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10대 제자
【1】 지혜(智慧)제일 사리불(사리풋트라)
상수제자로 교단 통솔. 사리불의 제자 라훌라존자.
사리불의 본명은 우빠띳따. (우바띳따 마을에서 태어났다하여 이렇게 불렀다) 아버지는 방간따. 어머니는 루빠사리 형제는 4남 3녀 칠남매 모두가 출가사문이다.
사리불은 어릴적부터 총명한 수재자 였다. 8세에 이미 인근까지 명성을 떨쳤으며 16세에는 천하의 모든 학문을 섭렵하여 배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학문을 하기 위하여 산자야의 제자로 입문하였으나 몇 개월 만에 더 배울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앗사지의 용모를 보고 감동하여 그대는 어디에 살며 어떤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다. 앗사지는 ‘우리 스승(부처님)은 인연법과 사람들이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로 인해 앗사지의 인도로 석가모니의 제자가 된다.
사리불존자는 자기를 부처님께로 인도해준 앗사지를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살았으며 부처님 쪽으로는 다리도 펴지 않았다.
아들딸들이 다 출가사문이 되자 외로이 계시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교화하기 위해서 다섯 가지 무명에 대한 설법을 펼친다.
첫째. 과거현재미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사람이 무명이다.
둘째. 불법승 삼보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무명.
셋째. 중생의 현실와 고로움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 무명.
넷째. 계행을 지키지 않음(윤리도덕의 결여) 무명. 오계는 불자 만이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 는 것이다.
다섯째. 인과법에 대하여 알지 못함.
여섯재. 주관과 객관적 사실을 구별하지 못함.
이교도의 친구를 교화하는 사리불 잠부카다카는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는데 부처님 설하는 무명에 대하여 궁금증이 많았다. 그래서 어느 날 사리불 존자를 찾아와서 무명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라고 물었다. 존자는 여섯 가지 사례를 들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첫째. “무명이란 지나간 역사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바르게 예측하지 못하고 현재에 대하여 있는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는 사람이다.
둘째. “무명이란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과 제자들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불법승삼보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왜곡되게 안다면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셋째. “무명이란 중생의 현실에 해하여 여실한 파악과 그 현실을 초래하는 원인의 분석 그리고 현실에 대한 대안의 제시와 제시된 대안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것이다.” 즉 사성제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삶속에서 실천하지 못한다 면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넷째 . “무명이란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 도덕적 판단과 무간한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 즉 선과 악. 그리고 무기를 분간 하지 못하고 행동한 다면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다섯째. 무명이란 인간의 의지적 행위와 그 행위에 따른 결과에 책임의식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즉 무명에 빠진 사람은 인과법을 알지 못하고 입으로 인한 과보를 인식하지 못한다. 여섯째. ”무명이란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 주관적인 관점과 객관적인 사실에 대하여 바르게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 즉 무명에 빠진 사람은 주관과 객관을 혼동하고 전도된 생각에 집착한다. 조합적으로 말한다면 무명이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여 판단이 어둡고 행동거지가 막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리불은 이러한 문답을 통해서 어머니와 이교도 각자의 근기에 맞는 무명법문을 설한 것이다.
【2】신통(神通)제일 목련존자 , 목갈라나[Moggallana]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 효성 지극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
부처님의 십대제자로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로 불렸다. 마가다국 라자가하(王舍城) 근교 코리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건장하고 학문에 통달하여 인근 나라다 마을의 사리풋타(舍利弗)와 함께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두 사람은 서로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제사를 함께 구경한 뒤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라자가하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다. 곧 스승을 대신할 만큼 지혜를 얻었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사리풋타가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는 사리풋타의 권유로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그와 사리풋타는 점차 불교교단의 중심인물로 부각되었으며, 특히 그는 신통력을 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전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물리쳤다. 데바닷타(提婆達多)가 부처님에게 반대해 교단이 분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수행자들을 설득해 혼란을 수습했다. 코살라국의 비두다바왕이 샤카족을 멸망시키려 할 때도 그는 신통력으로 카필라성에 철제방을 쌓아 막으로 했으나 샤카족의 멸망은 업의 과보라는 부처님의 만류로 그만둔 적이 있다.
이에 따라 불교교단에 반대하거나 데바닷타를 따르는 무리들의 그에 대한 박해도 점차 거세졌다. 말년에 그는 라자가하에서 집장외도(執杖外道) 일파에게 몽둥이로 맞아서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나갈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것을 본 사리풋다가 물었다. "그대는 신통제일로 불릴 만큼 훌륭한 법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피하지 못했는가?" "나는 전생에 부모를 괴롭힌 과보를 받는 것일 뿐이네." 목갈라나의 대답은 오히려 담담할 뿐이었다.
또한 부처님은 이 사건에 대해 전생의 과보라고 하였다. "그는 전생에 아내에게 속아 부모를 숲속에 버렸다. 그 악업이 아직도 남아 박해를 받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부처님께 입적을 허락받은 뒤 고향 코리로 돌아갔다. 코리가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입적했다.
목련의 효심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신통력제일이라고 알려진 목련존자(目蓮尊者)가 죽은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서 신통력을 써서 사후의 세계를 찾아갔는데 그 어머니는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서 고생하고 있었다. 배는 부풀어 오르고 수족은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에는 눈알이 튀어 나올 것 같은 모습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물도 마시지 못하였다.
목련존자는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려고 애를 썼으나 어머니가 손을 뻗으면 음식이 불에 타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하도 슬픈 나머지 목련존자는 석가모니 앞에서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마침 그 자리에는 다른 제자가 있어서 말하기를 목련존자의 어머니의 악업 때문이라고 하였다.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목련을 너무나 사랑한 때문에 도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날 목련존자의 집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물 한 목음을 달라고 청하였다. 물병에는 물이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물을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이 물은 목련의 물이다.>하고 답하였다. 인도는 덥고 특히 물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목련의 집은 부자라서 재보를 가지고 있었다. 목련이 출가하면서 어머니에게 모든 재보를 내놓아서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베풀 것을 부탁하였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그 말대로 베풀었으나 재보가 남은 것이 적어지자 내 아들을 위하여 남겨두어야 하리라 생각하고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목련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베풀 것을 잊어버리고 그 어리석음을 가진 채로 저 세상으로 간 것이었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어떻든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구할 수는 없는지 석가모니께 여쭈었다. 석가모니는 답하여 말씀하셨다.
<너는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구해낼 수가 없다. 또 과거의 악업을 지울 수도 없다. 그러나 어머니가 하지 못한 일을 너는 할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 공양을 하는 것이다.
7월 15일은 수행승이 길고도 엄한 수행을 끝내는 날이다. 이날 수행승의 덕을 찬양하고 음식을 공양하라. 그러면 수행승들은 아귀도에서 고생하는 너의 어머니나 또 거기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회향(回向)해 줄 것이다 그 공덕 덕분에 너의 어머니나 많은 사람들을 극락에서 새로 태어나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목련존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라 7월 15일 수행승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공양을 하였다. 즐거운 식사도 끝나고 목련존자는 다시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아귀도의 고생을 면하고 백운에 싸여 환희의 춤을 추면서 천상으로 날아가려 하고 계셨다.
