩提와 구분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보리심이란 지혜에 의하여 촉발되는 초발심과 상통하는 것이요, 보리는 바로 唯淨의 佛性起로서 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하는 『수현기』의 내용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지엄은『공목장』2, 대정장 45, p.549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三眞發者 菩提眞性 由來己體 妄想覆故在而不覺 名爲生死 後息妄心 契窮自實…故名發心 亦可眞證智 起名曰發心」
처음 發心을 시작하여 佛의 性起에 다달아 大菩提大涅槃에 그쳐 舍利에 유통함이라.
) 『수현기』4下, 대정장 35, p.79下.
여기서의 보리는 佛性起라면 보리심이야말로 지혜에 의한 발심이다. 지엄에 있어서 發菩提心의 문제는 그의 교학체계 전반에 걸쳐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이 보리심이 발하는데 相發·息相發·眞發의 3종류가 있다 하고 眞發에 대하여 "菩提眞性이 본래 자기의 體이나 망상에 덮이어 깨치지 못하므로 생사라 이름하다가 후에 妄心이 쉬어 自實의 窮에 계합하여 자기의 體에 菩提의 性이 體가 됨을 알아서 다른 것을 구함을 버려 實相이 현전하는 것을 眞發心이라 한다"고 하고 있다.
) 『공목장』2, 대정장 45, p.549中.
여기에서 『수현기』의 "性者體 起者現在心地耳"라 한 성기의 정의
) 『수현기』4下, 대정장 35, p.79中下.
를 조명해 보면 지엄은 第三眞發心에서 성기의 본래를 자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파악하고 있다. 第一發心은 아직 分別菩提心이며 第二發心은 諸相은 멸하였으나 아직 그 體를 발하지 못하였다고 하면 第三發心에서 분별을 떠나 바로 心地에 도달하여 보면 緣起의 實際는 이미 現在하여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實性을 보더라도 모든 相과 修造를 떠났기 때문에 성기는 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起卽不起"이다. 성기의 不起인 것을 아는 것이 본래구경의 연기를 자각하는 것이며 이것이 동적 세계로서 언제나 心地에 현재한다는 점에서 "不起卽起"이다.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p.51-53.
Ⅳ. 法藏의 敎學과 性起思想
1. 法藏의 傳記
(1) 法藏의 생애
法藏(643-712)의 전기에 대한 연구는 법장이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려 주듯이 법장의 전기적 자료는 20여종이나 된다. 이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閻朝隱의 『康藏法師之碑』와 崔致遠의 『法藏和尙傳』이다. 법장이 입적한 이듬해(713)에 세워진 『康藏法師之碑』는 다른 사람에 의해 가장 이른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이것이 갖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그리고 『法藏和尙傳』은 後序에 의하면 天復4년(904) 봄, 최치원이 신라의 가야산 해인사에서 난을 피하고 요양하는 중에 쓴 것이다. 本稿는 법장의 전기적 자료 20여종을 참고하면서, 최치원의 『法藏和尙傳』을 중심으로 법장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한다.
) 법장의 전기에 대해서는 여러 선행연구들이(吉津宜英,「法藏傳の硏究」『駒大佛敎學部硏究紀要』37, 1979, pp.168-193) 있으나, 계환스님의 『중국화엄사상사연구』제3장 法藏傳의 재검토가 상세히 고찰되어 있다. 계환,『중국화엄사상사연구』, 불광출판부, 1996. pp.139-142.
) 법장에 관한 일차 사료로 崔致遠의『法藏和尙傳』, 大正藏 50, pp.280下-289下, 卍續藏經 134, pp.261左下-271右上, 韓佛全 3, pp.768-782과 閻朝隱의『康藏法師之碑』, 대정장 50, p.280中下.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에 기초한『宋高僧傳』5, 대정장 50, p.732上中.『佛祖統紀』29, 대정장 49, p.293上, p.370中.『歷代通載』12, 대정장 49, pp.584中-585下.『釋氏稽古略』3, 대정장 49, p.831上中 등과 후대에 저술된『法界宗五祖略記』, 卍속장경 134, pp.271左下-278右上와『賢首傳燈錄』,『華嚴經硏究』2, 山喜房, 1985, pp.285-347이 있다. 또한 중요한 것으로『演義 』15, 대정장 36, p.26上中.『釋門正統』8, 卍속장경 130, p.455左下.『感應略記』, 卍속장경 134, pp.285左下-286右上.『華嚴持驗記』, 卍속장경 134, p.304右上-左上.『華嚴緣起傳』, 卍속장경 134, p293左下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法藏傳이라는 체제로는 정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법장의 전기에 관한 자료로『刊定記』1, 卍속장경 5, p.1右上-.『開元錄』9, 대정장 55, pp.566上-570上.『華嚴感應傳』, 대정장 51, p.176上中.『行願品疏 』6, 卍속장경 7, p.487右上.『會玄記』, 卍속장경 12, p.304左上下.『隆興通論』14, 卍속장경 130, p.281左上 등이 있다. 일본측 자료로는『法界義鏡』下, 日藏經 華嚴部章疏下, p.615下.『五敎章通路記』1, 대정장 72, pp.296中-297中 등에 그의 傳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법장 자신의 저작 중에는 전기에 관한 문헌이 몇 가지, 즉『華嚴經傳記』5, 대정장 51, pp.171下-172上.『探玄記』1, 대정장 35, p.123上, p.162中, p.253下.『般若心經略疏』, 대정장 33, p.555上.『入楞伽心玄義』, 대정장 39, p.430中 등이 있다.(계환,『중국화엄사상사연구』, 불광출판부, 1996. pp.127-128)
) 『법장화상전』, 大正藏 50, p.285下.「于時天復四春 枝幹俱首 於尸羅國迦耶山海印寺 華嚴院避寇養 兩偸其便」
법장(643-712)의 속성은 康씨이며 康居國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가 꿈에 이상한 빛을 삼킨 이후 그를 임신하였고, 貞觀17년(643) 11월 2일에 태어났다. 16세(658)에 法門寺 사리탑 앞에서 연비공양을 하고 佛乘을 깨닫고자 맹세하고, 다음 해(659) 법을 구하고자 太白山으로 입산하였다. 그래서 雲華寺에서 지엄의 『화엄경』 강론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어 26세에 西域尊者가 『화엄경』에 통달한 법장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더욱이 지엄이 입적할 때에 법장을 道成과 薄塵 두 大德에게 위촉하고 28세 때에는 측천무후의 어머니인 榮國부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무후가 창건한 太原寺에서 득도하였다. 32세 때에는 무후가 주선하여 十大德으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賢首라는 칭호를 사사받았으며 태원사에서 『화엄경』을 강론하였다고 한다. 37세 때 何容師 및 700인을 위하여 『화엄경』을 강독, 사경하였고 齊를 베풀어 그들을 구제하였는데 그때 감응이 있었다고 한다. 38세 때에는 日照三藏을 만나서 그의 역경사업에 참여하였다. 40세 때에는 곽신량이라는 자가 도솔천에 가서 소생하였던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였는데, 거기에서 도솔천의 보살이 그에게 왜 『화엄경』을 강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강할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자 현재 현수보살이 있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았다는 말이 소개되어 있다. 이것은 법장의 강설이 하늘에까지 알려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것이다.
42세 때에는 西太原寺에서 일조삼장과 같이 역경작업을 하는 중에 서역에도 敎判과 같은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일조는 戒賢과 智光의 三種敎를 설명하고, 그들 상호간의 치열한 논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전하였다. 같은 해 王明幹이라는 자가 지옥에 갔지만 『화엄경』의 破地獄偈를 독송하여 3일만에 소생한 영험담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44세 때에는 慈恩寺에서 『화엄경』을 강론하고 45세에는 조칙에 따라 西明寺에서 立壇하였다고 한다. 47세 때에는 提雲般若가 승천하자 『화엄경』을 독송하였는데 영험이 있었다고 하며, 48세에는 夏州로 갔고, 49세에는 조모를 병문안하고자 曾州로 가서 外道와 논쟁을 벌여 그를 논박하였다. 그리고 50세 때부터 2년간 운화사에서 『화엄경』을 강론할 당시에 입에서 빛이 나와 天蓋가 되어 공중에 머물렀다. 52세에는 『十地品』을 강론할 때에 하늘에서 꽃이 내려오고 오색의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는 등의 감응이 있고, 53세에는 실차난타의 『80화엄』의 역경을 돕고 또한 천기의 불손함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54세에는 태원사에서 『화엄경』을 재차 강론하고, 55세에는 조칙에 의해 전승을 기원하는 불공을 올렸으며, 57세에는 문중의 선배인 義湘에게 자신의 저술과 편지를 보내고 불수기사에서 『80화엄』을 처음으로 강론할 즈음에 대지진 등의 불가사의한 신이가 일어났으며, 같은 해에 日照가 역경한 「입법계품」의 한 문장을 『80화엄』의 상당부분에 보충하였다고 한다.
58세에는 실차난타가 『入楞伽經』을 역경하고, 60세에는 실차난타의 『文殊授記經』의 역경 및 자신의 『心經略疏』의 저술과 미타산의 『入楞伽經』의 역경이 완료되었다고 전한다. 61세에는 의정의 역경사업에 참여하였고, 62세에는 內道場에서 화엄법회를 열 즈음에 두 개의 부도에서 오색의 빛이 발하자 이것을 들은 측천무후가 長生殿에 법장을 초청하여 화엄의 깊은 뜻을 묻자, 법장은 구석에 있던 금사자를 가리키며 설법하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金師子章』이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岐州 舍利의 인연이 서술되어 있다. 63세에는 미타산의 역경사업에 참여했고, 張易元의 난에 공을 세워서 홍로경이라는 직함이 내려졌으나 고사하였다. 64세에는 보리유지의 『寶積經』의 역경사업의 감수에 참여하였고, 66세에는 여름에 기우제를 지내자 곧 감응하여 비가 내렸다. 또한 중종의 菩薩戒師가 되어 國一이라는 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섯 곳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의정삼장의 『七佛藥師經』의 역경을 도왔다. 68세에는 보리유지의『寶積經』이 역경되어 나올 때 황제가 친히 筆受를 하였다고 하며, 그때 실차난타의 입적을 전해 들었다. 70세에는 睿宗의 菩薩戒師가 됨과 동시에 예종의 탄생일에 초청되어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였다. 그리하여 大薦福寺에서 세수 70세 승랍 43세를 일기로 입적하였고 同月 24일에 매장하였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로는 宏觀·文超·東都華嚴寺智光·荷恩寺宗一·靜法寺慧苑·經行寺慧英 등의 이름이 전한다.
(2) 『法藏和尙傳』의 재검토
최치원의 『法藏和尙傳』은 독특한 구성과 상세한 내용으로 중국 화엄종의 第三祖인 현수법장의 생애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전기자료이다. 특히 법장의 인간상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법장의 종교활동 중 靈驗性과 神異性을 부각시켜 새로운 法藏觀을 세우고 있다. 또한 최치원의 역사서술 방식과 역사의식을 살피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법장화상전』은 법장의 생애를 十科로 나누어 서술하면서, 화엄사상에 입각하여 생애 전체를 통찰력 있게 眺望하고 있다. 그리고 각 부분 상호간의 구분 및 인과관계 연관성을 명확히하여 서술함으로써, 불교이론을 역사서술에 훌륭하게 반영시켰다. 그리하여 뒷날 고려때 赫連挺의 『균여전』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1) 『法藏和尙傳』의 체제
『법장화상전』의 체제는 序論格인 導入부분과 '其傳'에 해당되는 本傳부분, 그리고 後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분에서는 司馬遷의 立傳과 華嚴三昧觀의 直心 중 十義로서 本傳을 十科로 구성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 10科 역시 화엄의 數인 10을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최치원은 도입부분의 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 圓宗(화엄종)을 우러르고 盈數(10)로 열거해서, 법장이 저술한 華嚴三昧觀 直心 가운데 十義를 본떠 다음의 말들을 배열하려 한다.
) 『법장화상전』, 대정장 50, p.281上.「仰彼圓宗 列其盈數 仍就藏所著華嚴三昧觀直心中十義 而配譬焉」
그리고 本傳부분에서는 법장의 행적을 10개 科目으로,
第1科 族姓 廣大心(族姓의 廣大한 마음)
第2科 遊學 甚深心(遊學의 몹시 깊은 마음)
第3科 削染 方便心(削髮染衣의 方便心)
第4科 講演 堅固心(講演의 견고한 마음)
第5科 傳譯 無間心(譯經의 間斷없는 마음)
第6科 著述 折伏心(저술로 折伏케 하는 마음)
第7科 修身 善巧心(修身의 善巧한 마음)
第8科 濟俗 不二心(속세를 濟度하는 데 차별이 없는 마음)
第9科 垂訓 無 心(가르침을 전함에 막힘이 없는 마음)
第10科 示滅 圓明心(示滅(滅度)의 圓明한 마음)
으로 나누어 각각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後記부분에서는 傳을 쓴 최치원 자신의 신변문제·주변문제 등으로 채워져 있다.
2) 『法藏和尙傳』의 특징
『법장화상전』 本傳의 내용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법장의 종교적인 영험과 여러 가지 神異한 현상을 통해서 화엄의 우수함을 과시한 것이다. 종교적인 신비한 영험은 第2科 遊學因緣으로부터 시작된다.
법장은 밤중에 갑자기 신기한 光明이 나타나 뜰 앞을 비추는 것을 보고 찬탄하여 말하기를 "異人이 큰 가르침을 널리 宣揚하는구나" 하였다. 이튿날 雲華寺에 나아갔다. … 법장은 지엄의 미묘한 解明에 감탄하여 "참으로 나의 스승이다"고 하였다. 지엄 역시 불법을 전할 사람을 얻었음을 기뻐하였다.(『법장화상전』, 其傳 二科)
지엄과 법장의 만남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어떤 신비스러운 힘이 작용한 필연적 만남임을 암시하고 있다. 제4과 講演因緣에서는 신비로운 현상은 더욱 자주 등장한다.
① 延載 元年(694)에 十地品을 강할 때에 향기로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고, 상서로운 안개가 五色이 찬란하게 높이 솟아 흩어지지 않고 공중에 뭉쳐서 사람에게 쏘였다. 또 하늘의 꽃을 감동시켜 공중에서 어지럽게 싸락눈처럼 쏟아졌다.(『법장화상전』, 其傳 四科)
② 12월 보름 삼일 전 저녁에 講을 하게 되었는데, 『화엄경』에 바다가 진동했다는 대목에 이르자, 강의실 및 寺院이 갑자기 진동하여 청중들이 未曾有를 찬탄하였다. … 측천무후는 회답하기를 " … 開講한 때 大地가 진동하여 神異함을 표하였다. 이것은 여래께서 상서로움을 내리시어 九會의 글에 符應하신 것이다."(『법장화상전』, 其傳 四科)
③ 譯堂 앞 땅에서 百葉蓮花가 피었는 데 대중들은 그것을 보자 상서롭게 여기고 다투어 정진하고 修鍊하였다.(『법장화상전』, 其傳 五科)
①②는 법장이 『화엄경』을 강의할 때 나타났던 神異한 현상들이다. 특히 ②는 강의 중에 大地가 진동하는 異蹟이 일어나게 되자 측천무후 마저도 여기에 깊이 감동받아 기뻐하면서 친히 글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③은 일반 대중들이 불도를 열심히 닦은 원인이 한 줄기에 잎이 100개나 달리는 상서로운 꽃 百葉蓮花가 마른땅에서 피었다는 異蹟에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화엄에서 10이라는 수는 盈數로서 無盡을 의미하는 데 10의 제곱인 100이라는 수는 곧 화엄과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 여기서 어려운 경전을 접하기 힘든 대중들에게 불도에 정진할 수 있는 동기를 神異로운 현상이 부여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8과 濟俗 不二心에서는 화엄의 神異로운 현상을 더욱 드러내며 萬法 중 화엄이 가장 우수함을 나타내고 있다.
① 법장스님에게 조서를 내리어 "西明寺에 壇을 세우고 비를 빌라"고 하였다. 長安 邑尹 張魯客이 講主가 되었다. 매일 밤마다 齋戒하였던 바, 7일도 다 못되어 비가 흡족하게 내리었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② 景龍 2년 한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법장스님에게 命하여 "백 명 법사들을 薦福寺에 모와서 法으로써 기도하라"고 하셨다. 7일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큰비가 내렸다. 10일이 지나자 모두들 만족하다고해서 장문을 올려 보고하였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③ 藍田山 悟眞寺에 龍이 산다는 못에 가서 法術을 행하였던 바, 10일도 못되어 큰 눈이 내렸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④ 어제 사신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법사가 焚香을 겨우 마치자 바로 단눈이 내렸다"고 하였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⑤ 이튿날 아침에 그는 얼굴이 갑자기 변하여 수염과 눈썹이 손만 대면 떨어지며 온 몸에 부스럼이 생겨 가지고 와서 그 잘못을 뉘우치며, 법장스님에게 『화엄경』 백 편만 읽어 주기를 애원하였다. 經을 반도 못 읽어서 形體가 전과 같이 회복되었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⑥ 법장스님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十一面 道場을 세우고 觀音像을 모셔 놓았다. 道를 행한지 며칠만에 오랑캐들은 王師중에서 무수한 神王을 보기도 하고 … 두려워서 나아가지 못하였는데, 한 달만에 승전보를 알려왔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⑦ 이때 법장스님은 大崇福寺의 주지였는데, 이에 應大德 綱律師 등 열 사람과 더불어 塔所에 이르러 七晝夜 동안 道를 행한 연후에 열었는데 신기한 光明이 휘황하고 찬란하였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⑧ 법장스님은 옛적에 일찍이 손가락을 태웠고, 이제 다시 肝臟이 부서지는 듯이 손에 사리를 바쳐 들고 誓願을 일으켜 道人과 俗人에게 보여 주었다. 사리가 손바닥 위에서 光明을 발하여 먼 곳과 가까운 곳이 환히 비치었다. 그 福力에 따라 하늘의 특수함을 느끼고 보았다.(『법장화상전』, 其傳 八科)
『법장화상전』은 이전의 법장전과 다른 새로운 사실과 방식으로 법장의 전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특히 법장의 종교적 靈異性을 많이 부각 시키고 있다. 조칙에 의해 사찰에 기거하며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기도 하고 기후의 불순함을 바로잡고자 하는 등의 신통력을 발휘하는 면이 강조되어 있다. 최치원이 자료로 삼은 기본 자료가 그런 것을 중심으로 서술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종교적 영이성이 불교의 중요한 한 요소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화엄사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종교적 이적까지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 『法藏和尙傳』의 성격
『법장화상전』의 성격을 검토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 金福順,『新羅華嚴宗硏究』, 민족사, 1990, pp.211-212.
첫째, 撰者가 유학자이므로 해서 傳의 체제와 내용이 佛敎經典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儒敎經典 기준으로 傳을 쓴 것처럼 수식되어 있는 점이다. 최치원은 司馬遷의 '立傳基準'이라든가 春秋에 나오는 德·功·言의 三立에 맞춰 傳의 체제를 꾸민 듯하지만, 체제는 華嚴三昧觀 가운데 發菩提心章의 直心을 따르고 있고, 내용은 『연의초』 등에서 다수 옮겨온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은 質·量面에서는 물론 구성방법 등에서 기존의 僧傳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은 이전의 많은 傳과 碑를 망라하여 법장의 생애를 10科로 저술한 것이어서, 1680년 청나라 續法에 의한 『五祖略記』의 『法藏傳』의 모델이 될 정도였다. 또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최치원이 唐에서 바로 돌아와서 찬술한 三禪師碑文과는 달리 만년에 해인사에 은거해 있으면서, 『演義 玄談』 등의 『화엄경』 강의를 듣고 이 傳을 草하였다. 따라서 『60화엄』 譯經의 경우에 그 주체를 불타발타라가 아닌 廬山 慧遠으로 설정하는 등 그 나름의 독자적인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한 점이다. 이러한 점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저술한 『법장화상전』의 史的位置를 신라가 中國年號인 永徽를 처음 사용한 것에 비견할 정도로 자부하게 하였다.
셋째, 신라하대에 종교관계자료가 희귀하기 때문에, 이 傳이 당시 불교계, 특히 화엄관계의 상황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자료적인 성격을 가진 점이다.
