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교학

顯正論 현정론 - 己和 기화

수선님 2023. 5. 21. 13:14

顯正論 현정론

己和 기화

해제

1. 불교의 특성

2. 불효론에 대해

3. 불충론에 대해

4. 불살생에 대해

5. 불음주에 대해

6. 재보시에 대해

7. 윤회응보설에 대해

8. 화장에 대해

9. 삼세인과설에 대해

10. 이단설에 대해

11. 불교 유해론에 대해

12. 무위도식설에 대해

13. 불교 사태에 대해

14. 불교 무용론에 대해

15. 도・유・불 삼교의 같고 다름

解題 해제

현정론(顯正論)은 조선 초기의 승려 함허기화(涵虛己和, 1376~1433)

가 유교의 불교에 대한 비판을 이론적으로 논박하여 불교가 유교나

도교와 그 근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글이다. 고려말 이래 많

은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비판이 나왔고, 이를 대표하는 것이 조선

초에 정도전(鄭道傳)이 쓴『불씨잡변(佛氏雜辨)』이다. 기화의 현정론

은 이런 비판에 대한 불교계의 대표적인 반론이다.

기화는 성이 유씨(劉氏)이고 본관은 중원(中原)이며 부친은 유청

(劉聽)으로 빈객을 접대하는 관청의 자인 정3품의 빈객시사(賓客寺

事)를 지냈고 모친은 방씨(方氏)이다. 부모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관

음보살에 기도하여 기화를 낳았다 한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행동을

보였으며 공부할 때는 한꺼번에 많은 글을 기억하였다. 일찍이 유학

을 공부하여 깊이 통달하였고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는 등 유교적

환경에서 자랐다. 21세 때인 1396년에 친구의 죽음을 보고 세상의 무

상함을 느껴 관악산 의상암으로 출가하여 법명을 수이(守伊), 법호를

무준(無準)이라 하였다. 출가 동기와 관련하여 이『현정론』에서는 유

교에서 인을 강조하면서 살생을 금하지 않는데 의심을 품고 있다가

불교의 불살생 사상에서 깨우침을 얻어 출가하였다고 하였다. 출가 이듬해

에 회암사에 가서 당대의 고승인 무학(無學)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나옹혜

근(懶翁慧勤)-무학자초(自超)-기화로 이어지는 선맥을 계승하였다. 무학

의 입적 후 1406년 회암사를 떠나 상주 대승사에 가서 4년간『금강경』을 강

의하고, 1410년에 개성의 천마산 관음굴에 가서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141

년에 불희사(佛禧寺)에서 3년 결제하며 대중들을 이끌었고 1414년 평산의

자모산(慈母山) 연봉사(烟峰寺)에서 3년 동안 수행하고 지낼 때 당호를 함

허당이라 하였으며, 여기서 『금강경오가해』를 강설하였다. 1420년에 오대

산 영감암(靈鑑庵)에 머물다 꿈에 신인이 주었다는 기화를 법명으로, 득통

(得通)을 법호로 사용하였고, 1421년 세종의 요청으로 고양의 대자사(大慈

寺)에 가서 왕실천도법회를 주관하였다. 1424년부터 길상산 공덕산 운암산

등을 유력하다가 1431년 문경 봉암사에 들어가 절을 중수하고 머물다 입적

하였다. 저서로는 『현정론』 외에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 2

권,『금강경윤관(金剛經綸貫)』1권,『원각경설의(圓覺經說誼)』 3권,『선종

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2권이 있고, 시문과 설법 등을 모은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1권이 있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불교 억제책을 시행하였다. 처음에는

출가를 억제하고 부녀자들이 절에 가는 것을 금지하며 사원 소속 토지를

공공기관으로 이전하는 등의 정책으로 불교 교단을 제한하다가 사원 수를

점점 줄여 나가 선교 양종으로 종단을 통합하여 36개 사원만 인정하는 승

과도 폐지하여 불교는 극도로 위축되었다.

이처럼 태종과 세종대의 억불정책이 추진되던 상황을 직접 겪으며 출가

하여 수도의 길을 걸었던 기화는 유학자들의 배불 논리를 논파하고 불교의

‘바른 뜻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현정론』을 저술하였다. 여말선초 유학

자들의 배불 논리는 고려말의 불교가 사회변화에 상응하는 정신적 지주로

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승단의 운영 질서가 무너져 사회적 위상이 추락

됨에 따라 사회개혁을 주장하며 불교계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었

다. 기화의 『현정론』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자

미상의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과 함께 이런 비판에 대한 불교의 당위성

을 주장하는 반론이다.

기화는 서론과 14개 조목으로 구성된 문답식 서술로 불교의 정당성을 체

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서론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뛰어남을 역설하고

불교의 오계가 유교의 오상과 비슷하지만 덕행과 상벌로 가르치는 유교가

겉으로만 복종하는 것이라면 불교는 인과로써 가르쳐 진실로 기뻐하여 복

종하는 것이라 하면서 불교와 유교가 모두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리

고 문답 중 13개 조목에서 불교에 대한 비판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불교의 출가는 효도에 어긋난다

② 불교도는 임금이나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다

③ 육식과 살생을 금하는 것은 불효이며 예가 아니다

④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⑤ 보시와 응보설은 사람들을 곤궁하게 한다

⑥ 천당지옥의 윤회설은 허망한 것이다

⑦ 화장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⑧ 삼세인과설은 잘못된 것이다

⑨ 부처는 오랑캐 사람이니 성인의 도가 아니다

⑩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재앙이 일어났다

⑪ 불교도들은 무위도식하여 백성들이 빈궁해진다

⑫ 불교도들은 수행에 힘쓰지 않고 타락했다

⑬ 불교는 허원하고 적멸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⑭번째 문답은 유교나 도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그 같고

다름과 우열을 논하여, 삼가(三家)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온 것과 같지만 그

실행의 우열과 활용의 차이에서 보면 불교가 월등함을 강조하였다.

기화는 유교의 배불 논리에 대해 불교의 해탈의 지향과 성취를 위한 출

가 그리고 계율주의의 바탕에서 불교를 옹호하였다. 기화는 천하에 두 가

지 도가 없다는 진리의 보편성에 따라 불교와 유교가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진리에 근거하고 있어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런데 불교의 오승(五乘) 구

분으로 보면 삼승의 불교의 가르침이 뛰어난 것이고 그 아래 인천승에서

말하는 오계(五戒)와 십선(十善)만으로도 진실로 이를 행할 수 있다면 자

신에게 성실하고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다 하여 유교의 가르침과 같은 수준

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유교가 지향하는 천지만물과 하나된다는 인(仁)

의 실천이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허용하는 경전의 다른 구절과 배치됨을 들

어 그 철저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불교에서는 불살생계로 인을 철저히 실

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기화는 그동안 중국의 불교 배척논자들

이 주장해왔던 삼세인과응보설과 같은 내용이『주역』에서 말하는 선을 쌓

으면 경사가 넘치고 악을 쌓으면 재앙이 넘친다는 구절처럼 유교 경전에

도 있음을 들어 이를 논박하였다. 그리고 유교에서 도의 요체로 삼는 오상

(五常)이 불교의 오계와 같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덕성과 행위의 범주

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 된다. 또 기화는 현실적인 면에서 유교가

세속적 도덕을 세우는데 그치는 반면 해탈의 길은 오직 불교에서만 가능함

을 들어 불교의 우위성을 주장하였다. 그 근거로 사회적인 효용성을 들었

다. 유교는 사람을 가르치는데 덕행(德行)과 형벌로 하는데 행정 명령과 형

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이를 면하고자 하여 겉으

로 따를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인과로 가르치면

이를 따르기만 하면 겉으로만 따르는 경우는 결코 없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진실로 복종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현정론』은 삼교와는 다른 불교만의 가르침을 분명히 드러내

고, 그것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그 바탕에는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해

탈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기본적인 가치로 인식되던 충이나 효조차도 해탈을 위해서라면

버려야하며, 불살생이나 불음주와 같은 계율들은 해탈의 필수조건이기 때

문에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주장이다. 기화는 독자적인 불교적 정체성을 분

명히 확립함으로써 불교전통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당당한 의지를 뚜렷이

밝힌 것이다.

기화는 유학자들의 배불 논리가 부당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이에 대

한 불교의 의의를 명확히 함으로써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편견과 지나친

비판 논리를 타파하고 불교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하였던 것이다.

불교의 입장만을 두둔하거나 불교의 약점을 감추려 하지 않고 가장 문제가

되는 논점들에 대해 유교의 주장과 견주어 당당하게 불교의 관점을 제시함

으로써 불교의 바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였던 데 『현정론』의 의의

가 있다.

간행본은『한국불교전서』제7책에 실려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으로

는 1526년 전라도 광양 백계산 송천사(松川寺)에서 간행한 것이 동국대에

소장되어 있고, 이밖에 1537년 전라도 흥덕 연기사(緣起寺) 간행본, 1538년

경상도 지리산 신흥사(神興寺) 간행본, 1544년 황해도 토산 석두사(石頭寺)

간행본, 간년 미상의 국립중앙도서관소장본, 오대산 상원사에서 간행한 연

인본(鉛印本) 외에 필사본도 여러 종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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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京厚, 1999「麗末鮮初 己和의 禪思想과 儒佛調和論」『경주사학』 18, 경주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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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상연구원

•韓鍾萬, 1985「朝鮮朝 初期의 老佛融合論」『韓國宗敎』10,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 韓鍾萬, 1990「韓國의 儒佛道三敎 會通論」『如山柳炳德博士華甲紀念 韓國哲學宗敎思

想史』

현정론顯正論

함허 기화(涵虛己和)1) 지음

1. 불교의 특성

본체[體]로는 있고 없는 것이 아니지만 유무(有無)에 통하고, 근본[本]

으로는 옛과 지금이 없지만 고금(古今)에 통하는 것이 도(道)이다. 유무

는 성정(性情)2)을 원인으로 하고, 고금은 생사(生死)를 원인으로 한다. 성

(性)에는 본래 정(情)이 없지만 성에 미혹하면 정을 일으키게 된다. 정이

생겨나면 지혜가 막히고 생각[想]이 변하면 체(體)가 달라지니, 만상(萬

象)3)이 이 때문에 형성되었고 생사가 이 때문에 시작되었다. 정에는 더러

움[染]과 깨끗함[淨]이 있고 착함[善]과 악함[惡]이 있으니, 깨끗함과 착

함은 성인이 생겨나는 원인이고 더러움과 악함은 범부가 되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정이 만일 생기지 않으면 범부도 성인도 모두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體非有無, 而通於有無, 本無古今, 而通於古今者, 道也. 有無

因於性情也, 古今因於生死也. 性本無情, 迷性生情. 情生智

隔, 想變體殊, 萬象所以形也, 生死所以始也. 夫情也, 有染淨

焉, 有善惡焉, 淨與善, 聖之所以興也, 染與惡, 凡之所以作也.

故知情若不生, 則凡之與聖, 悉無得而興焉.4)

1) 함허 기화(涵虛己和):1376~1433. 성은 유씨(劉氏), 부친은 빈객시사(賓客寺事)

유청(劉聽), 모친은 방씨(方氏). 늙도록 자식이 없어 관음보살에 기도하여 낳았

다 하며 어려서부터 남다른 행동을 보였다. 일찍이 유학을 공부하고 21세에 친

구의 죽음을 보고 세상의 무상함을 느껴 관악산 의상암으로 출가하였다. 이듬

해에 회암사에 가서 무학(無學)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법맥을 계승하였다. 1406

년 상주 대승사에 가서 4년간『금강경』을 강의하고, 1410년에 개성의 천마산 관

음굴에 가서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1411년에 불희사(佛禧寺)에서 3년간 대중들

을 이끌었고 1414년 평산의 연봉사(烟峰寺)에서 3년 동안 수행하였다. 이때 당

호를 함허당이라 하고, 여기서『금강경오가해』를 강설하였다. 1420년에 오대산

영감암(靈鑑庵)에 머물다 꿈에 신인이 주었다는 기화를 법명으로, 득통(得通)을

법호로 사용하였다. 1421년 세종의 요청으로 대자사(大慈寺)에서 왕실천도법회

를 주관하고 이후 길상산 공덕산 운암산 등을 유력하다가 1431년 봉암사에 들

어가 머물다 입적하였다. 저서로는『현정론』외에『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

家解說誼)』2권 『금강경윤관(金剛經綸貫)』1권,『원각경설의(圓覺經說誼)』3권,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2권이 있고, 시문과 설법 등을 모은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1권이 있다.

2) 성정(性情):사람의 품성(稟性)과 기질(氣質). 성은 선천적으로 본래 가지고 있

는 본성 혹은 본질, 정은 외적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일어나는 구체적 감정. 불

교에서는 성은 사람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법성(法性)이나 불성(佛性)을 말하

며, 정은 무명(無明)에 의해 인식작용이 일어난 상태를 말한다.

3) 만상(萬象):삼라만상(森羅萬象)의 줄임말로 형상이 있는 모든 사물을 말한다.

4)『현정론』의 원문은 韓7 p.217a1~225b19.

보살(菩薩)5)은 성(性)에 대해서라면 이미 깨달았지만 정(情)에 대해서

라면 아직 다 없애지 못하였기 때문에 ‘깨달은 유정[覺有情]’이라 부른다.

보살도 그러한데 하물며 그 나머지 이승(二乘)6)이야 어떠하겠으며, 삼승

(三乘)7)도 그러한데 하물며 그 나머지 사람과 천신 등의 다른 부류들이야

어떠하겠는가? 부처님은 깨달음이 충만하여 지혜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고

깨끗함이 지극하여 정으로 인한 번뇌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정이라는 말은

부처님에게 붙이지 않는다. 오직 부처님 한 분 이외에 모두를 유정(有情)8)

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저 삼승이나 5승(五乘)9)은 모두 그에 맞

는 정을 다스리니, 인승(人乘)과 천승(天乘)은 더러운 번뇌[染垢]10)를 다스

리고, 삼승은 깨끗한 번뇌[淨垢]11)를 다스린다. 더럽고 깨끗한 번뇌가 다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대각(大覺)12)의 경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5계(五戒)13)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길이고, 10선(十善)14)은 하늘 세계

에 태어나는 길이며, 4성제(四聖諦)15)와 12인연(十二因緣)16)은 이승이 되

는 원인이요, 육바라밀[六度]17)은 보살이 되는 원인이다. 가만히 삼장(三

藏)18)의 귀결점을 살펴보니,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정(情)을 제거하여 성

(性)이 드러나도록 할 따름이다. 정이 성에서 생겨나는 것은 구름이 넓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고, 정을 제거하여 성을 드러내는 것은 구름이

걷혀 맑은 하늘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구름에 옅은 것과 진한 것이 있는

것처럼 정에도 엷은 것과 두터운 것이 있다. 구름에 진하고 옅음의 차이가

있으나 하늘의 광명을 가리기는 마찬가지이듯이 정에 두텁고 엷음의 차이

가 있으나 성의 밝음을 막기는 마찬가지이다. 구름이 일어나면 해와 달이

빛을 거두어 천하가 캄캄해지고, 구름이 걷히면 광명이 대천세계(大千世

界)19)를 비추어 우주가 탁 트이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기에 견주어 보면 마치 맑은 바람이 하늘에 떠 있

는 구름을 쓸어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니, 탁 트인 하늘을 보고자 하면서 맑

은 바람을 싫어하는 것은 미혹한 것이요, 나와 남이 태평하기를 바라면서

우리 도(道)를 싫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

에 의지해 닦게 한다면 마음이 바르게 되고 몸이 닦아지리니, 집안을 가지

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태평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근기(根

機)20)가 뛰어난 자는 보살이 될 수 있고 성문이 될 수 있고 연각이 될 수 있

으며, 근기가 열악한 자는 천상에 태어날 수 있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고서도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는 있지

않다.

菩薩, 性雖已覺, 而情猶有所未盡, 故稱之云覺有情也. 菩薩尙

爾, 況餘二乘乎, 三乘尙爾, 況餘人天異類乎? 佛則覺滿而智

無不周, 淨極而情累已盡, 故情之言, 不可加於佛也. 唯佛一人

之外, 皆稱有情者, 以此. 夫三乘五乘, 皆所以治其情也, 人天

乘所以治其染垢, 三乘所以治其淨垢也. 染淨垢盡然後, 方親

造大覺之境矣. 五戒所以生人道也, 十善所以生天道也, 諦緣

所以成二乘也, 六度所以成菩薩也. 竊觀三藏指歸, 只要令人

去情顯性而已. 情生於性, 猶雲起於長空, 去情顯性, 猶雲開而

現大淸也. 情有薄者焉, 有厚者焉, 猶雲有淡者焉, 有濃者焉.

雲有濃淡之異, 而掩天光則一也, 情有厚薄之殊, 而碍性明則

同也. 雲起也, 日月收照而天下暗然也, 雲開也, 光被大千而宇

宙廓如也. 佛敎比之, 則若淸風之掃浮雲也, 欲所見之廓如, 而

厭淸風者, 惑矣, 欲自他之淸泰, 而厭吾道者, 失矣. 若敎人人,

依此而修之, 則心可得而正矣, 身可得而修矣, 可以齊家, 可以

治國, 可以平天下矣. 機之利者, 可以爲菩薩, 可以爲聲聞, 可

以爲緣覺, 機之劣者, 可以生天, 可以成善人矣. 苟如是而世不

治, 未之有也.

5) 보살(菩薩): bodhi-sattva의 준말이며 보리살타(菩提薩陀)로 음역하고 줄여서

보살(菩薩)이라 하며 개사(開士) 등 여러 표현으로 한역한다. bodhi는 부처님의

지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sattva는 생명 있는 존재인 유정(有情)을 의미

한다. 이런 뜻에서 유래하여 보살은 위로는 지혜로써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以智上求無上菩提, 以悲下化衆生] 유정으로

정의한다. 이를 도중생(度衆生), 각유정(覺有情) 등으로 번역한다. 성문(聲聞)·

연각(緣覺)과 함께 삼승의 하나이다. 보살은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을 수행

하여 미래에 불과를 성취하는 수행자이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원만하게

갖추어 용맹하게 깨달음을 구하는 대승의 이상적인 수행자이다.

6) 이승(二乘):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을 말한다. 성문승은 사성제(四聖

諦)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자이며, 연각승은 연기법(緣起法)을 관조하

여 깨달음을 구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들은 중생구제의 발심을 아직 일으키지

않은 유정(有情)이다. 그러므로 소승(小乘)으로 분류된다.

7) 삼승(三乘):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보살승(菩薩乘)을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보살승은 성문승과 연각승의 깨달음을 이루고 중생구제의 발심을 일으

킨 유정이다. 그러나 아직 정(情)의 습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각유정(覺有情)이

라고 부른다.

8) 유정(有情):여기서는 생명을 가지고 인식활동을 하는 존재로서 ‘중생’과 같은

말로 쓰였다. 중생은 sattva로서 음역하여 살다바(薩多婆)·살타(薩埵)라고도

한다. 중생과 유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유정은 사람·천인·

아귀·축생·아수라 등 정식(情識)이 있는 생물을 가리키고 초목금석과 산하대

지와 같은 것은 비정(非情)이요 무정(無情)이다. 그런데 중생은 유정과 비정을

포괄하므로 유정과 중생은 차이가 있다. 다른 견해는 유정이 곧 중생의 다른 이

름이라고 한다.

9) 5승(五乘):인승(人乘), 천승(天乘),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

薩乘)을 말한다. 인승은 인간세상의 중생을 말하고, 천승은 하늘 세계의 중생을

말한다. 인승으로부터 보살승까지는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완전히 번뇌를 없애

지 못하였기 때문에 중생으로 분류된다.

10) 더러운 번뇌[染垢]:사성제의 이치를 증득하는 견도(見道) 이전의 지혜를 유루

지(有漏智)라고 하는데 이러한 유루지를 가지고 수행하는 세속의 행위를 유루

행(有漏行)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루행으로 다스릴 수 있는 번뇌를 ‘더러운 번

뇌’라고 한다.

11) 깨끗한 번뇌[淨垢]:사성제의 이치를 증득하는 견도 이후의 지혜를 무루지(無漏

智)라고 하는데 이러한 무루지를 가지고 수행하는 것을 무루행(無漏行)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루행으로 다스릴 수 있는 번뇌를 ‘깨끗한 번뇌’라고 한다.

12) 대각(大覺):큰 깨달음이라는 뜻으로서 부처님의 다른 표현이다.

13) 5계(五戒):불교에서 출가하지 않은 일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pañca śīlāni. ①살생하지 말라[不殺生], ②도둑질하지 말라[不偸盜], 또는 주지 않

은 것을 가져가지 말라[不與取], ③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婬], ④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⑤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부파의 경량부(經量部)에서는

삼귀의(三歸依)를 받으면 우바새(優婆塞) 곧 재가신자가 되기 때문에 오계는 따

로 받도록 하지만,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반드시 먼저 삼귀의를 받고

그후에 오계를 받아야 우바새로 인정한다.