목련존자는 날뛸 듯이 기뻐하며 석가모니께 <만일 후세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면 비록 지옥에 떨어져도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었다.
【3】 두타(頭陀)제일 마하가섭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통해 부처님의 법을 이음.
출신 : 인도의 마가다국, 왕서성 근교의 바라문촌에 살았다. 부모의 강요로 20세에 16세 바들러를 만나 결혼하고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32세때 출가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마하가섭은 『두타(頭陀)제일』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두타란 산스크리트어의 『두우타』를 음사한 것으로써, 의. 식. 주(衣食住)에 대한 집착의 마음을 떨쳐 버리기 위한 수행 실천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두타대(頭陀袋)』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산림 속에서 수행을 하는 자가 가지고 있는 자루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타의 실천항목으로서는 열두 가지가 있는데, 예로부터 그것을 『십이두타(十二頭陀)』이라고 한다.
1) 재아란약처(在阿蘭若處) 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산다.
2) 상행걸식(常行乞食) 언제나 탁발 걸식에 의해서 생활한다.
3) 차제걸식(次第乞食) 걸식을 하는 데 있어 집의 빈부를 가 리지 않는다.
4) 수일식법(受一食法) 하루 한 끼만 먹는다.
5) 절량식(節量食) 많이 먹지 않도록 양을 절약한다.
6) 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중식 이후에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7) 착폐납의(着弊納衣) 폐물인 누더기로 만든 옷을 입는다.
8) 단삼의(但三衣) 세 개 옷 밖에는 갖지 않는다.
9) 총간주(塚間住) 무덤들 사이에서 산다.
10) 수하지(樹下止) 나무 아래에 산다.
11) 노지좌(露地坐) 한 곳에 앉아 지낸다.
12) 단좌불와(但坐不臥) 언제나 앉아 있고 드러붑지 않는다.
이러한 수행을 함으로 가섭은 투타 제일의 명칭을 얻게 되었다.
1) 영산회상염화시중 (靈山會上擧拈花)
영산회상이란 부처님께서 법을 펼치던 영축산靈鷲山의 법회장면을 일컫는 말이다. 이 첫 번째 기연은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보이시자 가섭 존자가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 라는 말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2)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와 자리를 나누어 앉으셨다는 이른바 '분반좌分半座'에 대한 내용은 초기 경전인 본연부本緣部의 『불설중본기경佛說中本起經』에 실려 있다.
세존께서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서 대중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실 때였다. 천룡귀신 사부대중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 때 마하가섭이 남루한 모습으로 부처님께 다가왔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멀리서 보고 찬탄하시기를, "잘 왔구나. 가섭아" 하시고, 미리 법상의 반을 나누셨다가 앉으라고 명했다.
3)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신 일'을 곽시쌍부槨示雙趺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발제하'라는 강가 언덕에는 두 그루의 사라沙羅나무가 있었다. 부처님은 이 두 그루의 사라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열반하신 뒤 이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미셨는데, 이 일을 일컬어 '사라쌍수하 곽시쌍부'라 한다. 이 일에 대하여 초기 경전인 『대반열반경후분大般涅槃經後分』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뒤늦게 도착한) 가섭 존자가 더욱 슬퍼하면서 제자들과 더불어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눈물을 글썽이며 장궤 합장하고 게송으로 슬프게 탄식하였다.
"괴롭고 괴롭습니다. 대성인 존자이시여! 저는 지금 가슴을 도려내는 듯 고통스럽습니다. 세존이시여, 멸도滅度하심이 어찌하여 이렇게 빠르십니까? 대비하신데도 저를 잠깐 기다리지 못하셨습니까? ‥‥중략‥‥
가섭이 목메어 슬피 울며 이 게송을 끝내자, 부처님께서 큰 자비로 두 발을 천 개의 살이 달린 바퀴 모양으로 나타내어 관 밖으로 내보이시고, 그것을 돌려가며 가섭에게 보여 주셨다. 천 개의 살이 달린 바퀴에서 천 가닥의 빛이 나와 사방의 일체 세계를 두루 비췄다. 이 때에 가섭과 모든 제자들이 부처님의 발을 보고, 일시에 천 개의 살이 달린 바퀴 모양의 발에 예배하였다.
- 『大般涅槃經後分(二卷本)』卷下
【4】천안(天眼)제일 아나율
육신의 눈은 멀었으나 마음의 눈이 열려 천상세계를 잘 보는 아나율.
아나율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석가족의 출신으로서, 부귀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나율에게는 형제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형제에게 출가의 결심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아나율이 털어놓은 결심을 들은 형제 또한 출가의 결심을 굳히고 있는 터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출가를 해 버리면 가계를 이을 사람이 없어, 대가 끊기게 되었으므로, 두 사람은 함께 의논한 끝에 아나율이 출가하고 그 형제가 집에 남게 되었다.
아나율은 마침내 어머니에게 출가를 승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절대로 출가를 승락하지 않았다. {죽어도 내 자식을 내 놓을 순 없어. 하물며 살아 있는 자식을 집을
나가게 하다니! 무슨 소리냐.} 이것이 그의 어머니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내 자식아, 만일 밧디야가 출가를 한다고 한다면 그 때는 너한테도 출가를 허락해 주지.} 어머니가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을 포착하고, 그 때부터 아나율은 밧디야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밧디야는 석가족 중에서도 명문의 귀족이었으며, 이미 정치적으로 좋은 지위에 올라 있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설마 그 밧디야가 출가할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어머니의 계산이었는데, 아나율의 열의는 이 밧디야의 마음을 움직이고 말았던 것이다. 아나율과 밧디야, 거기에 다섯 친구를 합해 모두 일곱 사람이 동시에 출가한 것이다. 이 중에는 십대 제자로 꼽히는 아난타와 우바리도 있었으며, 데바닷타 또한 이 때 같이 출가를 했다.
기원정사에서의 일이었다. 코오사국 사위성의 교외에 있는 기타태자의 임원에 건립되어진 정사이다. 그 때 석존은 기원정사의 강당에서 설법을 하고 계셨다. 청중들은 출가자만이 아니었고 재가의 사람들도 와 있었던 모양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어면서, 기분이 좋은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좌수를 하고 있는 승려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나율이었다. 그를 슬쩍 흘겨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은 재빨리 그것을 눈치채셨다. {설법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잠을 잔다. 그것도 좋겠지.}
부처님은 그런 식으로 말하여 사람들 앞에서는 아나율을 별로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지만 법좌가 끝난 다음, 부처님은 아나율을 한 사람만을 불렀다. 그리고 조용히 그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아나율이여, 그대는 도를 찾아 출가한 것이 아니었던가. 출가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대가 설법을 들으면서 선잠을 자다니, 도대체 그 최초의 결심은 어디로 간 거지. 정신이 해이되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군 그래.} 아나율은 부처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스승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는 마음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히 내 마음이 해이된 탓입니다. 오늘 이후로 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 가령 이 몸이 썩어 부서질지라도 세존 앞에서 절대로 자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나율은 잠과 싸우기 시작했다. 잠을 거부할 것을 맹세한 아나율을 눈은, 감겨질 줄을 모르고 언제나 초롱초롱 빛나기만 했다. 의사를 치료를 부탁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그리하여 아나율은 눈동자만 멀뚱멀뚱 뜬 상태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는 결국은, 육체의 눈은 잃어버렸지만 그 대신 법(진리)의 눈인 {천안(天眼).심안(心眼)}을 얻었던 것이다.