이는 傳의 내용과 『演義 』와의 비교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당시 신라사회에 『演義 』가 널리 유포되어 있어 이 당시 華嚴敎義에 징관교학이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으리라는 점과 傳의 저술동기가 華嚴宗·法相宗·禪宗 등이 시대조류와 함께 난립해 있어 화엄종이 기존의 세력을 확인하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 등 당시 불교계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법장화상전』 검토에서 『법장화상전』 기사의 정확성과 독자적인 서술방식, 역사자료로서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고 또한 법장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첫째, 종래 법장의 이미지, 즉 화엄종의 대성자이자 교학자로서의 법장의 이미지가 아니라 종교적인 신비함을 행하는 영험자로서의 측면을 갖춘 인물로 전해지고 있는 점, 둘째 한 인간의 생애를 불교사상의 내용에 입각하여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와 같은 법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법장이 전제정치 체제를 가진 무후의 불교보호에 편승하여 武周朝라는 국가권력의 지지를 받고 화엄교학의 성립이라는 면에서 전적으로 유식을 비판하고 지엄을 보호하는 시각을 갖고 오로지 지엄이라는 한 스승만을 섬겼다는 비판적인 법장의 인물상을 어느정도 희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법장의 종교활동 중 靈驗性과 神異性을 부각시켜 새로운 法藏觀을 세웠다는 점에서 『법장화상전』의 가치는 재평가 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2. 如來藏과 性起
법장의 성기설은 지엄의 성기설을 기초로 삼아 성립했고, 지엄은 또한 지론종 남도파 혜원의 '性'에 대한 해석을 계승하고 있다. 따라서 법장의 성기설은 혜원과 지엄으로 전승되는 사상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혜원의 性에 대한 해석은 제8眞識을 佛性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원인과 근거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하여 지엄의 性에 대한 해석은 因果의 두 측면을 포함하면서도 결과의 측면에 중점을 둔다. 나아가 지엄은 성기의 해석가운데 '起'의 의미를 중생 각자의 '心地에 現在할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지엄은 여래장이나 불성 대신에 '心地'라는 구체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성기설이 혜원의 이론적 교학에서 벗어나 실천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법장의 성기설은 지엄에 비하여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법장의 성기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그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 혜원은『大乘義章』1, 대정장 44, p.472上中에서 佛性의 '性'에 대한 해석을 네 가지 의미 즉 種子因本義, 體義, 不改義, 性別義로 설명한다. 이 네 가지 의미 가운데 화엄성기의 '性'의 해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體義'와 '不改義'이다. 본체의 뜻은 구체적으로 眞識心, 法身, 佛性, 諸法의 自體를 말하고, 바뀜이 없다는 뜻은 구체적으로 因體不改, 果體不改, 因果自體不改, 諸法體實不改를 말한다.(鎌田茂雄,「性起思想の成立」『印度學佛敎學硏究』5-2, 1957, p.523) 이러한 혜원의 性에 대한 해석은『대지도론』31, 대정장 25, p.292中의「復次性名 自有不待因緣 若待因緣則 是作法不名爲性」이라는 性의 설명을 不變 不改의 의미로 발전시킨 것이다. (酒井得元,「存在と佛性」『印度學佛敎學硏究』4-2, 1956, p.44)
) 吉津宜英, 「緣起と性起」『東洋學術硏究』22-2, 東洋學術硏究所, 1983, p.61.
법장은 『探玄記』「敎起所由」의 제7 開發故에서,
開發故란 중생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여래의 藏, 성기의 공덕을 개발하여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이것으로 수학하여 무명의 껍질을 파하고 性德을 顯現케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 『탐현기』1, 대정장 35, p.108下.
라고 하여 여래장과 성기를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圓敎에서 설하는 佛性은 因果를 갖추며 性相이 있으며 圓明備德한 것으로 「성기품」의 것과 통한다고 본다.
) 『탐현기』1, 대정장 35, p.117下.「若依圓敎衆生佛性 具因具果 有性有相 圓明備德 如性起品如來菩提處說」, 『오교장』4, 대정장 45, p.507上.「九者唯心廻轉善成門 此上諸義 唯是一如來藏 爲自性淸淨心轉也 但性起具德故 異三乘耳 然一心亦具足十種德 如性起品中說」
법장은 『탐현기』에서 성기를 열 가지 측면(一分相門·二依持門·三融攝門·四性德門·五定義門·六染淨·七因果·八通局·九分齊·十建立)으로 분석하여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먼저 分相門에서 性起의 性을 理·行·果의 세가지 종류로 나누고, 그 性에 따르는 起의 의미를 了因顯現, 聞熏資發, 應機化用의 세가지 相으로 나누고, 그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탐현기』16, 대정장 35, p.405上.
性에는 理·行·果의 세 종류가 있고, 起에도 또한 셋이 있다. 즉 理性은 원인에 대한 깨달음에 의지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起라한다. 行性은 훈습력에 의지하여 결과의 발생을 돕기 때문에 起라 한다. 果性이 일어남은 이 果性에 다른 본체가 없어서 그 理와 行이 함께 修生을 갖추어서 果位에 이를 때, 합해서 果性이라 한다. 그 근기에 따른 작용의 변화를 起라한다. 三位가 각각 性과 起를 갖추기 때문에 性起라 한다.
) 上同.
여기에서 법장은 理性起, 行性起, 果性起 모두를 性起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세가지 입장은 서로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行과 理, 行과 果, 理와 果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다. 理性起는 因位의 관점이라면 行性起는 聞熏과 發生의 과정에서의 내용이며 果性起는 理와 行의 修生을 겸하여 果位에 이르러 化用에 應機함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71.
分相門에서 법장은 理·行·果의 佛性義에 연원하는 개념들을 성기로 연결시키면서 이들을 다시 제2 依持門에서 정리하고 있다.
즉, 行證理性의 입장에서 보면 理를 性이라 하고 行을 起라 하여 이는 보살의 위에 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법장은 圓證成果의 입장에서는 理行을 性이라 하고 果成을 起라 하여 佛自德에 통한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지엄이 普賢은 因으로 하고 十佛境界를 果로 한다는 것과 軌를 같이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법장은 이러한 맥락을 수용하면서도 "理行圓成之果爲性赴感應機之用爲起"라 하여 이를 唯性起라 하고 있는 점을 보면 理와 行이 원만히 이루어진 果가 性이며 이것이 기틀에 응하는 用을 起라 함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지엄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다시 이를 초월하려는 법장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는 別門을 내세운 초월이 아니고 理行이 徹하여 果用에 이르는 초월이다.
) 『탐현기』16, 대정장 35, p.405上中.「二依持門者 一行證理成 卽以理爲性 行成爲起 此約菩薩位 以凡位有性而無起故 二證圓成果 卽理行爲性 果成爲起 此約佛自德 三理行圓成之果爲性 赴感應機之用爲起 是卽理行徹至果用故起 唯性起也」
또한 법장은 融攝門에서 理·行·果의 삼성기의 관계를 금(金)과 금반지(金 )의 비유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금으로 반지를 만들면 반지는 虛(行)이나 金은 實(理)이다. 반지의 형상이 고정된 불변의 실체가 아님을 안다면 금의 본질로 돌아 오듯이, 虛를 虛로 알면 그 實로 돌아 온다. 그 금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 이것이 性起라고 파악한다. 법장은 이러한 비유를 통하여 금과 금반지 즉 理와 行을 果用 속에 포섭하고 있다. 즉 금반지를 버리고 금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금의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 금반지 속에서 금을 동시에 함께 보는 것, 이것이 眞性의 작용으로서의 果性起인 것이다.
) 上同, 대정장 35, p.405中.
그러면 '如來藏·性起의 공덕을 개발하여 性德을 顯現케'하려는 법장의 의도에서 나타나는 성기와 연결되는 법장의 여래장의 正體는 무엇인가. 自性淸淨圓明體 즉 法性體가 바로 여래장의 正體이다. 이것은 중생의 性起心中에서 法界無 自在法門을 개발하여 顯現케 하며, 『화엄경』에서 微塵을 破하여 經卷이 나온다는 등을 말한다. 이것을 『妄盡還源觀』 사상의 근본인 '自性淸淨圓明體'에서 주목해 보면 법장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문의강목』, 대정장 35, p.493下.「七開發故者謂 開發衆生性起心中法界無 自在法門 令顯現 故下文中破微塵出經卷等可知」
이는 여래장 가운데 法性의 體로서 본래 性이 스스로 만족하여 더러움에 處하여도 더러워지지 아니하고 닦아 다스려도 깨끗해진다고 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自性淸淨이라 한다. 性體가 두루 비추어 어두운 곳이 없으므로 圓明이라 한다. 또한 흐름을 따라 더러움을 더하여도 더러워지지 아니하고 흐름을 거슬러 더러움을 버려도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聖體에 있어서도 더할 것이 없고 凡身에 처하여도 덜할 것이 없다.
) 『妄盡還源觀』, 대정장 45, p.637中.
여기에서 법장의 여래장과 법성의 體를 동격으로 볼 때 이는 染淨, 增感 등의 상대를 초월한 절대적 진실의 세계로써 파악되고 있다. 이는 『기신론』에서 말하는 '摩訶衍의 體로서의 一心'과 동격으로 心眞如와 心生滅을 초월한 근본적 원리인 절대의 일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망진환원관』사상의 기반이 되고 있는 『기신론』에서는 여래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면 '相大는 여래장이니 여래장이므로 생멸심이 있다.'고 하여 여래장을 생멸심 가운데 眞如의 相大로서 위치짓고 있다.
) 小島岱山,「自性淸淨圓明體の成立事情」『印度學佛敎學硏究』30-1, 1981, p.144.
) 『기신론』, 대정장 32, p.576中.
따라서 『망진환원관』과 『기신론』은 다 함께 여래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의미와 내용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기신론』의 여래장을 『기신론』의 一心의 세계로 까지 끌어 올린 것이 바로 법장이다. 그는 『기신론의기』에서,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75.
一心이라 하는 것은 하나의 如來藏心을 이름이니 여기에 두가지의 뜻을 품고 있다. 첫 번째는 體로서 相을 끊은 뜻이니 즉 眞如門으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은 평등한 한 맛(一味)을 말한다. 性에는 차별이 없으니 중생이 곧 열반으로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도 범부와 彌勒이 동일하다. 두 번째는 조건에 따라 일어남과 멸함이 있는 뜻인데 곧 生滅門으로 熏習과 轉依에 따라 더러움과 깨끗함을 이룬다. 더러움과 깨끗함을 이루지만, 性은 항상 움직임이 없고, 오직 움직임이 없으므로 말미암아 능히 더러움과 깨끗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움직임이 없는 곳에 또한 움직이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 『기신론의기』中, 대정장 44, p.251中下.
라 하여 여래장을 절대의 一心에게까지 끌어 올리면서 법장은 一心을 眞心觀에 의하여 여래장으로 규정하고, 眞如에 속함과 동시에 生滅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일심을 상호 동일성과 상호 의존성 즉 진여와 생멸, 불변과 수연으로 영원한 본체와 그 작용으로 나타난 변화하는 현상의 두 측면을 포괄한 통일체로 파악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구체적으로 마음을 永遠의 相과 生滅의 相 두 측면에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여래장의 의미를 단순히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의 의미에서 존재의 근원적 원리와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통일적 원리로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법장이 여래장의 내용을 스스로의 성기설의 설명에 끌어들인 까닭은 혜원에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지엄의 唯淨의 세계를 넘어서서 다시 染淨을 包越하는 새로운 성기의 세계를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법장의 여래장설을 통한 성기의 세계를 엿보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법장이 여래장설을 성기의 세계에 적용하고 있는 것은 법장이 지엄의 성기사상을 넘어서는 중요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지엄이 성기를 唯淨의 果로써 파악하여 그의 법계연기설이 染淨合說로 알려진 혜원의 여래장연기설을 넘어서는 機材로 사용하고 있음과 대비할 때 중요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唯淨에서 染淨의 세계로, 그리고 그 染淨을 包越하는 제3의 세계를 말한다. 법장이 다시 여래장을 그의 성기를 설명하는 배경으로 채택한 이면에는 그러한 사정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한 시각으로 볼 때 그의 果性起는 理性起나 行性起를 떠나 있지 않으면서도 또한 어느 한편에 속해 있지 않은 제3의 성기인 것이다. 그러나 제3의 입장이라 하여 새로운 세계를 다시 설정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染과 淨을 초월하면서도 구체적으로 染淨을 통하여 赴感應機之用으로 살아 움직이는 果因의 성기인 것이다.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76.
즉 법장에 있어서 성기는 모든 현상이 궁극적으로 여래장에 근거하고, 그것은 모든 세계의 궁극적 원천이며, 우주에 있어서 초자연적 현상이다. 법장의 성기설은 여래장연기설에 그 바탕을 두고 있고, 그 결론에 있어서도 여래장연기설의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3. 佛身說과 性起
(1) 佛身과 性起
법장은 그의 성기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첫머리에서,
不改는 性을 말함이다. 작용을 나타내어 起라 칭한 것은 바로 여래의 성기이다. 또한 진리를 如 또는 性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작용을 나타내며 起 또는 來라고도 한다. 즉 如來는 性起인 것이다.
) 『탐현기』16, 대정장 35, p.405上.
라고 하여 법장은 如來(佛)는 性起, 性起는 如來(佛)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것은 일체 중생과 모든 번뇌가 다 성기이며 그러므로 일체가 성기 아님이 없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 上同, 대정장 35, p.406上에서 법장은 '眞性과 所起'라는 표현을 쓰면서 眞性과 所起를 性起의 第九 分齊義로써 정리하고 있다.
「이 眞性이 융통하여 일체에 변만한 까닭에 저 일어나는 바도 또한 일체를 갖추어 分圓이 끝이 없다. 그래서 分處가 모두 다 원만하여 모두 다 무진세계를 갖추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一切時, 一切處, 一切法 등에 변만하여 인다라망과 같이 구족하지 아니함이 없다.
지엄은 『五十要問答』에서 十種의 佛身을 들고 있는데 지엄의 여래관은 거의 법계연기 중에 포함되어 있다. 연기가 가진 의의 외에 여래의 독특한 특색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지엄은 중생이 佛에 轉依하는 근거도 本有·本有修生·修生·修生本有의 理的 의미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 『화엄경오십요문답』上, 대정장 45, p.519中.「無著佛 願佛 業報佛 持佛 涅槃佛 法界佛 心佛 三昧佛 性佛 如意佛」
) 玉城康四郞,「華嚴の性起に就いて」『宇井博士紀念論文集』, 岩波書店, 1951, p.291.
이에 대하여 법장은 所救所斷의 중생에 대하여 能救能斷의 여래를 세우기는 하나 이는 성기의 입장에서 보면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고 能所의 대립을 떠난 絶對能의 세계로 파악한다. 이는 제2 依持門에서 行證理性과 圓證成果의 입장이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고 이를 초월한 "理行圓成之果爲性 赴感應起之用爲起"의 세계에서 容融시키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 『탐현기』1, 대정장 35, p108上.
법장은 기본적으로 지엄의 십불설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법보응의 삼신과 십신을 삼승과 일승에 배대하여 일승의 십신은 법보응으로 나눌수가 없다고 하고 있는 점도 지엄을 계승하고 있다. 더욱이 일승에 의하면 두 종의 십불이 있고 삼세간에 통한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양자의 견해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먼저 『오교장』에서,
) 大谷光眞,「法藏のビルシヤナ佛觀」『佛の硏究』, 玉城康四郞博士還曆記念集, 1977, p.365.
) 『화엄삼보장』上, 대정장 45, p.614上.「若依一乘 二種十佛 旣通三世間」
첫째는 性海果分인데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뜻이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敎와 서로 상응하지 않기 때문으로 즉 十佛의 자체 경계이다. 그러므로 地論에서 因分은 설명할 수 있으나 果分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둘째는 緣起因分으로 즉 보현의 경계이다. 이 둘은 하나로써 전체를 두루 섭수함이 마치 파도와 물의 관계와 같다.
) 『오교장』1, 대정장 45, p.477上.
라고 한다. 이것은 불의 본성의 영역을 果分이라 하고 말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하여 십신 자체의 경계로 한다. 因分은 보현의 경계여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두 가지의 경계는 파도와 물과 같이 두가지가 아니라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법장이 말한 바의 果分不可說, 十佛의 自境界는 본래 인분과는 대치시킬수 없는 절대적 영역이다. 이것은 교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佛이 아닌 우리들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십불이 바로 불가설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미혹된 인간들을 제도하려고 하는 불교의 근본정신을 벗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因에 대치되는 바의 果가 설명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오교장』은 다음과 같이,
) 目幸默僊,「法藏敎學におけゐ因果二分思想」『宮本正尊博士還曆記念論文集』,三星堂, 1954, p.420.
지론에서 因分은 可說이고 果分은 不可說이라 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 『오교장』4, 대정장 45, p.503上.
라고 서술한다. 즉 과분불가설이라면 무엇 때문에 경 속에 佛果를 설명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究竟自在의 果는 아니다. 연에 대하여 形對하는 과, 즉 인을 성립시키고자 하는 과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約緣形對의 과는 상대적인 과로서 인분가설 속의 작용을 나타낸 과라 할 것이다. 여기서 법장의 비로자나불이나 십불도 이 두 종류의 과로서 고찰해 볼수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불의 과분불가설이라는 영역을 인분가설 영역으로 전개해 가는 작용, 결국 교법을 설한다는 것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법장 자신의 비로자나불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盧舍那란 번역하면 光明照이다. 毘는 遍이라 하는데 광명변조를 말한다. 광명에도 두 종류가 있어 하나는 智光이고 또 하나는 身光이다. 지광에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첫째는 법을 비춤에 眞俗을 아울러 비추어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을 비춤에 널리 근기에 응하는 것이다. 신광에도 두 종류가 있다. 먼저는 항상 광명으로 원명무애하고, 다음은 방광인데 광명으로서 驚悟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遍도 또한 두 종류이다. 하나는 平漫遍인데 무애하여 널리 두루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重重遍으로 帝網과 같이 重現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원융하여 각기 전체에 두루하여 이는 제각기 따로 遍照하지 않는다.
) 『탐현기』3, 대정장 35, p.146下.
라 설명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이 '光明의 佛'인 것은 原語(Vairocana)에서부터 당연하지만 이것을 光明遍照라고 해석하여 광명에 대해 智光과 身光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遍照의 遍에 대해 平漫遍과 重重遍으로 나누는 중에 후자를 "帝網과 같이 거듭 나타난다."라고 하지만 이 제망은 인다라망의 것이고 중중무진의 연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종래 청정성과 보편성을 강조한 해석을 버리고 범어에 충실한 해석으로 광명의 보편성을 채용하고 있다 할 것이다.
) 鍵主良敬,「華嚴經におけゐ佛の光明について」『佛敎學セミナ』6, 1967.
『오교장』에서는 십불에 대해 '십불의 자경계'로서 명료하게 과분불가설로 되고 또한 인다라망경계로서도 논할 수 없는 불가설이었다. 이것이 『탐현기』에서는,
十佛에 대하여 말하자면 일체 인다라망의 무변한 세계에 두루하여 念念中에 初初成佛하고 主伴을 구족하여 三世間을 다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두 전후의 무량겁의 시초를 섭수하는 것이다.
) 『탐현기』2, 대정장 35, p.128上.
라고 한다. 십불의 세계에 관하여 분명히 인다라망경계로서 논해지고 있고 불세계를 오로지 무진연기로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법장은 지엄이 말하는 二種十佛說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을 보였을까.
우선 『오교장』에 佛身의 開合을 서술하여,
十佛을 세워서 무진을 나타내는데 이세간품의 설과 같다. 이것은 일승원교에 대한 설이다.
) 『오교장』3, 대정장 45, p.499上.
라고 하여 「離世間品」의 '行境의 십불'을 일승원교라고 한다. 또한 경의 제목을 해석하는 가운데 "佛에 대해 佛義를 해석하는 데도 열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無著佛 등이 그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 『탐현기』1, 대정장 35, p.121下.