14) 10선(十善):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나쁜 짓을 십악(十惡)이

라고 하는데 그 십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십선이다. 몸으로 짓는 것으로는 살생

하지 않음[不殺生], 도둑질 하지 않음[不偸盜], 삿된 음행을 하지 않음[不邪淫]의

세 가지가 있고, 입으로 짓는 것으로는 거짓말 하지 않음[不妄語], 두 말하지 않

음[不兩舌], 나쁜 말을 하지 않음[不惡口], 기이한 말을 하지 않음[不綺語]의 네

가지가 있으며, 뜻으로 짓는 것으로는 탐욕하지 않음[不貪慾], 성내지 않음[不瞋

恚], 삿된 견해를 갖지 않음[不邪見]의 세 가지가 있다.

15) 4성제(四聖諦):부처님이 깨달으신 네 가지의 진리. 즉, ①고성제(苦聖諦)는 인

생은 생노병사의 자연법칙에 지배되는 고(苦)의 존재라고 하는 진리, ②집성제

(集聖諦)는 고의 원인을 말하는 것으로서 탐진치의 삼독을 비롯한 온갖 번뇌로

인한 업행(業行)이 다 고의 원인이라고 하는 진리, ③멸성제(滅聖諦)는 현실의

번뇌를 정화하고 인생의 고통문제를 뛰어 넘어 가장 적정한 열반의 경지에 도

달함을 말한다. ④도성제(道聖諦)는 고를 없애는 성스러운 길을 말하며 팔정도

가 그것이다.

16) 12인연(十二因緣):십이연기(十二緣起)와 같은 말로서, 범부가 생존하는 12가지

의 구성요소를 말한다. 그 12가지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

(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이다. 만물의 존

재방식을 상의상관(相依相關)으로 설명하는 연기법의 원리에 따라 12가지의 관

계성을 설명하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는 유

전연기문(流轉緣起門)이고, 다른 하나는 노사로부터 무명에 이르는 환멸연기문

(還滅緣起門)이다.

17) 육바라밀[六度]: sat-pāramitā. 한문으로는 육도(六度)라고 번역한다.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 닦는 여섯 가지 수행 덕목으로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이다.

18) 삼장(三藏):삼(三)은 경(經)·율(律)·논(論)을 말하고, 장(藏)은 pitaka로서 창

고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경(經)을 모아 놓은 것을 경장이라 하고, 율(律)을 모

아 놓은 것을 율장이라 하고, 논(論)을 모아 놓은 것을 논장이라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지칭하여 삼장이라 한다.

19) 대천세계(大千世界):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사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

깥 주위를 철위산이 에워싸고 있는 것을 일천세계(一天世界)라 하고, 이러한 일

천세계 천 개가 모여 있는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라 한다. 그리고 소천세계 천

개가 모여 있는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라 하고, 중천세계 천 개를 합한 것이

대천세계(大千世界)이다.

20) 근기(根機):기연(機緣)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가진 종교적인 소질이나 능력을

뜻하는 말. 근(根)은 근본이 되는 힘이고, 기(機)는 발동하는 능력이다. 근기는

사람마다 타고난 정도가 다르므로 사람에 따라 교법을 이해하는 수준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부처님의 설법은 바로 이 근기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설법을 하신

데[對機說法] 있다. 종파에 따라 여러 가지 기준으로 근기를 나누어 교리 체계를

세운다.

왜 그런가? 죄의 과보(果報)21)를 싫어한다면 모든 악(惡)을 끊어야 하는

데, 비록 악을 모두 끊어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한 가지 악은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악을 제거하면 한 가지 형벌이 없어질 것이고, 한

가지 형벌이 집집마다 없어지면 만 가지 형벌이 나라에서 없어질 것이다.

복의 인연을 기꺼워한다면 모든 선(善)을 닦아야 하는데, 모든 선을 비록

다 닦지는 못하더라도 한 가지 선은 충분히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

지 선을 실천하면 한 가지 경사를 얻게 될 것이니, 한 가지 경사가 집집마

다 생겨나면 만 가지 경사가 나라에서 생겨날 것이다. 오계와 십선은 가르

침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본래 근기가 가장 낮은 자를 위해서 만든 것이

다. 그러나 실로 그것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으면 자신을 진실되게 하고 남

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니, 하물며 사성제와 십이인연의 가르침에 있어

서이겠으며, 하물며 육바라밀의 가르침에 있어서이겠는가?

유교는 오상(五常)22)을 도(道)의 중추로 삼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오계

(五戒)가 곧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이다. 살생하지 않는 것[不殺]은 인(仁)

이요, 도둑질 하지 않는 것[不盜]은 의(義)요, 사음하지 않는 것[不淫]은 예

(禮)요, 술 마시지 않는 것[不飮酒]은 지(智)요, 거짓말하지 않는 것[不忘

語]은 신(信)이다.23) 다만 유교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덕행(德行)으

로써 하지 않고 정사와 형벌을 가지고 한다. 그러므로 “정사로써 이끌고 형

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은 면하겠지만 부끄러움이 없고, 덕(德)으

로써 이끌고 예(禮)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또 바르게 된

다.”24)라고 하였다.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는 것은 성인이 아니면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묵묵히 있어도 이루어지고 말하지 않아도 믿는 것

은 덕행에 달려 있다.”25)라고 말하고, 정사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상벌(賞罰)이 있음을 면하지 못하므로 “상주고 벌주는 것은 나라의 큰 권

력이다.”26)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릇 ‘묵묵히 있어도 이루어지고 말하지 않

아도 믿는다’는 것은 진실로 우리 부처님의 교화인데 게다가 인과법(因果

法)27)도 아울러 가르치셨으니, 상벌로써 가르치면 아마도 면전에서만 복

종할 뿐이겠지만, 인과법으로써 가르치면 복종할 때 마음으로 복종하기 때

문이다. 지금 세상에서도 그렇게 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왜 그

런가? 만일 상을 주어 권장하고 벌을 주어 금지한다면 악(惡)을 그치는 자

는 그 벌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그칠 것이고, 선(善)을 행하는 자는 그 상을

이롭게 여겨 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화를 따름이 면전에서만 복종할

뿐이고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현재 궁핍하거나 영달한 이

유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숙업의 종자[宿種]28)로써 가르치고 훗날의 화

(禍)와 복(福)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현재의 원인[現因]29)으로써 가르친

다면, 영달한 사람은 전생에 선의 종자를 심었던 것을 기뻐하여 더욱 부지

런히 실천할 것이고, 궁핍한 사람은 전생에 닦지 않았던 것을 참회하여 스

스로 힘쓸 것이며, 또 내생에 복을 받으려는 사람은 착한 일을 부지런히 행

할 것이고, 내생에 화를 피하려는 사람은 악한 짓을 반드시 삼갈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복종한다면 마음으로 복

종할 것이요 면전에서만 복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何則? 厭罪報則應斷諸惡, 諸惡雖不斷盡, 而足以去一惡矣.

去一惡則息一刑, 一刑息於家, 萬刑息於國矣. 忻福緣則應修

諸善, 諸善雖未盡修, 而足以行一善矣. 行一善則得一慶, 一慶

興於家, 萬慶興於國矣. 夫五戒十善, 敎中之最淺者也, 本爲機

之最下者而設也. 苟能行之, 則足以誠於身利於人矣, 況於諦

緣乎, 況於六度乎? 儒以五常而爲道樞, 佛之所謂五戒, 卽儒

之所謂五常也. 不殺, 仁也, 不盜, 義也, 不淫, 禮也, 不飮酒,

智也, 不妄語, 信也. 但儒之所以敎人者, 不以德行, 卽以政刑

也. 故云, “導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導之以德, 齊之

以禮, 有恥且格.” 夫導之以德, 齊之以禮, 非聖人不能, 故云,

“黙而成之, 不言而信, 存乎德行.” 導之以政, 齊之以刑, 則未

免有賞罰, 故云,“ 賞罰國之大柄”也. 夫黙而成之, 不言而信,

固吾佛之化也, 而兼以因果示之, 示之以賞罰, 則或不過面從

而已, 示之以因果則服乃心服也. 今於世上, 目覩其然也. 何

則? 若勸之以賞, 禁之以罰, 則止惡者, 畏其威而止之, 爲善

者, 利其賞而爲之. 故其從化也, 面從而已, 非心服也. 若人欲

知今之所以窮達者, 則示之以宿種, 欲知後之禍福者, 則示之

以現因, 則達者忻前世之種善而益勸, 窮者悔前世之不修而自

勉, 且邀福於後世者, 則孜孜於爲善, 避禍於後世者, 則必愼於

爲惡也. 此則不服則已, 服則心服, 而未嘗有面從者也.

21) 죄의 과보(果報):과보( vipāka)란 과거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말한다. 즉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결과를 초래하고, 악한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죄의 과보란 죄를 지으면 그에 따라 받는 과보를 말한다.

22) 오상(五常):①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②다섯 가지의 중요한 윤

리 도덕. 아버지는 의롭고[父義], 어머니는 자애롭고[母慈], 형은 우애하고[兄

友], 아우는 공경하고[弟恭], 아들은 효도하는 것[子孝]. ③오륜(五倫). 임금과 신

하 사이에는 의로운 도리가 있어야 하고[君臣有義], 부자 사이에는 친한 도리가

있어야 하고[父子有親], 부부 사이에는 분별되는 도리가 있어야 하고[夫婦有別],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질서의 도리가 있어야 하고[長幼有序], 벗 사이에는 믿음

의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朋友有信] 것.『맹자(孟子)』등문공(滕文公)상(上)에 나

오는 말. 임금은 신하의 근본이 되고[君爲臣綱], 아버지는 아들의 근본이 되고

[父爲子綱], 남편은 부인의 근본이 된다[夫爲婦綱]는 삼강(三綱)과 함께 사회윤

리의 가장 중요한 덕목. 후한의 동중서(董仲舒)가 삼강오살설(三綱五常說)을 주

장한 이래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로 전승되어 왔다.

23) 유교의 오상과 불교의 오계를 대비하여 서술하기 시작한 것은『광홍명집(廣弘

明集)』권3(大52 p.107b23~25)에서부터이다.

24)『논어(論語)』「위정(爲政)」 제3장.

25)『주역전의(周易傳義)』「계사상전(繫辭上傳)」 제12장.

26) “상과 벌은 나라의 큰 권력이니 삼가지 않을 수 없다”(『고려사(高麗史)』권46 공

양왕(恭讓王) 3년 5월 경술 賞罰國之大柄, 不可不謹也. ;『고려사절요(高麗史節

要)』권34 공양왕(恭讓王) 경오년) 이때를 비롯해 고려말 상소문에 자주 등장한

다. 그리고 송나라 설숭(契嵩)은 “상과 벌은 천하의 대중이다.”(『심진문집(鐔津文

集)』권5 大52 p.669b3~4 賞罰者天下之大中也.)라고 하였다.

27) 인과법(因果法):연기법(緣起法)과 같은 말로서 불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교리

이다. 연기법이란 어떤 원인이 조건을 말미암아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

미로서 모든 존재를 서로 의존하고 서로 관계를 이루고 있다[相依相關]고 보는

것이다.

28) 숙업의 종자[宿種]:과거 전생에 지은 행위의 결과.

29) 현재의 원인[現因]:현재의 행위가 미래의 원인이 됨.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을 저마다 모두 마음으로 복종하게

할 수 있는가? 아직 마음으로 복종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우선은 상벌을

가지고 인도하되 빨리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진심으로 복종할 수 있도록 해

야 한다. 그래서 인과법으로써 가르친 것 외에 또한 상벌의 가르침도 주셨

던 것이니, 이른바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이고, 굴복시킬 만한 사람

은 굴복시킨다.”30)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러한 점은 유교와 비슷하다. 따

라서 유교와 불교가 모두 폐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涅

槃)31)에 들려고 하실 적에 그러한 법으로써 군주들과 신하들에게 부촉(付

囑)32)하셨으니, 이는 올바른 도로써 천하 사람들을 인도하여 세상을 다스

리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 위함이고,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수행하는 길로

함께 나아가게 하고자 함이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재가(在家)와 출

가(出家)를 가리지 않으며, 오직 사람들이 도의 작용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

것일 뿐이니, 반드시 머리를 깎고 옷을 달리한 이후에야 그 가르침을 행하

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방편에 따라 번뇌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을 임시

로 삼매(三昧)33)라 이름 한다”34)고 하였고, 또 “정해진 법이 없는 것을 아

뇩보리(阿耨菩提)35)라 이름 한다”36)고 하였다. 부처님의 마음이 이와 같으

니, 어찌 좁은 통로이겠는가? 그러나 만일 참아내는 힘[忍力]37)이 없는 자

라면 티끌세상에 살면서 오염되지 않고 속가에 머물면서 도를 이루기는 어

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출가하여 원리행(遠離行)38)을 닦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雖然, 安得使人人, 皆可以心服也? 其未能心服者, 則姑以賞

罰而導之, 使駸駸然心悅而誠服也. 故示之以因果之外, 亦有

賞罰之訓存焉, 所謂“應攝受者而攝受之, 應折服者而折服之,”

是也. 此則近於儒也, 所以儒與釋, 皆不可廢也. 佛之將化也,

以其法, 付之君, 付之臣, 蓋欲以其道, 導天下而爲治世之大

助, 而令共蹈乎修眞之路也. 吾佛之敎, 不論在家出家, 只要令

人不違道用而已, 不必剪其髮異其服然後爲也. 所以云, “隨方

解縛, 假名三昧”, 又云, “無有定法名阿耨菩提”, 佛之心如此,

豈小通哉? 然若無忍力者, 則居塵不染, 在家成道, 難矣. 所以

敎人出家令修遠離行也.

30) 『대보적경(大寶積經)』(권119)에서 “조복시키는 것이 마땅한 사람은 조복시키고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한 사람은 받아들인다.”(大11 p.673b21~22 應調伏者而調伏

之, 應攝受者而攝受之.)라고 하였다.

31) 열반(涅槃): nirvāna의 음역으로서 ‘불어 끈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한문으

로는 멸(滅), 적(寂), 적멸(寂滅) 등으로 번역한다. 원래 ‘열반’이라는 말은 타오

르는 번뇌의 불을 모두 없애고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으로서 해탈(解脫)

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죽음을 열반이라고 표현하였으

며, 후대에 이르러 승려의 죽음을 열반 또는 입적(入寂)이라고 표현하기도 하

였다.

32) 부촉(付囑):부처님은 설법한 뒤에 청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을 가려내어 그

법의 유통을 부탁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를 부촉이라고 한다.

33) 삼매(三昧): samādhi의 음역으로서 등지(等持), 정(定), 정정(正定) 등으로 번

역한다. 마음이 조용히 통일되어 안락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러한 경지에서 바

른 지혜가 생겨난다고 한다.

34)『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권1)에서 “길주(吉州) 지성(志誠)선사

가 육조대사에게 ‘신수대사는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 하며, 자기의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이라 하였습니

다. 그 분은 이렇게 설하셨는데, 화상께서는 무슨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육조대사가 대답하기를 ‘내가 만약 법과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대에게 미치광이가 될 것이다. 다만 방편에 따라 번뇌의 결

박을 풀어주는 것을 임시로 삼매라고 이름 할 뿐이다. 그대의 스승이 말한 계정

혜는 실로 불가사의하구나.”(大48 p.358c1~6. 誠曰 秀大師說, ‘諸惡莫作名爲戒,

諸善奉行名爲慧, 自淨其意名爲定. 彼說如此, 未審和尙以何法誨人.’ 師曰 ‘吾若言有法

與人, 卽爲誑汝. 但且隨方解縛, 假名三昧. 如汝師所說戒定慧, 實不可思議.) 라고 하

였다.

35) 아뇩보리(阿耨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anuttara-samyak-sambodhi)의 줄임

말로서 가장 완벽한 깨달음을 뜻한다. 아뇩다라는 위 없는[無上]의 뜻이고, 삼먁

삼보리는 정등각(正等覺)을 뜻하므로 아뇩보리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한다. 즉 부처님이 깨달은 최상의 진리를 말한다.

36)『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권1 大8 p.749b14~15.

37) 참아내는 힘[忍力]:육바라밀 중에서 인욕(忍辱)하는 힘을 말한다.

38) 원리행(遠離行):속세의 번뇌를 멀리 떠나는 수행을 말하는데, 몸의 악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것을 신원리(身遠離)라 하고 마음의 악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것을

심원리(心遠離)라 한다.

2. 불효론에 대해

유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자는 아내를 두고 여자는 남편을 두

어 가업(家業)을 계승하여 그 제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효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불제자[浮圖氏]39)들은 혼인을 끊어 인륜(人

倫)을 저버리고, 오래도록 산속으로 가서 영원히 후사(後嗣)를 끊어 버리

니, 어찌 효라 할 수 있겠는가? 날이 어두우면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날이

밝으면 문안을 드리면서 부모님의 안색을 살펴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해야

하며, 나갈 때에 반드시 고하고 돌아와서 반드시 뵈어야 한다.40) 그런데 지

금 불제자들은 부모님께 고하지도 않고 제 맘대로 출가하며, 한 번 출가한

뒤로는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맛있는 음

식을 받들어 봉양하지 않고, 돌아가신 뒤에도 정성껏 장사 지내려 하지 않

으니, 어찌 불효가 아니겠는가?

儒之言曰, 男有室女有家, 以嗣家業, 不絶厥祀, 可謂孝矣.

今浮圖氏, 絶婚姻去人倫, 長往山林, 永絶後嗣, 豈可謂孝

乎? 昏定晨省, 承顔順色, 出必告反必面. 今浮圖氏, 不告父

母, 自許出家, 一自出家, 終身不返, 生不奉甘旨, 死不計厚

葬, 豈非不孝乎?

39) 불제자[浮圖氏]:부도(浮圖)는 buddha를 음역한 말. 부처와 같은 말이다. 그래

서 불교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부도씨(浮圖氏)는 불법을 믿고 따르

는 부처님의 제자라는 뜻을 갖는다.

40)『소학(小學)』「명륜(明倫)」에서 “곡례에 말하기를, ‘무릇 자식으로서의 예는 겨

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어두우면 이부자리를

정리해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살펴야 한다. 나갈 적에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

서 반드시 얼굴을 뵈며, 가는 곳에 일정함이 있게 해야 하며, 익히는 바를 일삼

음이 있게 해야 하며, 평소에 늙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曲禮曰,

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 出必告, 反必面, 所遊必有常, 所習必有業, 恒

言不稱老)라고 하였다.

시험 삼아 이 문제에 대해 논해보겠다. 원칙[經]과 방편[權]은 도를 행하

는 큰 요점이다. 원칙이 아니면 상도(常道)41)를 지킬 수 없고, 방편이 아니

면 변화에 대응할 수 없으니, 원칙으로써 상도를 지키고, 방편으로써 변화

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한 다음에라야 도의 ‘큰 온전함[大全]’을 얻어서 이

르는 곳마다 옳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상도를 지킬 줄 모르면 사람의 마음

을 바로잡을 수 없고, 변화에 대응할 줄 모르면 큰 일[大事]을 이룰 수 없다.

사람이란 부모에게 의탁하여 몸을 받아 태어나고 임금과 나라에 의지하

여 생존할 수 있으니,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벼슬길에 나가서는 충성

하는 것이 진실로 신하와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혼인과

제사도 인륜의 큰 원칙이니, 혼인이 아니면 거듭해서 태어나는 이치가 끊

어지고, 제사가 아니면 조상을 추모하는 법도가 폐지될 것이다. 그러나 신

하와 자식으로서 충성과 효도를 다하기 어려우며, 혼인해서 죽을 때까지

바른 도리를 지키고 제사를 받들면서 마음을 다해 심신을 청정하게 하고

근신하기는[齋戒]42) 더욱 어려울 것이다. 충성을 다하고 효도를 다하면서

맡은 직분을 힘써 지키고, 바른 도리를 지키고 재계하기를 극진히 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은 후에야 살아서는 아름다운 이름을 잃지 않고 죽

어서는 인간 세계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원칙으로써 상도를 지

킨 결과이다. 그러나 살아서 아름다운 이름을 얻을 뿐 애욕(愛欲)을 끊은

경우는 거의 드물며, 죽어서 인간 세계에 태어날 뿐 윤회(輪廻)43)를 면하기

는 어려우니, 애욕은 윤회의 뿌리이고 욕망은 몸을 받아 태어나는 조건이

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이 처자(妻子)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고서 애욕을 끊

을 수 있겠는가. 진실로 애욕을 끊지 못한 사람이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겠는

가. 윤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애욕을 끊어야 하고, 애욕을 끊고자 한

다면 먼저 처자를 버려야 하며, 처자를 버리고자 한다면 속세를 떠나야 한

다. 속세를 떠나지 않고 처자를 버리지 않은 채 애욕을 끊어 윤회를 벗어나

는 것은 자비를 베풀어 훌륭한 방편의 자취를 나타내는 큰 성인을 제외하

면 보통의 범인이나 속인이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사람은 수십

억의 세월이 지나더라도 만나기 어렵고, 수천만 명 가운데에서도 얻기 어

렵다.

