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2. 僧團의 출발 - 초전법륜과 전도선언

수선님 2022. 10. 23. 11:57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2. 僧團의 출발 - 초전법륜과 전도선언

"그 때 세상에 아라한은 여섯이 됐다"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코끼리 발자국에 다 들어가듯,
모든 착한 진리는
네 가지 聖諦에 다 포섭된다. <중아함경>


비구들아!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 행복을 위해.
나도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잡아함경>

 

<다메크 대탑>사진설명: 녹야원에 들어가면 첫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스투파다. 높이 43미터, 지경 28미터나 되는 장대한 탑이다

인도의 햇살은 4월(2002년) 들어 점점 더 따가워졌다. 바라나시 근방 영불탑(迎佛塔)에 도착한 즉시,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정상에 올랐다. 한참이나 녹야원 쪽으로 응시했다. 울창한 숲 사이로 우뚝 솟은 녹야원의 다메크 대탑과 근본향적사 탑이 보였다. "참으로 멋지다"며 감탄을 연발하는데, 신선한 바람이 서쪽에서 마침 불어왔다. '바람과 함께' 2600년 전 있었던 부처님과 다섯 비구의 만남 장면이 홀연 되살아났다.

 


'타락한 사문' 싯다르타를 영접하지 말자는 밀약(?)을 깨고 비구들은 서로 부처님을 맞이했다. 한 사람은 그릇과 옷을 받아들었고, 한 사람은 자리를 준비했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발판·수건을 가져왔다. 정각을 성취해 부처님이 됐음을 모르는 그들은 여전히 부처님을 "벗이여"라고 불렀다.


부처님은 조용히 타일렀다. "비구들아, 여래를 이름이나 '벗이여' 하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 비구들아, 여래는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할 분이며,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아, 귀를 기울여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증득했다. 이제 법을 설하겠다."

 

그럼에도 다섯 비구들은 여전히 '정각(正覺)'을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벗 고타마여, 고행을 닦고 실천하고 수행해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智見)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을 얻었겠는가."


영불탑으로 오는 부처님의 성스런 위의(威儀)에 자기도 모르게 영접했지만, 마음 속까지 존경심이 들어찬 것은 아니었다. 부처님은 한번 더 이야기했다.

"비구들아, 잘 기억해 보아라. 내가 예전에 이와 같이 말한 적이 있었느냐."

"부처님이시여, 그런 적이 없습니다."

"비구들아, 여래는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아, 귀를 기울여라. 이제 법을 설하겠다."

다섯 비구는 '벗 고타마' 대신 '부처님'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들은 깨달은 내용을 듣기 위해 부처님을 모시고 녹야원으로 갔으리라.


우리도 영불탑에서 내려와 북쪽으로 1km정도 더 들어갔다. 그곳에 녹야원이 있기 때문이다. 햇살은 사정없이 내리 쪼았고, 대지 역시 뜨거웠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저 멀리 녹야원 유적지가 보였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니 '밖'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성한 나무숲, 잘 가꾸어진 잔디밭 등이 더위에 지친 몸을 절로 시원하게 했다. 부처님이 첫 설법을 펼치며 당당하게 출세(出世)하신 곳. 유적지엔 많은 석물(石物)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들어간 입구에서 시작해 유적지를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서쪽 편에 직경13m의 거대한 스투파 흔적이 보였다. "이것이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며, 부처님이 첫 설법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라는 내용이 푯말에 적혀있다. 스투파 바로 옆이 승원(僧院) 유적, 승원 앞에 아쇼카 석주가 부러진 채 서 있다. 석주를 보니 반가움이 앞섰다. 불교유적지 마다 서 있던 석주 아니던가. 네팔 룸비니·니갈리사가르·코티하와 등에서 본 석주. 원통형의 석주를 여기서 또 보다니. 실로 불교 흥기(興起)의 한 가운데 아쇼카 석주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반가움에 만지려 다가서니 철로 만든 보호살이 가로막는다.