【5】해공(解空)제일 수보리
불교의 핵심사상인 공(空)도리를 가장 잘 이행함.
부처님의 10대 제자중 해공제일인 수보리는 코살라 국의 사위성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수마나는 대부호 수닷타(기수급고독원수달장자)의 동생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성격도 어디 한 군데 모난 곳이 없이 원만하였으며 얼굴과 몸매도 부처님에 버금 갈 정도로 뛰어났다.
수닷타가 기원정사를 지어놓고 부처님이 오시기를 약속한 날, 어린 수보리는 삼촌과 함께 설fp이는 가슴으로 부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되자 부처님의 맑고 고요한 모습이며 진리를 꿰뚫고 있는 투명한 눈동자와 가슴에 스며드는 자비로운 눈매에 어린 수보리는 홀딱 반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부처님으로부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진정한 삶의 법문을 자신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 자리에서 결심하게 된다.
비록어린 수보리였지만 그날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수보리는 출가를 하였다.
역경의 대가인 구마라집은 존자를 '장로(長老)'라고 옮겼고 현장법사는 '구수(具壽)로 옮겼는데, <긴 수명>을 뜻한다 하며 스님들끼리 상대를 높여 부르는 존칭어라고 한다.
수보리의 뜻은 '착한 존재'여서 현장법사는 '선현(善現)' 이라고 번역했다. 수보리존자는 귀족출신이며 출가한 뒤에도 사람들에게 공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북방불교에서는 수보리존자가 空을 가장 잘 이해 한다고 해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고 하는데, 이 금강반야바라밀경에 비록 空이라는 글자는 나오지 않지만 내용상으로 空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에는 <오온개공(五蘊皆空)>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반야심경이 모든 반야경의 핵심이니 해공제일이라고 불릴만도 하다.
그런데 이 금강경의 내용중에 <수보리존자는 다툼이 없는 삼매를 즐기는 자 중에서 제일이다>(一相無相分 第九) 라는 귀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보리존자는 '무쟁삼매제일'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설법하기 위하여 도솔천에 가셨다가 오시는데, 모든 제자들이 마중을 갈 때 수보리존자는 <이 허망한 육신으로 허망한 육신을 마중한다는 것은 어리 섞지, 나는 마음(法身)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마중해야지> 생각하고는 숲속에서 일어나지 않고 하던 수행을 계속 하여서, 부처님께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6】설법(說法)제일 부루나
설법과 전법의 달인.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에 부루나 존자가 있다. 파리어로는 푼나라고 하며, 수나아파란타국의 수피라카의 출신이다. 그곳은 인도의 서해안에 있는 항구로 품페이시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예날에는 무역항으로서 번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부루나의 아버지는 수피라카의 부호였다. 그러나 부루나는 아버지와 여종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었으므로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재산을 나누어 받지를 못했었다. 그는 무일푼으로 집을 나왔다. 집을 뛰쳐나온 부루나는 하나의 행운을 만난다. 때마침 입수한 우두전단(향나무의 일종)을 밑천으로 하여 큰 돈을 모은다. 이리하여 그는 부자가 되었으며 해양 무역을 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의 인도의 무역상들은,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방까지 나가 교역을 하고 있었던 같다. 틀림없이 이부루나 역시 그와 같은 항해 무역에 종사했던 것일 것이다.
부루나의 일곱 번째 항해 때의 일이었다. 이번의 향해에는 사위성의 상인들이 동승해 있었다. 부루나는 이 상인들의 기이한 행동에 시선이 멋었다.
그들은 뱃 속에서 모두 목소리를 같이 하여 무언가를 합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노래입니까.?」
「이건 노래가 아닙니다.」
「아, 그럼 주문입니까?」
「아뇨, 주문도 아닙니다. 이것은 불타의 가르침입니다.」
「불타요? 불타라니, 어떤 분입니까?」
이런 대화가 오고간 끝에, 부루나는 석가모니와 불교 교단에 관해 얻어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항해가 끝난 후, 그는 단숨에 사위성을 찾아갔다. 그것은 그때까지 그가 축적한 재산을 모두 장형에게 물려주고 난 다음의 여행인 것으로 보아 그는 석가모니와 직접 대면하기 전에, 석가모니에 관한 이여기만을 듣고서 출가를 결심했던 모양이다.
사위성에는 전부터 아는 부자 수닷타가 있었다. 기원정사를 기증한 재산가이다. 부루나는 이 수닷타의 소개로 석가모니를 뵈었다. 그리고 곧 출가하고 했다.
어느 날 부루나 존자는 부처님께 고향에 전도여행을 떠날 것을 간청한다.「세존이시여, 나는 고향 수나아파란타국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불도 수행에 힘썼으면 합니다. 원하옵건대, 나에게 일상에 명심해야 할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부루나여, 그 지방의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다고 듣고 있는데, 만일 사람들이 그대를 대중의 면전에서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그 때에는 그들이 지팡이나 돌멩이난, 혹은 손질 발길질로 나를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렴니다.」「그럼 그들이 나무나 돌을 가지고 극대를 때린다면, 어떻게 생각할 건가?」「그때에는 칼을 가지고 나를 상해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그러면, 만일 그들이 칼로 상처라도 입히는 날에는...?」「칼을 가지고 상처를 입힌다 할지라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그러면 그 칼로써 그대를 죽일 때에는...?「그 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고 전제를 한 부루나는 명확하게 대답을 이어 나갔다. 「불제자들 가운데는 인생에 온갖 고뇌가 따른다는 것을 싫어하여, 칼이나 독물로써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고 했던 자도 있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나아파란타국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목숨을 끊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번거로움을 덜어 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에 이르자 석가모니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부루나여, 나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그대에게 그만한 각오가 서있다고 한다면 분명히 괜찮을 거다. 수나아파란타국으로 가서 법을 펼치고 오도록 하라.」이렇게 해서 부루나존자는 설법제일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7】논의(論議)제일 가전연
교의에 대한 논의가 가장 뛰어남.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못할 때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논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정도로 나아가는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 시대 상황에 따라서는[논의]가 [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절실한 것이 바른 것을 바르다고 따지고 주장할 수 있는 소신이 필요한 것이다. 부처님 당시 남천축 아반티국의 웃제니라는 마을에 가전연이라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 나라에서 제일 부유하고 뛰어난 이 바라문은 그 당시 나라를 다스리던 엄치왕국의 국사가 되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자기 나라의 학문과 문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10여 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이 나라에 있는 뛰어난 학자들을 모아달라고 요청을 했다. 아버지는 큰아들의 요청대로 대신들과 많은 학자들을 집으로 초청하였다. 그 자리에서 큰아들은 그 동안 암기했던 베다론을 모두 외웠으며, 갈고 닦았던 여러 가지 기예들을 모두 연출하여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이 때 그 국사 바라문의 둘째 아들 나라다에게 국사는 너도 형처럼 유학을 떠나 베다와 다른 많은 기예를 익히도록 하여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라다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어지신 아버지시여, 저는 이미 형이 터득한 모든 베다와 기예를 다 익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번 외워보겠습니다.] 나라다는 형이 한 것을 한 번 보고 듣고 형이 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외우고 연출하여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형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라다를 그대로 두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국사자리는 나라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동생이 더 크기 전에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는 형의 악독한 마음을 눈치채고 나라다를 남방 빈타산에 살고 있는 사선과 오신통을 통달한 아사타선인에게로 보냈다. 나라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선과 오신통을 모두 통달하였다.