저 애욕의 인연은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아서 참아내는

힘이 없는 자라면 속세에 살면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예컨대, 본사(本

師)44)이신 석존(釋尊)께서는 도솔천(兜率天)45)에 계실 때에는 호명보살(護

明菩薩)46)이라 불렸고, 왕궁에 내려 오셔서는 실달(悉達)47)이라 불리셨는

데, 이 분이 어찌 참아내는 힘이 없는 분이었겠는가? 그야말로 태양 빛도

멀리 비춤에 있어서 그 분보다 멀리 비추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천신들

도 애욕의 인연을 소멸시킴에 있어서 그 분보다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그런

분이셨다. 그 분은 비록 애욕의 인연을 넘어섰으므로 애욕의 인연에 물들

지 않겠지만 후세를 위해 모범을 보이고자 하셨다. 그래서 금륜(金輪)48)

적자(嫡子)로 태어나 부모님께 고하지도 않고 떠나 설산(雪山)49)에 들어가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굳게 절도를 지켰으며 인욕을 편히 여기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번뇌가 씻은 듯이 다 없어지고 진실한 지혜가 환희 드

러나기를 기다린 이후에야 고향에 돌아와50) 아버지를 찾아뵙고 천상에 올

라가 어머니를 방문하여51) 그 부모님을 위해 법요(法要)52)를 설하고 모두

제도(濟度)하여 해탈(解脫)53)하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성인께서 방편으로

써 변화에 대응하고 상도(常道)를 뒤집어 도(道)에 합하는 방법54)인 것이

다. 게다가 부처님은 3명(三明)55)과 6통(六通)56)을 빠짐없이 다 갖추었으

며 4지(四智)57)와 8해(八解)58)를 원만히 갖추셨다. 그 덕이 천하 후세에 전

파되어 천하 후세가 부처님의 부모를 ‘큰 성인의 부모’라고 부르게 하였으

며, 그의 성(姓)으로써 모든 출가자의 성을 삼게 하여 출가한 사람들을 모

두 ‘석자(釋子)’라고 부르게 하였으니,59) 어찌 큰 효도라 하지 않겠는가? 공

자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벼슬길에 나아가 도를 실천하여 그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서 부모를 빛내는 것이 효도의 끝이 된다.”60)라고. 올바른 도

로써 천하 후세를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가르침을 듣고 그 교화에 감

동되게 하였으며 크고 작은 근기에 따라 그 법을 받아 해탈하게 하였으니,

어찌 큰 자비라 하지 않겠는가?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루 동안이라도

사욕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올 것이다.”61)라고.

試嘗論之曰, 經權爲道之大要也. 非經, 無以守常, 非權, 無以

應變, 經以守常, 權以應變. 然後得夫道之大全, 而無所往而不

可也. 不知守常, 無以正人心, 不知應變, 無以成大事. 夫人也,

托父母而受生, 寄君國以得存, 入孝出忠, 固臣子之所當爲也.

又婚姻祭祀, 亦人倫之大經也, 非婚, 生生之理絶, 非祀, 追遠

之法廢. 然爲臣子而盡忠孝者難矣, 婚姻而終身守正, 奉祀而

盡心致齊者, 又其難矣. 盡忠盡孝, 而謹守其職, 守正致齊, 而

終身不輟, 然後生不失善名, 死得生人道, 此經以守常之效也.

然生得善名而已, 斷愛欲者幾希, 死生人道而已, 免輪廻者難

矣, 愛爲輪廻之本, 欲爲受生之緣. 夫人者, 旣未免妻子之累,

愛欲其可斷乎? 苟未斷於愛欲, 則輪廻其可免乎? 欲免輪廻,

先斷愛欲, 欲斷愛欲, 先去妻子, 欲去妻子, 須出塵寰. 不出塵

寰, 不去妻子, 斷愛欲, 免輪廻, 大聖垂慈大權示迹之外, 庸人

凡俗, 其可得乎? 夫如是者, 億億世而難遇, 萬萬人而難得. 夫

愛緣, 如磁石與鐵偶相似, 無忍力者, 居塵世而難免. 如本師釋

尊, 居兜率而稱爲護明菩薩, 降王宮而名曰悉達, 此豈無忍力

者哉? 可謂玄曦慙其照遠, 上界恧以緣銷者也. 雖涉愛緣, 應

不爲愛緣所染也, 將欲爲後世垂範. 以金輪之嫡子, 不告父母

而辭入雪山, 輕生苦節, 安忍不動, 待其情累蕩盡, 眞明朗發然

後, 返鄕而覲父, 登天而訪母, 爲說法要, 皆令度脫. 此聖人之

所以權以應變而反常合道者也. 且佛者, 三明六通而悉備, 四

智八解而圓具. 其德播天下後世, 而使天下後世, 稱其父母曰,

大聖人之父母, 以其姓, 姓一切姓, 使出家者, 皆稱之曰釋子,

豈不謂之大孝乎? 孔不云乎?“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現

父母孝之終也.” 以其道, 導天下後世, 而使天下後世, 聞其風,

感其化, 隨其機之大小, 稟其法而得度, 豈不謂之大慈乎? 孔

不云乎?“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

41) 상도(常道):항상 지켜야 하는 변하지 않는 도리.

42) 재계(齋戒):마음과 몸의 행동을 삼가는 것. 재(齋)는 청정(淸淨)의 의미이고, 계

(戒)는 청정을 이루기 위한 규범이다.

43) 윤회(輪廻): samsāra.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태어났다가 다시 죽어

몇 번이고 이렇게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육도(六道)를 윤

회한다고 말하는데, 육도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이다.

44) 본사(本師):으뜸가는 스승이란 뜻으로 ‘석가여래’를 이르는 말이다.

45) 도솔천(兜率天): Tusita-deva의 음역으로서 지족천(知足天)·희락천(喜樂天)

등으로 번역한다. 욕계 6천의 네 번째 천으로 야마천과 낙변화천 사이에 있다.

부처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에 호명보살(護明菩薩)이라는 이름으로 머

무셨다는 곳이 바로 도솔천이다. 그리고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보살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가 이 땅에 내려와서 부처님이 되셔서 3회의 설법 끝에 수십억의 대

중을 제도한다고 한다.

46) 호명보살(護明菩薩):석가모니불이 보살로서 도솔천에 머물렀을 때에 부르던

이름이다. 깨달음의 길로 가고자 하는 중생을 보호하고 그 길을 밝혀주고자 하

므로 호명(護明)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47) 실달(悉達): Siddhārtha. 실달다(悉達多). 부처님이 카필라국에서 슈도다나왕

[淨飯王]의 태자로 태어나 출가하기 전에 불리던 이름. 일체의 뜻을 이루다, 일

체의 일을 이루다는 뜻이다. 부처님이 태어나시자 점을 잘 치는 아사타(阿私陀)

이 보고는, 태자가 과거세에 갖가지 좋은 공덕을 쌓아 뛰어난 상호를 갖추었고

일체의 모든 좋은 일을 이룰 것을 알았다. 그래서 보통 왕자의 길을 가면 전륜성

왕(轉輪聖王)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위없는 큰 깨달음을 이룰 것이라고 예언하

였다. 이런 의의를 참작하여 싯달다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48) 금륜(金輪):전륜성왕(轉輪聖王)의 다른 말이다. 전륜성왕은 인도의 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하여 정법으로 다스리는 이상적인 제왕으

로서 전륜왕이라고도 약칭한다. 전륜성왕에는 금륜·은륜·동륜·철륜의 네 종

류가 있는데 그중 금륜이 가장 뛰어나 전 세계를 통치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석

가모니 부처님의 아버지인 정반왕을 높여 지칭한 말이다.

49) 설산(雪山): Himālaya. 인도 북부인 지금의 네팔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 흔히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수행했던 곳으로 전해 왔지만, 실제

로 수행했던 마가다국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에 있

는 산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과거 수행 시절에 이곳에서 수행했다는 저명한 본

생담(本生譚)이 있어 설산동자(雪山童子)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열반경(涅槃

經)』에 나온다. 부처님께서 과거 브라만으로서 수행하실 때 청정한 설산에 들어

가 고행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제석천이 무서운 나찰로 변화해 나타나 수행자

를 시험해 보기 위해 과거불의 게송인 “제행은 무상하니 이것이 생멸법이라네

(諸行無常, 是生滅法)”라는 구절을 말한 후 다음 구절을 듣기 위해서는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하자 몸을 던졌더니 나찰이 “생멸이 모두 없어지면 고요하여 즐

거우리라(生滅滅已, 寂滅爲樂)”는 뒷 구절을 알려 주고는 다시 제석천으로 변하

였다고 한다. 부처님은 이 연연 공덕으로 12겁을 뛰어 넘어 미륵보다 앞서 성불

하게 되었다고 한다.(『大般涅槃經』권14 大12 p.450a12~451b5) 그래서 이 게송을

설산게(雪山偈)라고 한다. 이런 전생담이 석가의 생애에 섞여 들어가 중국에서

는 송대의 불교 사서인『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년)이나『불조통기(佛祖

統紀)』(1269년) 등에 실리게 되었고, 이후 일반화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50) 부처님의 고향은 석가(釋迦)족이 살던 카필라성[ Kapila-vastu, 迦毘羅城]이다.

지금의 네팔 남부 타라이(Ta-rai)지방의 틸라우라코트((Tilaurakot)라는 설이 유

력하지만, 그 인근인 룸비니 남쪽의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 싯다르트나가르

(Siddharthnagar)의 피프라하와(Piprahwa)라는 설도 있다. 부처님이 되신 후에 한

참이 지나서야 카필라성을 찾아 아버님을 뵙고 아들 라후라(羅睺羅)와 이복 아

우인 난다(難陀), 사촌 제바닷다[提婆達多], 우바리[優波離] 등 많은 이를 출가시

켰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다시 고향을 찾아 이모이자 자신을 길러준 양모인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와 부인이었던 야쇼다라[耶輸陀羅] 등에게 출가를

하용하여비구니 교단을 이루도록 하였다.

51)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석가모니를 출산한 후 7일 만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마야부인이 도리천(忉利天, 삼십삼천)에 있다고 하여 부처님께서 도리천

에 올라가 석 달 동안 어머님을 위해서 설법하고 다시 지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52) 법요(法要):불법(佛法)의 요체로서 진리의 본질을 말한다.

53) 해탈(解脫): vimoksa.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을

말한다. 또 생사의 원인을 끊고 업보의 윤회에 다시는 구애되지 않는 것을 해탈

이라 하여 열반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불교는 본래 열반과 해탈을 실천 수행의

마지막 경지라고 여겨 여러 가지의 해탈에 관한 이론을 두고 있다.

54)『논어집주(論語集註)』「자한(子罕)」 제29장에서 “정자가 말씀하였다. ‘한나라 유

자들은 경도를 뒤집어 도에 합하는 것을 권도라고 하였다. 그래서 권변과 권술

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옳지 못하다. 권도는 다만 경도일 뿐이니, 한

나라 이래로 누구도 권자의 뜻을 안 사람이 없었다.’”(程子曰 漢儒以反經合道爲

權, 故有權變權術之論, 皆非也. 權只是經也, 自漢以下, 無人識權字.)라고 하였다.

55) 3명(三明):부처님이 가지고 계신 세 가지 신통으로서 지혜의 광명을 가지고 어

리석음을 깨뜨리기 때문에 명(明)이라고 하였다. 즉 천안통의 지혜인 천안명(天

眼明), 숙명통의 지혜인 숙명명(宿命明), 누진통의 지혜인 누진명(漏盡明)을 말

한다.

56) 6통(六通):부처님이 가지고 계신 여섯 가지 신통력을 말한다. 즉 ①자유로이 원

하는 곳에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②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③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이

통(天耳通), ④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⑤과거세

의 일을 환히 아는 숙명통(宿命通), ⑥번뇌를 자유자재하게 끊을 수 있는 누진통

(漏盡通)을 말한다.

57) 4지(四智):불교의 유식학파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로서 성소작지

(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이다.

성소작지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러 유루(有漏)의 전오식(前五識)을 바꾸어 얻

는 지혜이고, 묘관찰지는 제육식(第六識)을 바꾸어 얻는 지혜이며, 평등성지는

제칠식(第七識)을 바꾸어 얻는 지혜이고, 대원경지는 제팔식(第八識)을 바꾸어

얻는 지혜를 말한다.

58) 8해(八解):팔해탈(八解脫)을 의미한다. 팔해탈은 여덟 가지 선정(禪定)의 힘으

로 욕심을 없애는 것으로서, 사선(四禪)과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말한다. 사선은

색계(色界)의 선정 단계로서 초선(初禪), 제이선(第二禪), 제삼선(第三禪), 제사

선(第四禪)이고, 사무색정은 무색계(無色界)의 선정 단계로서 공무변처정(空無

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

想非非想處定)이다.

59) 승려들은 석가모니의 석(釋)자를 따서 성(姓)으로 삼는데, 이것은 중국의 도안

(道安, 314~385)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초기의 중국불교를 집대성한 도안은

승단의 의식 등 여러 제도를 확립하였는데, 그동안 천축국, 월지국, 안식국 등

국명을 따라 쓰던 승려들의 성을 모두 석가(釋迦)의 후예라는 뜻에서 석씨로 바

꾸었고, 이후 이 제도는 근대 이전까지 시행되었다.

60)『효경』「개종명의(開宗明義)」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신체의 머리털과 살은 부

모에게서 받아 나온 것이니,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 되고, 벼슬

길에 나아가 도를 실천하여 그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서 부모를 빛내는 것이 효

도의 끝이 된다’라고 하였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하였다.

61)『논어』「안연(顔淵)」 제1장

3. 불충론에 대해

묻는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당연히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온 정성을 기울여 나라를 도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 불제자들은 천자에게

도 조회(朝會)62)하지 않고 왕후(王侯)63)도 섬기지 않으며 멀리 떠나 고상

한 삶을 살면서 나라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을 앉아서 바라보기만 하니, 어찌

충(忠)이라 할 수 있겠는가?

曰, 人生斯世, 當盡忠於君, 傾誠輔國. 今浮圖氏, 不朝天子,

不事王侯, 高棲遐擧, 坐觀成敗, 豈可謂忠乎?

62) 조회(朝會):원래 관리들이 아침에 임금에게 문안드리기 위해 모이는 것을 조회

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섬기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63) 왕후(王侯):천자(天子)와 천자로부터 각 지역을 나누어 받은 제후(諸侯). 나중

에는 다섯 작위 중에서 첫째와 둘째인 왕의 작위와 후의 작위를 말하기도 하고,

여기에서 고관 귀족을 널리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답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임금이 되려는 자에게는 먼저 계품(戒

品)64)을 받아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 다음에야 비로소 보위(寶位)65)에 오

르라 하였고, 또 모든 출가한 자들에게는 아침에 향을 사루고 저녁에 등불

을 켜서 임금과 나라를 위해 축원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하였으니, 이것을

충(忠)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임금은 벼슬과 녹봉으로써

선을 권하고 형벌로써 악을 금지하지만 이 외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선을

행하면 경사를 부르고 악을 저지르면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을 가르쳤으니,

이러한 가르침을 들은 사람은 자연히 그 악한 마음을 거두고 착한 마음을

내게 될 것이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벼슬과 상으로써 권하거나 형벌

의 위엄을 빌지 않고도 사람들로 하여금 풀이 바람에 따라 쏠리듯이 교화

를 따르게 하였으니, 어찌 임금과 나라에 도움이 없겠는가?

曰, 敎中, 使爲君者, 先受戒品, 潔淨身意, 然後方登寶位, 又

令凡出家者, 莫不朝焚夕點而祝君祝國, 可不謂之忠乎? 且君

者, 爵祿以勸善, 刑罰以禁惡之外, 吾佛, 示之以爲善招慶, 爲

惡招殃, 人之聞者, 自然收其惡心, 發其善意. 吾佛之敎, 不假

爵賞之勸, 刑罰之威, 令人靡然趨化, 豈無輔於君國乎?

64) 계품(戒品):오계, 십선계 등 계의 품류(品類).

65) 보위(寶位):보배로운 자리, 곧 왕위를 뜻함.

4. 불살생에 대해

묻는다. 사람이 만물을 먹고 만물이 사람에게 공급되는 것은 진실로 자

연스러운 것이다. 나이 70인 자는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으므로66)

인을 봉양하는 자는 고기를 드리지 않아서는 안 된다. 또 봄 여름 가을 겨

울의 절기에 따라 행하는 사냥67)은 바로 선왕(先王)68)께서 백성을 위해 해

로움을 없애고자 하여 절기에 따라 세운 법이므로 바꿔서는 안 된다. 또한

희생(犧牲)69)은 예부터 지금까지 제사를 받드는 예물(禮物)이므로 더욱더

폐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불교는 부모가 늙어 입맛이 없는데도 고

기를 공양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선왕의 제도와 희생의 예법을 폐지하도록

가르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曰, 人食物, 物給人, 固其自然也. 而七十者, 非肉不飽故, 養

老者不可不以此供之. 又春蒐夏苗秋獮冬狩, 乃先王之所以爲

民除害, 順時立法, 不可易也. 且犧牲, 從古于今, 奉祀之禮物,

尤不可廢也. 今浮圖, 親老而食不甘, 不供之以肉, 敎人亦廢先

王之制, 犧牲之禮, 豈非過歟?

66)『맹자』「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제22장

67) 옛날에는 임금이 사계절에 사냥을 하였는데 그 중에 봄 사냥을 춘수(春蒐), 여

름 사냥을 하묘(夏苗), 가을 사냥을 추선(秋獮), 겨울 사냥을 동수(冬狩)라고 한

다.『춘추정전(春秋正傳)』 권2 환왕(桓王)2년(隱5년) 에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

절에 따라 사냥하니 모두 농사짓는 여가에 일을 익히는 것이다.(春蒐夏苗秋獮冬

狩, 皆於農隙, 以講事也.)”라고 하였다.

68) 선왕(先王):원뜻은 전대의 왕을 말한다. 보통 중국 선대의 왕으로서 안으로는

성인의 덕을 갖추고 밖으로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여 존경의 대상이

되는 현명한 임금을 말한다.

69) 희생(犧牲):제사 때 바치는 예물(禮物)로서 소, 양 등을 말한다.

답한다. 하늘이 준 만물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성인이 허락하지 않는 것

이다. 하물며 하늘의 도(道)가 지극히 어질거늘 어찌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목숨을 죽여 제 생명을 기르도록 하였겠는가?『서경(書經)』70)에 “천지는

만물의 부모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진실로 총명한 사람이 임금이 되

며, 임금은 백성의 부모가 된다.”71)고 하였으니, 천지가 이미 만물의 부모

이니 천지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모두 천지의 자식이다. 천지와 만물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으니, 자식에게 어리석고 똑똑한 것이 있

는 것은 사람과 만물에게 총명함과 어리석음은 것이 있는 것과 같다. 부모

는 자식이 비록 어리석고 못났더라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며, 오히려 제

대로 기르지 못할까 염려하거늘 하물며 해를 끼치겠는가? 살아 있는 목숨

을 죽여 제 생명을 기르는 것은 형제를 죽여 제 생명을 기르는 것과 같으

니, 형제를 죽여 제 생명을 기른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자식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은 부모가 바라는 마음이 아니니, 사람과 만물이 서로를

죽이는 것이 어찌 천지의 뜻이겠는가? 사람과 만물은 천지의 기운을 똑같이

받았고 또 천지의 이치를 똑같이 얻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미 동일한 기운과 동일한 이치를 부여받았는데, 어찌 살아 있는 목숨을 죽

여 제 생명을 기르는 이치가 있겠는가? 예컨대, “천지는 나와 뿌리가 같고, 만

물은 나와 한 몸이다”72)고 하였으니 이것은 불교의 말씀이요, “어진 사람은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73)고 하였으니 이것은 유가의 말씀이다. 행동

이 그 말과 같아진 뒤라야 비로소 인(仁)의 도를 다하게 될 것이다.

의서(醫書)에 “손발에 풍이 드는 것을 불인(不仁)”74)이라고 하였으니, 대

개 손발은 몸 전체를 두고 볼 때는 미미한 것이지만, 아무리 미미한 병이

들더라도 기운이 소통하지 않게 된다. 인이란 천지의 만물이 한 덩어리가

되어 끼어들 바가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치를 깊이 체득한 자는 비록

미물이라 하더라도 일찍이 해를 끼친 적이 없을 것이니, “어진 사람[仁人]

의 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아주(鵝珠)비구75)와 초

계(草繫)비구76)가 그런 사람들이다. 이와 같지 않다면 사람과 만물은 기운

이 어그러져 온화하지 못하고 이치가 막혀 통하지 못하여 손발에 풍병이

든 것처럼 될 것이니, 의서(醫書)에서 한 말은 그 인을 잘 나타냈다고 할 만

하다.