여기에 나타난 無著佛 등의 십불은 곧 「이세간품」의 '행경의 십불'이기 때문에 법장이 중시한 것이 어느 쪽의 십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과 동시에 십불이 器世間·衆生世間·智正覺의 삼세간에 통하는 것에도 언급하여 『탐현기』에는 "여래 십신은 삼세간에 통한다."고 하며, 또한 노사나불은 報身이 아니라 人天菩薩 등 一切有情을 포함한 중생세간과 山河大地 등의 非有情을 총괄하는 기세간과 바로 불타의 경지인 지정각세간과 이들 일체에 통하는 十身具足의 法佛身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법장이 두 가지 십불설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십불을 보다 一體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십불을 두 종류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에 대한 두 종류의 특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의미이다.
) 上同, 대정장 35, p.108中.
) 上同 3, 대정장 35, p.146下.
) 계환,『중국화엄사상사연구』, 불광출판부, 1996, pp.324-325.
법장은 불신과 성기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교판적 안목 위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그는 法身에 대하여 설명하는 가운데 진여를 법신으로 삼는 것과, 唯妙智를 법신으로 삼는 것과, 境智를 합하여 법신으로 삼는 것과, 境智의 俱泯을 법신을 삼는 네가지의 경우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네 번째를 頓敎說이라 한다. 이어서 앞의 네가지가 구족함을 법신으로 삼는 同敎一乘이 있고 마지막은 別敎一乘의 법신으로서 이는 言亡慮絶하여 唯證不可思議인 원융무애의 一大 法身이므로 앞의 5說을 초월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의 두가지가 「성기품」에서 설한 바와 같다고 한다.
) 『오교장』3, 대정장 45, p.498下.
여기에서 앞의 5說을 초월한다 함은 別立이 아니라 容融하면서 초월함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이는 "不窮源盡見還歸常斷之談"이며 "生卽不生名爲性起"의 경계이다. 이것에 대해 법장은 『탐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遊心法界記』, 대정장 45, p.649中.
이 圓敎에서는 盧舍那의 果法이 중생계를 갖추었으므로 衆生身 가운데 또한 果相이 있다고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性일 뿐이지 일어남의 뜻은 없게 될 것이니 이 품에서 설한 것이 아니다. …… 圓敎에서는 불성과 성기가 모두 통하므로 성불에 삼세간을 갖추었으며 국토신 등이 모두 佛身이라 한다. 그러므로 오직 佛果에 국한한다 하였으나 非情에 두루 통한다.
) 『탐현기』16, 대정장 35, pp.405下-406上.
三乘에서는 佛性이 有情에 국한한다고 하나 圓敎에서는 "成佛에 三世間을 갖추었으며 國土身 등이 모두 불신이라 한다. 그러므로 성기가 오직 佛果에 국한한다 하나 非情에 두루 통한다."고 하여 소위 초목성불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圓敎一乘은 중생심 가운데 비로자나의 果德을 뚜렷이 갖추어 그대로가 果性顯現하여 있어서 그것이 성기라는 것이다.
) 龜川敎信,『華嚴學』, 京都, 百華苑, 1949, p.114.
이처럼 중생과 국토가 모두 불신이며 그러므로 佛果라 하지만 모두 초목 등 非情에 까지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는 보통 의미의 佛이 아니라 久遠을 통하여 성불해 있는 佛이어야만 한다. 이처럼 실천성에 대한 약점을 지닌 법장으로서 性起의 究極을 佛身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시도는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83.
(2) 舊來成佛論
舊來成佛의 用例가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은 新羅 義湘의 『華嚴一乘法界圖』에서이다. 義湘은 『一乘法界圖』에서 그 첫머리를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으로 시작하여 "舊來不動名爲佛"로 그 끝을 맺고 있다. 의상은 이 舊來不動名爲佛에 대하여,
) 吉津宜英,「 來成 について」『印度學佛敎學硏究』, 32-1, 1983, p.244.
舊來不動은 舊來佛의 뜻이며 이른바 十佛이다. 華嚴經과 같다.
) 『一乘法界圖』, 대정장 45, p.714上.
라고 말한다. 그리고 舊來成佛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묻기를 具縛有情은 아직 다 끊지 못하였으며 보살은 아직 福智를 이루지 못하였다. 어떠한 뜻으로 舊來成佛이라 하는가? 답하기를 보살이 未斷이므로 成佛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보살이 다함을 끊고 福智를 이루어 마쳐야 그때부터 이름하여 舊來成佛이라 한다.
) 上同.
의상의 『法界圖』는 『공목장』에 이르기까지의 지엄의 敎理를 훌륭히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이 舊來成佛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공목장』을 보면 구래성불은 나오지 않지만 '舊來已成'이라고 칭할말한 입장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 판명된다. 예를들면 『공목장』卷1의 「普莊嚴童子處立因果章」에서는 一乘과 三乘의 因果觀이 모두 다르다고 설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凡夫는 普賢의 解行果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물음에,
普賢의 因果는 凡夫世間은 얻을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아직 이루지 못하면 보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이미 이루면 舊來 이것과 같다. 道理時事가 모두 범부의 法과 같지 않다. 本來無物이다. 無物이기에 능히 이룬다. 보현은 범부에 대하여 舊來가 있지 않다. 가히 이룰 바가 없다. 오직 보현이 보현을 望한다. 成을 설하고 不成을 설한다.
) 『공목장』1, 대정장 45, p.540上.
라고 답한다. 여기서 "若已成則舊來如此"는 바로 의상의 舊來成佛과 통한다. 또한 卷4의 「阿僧祇品時劫章」에서는 최후에 一乘의 時劫을 논하면서,
만약 一乘의 義가 되면 곧 無盡劫이다. 무슨 까닭인가 一乘에 의지하면 일체중생은 이미 成佛해서 마침이 된다. 다시 중생은 新新히 성불하는 것이 된다. 또한 學地에 머무르지 않고 正覺을 이룬다. 이것에 의지해서 時分을 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無盡이다.
) 上同 4, 대정장 45, p.576中.
라고 말한다. "一切衆生已成佛竟"의 一句에 앞의 舊來成佛과 같은 意趣를 보이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 吉津宜英,「 來成 について」『印度學佛敎學硏究』, 32-1, 1983, p.245.
의상은 번뇌를 다 끊고 福智를 이루어 마침을 구래성불이라 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는 '一切衆生已成佛竟'이라는 지엄의 成佛趣旨를 살리고, 지엄의 本有·本來·舊來라고 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成佛論을 전개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지엄에게 있어서 修造를 여윈 本有의 세계는 出纏如來의 果性이 在纏位 중의 衆生心 중에 現在해 있는 성기의 세계이다. 「성기품」의 微塵經卷·菩提大樹의 비유를 인용함으로써 중생의 깨달음은 본래적으로 완성되어 있음을 보이고 이로써 本有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상의 구래성불도 바로 成佛論을 통한 성기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 『수현기』3下, 대정장 35, pp.62下-63上.
) 전해주,『의상화엄사상사연구』, 민족사, 1994, p.147.
그리고 의상의 '初發心時便正覺'은 『화엄경』「梵行品」의 '初發心時便成正覺'에서 인용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의상에게 있어서 이 初發心時便正覺의 信滿·住初成佛이 구래성불로 불리고 있다. 왜 初發心時便正覺이 구래성불로 불리고 있는가? 의상은 舊來佛이라고 하면서, 어째서 또 초발심 때에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가? 의상의 법문을 받아 적은 『道身章』에서는 舊來佛을 從古是佛로 표현하면서, 예로부터 佛인데 초발심 때에 佛이 된다고 한 것은 發心 때에야 바로 그런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꿈속에서 뛰어다니나 몸은 그대로 고요한데, 아침에 깨어나서야 비로소 뛰어다닌 것이 곧 누워 있었던 것임을 바로 알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러므로 초발심에 成佛하나 그대로 舊來佛인 것이다. 여기서 舊來佛의 性起世界에 悟入하는 데 發心이 근본이 됨을 볼 수 있다. 의상이 강조하고 있는 실천수행을 통한 증득의 세계가 本來不動인 舊來佛의 세계이며 十佛의 세계이니 곧 如來(性)顯現의 性起임을, 의상은 단적으로 "行行本處 至至發處"라고 설파하고 있다.
) 『法界圖記叢髓錄』上1, 한불전 6, p.784上.
) 上同, 한불전 6, p.790上.「舊來不動名爲佛者 初起法字 終至佛字 初起終至 是一處故也 是以和尙所云 行行本處 至至發處 蓋此意也」
) 전해주,『의상화엄사상사연구』, 민족사, 1994, p.148.
법장은 의상의 『법계도』의 구래성불론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상의 『법계도』 영향은 법장의 최초 저작인 『오교장』에서 특히 十玄門의 법계연기의 十錢 비유 등의 항목에 역력하게 나오고 있지만 舊來라고 하는 용례도 같다. 그러나 『오교장』에서는 舊來成佛이라고 하는 용례는 보이지 않는다. 『오교장』과 『탐현기』의 중간에 위치한 『華嚴經旨歸』의 十門分別의 第九明經益은 다시 一見聞益 二發心益 三起行益 四攝位益 五速證益 六滅障益 七轉利益 八造修益 九頓得益 十稱性益의 十利益으로 전개하지만 그 최후의 稱性益은 결국 本性에 칭하는 이익을 이야기하고 있다.
) 吉津宜英,「 來成 について」『印度學佛敎學硏究』, 32-1, 1983, p.247.
十稱性益은 이 普法에 의지하여 일체중생이 모두 그 本性에 稱하지 않는 것이 없다. 佛의 果海中에 있어서 곧 舊來益을 마쳐서 다시 새롭게 되는 것이 없다. 성기품에서 말한 거와 같다. 佛子야 如來身中에 모든 일체중생이 보리심을 일으켜서 보살행을 닦고 등정각을 이루는 것을 본다. 내지 일체중생의 寂滅涅槃하는 것을 보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모두 一性으로써 無性이기 때문이다. 내지 이르되 일체의 如來는 無極의 大悲로 중생을 度脫한다. 해석해서 이르기를 중생이 舊來同佛이라 말하는 것은 이 無極大悲이다.
) 『華嚴經旨歸』, 대정장 45, p.596中下.
의상의 『법계도』의 得益이라고 한 것은 구래성불이지만 이 『화엄경지귀』의 一文과 連關하고 있다. 그러나 『법계도』의 全篇이 『십지경』 및 『십지경론』에 근거하고 「성기품」 등이 인용되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구래성불에 관해서 「성기품」이 인용되어진 것은 아마 이 『화엄경지귀』가 처음일 것이다.
「성기품」의 입장에서 인용되었던 것은 十門의 第七菩提中의 第五段, 법장의 命名에 의하면 '現因果'라고 말하는 一段에서 如來出現의 成正覺에서는 일체중생도 發心修行菩提涅槃한다. 그것은 如來身과 衆生이 一性이고 無性이기 때문이다. 여래는 그와같이 正覺에서 無極의 大悲에 의해서 중생을 度脫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화엄경지귀』는 本性·法界에 일치하는 이익 즉 최상의 공덕이라고 표현하지만 중생의 입장에서는 舊來同佛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화엄경지귀』를 계승해서 『탐현기』의 「성기품」 주석에서는,
菩提身은 衆生과 같기 때문에 이러한 까닭으로 중생은 모두 가운데에 나타난다. 저 所現과 能現은 동일하다. 이러한 까닭으로 중생은 성불하지 않음이 없다.
) 『탐현기』16, 대정장 35, p.413中.
라고 말한다. 그러면 중생의 成佛은 現實의 事實로 해서 되는 것인가 아니면 理論上의 理想態로 해서 되는 것인가라고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그 의문에 대해서 법장은 五敎判 각각의 成佛論을 나타내고 지금의 成佛論은 別敎一乘 결국 第五圓敎의 입장의 것이지만 또 다른 표현을 하면,
만약 圓敎인즉 일체중생은 모두 舊來發心도 또한 마쳤고 修行도 또한 마쳤고 成佛도 또한 마쳤다. 다시 새롭게 이룰 것이 없다. 理事를 具足하는 것이 이 經文과 같다.
) 上同, 대정장 35, p.413下.
라고 말한다. 이때 舊來成佛이 보여진다.
一切가 모두 成佛하고 舊來成佛이라면 무슨 까닭으로 발심수행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만약 成佛門中이라면 모두 成佛한다. 만약 修行門이라면 모두 修行한다. 만약 發心門이라면 모두 發心한다. 만약 이와 같음을 모두 여위면 곧 空하여 있을 바가 없다. 大緣起門에 准해서 이것을 생각해라.
) 上同.
라고 답한다. 이 一文에 의해서 앞의 舊來成佛이 六相十玄이라고 불려지는 내용을 가졌던 法界緣起(大緣起)를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판명된다. 이 경우 모두의 '彼所現同能現'이라고 하는 것도 同體緣起에 유래한 것이다. 화엄의 成佛論이라고 말하면 一念成佛이라든가 信滿成佛등의 입장이 널리 전해지지만 성기사상의 極限이라고 해서 如來의 大悲性을 표현한 舊來成佛도 법계연기에 근거하는 성불론이라고 해서 주목할만할 것이다.
) 吉津宜英,「 來成 について」『印度學佛敎學硏究』, 32-1, 1983, p.248.
법장이 의상의 견해를 지극히 존중하였던 사실은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거니와 의상을 통해서 중국초기 화엄의 정수를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智儼-義湘-法藏의 교학적 계보를 그릴수 있고 성기의 측면에서도 의상의 구래성불은 그대로 법장의 중요한 줄기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88.
4. 法界緣起說과 性起
(1) 法界緣起의 意義
法界緣起라는 용어는 法界와 緣起의 합성어다. 그러므로 법계연기의 뜻을 밝히기 위해서는 법계의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계에 대해 지엄은 『수현기』에서, 法과 界에 각각 三義가 있다고 했는데, 법장은 그것을 進一步시켜 『탐현기』에서,
) 『수현기』5下, 대정장 35, p.87下.
法에 세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自性을 지니는 의미이며, 둘때는 軌則의 의미이고 셋째는 意根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界에도 역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因의 뜻이니 의지하여 성스러운 길을 생하기 때문이다. …… 성스러운 법은 이러한 대상에 의지하여 생하는 것이다. 이 중에 因의 의미는 界의 의미이다라고 하였다. 둘째는 性의 의미이니 이는 모든 법이 의지하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 경의 위 본문에서 法界와 法性을 분별하는 것도 역시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分齊의 의미이니 모든 緣起가 서로 뒤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 『탐현기』18, 대정장 35, p.440中.
라고 설하고 있다. 즉 法에는 自性을 가지는 뜻, 軌則의 뜻, 對意의 뜻의 三意가 있으며, 界에도 因·性·分齊이 三意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법계에 대한 지엄이나 법장의 설명은 법계에 대한 정의에 그치고 있을 뿐, 그 내용이나 체계에 있어서 四種法界나 法界緣起에까지 연결되고 있지는 않다. 지엄이나 법장의 해석을 보다 명확하게 체계화시켜 四種法界로 조직화한 것은 징관이다. 그는 『大華嚴經略策』에서 界를 두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事에 입장에서 보면 分의 의미이며, 理의 입장에서 보면 性의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緣起의 諸法은 事의 입장에서 보면 천차만별로 서로 다르게 獨存하고 있기 때문에 界는 分의 의미가 되지만, 理의 입장에서 보면 不變하는 性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 『大華嚴經略策』, 대정장 36, p.707下.
이와 같은 징관의 해석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界를 事法界와 理法界의 입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며, 둘째는 界속에 分과 性의 두가지 의미가 동시에 交徹하고 있다고 해석한 점이다. 前者의 입장에는 四種法界說이 전제되어 있고, 後者의 입장에는 因果同時나 主伴具足이라고 하는 법계연기사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李道業,『華嚴經思想硏究』, 민족사, 1998, p.243.
界를 事와 理의 입장에서 설명한 후 징관은 事와 理의 交絡에 의해서 事理無 法界와 事事無 法界의 四種法界가 성립한다고 말하고 있다.
四種法界에 대해 징관은 『華嚴經行願品疏』에서,
법계연기는 다시 二門을 여니 하나는 合을 열고 둘은 相을 해석한다. 처음의 緣起法界는 界도 아니며 不界도 아니다. 法도 아니며 不法도 아니다. 이름(名)도 모양(相)도 없지만 억지로 이름을 붙인다면 無障 法界라 할 수 있다. 이 무장애법계는 寂寥虛曠하고 深包博해서 萬有를 總該한다. 그러므로 一心이라 한다.
) 『行願品疏』1, 卍속장경 7, p.249左上.
라고 설하고 있다. 징관은 법계연기에서의 법계란 곧 무장애법계라고 말하면서 법계에는 事法界·理法界·無障 法界의 三種이 있는데, 무장애법계는 또 事理無 法界와 事事無 法界의 二法界로 나뉘기 때문에 결국 법계에는 事法界·理法界·事理無 法界·事事無 法界의 四種法界가 있다고 한다.
) 上同.
지엄은 『一乘十玄門』에서 법계연기란 법계 자체의 因과 果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서 因은 普賢이며 果는 十佛의 경계라고 설명한다. 지엄은 十佛의 경계인 果分은 언설이 끊어져 설명할 수 없고 보현의 경계인 因分에 대해서는 異體門과 同體門의 二門으로 나누어 諸法의 無 를 설명하고 있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법계연기는 自在無窮한데 요약하면 十佛의 경계와 普賢의 경계다. 十佛의 경계는 圓融自在해서 一卽一切며, 一切卽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一乘十玄門』, 대정장 45, p.514上中.
) 『오교장』4, 대정장 45, p.503上.
법장은 또 『탐현기』에서,
圓敎 가운데에 설한 오직 이 無盡法界에는 性海는 圓融하며 緣起는 걸림이 없어서 相卽相入함이 因陀羅網이 거듭거듭 끝이 없고, 微細하면서도 서로 포용하여 主伴이 다함이 없는 것과 같다. 十十法門은 각각 法界에 맞도록 갖추어 아래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 『탐현기』1, 대정장 35, p.116上.
라고 설하고 있다. 즉 『화엄경』에서 설하고 있는 내용은 무진법계다. 諸法은 그 性이 圓融하고 연기함이 無 해서 相卽相入한다. 因陀羅의 網이 重重으로 無際한 것과 같이 主와 伴이 無盡하다고 한다. 제법은 상즉상입하여 주반이 구족하며 重重無盡한 관계 속에 존재하면서도 無障無 하다는 것이다.
諸法의 無 에 관해서 법장은 『華嚴經旨歸』에서 ①性相無 ②廣狹無 ③一多無 ④相入無 ⑤相是無 ⑥隱顯無 ⑦微細無 ⑧帝網無 ⑨十世無 ⑩主伴無 등의 十無 를 말하고 있다.
) 『華嚴經旨歸』, 대정장 45, p.594上.
이와 같은 제법의 무애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 바로 十玄門이며 십현연기무애법문은 법계연기의 終極으로서 事事無 를 설하는 것이라고 징관은 말하고 있다.
) 『연의초』1, 대정장 36, p.9中.
법계연기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이 도표는 이도업,『화엄경사상연구』, 민족사, 1998, p.249를 참조하였다.
① 事法界
法界 四種法界 ② 理法界 ③ 事理無 法界
③ 無障 法界 ④ 事事無 法界
六相圓融 六相 (總相·別相·同相·異相·成相·壞相)
法界緣起 圓融無 一卽一切
十玄緣起 相卽相入 時間的 相卽相入
空間的 相卽相入
主伴具足 主伴具足의 相卽相入
(2) 十玄緣起
화엄교학의 궁극적 목표가 일체제법이 원융무애한 事事無 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같은 事事無 의 내용을 명시한 것이 바로 十玄緣起이며, 이것은 圓敎 즉 別敎一乘으로서의 無盡緣起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 계환,「법장의 一乘思想」『한국불교학』14, 한국불교학회, 1989, p.257.
이러한 事事無 를 설명하기 위해 법장은 먼저 十玄所依의 실체를 ①敎義(가르침과 뜻) ②理事(眞理와 事象) ③解行(이해와 실천) ④因果(원인과 결과) ⑤人法(사람과 존재) ⑥分齊境位(구별된 범위와 존재의 영역과 경지) ⑦師弟法智(스승과 제자, 가르침과 지혜) ⑧主伴依正(중심적인 것과 수반하는 것, 환경과 주체) ⑨隨生根欲示現(중생의 성질·능력과 욕망에 따라 나타나는 것) ⑩逆順體用自在(본질과 작용이 일정한 흐름에 순행·역행하여 자재로이 전개하는 것)의 열가지로 나누어 諸法이 無盡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이 十義가 어떻게 無盡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를 十玄門의 논리적 해석에 의해 고찰해 보자.