무너지고 부서진 유적들을 보며 계속 돌았다. 불경스럽게도 한 때 스투파였을 유적지 위에 올라가 밟기도 했다. 눈앞에 문득 거대한 스투파가 나타났다. 영불탑 위에서 보았던 다메크 대탑. 높이43m·직경28m의 대탑 앞에 선 것이다. 실로 거대한 높이였다. 크기만 장대한 게 아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표면에 새겨진 장식무늬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다메크 대탑을 역시 시계방향으로 돌며 그 옛날 처음으로 법륜(法輪)을 굴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초전법륜상>사진설명: 사르나트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불상은 굽타시대 조성된 것으로, 전세계 불교미술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조각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마하박가>·<니다나 가타> 등에 의하면 다섯 비구와 함께 녹야원에 자리잡은 부처님은 '깨달음'을 사자후(獅子吼)에 실어 처음으로 펼쳤다. 하늘과 땅이 모두 조용했다.

 

"비구들아,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는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여러 가지 애욕에 빠져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이고 범부의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그것도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비구들아,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원만히 잘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수승(殊勝)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된다."


카필라바스투 성을 뛰쳐나와 수행을 시작하고, 고행을 거듭하기 6년. 붓다가야 보리수 나무아래의 금강보좌에서 정각을 이루고, 가르침 펼 것을 주저하던 부처님. 그 부처님이 사자후를 토한 것이다. 다섯 비구를 상대로 시작된 부처님의 첫 설법은 도도한 물처럼 조용하면서도 위엄 있게 계속됐다.

 

"그러면 비구들아,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키고, 고요함과 수승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곧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正道)을 말하는 것이니, 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이다."

<설법듣는 다섯비구>사진설명: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편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있는 다섯비구의 모습을 형상화 한 조각. 녹야원 부근에 있는 스리랑카 근본향적사 뒷뜰에 안치돼 있다.

'중도'·'팔정도'의 가르침을 설하는 부처님의 태도는 참으로 진지했다. 법륜을 굴릴 당시 땅의 신이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파타나의 녹야원에서 가장 훌륭한 법륜을 굴리셨다. 이것은 사문·바라문·천신·악마·범천 등 세상의 어떤 누구도 굴리지 못한 것이다"고 외칠 정도로 진지했다. 흐르는 물처럼 또한 거침이 없었다. 부처님은 '중도' '팔정도'에 이어 사성제의 가르침을 설했다.

 

가르침을 들은 카운디냐가 다섯 비구 가운데 가장 먼저 가르침을 이해했다. 이어 다른 비구들도 깨달았다. 부처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도 모르게 "아! 참으로 카운디냐는 깨달았구나. 아! 참으로 카운디냐는 깨달았구나"고 큰소리로 외쳤다. 카운디냐는 이때부터 '깨닫다'는 의미를 가진 '아즈나타'가 이름 앞에 붙게됐다.


부처님은 왜 이렇게 기뻐했을까. 아마도 '우려'와 '조바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래서 설법하지 않기로 결심한 부처님 아니었던가. 게다가 범천의 청을 받아 가르침을 펴기로 결정하곤, 대상자를 물색하지 않았던가. 고심 끝에 붓다가야 나이란자나 강변에서 같이 수행했던 다섯 비구를 생각하고, 240km나 떨어진 바라나시까지 달려온 부처님 아니었던가. 당연히 가르침을 다섯 비구가 제대로 이해할 지 우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카운디냐가 제대로 이해했으니, 부처님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경전은 당시 상황을 "그때 이 세상에 아라한은 여섯이 되었다"(마하박가)고 표현하고 있다.