『시경(詩經)』77)에는 “한 번 활을 쏘아 다섯 마리 암퇘지를 잡는다.”78)

하였고,『논어(論語)』79)에는 “낚시질은 하지만 그물질은 하지 않고, 주살로

는 잡지만 잠자는 새는 쏘지 않는다.”80)고 하였으며,『맹자(孟子)』81)에는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하니, 그 소리를 듣고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82)고 하였고, 또 “촘촘한 그물을 못에 치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

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83)라고 하였는데, 이 말들

은 모두 인을 행하려 하면서도 그 도를 다하지 못한 것이니, 어찌하여 ‘한

몸으로 여긴다’는 말과 부합하지 못하는가?『중용(中庸)』84)에는 “말은 행

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아야 하니 군자가 어찌 독실히 하지 않

아서야 되겠는가?”85)라고 하였는데, 지금 어쩌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

가? 이는 유학자들이 ‘인을 행하는 도’에 대해서 잘 논하긴 하였지만 끝까

지 잘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적게 죽이고자 하면서 왜 굳이 화살을

쏘며, 이미 그 잠자는 새를 불쌍히 여기면서 왜 자지 않는 새를 쏘며, 이미

푸줏간을 멀리 하면서 왜 반드시 고기를 먹으며, 작은 고기가 죽는 것을 슬

퍼하면서 왜 큰 고기는 굳이 해치려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대계(大戒)86)에서 살생하지 말라[不殺生]는 것을 첫 번째

에 두셨고, 또『자심인연불식육경(慈心因緣不食肉經)』87)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고기 먹는 자는, 이런 사람은 자비를 행하지만 충분하지 못하다. 늘

단명(短命)하고 병이 많은 몸을 받아서, 생사에 빠져 헤매어 성불하지 못한

다.”88)라고 하셨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녹낭(漉囊)89)을 지니게 한

이유는 미미한 생명체를 해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옛날 어떤 두 비구가 함께 부처님을 친견하려고 광야를 지나다가 목이

마르던 차에 벌레가 들어 있는 물을 발견하였다. 한 비구는 ‘부처님을 친

견할 수만 있다면 이 물을 마신들 무슨 죄가 되리오.’ 하고는 곧 마셨다. 다

른 한 비구는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으니, 만일 부처

님이 정해주신 계율을 깨뜨린다면 부처님을 친견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

가?’라고 하고는 갈증을 참고 마시지 않았다. 이 비구는 결국 죽어서 천상

에 태어나 먼저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90)

것이 바로 어진 사람의 진실한 말과 행동이며 ‘한 몸으로 여긴다’는 말과

‘독실히 한다’는 교훈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내가 출가하기 전에 해월(海月)이라는 스님이 나에게『논어』를 읽어주

다가 “널리 베풀어 백성을 구제하는 점에 있어서는 요순(堯舜)91)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92)는 대목을 설명하는 주(註)에서 “어진 사람은 천지만

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93)는 내용에 이르러서 책을 놓고 나에게 물었다.

“맹자가 어진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닭과 돼지와 개와 큰 돼지는 만물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진 사람은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고 하니, 이는 참으로 이치

에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맹자가 진실로 어진 사람이고 닭과 돼지와

개와 큰 돼지가 또한 만물이라면, 무엇 때문에 맹자가 ‘닭과 돼지와 개와

큰 돼지를 기르면서 새끼 칠 때를 놓치지 않으면 70세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94)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그때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하였다. 여러 유교 경전을 찾아보았

지만 생명을 죽이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주장도 없었고, 선배들에게 널리

물어 보았지만 시원스레 의심을 풀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늘 이러한 의문

을 품은 채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해결하지 못하였는데, 그 후 병자년(1396)

즈음에 삼각산(三角山)95)을 유람하다가 승가사(僧伽寺)96)에 이르러 어떤

늙은 선사(禪師)와 밤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선사가 “불교에는 열 가지 큰 계율[十重大戒]97)이 있으니, 그 첫 번째는 불

살생(不殺生)입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시원스레 의심이 풀리어 마

음으로 수긍하여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어진 사람의

행동이고 깊이 인도(仁道)를 체득한 말이다.” 그 때부터 나는 유교와 불교

의 차이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고, 마침내 이런 시를 지었다.

예전엔 경사(經史)98)에서 정자와 주자가 헐뜯는 글만 보고서

부처님 법이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했네

반복해서 곰곰이 생각한지 여러 해 지나서

비로소 진실을 알아 그만 귀의하노라.

무릇 둥지 틀고 사는 짐승은 바람이 불어올 줄을 알고, 구멍 속에 사는 짐

승은 비가 내릴 줄을 알며, 거미는 그물을 치는 재주가 있고, 쇠똥구리는 둥

글게 굴리는 능력이 있다. 만물이 모두 이와 같이 신령스러운 밝음[靈明]을

타고났으니, 살기 좋아하고 죽기 싫어하는 감정에 있어서라면 또한 어찌 사

람과 달랐던 적이 있었겠는가? 그러니 그 획획 놀리는 백정의 칼에 벌벌 떨

면서 사지(死地)로 나아갈 때에 힐끗힐끗 바라보며 구슬프게 울부짖는 것

이 어찌 원망을 품고 원한을 맺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그 때문에 사람과 만물이 서로 업(業)을 지으면서도 깨닫지 못

하고 서로 보상(報償)해 주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니, 어찌 어진 사람으로서

이러한 것을 알고도 차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맛을

가지고 저들이 참아 내야 할 아픔에 비교한다면 고통과 즐거움이 분명하여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응보(應報)99)의 설이 거짓말이라

면 그 업이 이루어지는 대로 맡겨두겠지만, 만일 거짓말이 아니라면 다가올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냥이 비록 선왕(先王)의 법제라고 하지만, 지금

큰 산속이나 섬과 같은 사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사람과 만물은 각

기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있고, 각기 그 곳에서 편안히 지내다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수명을 잘 마치고 있다. 이로써 본다면 백성이 어찌 반드시 사냥

을 따라야만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하겠는가? 옛 사람은 “사방을 둘

러싸지 않고 한꺼번에 덮치지 않는다”100)라고 가르쳤으니, 이로써 볼 때,

살생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릇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이치에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드시 이치에 합당한 것

만은 아니니, 이미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큰

원칙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주역(周易)』101)에 “옛날의 성인은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신성한 무덕[神

武]102)으로 죽이지 않은 자일 것이다”103)라고 하였다. 사계절의 사냥은 성

인이 이 말에 의거하여 신성한 무덕으로 미리 외적의 노략질을 예방한 것

일 뿐이니, 어찌 살생을 마음에 둔 것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천하를 위한

큰 방편인 것이다. 이로써 보면 사냥이란 것도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

로 건지는 의리와 똑같다.104)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건지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니, 어떻게 이것을 인간의 상법(常法)으로 삼겠는가?

제사를 위한 희생에 있어서도 그 돌아가신 분이 살아있을 때 고기를 맛있

게 먹었다면 그가 죽은 후에 좋아했던 음식으로 제사지내는 것이 마땅하겠

지만, 그것은 얼음에 물을 끼얹는 격이니 반드시 죄를 가중시킬 것이다. 옛

날에 어떤 사람이 양(羊)을 잡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자 그 조상이 꿈에

나타나 그것을 금지시킨 적이 있다. 이것이 그 징험이다. 이러한 자취를 볼

때 희생이 비록 성대한 예이기는 하지만 폐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曰, 暴殄天物, 聖人之所不與也. 況天道至仁, 豈令人殺生以

養生哉? 書云,“ 惟天地, 萬物父母, 惟人, 萬物之靈. 亶聰明作

元后, 元后作民父母.” 天地旣爲萬物之父母, 則生乎天地之間

者, 皆天地之息也. 天地之於物也, 猶父母之於子也, 子有愚智

之殊, 猶人與萬物之有明昧也. 父母之於子也, 雖愚不肖, 亦

愛而愍之, 猶恐不得其養焉, 況其加害乎? 殺生養生, 如殺同

息以自養也, 殺同息以自養, 則於父母之心爲如何哉. 子之相

殺, 非父母之心也, 人物之相殘, 豈天地之意乎? 人與萬物, 旣

同得天地之氣, 又同得天地之理, 而同生於天地之間. 旣一氣

一理之所賦, 焉有殺生養生之理哉? 如云, “天地乎? 中庸云,

“言顧行行顧言, 君子胡不慥慥爾,” 今何至此乎? 此儒者之所

以善論爲仁之道而未盡善也. 旣要殺少, 何必發矢, 旣憐其宿,

何射不宿, 旣遠庖廚, 何必食肉, 小旣傷殘, 何須害大. 佛於大

戒, 以不殺居先, 又慈心因緣不食肉經云,“ 如佛所說食肉者,

此人行慈不滿足. 常受短命多病身, 迷沒生死不成佛.” 又敎中

所以敎持漉囊者, 恐傷微命也. 昔有二比丘, 同欲見佛, 行於曠

野, 渴遇蟲水. 一人云, ‘但得見佛, 飮之何罪,’ 卽飮. 一人云,

‘佛戒殺生, 若破佛戒, 見佛何益,’ 忍渴不飮. 死生天上, 先見

於佛, 得佛讚嘆. 此乃仁人之眞語實行, 而冥相契於一己之言,

慥慥之訓也. 余未出家, 有釋曰海月者, 讀論語於予, 至“博施

濟衆, 堯舜其猶病諸,” 註云,“ 仁者以天地萬物爲一己”之言,

置卷而問予曰,“ 孟子仁者乎?” 曰,“ 然.”“ 雞豚狗彘萬物乎?”

曰,“ 然.” 曰,“ ‘仁者, 以天地萬物爲一己’, 此眞稱理之談也.

孟子苟爲仁者, 而雞豚狗彘, 又爲萬物, 則何以云,‘ 雞豚狗彘

之畜, 無失其時, 七十者可以食肉’乎?” 予於是, 辭窮而未能

答. 考諸經傳, 而無有殺生稱理之論, 博問先知, 而無有釋然

決疑之者. 常蘊此疑, 久未能決, 越丙子許, 游三角山, 到僧伽

寺, 與一老禪夜話. 話次, 禪云,“ 佛有十重大戒, 一不殺生.”

予於是, 釋然心服, 而自謂“此眞仁人之行也, 而深體乎仁道

之語也.” 從此, 不疑於儒釋之間, 而遂有詩云, 素聞經史程朱

毁, 未識浮圖是與非, 反復潛思年已遠, 始知眞實却歸依. 夫巢

知風穴知雨, 蜘蛛有布網之巧, 蜣螂有轉圜之能. 物皆如是, 同

稟靈明, 至於好生惡殺之情, 亦何嘗異於人哉? 方其砉然奏刀,

愬然就死之時, 盻盻然視, 唶唶然鳴, 豈非含怨結恨之情狀也,

而人自昧耳. 所以人與物, 相作而不覺, 相償而無休, 安有仁

人見其如是而忍爲之哉? 以我之嗜味, 較彼之忍痛, 苦樂皎然,

而輕重可忖. 報應之說, 如其妄也, 則一任其作, 如其不妄, 來

苦難當, 可不愼歟? 夫春蒐夏苗秋獮冬狩, 雖先王之法制, 今

有大山之中海島之間, 畋所不及之處, 人與物, 各遂其生, 各安

其所, 而善終天年者. 以此觀之, 則夫民也, 何必因其獵而遂其

生也. 古人敎以“不合圍, 不掩群,” 此知其殺之不可而事出乎

不得已也. 大抵不得已底事, 或中而不必合理也, 旣不合理, 何

以爲大經乎? 易云,“ 古之聰明睿智, 神武而不殺夫.” 蓋四時

之畋, 聖人托此, 示之以神武, 預防其外寇爾, 豈以殺爲心哉?

此乃爲天下者之大權者爾. 以此觀之, 則夫畋也, 正同嫂溺, 援

之以手之義. 嫂溺手援, 暫時之用爾, 何以爲人間之常法也. 至

於犧牲, 則人居平日, 以肉爲甘旨, 則其死也, 以其所嗜, 祭之

宜也, 然潑水添氷, 罪必加矣. 昔人有殺羊祭先, 其先托夢而禁

之, 此其驗也. 迹此觀之, 則犧牲, 雖曰盛禮, 亦廢之可也.

70)『서경(書經)』:유교의 성전(聖典)으로서 오경(五經) 중이 하나이다. 오경은 『역

경(易經)』·『서경(書經)』·『시경(詩經)』·『예기(禮記)』·『춘추(春秋)』를 말한다.

『서경』은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3대에 걸친 중국 고대의 기록으로서, 원래 사

관(史官)이 기록했던 것을 공자가 편찬한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서 가장 많이 읽는 것은『서경집전(書經集傳)』이다. 이 책은 송나라의 주자(朱

子)가 그의 제자 채침(蔡沈)에게 명하여 만든 것으로 주자는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71)『서경』「태서상(泰書上)」제3장.

72)『조론(肇論)』권1 大45 p.159b28~29.

73)『논어집주』「옹야(雍也)」 제28장에서 “정자가 말하기를 ‘…인자는 천지와 만물

을 한 몸으로 여기니, 자기가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程子曰 … 仁者 以天

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라고 하였다.

74)『논어집주』「옹야」제28장에서 “정자가 말하기를 ‘의서에 손발이 마비된 것을

불인이라 하니, 이 말이 인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였다.”(程子曰 醫書

以手足痿痺爲不仁, 此言最善名狀.)라고 하였다.

75) 아주(鵝珠)비구:아주(鵝珠)는 거위 구슬이라는 뜻으로 다음의 이야기가 『대장

엄론경(大莊嚴論經)』에 전한다. 옛날 어떤 비구가 걸식하다가 어느 집의 문 앞

에 섰을 때 그 집의 주인이 구슬을 꿰고 있었다. 그런데 비구가 밥을 얻는 사이

에 거위가 와서 구슬을 삼켜 버렸다. 주인은 비구가 구슬을 훔쳤다고 의심하

여 꾸짖었는데, 비구는 주인이 거위의 배를 갈라서 구슬을 취할까 두려워 거위

가 삼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모진 매질을 당했지만 거위가 배설할 때

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 비구를 아주비구라고 불렀다.(『大莊嚴論經』권11 大

4~319a20~321a18)

76) 초계(草繫)비구:초계(草繫)라는 말은 풀에 얽매였다는 말로 다음의 이야기

가『대장엄론경』에 전한다. 옛날 어떤 비구가 길을 가다가 도둑을 만났다. 도

둑들은 옷을 빼앗고 비구를 벗긴 채 풀에 묶어 놓고 가버렸다. 그 비구는 풀이

끊어질까 두려워 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견디고 있었다. 이때에 사냥을 나왔

던 임금이 이것을 보고 풀어주고 그 연유를 듣고는 비구의 행동에 감동하여 불

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그 비구를 초계비구라고 불렀다.(『大莊嚴論經』권3 大

4~268c5~269c24)

77)『시경(詩經)』:유교의 성전(聖典)으로서 오경(五經) 중이 하나이다. 이 책은 춘

추 시대의 민요를 모은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이다. 원래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려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전

하는 것은 305편이다.

78)『시경』「소남(召南)」추우(騶虞).

79)『논어(論語)』:유교의 성전(聖典)으로서 첫손 꼽히는 사서(四書) 중의 하나이

고, 유교 성전 중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이다. 사서는 『논어』·『맹자』·『대

학』·『중용』을 말한다. 『논어』는 공자(孔子)의 언행 및 제자들과의 문답과 제자

들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표현이 간결하고 함축성 있는 것이 특징이다. ‘논어’

라는 책 이름은 공자의 말을 모아 간추려서 일정한 순서로 편집한 것이라는 뜻

이라고 하는데, 언제 누가 편찬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학이편(學而篇) 이

하 모두 20편으로 이루어졌으며, 편 이름은 그중에 나오는 말을 따서 붙였다.

인(仁)을 핵심으로 한 공자와 제자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 인도주의가 중심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송나라의 주자가 편찬한『논어집주(論語集注)』

에 따라 읽었다.

80)『논어』「술이(述而)」 제26장.

81)『맹자(孟子)』:유교의 성전(聖典)으로서 사서(四書) 중의 하나이다. 맹자는 전

국시대에 살았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였

는데, 맹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 『맹자』이다. 약 15년 동안 전국 각국을 유세

하고 돌아다니면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하였으나 이를 채택하는 제후는

없었다.『맹자』는 양혜왕(梁惠王) 이하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아 구성한 것으로,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변론조의 문장으로 예로부터 명문으로 여

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송나라의 주자가 편찬한 『맹자집주(孟子集註)』를 가장

많이 읽었다.

82)『맹자』「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제7장.

83)『맹자』「양혜왕장구상」 제3장.

84)『중용(中庸)』:유교의 성전(聖典)으로서 사서(四書) 중의 하나이다. 공자의 손

자인 자사(子思)의 저작이라 알려졌다.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오경(五經)의 하

나인 『예기(禮記)』에 있는 「중용편(中庸篇)」이 송나라 때 단행본이 된 것이다.

‘중(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며, ‘용(庸)’이란 평상(平常)

을 뜻한다. 예로부터 송의 주자가 주석한 『중용장구(中庸章句)』를 가장 많이 읽

었다.

85)『중용』제13장.

86) 대계(大戒):『범망경(梵網經)』(大24)에 있는 열 가지 큰 계율[十重大戒]을 말한

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중생을 죽이지 말라[殺戒], 둘째는 도둑질 하지 말라

[盜戒], 셋째는 음행하지 말라[淫戒], 넷째는 거짓말 하지 말라[妄語戒], 다섯째

는 술을 팔지 말라[酤酒戒], 여섯째는 남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說四衆過

戒], 일곱째는 자기를 칭찬하지 말며 남을 비방하지 말라[自讚毁他戒], 여덟째는

인색하지 말라[慳惜加毁戒], 아홉째는 성내지 말고 남의 참회를 받아주어라[瞋

心不受悔戒], 열째는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謗三寶戒]이다.

87)『자심인연불식육경(慈心因緣不食肉經)』:『일체지광명선인자심인연불식육경(一

切智光明仙人慈心因緣不食肉經)』. 대정신수대장경 제3권에 수록. 내용은 가파리

(迦波利)바라문의 아들인 미륵(彌勒)의 본생담(本生譚)이다. 옛날에 미륵불이

승화부세계(勝花敷世界)에 나타나 자삼매광대비해운경(慈三昧光大悲海雲經)을

설하셨는데 일체지광명(一切智光明)바라문이 이 경을 듣고 보리심을 내서 이

경을 지송하기를 서원하고 미래에 성불하여 미륵이라 이름하기를 원하였다. 그

후 출가하여 8천년간 일심으로 이 경을 지송하였는데 어느 때 연일 호우가 쏟아

져 7일이나 밥을 먹지 못하자 숲속의 모자(母子)가 이를 보고 불 속에 투신하여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였다. 이를 본 선인은 생생세세토록 살생하려는 마음

을 내지 않고 항상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발원하고는 역시 불에 뛰어 들었다. 그

선인이 바로 미륵이었다고 한다.

88)『일체지광명선인자심인연불식육경(一切智光明仙人慈心因緣不食肉經)』권1 大3

p.458 c3~4.

89) 녹낭(漉囊):물을 걸러 마실 때 쓰는 도구.

90)『중아함경(中阿含經)』권22『구법경(求法經)』(大1 p.570a6~b8)에 비슷한 이야기

가 있다. 배고픈 두 비구가 있었는데 부처님이 남긴 음식을 탐내어 먹은 비구와

먹지 않은 비구에 대해 설명하면서 먹지 않은 비구가 부처님의 뜻에 합치하였

다는 이야기이다.

91) 요순(堯舜):중국 상고 시대의 요임금과 순임금을 말한다. 이들은 정치를 잘하

여 화평한 세상을 이루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

스리던 시대를 이상 세계로 여겼다.

92)『논어』「옹야(雍也)」 제28장.

93)『논어집주』「옹야」 제28장. “인자는 천지와 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니 자기 아닌

것이 없다.”(仁者, 以天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

94)『맹자』「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제7장.

95) 삼각산(三角山):서울의 동북쪽에 있는 산. 지금은 북한산(北漢山)이라고 부른

다. 높이 836.5m의 최고봉인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과 만경대(萬景

臺)의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삼각산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삼국시대 이래 중시되어온 산이다. 삼천사(三川寺)·태고사(太古寺)

등 여러 사찰이 있었고, 북한산성이 기능을 할 때는 중흥사(重興寺)를 비롯한 12

개의 사찰이 산성 안에 있었다. 지금도 산 안쪽과 기슭으로 도선사·화계사·승

가사·진관사 등 많은 사찰이 있다.

96) 승가사(僧伽寺):진흥왕순수비가 있던 북한산 비봉(碑峰) 동쪽에 위치한 사찰.

신라시대에 수태(秀台)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당나라 고종 때 천복사(薦福寺)

에서 대중을 가르쳤던 승가(僧伽)대사를 기리는 뜻에서 승가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고려 전기에 여러 차례 중수하였고, 1422년(세종 4)에 7종을 합하여 선교

양종으로 통합할 때 선종에 속하였다. 1941년에 도공(道空)이 크게 고쳤고, 한국

전쟁으로 불에 탄 것을 1957년에 도명(道明)이 크게 수리하여 많은 당우를 새로

지었다. 절 뒤편 바위에 마애석불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이 있고, 석굴 안에

고려 현종 때 조성하였다는 승가대사상(보물 제1000호)이 있다.

97) 열 가지 큰 계율[十重大戒]:『범망경』에 있는 열 가지 계율을 말한다. 주84) 참조

98) 경사(經史):유교의 경전과 사서(史書). 영원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경학으로

기초를 세우고, 시간에 따른 다양한 변화를 담고 있는 역사로 사회를 인식하는

정신. 곧 전통시대의 바람직한 공부의 큰 바탕을 말함.