十玄緣起門의 總門이면서 第一門인 同時具足相應門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앞의 十義가 同時에 서로 적응하여 하나의 緣起를 성립시킨다. 거기에는 前後와 始終 등의 구별이 없이 일체를 구족하고 자재로이 순행·역행하여 교류하면서도 혼잡하지 않는 연기의 세계이다. 이 연기는 海印三昧를 근거로 하여 뚜렷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 『오교장』4, 대정장 45, p.505上.
해인삼매에 의해 밝혀진 것이 바로 一乘의 義다. 이것은 연기의 극치를 이루는 無盡緣起가 일체의 대립과 모순을 동시에 초월하는 別敎一乘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머지 九門이 다 이 一門에 포함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十玄門의 순서와 내용이 일정하지가 않은데 바로 古十玄과 新十玄의 문제이다. 古十玄에는 『一乘十玄門』·『五敎章』·『金師子章』·『文義綱目』 등이 속하며, 新十玄에는 『探玄記』·『玄談』·『略策』·『圓覺經大疏』 등이 속한다. 여기서는 법장의 『오교장』과 『탐현기』에 한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면 『오교장』과 『탐현기』 兩書의 十玄은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 보자.
『오교장』 『탐현기』
① 同時具足相應門 ① 同時具足相應門
② 一多相容不同門 ② 廣狹自在無 門
③ 諸法相卽自在門 ③ 一多相容不同門
④ 因陀羅微細境界門 ④ 諸法相卽自在門
⑤ 微細相容安立門 ⑤ 秘密隱顯俱成門
⑥ 秘密隱顯俱成門 ⑥ 微細相容安立門
⑦ 諸藏純雜具德門 ⑦ 因陀羅網境界門
⑧ 十世隔法異成門 ⑧ 託事顯法生解門
⑨ 唯心廻轉善成門 ⑨ 十世隔法異成門
⑩ 託事顯法生解門 ⑩ 主伴圓明具德門
이처럼 兩書는 순서의 이동은 물론이거니와 명칭 그 자체가 바뀌어져 있기도 하다. 『오교장』의 ⑦諸藏純雜具德門과 ⑨唯心廻轉善成門이 『탐현기』에서는 ②廣狹自在無 門과 ⑩主伴圓明具德門으로 대체되어 있다. 이렇게 바뀐 내용이 어떤 것인지 살펴 보겠다.
먼저 전자에 대해서,
일곱째는 諸藏純雜具德門인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여러 뜻이 純粹한 것이기도 하고 또는 雜多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의 사람과 법의 의미에 대해 말하면, 만약 사람이라는 시점에서 보면 일체가 모두 사람이니까 순수하다고 할 수 있으나, 또한 사람의 영역은 眞理와 事象 등 일체 차별의 법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잡다하기도 하다. …… 이처럼 緣起의 법이 法界에서 흥기하고 있으나 그 모습은 純雜이 자유롭게 어우려져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 上同, 대정장 45, p.506下.
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諸藏純雜具德門은 理事無 에 통하기 때문에 이것을 『탐현기』에서는 事事無 를 밝히는 내용인 廣狹自在無 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넓다는 것과 좁다는 것은 事象에 대한 분석이지 眞理에 있어서는 넓고 좁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징관은 그 이유를 들고 있다.
) 『연의초』10, 대정장 36, p.75中에서 징관은 이렇게 바뀐 이유에 대해「一行을 純으로 하고 萬行을 雜으로 보면 事事無 의 뜻으로 되지만 만약 一理를 純으로 하고 萬行을 雜으로 보면 事理無 의 뜻으로 되고 事理無 法界에 위배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고쳤다고 한다」
다음은 唯心廻轉善成門의 내용을 살펴 보면,
아홉째는 唯心廻轉善成門인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여러 뜻들이 오직 유일한 如來藏自性淸淨心의 廻轉에 의해 성립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단지 性起의 具德이기 때문에 三乘과 다를 뿐이다. 더우기 一心 자체에도 열가지 德이 갖추어져 있다. 性起品에서 十心의 의미 등에 대해 설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며, 여기서 十을 설하는 이유는 無盡인 것을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一心은 바로 이처럼 자재로울 뿐만 아니라 다함이 없는 가지가지 德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여러 뜻은 모두 이 마음의 자재로운 작용이며, 다시 그밖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唯心廻轉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오교장』4, 대정장 45, p.507上.
라고 하여 여래장의 一心을 떠나서 따로 自性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마음밖에 별도로 對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唯心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탐현기』에서 主伴圓明具德門으로 대체한 것에 대해서 징관은 古十玄의 唯心廻轉善成門은 諸法이 無 인 것을 밝히고는 있으나 無 의 相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十玄門은 현상의 개체와 개체사이의 相卽인 事事無 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 『연의초』10, 대정장 36, p.75中.「主伴一門至相所無 而有唯心廻轉善成門 今爲玄門所以 故不立之而列名次 亦異於彼」
이와 같이 古十玄을 新十玄으로 改變한 이유에 대해서는 오직 징관의 설이 있을 뿐 따로이 근거있는 定說이 확립되지 않고 있다.
十玄門의 第一門이 바로 전체를 포함하는 總門으로서 十玄門 모두는 단지 事事無 를 열가지 입장에서 논술한 것에 불과하므로 어느 하나를 들어도 그속에 나머지가 모두 다 같이 포함되는 원융무애한 관계임을 알수 있다.
(3) 法界緣起와 性起
법계연기설은 화엄교학의 독자적 특성을 나타내 주는 핵심적 교리체계이다. 다시 말해서 성기설이 본체론적 공간의 측면에서 화엄교학의 특성을 드러냈다면, 법계연기설은 현상론적 시간의 측면에서 화엄교학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법장의 법계연기는 지엄을 계승한 측면과 독창적 측면을 결합하여 세가지 범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법장은 화엄적 별교일승의 입장에서 지엄의 染法緣起와 淨法緣起의 구조를 普賢의 경계(因位:染法緣起)와 佛果의 경지(果位:淨法緣起)로 二門으로 계승함과 동시에 독창적으로 染淨合說을 추가하여 보다 완성된 형태의 第三門으로 染淨合說을 체계화 시켰다. 또한 법장은 지엄의 염법연기의 구조에 本末依持門을 첨가하고, 眞妄緣集門을 緣集一心門으로 그 명칭을 바꾸고 있으며, 染淨合說에 4門( 染現淨門·以淨應染門·會染卽淨門·染盡淨泯門)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 『수현기』3下, 대정장 35, p.62下.
) 『탐현기』13, 대정장 35, p.344上中.「法界緣起 略有三義 一約染法緣起 二約淨法 三染淨合說」
) 上同, 대정장 35, p.344中.
법장은 법계연기를 세 가지 범주 즉 삼분법계연기로 나누고 있지만, 염법연기와 염정합설의 두 가지 범주에 대해서는 다만 "다른 곳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고 언급할 뿐 그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법장의 염법연기의 구체적 내용은 지엄이 「십지품」 第6現前地의 12연기설에 대한 註釋으로 제시한 일심연기설의 총괄적 해석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즉 일심의 세 가지 연기적 측면(末分化의 총체적 眞妄和合의 측면, 妄心의 측면, 眞心의 측면)과 본체와 현상, 주체와 객체의 不一不二의 상호 의존관계를 그 내용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법장의 염법연기는 일심의 세 가지 작용 즉 망식연기와 진망화합연기 그리고 진식연기를 종합했다고 볼 수 있다.
) 上同.「三初中有四門… 如別說…三染淨合說…亦如別說」
법장이 제시한 정법연기의 네 부분은 지엄을 계승한 것이다. 그런데 지엄이 정법연기를 「성기품」과 「십지품」으로 나누어 포함시키고 있는데 비하여 법장은 모두 「성기품」에 포함시킨다. 이것은 법장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정법연기는 性起的 佛果의 입장에서 설해진 것이다. 이러한 법장의 전개방식은 주로 苦의 원인이나 생사유전의 문제를 다루었던 이전의 염법연기의 형태와는 다른 독창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법장은 『탐현기』에서 정법연기의 네 가지 측면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 『오교장』3, 대정장 45, p.497中.「佛果卽具四義謂 一修生 二本有 三本有修生 四修生本有圓融無 備無邊德」
) 小林實玄,「華嚴の心性論」『南都佛敎』7, 南都佛敎硏究會, 1959, p.36.
첫째 通히 佛德을 판별한다. …… 만약 一切無盡의 德을 갖춘다면, 여기의 본문과 같을 것이니 이 一乘圓敎이다. 둘째 別로 義相을 나타낸 것은 諸佛의 功德이 두가지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修生과 本有를 말한다. 이 둘을 상대하면 모두 四句가 있다. 修生은 信等의 善根은 본래 없는 것이나 지금 있기 때문이다. 本有는 眞如에 恒沙의 性功德이 있기 때문이다. 本有修生은 如來藏이 了因을 기다리는 것이니 본래는 숨었다가 지금 나타나기 때문이다. 修生本有는 無分別智 등이 안으로 眞如에 계합하여 冥然히 一相이 되기 때문이다.
) 『탐현기』15, 대정장 35, p.392上.
여기서 첫 번째 本有는 『대승기신론』의 여래장에 수 없이 많은 성공덕을 구족하고 있다는 설명과 같다. 단지 법장은 진여의 본체적 본유성의 입장에서 성공덕을 해석한 반면에 『대승기신론』은 여래장의 현상적 내재성의 입장에서 성공덕을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修生은 부처님의 교설과 경전 등의 諸緣을 계기로 비로소 작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본유의 존재성에 대한 인식적 계기 또는 실천적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세 번째 本有修生은 번뇌에 감추어진 여래장에 관한 이해를 통하여 깨달음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성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修生本有는 지혜를 통하여 본질적으로 본체와 현상이 하나의 통일체임을 나타낸 것이다. 나아가 법장은 정법연기의 네 가지 측면을 金과 莊嚴具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즉 本有를 금에 비유하면 장엄구의 모습은 匠人의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修生인 것이다. 또한 장엄구의 모습이 만들어짐으로써 금의 德이 드러나기 때문에 修生本有과 동시에, 장엄구는 금으로 이루어졌을 뿐 다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本有修生인 것이다. 법장은 정법연기의 네 부분에 대한 해석과 비유를 통하여 네 가지 뜻은 있지만 그 대상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이고 있다.
) 『대승기신론』, 대정장 32, p.575下.「二者相大 謂如來藏具足無量性功德」
) 『탐현기』15, 대정장 35, p.392上.
법장은 염정합설에 대해서는 염법연기에서처럼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해석하지 않고 있다. 다만 芳樹가 『探玄記南記錄』에서 『대승기신론』의 本覺의 두 구조 가운데 隨染本覺(본각의 작용)의 두 가지 相 즉 智淨相(本覺隨染還淨의 相)과 不思議業相(還淨本覺業用의 相)에 근거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법장의 염정합설이 종합적 형태를 띠고 있지만, 단순히 상대적 입장에서 염법과 정법, 본유와 수생의 두 측면을 결합한 二元的 構造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수생적 측면에서 볼 때, 染現淨門은 염법의 攝末從本門과 상대적이고, 본유적 측면에서 볼 때以淨應染門은 염법의 攝本從末門과 상대적이다. 이러한 상대적 측면은 절대적 입장에 근거하여 會染卽淨門과 染盡淨泯門으로 융섭·통일된다. 따라서 상대적 입장에서 본 연기는 본유와 수생 염법과 정법의 相依性이 존재하지만, 절대적 佛果인 性起의 입장에서 본 연기는 唯淨의 의미로서의 본유와 정법으로 回歸하는 의미로서의 염정법 그리고 정법을 現成하는 契機的 의미로서의 염법의 성격을 각각 지닌다.
) 坂本幸南,「法界緣起的歷史形成」『華嚴典籍硏究』, 大乘文化出版社, 1976, pp.197-198.
) 石橋眞誡,「華嚴の緣起說」『印度學佛敎學硏究』31-1, 1982, p.268.
이상 법장의 법계연기를 도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緣集一心門
染法緣起 攝本從末門
攝末從本門
本末依持門
本有
法界緣起 淨法緣起 修生
本有修生
修生本有
染現淨門
染淨合說 以淨應染門
會染卽淨門
染盡淨泯門
지엄은 법계연기를 自體因果로 나눌 때 因은 方便緣修體窮位滿으로서 보현은 因에 해당하며, 果는 自體究竟寂滅圓果라 하여 十佛境界를 一卽一切로서 十佛世界海 및 「離世間品」에 해당한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十佛境界가 성기의 다른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보현을 因, 성기를 果라 하면서도 이들 보현성기를 합하여 '無盡圓通究竟宗'이라 하여 일승화엄의 중심으로 삼은 것이 지엄의 입장이다.
) 『일승십현문』, 대정장 45, p.514上中.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68.
이러한 지엄의 입장을 법장은 우선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장은 『탐현기』「십행품」 제17에서 普賢圓融之行이 不思議함을 10종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第2甚深故를 보면,
) 『탐현기』6, 대정장 35, pp.217下-218上.「廣大故 甚深故 殊勝故 攝位故 證理故 斷障故 利他故 圓融故 重成故 成果故」
廣大行이므로 思數가 모두 自性이 없어 眞如와 같다. 저 行의 相이 완연하여 잃지 않아서 이 성기의 行이므로 不思議이다.
) 上同, 대정장 35, p.218上.
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법장은 지엄의 설에 따라서 보현과 성기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고 第10成果故에서 "능히 佛不思之果를 이루므로 또한 不思議라 하고 있음을 볼 때 보현을 佛의 果에 대한 因位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장은 보현에 대한 의미에서 보현은 圓因이며 성기는 果라 했다. 이러한 보현의 行의 의미와 성기의 果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 上同.
) 『탐현기』16, 대정장 35, p.403上.
보현은 因에 約하여 있고 성기는 果에 就하여 있다. 보현은 能發이며 성기는 所發이다. 보현은 修生에 通하고 성기는 오직 性起이다.
) 上同, 대정장 35, p.403中.
라고 하면서 보현은 圓因, 성기는 滿果라고 하고 있다. 또한 법장은 불국토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또한 正國은 곧 十佛의 國土요 正土는 곧 十佛의 正報이다. 功德은 곧 性起功德을 말함이며 願은 곧 보현의 願海를 말한다. 이는 圓敎에 約하는 것으로 동일한 無盡大法界緣起이기 때문이다.
) 上同 8, 대정장 35, p.259中.
라고 하여 무진법계연기와 불국토를 연결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성기의 공덕은 十佛의 果의 세계라 할 수 있으나 보현의 願海를 설정하고 있음에서 可說과 인연의 세계에 함께 통하는 법계연기설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법장의 성기사상이 唯淨의 세계이며 보리심에 의한 실천으로 가교를 놓는 지엄의 설과는 달리 현실 이곳에서 果佛의 성기가 顯現함을 강조하고 있다.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67.
Ⅴ. 法藏의 觀法과 性起思想
화엄교학은 '敎卽觀'의 바탕 위에서 이론을 전개한다. 그러므로 그 이론적 전개의 배후에 항상 실천의 체계와 결합한 敎觀相卽의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화엄교학이 난해하고 복잡한 이유도 실천적 관법에 근거하여 그 이론을 전개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敎卽觀'을 통한 교학적 전개라는 측면에서, 법장의 성기설을 여래장연기설의 발전적 형태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철학과 종교의 결합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천태에서는 실천을 止觀 또는 觀心이라는 말로써 나타내고 화엄에서는 실천의 특색을 觀門 또는 觀法이라는 말로 나타낸다. 둘 모두가 실천의 특색을 觀이라는 말로써 나타내고 있다.
) 石橋眞誡,「華嚴觀法の展開」『印度學佛敎學硏究』27-1, 1978, p.267.
화엄종의 觀行으로서는 法界觀·華嚴三昧觀·妄盡還源觀·普賢觀·唯識觀·華嚴世界觀·三聖圓融觀·華嚴心要觀·五蘊觀·十二因緣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내용적으로 분류하면 『法界觀內』 등의 緣起觀을 세우는 관법과 『心要法門』『妄盡還源觀』 등의 性起觀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에 대하여 悟入觀과 性起觀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다.
) 湯次了榮『華嚴大系』p.545, 龜川敎信『華嚴學』p.29, 鎌田茂雄『中國華嚴思想史の硏究』p.559 참조. 그런데 이들 분류는 凝然의 『법계의경』에 나오는 분류를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鎌田茂雄,「華嚴哲學の根本的 立場」『華嚴思想』, 京都, 法藏館, 1960, p.423.
『五敎止觀』이나 『唯心法界記』의 입장은 모두 법계에 悟入케 하기 위한 것으로 얕은 데에서 깊은 곳에 이르게 하는 觀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말한 것이므로 悟入觀, 혹은 緣起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하여 性起觀의 입장에 선 것은 『妄盡還源觀』이라 할 수 있다. 性起觀은 단순히 悟入觀의 究極에 그친 것이 아니다. 불가사의의 세계에서 가설의 세계에로, 一切頓絶에서 자비와 광명의 세계에로 현현함이 성기관의 궁극적 의미이다.
) 鎌田茂雄, 前揭論文, p.428.
법장의 觀法에 대해서는 십중유식관과 망진환원관 그리고 해인삼매를 성기와 접목시켜 법장의 관법과 성기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1. 十重唯識觀과 性起의 상관관계
『화엄경』「십지품」의 '三界唯心'과 '十二起依一心'에 대한 구체적 설명으로 나타난 것이 법장이 제시한 열 가지의 유식관이다. 또한 이것은 유식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유식설의 형태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식학파에 한정되는 狹義의 유식설이 아니라 廣義의 유식설을 말한다. 법장은 『탐현기』에서 열 가지 유식설을 제시하고, 그 구체적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먼저 법장이 『탐현기』에 제시한 열 가지 유식설을 소개하고 그 내용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 『탐현기』13, 대정장 35, p.347上中.
①相見俱存故唯識은 相分(인식의 대상)과 見分(인식의 주체), 즉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동등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서 변현된 三界의 依報·正報인 중생과 기세간도 이것을 만든 八識과 心所의 見相二分에서의 것으로 된다. 『攝大乘論』『成唯識論』 등의 설명이라고 한다.
②攝相歸見故唯識은 유식의 내용에 불과한 相分을 見分 중에서 섭취해 버리고 그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즉 識의 내부에서 心과 境의 관계에 대하여 그 경계를 마음의 내용으로 일원화하는 견해이다. 『解深密經』『二十唯識論』 등에 설명되어 있다.
③攝數歸王故唯識은 마음에 동반한 다양한 종류의 心所(정신작용)는 心王에 의해 일어나고 자체내의 독자적인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심소는 심왕의 功能작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심왕과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이 자체에 해소되어 버린다고 보는 것이다. 『大乘莊嚴經論』에 설명되어 있다.
④以末歸本故唯識은 七轉識이 根本識인 阿賴耶識에 귀결한다는 것이다. 즉 칠전식은 근본식의 功德差別에 불과하고 본식은 별도의 체가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楞伽經』에 설명되어 있다.
⑤攝相歸性故唯識은 아뢰야식으로 작용하는 相은 본래 自性은 없고 無爲如來藏의 顯現이며 모두 性으로 회귀하는 점에 유식의 입장이 있다라고 한다. 『楞伽經』 등에 설명되어 있다.
⑥轉眞成事故唯識은 앞의 ⑤에서는 相으로의 팔식을 性으로서의 여래장에 회귀한다는 것에 대해, 여기서는 眞인 여래장이 이 自性을 지키지 않고 隨緣하여 팔식의 事로 된다는 면을 강조한다. 『楞伽經』『密嚴經』『勝 經』『寶性論』『起信論』 등에 설명되어 있다.
⑦理事俱融故唯識은 如來藏性(理)은 隨緣하여 여러 事相을 이루지만 理와 事의 混融無 에 의해 一心에서 二諦가 방해됨이 없이 기능한다는 것이다. 『起信論』『勝 經』 등에서 설하고 있다.
⑧融事相入故唯識은 앞의 ⑦이 理事無 임에 비해 이것은 事事無 의 유식이다. 즉 理에서 事의 鎔融無 이기 때문에 一의 事가 一切의 事에 相入한다고 하여도 理에 입각하고서의 일이다. 『화엄경』에 설명되어 있다.