깨달은 카운디냐가 구족계를 받고, 밥파·밧디야가 뒤이어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마하나마·앗사지 장로 역시 깨닫고 구족계를 받았다. 마침내 녹야원에서 '부처님'·'가르침'과 함께 불교를 구성하는 세 가지 보배인 승가(僧伽)가 형성된 것이다.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한 '초전법륜'과 '승단의 구성' 은 불교사 뿐 아니라, 인류역사상 의미 있는 '일대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녹야원에서 시작된 '가르침'은 인도대륙을 넘어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전체에 퍼져 인류문화 발전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고, 우리나라에도 전파돼 한국 역사·문화 발전에 큰 획을 그었고, 지금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찌됐을까. 부처님 혼자 만 '위대한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출가하는 야사>사진설명: 바라나시 장자의 아들 야사는 삶에 환멸을 느껴 녹야원에 가 출가한다. 아잔타 석굴 벽화 장면.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제도한 부처님은 녹야원으로 오던, 바라나시 장자의 아들 야사를 '고뇌에서 구출'했다. 고집멸도의 가르침을 들은 야사도 깨달았다. 사라진 야사를 찾기 위해 녹야원으로 온 야사의 부모도 '사성제' 설법을 듣고 "삼귀의에 의한 최초의 재가 신자"가 됐다. 야사의 출가 소식을 접한 비마라·수바후·푼나지·가밤파티도 삭발했으며, 50명의 친구들도 야사를 따라 부처님 제가가 됐다. 이들 모두는 "이미 교법을 설해놓았다. 바르게 괴로움을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는 번뇌에서 해탈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아라한은 61명"이 됐다.

 


60명의 제자를 모아놓고 부처님은 마침내 '전도선언'을 하게된다.

 

"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將軍村)로 가리라." 불교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 갠지즈강의 목욕.>사진설명: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갠지즈강에서 목욕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인도인들.

다메크 대탑을 둘러보고 녹야원 입구 쪽으로 오니, 해는 벌써 서산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녹야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든 많은 청춘남녀들도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부처님이 첫 설법을 펼쳤고, 승단(僧團)이 출발했고, 불교가 전도(傳道)를 시작한 녹야원을 다시 보았다. 그런데 "지금 녹야원과 그 인근에는 부처님과 다섯 비구도 없고,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조차 적어졌다" 생각하니 참배객의 발걸음은 웬지 모르게 수수(愁愁)해졌다. "인천의 행복을 위해" 출발한 인도불교가 "서산에 지는 해처럼" 변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녹야원을 빠져 나오는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다.

 

** 녹야원과 사르나트 박물관


입장료 100루피, 박물관은 2루피
초전법륜상 등 세계적 명품 전시

 

<녹야원 입장 티켓>

녹야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티켓을 사야한다. 외국인 티켓비는 100루피(약 2달러).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돈도 아니다. 우리 돈으로 2,400원 정도. 녹야원 주변과 안에는 많은 나무들이 있다. 다른 불교유적지와 달리 숲이 그늘이 풍부하다.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영국 고고학자 커닝햄이 발굴한 것이다.

 


녹야원 유적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대당서역기>에도 나와있는 이 탑은 그러나 1794년 바라나시왕의 관리였던 자가트 싱이 바라나시 시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석재와 벽돌을 충당하기 위해 헐어 버렸다. 당시 탑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약 9m 되는 지점에 돌 상자가 하나 있었는데, 용기 안에는 뼛조각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자가트 싱의 무리들은 "부처님 유골일 가능성이 높은" 뼛조각을 갠지즈강에 떠내려보냈고, 용기는 탑 터 근방에 버렸다.


녹야원 바로 앞에는 사르나트박물관이 있다. 입장료는 2루피. 녹야원 입장료 보다 턱없이 싸다. 사르나트박물관에는 세계적인 명품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초전법륜상'과 '아쇼카 석주 기둥머리 사자상'이다. 5세기 굽타시대 때 조성된 초전법륜상은 높이 1.6m로, 전 세계 불교미술품 가운데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독립 인도의 국장(國章)이 된 석주 기둥머리의 사자상도 거의 완형이 남아있다.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2. 僧團의 출발 - 초전법륜과 전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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