99) 응보(應報):선악의 업에 따라 생겨나는 고락(苦樂)의 과보.

100)『예기(禮記)』「왕제(王制)」 제5장에서 “천자는 사면을 둘러싸지 않으며, 제후는

짐승의 떼를 한꺼번에 덮치지 않는다.”(天子不合圍, 諸侯不掩群)라고 하였다.

101)『주역(周易)』:유교의 성전(聖典)으로서 오경(五經) 중의 하나이다. 주역(周易)

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 하(夏)

나라 때의『연산역(連山易)』과 상(商)나라 때의『귀장역(歸藏易)』이 있었다고

한다. 역(易)이란 ‘바뀌다’는 의미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

의 원리를 풀이한 책이다.

102) 신무(神武):신성한 무덕(武德)

103)『주역전의』「계사상전」 제11장.

104)『맹자』「이루장구상(離婁章句上)」제17장에서 “순우곤이 맹자에게 묻기를, ‘남

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라고 하였다. 맹자가 ‘예이

다.’라고 대답하였다. 순우곤이 묻기를, ‘제수가 우물에 빠지면 손으로써 구원하

여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맹자가 대답하기를, ‘제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구원

하지 않는다면, 이는 승냥이이다. 남녀 사이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음은 예

이고, 제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써 구함은 권도이다.’라고 하였다.”(淳于髡曰,

男女授受不親, 禮與? 孟子曰, 禮也. 曰 嫂溺則援之以手乎? 曰 嫂溺不援, 是豺狼也.

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援之以手者, 權也.)라고 하였다.

5. 불음주에 대해

묻는다. 술은 모여서 기쁨을 함께 하는 약으로서 혈맥(血脈)을 조화롭게

하여 풍기와 냉기를 물리친다. 또 제사에서는 술이 강신(降神)105)하게 하

니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불교는 계율에서 술을 금지하여

팔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曰, 酒所以合歡之藥也, 調和血脈, 以却風冷. 又於祭祀, 酒令

降神, 不可無也. 今浮圖, 設戒以禁, 不酤不飮, 豈非過歟?

105) 강신(降神):신이 내려옴을 말한다. 제사에서 주인이 조상의 신위(神位)에 분향

하고 재배한 뒤 제주(祭酒)를 올리는 의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답한다. 술은 정신을 어지럽히고 덕을 무너뜨리는 근본이며 게다가 도에

더욱 해로운 것이다. 그래서 계율에서 그 잘못을 지적하여 서른여섯 가지106)

라고 하였고, 또 유교에서도 그 잘못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기를 “안으로는

그 심지(心志)를 어둡게 하고, 밖으로는 그 위의(威儀)를 잃게 한다.”107)

하였으니, 이 말씀들은 음주가 큰 허물이 됨을 잘 밝힌 것이다. 술은 안으

로 그 심지를 어둡게 하기 때문에 자신의 수행을 방해하고, 밖으로 그 위의

를 잃게 하기 때문에 교화의 길을 가로 막는다. 따라서 나와 남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끝없이 재앙과 화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의

적(儀狄)108)은 우(禹)임금109)에게 술을 바쳤다가 소원해졌고,110) 나한(羅

漢)111)은 술을 마셨다가 부처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우임금께서 의적을 멀

리하신 까닭과 부처님께서 나한을 꾸짖은 까닭이, 어찌 술의 해로움이 사

람을 음탕하고 거칠고 어리석고 어지럽게 하여 결국은 몸을 망치고 도를

무너뜨리며 나라를 망하게 하고 지위를 잃게 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예로는 하늘과 땅의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려 할 적에 반드시 먼저 며칠

동안 재계(齋戒)한 뒤에 하루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 재계란 훈채(葷菜)112)

와 술을 먹지 않고 정성을 전일하게 하고 정결(淨潔)히 하는 것이다. 정성

이 전일하지 않고 정결함이 지극하지 않으면 귀신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기 때문이다. 불교의 재계란, 정성스러움에 있어서는 늘 성실하여 잡됨이

없어야 하고, 정결함에 있어서는 이 몸이 다하도록 더럽히지 않아야 하니,

만약 ‘며칠 동안’을 거기에 견준다면 하늘과 땅의 거리가 어찌 멀겠는가?

이미 재계가 옳은 줄 알았다면 어찌 며칠 동안만 재계하고 그쳐야 하겠는

가? 그 며칠이 지난 뒤 제사가 없을 때엔 방심해도 되는 것인가? 이것이 유

교가 불교와 차이가 있는 까닭이다.

曰, 酒爲亂神敗德之本, 而尤害於道也. 故律中指其過曰三十

有六, 儒傳亦明其失云, “內昏其心志, 外喪其威儀,” 斯言善明

爲過之甚也. 內昏其心志故, 妨其自修也, 外喪其威儀故, 妨其

化道也. 非惟無益於自他, 亦乃招殃禍於無窮也. 由是儀狄獻

之而致疎於禹, 羅漢飮之而見呵於佛. 夫禹之所以疎儀狄, 佛

之所以責羅漢者, 豈非以酒之爲害, 當使人淫荒迷亂, 至於滅

身敗道亡國失位者乎? 禮將有事於天地鬼神, 必先數日齋然

後, 行一日祭. 齋者, 不茹薰酒, 專誠而致潔也. 以誠不專潔不

至, 則神不享矣. 佛之齋戒也, 誠則長誠而無雜, 潔則終身而不

汙, 若以數日比之, 天地何遠? 旣知齋之爲是, 何必數日而已

哉? 數日之外, 無祭之時, 其可放緩乎? 此儒之所以與佛有間

者也.

106)『분별선악보응경(分別善惡報應經)』권2(大1 p.899 b27~c11)에 음주의 36가지의

허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①재산을 잃는다 ②질병이 많아진다 ③싸움을 일

으킨다 ④살생이 늘어난다 ⑤성냄이 많아진다 ⑥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

아진다 ⑦지혜가 점점 줄어든다 ⑧복덕이 늘지 않는다 ⑨복덕이 도리어 감소한

다 ⑩비밀이 드러난다 ⑪사업을 이루지 못한다 ⑫근심과 괴로움이 많아진다 ⑬

감각기관이 둔해진다 ⑭부모를 욕되게 한다 ⑮사문을 공경하지 않는다 ⑯바라

문을 믿지 않는다 ⑰부처님을 공경하지 않는다 ⑱불법과 승려를 공경하지 않는

다 ⑲나쁜 친구와 친하게 된다 ⑳좋은 친구를 떠나게 된다 음식을 버리게 된

다 신체부위를 숨기지 않는다 음욕이 성대하게 된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웃고 떠드는 것이 많아진다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다 자녀들이 싫

어하거 멀리한다 그릇된 법을 지니게 된다 바른 법을 멀리한다 어질고

착한 사람을 공경하지 않는다 잘못을 범하게 된다 열반을 멀리하게 된다

미친 행동이 증대된다 몸과 마음이 산란해진다 악을 행하고 방일해진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

107) 이 부분은 『논어』「향당(鄕黨)」제8장에서 “술은 일정한 양이 없었는데, 어지러

울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다.”(唯酒無量 不及亂)라고 한 부분을『논어집주』의 주

(註)에서 “정자가 말하였다. ‘어지러울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을 어

지럽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비록 혈기(血氣)라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되며, 다

만 몸을 훈훈하게 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다.’”(程子曰, 不及亂者, 非唯不使

亂志, 雖血氣, 亦不可使亂, 但浹洽而已可也.)라고 하였는데, 그 아래에 있는 소주

(小註)의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이하의 내용과 같다.

108) 의적(儀狄):하나라 때 최초로 술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의 이름.

109) 우(禹)임금:하(夏)나라의 시조. 하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로서 서기전

16세기에 폭군 걸(桀)이 멸망하기까지 17대 432년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우는

성이 사(似)이고 이름은 문명(文命)이다. 그는 곤(鯀)의 아들이고 전욱(顚勗)의

손자이다. 아버지 곤이 홍수를 막으려고 하다 실패하자, 당시 순(舜)임금은 우

에게 그 일을 맡겼다. 우는 노심초사 그 일에 열중해서, 13년 동안이나 집은 전

혀 돌보지 못하고 치수사업에 열중하여 홍수의 피해를 이겨냈다. 이 공으로 부

락의 장이 되었고, 순임금으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왕이 되었다.

110)『전국책(戰國策)』「위책(魏策)」에서 “의적이 술을 만들어 우임금에 바치니, 우임

금이 맛보고는 맛있게 여기며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술로 인하여 나라를 망치

는 자가 있을 것이다.’고 하고는 마침내 의적을 멀리 하고 맛있는 술을 끊었다.”

(儀狄作酒, 禹飮而甘之曰, 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 遂疏議狄而絶旨酒.)라고 하였다.

111) 나한(羅漢):아라한(阿羅漢)의 준말. arhat, arahant. 성문(聲聞)이 수행하여

얻는 네 가지 최고 경지[四果]의 마지막 단계. 응공(應供)·무학(無學)·불생(不

生)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깨닫지 못한 중생이 윤회 유전하는 욕계·색계·무

색계의 삼계(三界)에서 이치를 보고서 끊는 견혹(見惑)과 수도하여 끊는 감각

적·육체적·정의적안 사혹(思惑)을 다 끊고 참 앎을 증득하였으므로 마땅히 세

간의 큰 공양을 받을 만한 성인을 가리킨다. 이 과위(果位)는 대승(大乘)·소승

(小乘)에 공통되지만 일반적으로 소승불교에서 얻는 최고의 과위를 뜻한다. 여

래(如來) 십호(十號)의 하나이기도 하다.

112) 훈채(葷菜):파, 마늘, 생강 등 향기 짙은 채소를 말한다.

6. 재보시에 대해

묻는다. 보배와 재물은 사람이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니, 그것을 사용

함에 절도가 있어야 하고 저축하여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조상을 제사지내는 일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그들

이 가난으로 떠돌이 신세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불교는 사

민(四民)113) 밖으로 도망가서 임금의 일[王事]을 받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거늘, 게다가 사람들에게 보시(布施)114)의 응보(應報)를 과

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재물을 가져다 부처를 봉양하게 하고 마침내는

배고프고 추위에 떨며 가난으로 떠돌이 신세가 되게 하니, 어찌 잘못이 아

니겠는가?

曰, 珍財, 人之所賴以生, 當用之有節, 畜而不費. 以遺夫子孫,

令不墜其宗祀, 不見其窮露. 今浮圖, 逃於四民之外, 不事王

事, 亦已足矣, 更誇人以布施報應, 令人盡持奉佛, 而終至於飢

寒窮露, 豈非過歟?

113) 사민(四民):전통시대에 모든 백성들을 아울러 말하는 말, 선비[士]·농민[農]·

수공업자[工]·상인[商]. 앞 순서대로 신분이 우위에 있었다.

114) 보시(布施): dāna. 음역하여 단(檀) 또는 단나(檀那)로 표기하기도 한다. 본래

뜻은 옷이나 음식물 등을 대덕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주는 것을 말하였

는데,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복과 이익을 베푸는 뜻으로 쓰였다. 처음

에는 부처님께서 일반 신자들에게 권하는 실천이었는데, 대승불교 시대에 보

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의 첫 번째가 되었다. 여러 가지 구분이 있는데, 대표적

인 것에 세 가지의 구분이 있어 재보시(財布施), 법보시(法布施), 무외시(無畏

施)로 나눈다. 재보시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것이고, 법보시는 설법 등과 같이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며, 무외시는 온갖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말

한다.

답한다. 보배와 재물을 길이 탐하는 것은 화(禍)를 불러오는 도구요, 보

시하여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은 복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다. 유교의 가르침

에 어찌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았겠는가? “재물을 모으면 백성이 흩어지

고, 재물을 나누어주면 백성이 모인다.”115)고 하였다. 불교에서 사람들에

게 보시를 권하는 까닭은 자신의 이익116)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것을 아끼고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을 제거하여 마

음의 밭[心田]117)을 정화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세 가지를 항상 부족하게 하라”고 훈계하셨다.118) 그 세 가지 부족한 것은

옷과 음식과 수면으로서 모두 부족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것

으로써 제자들에게 경계하셨는데, 어찌 옷과 음식을 위해 사람들에게 보시

하라고 권하겠는가? 만일 옷과 음식을 마음에 두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이 어찌 오늘에 이르렀겠는가? 응보(應報)의 설에 있어서라면, 이것이 어

찌 우리 불교의 가르침에만 있겠는가? 『주역』에서 “선을 쌓으면 경사가 넉

넉하게 있고 악을 쌓으면 재앙이 넉넉하게 있다.”119)고 하였고, 또 홍범(洪

範)120)에서 “사람이 황극(皇極)121)에 합하면 하늘이 다섯가지 복[五福]122)

으로써 응하고, 어기면 하늘이 여섯가지 크게 불길한 일[六極]123)으로써

응한다.”124)고 하였으니, 이것은 응보의 설이 아니겠는가? 육체[形]가 살아

있을 때의 응보가 이미 그러하고, 죽고 나서도 육체는 비록 떠났지만 정신

은 남아 있으니, 선과 악의 응보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부처님의 말씀에

“설사 백 천겁이 지나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고, 인연(因緣)이 모일

때에 과보(果報)를 다시 받는다.”125)고 하였으니, 어찌 사람을 속이는 말이

겠는가?

曰, 珍財長貪, 取禍之具也, 布施淸心, 致福之方也. 儒傳豈不

云乎?“ 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佛之所以勸人行施者, 非

爲自利而然也, 只要令人, 破除慳貪, 以淨心田而已. 佛誡比

丘, “三常不足.” 三不足者, 衣食睡眠, 皆不足也. 旣以此誡其

徒也, 豈爲衣食於人而勸之以施乎? 若以衣食爲心, 則佛之敎,

豈到今日. 至於報應之說, 則豈獨吾敎乎? 易云,“ 積善有餘慶,

積惡有餘殃,” 又如洪範, “人合乎皇極, 則天應之以五福, 違則

應之以六極,” 此非報應歟? 形存而其應已然, 及其死也, 形雖

謝而神存, 善惡之應, 豈不然乎? 佛之言曰,“ 假饒百千劫, 所

作業不亡.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 豈欺人哉?

115)『대학』「전문(傳文)」제10장.

116) 자리(自利)는 자신의 이익을 말한다. 여기서는 보시를 하면 보시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뜻한다.

117) 심전(心田)은 마음을 의미하는데, 그 마음에 있는 종자에서 온갖 것이 자라난다

는 의미에서 밭에 비유하였다. 그래서 흔히 ‘마음의 밭’으로 번역한다.

118)『치문경훈(緇門警訓)』권1「위산대원선사경책(溈山大圓禪師警策)」大48

p.1042b20~22.

119)『주역전의』「곤괘(坤卦)」에서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불선

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積善之家, 必有余慶, 積不善之家, 必有

余殃.)라고 하였다.

120) 홍범(洪範):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서경(書經)』의 1편. 유가(儒家)의

천하적 세계관에 따라 정치철학을 말한 글이다. 정치는 하늘의 상도(常道)인 오

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

疑)·서징(庶徵)·오복(五福) 등 아홉가지 범주에 의해 인식되고 실현된다는 것

이 그 주요 내용이어어서 홍범구주(洪範九疇)라고도 한다. 후대에 홍범은 군주

정치의 이념과 관련하여 황극(皇極)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되었다.

121) 황극(皇極):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정(中正)의 도(道).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

는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바른[大中至正] 도. 사방 만민의 법칙으로 삼기 위해

제왕이 정한 대도.

122) 다섯가지 복[五福]: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의 복. 첫째는 수

(壽)이니 오래 사는 것을 말하며, 둘째는 부(富)이니 넉넉한 재물을 말하며, 셋

째는 유호덕(攸好德)이니 덕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며, 넷째는 강녕(康寧)이니

재앙이 없어 마음이 편안한 것을 말하며,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이니 제 명대

로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다가 죽는 것을 말한다.

123) 여섯가지 크게 불길한 일[六極]:첫째는 흉단절(凶短折)이니 제대로 죽지 못하

거나 요절하는 것, 둘째는 질병[疾]이니 몸이 편안하지 못한 것, 셋째는 근심

[憂]이니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것, 넷째는 가난함[貧]이니 재물이 부족한 것,

다섯째는 악(惡)이니 강함이 지나친 것, 여섯째는 약(弱)이니 유순함이 지나친

것이다.

124)『서경』「홍범(洪範)」제4장에서 “향함을 오복으로써 하고 위엄 보이기를 육극으

로써 한다.”(嚮用五福, 威用六極.)라 하였고, 그 부분에 대한『서경집전』의 주(註)

에서 “오복을 향함이라 한 것은 권면하기 위한 것이요, 육극을 위엄이라 한 것

은 징계하기 위함이다.”(五福曰嚮, 所以勸也, 六極曰威, 所以懲也.)라고 하였다.

125)『대보적경』 권57 大11 p.335b14~15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

奈耶)』권6 大23 p.657c5~6.

7. 윤회응보설에 대해

묻는다. 사람은 태어날 때에 음(陰)으로써 바탕[質]을 받고, 양(陽)으로

써 기운[氣]을 받아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짝해 혼백(魂魄)이 되어 육체

를 이루다가, 죽음에 이르러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내

려가 사라지게 된다. 무릇 사람에게 지각(知覺)이 있는 이유는 그 마음 때

문이다. 마음이란 혼과 백이 합하여 한 몸의 주인이 된 것으로, 죽을 때에

기(氣)와 함께 흩어져 육체와 정신이 더 이상 저승에서도 머무르지 못하게

될 것이니,126) 누가 다시 복을 받고 재앙을 받겠는가? 지금 불교는 천당으

로써 기쁘게 하고 지옥으로써 두렵게 하여 사람들을 미혹에 빠져들게 한

다. 그러나 하늘은 푸르고 아득하여 있는 것이라곤 해와 달과 별들뿐이요,

땅은 흙과 돌로 이루어져 그 위에 싣고 있는 것은 사람과 만물뿐이다. 그러

니 “없어지지 않는 것[不亡]이 있어서 천당과 지옥을 감득(感得)한다.”127)

는 말이 어찌 거짓말이 아니겠는가?

曰, 人之生也, 陰以稟其質, 陽以稟其氣, 一陰一陽, 配爲魂魄

而成形, 及其死也, 魂昇魄降而就盡. 夫人之所以有知覺者, 以

其心也. 心也者, 魂魄之合而一身之主也, 其死也, 與氣俱散,

而更無有形神尙留於冥漠之中, 誰更受福受殃? 今浮圖, 忻之

以天堂, 怖之以地獄, 令人致惑. 天是蒼蒼, 而所有者日月星辰

而已, 地是土石, 而所載者人與萬物而已. 謂之“不亡者存而

感天堂地獄”者, 豈非妄乎?

126) 고려말 조선초 사대부들의 불교 비판을 대표하는 정도전(鄭道傳)의『불씨잡변

(佛氏雜辯)』「불씨윤회지변(佛氏輪廻之辨)」에서 “『주역』에 이르기를, ‘사물의 처

음을 따져보면 그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죽고 삶의 설을 알게

된다.’라고 하였고, 또, ‘정기는 사물이 되고 유혼(游魂)은 변화가 된다.’라고 하

였는데, 선유(先儒)는 이를 해설하기를, ‘천지의 변화가 비록 끊임없이 나고 나

지만 모이면 반드시 흩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그 처음을 따져서

모이어 생기는 것을 알면, 그 후에는 반드시 흩어져 죽는 것을 알게 되고, 생길

때에 능히 기화(氣化)의 자연스러움을 얻은 것이요, 애초에 정신이 큰 허공 가

운데에 붙어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죽을 때에 기(氣)와 함께 흩어져 형상이

더 이상 저승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라고 하였다.”(易曰, 原始反終, 故

知死生之說. 又曰, 精氣爲物, 游魂爲變. 先儒解之曰, 天地之化, 雖生生不窮, 然而有聚

必有散, 有生必有死, 能原其始而知其聚之生, 則必知其後之必散而死, 能知其生也得

於氣化之自然, 初無精神寄寓於大虛之中, 則知其死也與氣而俱散, 無復更有形象尙留

於冥漠之內.)라고 하였다. 그런데『현정론』의 저자인 기화(己和, 1376~1433)가 정

도전의『불씨잡변』을 보았을 가능성은 적다. 정도전이『불씨잡변』을 저술한 것

은 1398년(태조 7) 무렵으로 추정되지만, 1456년(세조 2)에 처음 간행되었고, 일

반에게 유통된 것은 1465년(세조 11) 이후이다. 그러므로 1433년에 입적한 기화

가『불씨잡변』을 보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혼백과 관련한

질문은 당시 유학자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27)『법화경요해(法華經要解)』(권4)에서 “만물은 죽고 살지만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卍30 p.320c3. 萬物死生而不亡者存)라고 하였다. 본문에서의 없어지지 않

는 것[不亡者]은 영혼을 말한다.