⑨全事相卽故唯識은 앞의 ⑧이 사사무애의 用에 대해 相入이라고 한다면 體에 대해서는 相卽이다. 따라서 相卽도 理에 있어서의 事와 事의 상즉인 것이어서 사사무애라 하여도 理와 유리된 것은 아니다. 이것을 事를 다하여 상즉하는 유식이라 하고 一卽多 多卽一로 표현된다. 『화엄경』에 설명되어 있다.
⑩帝網無 故唯識은 앞의 ⑧과 ⑨의 서로 합치되는 관점, 相入相卽을 밝히는 것이다. 거듭 서로 중복되는 관계, 一 중의 一切와 一切 중의 一, 그 一切 중의 一 가운데 一切라는 것은 언뜻 사소하게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중에 무한한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一心은 여래장심이라 한다. 『화엄경』에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十重唯識을 ①에서 ④까지는 유식의 입장으로, ⑤에서 ⑦까지는 여래장연기의 입장으로, ⑧에서 ⑩까지는 화엄의 입장으로 각각 구분지을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법장의 十重唯識은 앞의 四重이 아뢰야식연기설, 가운데의 三重이 여래장연기설, 뒤의 三重이 법계연기설이라는 세 개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아뢰야식연기설에서 법계연기설로 전환할 때, 그 두 개의 연기설을 연결해 주는 중심 軸이 바로 여래장연기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유식의 아뢰야식연기설을 종합하는 화엄 법계연기설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여래장연기설이다. 법장이 여래장연기설의 내용 가운데 여섯 번째의 '轉眞成事唯識'을 제시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의도에 근거한 것이다.
) 陳永裕,「華嚴十重唯識における轉眞成事の一考察」『印度學佛敎學硏究』38-1, 1989, p.242.
법장은 '轉眞成事唯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래장은 自性에 머무르지 않고 조건에 따라 아뢰야식으로 나타나 인식이 주체와 대상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 『탐현기』13, 대정장 35, p.347上.
이러한 법장의 설명에서 여래장이 靜態的 측면에 머무르지 않고 본체에서 현상으로 전개, 현상에서 본체로의 환원이라는 역동성을 발현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것은 법장교학의 특성이 연기설을 중심으로 하여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법장은 『대승기신론』 등의 여래장연기설로부터 그 교리적 근거를 구한 것이다. 따라서 법장교학은 여래장연기설의 교리적 기초에 근거하여 화엄의 핵심적 교리인 성기설과 법계연기설을 체계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법장의 십중유식의 구상은 현상의 相으로부터 여래장의 性으로 깊어져 가며 거기에서 一轉하여 事라고 하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相과 事와는 같은 현상세계를 나타낸다고 해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의미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법계연기의 궁극적 정립은 第十重帝網無 唯識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제10 '心識如來藏法性圓融'이라고 하는 표현이 주목된다. 지금까지의 심식과 여래장을 화엄적 입장인 法性圓融에 의해서 총괄하려고 하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성원융은 성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본각,「華嚴十重唯識觀」『明星스님古稀紀念論文集』, 운문승가대학출판부, 2000, p.425.
또한 법장은 十重唯識을 五敎判에 적용시키면서 十門을 구족한 것은 同敎一乘의 입장이라고 한다. '三界唯一心'의 한 구절을 終敎에 유사한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 법장은 『오교장』의 心識差別의 항목의 원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탐현기』13, 대정장 35, p.347中下.「上來十門唯識道理 於中初三門約初敎說 次四門約終敎頓敎說 後三門約圓敎中別敎說 總具十門約同敎說」
만약 圓敎에 의한다면 바로 性海圓明이다. 법계연기는 걸림 없이 자재로워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며, 主와 伴이 원만히 융화하기 때문에 十心을 설하여 無盡을 나타낸다. 離世間品 및 第九地의 說과 같다. 또한 오직 一法界의 性起心도 역시 十德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性起品의 설과 같다.
) 『오교장』2, 대정장 45, p.485中.
여기서는 원교의 심식으로서 『화엄경』「십지품」의 第九地와 「이세간품」 또는 「성기품」이 해당된다.
여기서 심식은 단순한 영역을 초월하여 法體에서 말하면 性海圓明, 義用에서 말하면 性海는 大海에 비유하여 무한대로 끝없는 법성 그 자체의 세계로서 법계연기의 무애자재한 모습이며, 一卽一切 一切卽一로서의 主伴圓融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一卽一切의 연기의 뜻에서 一心 그대로 十心으로서 無盡을 갖추며 또, 一切卽一의 성기의 뜻에서 一心중에 一切의 德을 갖춘다. 後三重唯識은 성기심의 입장에서 모든 유심사상을 성상융회하여 원교의 유심으로서 하나의 법계성기심으로 설명한다.
) 鎌田茂雄,『佛典講座28 : 華嚴五敎章』, 大藏出版株式會社, 1979, p.328.
법장은 十重唯識觀의 後三重唯識에서 말하고 있는 사사무애유식은 『십지경론』의 '三界虛妄 但是一心作'의 경문이 유식사상에 의하여 識說的 해석으로 사용되었던 교리상의 역사를 일단 매듭짓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십지경론』을 如來藏經典으로 확인하여 終敎에 위치 지우고 있으며 유식사상에서 격리하여 논술하고 있다. 그에게는 '一心作'의 經文은 어디까지나 『화엄경』 중의 「십지품」에서 설하는 사상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유심사상을 표현하는 말로서는 여래장사상을 경과하는 과정을 거쳐 그가 『화엄경』의 經旨로 인정한 사사무애와 법계연기를 설하기 위한 유심론의 근거에 통용하였다. 十重唯識은 그와 같은 목적으로 논술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平川彰·梶山雄一·高崎直道편, 정순일역,『화엄사상』, 경서원, 1996, p.269.
법장이 三界唯心을 주석함에 있어서 유식과 화엄을 통합하는 차원에서 창안해 낸 십중유식관은 화엄의 여러 관법 속에서 심식설을 중심으로 화엄의 법계연기에 나아가는 통로를 밝히고 있다. 또한 유식교학과의 관련 속에서 화엄교학을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법장은 십중유식관을 통해서 「십지품」의 一心을 단순한 유식설에서 觀門的 성격으로 조직화하여 화엄의 唯心說을 집대성시켰다. 여기서 一心은 명확히 성기의 입장을 말한다.
2. 『妄盡還源觀』과 性起의 상관관계
성기관의 대표적 저술인 『妄盡還源觀』은 五敎의 조직에 대하여 圓敎의 입장에서 체계를 세운 것이다. 『妄盡還源觀』에서는 一體·二用·三遍·四德·五止·六觀의 六門으로 나누고 또 그 六門中에서 別開하여 모두 二十一門이 있다. 이 하나하나의 觀門이 모두 悟入法界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 趣入의 觀門은 緣起 性起의 二門이 있다. 성기의 方面은 衆生心中에 本來具有하는 性海의 實德을 나타내고, 연기의 方面은 重重無盡의 德用을 나타내므로써 衆生成佛의 直路를 나타내었다.
) 장원규,「華嚴學의 大成者 法藏의 敎學思想(Ⅱ)」『불교학보』14집,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1977, p.152.
『대승기신론』의 一心·二門의 구조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妄盡還源觀』은 一體·二用의 근본적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것은 법장의 성기에 대한 해석이 단지 이론적 개념의 정립에 그치지 않고, 自性淸淨圓明體로서의 여래장에 그 기반을 두고 화엄삼매와 해인삼매라는 두 작용의 실천적 관법에서 성립했다는 것을 뜻한다.
『妄盡還源觀』의 구조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妄盡還源觀』, 대정장 45, p.637上中.
一體 自性淸淨圓明體
二用 海印森羅常住用
法界圓明自在用
一塵普周法界遍
三遍 一塵出生無盡遍
一塵含容空有遍
隨緣妙用無方德
威儀住持有則德
四德 柔和質直攝生德
普代衆生受苦德
照法淸虛離緣止
觀人寂 絶欲止
五止 性起繁興法爾止
定光顯現無念止
事理玄通非相止
攝境歸心眞空觀
從心現境妙有觀
六觀 心境秘密圓融觀
智身影現衆緣觀
多身入一境像觀
主伴互現帝網觀
법장은 이 관법에 관하여 止에 의거하여 觀을 일으킨다고 말하면서, 『대승기신론』의 설법을 인용해서 止觀의 法門을 풀이한다. 앞의 5문에 의거하는 것이 바로 觀의 止이고, 일으키는 것은 바로 止의 觀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上同, 대정장 45, p.639下.「起信云 若修止者 對治凡夫住著世間 能捨二乘怯弱之見 若修觀者 對治二乘不起大悲狹劣之過 遠離凡夫不修善根 以此義故 止觀兩門 共相成助 不相捨離 若不修止觀 無由得入菩提之路」
본체(理)와 현상(事)이 걸림이 없다. 法이 이와 같기 때문에 定과 慧가 서로 융섭한다. 分齊를 떠나기 때문에 개체(一)와 전체(多)는 相卽한다. 前後를 초월하기 때문에 大用은 자유자재하다. 막히고 걸림이 없기 때문에 6가지 觀法을 설명할 수 있다.
) 上同, 대정장 45, p.640上.
一體는 自性淸淨圓明體인데 絶對의 體에서 일어난 用은 海印森羅常住用과 法界圓明自在用의 二用이다. 이 二用은 해인삼매와 화엄삼매로써 해석되어 있다. 三遍은 一塵에서 法界에 周遍하여 無盡을 내어 空有를 含容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四德은 경계에 의해 行을 開示하며, 行用은 항상 體로 귀결된다는 점에 五止의 입장이 있고, 또 止에 의해 觀을 일으키는 바가 六觀이다. 行을 圓成하는 것은 止觀이며, 行의 성립 근거는 境이다.
따라서 境 그 자체가 이미 事事無 無盡의 因果周遍에 의하기 때문에, 이 觀門의 一門에 들어감이 바로 그대로 法界를 거두어 들이는 것으로서 前後始終이 없다. 이것은 전체가 각기 一念으로 佛地를 성취하는 삼매로써 설해졌기 때문이다. 性海의 果德에서 설하면 곧 性起觀이요, 重重無盡의 用에서 논하면 곧 緣起觀이자 화엄의 奧旨를 닦는 觀門의 근본 체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 高峯了州, 계환 역,『화엄사상사』, 보림사, 1988, p.196.
법장은 『망진환원관』의 말미에서 이 분류의 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觀門의 名目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만약 一體에 의거하면 이름하여 海印炳現三昧門이라 하고 만약 二用에 맞추어 논하면 곧 華嚴妙行三昧門이라 이름하고 만약 三遍에 의거하여 말하면 곧 塵含十方三昧門이라 하고 만약 四德에 기준하여 이름하면 四攝攝生三昧門이라 하고 만약 五止에 맞추어 말하면 寂用無 三昧門이라 하고 만약 六觀을 취하여 이름하면 곧 佛果無 三昧門이라 한다.
) 『망진환원관』, 대정장 45, p.640下.
여기에서 觀門의 이름이 정해져서 나뉜 것이 아니고 하나로 보면 自性淸淨圓明體요, 둘로 보면 二用이 됨을 알게 된다. 그것은 해인삼매와 화엄삼매이다. 법장은 『妄盡還源觀』에서 自性淸淨圓明體를 여래장 가운데 法性의 體로 규정하고,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一體를 드러낸다 함은 이른바 自性淸淨圓明의 體로서 본래 性이 스스로 만족함이다. 더러움에 처하여도 더러워지지 않고 다스려 닦아도 청정해진다 할 수 없으므로 자성청정이라 한다. 性의 體가 어두움도 없고 밝음도 없으므로 圓明이라 한다.
) 上同, 대정장 45, p.637中.
이와 같은 법장의 설명을 통하여 전통적으로 자성청정심으로 일컬어지는 여래장의 의미가 법성의 개념과 결합하여 형이상학적인 본체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신론』의 自體에 大智慧光明의 뜻이 있어 법계를 편조한다는 의미에 바탕하면서도 절대적 일심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이 體上에 海印森羅常主用과 法界圓明自在用의 二用이 있으니, 이를 해인삼매와 화엄삼매로 나타내고도 있다. 법장은 화엄삼매와 해인삼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華嚴三昧인 法界圓明自在用이란 萬行을 널리 닦되 이치에 맞추어 덕을 이루고 法界에 널리 두루하여 菩提를 증득함이다.
) 上同.
海印이라 함은 眞如本覺이다. 망념됨을 다하고 마음이 맑아서 萬象이 모두 비치는 것이 마치 큰 바다가 바람으로 인하여 파도가 일어나며 만약 바람이 그쳐 바닷물이 맑고 고요하면 象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음과 같다. 기신론에 말하기를 無量功德藏法性眞如海라 하였다. 그러므로 해인삼매라 한다.
) 上同.
二用에서 화엄삼매는 수행삼매라 한다면 해인삼매는 진여본각이므로 果를 나투는 삼매이다. 법장은 이처럼 體에 의하여 用이 일어남을 성기라 한다고 뒤이어 분명히 밝히고 있다.
) 上同, 대정장 45, p.639中.「三者 性起繁興法爾止 謂依體起用 名爲性起」
지엄은 一乘別敎의 교의는 海印定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거기에서 果分不可說로 부터 因分可說의 세계, 즉 果上現의 법문이 나타난다.
止觀의 止의 면에서는 五止를 설하고 있는데 이 五止는 止觀門의 철학적 기초라 해도 좋은 것이다. 眞俗 二諦나 性起, 理事 등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五止의 첫머리 '照法淸虛離緣止'에서는 眞諦의 법은 本性空寂인 것이며 俗諦라고 하여도 '似有卽空'인 것이라 한다. 또한 能緣의 智가 고요한 곳에 所緣의 境도 空이며 能所一體인 곳에 眞諦의 법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本性空寂인 곳에서 만법이 隨緣하여 일어나는 것을 일러 性起라 한다는 것이다. 그는 '性起繁興法爾止'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鎌田茂雄,「妄盡還源觀の思想史的 意義」『中國佛敎思想史硏究』, 東京, 春秋社, 1968, p.374.
세 번째 性起繁興法爾止는 이른바 體에 의지하여 用이 일어남을 성기라 하고 起는 萬差에 응하므로 일러 繁興이라 한다. 古今에 마땅히 그러하니 이름하여 法爾이니 이른바 眞如의 法이다. 法爾가 만법의 緣을 따라 法爾의 歸性을 俱興하므로 가로되 性起繁興法爾止라 한다. 경에 이르기를 無住의 本을 좇아 일체법이 선다 하였으니 곧 그 뜻이다.
) 『망진환원관』, 대정장 45, p.639中.
이는 곧 體에서 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從無住本立一切法"이라 한 『유마경』의 말은 不起의 起이며 不離體의 顯用인 性起의 본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止觀의 觀에 대하여 말하면서 관법의 구체적인 실천을 설하고 있다.
이와같이 본다면 『망진환원관』의 체계 중에서 自性淸淨圓明體는 性起觀이며, 二用이 해인삼매에서 炳然하여 顯現한다면 해인삼매는 性起顯現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3. 海印三昧와 性起의 상관관계
대승경전의 대부분은 삼매에 들어간 이후에 설해진 것이고 『화엄경』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화엄경』에서의 해인삼매는 총괄적인 삼매이고 더욱이 화엄교학의 전체적 구조가 해인삼매를 토대로 구축되고 있는 것은 법장이 『오교장』의 서두에서 밝힌 바이다. 해인삼매는 『화엄경』 및 화엄교학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鍵主良敬,「華嚴三昧について - 周邊の諸問題 -」『日本佛敎學會年報』41, 1966, p.177.
) 『오교장』1, 대정장 45, p.477上.「今將開釋如來海印三昧一乘敎義 略作十門」
그런데 『화엄경』에서 해인삼매를 표현하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데, 「賢首品」·「十地品」·「性起品」 등이다. 「賢首品」에서는 해인삼매의 활동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信을 완성하여 賢首의 位를 얻은 菩薩이 혹은 佛이 되어 法을 설하고, 혹은 중생을 위하여 자유로이 여러 모습을 나투는 것이 海印三昧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보살 示現의 自在性 普遍性이 해인삼매에 의지되어 있음을 밝힌 것이다.
) 『60화엄』6, 대정장 9, p.434中下.
그리고 「十地品」에는 第十地에 도달한 보살에게 현전하는 삼매의 하나로서 해인삼매가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용의 해설은 전혀 없는데 같은 「십지품」에 해인삼매와 관련된 敎說이 나오고 있다. 바로 보살의 실천이 구극적인 지혜의 완성으로 향하는 것을 아뇩달지에서 유출된 水가 드디어 大海에 들어가는 데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어서 보살의 十地가 같은 佛智上에 있고 一切智에서 일어난 것을, 雪山主 등의 十寶山이 한 大海에 있고 大海水를 인하여 달리 나타나 있는 것에 비유한 기술도 보인다. 또한 不壞인 보살의 十地가 大海의 十相에 對應함도 설해지고 있다.
) 上同 27, 대정장 9, p.571下.
) 上同, 대정장 9, p.575中. ①漸次深 ②不受死屍 ③餘水失本名 ④一味 ⑤多寶 ⑥極深難入 ⑦廣大無量 ⑧多大身衆生 ⑨潮不失時 ⑩能受一切大雨無有盈溢.
마지막으로 『화엄경』의 海印三昧 중 「性起品」의 다음과 같은 海印說은 性起와의 관련에서 크게 주목된다.
불자야 비유컨대 大海가 일체 중생의 色像의 印이 되므로 大海를 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如來·應供·等正覺의 菩提도 이와 같아서 일체 중생의 心念과 諸根이 菩提 중에 나타나지만 나타나는 바가 없기 때문에 如來를 一切覺이라 한다.
) 上同 35, 대정장 9, p.626下.
비유하면 모든 大海에 일체 중생들의 色像이 모두 顯現하므로 一切印이라 하는 것처럼 十方世界 중의 일체 중생들이 無上菩提海에 무엇이든, 나타나지 않는 법이 없다.
) 上同, 대정장 9, p.627中.
이는 性起의 種種相 중 如來의 菩提에 대하여 설한 내용으로서, 佛의 구극의 깨달음이 중생들을 다 비추는 것이 大海가 일체 중생의 모습을 비추는 것에 비유되고 있다. 海印은 如來의 無上菩提海로서 果海印이다. 곧 海印三昧는 性起인 것이다.
) 전해주,『의상화엄사상사연구』, 민족사, 1994, p.152.
그러면 법장이 이해하고 있는 해인삼매에 대하여 고찰해 보자. 우선 海印을 설명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海印이란 비유된 이름이다. 修羅의 四兵이 空中에 나열하면 大海內에서 그 像을 印現함과 같다. 보살의 定心도 역시 大海와 같이 근기에 응하여 달리 나타난다. 마치 四兵의 像과 같기 때문이다.
) 『탐현기』4, 대정장 35, p.189上.
우리 중생들의 마음속에는 無明妄念의 풍파가 일어나 순간이라도 그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일단 定心을 얻는다면 모든 사물이 印現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얽매이거나 미혹되지 않는다. 큰 바다와 같이 일체의 제법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만물의 있는 그대로를 명백히 밝혀서 근기에 따라 나타난다. 보살의 定心을 해인삼매로 호칭하는 의미가 여기에서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 계환,『중국화엄사상사연구』, 불광출판부, 1996, p.263.
그러나 『망진환원관』에서 해인삼매를 설명하는 것에 인용한 실차난타의 『80화엄』에서는 眞如本覺의 입장에서 해인삼매를 설명하고 있다. 즉 해인이라는 것은 진여본각이라 하고 일체의 망상을 다한 바 청정한 생명의 當體에는 일체만상이 映現한다고 한다. 즉 해인삼매란 망념을 여윈 一眞如의 세계라는 것이다. 또한 해인삼매중에 童男童女 등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이것은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진여법성체 내에 갖추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 『망진환원관』, 대정장 45, p.637中下.