그 때 용왕이 나라다의 뛰어남을 듣고 옛부터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해결된다는 문제를 나라다에게 가지고 갔다. 용왕이 나라다에게 물었다.
[무엇에 자재하기에 염착하는 것을 물든다 합니까?
어떤 것을 청정이라 하고 어떤 것을 어리석다 하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어째 미하고 어떤 것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합니까? 어째서 모이면 떠나고 말아 인연을 다했다고 이름 합니까?]
아무리 뛰어난 나라다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라다는 용왕에게 일주일 후에 답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당시 베다에 뛰어난 모든 선인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수소문하다가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에게 찾아 갔다. 부처님에게 그 문제를 묻자마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하셨다.
[나라다여, 제대로 잘 찾아왔구나.
육식이 자재로운 까닭에 심왕(心王)이 물든 것을 물들었다고 하노라.
물들 것이 없는데 물듦으로 이것을 어리석다 이르노라.
큰 물에 빠진 까닭에 방편을 다한다고 이름 함이요.
일체의 방편을 다하게 되면 이것을 지혜로운 이라 하노라.]
이 때 나라다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게송을 듣자 마음과 뜻이 트이어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곧 바로 용왕에게 달려가서 이 게송을 일러주고는 다시 부처님에게 돌아와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나라다는 출가하여 얼마 되지 않아 곧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다른 수행자의 모범이 되었다. 이 나라다가 바로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논의제일인 가전연존자이다.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가전연의 전생을 말씀하였다.
[너희들 수행자들은 자세히 잘 들으라. 과거 가섭불 시대에 이 녹야원 근처에 신심이 뛰어난 우바새가 한 명 있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 녹야원을 찾아 수행자에게 물었다.] 수행자가 명쾌하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이 우바새는 다음과 같은 원을 세웠다. [원하건대 나는 내세에 태어나 이보다 나은 법을 얻고 또 이렇게 분별하여 남을 위해 차례로 설하여 주는 수행자가 되게 하소서.] 이 원으로 우바새는 이 생에 태어나 논의제일인 가전연이 되었다.
공부를 마친 가전연은 부처님께 청하여 외진 고국으로 돌아가 그 곳에 불법의 꽃을 피웠다. 먼저 그 나라의 왕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다. 우리가 간혹 경전을 보다보면 웃제니 출신의 비구니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가전연의 공이다. 부처님께서는 외진 곳에서 전도하는 가전연을 위하여 열 명의 비구니가 모여야 구족계를 줄 수 있다는 조항에 특수한 곳에서는 오 명의 비구가 모이면 구족계를 줄 수 있다는 특수조항을 두게 하였다.
8】지계(持戒)제일 우바리
왕궁의 이발사(천민), 계율을 잘 지켜 1차 결집때 율장 암송.
계율을 가장 잘 지키고 실천하는데 제일가는 제자이다.
인도 사성계급 중 최하위천민출신[슈드라] 으로서 그는 이발사였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사농공상 등의 칠천계급이 있었던 것처럼 인도 사회의 사성계급은 엄격하고 철저하였다. 부처님은 이러한 사회제도를 개혁하고 타파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승단의 출가자를 신분에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 이렇게 되자 바라문출신이나 왕족출신들이 부처님 승단에 귀의하여 계를 받게 될 때 먼저 스님이 되어있던 천민출신 “우파리에게 큰절을 올리라“고 하자 부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일이 생겨나게 되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신다. “많은 강물이 바다에 들기 전에는 모양이 다르지만 한번 바다에 들기만 하면 다 같은 바다물이 된다.“ 이와 같이 여래의 진리 바다에는 종성이나 신분이나 계급을 두지 안는다. 세속에 연연하여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 내 법에 와서 무상정각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은 평등한 것이다. “ 며 불타는 5천년 인도역사를 완전히 뒤엎어 놓은 평화와 평등의 주의자였다. 이 역사를 바꾸는데 우파리가 있었다.
【9】 밀행(密行)제일 라훌라
,
부처님의 아들, 남모르는 수행을 많이 함. 최초의 사미니.
밀행이란 선행이나 좋은 일을 하는데 남모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일을 조금만 해도 온통 세상이 떠들 석하게 생색을 내기에 바쁘다. 금강경에서 가장 복 받는 일로서 상을 내세우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씨앗을 뿌려놓고 덮어주지 않으면 싹이 틀 수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라후라는 부처님의 유일한 혈족인 아들이자 제자이다. 절에서 아침공양으로 죽을 먹는 것은 어린 나후라를 위해서 제정 되었던 법이었다.
【10】다문(多聞)제일 아난다
부처님의 사촌동생, 1차 결집시 경(經)을 암송.
원래의 발음은 아난다이며, 부처님의 사촌형제다.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한 후 20년이 지나서, 아난은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모시면서 많은 말씀을 직접 들었으므로 다문제일이라 불린다. 그래서 그 제 1결집에서 부처님의 직접 설한 가르침을 모두 암송해 냄으로써 후대에 경장을 성립케 하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부처님의 나이 55세 때에 시자로 추천되어 (그 이전? 까지 부처님은 시자를 두지 않았다.)이후 25년간 부처님 신변의모든 일을 둿 바라지하고, 부처님이 병석에 누우면 계를 범하면서까지 특별한 식사를 준비했다. 또 가르침을 구하여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고민을 지닌 동료의 상담역을 맡기도 했으며, 때로는 부처님을 대신해서 설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공적으로 돌릴 만한 또 하나 유명한 사건은 부처님을 설득시켜 여성의 출가를 최초로 허락케 한 일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가까이 모셨던 만큼 그에게는 여러 가지 비난도 쏟아졌다. 대료적인 예로서 그는 부처님이 사사로운 계율도 버려도 좋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되자 버려도 좋을 사사로운 계의 구체적인 한계를 부처님께 물어보지 못한 잘못이 그에게 지적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이밖에 가섭은 그에게 다섯 가지의 죄를 지적하였는데, 그것은 여인의 출가를 청하여 정법을 500세 감축시켰다는 점, 부처님이 더 오래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을 청하지 않아서 부처님이 일찍 입멸하게 되었다는 점이 주요내용이다. 사실이야 어쨌든 간에 후대 사람들로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점을 가까이 모셨던 아난의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억울한 빈난을 받기도 하는 그 이지만, 십대제자들 중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하였던 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100세가 넘게 매우 오래 살았다.