답한다. 음(陰)과 양(陽)은 진실로 사람이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니, 음

양이 합하면 생명을 받게 되고 음양이 흩어지면 죽게 된다. 그러나 본래부

터 있는 진명(眞明)128)은 육체를 따라 나지도 않으며 육체를 따라 사라지

지도 않으니, 비록 천 가지로 변하고 만 가지로 바뀔지라도 고요히 홀로 존

재한다. 무릇 마음은 두 가지가 있으니, 견실심(堅實心)129)과 육단심(肉團

心)130)이다. 육단심은 혼백(魂魄)의 넋이요, 견실심은 진명(眞明)을 말하는

데, 지금 말하는 마음은 진명이지 육단심이 아니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요 육체는 마음이 부리는 것이니, 선악(善惡) 등의 일

을 임금인 마음이 명령하면 신하인 육체가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응보

(應報)에 있어서는, 살아서는 임금과 신하가 똑같이 받지만, 죽어서는 신하

인 육체가 이미 떠나갔으므로 임금인 마음이 홀로 받는다.『시경』에 “문왕

(文王)131)의 오르고 내리심이 상제(上帝)의 좌우(左右)에서 하도다.”132)

고 하였으니, 그 오르내린 것이 어찌 하늘에 있는 영혼이 아니겠는가?

옛날에 왕회지(王淮之)라는 수재(秀才)가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불

법(佛法)을 믿지 않았다. 어느 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말하기를 “지난

날 나는 육체와 정신이 함께 멸한다고 여겼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육체는

떠나도 정신은 존재한다’133)는 부처님 말씀이 진실로 거짓이 아님을 알겠

다.”라고 하였다.134)

또 송(宋)나라 사람 이원(李源)이 원택(圓澤)스님과 교우(交友)하면서

세세생생 서로를 저버리지 말자고 약속하였다. 하루는 함께 노닐다가 원택

스님이 물 긷는 어떤 부인을 보고서 “저 여인의 성은 왕씨인데 나는 저 사

람의 아들이 될 것이오. 12년 후에 항주(杭州) 천축사(天竺寺) 밖에서 그대

를 만나 교우의 의리를 밝히겠소.”라 말하더니, 그날 저녁에 원택스님이 과

연 죽었다. 이원은 12년이 지난 후, 약속했던 그곳에 갔다가 갈홍천(葛洪川)

이라는 냇가에서 어떤 목동이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삼생석(三生石) 위의 옛 혼령이여

달 감상하고 시 읊던 일 논할게 못되네.

정든 사람 멀리서 찾아옴을 부끄러워 하니

이 몸은 비록 다르나 본성은 늘 그대로라네.

두 사람이 서로 만남에 이르러 “이공(李公)은 참으로 믿을 만한 선비요”

라고 말하고는 또 이렇게 노래하였다.

전생과 후생의 일 아득하고 아득하여

인연을 말하려니 창자가 끊어질 듯하네.

오월(吳越)의 산천은 이미 둘러보았으니

곧장 뱃머리 돌려 구당(瞿塘)135)으로 올라가리.136)

또 양호(羊祜)가 이(李)씨의 아들이 되고 왕(王)씨의 아들이 채(蔡)씨의

손자가 된 이야기137)를 내가 예전에 보고서「양이송(羊李頌)」을 지었다.

양호와 이씨 동일한 사람일 뿐이니

가고 옴은 돌아옴과 다르지 않도다.

누가 알았겠는가? 일곱 살 난 아들이

죽었다가 5년 만에 돌아올 줄을.

또「왕채송(王蔡頌)」을 지었다.

지난날 왕씨 집안의 아들이

지금은 채씨의 손자가 되었네.

점 하나 찍지 않았더라면

같다 다르다 논쟁이 분분했으리.

이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건대, 신령스럽게 밝은 것[靈明]은 육체의 변

화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이 죽으면 육

체와 정신이 함께 멸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찌 우매한 것이 아니겠는가?

천당과 지옥에 대해 말하자면, 이것은 실제로 본디부터 있는 것이 아니

라 사람의 업감(業感)138)으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이다. 공자가 일찍

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꿈에 주공(周公)139)을 다시 보지 못한 지가 오래되

었다”140)고 하였으니, 대개 꿈이란 사람의 정신이 노니는 것이지 육체가

시켜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공자가 꿈에서 주공과 만났던 것은 평소

에 마음을 주공의 도에 두고 오로지 그것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정신이 자연히 서로 감응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날마다 선이나 악을 오로지 행한다면 선을 행한 자는 꿈에 그 영광을 볼 것

이요, 악을 행한 자는 꿈에 그 치욕을 볼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자는 부지

런히 의(義)만 좇고, 악한 자는 호시탐탐 이익만 구하기 때문이다. 선한 자

는 의만 좇기 때문에 일마다 사리에 맞고, 악한 자는 오직 이익만 구하기

때문에 일마다 의에 어긋난다. 선한 자는 일마다 사리에 맞기 때문에 사람

들이 반드시 그를 좋게 여기고, 악한 자는 일마다 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

람들이 반드시 그를 미워한다. 선한 자는 사람들이 그를 좋게 여기기 때문

에 윗사람에게 전달되어 벼슬과 녹봉이 더해지고, 악한 자는 사람들이 그

를 미워하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전달되어 형벌(刑罰)이 가해진다.

이로 말미암아 선한 자는 차분하게 그 영광됨을 기뻐하여 맞아들이고,

악한 자는 깜짝 놀라 그 재앙을 피하려고 도모한다. 선과 악의 습관과 기뻐

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정신 속에 쌓여 있기 때문에 꿈에서 영광을 보거나

치욕을 보는 것이다. 그 정신이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곧 내생(來生)141)

니, 이것이 선한 자가 천당을 감득하는 까닭이요, 악한 자가 지옥을 감득하

는 까닭이다. 천당과 지옥이 설사 없더라도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천

당을 흠모하여 선으로 나아가고 지옥을 싫어하여 악을 그친다면, 천당과

지옥의 가르침은 백성을 교화하는 데 그 이익이 막대할 것이다. 과연 천당

과 지옥이 있는 것이라면, 선한 자는 반드시 천당에 올라가고 악한 자는 반

드시 지옥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선한 자들은 스스로 노력하여 천당을 누릴 것이고, 악한 자들은 스스로 악

을 그쳐 지옥에 들어감을 면할 것이니, 어찌 반드시 천당과 지옥의 설을 배

척하여 거짓이라고만 하겠는가?

曰, 陰陽, 固人之所賴以生者也, 陰陽合而受生, 陰陽散而就

死. 若固有之眞明, 則不隨形生, 不隨形謝, 雖千變萬化, 而湛

然獨存也. 夫心有二, 曰堅實心, 曰肉團心. 肉團心者, 魂魄

之精也, 堅實心者, 眞明之謂也, 今所謂心者, 眞明也, 非肉

團也. 夫心者, 身之主也, 形者, 心之使也, 善惡等事, 心君命

之, 形臣作之. 至於報應, 生則君臣等受, 死則形臣已謝, 而

心君獨受. 詩云, “文王陟降, 在帝左右,” 陟降之者, 豈非在天

之靈乎? 昔有秀才曰, 王淮之, 自小不信佛法. 一日死而復蘇

曰,“ 向者自謂形神俱滅, 今始知佛之所謂‘形謝而神存’, 信

不誣矣.” 又宋人李源, 與僧圓澤交, 相約世世無相棄. 一日同

遊, 澤見夫人之汲者曰, “此婦姓王氏, 吾當爲其子. 十二年後,

杭州天竺寺外, 須公相見, 以明交義.” 至暮澤果死. 源果十二

年, 赴其約, 聞葛洪川畔, 有牧童扣牛角而歌曰, 三生石上舊精

魂, 賞月吟風不要論. 慙愧情人遠相訪, 此身雖異性長存. 及相

見曰,“ 李公眞信士也,” 而又歌曰, 身前身後事茫茫, 欲話因緣

恐斷腸, 吳越山川尋已徧, 却回煙棹上瞿塘. 至如羊祜爲李氏

之子, 王子爲蔡氏之孫, 余曾觀此傳, 爲羊李頌云, 羊李只一

人, 往復非異環. 誰知七歲子, 滅已五年還. 爲王蔡頌云, 昔日

王家子, 今爲蔡氏孫. 不因一點墨, 同異議紛紜. 觀此數事, 則

足知靈明之不隨形變也. 謂之“人死而形神俱滅,” 豈非昧乎?

至於天獄, 則非是實然固有, 乃人之業感, 自然如是也. 孔子

嘗曰,“ 吾不復夢見周公久矣,” 蓋夢者, 人之神游, 非形之使然

也. 夫子之所以夢與周公見者, 蓋平日心存周公之道, 專而行

之. 故其精神自然, 相感而然也. 人亦如是, 日於善惡, 爲之旣

專, 則善者夢見其榮, 惡者夢見其辱. 所以然者, 善者亹亹然惟

義是從, 惡者恈恈然惟利是求. 善者惟義是從故, 事事而適宜,

惡者惟利是求故, 事事而違義. 善者事事而適宜故, 人必善之,

惡者事事而違義故, 人必惡之. 善者人善之故, 自達於上, 而加

之以爵祿, 惡者人惡之故, 自達於上, 而加之以刑罰. 由是, 善

者與與, 忻致其榮, 惡者錯愕, 謀避其殃. 善惡之習, 忻厭之情,

蘊在情神故, 其於夢也, 亦見榮見辱. 其神往而不返, 則便是來

生, 此善者之所以感天堂, 惡者之所以感地獄者也. 天堂地獄,

設使無者, 人之聞者, 慕天堂而趨善, 厭地獄而沮惡, 則天獄之

說之於化民, 利莫大焉. 果其有者, 善者必昇天堂, 惡者必陷地

獄. 故使之聞之, 則善者自勉而當享天宮, 惡者自止而免入地

獄, 何必斥於天獄之說, 而以爲妄耶?

128) 진명(眞明):진실로 밝은 상태로서 어둠에 상대적인 밝음이 아니라 절대적인 밝

음을 말한다.

129) 견실심(堅實心):중생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참된 심성 곧 진여(眞如)의 실체

를 말함. 심장을 말하는 육단심(肉團心), 대상을 포착하여 사유하는 마음인 연려

심(緣慮心), 아뢰야식을 뜻하는 집기심(集起心)과 함께 사종심(四種心)의 하나.

130) 육단심(肉團心):물질적인 마음이란 뜻으로 심장(心臟)을 말함. 사종심(四種心)

의 하나.

131) 문왕(文王):중국 주(周)나라의 시조. 이름은 희창(姬昌). 황하의 상류 지역인 위

수 분지에서 일어나 처음에는 상(商)나라를 받드는 작은 나라의 하나였는데 차

차 세력이 커져 문왕 때에 이르러서 서방 여러 왕후(王侯)의 우두머리인 서백

(西伯)이 되었다. 상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이 폭정을 하여 문왕은 태공망 등

어진 선비들을 모아 국정을 바로잡고 외적을 토벌하여 힘을 키워 아들 무왕이

주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 주었다. 그래서 고대의 이상적인 성인 군

주의 전형으로 꼽힌다. 무왕(武王)이 마침내 상을 멸망시키고, 지금의 시안(西

安)부근인 호경(호경)에다 도읍을 정하고 주나라를 열었다.

132)『시경』「대아(大雅)」 문왕.

133)『홍명집(弘明集)』의「신불멸론(神不滅論)」(大52 p.27c29),「난범진신멸론(難范縝

神滅論)」(大52 p.54c21),「난범중서신멸론(難范中書神滅論)」(大52 p.58a14) 등에서

‘육체는 없어져도 정신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134) 왕회지에 대한 이야기는『법원주림(法苑珠林)』 권79(大53 p.875a14~20)에 보인다.

135) 구당(瞿塘):중국 사천성(四川省) 동쪽 끝에 있는 양자강(揚子江) 삼협(三峽)의

하나로서, 제1협이다. 수려한 경관과 깎아지른 협곡으로 삼협의 대표적인 경치

로 유명하다.

136) 이원과 원택스님에 대한 이야기는『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권14(大49

p.604c28~a26)에도 실려 있지만,『낙방유고(樂邦遺稿)』권1「원택법사보연생사

(圓澤法師報緣生死)」(大47 p.238a1~17)의 기록이 여기 서술된 내용과 글자가 더

일치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삼생석(三生石)’이라는 주제로『태평광기(太平廣

記)』를 비롯하여『절강통지(浙江通志)』등 지지류에 널리 실려 있다.

137) 양호가 이씨의 아들이 된 이야기는『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권10(大49

p.559b11~29)에 보인다. 왕자가 채씨의 손자가 된 이야기는 분명하지 않다. 양호

의 이야기는 ‘양호식환(羊祜識環, 양호가 반지를 알다)’이라는 주제로 널리 전해

왔다. 진(晋)나라의 양호는 형주도독을 지낸 관리였다. 그런데 그가 5세 때 이웃

집 이씨 집의 동산 뽕나무 밑에서 있던 금반지를 캐 오게 하였다는데, 이 반지는

이씨의 죽은 아들이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양호의 전신이 이씨의 아들이

라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이다.

138) 업감(業感):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행위에 의해 선악의 과보를 감득(感得)하는

것을 말한다.

139) 주공(周公):서기전 12세기 경에 활동한 주(周)나라의 성인. 성은 희(姬), 이름은

단(旦).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주나라를 창업한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무왕을

돕고, 무왕이 죽자 왕권을 계승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

을 보필하여 섭정을 맡아 반대 세력을 제압하고 화북지방 대부분을 주나라에

편입시켰으며 낙양(洛陽) 인근에 동도(東都)를 건설하였다. 확보한 영역에 새로

운 행정제도를 시행하여 문물과 제도를 확고히 하였다. 이때 확립한 행정조직

은 후대 중국 왕조들의 모범이 되었고, 후에 공자에 의해 성인으로 존경받았다.

140)『논어』「술이(述而)」제5장.

141) 내생(來生):죽은 다음에 오는 생.

8. 화장에 대해

묻는다. 돌아가신 분을 보내는 것은 인간 세상의 큰 일[大事]이다. 그러

므로 부모의 상(喪)을 당한 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는 안 된다. 성인

께서 “후하게 장사지내고 먼 조상을 추모하라”142)고 교훈을 내리신 것이

바로 그 중요함을 보이신 것이다. 후하게 장사지내라고 하신 까닭은 마치

나무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열매가 많이 열리고 뿌리가 얕으

면 가지와 잎이 시들어 열매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 부모가 자식에 대

한 것은 나무가 열매에 대한 것과 같으며, 자식이 부모에 대한 것은 열매가

나무에 대한 것과 같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에게 전하는 것은 나무가 열매

에게 전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상을 당한 사람

은 땅을 가려서 적당한 곳을 얻고, 구덩이를 깊이 파서 장례를 후하게 치르

며, 숲을 무성하게 조성하고 물을 저장해야 한다. 녹음(綠陰)을 짙게 하여

기운이 축적되게 하며, 땅을 두텁게 하여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손들이 번창하여 그 제사가 면면히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

런데 지금 불교는 이러한 이치는 돌아보지 않고 제멋대로 화장(火葬)143)

는 법을 설치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후손을 없애 제사가 끊어지도록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부모를 화장할 때에 자식 된 마음으로

어찌 차마 볼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미혹하게 하니 법도를 크

게 어긴 것[過犯]144)이 하늘에 가득한 것이다.

曰, 夫送死, 人間世之大事者也. 故丁父母之喪者, 不可不以爲

重也. 聖人垂“厚葬追遠”之訓, 所以示其重也. 所以令厚葬者,

如木根深則枝葉扶疎而實多, 根淺則枝葉夭閼而無實, 夫父母

之於子也, 如木之於實也, 子之於父母, 猶實之於木也. 故云,

“父之傳於子, 猶木之傳於實也,” 由是遇其喪者, 要須擇其地

得其宜, 深其穴厚其葬, 茂其林貯其水. 令陰深而畜氣, 土厚而

不澆. 致令子孫繁衍, 而闕祀綿綿. 今浮圖, 不顧此理而妄設火

化之法, 令人無後而絶嗣, 豈非過也? 況方其火化之際, 人子

之心, 其可忍視乎? 以是惑人, 過犯漫天.

142)『논어』「학이(學而)」제9장에서 “상(喪)을 당하여 삼가 정성을 다하고 제사에서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고 하

였다. 예로부터 유교에서는 장례를 지낼 때 정성을 다해 후하게 지내는 것을 미

덕으로 삼았다.

143) 화장(火葬): agnidagdha. 본래 인도에서 가장 중시하던 장법. 다비( jhāpita)라

고도 하니, 다비는 태운다는 뜻이다. 유체를 태워 남은 유골을 땅에 묻는 장법이

다. 세존 또한 입적 후에 화장하여 사리를 모아 추앙하였으므로 불교의 대표적

인 방법으로 전승되어 동아시아에 이르러서도 불교의 장법으로 지켜졌다.

144) 과범(過犯)은 지나치게 법도를 어긴 것을 말함.

답한다. 무릇 사람은 육체가 있고 정신이 있다. 육체는 비유하자면 집과

같고 정신은 비유하자면 주인과 같아서, 육체가 죽으면 그 정신이 떠나는

것은 집이 무너지면 주인이 머물 수 없는 것과 같다. 집은 흙과 나무로 만

들고 온갖 속세의 것으로 장식하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의 소유로 여

기고 그 속에 빠져 탐착하면서 그것의 비루함을 알지 못한다. 비록 그것

이 무너지는 것을 보더라도 단번에 잊지 못하여 멀리 떠나지 못하는 것이

다. 몸은 물과 흙으로 그 육체[形]를 구성하고, 불과 바람으로 그 바탕[質]

을 유지하고 있다. 그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을 담고 있어서 깨끗하지 못한

것이 가득 차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금이나 옥보다 더 소중하게 보호

하니 어찌 싫어하여 버리려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겠는가? 죽음에 이

르러서는 불과 바람이 먼저 없어지고 흙과 물만 그대로 남아 있는데, 예전

에 그 흙과 물에게 사랑받고 보호받았으므로 단번에 잊어버리고 걸림 없

이 떠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이 그 흙과 물을 불태워 왕생(往

生)145)하는 길을 가리켜 주면 그 정신은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게 되어 가

볍고 맑은 구름처럼 깨끗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부처님 세존(世尊)께서는 부친의 상을 당했을 때 몸소 향로를 잡으셨고, 사

천왕이 관(棺)을 들고 나한들이 땔감을 모아 화장146)하여, 부친의 정신이

깨끗이 올라가 천상에 태어나게 하셨다.147) 황벽 희운(黃蘗希運)148)선사는

어머니를 천도할 적에 마음으로 품었던 생각을 부처님께 말씀드린 뒤에 횃

불을 강에 던지자, 어머니가 불꽃 속에서 남자의 몸으로 변하여 큰 광명을

타고 천궁(天宮)으로 올라갔다. 이때 강가의 양쪽 언덕에 있던 사람들이 모

두 그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겼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강 이름이 ‘복천(福

川)’이었는데 관청에서 ‘대의도(大義渡)’로 바꾸었다.149)

이로써 보건대, 화장하는 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러움을 제거하여 깨끗

함으로 나아가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멀리 노닐게 하니, 천도(薦度)하여

왕생(往生)하는 것을 돕는 방도이고 대대로 전할 큰 법도가 될 만하다. 만

일 화장을 차마 못할 짓이라고 한다면 구덩이를 파서 묻는 것은 차마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지금 큰 산의 기슭과 넓은 들판에 있는 많은 옛 무덤들

이 모두 농부의 경작지가 되어 해골이 여기저기 흩어져 햇볕에 쪼이고 바

람에 뒹굴지만 아무도 돌보고 보살피는 사람이 없다. 그 무덤들도 처음에

는 비석을 세우고 소나무를 심어서 그 땅을 장엄하여 이로써 자손들이 번

창하고 제사가 면면히 이어지도록 도모하지 않은 것이 없었겠지만, 지금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러나 살아생전에 5온(五蘊)150)이 모두 공

(空)하고 6근(六根)151)이 청정(淸淨)하여 하나의 망념도 일으키지 않는 사

람이라면 비록 육체는 우주 안에 있으나 정신은 항상 세상 밖에 깃들기 때

문에 허공처럼 맑고 맑으며 물처럼 깊고 깨끗하여 오히려 있는 몸도 허깨

비로 여긴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러서는 마치 혹을 떼어내고 때를 제거하

듯 하고, 결박을 풀고 형틀을 벗어버리듯 하며, 새가 새장을 벗어나고 말이

우리를 벗어나듯이 하여, 드넓은 곳을 끝없이 소요자적(逍遙自適)하고, 가

고 머무름에 걸림이 없으니, 그 육체의 흙과 물에 어찌 미련을 두겠는가?

이런 사람의 경지에서는 수장(水葬)152)을 하여도 좋고 풍장(風葬)153)을 하

여도 좋으며, 석굴을 파서 안장하건 땅을 파서 묻건, 심지어 들불에 태우

고 벌레와 개미의 먹이가 되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 방법에 안돨 것이 없다.

그러므로 달마(達摩)는 웅이산(熊耳山)에서 장사지냈고,154) 육조(六祖)는

전신(全身)을 세상에 남겨 두었으며,155) 보화(普化)는 요령을 흔들며 하늘

로 갔고,156) 청량(淸凉)은 ‘산 속의 짐승에게 먹이로 주라’고 명하였던 것

이다.157) 이는 모두 통달한 사람들이 세상에 남긴 고상한 자취이며, 자신을

잊은 훌륭한 자취이다.