그러면 해인삼매에 대응하는 화엄삼매를 법장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유심법계기』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解行을 이르기를 화엄삼매라 하며 그 果에 의거한 것을 또한 해인삼매라 한다. 이는 전후가 동시인 것을 이름한 것이며 서로 융통함을 몰록 드러낸 것을 말한 것이다. 마치 큰 바다에 四兵이 나타나매 영상의 종류는 다르나 전후가 몰록 나타남과 같다. 그러나 영상은 하나가 아니더라도 수면이라는 것은 다름이 없다. 영상이 곧 수면이 되니 湛然하고 수면이 곧 영상이 되면 번잡하여 전후가 분명하나 처음과 끝은 분간하기 어렵다. 완연히 繁興하지만 寂然하여 無相하다.
) 『유심법계기』, 대정장 45, p.646中.
여기서 법장은 因位의 삼매를 화엄삼매라 하고 해인삼매를 果로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해인삼매는 해인삼매중에 일체의 相을 현성하고 그 相은 각각 다르나 물은 湛然하여 움직임이 없다. 형상을 물의 입장에서 보면 형상은 번잡하면서도 湛然한 세계를 현출하고 물을 형상의 입장에서 보면 물은 本來湛然한 것이면서도 歷然하여 전후가 있다고 한다. 삼라만상은 개개물물의 독립자재적인 집합이기는 하지만 그 하나 하나가 그대로 湛然한 절대진실의 세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사의하나 性起의 세계에서 볼 때는 了了常知의 本然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법장에 있어서 해인삼매는 성기의 세계 그 자체와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정순일,「화엄성기사상사연구」,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88, p.99.
사실 지엄은 해인삼매를 因位의 입장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법장에 이르러 해인삼매를 화엄교학의 중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장이 말하는 해인삼매는 또한 『화엄경』을 설할 때 佛이 들어 있던 모든 삼매를 別이라 한다면 해인삼매는 總으로서의 근본삼매이며 根本定이라 한다. 그래서 화엄의 법문은 '海印三昧一時炳現의 法門'이라 부른다.
) 지엄은『공목장』, 대정장 45, p.586中에서「一乘同別敎義 依海印定起 普眼所知三乘敎義 依佛後得法住智說」이라 하여 一乘同別二敎는 해인삼매에 의하여 起하며 普眼의 所知라 하여 지엄은 해인삼매를 因位로 보고 있다.
) 법장은『화엄경』을 구성하는 各會에 대하여 제1회는 一切如來淨藏三昧, 제2회는 入定의 三昧가 없으며 제3회는 菩薩無量方便三昧 제4회는 善伏三昧 제5회는 明智三昧 제6회는 大智慧光明三昧 제7회는 佛華嚴三昧 제8회는 如來師子奮迅三昧인데 이러한 삼매를 '別'이라 한다면 '總'인 해인삼 매는 가장 근본적 삼매이며 화엄경 전체의 삼매이다. 그리하여「總이란 이 八會의 人法敎義等 모든 여래의 해인삼매의 顯現하는 바에 의하는 까닭이다」(『문의강목』, 대정장 35, pp.498下-499上)라고 하여 해인삼매를 總의 삼매이며 근본적 삼매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인삼매가 果를 나타낸다고 하는 『유심법계기』의 설과는 다른 입장이 『탐현기』에 보이고 있다.
海印炳現門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는 約果位인데 앞의 차별이 無盡한 교법과 같다. 이는 다 如來의 海印定 가운데서 동시에 확연히 圓明하게 顯現하는 것이다. 근기에 맞추어 교화하지만 마찬가지로 緣起하여 이 가운데 나타난다. 그러므로 오직 이 三昧海를 敎體로 한다. 아래 문장에 一切를 示現하여 남김없이 해인삼매의 勢力 때문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둘째는 約因位인데 요약하면 普賢 등 모든 大菩薩이 바로 이 定을 얻어서 앞의 業用과 같이 또한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十信을 이루면 普賢位에서도 이 定을 얻는다. 현수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 『탐현기』1, 대정장 35, p.119下.
여기서는 해인삼매에도 因果二位가 있다고 한다. 즉 果位는 여래의 海印定을 의미하고 因位는 十信位에서 보현보살이 이 해인삼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래의 海印定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절대 무한한 진실은 언설이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궁극의 근본적 직각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果位에는 無盡의 교법이 해인삼매 중에 있고 因位에는 보현 등 보살들이 해인삼매에 들어서 석존과 같은 작용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 계환,『중국화엄사상사연구』, 불광출판부, 1996, p.266.
그러나 本稿에서는 해인삼매와 화엄삼매를 果와 因으로 파악하는 입장에서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망진환원관』에 있어서도 自性淸淨圓明體의 二用인 海印森羅常住用과 法界圓明自在門 가운데 전자는 해인삼매 후자는 화엄삼매라 하고 있다. 여기에서 一體二用三遍四德五止六觀은 一에서 多로 流出된 것이 아니고 상즉의 논리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전제된다면 해인삼매와 화엄삼매는 自性淸淨圓明體의 果와 因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해인삼매는 『화엄경』에서 설해지고 있는 단순한 佛의 定의 상태는 아니다. 定 자체라 할까 定보다도 더 근원적인 自性淸淨圓明體 그대로의 현현, 즉 성기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해인삼매의 해석을 眞如法性海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비로자나 법신여래의 현현이며 구체적 사물 개개에서 영원의 법신이 나타난 세계로서의 성기이다. 이는 법장이 그의 『화엄경지귀』에서,
) 鎌田茂雄,「華嚴三昧の世界」『中國佛敎思想史硏究』, 東京, 春秋社, 1968, p.422.
) 上同.
이른바 법계에 다하도록 일체 모든 부처가 모두 舍那에 나타나서 함께 이 會에서 화엄을 함께 설한다.
) 『화엄경지귀』, 대정장 45, p.591下.
라고 하는 사고와 통하는 것으로 비로자나 법신의 현현으로서의 해인삼매이며 성기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지엄이 해인삼매를 因位의 것으로 파악한 것에 대하여 법장은 果로서 파악하여 因位에 화엄삼매를 설정한 것에서 법장의 해인삼매를 성기로써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Ⅵ. 法藏 이후 性起思想의 전개
1. 澄觀의 性起思想
(1) 澄觀의 기본적 입장
澄觀의 傳記 및 著作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한 연구가 있다. 그것에 의하면 징관은 당시에 여러 가지의 교학을 공부한 것을 알 수 있다. 징관(738-839)의 字는 大休, 시호는 澄觀, 俗名은 夏侯氏로서 越州會稽에서 태어났다. 9세에 寶林寺 體眞에게 師事받고 11세에 得度하였다. 우선 棲霞寺의 醴律師에게 相部律을 배우고, 曇一로 부터 南山律을 계승하였다. 다음으로 金陵의 玄璧으로부터 삼론을 공부하고 大曆年中(766-779)에는 『기신』과 『열반』을 전해 받았으며 특히 淮南의 法藏 밑에서 원효의 『기신론소』를 배웠다. 다음으로 法詵(718-778)의 거소로 돌아가 『화엄경』을 공부하고 大曆7년(722)에는 慧量에게서 삼론을, 같은 10년(755)에는 蘇州에서 湛然(711-782)으로부터 천태교학의 가르침을 받았다. 다시 牛頭山의 忠과 徑山의 欽, 그리고 洛陽의 無名 등으로부터 南宗禪을 익히고 慧雲에게서 北宗禪을 공부했다고 한다.
) 鎌田茂雄,『中國華嚴思想史の硏究』,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65, pp.151-274.
이와 같은 징관의 수학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화엄과 禪이라고 하는 것이 커다란 과제였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禪·律·天台·三論, 그리고 법장의 화엄, 海東 원효의 교학 등 그 이전의 모든 교학을 집대성한 징관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징관의 저작, 특히 『華嚴經疏』나 그의 復注인 『華嚴經隨疏演義 』 등을 보면 앞서 제시한 모든 교학이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누구로부터 습학하였다는 사실이 문헌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법상유식에도 그 조예가 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교학을 집대성한 것은 사실이나 그 근저에는 법장에 직접 연관되는 화엄교학의 본류를 확인하고자 하는 의욕과 더불어 징관시대에는 커다란 불교운동으로 되어 있었던 禪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모색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平川彰·梶山雄一·高崎直道편, 정순일역,『화엄사상』, 경서원, 1996, pp.320-321.
그렇다면 징관의 禪宗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해 진다. 징관은 五敎判에서 頓敎에 禪定을 배정하고 있다. 징관의 전기에 의하면 南北兩宗의 禪을 상승하였다고 하고 있고 종밀은 징관이 하택종 無名의 法을 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牛頭宗의 禪思想을 수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교학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화엄사상이다. 그는 남북양종의 선을 비판하면서 선을 화엄의 체계속에서 위치를 定하려고 애를 썼다. 또한 오교판에서는 남북양종의 선을 돈교로 일괄처리하고 선종의 眞意에 관해서는 理事無 門에 해당시키고 있다. 즉 화엄의 事事無 에는 아직 따르지 못한다는 것으로 선의 한계성을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징관은 후에 저술된 『華嚴經行願品疏』를 통해 끊임없이 선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心契를 주장하면서 聖敎를 인정하지 않음과, 南北으로 다투고 있음, 慧學을 중심으로 하는 학자는 法性派와 法相派로 나누어 논쟁함, 선을 하는 사람은 漸이다, 頓이다 하고 떠드는 것 등을 비판하고 불법에 悟入하려는데는 定·慧 二門을 구족해야 하며 양쪽을 다 결하면 狂愚이며 단지 한쪽에만 치우치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 鎌田茂雄,『中國華嚴思想史の硏究』,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65, p.495.
) 『연의초』29, 대정장 36, p.224上.
이처럼 징관은 철저하제 모든 것을 비판하면서도 모두를 체계화하여 가는 방법을 취하고 무엇인가 한편에만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不立文字 敎外別傳'의 行이 지나침에 대하여 징관은 화엄교학의 입장에서 엄한 비판을 가하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선으로의 접근이라는 측면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가 『능가경』의 四漸四頓說을 인용하면서 화엄을 頓敎 내지 圓頓이라 하기도 한 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징관의 사상은 후일 종밀의 禪宗觀 형성에도 커다란 형향을 미치게 된다.
淸凉澄觀의 교학은 폭넓은 학문을 섭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영향이 어디에 어떻게 보이고,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하나하나 검토해 보아야 하지만 본절에서는 화엄교학과 선종과의 관련에 기본적인 초점을 맞추면서 징관의 성기사상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징관의 교학적 기초는 唐經에 두고 있다. 징관은 『80화엄』의 주석서인 『화엄경소』에서 '如來性起'를 '如來出現'으로 번역한 것에 대하여 "이것은 晋經에서는 성기라 이름하는 것인데 性字는 義를 더하기는 하나 통하는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性이라는 글자는 그 의미를 보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징관의 敎禪一致의 사상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그가 順宗에게 준 『心要法門』이다. "無住의 心體를 靈知不昧라 하고 心心作佛하여 一心이 곧 佛心이요, 一塵이 곧 佛國이다."라고 설한 것은 화엄의 一心을 靈知의 禪에서 파악한 것이다.
) 『화엄경소』49, 대정장 35, p.872上.
) 『심요법문』, 卍속장경 103, pp.303左上-304右上.
) 高峯了州, 계환 역,『화엄사상사』, 보림사, 1988, pp.216-217.
이처럼 그의 성기사상은 선에 융합함과 동시에 천태교학과도 연계되어 性惡說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요소가 강화되어 觀法을 성기사상에 결합시켜 性起觀이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든 경향은 그의 시대의 사상사적 배경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각에 바탕하여 징관의 성기사상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 玉城康四郞은 그의 논문「性起に就いて」에서 지엄의 실천성에서 법장의 체계성, 그리고 징관에 이르러 다시 실천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2) 四法界와 性起
법계에 관해 地論宗 南道派의 法上(459-580)은 『十地論義疏』에서 법계를 事法界와 眞實法界의 二法界로 나누고, 事法界란 聲聞의 所知며 眞實法界만이 大(乘)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법계를 二種으로 나눈 점에서 보면 四種法界說의 始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淨影寺 慧遠(523-592)은 『大乘義章』에서 『阿毘曇』이나 『成實論』『大品』『法華』 등의 경전은 不眞宗이고, 『화엄경』『열반경』 등만이 眞宗이다. 이들 경의 내용은 法界緣起法門인데 그 行德은 眞性緣起라고 설하고 있다. 혜원은 불교역사상 법계연기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고는 있으나, 그 의미는 眞性緣起를 말하는 것으로 후대에 화엄교학에서 말하는 바의 법계연기와는 거리가 먼 듯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四法界의 최초의 형성은 두순의 『法界觀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두순은 법계를 眞空門·理事無 門·周遍含容門의 三門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 三門에 대해 징관은 『법계현경』에서,
) 『十地論義疏』, 대정장 85, p.765下.「法界有二種 一事法界 二眞實法界 聲聞所知 名事法界 不名爲大 眞實法界以爲大」
) 『大乘義章』1, 대정장 44, p.483中.
) 이도업,『화엄경사상연구』, 민족사, 1998, p.251.
眞空觀은 理法界며 理事無 觀은 이름 그대로 理事無 法界며 周遍含容觀은 곧 事事無 法界이다.
) 『법계현경』上, 대정장 45, p.672下.
라고 설하고 있다. 징관의 四法界 가운데 事法界를 제외한 三法界가 순차적으로 두순의 『법계관문』인 眞空觀·理事無 觀·周遍含容觀에 해당한다.
그럼 징관의 법계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大華嚴經略策』에서 살펴보면,
묻기를 왜 법계라 하며 법계는 어떤 뜻인가. 답하기를 法이란 軌持라는 의미이고, 界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첫째는 事에 대하여 界를 설하는, 즉 分義인데 事에 따라 분별하기 때문이다. 둘째 性義는 理法界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법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둘이 서로 관계하여 이사무애법계를 이룬다.
) 『大華嚴經略策』, 대정장 36, p.707下.
라고 한다. 즉 法은 '軌持'의 뜻이고 界는 두 가지의 뜻이 있어서 '分義'는 事의 입장에서 '界'를 설명하기 때문이라 하고 이것은 事에 따라서 분별하는 의미라 한다. 더욱이 '性義'는 이법계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법성은 불변이기 때문에 界는 性義 뜻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관계하여 이사무애법계를 성립한다는 것이다.
징관은 四法界에 대해서 보다 간단하고 명확한 개념으로 다음과 같이『法界玄鏡』에서 정리하고 있다.
법계란 一經의 玄宗인데, 모두 연기로서 법계의 不思議함을 宗으로 삼는다. 법계의 모습을 요약하면 오직 셋이 있으나, 모두 갖추면 四種이 있다. 첫째는 事法界 둘째는 理法界 셋째는 理事無 法界 넷째는 事事無 法界이다.
) 『법계현경』上, 대정장 45, p.672下, 『연의초』10, 대정장 36, p.72上.
징관에 의해서 체계화된 이와 같은 四種法界說은 그의 『화엄경약책』이나 『행원품소』등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행원품소』에서 징관은 법계를 事法界·理法界·無障 法界로 나누고, 다시 무장애법계를 事理無 ·事事無 法界로 나누어서 四法界가 된다고 한다. 『연의초』에서는 事事의 諸法이 不同한데도 無 한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無 의 모습(相)을 同時具足門 등의 十玄門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징관은 『법계현경』 및 『행원품소』『연의초』에서 법계를 분류하여 四種法界의 형성을 명확히 하면서 諸法이 無 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화엄경약책』, 대정장 36, p.707下.
) 『행원품소』1, 卍속장경 7, p.249左上下.
) 『연의초』1, 대정장 36, p.9上中.
징관은 무장애법계의 무장애의 의미를 설명하여,
無障 는 둘이 있으니 첫째는 위에 性相이 無 하며 둘째는 性으로써 相을 융합하여 重重無 하다. 즉 四法界는 이것으로 아는 바이다.
) 上同 46, 대정장 36, p.357中.
라고 설하여 性相이 融하므로써 重重無 의 의미로 하였다. 또한 징관은 染淨의 연기로써 무장애법계를 설명한다.
이제 또한 染淨을 요약하여 제시하면 一染緣起와 二淨緣起 그리고 三染淨雙融緣起가 있다. 이 三緣起가 각각 四門을 가지는데 染中의 넷이라 함은 一緣集一心門 二攝本從末門 三攝末歸本門 四本來依持門이다. 두번째로 淨緣起에 또한 四門이 있으니 一本有門 二修生門 三本有卽修生門 四修生卽本有門이다. 또한 染淨雙融에 四門이 있으니 一 染顯淨門 二以淨應染門 三會染卽淨門 四染盡淨泯門이다. 이 諸門으로써 內外의 無盡事理를 該하며 또한 無障無 法界大緣起를 병합하여 하나되게 한다.
) 上同 64, 대정장 36, p.513下.
이상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緣集一心門
染緣起 攝本從末門
攝末歸本門
本來依持門
本有門
無障無 法界緣起 淨緣起 修生門
本有卽修生門
修生卽本有門
染顯淨門
染淨雙融緣起 以淨應染門
會染卽淨門
染盡淨泯門
이를 보면 징관 역시 법계연기의 염정에 대한 태도는 지엄과 법장의 전통적 견해를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법장의 견해에 부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성기에 관한 것은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染淨을 통한 그의 성기사상은 추측하기 어렵다.
징관은 무장애법계의 내용이 되고 있는 사리무애법계와 사사무애법계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번째로 事事無 法界를 밝힌다. 經의 旨趣가 義分齊중에 마땅히 분별을 넓히는 것이나 이제 간략하게 밝히면 또한 둘로 나누게 된다. 첫 번째는 無 인 이유를 밝힘이니 事事가 같지 않아서 無 를 얻는다는 것은 理가 事를 융성하는 까닭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句는 理에 의지하여 事를 이룸이니 그러므로 一과 多가 서로 연기가 된다. 이는 오히려 事理無 이니 앞을 밟고 뒤를 일으킴이라 그러므로 擧한다고 한다. 事理無 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事事無 를 얻게 되는데 만약 事가 곧 理에 즉하지 아니한다면 事는 理를 이루지 못함이니 곧 서로 장애함이 될 것이다. 이제 理에 卽함으로 말미암아 無 를 얻는다. 下句는 理로써 事를 융성함이니 그러므로 事가 理融을 얻어 千差涉入하므로 無 라 한다. 이는 事事無 를 바르게 표현한 것이다.
) 上同 1, 대정장 36, p.9上中.
이것은 事와 事가 無 함을 얻는 것은 理로써 事를 융성하기 때문이다. 理에 의지하여 事를 이루기 때문에 一과 多의 緣起가 성립하고 따라서 事理無 에 의하여 事事無 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징관은 사사무애를 이해하는 데에 사리무애를 근본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가 四法界중에서 궁극적인 것을 事理無 라 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事事無 를 극치로 생각했으나 그 근거로서 事理無 를 강조하였을 따름인 것이다. 이는 법장이 사사무애를 중시하던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법장의 화엄이 個物과 個物의 圓融을 보이고 있음은 그의 철학적 입장이 果上現의 法門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했으며 이는 그의 철학이 지니는 整合性에 연유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징관이 事理無 를 중시한 것은 근원과 현상을 함께 중시하며 이를 心性에서 찾으려 했던 실천적 입장이 강화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직면해야 했던 禪의 영향을 입은 것으로 그의 성기설도 이러한 면으로 강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로 판단된다.
) 鎌田茂雄,『中國華嚴思想史の硏究』,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65, p.548.