아난은 출가는 여러 왕자들과 이발사 우파리와 동시에 출가를 했다.
처음엔 부처님의 시봉을 하는 것을 망설였다. 왜야하면 부처님의 시자라는 이치 때문에 자기 스스로 교만하고 사치스러움에 빠질까봐 망설였던 것이다. 아난은 시자가 되는 조건을 몇 가지 제시한다.
첫째 . 새 것 헌 것을 불문하고 석존을 위해 만들어진 복 은 받지 않는다.
둘째 . 석존을 위한 식사는 받지 않는다.
셋째 . 비시(때 아닌 때)에 석존과 만나지 않겠다.
아난은 부처님의 시자가 되고 25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부처님의 시중을 든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가사를 접어 깔고 머리를 북쪽 방향하시고 우측 측면으로 누어서 80세 열반에 드실 때 까지 한시도 부처님 곁을 떠난 적 없이 시봉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교단을 정비하기 위해 마하가섭이 500명의 제자들을 영축산 칠엽굴에 소집하고 다문제일 아난은 제 1차 경전결집을 주도 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경전구절은 아난이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기억을 암송하는 것이다.
◆ 특별히 경전에 많이 언급되는 제자들
1. 부처님의 최후의 제자 수바드라
부처님이 열반할 때를 알고 제자인 아난다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오른쪽으로 누워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죽음의 고통을 참고 있었다. 이때 나이가 120살이 되는 수바드라라는 노인이 찾아와 부처님을 만나 설법을 듣기를 청했다.
“부처님은 오늘 열반에 드실 것입니다. 나는 아직 의심이 있습니다. 나의 의심을 깨우쳐 주실 분은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아난다여, 제발 친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지만 아난다는 세 번이나 거절했다.
그러자 누워있던 부처님이 사정을 짐작하고 아난다에게 수바드라를 만나겠다고 말했다. 수바드라는 기뻐하면서 부처님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세상의 여섯 가지 종교 지도자들(六師外道)은 자기들만이 진실한 사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이 맞습니까?” 부처님은 말했다. “여덟 가지 바른 도(八正道)를 행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진실한 수도자라고 할 수 없다. 바른 도를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도의 스승이요 이름만 사문이니라.” 이 말을 들은 수바드라는 이내 의심이 풀리며 제자가 되기를 청해 ‘최후의 제자’가 됐다.
2. 주리반특
방금 들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주리반특'은 승단에서 쫓게나게 되자 부처님은 '먼지를 털자'만 반복해 외라고 하자, 마음속의 번뇌를 털어내고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되었다.
진리를 깨우칠 때는 주리반특처럼 머리의 좋고 나쁨이 중요치 않고 온 몸과 마음으로 절실하게 체험해야 성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3. 앙굴라말라
99명을 죽여 손가락을 잘라 염주을 만든 살인마. 부처님의 교화로 제자가 됨.
부처님께 귀의하는 앙굴라마
앙굴마라는 외도 마니발타라의 제자였었으며, 마니발타라의 500명 제자 가운데 상수제자였다. 그는 지혜가 뛰어났고 몸이 건장하며 행동이 민첩하여 날으는 새를 잡고 뛰는 말을 잡을 정도였다.
어느 날, 스승이 외출하였을 때 앙굴마라에게 연심을 품어오던 스승의 아내가 앙굴마라를 유혹하자 앙굴마라는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에 수치감과 모욕감을 느낌 마니발타라의 아내는 오히려 남편에게 제자를 모함하였다.
격분한 스승은 앙굴마라를 해치려고 하였다. 그는 제자인 앙굴마라에게 하루 낮 동안에 100사람을 죽여 그 사람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도를 이루고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도를 이루고 하늘나라에 태어나고자 하였던 앙굴마라는 스승이 준 예리한 칼을 가지고 사위성 거리로 나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하였다.
마침 걸식을 나갔던 비구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돌아와 부처님께 말씀을 드리니 부처님은 제자들의 만류도 물리치시고 혼자서 앙굴마라를 만나러 나가셨다.
부처님께서 앙굴마라가 있는 곳으로 가시는 것을 본 거리의 많은 사람들은 걱정이 되어 부처님께서 그곳으로 가시면 안된다고 사정을 하였으나 부처님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시지 않으시고 앙굴마라가 사람을 해치고 있는 거리로 가셨다.
하루해가 다갔으나 아직 100사람을 죽이지 못한 앙굴마라는 아들을 만나러 온 자기의 어머니 마저 해치려고 하였다. 마지막 한 사람만 죽이면 소원을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자기 어머니를 막 해치려는 순간 부처님께서 나타나시자 앙굴마라는 칼을 들고 부처님께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하여 부처님께 달려들어도 부처님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은 천천히 걸어가시는데도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게 되자 앙굴마라는 소리를 질렀다.
"야, 거기 멈추지 못해."
이 소리를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앙굴마라를 돌아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는데 너는 아직도 멈추지를 못하고 있구나."
자기가 아무리 달려가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는데 자기는 멈추어 있다는 말뜻을 알 수가 없어 앙굴마라는 괴이하다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당신은 가면서도 이미 멈추어 있다 말하고 오히려 나보고 멈추지 않는다 하니, 당신은 멈 추었고 나는 멈추지 못한 뜻을 말해 주시오."
"나는 일체 중생을 해치려는 마음을 멈추었으나
너는 아직도 살생업을 멈추지 못했노라.
나는 자비심에 머물러 일체 중생을 사랑하는데
너는 악업을 멈추지 못하여 삼악도의 고통을 멈추지 못했노라.
나는 번뇌망상과 게으름을 멈추어 진리에 머물러 있으나,
너는 진리를 보지 못하여 게으름을 멈추지 못했노라."
앙굴마라는 눈이 번쩍 뜨이면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후회하면서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부처님의 제자로 받아주어 사문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난 앙굴마라는 진리에 눈을 뜨고 깨달음을 얻어 신통력을 얻은 제자가 되었다.
한편 앙굴마라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파사익왕은 군대를 이끌고 거리에 나왔다가 찾지 못하고 다시 지친 몸으로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원정사에 계시는 부처님을 방문하게 되었다.
파사익왕의 피로한 모습을 보고 부처님은 물으셨다.
"대왕이여, 어디를 갔다 오시길래 이처럼 피로해 보입니까?"