이런 분들 외에는 육체를 잊은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

에 반드시 화장을 한 뒤에야 그 정신이 깨끗이 올라가 막힘이 없게 되는 것

이다. 어떤 사람이 타향에서 객사하여 그 유골을 거두어 화장해 주었더니,

그 후에 덕망(德望)이 세상에 높아지고 총망(寵望)158)이 자기에게 돌아와

자손이 번창하여 제사가 면면히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화장하면 이익

이 후손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적인 근심이 너무 지나친

것이니, 부디 터무니없는 말로써 부질없이 명귀(冥龜)159)의 과보를 초래하

지 말지어다.

曰, 夫人者, 有形焉, 有神焉. 形比則如屋, 神比則如主, 形謝

而其神往焉, 猶屋倒而主不得住焉. 夫屋也, 成以土木, 嚴以雜

穢, 人以爲己有, 貪湎其中而不知其陋也. 雖見其倒, 未能頓

忘, 而不能遠去也. 夫身也, 水土以搆其形, 火風以持其質. 中

含雜穢, 不淨流溢, 人之護之, 甚於金玉, 何嘗有厭離之情也?

及其死也, 火風先去, 而地水猶存, 其爲地水, 前所愛護故, 不

能頓忘而隨往無碍也. 智者, 焚其地水, 而指其往生之路, 其

神, 更無稽滯之情, 卽同膠葛而淸昇也. 由是, 吾佛世尊, 丁父

之喪, 躬自執爐, 四天擧棺, 羅漢採薪而闍維, 令其父之神, 淸

昇而生天. 黃蘗運公之度母也, 陳懷白佛, 隔江擲炬, 其母於火

焰中, 化爲男子, 身乘大光明, 上昇天宮, 兩岸皆見, 咸以爲奇.

江名福川, 官司改福川爲大義渡. 以是觀之, 則火化之法, 令人

去穢而就淨, 神淸而遐擧, 堪爲薦往之助道, 垂世之洪規. 若以

火化爲不忍, 方其穴土而埋之, 其可忍也. 今有大山之麓, 大野

之原, 多有古墳, 盡爲農者之所耕, 頭骨星散, 日煮風飄, 無人

顧護. 其初莫不立石栽松以嚴其地, 以圖子孫之繁衍, 厥祀之

綿綿, 今何至此乎? 但生前五蘊皆空, 六根淸淨, 一念無生者,

則雖寓形宇內而常棲神於物表故, 澄澄合空, 湛湛如水, 猶以

有身爲幻也. 由是, 及其化也, 如決疣去垢, 如解懸脫枷, 如鳥

出籠, 如馬出閑, 洋洋乎于于乎, 逍遙自適也, 去留無碍也, 其

於地水, 安有稽滯之情哉. 此人分上, 沈之可也, 露之可也, 鑿

石而藏之, 穴土而坑之, 以至爲野火之所燒, 蟲蟻之所食, 無所

施而不可也. 故達磨葬於熊耳, 六祖全身留世, 普化搖鈴騰去,

淸凉命飴林獸. 此皆達人遺世之高蹤, 忘我之勝迹者也. 自餘,

則未能忘形無我故, 須經火化然後, 其神淸昇而無滯也. 有人

客死他鄕, 收其骨而火之, 而其後德望高於世, 寵望歸於己, 子

孫振振而厥祀綿綿. 謂之“火化而利不及後”者, 私憂過計之甚

也, 毋以無稽之談, 枉招冥龜之報.

145) 왕생(往生):본래는 목숨을 마칠 때 다른 세계로 가는 것. 삼계육도(三界六道)와

제불의 정토(淨土)에 가는 것을 모두 말한다. 그러나 미타와 미륵정토 신앙이

보편화된 이후에는 염불하거나 갖가지 공덕을 쌓아 아미타불의 극락(極樂)정

토나 미륵의 도솔(兜率)정토에 가는 것을 흔히 왕생이라 부른다. 또 겨웅에 따

라서는 약사여래의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 석가모니불의 영취산(靈鷲山), 관

음보살의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화엄경』에서 말하는 화장세계(華藏世界) 등

여러 세계로의 왕생을 말하기도 한다.

146) 원문의 사유(闍維)는 다비(茶毘) 곧 화장을 말함. jhāpita.

147) 이에 대한 이야기는『석씨요람(釋氏要覽)』 권3에 나와 있다. “『정반왕열반경』에

말하기를, ‘정반왕이 임종하자 시체를 칠보관에 넣어 부처님과 난다가 그 앞에

공경히 서 있었고, 아난과 라후라가 그 뒤에 있었다. 부처님은 훗날 부모의 깊은

은혜를 갚지 않으려는 포악한 사람들이 있을 것을 염려하시고 모범을 보이시려

고 직접 관을 메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대천세계가 크게 진동하더니 사

천왕이 부처님을 대신해 관을 메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향로를 잡으시고 관 앞

에서 인도하여 가셨다.’라고 하였다.”(大T54 p.309a7~12 淨飯王涅槃經云, “淨飯王

命終, 殮以七寶棺, 佛與難陀, 在前恭肅而立, 阿難與羅睺羅在後. 佛念當來兇暴, 不報

父母深恩, 躬自擎棺. 爾時大千世界六種振動, 時四天王乃代佛擎棺. 佛乃執香爐, 在棺

前, 導引而行.”)

148) 황벽희운(黃蘗希運):?~850. 중국 당나라의 선승으로 복주(福州) 민현(閩縣) 출

신이며, 시호(諡號)는 단제(斷際)이다. 어려서 홍주(洪州)의 황벽산에서 출가하

였고,『백장청규(百丈淸規)』의 저자로 유명한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의 가

르침을 받았다. 그 후 종릉(鍾陵)의 용흥사(龍興寺)와 완릉(宛陵)의 개원사(開元

寺)에 머무르면서 찾아오는 학인들을 가르쳤고, 황벽산에서 입적하였다. 선사

의 제자로는 중국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인 임제의현(義玄)을 비롯하여

십여 명이 있다. 그리고 선사의 법어를 기록한 것으로『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릉록(宛陵錄)』이 남아 있다.

149)『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의「황벽단제선사(黃蘗斷際禪師)」에서 “스님의 속가

는 가난하였다. 그래서 노모가 황벽산에 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

아갔으나 스님이 만나주지 않았다. 노모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대의도에 이르러

발을 헛디뎌 넘어져 죽고 말았다. 그런데 후에 천상에 태어나 꿈에 스님에게 말

하기를 ‘내가 당시에 만약 그대의 쌀 한 톨이라도 받았더라면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니 어찌 오늘과 같은 날이 있었겠는가?’라 말하고 두 번 절하고 떠나갔다.”

(卍78 p.581a12~15. 師俗居貧, 母老, 聞師住黃蘗 , 特來相見, 師不顧. 母爲飢寒, 至大義

渡頭, 失脚攧死. 後果生天, 夢師曰, 我當時若受汝一粒米, 當墮地獄, 寧有今日? 再拜而

去.)라고 하였다.

150) 5온(五蘊):모든 존재를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 구

성 요소의 집합으로 설명한 것이다. 색온(色蘊)은 물질의 일반, 수온(受蘊)은 단

순한 감수작용, 상온(想蘊)은 마음에 떠오르는 표상작용, 행온(行蘊)은 의지적

인 마음작용, 식온(識薀)은 대상에 대한 식별작용을 말한다.

151) 6근(六根):인간의 신체적 감각기관을 여섯 가지로 나눈 것으로 육식(六識)의

근거가 된다. 그 여섯 가지 감가기관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

뜻[意]이다.

152) 수장(水葬):시신을 물속에 넣어 장사지내는 것을 말한다.

153) 풍장(風葬):시신을 들판에 내버려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

이다.

154)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불교에 귀의하여 선(禪)

에 통달하였다. 그 후 중국 양나라에 와서 혜가(慧可) 법을 전하여 중국 선종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달마의 입적과 관련하여 『불조통기(佛祖統紀)』 권29(大49

p.291b12~14)에서, 양나라 대통(大統) 원년(535)에 우문(禹門) 천성사(千聖寺)에

서 좌선한 채로 입적했는데, 문인들이 전신(全身)을 받들어 웅이산 정림사(定林

寺)에서 장사 지냈다고 하였다.

155) 육조(六祖)는 선종의 제6조인 혜능(慧能, 638~713)을 말한다. 혜능은 남종선의

시조이며 시호는 대감선사(大鑑禪師)이다. 저서로는『육조단경』이 있다. 그의

입적과 관련하여『불조통기』권29(大49 p.292b18)에서는 “제자들이 영체를 받들

어 조계산으로 돌아와 장사지냈다.”(弟子奉靈體, 反葬於曹溪.)라고만 되어 있는

데,『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5(大51 p.236c11~12)에서는 “철엽과 칠포로써

대사의 목을 단단히 보호하였다.”(以鐵葉漆布 固護師頸)라고 하였고, 몇 년 후 신

라 승려 김대비(金大悲)가 선사의 목을 훔치려다가 실패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한편 하동 쌍계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내용을 서술한「선종육조혜능대

사정상동래연기(禪宗六祖慧能大師頂相東來緣起)」에서는 삼법(三法)이라는 승려

가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왔다고 하였다.

156) 보화(普化, ?~860)는 선종의 일파인 보화종의 개조이다. 반산보적(盤山寶積)의

교화를 받고 깊이 깨달았다. 그 후 각지로 다니면서 요령을 흔들며 교화하였다

고 한다. 그의 입적과 관련하여『경덕전등록』권10(大51 p.280b12~c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관(棺)을 들고 사람들에게 내일 동문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동문에 모이자 다시 내일 남문

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몇몇 사람들이 남문에 모이자 다시 내일

서문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몇 사람만이 서문에 모여 있었는데

다시 내일 북문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4일 째 되는 날 북문에 사람들이 모

이지 않자 스스로 관 속에 들어가 입적하였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관 속에 사람은 없고 요령 소리만이 멀리 사라졌다고 한다.

157) 청량(淸凉):중국 화엄종의 제4조인 징관(澄觀, 738~839). 월주(越州) 산음인(山

陰人)으로 속성은 하후(夏侯)씨이고, 자는 대휴(大休)이며 호는 청량(淸涼)국사

이다. 11세에 보림사(寶林寺) 패(霈)선사에게 출가하여 계율과 삼론·기신·열

반·화엄·천태·선을 두루 익히고 유학에도 능통하였는데, 특히 법장의 화엄학

에 열중하였다. 776년에 오대산과 아미산을 순례하고 오대산 화엄사에서 방등

참법(方等懺法)을 수행하고 화엄종지를 펴서 이름을 드날렸다. 796년에 덕종의

부름으로 장안에 가서 계빈삼장과 함께『40화엄경』을 번역하고 종남산 초당사

(草堂寺)에서 이 신경의 소를 지었다. 덕종으로부터 청량국사의 호를 받고 순종

과 헌종도 국사로 봉하였다. 3조인 법장(法藏)의 직제자는 아니나 법장의 사상

을 계승하여 4법계론을 완성하고 선종의 발흥에 대응하여 화엄사상을 발전 대

성하였다.『화엄경소(華嚴經疏)』60권,『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90권,『화엄경

강요(華嚴經綱要)』3권,『오온관(五蘊觀)』,『삼성원융관문(三聖圓融觀門)』등 30

여종의 저술이 있다. 제자로는 종밀(宗密)을 비롯화여 승예(僧叡)·법인(法印)·

적광(寂光) 등 백 여 명이 있다.

158) 총망(寵望):임금에게 총애 받는 것을 말한다.

159) 명귀(冥龜):저승사자의 의미인 ‘명귀(冥鬼)’를 말하는 것 같다. 저승사자는 죽

은 사람의 영혼을 지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터무

니없는 말을 한 과보로 지옥에 가게 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의미로 사용

된 것으로 생각된다.

9. 삼세인과설에 대해

묻는다.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은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다만 태어나서 죽는 것만 말하였고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해서는 말

하지 않았다.160) 그런데 지금 불교는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해 말하고 태어나

서 죽는 사이를 아울러 삼세(三世)161)라고 말한다. 무릇 태어나기 전과 죽

은 뒤는 귀나 눈으로 듣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느 누가 직접 그것

을 보았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미혹시키니 어찌 거짓된 말이 아니겠

는가?

曰, 人之生死, 卽人之始終也. 故孔子只言生死而未嘗言其前

後也. 今浮圖言其前後, 而幷其死生之間, 謂之三世. 夫生前死

後, 非耳目之所接, 孰親視之乎. 以之惑人, 豈非誕也?

160)『논어』「술이」제20장에서 “공자는 괴이함과 용력과 패란의 일과 귀신의 일을

말씀하지 않으셨다.”(子不語怪力亂神)라고 하였다. 그리고「선진(先進)」 제11장

에서는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귀신에 대해서 묻었을 때 공자가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未能事人 焉能事鬼?)라고 대답하

였고, 바로 이어서 죽음에 대해서 물었을 때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

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대답하였다.

161) 삼세(三世):태어나가 이전의 전세와 현재의 살고 있는 현세, 그리고 죽고 난 이

후를 내세를 합쳐 삼세라 한다.

답한다.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은 낮과 밤이 교대로 뒤바뀌는 것과 같으

니, 이미 교대로 뒤바뀜이 있다면 그 이전과 이후는 저절로 성립된다. 낮은

지나간 밤으로써 이전을 삼고 다가오는 밤으로써 이후를 삼으며, 밤은 지

나간 낮으로써 이전을 삼고 다가오는 낮으로써 이후를 삼으니, 그 낮과 밤

을 아우르면 자연히 삼세가 성립된다. 낮과 밤이 이미 그러하다면 세월도

또한 그러하고, 세월이 이미 그러하다면 태어남과 죽음도 또한 그러하니,

“이미 지나간 것은 시작이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을 또

한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다.『주역』에 “지난 것을 밝히고 올 것을 살펴, 잃고

얻음의 과보를 밝힌다.”162)라고 하였으니, 지나가고 올 것을 말한 것이 어

찌 이전과 이후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삼세의 가르침을 거짓된 말이라

고 여기는 것은 생각이 부족한 것이다.

曰, 人之生死, 猶晝夜之代謝, 旣有代謝, 則自成前後. 晝則以

去夜爲前, 來夜爲後, 夜則以去日爲前, 來日爲後, 幷其晝夜,

自成三際. 晝夜旣爾, 歲月亦然, 歲月旣爾, 生死亦然,“ 已往

之無始, 未來之無窮,” 亦由是而可知也. 易云, “彰往察來, 明

失得之報,” 往來之言, 豈非所謂前後乎? 以三世之說爲誕者,

未之思也.

162)『주역전의』「계사하전」 제6장에서 “역은 지나간 것을 드러내고 미래를 살피며,

드러남을 은미하게 하고 그윽함을 밝히며, 명칭에 마땅하게 하고 사물을 분별

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말을 결단하니, 구비하다. 이름을 칭함은 작으나 유(類)

를 취함은 크며, 뜻이 원대하고 말이 문채나며, 말이 곡진하면서도 맞으며, 일이

진열되어 있으면서도 은미하니, 의심나는 것으로 인하여 백성의 행함을 구제하

여 득실의 응보를 밝힌 것이다.”(夫易, 彰往而察来微顕而闡幽, 開而當名, 辨物正言,

断辞則備矣. 其稱名也小, 其取類也大, 其旨遠, 其辞文, 其言曲而中, 其事肆而隠, 因弐

以済民行, 以明失得之報.)라고 하였다.

10. 이단설에 대해

묻는다. “천하의 사람들이 준수해야 할 것은 오제(五帝)163)와 삼왕(三

王)164)의 도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이신 공자께서 조술(祖述)165)하시고

여러 현인들이 서로 전하여 온갖 책에 실려 있으며 모든 나라에서 다 준수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도는 중국에서만 구할 수 있고, 오랑캐에게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부처는 서쪽 오랑캐 사람이니, 어떻게 그 도(道)를 중

국에 유행시키겠는가? 한(漢)나라 명제(明帝)166)가 그 법을 서역(西域)167)

에서 구했던 것은 우매해서이지 현명해서가 아니다.

曰, 天下之可遵者, 五帝三王之道而已. 故孔聖祖述, 而群賢相

傳, 載諸方策, 而列國皆遵. 此道可求之於中國, 不可求之於夷

狄也. 佛西夷之人也, 豈以其道流行於中國也? 漢明帝, 求其

法於西域, 昧也非明也.

163) 오제(五帝):고대 중국의 다섯 성군(聖君).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보통 황제(黃

帝, 또는 소호少昊)·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을 말한다. 오제는 실

제 역사가 아닌 전설상의 시대로서 이상적인 제왕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보다

앞서 삼황(三皇)을 들어 중국 전설상의 초기 역사를 삼황오제(三皇五帝)로 함께

드는 경우가 많다. 삼황도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

(黃帝)가 대표적이다. 복희는 사람들에게 팔괘와 그물, 요리법 등을 가르쳤고,

신농은 농사와 기상을, 황제는 수레와 문자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오제는 중국

고대의 세 임금인 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의 삼왕(三王)과 함께 중

국의 역사를 시작하고 빛낸 이상적인 제왕의 대명사로 불린다.

164) 삼왕(三王):중국 고대의 훌륭한 세 임금. 하(夏)나라의 우왕(禹王), 은(殷)나라

의 탕왕(湯王),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을 말하며, 이들을 삼대(三代)의 이상시

대로 여긴다. 황제(黃帝, 또는 소호少昊)·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

의 오제(五帝)와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제왕상으로 여긴다. 오제

는 실제 역사가 아닌 전설상의 시대이지만 삼왕은 전승은 역시 전설적이지만

역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시기로서, 동아시아권의 역대 제왕들이 추구한 이

상시대의 군주를 말한다. 삼왕은 혹은 오제 이전의 중국 전설상의 삼황(三皇)을

말하기도 하는데,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 등을 든다.

165) 조술(祖述):선인(先人)이 말한 바를 근본으로 하여 서술하고 밝힘.

166) 명제(明帝):중국 후한(後漢)의 제2대 황제(57~75)로서 성은 유(劉)이며 이름은

장(莊)이다. 재위 기간 중인 영평 10년(서기 67)에 불교를 서역에서 처음 받아들

인 것으로 전해 왔다. 명제가 영평 7년에 꿈에 금인(金人)이 전각 사이를 날아다

니는 꿈을 꾸었는데, 다음날 여러 신하에게 물었더니 그것이 부처라고 대답하

였다. 그래서 낭중 채음(蔡愔)을 천축에 파견하여 불법을 구하도록 했는데, 도중

에서 가섭마등(迦攝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두 승려를 만나 흰 말[白馬]에 경전

을 싣고 돌아왔다. 이 해가 영평 10년(67)이다. 그래서 이 해가 중국에 불교가 처

음 들어온 해라고 전승되어 왔다. 명제는 또 두 승려를 사신들이 묵는 홍려시(鴻

驢寺)에 머물게 하다가 이듬해 낙양 인근에 백마사(白馬寺)를 지어 주석하도록

하여 중국 최초의 절이 되었다고 한다.

167) 서역(西域):넓은 의미로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말하고, 좁은 의미로는 대개 지

금의 신강성 천산남로 지방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인도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서역은 일정한 범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불교사에서는 인도에서 육로로 불

교가 전해진 지역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불교와 관련 있는 나라들은 파미르

고원 서쪽의 월지국(투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북부), 안식국, 강거국(투르

키스탄 북부, 시베리아 남부), 간다라, 계빈국(카슈미르), 파미르고원 동쪽의 호탄,

쿠차, 카슈가르, 투르판 등을 말한다

답한다. 도가 있는 곳이 바로 사람들이 귀의해야 할 곳이다. 오제(五帝)

와 삼왕(三王)은 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귀의를 받아 중국168)

서 왕이 되었다. 부처님이 천축(天竺)169)에 태어나서 법륜왕(法輪王)170)

이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 천축을 가리켜 서쪽이라 하는 것은

천축에서 중국을 가리켜 동쪽이라 하는 것과 같다. 만일 천하의 한 가운

데를 정한다면 정오에 그림자가 없는 곳이 한 가운데가 되어야 할 것이

니, 천축이 바로 그곳이다. 부처님이 그 곳에서 태어나신 까닭이 어찌 그

곳이 천하의 한 가운데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171) 이른바 동서(東西)란

모두 이곳저곳의 시속(時俗)에 따라 서로 말하는 것일 뿐이지, 그 한 가운

데에 자리를 정하여 동서를 정한 것이 아니다. 만약 부처님을 오랑캐라고

하여 그 도를 따르지 않겠다면, 순임금은 동쪽 오랑캐 땅에서 태어났고

문왕(文王)은 서쪽 오랑캐 땅에서 태어났으니, 그들도 오랑캐이므로 그

들의 도를 따르지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 태어난 곳은 자취[迹]이고, 실

행한 것은 도이니, 다만 그 도가 따를 만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살필지언

정 태어난 자취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도가 있

는 곳이 바로 사람들이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춘추(春秋)』172)에서는 서

(徐)나라가 거(莒)나라를 정벌하여 오랑캐라 하였고,173) 적인(狄人)이 제

(齊)나라 사람들과 형(邢) 지방에서 동맹하여 중국이라 하였다.174) 서나

라가 중국에 있는데도 오랑캐라는 이름을 받은 것은 그 불의(不義)때문

이요, 적인(狄人)이 중국의 호칭을 받은 것은 그들에게 의(義)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칭찬하거나 폄하할 때에는 다만 그 사람의 현명함과 우

매함, 그 일의 옳음과 그름만을 보아야 한다. 어찌 태어난 곳으로써 그 사

람을 평가하겠는가? 만일 부처님의 자취를 보지 않고 실행한 도를 본다

면, 5계(五戒)와 10선(十善)의 도만으로도 오제와 삼왕의 도에 부끄러움

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4제(四諦)175), 12인연(十二因緣), 육바라밀(六波羅

蜜) 등의 법에 있어서이겠는가? 만일 오제와 삼왕이 부처님을 만났다면

반드시 합장하고 무릎을 꿇어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니, 명제가 불법을 구

한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曰,“ 道之所存, 是人之所歸也. 五帝三王, 旣道之所存故, 爲

人之所歸, 而王於華夏也. 佛之興天竺, 而爲法輪王, 亦復如

是. 華夏之指天竺爲西, 猶天竺之指華夏爲東也. 若取天下之

大中, 則當午無影爲中, 天竺乃爾. 佛之所以示生於彼者, 豈非

以其天下之大中也? 所謂東西者, 蓋彼此時俗之相稱爾, 非占

其中而定其東西也. 苟以佛爲夷而不遵其道, 則舜生於東夷,

文王生於西夷, 可夷其人而不遵其道乎? 所出迹也, 所行道也,

但觀其道之可遵不可遵也, 不可拘其所出之迹也. 前不云乎?