종래 법장의 화엄과 징관의 화엄과의 相違點은 事事無 로부터 理事無 에의 전개라고 한다. 법장은 果上現의 法門의 입장에서 화엄사상을 전개하였다. 일체가 佛光明의 세계이며 佛의 해인삼매의 세계이므로 거기에 현실이외의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다. 실로 이 事事無 의 果上現의 세계야말로 연화장세계이며 원융무애의 세계이다. 그러나 煩惱充滿한 妄念에 覆障되어 있는 현실의 인간은 穢土의 중생이요 범부이다. 이 현실의 자기가 業報衆生임을 자각하면 본래 중생은 淸淨一心 곧 心性에 지나지 않음을 開悟케 되는 것이다. 그러나 自覺過程을 의식한 징관은 理事無 를 중시하여 行門의 입장에서 화엄교학을 조직하였다. 법장은 성기와 연기와의 관계가 주제로 되었는데 대해서, 징관의 경우는 事理無 의 입장에 입각하여 心性을 보는 態度가 강조되었다. 즉 萬有의 眞性을 吾人의 心性에 就하여 논하므로써 悟人의 法을 云謂하는 性起趣入이라 한다. 즉 징관의 事理無 는 성기 그 자체를 보다 강하게 나타내면서 성기의 의미가 징관에 이르러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징관은 禪이나 天台의 실천적 경향의 영향으로 성기적 입장을 강화하여 事理無 를 강조하면서 근원과 현상을 함께 중시하는 실천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3) 靈知不昧의 一心과 性起
화엄성기사상은 지엄·법장에 의해 확립되고 계속해서 징관·종밀에 의해 天台의 性具에 대하여 화엄을 특색이 있게 하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華嚴宗 再興의 祖師로 숭상되는 징관의 『화엄경』에 대한 견해를 검토하면, 법장이 緣起建立因果爲主인데 반하여, 性起趣入行門爲主를 鼓吹하여 오로지 理事無 의 입장으로부터 『화엄경』의 해석을 시도하였다. 징관의 性起趣入說은 所依經典에 基因하지만 당시 선종과 천태종의 영향도 적지 않다. 징관은 선종의 靈知不昧의 一心과 화엄의 一心法界와 一體無二를 주장하여 서서히 禪徒를 誘引하여 드디어 敎禪和合의 端緖를 여는 데 이르렀다. 이것을 性起修人이라고 한다.
) 장원규,「화엄종의 守成期의 敎學思潮」『불교학보』15집,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1978, p.39.
징관의 성기에 대한 입장은 『大方廣佛華嚴經』의 제목 해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一心은 곧 法界이며 心體는 곧 大이다. 心體가 念을 떠나 허공과 같으므로 心의 相用이 곧 方廣이다. 心을 觀하고 行을 일으키면 華嚴이며 心性의 相을 깨치는 것을 이름하여 佛이라 한다. 그러므로 經에 이르기를 佛心이 어찌 다른 正覺 覺世間에 있으리요? 하니 覺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覺한 바와 같은 것이니 理와 智가 다른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의 圓覺이다. 만약 형상을 奪하여 雙亡하면 곧 覺과 所覺을 멀리 여임이니 無心으로 亡照하여 任運寂知하면 곧 생각생각이 언제나 이 大方廣佛華嚴經의 심히 깊은 性海이다.
) 『행원품소』2, 卍속장경 7, p.258左上.
이처럼 징관은 一心을 법계로 보고 화엄의 요체로 파악하는 것이 성기적 입장이며 이는 敎禪一致의 기본적 시각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一心은 法界, 大는 心體, 方廣은 心體가 念을 떠난 허공 같은 心의 相用, 華嚴은 心을 觀하고 行을 일으키는 것, 佛은 心性의 相을 깨치는 것을 말한다. 곧 無心으로 亡照하여 任運寂知하면 大方廣佛華嚴經의 甚深性海이다. 즉 大方廣佛華嚴經은 性起(甚深性海)다.
징관의 교학은 성기사상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서 그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즉 징관은 화엄의 事事無 緣起를 자기의 一心에 포섭하여 사사무애를 이루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法界의 理性을 찾아 이를 자신의 심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징관은 절대의 一心, 바로 靈知不昧의 一心을 중심으로 華嚴의 性起와 禪의 靈知를 연결시키고 있다. 性起의 心用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징관이 "만약 형상을 잃어 雙亡하면 곧 覺과 所覺을 멀리 여임이니 무심히 亡照하여 任運寂知한다"고 하는 내용으로 이것은 牛頭法融의 "大道는 비고 넓어서 思慮를 絶한다"고 하며 "그대는 다만 任心自在하고 蕩蕩無 하여 任意縱橫하고 諸善도 짓지말고 諸惡도 짓지 말아서 行住坐臥觸目遇緣하면 모두 이것이 佛의 妙用"이라 한 내용과 통하는 것이다.
) 『景德傳燈錄』4, 대정장 51, p.227上.
징관은 성기의 원리에 바탕하여 北宗과 南宗을 회통한다. 北宗은 心不動에서 출발하여 깨달으면 妄念이 不生하고 萬境이 常寂하다고 하고, 南宗은 無念을 얻으면 本智로써 能見하여 佛과 衆生의 本性이 본래 다름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燈과 光明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燈은 體, 光明은 用이 되어서 둘이 아니면서 도리어 둘이다 고 한다. 이것은 性體가 一攝一切하는 원리에 바탕한 것이다. 또한 징관은 南宗과 北宗의 병을 치유하는 원천을 성기의 원리에서 찾고 있다.性體에 의하여 眞知하게 됨을 제시하여 靈知眞心이 木石과 다름을 말하여 南宗의 병을 치유하고, 不起心 不動心을 중히 여기는 北宗에 대하여는 생생 약동한 起의 세계를 제시하여 北宗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연의초』34, 대정장 36, p.261下.
) 上同.
) 上同, 대정장 36, p.262上.
) 上同, 대정장 36, p.261中.
화엄의 一心을 靈知의 禪에서 파악하여 敎禪一致의 사상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答順宗心要法門』에서는 無住의 心體를 禪의 靈知不昧라 고 하면서 靈知不昧는 화엄의 一心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性起와 禪을 연결시키고 있는 『答順宗心要法門』에서 징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龜川敎信,『華嚴學』, 京都, 百華苑, 1949, p.107.
至道는 그 心을 本으로 하고 心法은 無住를 本으로 한다. 無住의 心體는 靈知不昧하다. 性相이 寂默하여 德用을 포함하고 內外를 該攝한다. 능히 넓고 깊으며 有도 空도 아니다. 生함도 滅함도 없으며 구하여도 얻을 수 없고 버리려 해도 떠나지 않는다.
) 『答順宗心要法門』, 卍속장경 103, p.303左上.
'無住心體靈知不昧'·'性相寂默'을 禪的 용어로 본다면 '該攝內外'는 화엄적인 용어로서 대비되면서도 일심에 귀일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기적 특색이 강한 징관의 사상은 다음의 내용에서 선적 요소가 더욱 뚜렷함을 볼 수 있다.
現量에 迷한 즉 미혹과 고통이 紛然하고 眞性을 깨친 즉 空과 明이 廓徹하다. 비록 卽心卽佛이나 오직 증득한 자만이 바야흐로 안다.
) 上同.
이처럼 卽心卽佛의 禪的인 도리를 깨친 자만이 그 실상을 바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징관의 이러한 사상은 곧장 화엄의 무진연기적인 사고에 연결되고 있다.
證入한 즉 妙覺이 圓明하고 本을 깨친 즉 因果가 交徹하니 마음마음이 부처를 作하고 一心이 佛心이 아님이 없어서 處處에서 眞을 증득하면 한 티끌이 佛國이 아님이 없다.
) 上同, p.304右上.
이처럼 因果가 交徹하고 一心이 佛心이며 한 티끌이 佛國이라 하여 화엄의 논리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迷하면 사람이 法을 따라 法法이 만가지 차이가 있어 사람마다 같지 않고, 깨치면 法이 사람을 따라 사람사람이 일치하여 일만 경계를 融會하게 된다"고 하여 깨침의 실천을 전제하고 있다.
) 上同.「迷則人隨於法 法法萬差而人不同 悟則法隨於人 人人一致而融萬境」
이는 지엄에서 강조되었다가 법장에서 整合性에 가리웠던 것이 다시 크게 강조된 것으로 선사상을 수용함에 따라 그의 성기사상은 실천성이 강화되었고 따라서 지엄의 성기와 상통하는 일면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지엄의 경우에는 禪的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보리심을 강조하여 智를 드러냈으나 징관의 경우는 당시에 발달한 선사상이 이러한 것을 해결해 주고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실천성의 강화는 성기의 입장에 따라 닦음의 단계를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그것은 바로 心源을 造하여 無知無得하고 不取不捨하며 無對無修로서 '無心亡照'하며 '任運寂知'하면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 모두가 뚜렷한 行이 아님이 없다. 여기에서 '圓起'는 성기에 다름이 없으며 이렇게 될 때 '以知寂不二之一心'에 도달하게 되어 北宗과 南宗의 특성을 和會한 입장이 그의 성기적 입장임을 알게 된다.
) 吉津宜英,『華嚴禪の思想史的硏究』, pp.253-264.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性起的 입장에서의 것이다. 그가 頓漸에 관한 견해를 세우고 있는 것을 보아도 닦음의 차제를 전면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 南宗과 北宗을 和合하려는 것은 그의 기본 입장인 것으로 생각된다.『연의초』2, 대정장 36, p.17上.「心詣其理 用以心傳心之旨 開示諸佛所證之門 會南北二宗之禪門」
이상 징관의 傳記와 성기사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징관은 당시의 다양한 교학을 수양하였고 특히 당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華嚴과 禪을 융합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징관은 『심요법문』에서 禪과 華嚴의 一致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 기본적 입장은 性起였던 것이다.
2. 宗密의 敎禪一致思想
(1) 宗密의 傳記
종밀은 敎宗이 쇠퇴하고 禪宗이 발흥하여 중국 불교가 禪불교로 자리잡아 가던 시기의 승려로서 화엄종의 5조이자, 선종의 선사이기도 하다. 그는 출가 이전에 儒家와 道家의 학설을 연구하였고, 출가해서는 교종과 선종을 두루 거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완성하였다.
종밀은 唐 德宗 建中원년(780)에 출생하여 武宗 會昌원년(841)에 입적하였다. 덕종 통치 시기는 중국의 교학불교가 가장 번성하였던 시기이며, 무종 회창원년은 會昌法亂이 시작되었던 해이다. 즉 종밀은 불교의 철학적 사변과 이론 발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에 출생하여 활동하였으며, 불교 특히 교학불교가 쇠퇴하는 결정적인 전환기에 생애를 마친 것이다. 종밀의 사상은 정치사회적 배경과 함께 禪운동의 세력화와 교학불교의 발전과 쇠퇴라는 불교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수립되었다. 또한 그의 학습 경로를 살펴보면, 그는 유학, 도교를 공부했으며 불교학에서는 선불교와 화엄을 공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가 당시에 발전했던 거의 모든 학문과 사상을 공부한 것으로 보아, 그의 회통적인 사상 체계의 내력을 탐색할 수 있다.
종밀은 幼年부터 17세까지는 주로 儒學을 학습했고 佛敎는 20세 전후에 입문했다. 그는 20세 전후 3년간 출가하지 않은 채로 불교경론을 배웠다. 23세부터 2년간은 유학을 다시 공부했다. 25세가 되어서는 禪家로 출가했다. 『景德傳燈錄』과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의하면 종밀은 道圓에게로 출가하여 수학했으며 도원은 南印, 남인은 신회에게서 선의 가르침을 이어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종밀의 선 계보는 육조혜능-하택신회 계열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禪源諸詮集都序』에서도 종밀 스스로 자신은 신회의 제자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여기서 종밀이 신회의 선을 배웠다는 사실은 종밀의 이론 형성에 핵심적인 단초가 된다. 바로 이런 배경으로 인해 종밀은 마음의 능동적인 작용에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 雲華는 종밀이 지방의 영향력있는 가문에서 출생했다고 말하면서, 그가 청소년기에 그 시대의 보편적인 교육 내용인 유가 고전 경전을 익혀서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말한다. 雲華는 또 종밀이 유가 경전을 익힌 목적은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지방장관의 관리가 되어 유가의 이상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언급한다. 이로 보아 종밀이 청소년기에 꿈꾸어 왔던 포부는 사회 속에서 대중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수 있다. 그러나 雲華의 연구에 따르면 종밀은 유가나 도가에서 궁극적인 인생의 길을 제시받지 못했다고 한다. Jan Yun-hua,『Tsung-mi and his analysis of Ch'an Buddhism』, T'oung Pao 58, 1972, pp.5-6.
) 『圓覺經大疏 』1下, 卍속장경 14, p.222右下.「七歲乃至十六七爲儒學 十八九二十一二之間 素服莊居聽習經論 二十三又却全功專於儒學 乃至二十五歲 過禪門方出家矣」
) 『경덕전등록』13, 대정장 51, p.305下.「遇造圓和尙法席欣然契會遂求披削」
) 荷澤神會-磁州智如-益州南印-遂州道圓-圭峰宗密로 이어지는 계보. 여기서 종밀은 하택 5조임을 알 수 있다. 종밀의 계보에 관해서는 鎌田茂雄,『宗密敎學の思想史的 硏究』, pp.52-72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이후로 그는 사미시절 『圓覺經』을 접하고 31세에 禪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징관의 『華嚴經疏』를 통해 처음으로 화엄을 배운다. 이로 보아 종밀이 처음 만난 화엄은 징관을 통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종밀의 저술 가운데는 법장의 논서에 대한 주석서도 있지만 종밀은 징관을 통해서 화엄을 만났고, 선까지도 포섭할 수 있는 화엄 체계의 구축은 징관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종밀은 징관으로부터 화엄을 배워, 두순-지엄-법장-징관-종밀로 이어지는 화엄 5조가 된다.
종밀은 당 文宗 太和2년(828)에 內供奉沙門이라는 중앙 관직에 등용된다. 이 시절 종밀은 제상 裵休(751-864)의 귀의와 후원에 힘입어 『禪源諸詮集都序』·『華嚴原人論』 등 선과 화엄을 두루 포함하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중앙 권력의 후원을 받은 마지막 승려이다. 또한 종밀은 청소년 시절 유학을 공부했으며, 그 후로는 하택신회 계열의 선을 이어받았고 징관을 통해서 화엄을 배웠다. 이 점은 종밀의 통합·융회적인 사상 형성에 바탕이 되었다.
) 당의 사대부, 관료로서의 배휴와 불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吉川忠夫,「裵休傳」『東方學報』64에서 자세한 논의를 볼 수 있다.
廢佛사건이 일어난 해인 武宗 會昌원년에 종밀은 입적했는데 그에게도 제자가 있었지만, 종밀의 제자들이 중국불교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흔적은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
) 종밀의 제자로는 圭峰溫, 慈恩寺大恭, 興善寺太錫, 萬衆寺宗, 瑞聖寺覺, 化度寺仁瑜, 玄珪智輝 등이 알려진다고 한다. 장원규,「규봉의 교학사상과 二水 四家의 華嚴宗再興」『불교학보』16,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p.8.
鎌田茂雄의 정리를 기초로 종밀의 저술을 살펴보면, 종밀의 저술은 크게 禪 계열의 저술, 화엄 관련 논서, 『원각경』 관련 논서와 儒彿道 삼교회통 논서로 구분할수 있다. 禪 계열 저술로 『禪源諸詮集都序』와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 화엄 관련 논서로는『華嚴論貫』·『華嚴行願品隨疏義記』·『華嚴行願品隨疏義記科』·『華嚴行願品疏』·『華嚴行願疏科』·『華嚴行願品疏 』, 『원각경』 관련 논서로는 『圓覺經大疏』·『圓覺經大疏科文』·『圓覺經大疏 』·『圓覺經略疏』·『圓覺經略疏科』·『圓覺經略疏 』·『圓覺經纂要』그리고 儒彿道 삼교회통 논서로 『華嚴原人論』이 있다.
) 鎌田茂雄,『宗密敎學の思想史的硏究』,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75. pp.73-84.
종밀의 선 계열 저술, 원각경 관련 논서 그리고 화엄 관련 논서에는 『大乘起信論』의 佛性 사상이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그의 사상 전반은 불성 사상을 기반으로 선과 화엄 그리고 원각 사상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데, 특히 교선일치론에서 보면 선을 분류할 때 궁극적인 기준이 되었던 '知'와 교학의 분류 기준이었던 화엄의 '眞心'은 결국 같다고 한다. 그는 불성의 다른 표현인 '知'와 '眞心'은 같다고 하여 교선일치의 도식을 완성한다.
이처럼 종밀의 전반적인 저술은 대체로 불성이론과 관련된 논서라고 볼 수 있다. 종밀의 불성사상 특히 禪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현재까지 알려진 책으로는 『禪源諸詮集都序』와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가 있다. 『선원제전집도서』에 관해서는 비교적 심도깊은 문헌학적 연구가 행해져 왔다. 이 점은 『선원제전집도서』가 종밀의 선에 대한 입장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논서라는 점을 보여준다. 종밀이 당시의 선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그리고 선에 대한 종밀의 이론은 무엇인가? 나아가 敎와 禪을 어떠한 관점에서 일치시킬 수 있으며, 敎禪一致의 취지는 무엇인가? 등에 관한 종밀의 입장이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종밀의 저술은 『선원제전집도서』이다. 그래서 本稿는 『선원제전집도서』(이하『도서』로 약칭)를 통해서 그의 敎禪一致思想을 살펴 보고자 한다.
(2) 敎禪一致의 구도
종밀의 敎禪一致論에서 禪의 三宗은 息妄修心宗, 泯絶無寄宗, 直顯心性宗을 말하고, 敎의 三種은 密意依性說相敎, 密意破相顯性敎, 顯示眞心卽性敎를 일컫는다. 종밀이 禪과 敎를 각각 차등적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불교적 진리를 직접 보여주느냐 아니면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보이지 않는 표현으로 드러내느냐의 차이이다. 그는 교선일치의 도식에서 禪에서는 直顯心性宗을 최고의 단계로 삼고, 敎에서는 顯示眞心卽性敎를 최고의 단계로 삼는다. 그리고 禪의 나머지 둘인 息妄修心宗, 泯絶無寄宗과 敎의 나머지 둘인 密意依性說相敎, 密意破相顯性敎를 그 아래로 두어 차등적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直顯心性宗과 顯示眞心卽性敎는 말 그대로 '직접 드러낸다'·'명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고의 단계가 되고, 息妄修心宗, 泯絶無寄宗과 密意依性說相敎, 密意破相顯性敎는 망념을 그치거나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보이지 않는 은밀한 뜻에 의거한다'는 점에서 하위의 단계가 된다.
禪의 三宗은 첫째 망상을 끊고서 마음을 닦는 종파, 둘째 모든 것을 끊어 내어 의지할 바가 없는 종파, 셋째 직접 마음의 본성을 드러내는 종파이다. 敎의 三種은 첫째 숨겨진 뜻으로 自性에 의거하여 겉모습(相)을 말하는 가르침, 둘째 숨겨진 뜻으로 겉모습(相)을 깨뜨려 본성을 드러내는 가르침, 셋째 眞心이 바로 본성임을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바로 위의 세 가지 가르침(교학)을 앞의 禪의 세 가지 종파와 하나 하나 대응시켜 밝힌 후, 한가지 뜻(기준)으로 모으겠다.
) 『도서』, 대정장 48, p.402中.
종밀은 禪과 敎를 각기 세 가지로 분류한 후 각각을 대응시켜 전체 禪과 敎의 일치의 맥점을 잡고 있다. 그는 禪과 敎를 세가지로 구분하면서 直顯心性宗과 顯示眞心卽性敎를 최고의 단계에 두고 息妄修心宗, 泯絶無寄宗과 密意依性說相敎, 密意破相顯性敎를 하위에 두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직접 드러낸다'·'명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위에 두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보이지 않는 은밀한 뜻에 의거한다'는 점에서 하위에 둔다. 하나의 기준에 의해 셋으로 분류했으나 이는 다시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기준이란 心性의 적극적 표현인 '知'와 眞心인데 양자는 같다고 명시한다. 결론적으로 '知'는 종밀의 교선일치론에서 분류와 통일의 기준과 근거라고 말할 수 있다.
종밀이 분류한 禪의 세 가지에서 息妄修心宗으로는 대표적으로 神秀의 北宗을 들수 있고, 泯絶無寄宗으로는 牛頭宗을 들 수 있으며, 直顯心性宗으로는 南宗 즉 洪州宗과 荷澤宗을 들 수 있다. 또한 종밀은 전통적인 敎相判釋의 방법에 따라 당시의 敎를 크게 셋으로 분류한다. 종밀의 교판에서 密意依性說相敎, 密意破相顯性敎, 顯示眞心卽性敎는 각기 유식 계통의 法相宗, 반야중관 계통의 三論宗, 여래장 학파와 華嚴宗을 말한다. 우선 종밀의 교판 내용을 법장의 五敎判과 연관시켜 도표로 대비해 보자.
) 유식학파, 중관학파, 그리고 여래장학파와 화엄종으로 나누는 종밀의 교판은 법장의 교판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특히 一乘顯性敎인 화엄종을 최고의 경지에 배치한 것은 법장의 화엄 중심 교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교판에 관한 소개 및 법장의 교판에 관한 논의는 木村淸孝, 장휘옥 역,『中國佛敎思想史』, 민족사, 1991, pp.61-66참고.