"부처님이시여, 극악무도한 앙굴마라라는 자가 있어 많은 사람을 해치고 있다기에 그를 체포하여 처형하고자 나왔나이다."
이때 앙굴마라는 제자들 가운데 앉아 있었으므로 이러한 대화의 내용을 모두 듣고 있었다.
"앙굴마라는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머리를 깎고 사문이 되어 있습니다. 그를 잡으면 어찌하시겠소?"
"이미 출가한 사문이 되어 도를 닦고 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저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받들어 공양을 올리겠나이다.
그렇지만 부처님이시여, 선한 마음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어 그렇게 많은 살생을 하던 악인도 마음을 바꾸어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때 앙굴마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삼매에 들어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손을 들어 앙굴마라가 앉아 있는 곳을 가리키자 앙굴마라를 본 파사익왕은 혹시나 해치러 덤비지는 않을까하여 두려움에 긴장하였다. 파사익왕의 긴장하는 모습을 보신 부치님은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두려워할 것 없오. 옛날의 악한 마음은 이미 모두 버렸소."
파사익왕은 그것이 사실인지 알고 싶어 앙굴마라에게 다가서서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제 아버지 성씨는 가가(伽伽)이시고, 어머니의 성은 만타니(만족)이며, 저의 이름은 앙굴마라입니다."
파사익왕은 사문이 되어있는 앙굴마라에게 예배하고 말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말고 청정범행을 닦으시오, 번뇌망상이 다하는 날까지 내가 모든 공양을 올리리다."
앙굴마라가 침묵을 지키고 말하지 않자 파사익왕은 예를 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굴복하지 않는 자를 굴복케하고,
이루지 못한 자를 이루게 하시니
정말로 부처님은 기특하시나이다.
오직 원컨대 세존께서 오래 사시어 모든 중생을 자비로 구원하소서.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어려움을 벗어나게 되었나이다."
그후 앙굴마라가 아라한이 되어 사위성으로 걸식을 나갔다. 그러나 성안의 사람들은 악명이 높았던 앙굴마라였음을 알고, 보는 사람마다 돌을 던지고 몸둥이로 때려 옷은 찢어지고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면서 사위성을 나와 부처님께서 계시는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피를 흘리면서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앙굴마라를 맞아 말씀하셨다.
"앙굴마라야, 너는 아픔을 참아야 한다.
너의 죄는 영겁동안에 걸쳐 받을 것이었다."
이때 앙굴마라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굳은 마음으로 가르침을 듣고, 굳은 마음으로 불법을 실천하여,
굳은 마음으로 스승을 모셔 끝내 깨달음을 성취하오리다.
저는 원래 대악인 앙굴마라. 지금 피를 흘리는 것은 세존의 은혜를 받아
내 업장에서 벗어남이오니, 이제 스스로 나의 업을 돌아보아
진리의 근본을 살피오리다.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바르게 하고,
물을 관리하는 사람은 물길을 다듬고,
목수는 나무를 다듬듯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자기 몸을 다스립니다.
때로는 회초리로 나를 때리거나 폭언으로 나를 꾸짖어도
끝내 칼이나 몽둥이로 맞서지 않아 이제 저는 스스로를 항복받 았나이다.
전날에 악행과 악행을 일삼았으나 훗날 다시 범하지 않으니
햇빛이 구름을 헤치고 온 세상을 비쳐줌과 같나이다.
제가 이제 고통을 당하며 적은 음식으로 만족하옵나니,
모든 고통 벗어나 내가 지은 악업을 다하면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고 태어남도 즐겨하지 않아 해탈의 날만 기다리니
이제 기쁨을 누릴지언정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나이다."
이러한 앙굴마라의 반성하는 말을 들으신 부처님은 앙굴마라는 참으로 현명한 제자라고 모든 비구들에게 칭찬하셨다. 이러한 개과천선의 길은 자기를 돌아보는 곳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경전에서는 말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도리어 부끄러운 것이요,
부끄러워할줄 알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두려운 것이요,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살아서 삿된 견해를 쫓다가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간다."
고 하시면서 사람이 전날에 허물이 있었으나 훗날 그것을 깨달아 참회하고 다시 범하지 않으면 구름을 헤치고 나온 보름달이 온 세상을 비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4. 똥치기 니이다이
신분이 무엇이든 현재의 생각과 행동이 가장 중시함을 보여줌.
니이다이라는 이름의 똥군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똥이 가득찬 똥통을 메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부처님은 제자와 함께 음식을 먹고 계셨고,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처님을 뵙고자 하였다. 니이다이도 부처님을 뵙고 싶었으나 자신이 하도 초라하여 혹시나 부처님께 폐가 될까 하여 길 모퉁이에 숨어서 기다렸다. 그런데 부처님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시는 것 아닌가. 니이다이는 당황하여 멀리 피해가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그만 똥통이 벽에 부딪쳐 깨어졌다. 더러운 똥이 사방으로 튀어서 자신이 똥물을 뒤집어 쓴 것은 물론이고 부처님의 옷까지 더럽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에게 똥물이 묻는 것은 아랑곳없이 부처님께 폐가 된 것에 어쩔 줄 몰라 똥이 쏟아진 바닥에 주저앉아 울며 사죄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비로운 눈으로 그를 보며 손을 내미셨다. "니이다이여, 내 손을 잡고 일어나거라, 같이 강물로 가서 씻자." 부처님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셨다. "저같이 천한 자가 어찌 감히 부처님과 함께 가옵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니이다이의 말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염려 말라. 나의 법은 맑고 깨끗한 물과 같으니 모든 것을 받아들여 더러움을 씻어내고 해탈케 하나니, 빈부귀천이 나의 법안에서는 모두 하나가 되느니라.
이런 이야기 속에는 모든 사람이 귀천이 없이 평등하며, '진리'는 세상의 더러움을 깨끗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또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주기도 한다.
똥꾼이나 창녀는 더러워서 상종할 사람이 아니라든가,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안하니 깨끗한 사람이라든가 하는 편견 또는 오만을 부끄럽게 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잘못된 생각이 있다. '쟨 왜 저렇게 지저분하니?'
'저 놈은 이러이러해서 나쁜 놈이야'
'저런 애들에 비하면 난 얼마나 올바르게 살고 있나'등등.
이런 생각은 나와 남을 가르고 이상한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만들어낸다.
똥꾼인 니이다이는 그 당시엔 손발이 귀족의 몸에 닿기만 해도 손발이 잘리우고 근처에만 가도 매질을 당하는 천민으로 노예보다 더 천한 신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는 똥물을 뒤집어 쓴 그를 붙잡아 일으키고 손수 몸을 씻어줌으로서 잘못된 사회신분제와 가치관을 부정한 것이다. 위대한 가르침을 제대로 다 따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조그만 것조차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외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겸손함을 갖는 것이 그 작은 일의 출발일 것
5. 마하파자파티(=마하프라자파티)
8계법을 받고 '최초의 비구니'가 됨.
마하프라자파티는 최초의 여성 출가자다.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출산한 후 7일만에 죽자, 어린 고타마 싯타르타를 키웠다. 마야부인의 언니(여동생)으로 고타마 싯타르타에게는 이모가 되기도 한다.
교단은 처음 남성 출가자를 중심으로 한 비구교단으로 출범했다. 고대 인도의 오랜 풍습은
여성의 출가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불교 교단도 초기에는 동일한 입장이었다. 부처님이 여성 출가자를 허락한 것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아난다의 간절한 요청도 크게 작용했다. 부처님의 양어머니인 마하프라자파티가 출가의 뜻을 세워, 부처님의 찾아가서 세 번이나 가르침과 계를 베풀어 달라고 청했으나, 그때마다 부처님은 받아주지 않았다. 아난다가 어느 날 부처님께 “여성도 출가해서 수도하면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부처님은 “여성도 출가 수도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며 비구니에게만 적용되는
팔경법(八敬法)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다.
비구니팔경법은 비구니가 비구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할 여덟 가지 종류의 법을 말한다.
△백세 비구니일지라도 새로 계를 받은 비구를 보면 마땅히 일 어나 예배해야 하고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거나 비방해서는 안된다.
△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드러내거나 기억해서도 안되며
△비구로부터 구족계를 받겠다고 청해야 하며
△승잔죄를 범하면 보름동안 마나타를 행해야 하며
△보름마다 비구에게 교수해 주기를 청해야 한다.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하안거를 해서는 안되며
△하안거를 마치면 마땅히 비구승가 중에서 보고, 듣고, 의심한 것에 대한 삼사를 자자할 비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여성의 출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은 당시의 수행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유행(遊行)과 걸식(乞食)의 수행생활이 여성 출가자에게는 매우 힘겨웠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팔경법은 비구 교단에 대한 예속이나 감시가 아니라 출가 생활의 경험이 앞선 비구 교단이 비구니 교단를 보호하고, 비구니 교단은 이를 모범을 삼으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6. 연화색여
연화색 비구니에 대한 설화는 불교에서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사분율(四分律)에 실려 있다.
인도의 서쪽 아반티라는 나라에 웃제니라는 한 도시가 있었다. 그곳 출신이라고 전해지는 연화색, 즉 웁팔라반나[蓮花色]란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혼인할 나이가 되어서 그의 부모는 이 웁팔라반나를 결혼시키고 그 사위를 맞아들였다. 얼마 후 그 젊은 부부 사이에는 딸이 생겼는데 그때 바로 웁팔라반나의 아버지가 별안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웁팔라반나가 갓난애를 안고 자기 방안에 있을 때, 남편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사위와 몰래 정을 통하고 말았다. 하녀가 이것을 보고 곧 그 사실을 웁팔라반나에게 말하였다. 그 어머니와 남편의 이와 같은 불륜을 알고 분노와 슬픔을 금치 못한 그녀는 정신없이 갓난아기를 방에 그대로 둔 채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먼 길을 걸었다. 웃제니를 출발하여 베나레스 성에 도달하였다. 성문 밖에 서서 정신을 잃고 허탈한 심정에 잠겨 있었다. 아름다웠던 육체는 지금 먼지와 흙에 뒤덮이고 발에는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이 성에는 상처(喪妻)를 한 한 장자가 있었다.
때마침 무료를 풀기 위해 성 밖으로 나와 교외를 거닐려고 하던 참에 성문 밖에 홀로 서 있는 웁팔라반나를 보았다. 장자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쏠려 마차를 세우고 그 여자의 앞으로 갔다.
“당신은 어느 누구의 아내이시오?”
“나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올시다.”
“당신이 독신이시라면 내 아내가 되어줄 수는 없소?”
이런 대화가 오고 간 후에 그녀는 그 뜻을 수락하였다.
장자는 여인을 마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로 삼았다.
얼마 동안의 세월이 지나갔다. 장자는 큰돈을 모았다. 그는 장사를 위해 웃제니로 가야할 일이 생겼다. 웃제니는 그 아내 웁팔라반나의 고향이다. 장자가 거기에 갔을 때 그는 우연히 그 지방의 처녀들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명절을 맞아 기쁘게 뛰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 중에는 웁팔라반나가 낳은 딸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를 닮은 그 미모에 장자는 크게 마음이 동하여 그 옆의 사람들에게서 이름과 주소를 알고 그 집으로 찾아가 그 처녀의 아버지를 만나 수만금을 주고 그 딸을 데리고 올 수가 있었다.
장자는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녀를 숨겨두고 그가 가졌던 돈의 절반을 거기에 남겨두고 돌아왔다. 아내는 돈이 적은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더니 “도적을 만나 절반을 빼앗겼다. 이제 가서 곧 도적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떠난 뒤 남편의 친구가 와서 “장자는 어디로 갔느냐?” “돈을 뺏어간 도적을 찾아갔습니다.” “도적을 쫓아간 것이 아니라 여자를 찾아간 것일 게다.”라고 여행 중에서 생긴 모든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얼마 안 있다 장자가 돌아오니까 아내는 말하기를 “당신은 유달리 나를 속이려고 하오.
이미 딴 여자가 있으면 어째서 내 집에 데려오지 않소.”“두 아내가 한 집에 있으면 싸움이 생길 염려가 있어서 그랬소.” “하지만 제가 잘 참을 것입니다. 절대로 싸우지 않겠습니다.
만일 나와 나이가 비슷하면 자매와 같이 지낼 것이고, 나이가 어리다면 딸과 같이 대하겠습니다.” 장자는 아내의 말대로 그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웁팔라반나는 그 여자가 동향인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 더 친근한 뜻을 표했다.
어느 날 웁팔라반나는 그 여인의 머리를 빗어주고 있었다. “당신이 웃제니 사람이라는데 집은 어디에 있으며, 그 거리 이름은 무엇이고, 아버지 이름은 누구요?” 하고 자세히 물었다.
“당신 어머니의 이름은?”
“저는 어머니를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머니 이름은 ‘웁팔라반나’라 한다고 하며
어렸을 때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가셨답니다.”
웁팔라반나는 그 여자가 바로 자기 딸임을 알고 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한 때는 어머니와 남편을 같이 했는데 지금은 또 딸과 남편을 같이하게 되다니 이 무슨 죄악일까?” 그녀는 다시 집을 버리고 나가 걷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이 거리 저 거리를 방황하였다.
베나레스 성문(城門)을 나서서 울며 울며 가다가 도달한 곳이 라자가하[王舍城]였다. 거기에 온지 며칠 안 되는 동안에 그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성 안의 노름꾼들 사이에 자자하였다. 오백 명의 노름꾼들이 오백 금을 웁팔라반나에게 주고 같이 꽃밭으로 가서 거기서 노는 것이다. 그때에 마침 목련(目連)존자가 그 동산 안에서 나무 밑을 산보하고 있었다.