『禪源諸詮集都序』 『華嚴原人論』 법장의 五敎判(華嚴五敎章)
1) 密意依性說相敎
①人天因果敎 人天敎
②斷惑滅苦敎 小乘敎 小乘敎
③將識破境敎 大乘法相敎 大乘始敎(相始敎)
2) 密意破相顯性敎 大乘破相敎 大乘始敎(空始敎)
3) 顯示眞心卽性敎 一乘顯性敎 大乘終敎, 大乘頓敎, 大乘圓敎
이러한 禪과 敎를 배치하는 체계에서 종밀은 ①息妄修心宗과 密意依性說相敎의 將識破境敎 ②泯絶無寄宗과 密意破相顯性敎 그리고 ③直顯心性宗과 顯示眞心卽性敎를 대응시킨다.
이상의 禪의 분류와 교판을 도식으로 연결시키면 다음과 같다.
) 『도서』, 대정장 48, p.402下.
<禪의 분류> <敎判>
1)密意依性說相敎
①人天因果敎
②斷惑滅苦敎
北宗 1)息妄修心宗 ③將識破境敎 法相宗
牛頭宗 2)泯絶無寄宗 2)密意破相顯性敎 三論宗
洪州宗 3)直顯心性宗 3)顯示眞心卽性敎 華嚴宗
荷澤宗
교선일치의 도식에서 세 가지로 크게 차등지우는 禪의 분류는 종밀의 禪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종밀은 禪에서는 南宗 특히 荷澤宗, 敎에서는 화엄을 최고의 위치로 자리매김 한다. 南宗에 나머지 다른 禪(北宗과 牛頭宗)을 포섭시키고, 화엄에 나머지 다른 敎(소승교학과 유식학파, 중관학파)를 포섭시킨다. 이어 그는 하택종과 화엄종의 일치점을 부각시킨다. 또 북종과 유식학파, 그리고 우두종과 중관학파의 정신과 이론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결국 종밀은 禪에서는 하택종, 敎에서는 화엄을 중심으로 禪의 분류와 敎判을 만들어 내고 하택종과 화엄을 중심으로 교선일치론을 수립하는 것이다.
(3) 敎禪一致 근거로서의 知
종밀은 敎와 禪을 하나의 중심된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분류하고 敎禪一致論을 전개한다. 이러한 주제는 바로 교판을 통한 회통을 단행함에 있어서 하나의 준거가 되는 것이다. 이 기준을 종밀은 敎에 있어서는 화엄종에서 禪에 있어서는 하택종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이 화엄과 하택의 종파가 내세우고, 다른 종파들이 말하지 못한 핵심은 무엇인가 종밀은 이것을 絶對眞心으로서의 知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空寂한 마음은 靈知하여 어둡지 않다. 바로 이 공적한 知, 이것이 그대의 진정한 自性인 것이며, 迷惑을 쓰거나 開悟를 쓰거나 마음은 본래부터 자체가 知다. 緣에 의지하여 생기는 것도 아니고, 境界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知의 하나의 글자는 모든 오묘함의 門이다.
) 『도서』, 대정장 48, pp.402下-403上.「空寂之心靈知不昧 卽此空寂之知 是汝眞性 任迷任悟 心本自知 不籍緣生不因境起 知之一字衆妙之門」
知라는 것은 이것이 깨달아서 알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 뜻은 진실한 자성이 허공이나 목석처럼 무감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知라고 말한다. 이것은 경계를 緣하여서 분별하는 識과 같은 것도 아니고, 體를 비추어서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와 같은 것도 아니다. 직접 이 眞如의 自性은 자연적으로 항상 아는 것이다. 여기서 종밀은 『화엄경』의 「問明品」을 인용하여 智와 知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 上同, 대정장 48, p.405上.「非如緣境分別之識 非如照體了達之智 直是一眞如之性 自然常知」
智는 성인에 국한되고 범속한 자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知는 바로 범속인이나 성인이 다 지니는 것으로서 理法과 지혜에 다 통한다.
) 上同, 대정장 48, p.405上.
智는 깨달음을 증득한 지혜로서,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자유자재하며 三世에 장애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미래·현재에서 了達하지 않는 일이 없으므로 자유자재하고도 장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知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진심으로, 분별지인 識으로써 능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識이 分別에 속하고 분별은 바로 참다운 知가 아닌 것으로, 참다운 知는 오직 無念으로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다.
) 上同.
또한 마음의 경계도 아닌 것이니, 智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智로써 이것을 증득한다면 바로 증득되어지는 경계(대상)에 속하는 것인데, 참다운 知는 경계가 아닌 까닭에 智로서는 증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 上同.
따라서 언뜻 보는 일이 일어나서 마음을 비춘다면, 바로 참다운 知가 아닌 것이다. 마음이란 만일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바로 이것이 경계가 되는 것으로, 따라서 마음의 경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헤아리면 바로 어긋나니 북종선의 看心은 이것이 참다운 취지를 잃은 것이라고 종밀은 지적한다.
) 上同, 대정장 48, p.405上.「故北宗看心是失眞旨」
知는 또한 그 自性이 본래부터 청정하다.
더러움과 미혹이 떠나기를 기다려서 바야흐로 깨끗하여지는 것이 아니며, 의심과 혼탁이 끊어지기를 기다려서 바야흐로 맑게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원래부터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上同, 대정장 48, p.405上.
이미 원래부터 청정하여 장애를 끊음을 기다리지 않으니,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본래 모두 지니고 있다. 다만 미혹에 가려서 스스로 모르고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開示하여 모두가 깨달음에 들게 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원래 세간에 나오신 것은 다만 이 일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靈妙한 知의 마음은, 바로 眞性으로 부처님과 다른 바가 없다고 開示한다.
) 上同, 대정장 48, p.405上.「如是開示靈知之心 卽是眞性與佛無異」
밝고도 밝아서 어둡지 않으며, 확실하고 확실하게 항상 知하며, 미래의 시간이 다 할 때까지 항상 머무르고 멸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佛性이라고 한다. 또한 如來藏이라고도 이름하며, 또한 心地라고도 이름한다.
) 上同, 대정장 48, p.404下.
이와 같이 종밀의 絶對眞心으로서의 知는 佛性의 다른 표현으로, 모든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自性이며, 성불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여래장이고, 중생의 본래 마음 바탕이다. 이는 佛性思想을 연장시켜 佛性을 능동적, 적극적 형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종밀은 摩尼珠의 비유에 의해 각 禪宗의 深淺과 知의 관계를 다룬다.
마치 하나의 마니주가 오직 둥글고 깨끗하고 밝을 뿐, 일체의 차별색상이 전혀 없는 것과 같다. 본체가 밝은 까닭에 外物을 대할 때 일체의 차별색상을 드러낼 수가 있다. 색상에는 본래 차별이 있으나, 明珠는 바뀐적이 없다. 그런데 구슬이 나타내는 색이 비록 수 없이 많다 하여도, 이제 밝은 구슬과 서로 어긋나는 흑색을 취하여 靈明知見과 黑暗無明에 비유한다면, 비록 相에 있어서는 어긋나지만 體는 하나이다. 말하자면 구슬이 흑색을 나타낼 때에는 전체가 온통 흑색일 뿐, 밝음은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때 어리석은 아이나 무지한 자는 이것을 보면, 곧 바로 黑珠라고 여긴다. 혹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것은 明珠이다라고 말해도 전혀 믿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화를 내면서 속이려 한다고 말하고 제 마음대로 여러 가지 道理를 말하면서 끝내 말을 듣지 않는다.
)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 卍속장경 110, p.436左上下.
여기서 마니주는 하나의 神靈스런 마음을, 둥글고 깨끗하고 밝다는 것은 空寂한 知를, 外物을 대할 때 일체의 차별 색상을 드러낸다는 것은 隨緣義를, 색상에는 차별이 있으나 明珠는 바뀐 적이 없다는 것은 不變義를 가리킨다. 종밀은 이러한 知의 본체론에 입각하여 모든 禪門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종밀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결론을 맺는다.
만약 明珠가 곧 能現의 體로서 영원불변이라면(하택종), '흑색이 곧 구슬'이라고 하거나(홍주종), '흑색을 닦아내어 구슬을 찾는다'고 하거나(북종), '밝고 어두운 것이 모두 없다'고 하는 것은(우두종) 모두 아직 마니주를 보지 못한 것이다.
) 上同, p.437右下.「若認得明珠是能現之體永無變易(荷澤) 但云黑是珠(洪州宗) 或擬離黑覓珠(北宗) 或言明黑都無者(牛頭宗) 皆是未見珠也」
이와 같이 종밀은 절대진심으로서의 知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것을 교판의 기준으로 삼고 敎禪一致를 통한 회통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 신령스런 진심은 진정한 자성으로 緣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며, 경계를 攀緣하여야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분별로는 헤아릴 수가 없어서 마음의 경계도 아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청정하여 중생들이 모두 具有하고 있으나 미혹에 가려 깨닫지 못할 뿐, 진실된 성품으로 불성과 다름이 없다. 종밀의 교판과 선교일치를 통한 회통은 모든 종파가 이러한 불법의 핵심을 드러내는가 않는가에 기준을 두고 있다.
종밀이 신봉하는 교의 화엄과 선의 하택은 불법의 핵심인 절대진심으로서의 知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 敎와 禪門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되는 심오한 敎義를 간직하고 있다. 다른 禪門과 敎門은 불법의 핵심을 바로 드러내지 못하여 방편을 사용하나, 하택과 화엄은 이들과는 달리 방편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드러낸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하택과 화엄은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며, 서로 일치하여 회통하고 있다. 이러한 서열 아래 禪의 牛頭宗과 敎의 大乘空宗은 일체가 空이라고 설한다는 점에서 일치하여 회통하며, 마음을 항상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써 수행 방법을 삼는 北宗과 唯識의 法相宗은 근본적인 마음의 基底를 인정함으로써 서로 일치하여 회통하는 것이다.
) 종밀은 선에서는 直顯을, 교에서는 顯示라는 말을 하택과 화엄에 사용한다. 따라서 어떠한 것이라도 드러내지 못했다거나 방편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종밀은 모든 禪門과 敎門을 교판하여 회통함에 있어서, 불법의 핵심인 知라는 개념의 유무를 통하여 기준을 정하여, 이것을 중심으로 각각의 종파를 배열하고 교선일치라는 회통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Ⅶ. 結 論
본 연구는 華嚴敎學의 性起思想을 賢首法藏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우선 각 장에 밝혀진 내용을 서술하여 화엄오조의 성기사상의 특징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과제를 거론해 결론 짓고자 한다.
두순은 성기사상과 관련하여 그의 사상을 논하기는 무리가 있었지만 두순의 法界三觀은 十玄門으로 발전하여 가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엄은 법계연기의 철저한 주체화를 통하여 發心과 연결시켰는데 지엄의 성기사상은 언제나 실천의 입장에서 보리심과 발심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법장은 이론적 근거에서는 지엄을 계승하였지만 지엄이 실천적인 보리심과 발심을 중시하였다면 법장은 초월성과 포괄성을 논리적으로 구성하였다. 법장의 如來藏은 현실 속에서 赴感應機之用으로 살아 움직이는 果用의 성기이다. 실천성에 대한 약점을 지닌 법장은 性起의 究極을 佛身을 통해서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法界緣起는 지엄의 染法緣起와 淨法緣起의 구조를 계승함과 동시에 染淨合說을 추가하여 보다 완성된 형태의 第三門으로 染淨合說을 체계화시켰다.
법장의 觀法에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사상의 구조는 唯識·如來藏 그리고 華嚴이다. 법장은 十重唯識觀을 통해서 「십지품」의 一心을 단순한 유식설에서 觀門的 성격으로 조직화하여 화엄의 唯心說을 집대성시켰다. 여기서 一心은 성기의 입장이다. 妄盡還源觀은 自性淸淨心을 觀法의 중심으로 삼아 궁극적으로 해인삼매를 『화엄경』의 總定·根本定으로 드러내었다. 법장은 『화엄경』의 전체적 구조를 海印三昧를 토대로 구축하였는데 해인삼매는 비로자나법신의 현현이며 성기의 다른 표현이다.
징관은 종래의 전통적인 사고에 禪的 思考를 더함으로써 禪宗을 수용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고 나아가 종밀에 이르러서는 敎禪一致를 기본사상으로 형성하도록 하는 기틀을 제공하였다.
두순의 觀行的 입장과 지엄의 唯識的 입장은 법장에 의해 性相融會되면서 화엄종은 거대한 산맥으로 불교교학의 최고점을 완성한다. 그러나 징관과 종밀에 이르러 화엄종은 선종의 물결에 휩쓸려 본 모습을 차츰 상실하게 된다.
법장의 교학은 매우 觀念的이고 哲學的이다. 그래서 법장의 교학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법장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고 중국의 敎判佛敎·宗派佛敎의 특색을 감안한다면 법장의 한계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실천성의 부족은 지극히 이해될수 있는 문제이다. 즉 두순과 지엄에 의해 화엄종은 뿌리는 내렸지만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푸른 잎과 수많은 줄기를 갖추어야 하듯이 법장은 화엄교학을 광대무변하게 집대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논리와 체계의 복잡한 철학성을 연구 정리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중국 특유의 宗派佛敎에서 보여주듯이 종교의 생명과 보존을 위해서는 기존 당시의 玄 唯識을 뛰어넘는 강력한 화엄교학을 집대성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哲學性과 整合性이 강조되었던 법장교학에 비해 징관 종밀은 당시 禪宗의 조류에 휩쓸려 실천성이 다시 강화되었다. 이점은 화엄교학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안감과 위기감을 보여주는 듯한 안타까운 명암으로 다가온다. 법장교학의 난해함이 징관의 四法界에 의해 근원과 현상을 함께 중시하는 理事無 法界로 발전하여 근원과 실천이 함께 강조된다. 이것은 性起의 진수를 더욱 발전시켰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종밀에 이르러서는 華嚴禪의 경향으로 치우쳐 화엄교학의 장대한 스케일은 사라지고 禪의 간결함과 엄중함이 더욱 짙어져 급기야 화엄의 색깔을 거의 잃게 된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종밀에 이르러 이미 화엄의 진정한 의미는 그 생명을 다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의 절대적인 계기는 華嚴禪이었다.
華嚴思想은 緣起와 性起에 의해 원칙적인 하나에서 諸法相이 만들어지고 그것은 다시 원칙적인 하나로 돌아가는 속에 사바세계가 만들어 진다. 性起와 緣起는 하나의 體이다. 하나의 현실을 事(現象)의 방면으로 볼 때 그것을 연기라 하고, 理(理法)로서 볼 경우에 성기가 된다. 즉 일체제법의 實體面上의 性德을 말하는 것이 性起說이요, 일체제법의 現象面上의 表德을 말하는 것이 緣起說이다. 성기는 法界性(본성)을 논하는 것이나 연기는 法界相(모습)을 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기라 하는 것은 일체제법의 本有面을 말하는 것임에 대하여 연기는 일체제법의 隨現面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동일한 대상(一法)에 대한 兩面觀이다. 또한 연기를 觀法 상호간의 관계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성기는 觀法에서 각자의 주체적인 성질이 된다. 연기는 모든 존재의 重層的인 관계의 끝없는 모습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며, 성기는 연기의 모든 全體性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기는 연기가 성립 할 수 있게 되는 이론적인 근거이며 연기는 성기가 발휘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華嚴敎學의 타 종파에 대한 특징은 성기설이나 화엄교학의 精華는 역시 無盡緣起說(事事無 緣起)이다. 그러나 이 無盡緣起의 토대는 성기설로서 이 토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연기와 성기와의 관계의 심도있는 고찰을 토대로 화엄교학의 法界緣起說에 대한 연구를 차후의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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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幸男, 「華嚴學の中心課題」『大乘佛敎の硏究』, 大東出版社, 1980.
坂本幸男, 「法緣起的歷史形成」『華嚴典籍硏究』, 大乘文化出版社, 1976.
ABSTRACT
A STUDY OF THE NATURE-ORIGINATION THOUGHT IN HUA-YAN BUDDHISM.
-Focusing on Xian Shou Fa-Cang-
Kim, sang keun(Sung ki)
Department of Buddhism
Graduate school
Dongguk University
The term of 'Nature origination'(性起) was originated from 'Bao-wang-ru-lai-xing-qi-pin'(寶王如來性起品) of sixty hua-yan(60華嚴). It is being translated into the appearance of tathagata(如來出現) in eighty hua-yan(80華嚴). The nature of Buddhism means the appearance in reality. That is to say, the appearance of tathagata-prakrti(如來性) is thought of as Nature origination(性起). Since the word of Nature origination(性起) compared to the appearance of tathagata(如來出現) was noted by Zhi-yan(智儼) in the materialized period of the chinese hua-yan doctrine(華嚴敎學), it has been dealt with as the core doctrine of hua-yan buddhism(華嚴敎學). Not only Fa-cang(法藏) but also hua-yan teachers(華嚴祖師) have translated it newly.
The thought of Nature origination(性起思想) has become the main nucleus in the formation of 'The theory of dependent origination of Dharma-dhatu'(法界緣起) and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other doctrine of hua-yan very closely. And also this has become the basic structure of hua-yan-shan(華嚴禪) thought and has the special character which is divided from the other doctrine. And also because of it, the thought of nature origination is playing a very impotant role in the hua-yan doctrine.
Du-shun(杜順) had many difficulties in discussing the thought in relation with nature origination thought but it is meant that he pointed out the logical reason to develop fa-jie-san-guan(法界三觀) into shi-xuan-men(十玄門). And Zhi-yan(智儼) through the thorough principalization of the 'The theory of dependent origination of Dharma-dhatu'(法界緣起), linked the nature origination thought with the citta-utpada(發心) and the nature origination thought of Zhi-yan(智儼) has the specialty that he has thought highly of the anuttarayam-samyaksambodhau-cittam(菩提心) and citta-utpada(發心) in the situation of putting into practice.
Fa-cang inherited Zhi-yan(智儼) in the theoretical ground, but if Zhi-yan thought highly of the practical anuttarayam-samyaksambodhau-cittam(菩提心) and the citta-utpada(發心), Fa-cang composed the surpassing and including character logically. Fa-cang's tathagata-garbha(如來藏) is the nature origination of the guo-yong(果用) use which is alive and moving in reality with fu-gan-ying-ji-zhi-yong(赴感應機之用). Fa-cang with a weak point in the actuality tried to achieve the ultimate of nature origination through the of Buddha-kaya(佛身). And at the same time when fa-jie-lu-qi(法界緣起) inherited the structure of ran-fa-lu-qi(染法緣起) and jing-fa-lu-qi(淨法緣起) of Zhi-yan, it added to ran-jing-he-shuo(染淨合說) and systematized ran-jing-he-shou(染淨合說) into the third gate of the formation more completed.
The structure of thought which flows totally in Fa-cang's Dharma-vipasyana(觀法) is vijnapti-matrata(唯識)·tathagata-garbha(如來藏) and hua-yan. Fa-cang systematized one mind(一心) of shi-di-pin(十地品) from the simple vijnapti-matrata doctrine(唯識說) to the guan-men(觀門的) character and completed hua-yan's citta-matra doctrine(唯心說) throught shi-zhong-wei-shi-guan(十重唯識觀). And here one mind(一心) is the position of nature origination. Wang-jin-huan-yuan-guan(妄盡還源觀) was thought of as prakrti-parisuddham-cittam(自性淸淨心) in the center of Dharma-vipasyana(觀法) and revealed 'Sagaramudra-samadhi'(海印三昧) as whole samadhi(總定) and source samadhi(根本定) of Avatamsaka-sutra(華嚴經) ultimately. Fa-cang completed the total structure of avatamsaka-sutra(華嚴經) on the basis of Sagaramudra-samadhi(海印三昧). And Sagaramudra-samadhi is the appear of Vairocana-dharma-kaya(毘盧遮那法身) and the other expression of nature origination.
Cheng-guan(澄觀) has come to make the motive that he accepts shan school(禪宗) by adding to the shan(禪) thought the originally traditional thought and in Zong-mi's(宗密) day provide the shape to from 'Oneness of teaching and meditation'(敎禪一致) as a basic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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