이 노름꾼 중의 한 사람이 “너 저 존자에게 가서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느냐 없느냐”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 옛날에 수많은 남자의 마음을 녹였다. 어째서 저런 사람쯤 녹이지 못하겠느냐”하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의 도심(道心)은 견고하기 때문에 그건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목련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가진 교태를 다 부렸으나 목련존자의 마음은 숲과 같이 조금도 동요함이 없었다. 그 때 목련존자는 이 여인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인이여, 깊이 스스로 반성하라. 네 몸은 미워해야 할 것, 더러운 그 몸은 뼈가 되고, 뼈의 둘레를 도는 근육과 혈액은 엉키고 설키어서 나쁜 피가 그 사이를 흐른다. 위(胃)의 주머니는 언제나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아홉 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더러운 물은 그칠 사이가 없고, 나쁜 기운이 늘 몸에서 넘치고 있다. 내가 만일 네 몸의 부정(不淨)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면 마치 여름철의 변소와 같이 사람들은 너를 버리고 멀리 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진실을 찾는 눈이 없기 때문에 항상 우치(愚痴)의 안개에 뒤덮여 마음이 미혹되어 너를 가지고 쾌락을 누리려는 모습이 마치 늙은 코끼리가 깊은 진흙구덩이에 빠져가는 것과 같다.”
웁팔라반나는 그 자신의 부정을 깨닫고 멀리 물러나 존자께 절하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높으신 분이시여, 제가 지금 알았습니다. 미워해야 할 이 육신이 항상 부정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존자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만일 사람들이 내 진실을 안다면 여름날의 변소에는 가까이할 바가 못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멀리 나를 버리고 떠나가 버릴 것이옵니다.
원하옵건대 높으신 분이시여, 저를 위해 그 가르침을 다시 깊이 설해 주옵소서. 저는 가르침에 따라 출가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도(道)를 닦겠나이다.”
목련존자는 이를 불쌍히 여겨 스승의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열려 거듭 출가하기를 간절히 구했다. 그리고 같이 왔던 노름꾼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받았던 돈을 돌려주었다. 목련존자가 그녀를 데리고 부처님에게로 가서 전후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부처님은 다 듣고 나서 웁팔라반나의 출가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연화색비구니가 되었다.
이 설화에서 보여주는 연화색의 인생이나 우리들의 인생이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부귀공명에 흔들리고 끌려서 이리 저리 팔려 다니는 삶은 대동소이하리라. 중요한 것은 마지막이다. 아무리 사바세계를 헤집고 다니면서 온갖 일을 다 저질렀을지라도 끝에 가서 정신을 차리고 본심으로 되돌아 올 줄 알면 된다. 본심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일불승(一佛乘)의 경지, 즉 자신이 곧 부처님이라는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다. 자신이 곧 부처님이라는 자리로 되돌아오면 그 때부터는 저절로 부처님으로 살게 될 것이다.
연화색비구니는 자신의 인생을 깨닫고 미루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석가족의 여인들에게 널리 권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였다. 참으로 자신의 불행한 삶을 잘 승화시킨 사례다. 전화위복이라는 것을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았더라면 어쩌면 그와 같은 행운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는 어떤 삶과 어떤 경험과 어떤 고통도 잘 회향하여 승화시키면 결코 헛된 것은 없으며 오히려 몇 만 배의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었다.
7. 제바달다
제바달다는 불경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악인이다.
부처님의 사촌으로 태어난 제바달다는 어릴때부터 싯달타 태자와 상당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듯하다. 싯달타 태자가 야수라다를 아내로 맞이 하자 내심 마음에 두었던 것의 실패로 인해 가슴에 묻어 둔듯 하다.
제바달다는 그후 부처님이 득도하시고 석가족의 여러 청년들이 불교에 귀의할때 불교에 귀의 하였으나 인간적인 부처님과의 라이벌 관계에 의해 부처님을 괴롭혔다.
오역죄인 부처님 몸에 피를 나게 하였고, 아사세왕을 꼬드겨 그의 부왕인 빔비사라왕을 살해하게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백호상을 자신도 갖추었다며 반디불을 이마에 붙여 세인을 혹하게 하였다.
현장삼장이 인도에 갔을 때 제바달다가 빠져 지옥으로 떨어진 동굴이 당시에도 남아 있었다 하며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인도에서 그를 따르던 제자의 유파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법화경의 다라니품에는 그의 죄를 빗대어 조달파승제(調達破僧罪 조달=제바달다의 화합승 파한 죄)가 나와 있을 정도로 악인을 대표하였다. 물론 제바달다가 전생에서 이어져 온 선연과 그리고 현세에서의 악인의 사명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한 제바달다도 법화경 제바달다품 제12에서는 성불할 것을 수기 받는다.
부처님의 자비력은 끝이 없다.
8. 삼가섭존자
우루빌라(鬱鞞羅)가섭존자, 나제(那提)가섭존자, 가야(伽耶)가섭존자의 세 가섭(迦葉)이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도를 깨치다
우루빌바(鬱鞞羅婆) 지경에 비라가섭 이라는 범지가 있었다. 5백의 나계(螺髻) 범지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미 존자가 되었는지라 앙가마갈국에서는 모두가 아라한이라 일컬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로 가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룻밤 묵어 가려 하오."
대답하였다.
"아까울 것이야 없습니다.
다만 이 석실(石室)에는 독이 있는 용[毒龍]이 있으므로 그대를 해칠까 걱정하는 것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걱정 마시오."
가섭이 말하였다.
"그럼 마음대로 하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이내 석실로 들어가 가부를 하고 앉아서[結伽趺坐] 몸을 꼿꼿하게 하고
뜻을 바르게 하시었다. 용이 보고 연기를 내쏘므로 부처님도 연기를 내쏘았고 용이 다시 불을 뿜자 부처님 역시 불을 뿜으셨다. 그리하여 그 때 석실 안은 연기와 불이 함께 일어났다.
가섭은 멀리서 그것을 보았다. "구담(瞿曇)이 애석하게도 독룡에게 해를 입고 말았구나."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내 용을 항복 받아 발우 안에 담아 놓았다.
다음 날 아침에 그것을 가지고 가섭에게로 가서 말씀하셨다.
"독룡은 지금 이 발우 안에 있소."
가섭은 생각하였다.
'구담이 비록 나한이 되어 큰 신통력을 지녔다고는 하나, 그래 봤자 나보다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머물러 계십시오. 제가 식사를 대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밥 때를 맞춰서 몸소 온다고 하면 내가 그 청을 받아들이겠소."
가섭이 말하였다.
"제가 몸소 와서 부처님 계신 데서 먹겠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석실로 돌아와 주무시다가 그 밤에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드시어 그 석실을 비추셨다.
가섭이 도중(徒衆)들에게 에워싸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식사하러 가십시다. 사문은 어젯밤 무엇 때문에 그런 큰 불을 내셨습니까?"
이렇게 해서 우루빌라 가섭이 부처님의 신통력에 감동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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