道之所存, 是人之所歸也. 春秋,‘ 以徐伐莒而夷狄之, 狄人與

齊人盟于邢而中國之.’ 夫徐以中國而受夷狄之名, 以其不義

也, 狄人受中國之稱, 以其有義也. 凡於褒貶之間, 但觀人之明

昧, 事之當否. 豈以其所出, 而議其人乎? 如不求其迹, 而求其

所行之道, 則但五戒十善之道, 可無愧於五帝三王之道矣. 況

諦緣六度等法乎? 若使五帝三王遇之, 則必合掌跪膝而聽受

矣, 明帝之求, 不其宜乎?

168) 원문의 화하(華夏)는 중국을 말함. 상고시대에 화하족이 황하(黃河) 유역 일대

에 건국하여 천하의 중심에 위치하였다 하여 중국(中國)이라 하였다. 그래서 처

음에는 중원(中原) 지방을 일컬었으나, 후에 중국 영토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고,

화하는 중국의 옛 명칭이 되었다.

169) 천축(天竺):인도의 다른 호칭이다. 당나라 때는 인도를 오천축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인도 전 지역과 파키스탄 일부 지역이 다섯으로 나뉘어 중천축·동천

축·남천축·서천축·북천축으로 불렸다. 신라 혜초(慧超)의 여행기 『왕오천축

국전(往五天竺國傳)』이나 당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가 광범위

한 인도 지역을 순례하고 천축 여행기를 남긴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70) 법륜왕(法輪王):불교에서는 속세의 나라를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임금을 전륜

성왕(轉輪聖王)이라 하고, 법계의 세계를 다스리는 부처님을 법륜왕이라고 부

른다.

171) 송나라 설숭(契嵩)은 “저곳에서 출생하고 이곳에서 출생하지 않은 것은 왜인

가? 저곳도 한 천하의 대중이기 때문이다.”(『심진문집』권2, 大52 p.659b19~20. 出

於彼而不出於此何也? 以彼一天下之大中也.)라고 하였다.

172)『춘추(春秋)』:중국 노(魯)나라에 전해오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공자가 B.C

722년(은공 원년)에서부터 B.C 481년(애공 14)에 이르는 사이의 중요한 사건을

편년체로 엮은 사서(史書)이다. 중국 최초의 편년사이며 간략한 서술을 특징으

로 하고 있다.

173)『춘추』문공(文公) 7년에 “겨울에 서나라가 거나라를 토벌하였다.”(冬 徐伐莒)라

고 하였는데, 이 기록에서 토벌군의 장수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서나라가 오랑

캐이기 때문이다.(정태현 역주, 『춘추좌씨전』 2, 전통문화연구회, 2004, p.362 참조)

174)『춘추』희공(僖公) 20년에 “가을에 제나라 사람들이 적나라 사람들과 형나라에

서 결맹하였다.”(齊人狄人盟于邢)라고 하였다.

175) 4제(四諦):4성제(四聖諦)의 줄임말이다. 사성제는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이다.

주) 15참조.

11. 불교 유해론에 대해

묻는다. 부처의 법이 중국에 들어온 이래로 세상은 점점 야박해지고 기

근(飢饉)이 자주 닥쳐, 많은 백성들이 살 곳을 잃고, 전염병은 날로 심해지

니, 그 해로움이 크지 않은가?

曰, 自佛法入中國以來, 世漸澆漓, 飢饉荐臻, 民多失所, 爲癘

日甚, 其爲害也, 不亦大哉?

답한다. 요(堯)임금176)과 순(舜)임금177), 우왕(禹王)178)과 탕왕(湯王)179)

은 천하의 대성인이었으나 홍수와 가뭄의 재앙을 면하지 못하였고,180)

(桀) 주(紂) 유(幽) 려(厲)는 천하(天下)의 주인이었으나 독부(獨夫)181)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182) 주(周)나라가 쇠퇴하자 인민(人民)들이 궁핍해

졌고,183) 진(秦)나라가 일어나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졌다.184) 공자 같은

큰 성인도 양식이 떨어짐을 면하지 못하였고,185) 안회(顔回) 같은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도 요절을 면하지 못했으며,186) 원헌(原憲) 같은 큰 현인도

집안이 가난함을 면하지 못하였다.187) 이것도 또한 부처님 때문에 그런 것

인가? 부처님이 천축에 태어난 것은 바로 주(周)나라 소왕(昭王) 때에 해당

하고,188) 한(漢)나라 명제 때에 이르러서야 부처님의 법이 동쪽 땅으로 흘

러들어 왔으니,189) 하(夏)·은(殷)·주(周) 3대190) 이전에는 불법이 아직 흥

기하지 않았고 공자와 안회 때에도 그 이름이 아직 중국에 알려지지 않았

다. 그러므로 그 때에 재앙이 없고 기근도 없었어야 했는데, 요임금 때는 왜

9년의 홍수가 있었고 탕임금 때는 왜 7년의 가뭄이 있었으며, 공자와 안회

는 왜 궁핍했고, 원헌은 왜 가난했는가?

당나라 태종이 위징(魏徵)191), 이순풍(李淳風)192) 등과 마음을 모으고 덕

을 함께하여 천하를 통일하자, 온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사방의 온 나라가

찾아와 축하 해주었다. 그때 신라의 진덕왕(眞德王, 647~654)이 직접 태평

가(太平歌)193)를 짓고 비단에 수를 놓아 바쳤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당나라 나라를194) 여시니

드높은 황제의 법도 창성하도다.

전쟁을 그치어 천하를 평정하고

문치를 닦아서 백왕을 계승하였네.

깊은 인덕이 일월과 조화를 이루고

백성을 사랑함은 요순을 능가하네.

(중략)195)

산악의 정기가 보필할 재상을 내리고

임금은 어질고 성실한 인재를 쓰도다.

오제와 삼왕의 덕을 하나로 합쳤으니

우리 당나라 황제의 가문이 찬란하도다.

또 신라 태종(太宗) 김춘추공(金春秋公)196)은 김유신(金庾信)197)과 마음

을 같이하고 힘을 다하여, 삼국을 통일하여 사직(社稷)에 큰 공을 세웠다.

그 당시 해마다 풍년이 들어 곡식 값이 싸서〈베 한 필의 값이 벼 30석이었다〉

백성들은 즐겁고 근심이 없어져 모두들 성인의 시대라고 하였다. 만약 불법

이 나라를 태평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때는 불법이 성행했던 시기에 해당

하니, 어찌하여 나라의 태평함이 그토록 지극함에 이르렀겠는가?

조주 종심(趙州從稔)선사198)는 700갑자(甲子)를 살았고,199) 오대산(五

臺山)의 개(開)법사200)는 300여 년을 살았다. 만일 불법이 사람을 요절하

게 한다면, 저 사람들은 불자인데 왜 그 수명이 이처럼 장수(長壽)하였겠는

가? 예나 지금이나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우며 오래살고 단명하며 괴롭고

즐거운 것은 시운(時運)이 성(盛)하고 쇠(衰)하는 것과 큰 관계가 있으며,

또한 이것은 중생들이 업으로 감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태평하지

않고 백성이 편안히 살지 못한다고 해서 불법에게 허물을 돌린다면 이 또

한 생각이 부족한 것이다.

曰, 堯舜禹湯, 以天下之大聖, 而尙未免水旱之災, 桀紂幽厲,

以天下之人主, 而未免爲獨夫. 周衰而人民已匱, 秦作而天下

大亂. 以孔子之大聖, 而未免於絶粮, 顔回之亞聖, 而未免於夭

折, 原憲之大賢, 而未免於家貧. 此亦以佛而然歟? 佛興天竺,

正當周昭, 至漢明帝, 法流東土, 三代以前, 佛未之作, 孔顔之

時, 名亦未聞. 彼時當無災孼, 亦無飢饉, 堯何有九年之水, 湯

何有七年之旱, 孔顔何窮, 而原憲何貧乎? 唐太宗, 與魏徵李

淳風等, 協心同德, 混一天下, 兆民咸熙, 率土來賀. 新羅眞德

王, 自製太平歌, 織錦爲文而獻之. 其略曰, 大唐開洪業, 巍巍

皇猷昌, 止戈戎威定, 修文繼百王, 深仁諧日月, 撫群邁虞唐.

以至云, 維岳降宰輔, 惟帝任忠良, 五三成一德, 昭我唐家皇.

又新羅太宗春秋公, 與金庾信, 同心勠力, 一統三韓, 有大功於

社稷. 彼時年豊穀賤〈一疋布價租三十碩〉, 民樂無憂, 皆謂之聖代.

若是佛法, 使不昇平, 此當佛法盛行之時也, 何其昇平, 至於

如是之極乎? 趙州稔禪師, 生經七百甲子, 五臺開法師, 生存

三百餘載. 若是佛法, 令人夭折, 彼旣佛子, 何其命也, 至於如

是之壽乎? 古今治亂脩短苦樂, 大關時運之盛衰, 亦是衆生之

業感. 以世不昇平, 民不聊生, 歸咎於佛法, 亦未之思也.

176) 요(堯)임금:중국 신화에 나오는 이상적인 제왕. 호가 도당(陶唐)씨여서 당뇨

(唐堯)라고도 한다. 요임금은 어질고 덕망있는 사람들을 초빙하여 국정을 보

좌케 하였다. 후직(后稷)은 농사(農師), 수는 공사(工師), 고요(皐陶)는 법관, 기

(夔)는 악관(樂官), 순(舜)은 교육의 사도(司徒), 설(契)은 군대의 사마(司馬)를

각각 맡아 천하는 태평하고 비바람도 순조로와 백성들은 편안하게 생업에 종

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특히 후계자를 선정하는데 자신의 능력이 뒤지는

아들 대신 능력이 뛰어난 순(舜)에게 계승하여 선양(禪讓)의 미덕을 이루었다.

이런 치세를 기려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요순시절을 꼽는다. 이는 공자

에 의해 덕(德)과 정의(正義) 및 이타적인 희생의 영원한 본보기로 찬양된 결과

이다.

177) 순(舜)임금: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제왕. 성은 우(虞), 이름은 중화(重華). 장님

인 아버지와 계모 등의 횡포를 참으며 효도를 다하였다. 30세에 천거되어 요임

금을 섬기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여 신임을 얻어 50세에 요의 섭정을 하였다.

요가 죽은 뒤에 인심이 순에게 기울어 61세로 제위에 올랐다. 천하에 덕을 편 성

인으로 제위에 오른 지 39년이 되던 해에 남방으로 순수(巡狩)하던 중에 죽었다

고 한다. 왕위를 아들이 아닌 능력있는 우(禹)에게 계승시켰다. 유가에서는 요·

순·우 3대를 선위(禪位)에 의해 왕위가 계승된 이상적인 시대로 평한다. 임금이

되기 전에 밭을 가니 사람들이 밭두둑을 양보하고, 고기를 잡으니 자리를 양보

하고, 그릇을 구우니 그릇이 우그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자는 그를 완전함과

찬연히 빛나는 덕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전대의 전설적인 제왕인 요(堯)와 나란

히 요순시대로 칭송된다.

178) 우왕(禹王):하(夏)나라의 시조. 주109) 참조

179) 탕왕(湯王):성은 자(子), 이름은 리(履), 상(商) 부락의 장. 하(夏)왕조 말기에 상

족(商族)이 점점 강성해지고 하의 걸왕(桀王)이 폭정으로 민심을 잃자 탕은 하

를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였다. 탕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걸왕은 그를 하대(夏台)

에 가두었고, 상족은 측신들을 매수하여 탕을 석방시켰다. 탕은 어진 덕망으로

민심을 얻어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이윤의 도움을 받아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

렸다가 하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웠다. 탕은 세금을 줄이고 백성

들을 위로하면서 나라를 잘 다스려, 온후하고 관대한 왕으로 칭송받는다.

180)『서경』「우서(虞書)」요전(堯典) 제11장에서는 “요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아! 사

악아, 넘실대는 홍수가 바야흐로 폐해를 끼쳐서 가득히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어 질펀하게 하늘까지 번져서 백성들이 한탄하고 있으니, 능히 다스릴 만한

자가 있으면 다스리게 하리라.’고 하였다.”(帝曰, 咨四岳, 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

襄陵, 浩浩滔天, 下民其咨, 有能俾乂.)라고 하였으며,「우서」대우모(大禹謨) 제14

장에서는 “순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이리 오너라. 우야! 홍수가 나를 경계하였

는데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룸은 너의 어짐이로다.”(帝曰, 來禹, 洚水儆予, 成允成

功, 惟汝賢.)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홍수 등 천재지변을 짐작할 수

있다.

181) 독부(獨夫):포악한 정치를 하여 국민에게 외면을 당한 군주.

182) 걸(桀)왕은 하(夏)나라 마지막 임금이고, 주(紂)왕은 은(殷)나라 마지막 왕이며,

여(厲)왕은 주(周)나라 제10대 왕이고, 유(幽)왕은 주(周)나라 제12대 왕이다. 이

네 임금은 중국 역사에서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걸왕은 은나라의 탕

왕(湯王)에게 쫓겨나 죽었고, 주왕은 주나라의 무왕(武王)에게 공격을 받고 자

살하였다. 여왕은 포악한 정치를 하다가 백성들에게 쫓겨났고, 유왕은 향락과

주색에 빠져 백성을 돌보지 않다가 서쪽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죽었다.

183)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가 되었다. 춘추시대(기원전,

722~481)에는 제(齊), 진(晋), 초(楚), 오(吳), 월(越)나라가 번갈아 가며 패자(覇

者)가 되었고, 전국시대(기원전, 403~221)에는 진(秦), 조(趙), 위(魏), 한(韓), 제

(齊), 연(燕), 초(楚)나라가 대립하며 전쟁하였다. 이런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이

궁핍해졌다.

184) 진(秦)나라가 기원전 221년에 전국을 통일하여 기원전 206년에 멸망할 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진나라가 멸망한 후에 한(漢)나라의 유방(劉

邦)과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격돌하여 한나라가 승리하여 전국을 통일하

였다.

185)『논어』「위령공(衛靈公)」제1장에서 “(공자가) 진나라에 있을 때에 양식이 떨어

지니, 따르는 자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라고

하였다.

186)『논어』「선진」제8장에 안연이 요절하자 공자가 “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

구나!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噫, 天喪予! 天喪予!)라고 하였다.

187)『장자(莊子)』「잡편(雜篇)」양왕(讓王)에서 “원헌이 노나라에 있을 때에 사방 한

칸의 좁은 집에 잡초로 지붕을 덮고 쑥대로 문을 만들었는데 완전치도 못했다.

뽕나무로 지도리를 만들고 깨진 독으로 창을 만든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 창

은 누더기로 가리고 있었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는 습하였는데 거기에 단

정히 앉아 거문고를 뜯고 있었다.”(原憲居魯, 環堵之室, 茨以生草, 蓬戶不完. 桑以

爲樞, 而甕牖二室, 褐以爲塞, 上漏下溼, 匡坐而弦.)라고 하였다.

188) 부처님의 탄생과 입멸에 대해서는 경전에 따라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런데 동

아시아 불교권에서는 부처님이 탄생하신 해를 주(周)나라 소왕(昭王) 때라고 믿

어 왔다. 우리나라도 이를 따라 삼국시대부터 주나라 소왕 24년(갑인년, 서기전

1027년)을 전통적으로 불기(佛紀) 연대로 사용해 왔다. 이는『역대삼보기(歷代三

寶紀)』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의연(義淵)스

님을 중국 북제(北齊)에 보내 부처님의 탄생 등에 대해 질문하자 당시 대통(大

統)이던 법상(法上) 스님이 주나라 소왕 때에 부처님이 탄생하였다고 답하였다

고 하였다.(大49 p.23a17) 이로부터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불교 국가는 전통적으

로 불기(佛紀) 연대를 주나라 소왕 24년 갑인년(甲寅年)의 서기전 1027년으로

계산하였다.

189)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해진 것은 여러 설이 있지만 후한(後漢) 명제(明帝) 영평

(永平) 10년(서기 67)이라는 견해가 전통적으로 통용되어 왔다. 이보다 3년 전에

황제가 꿈에 목에서 빛이 나는 장륙의 금인(金人)을 보고 무엇이내고 물었더니

주 소왕 때 서방에 탄생한 성인이라고 답하여 채음(蔡愔)과 진경(秦景) 등을 보

내 서역에 불도를 구하러 보냈다. 그리고 이 해에 채음 등이 대월지국에서 가섭

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을 만나 불상과 경전을 싣고 낙양에 돌아왔다.

이두 승려를 만나보고 홍려시(鴻臚寺)에 머물게 하고, 이듬해에 백마사(白馬寺)

를 지었다는 것이다.

190) 3대:하(夏)·은(殷)·주(周).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백성들이 평안하고 임금은

덕으로 다스리는 이상시대. 요순시대와 함께 요순삼대로 불리며 성군으로 칭송

되는 이들이 다스리던 이상적인 시대를 말한다.

191) 위징(魏徵):580~643. 자는 현성(玄成),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으로 곡성(曲城,

지금의 산동성) 출신이다. 수나라 말 혼란기에 이밀(李密)의 군대에 참가하였으

나 곧 당나라 고조(高祖)에게 귀순하였다. 고조의 후계 싸움에서 장자 이건성

(李建成)의 측근이 되어 이세민(李世民)과 대립하였으나 패배하였다. 그러나 태

종이 된 이세민은 위징의 인격과 능력을 인정하여 등용하였고, 위징은 태종을

도와 중국 통일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 이순풍(李淳風):602~670. 당나라의 천문학자이며 수학자로서 어려서부터 여

러 서적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는 혼천황도동의(渾天黃道銅儀)를 제작하여 태양

과 달,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였고,『진서(晋書)』와『수서(隋書)』를 편찬할 때

「천문(天文)」,「율력(律曆 )」,「오행(五行)」등의 지(志)를 찬술하였다. 또「인덕

력(麟德曆)」을 만들어 曆算(역산)의 방법으로 정삭법(定朔法)을 채용하였다. 저

서에는 역대의 혼의(渾儀)를 해설한『법상지(法象志)』와『전장문물지(典章文物

志)』등이 있다.

193) 태평가(太平歌):『삼국사기(三國史記)』와『삼국유사(三國遺事)』,『당서(唐書)』

등의 당시 사서와『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고,『동문선(東文選)』이나『동사강

목(東史綱目)』등 후대 문집이나 사서에도 실렸다.

194) 원문의 홍업(洪業)은 제왕의 큰 사업, 곧 나라를 새로 세움을 말함.

195) 원문은 4구 다음에 2구를 생략하고 7~8구가 인용되었고, 다시 마지막 4구를 인

용하였다. 5구부터 중간 생략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統天崇雨施 하늘을 본받으니 기후가 순조롭고

理物體含章 만물을 다스림에 저마다 빛나도다

(深仁諧日月 깊은 인덕이 일월과 조화를 이루고

撫群邁虞唐 백성을 사랑함은 요순을 능가하네.)

幡旗何赫赫 깃발은 어찌 저리 붉게 빛나며

鉦鼓何鍠鍠 군악 소리는 어찌 그리 우렁찬가

外夷違命者 명을 어기는 외방 오랑캐는

剪覆被天殃 칼날에 엎어져 천벌을 받으리.

淳風凝幽顯 순박한 풍속 곳곳에 드러나니

遐邇競呈祥 원근에서 다투어 상서를 바치는구나

四時和玉燭 사시절 날씨 화창하고 밝게 빛나고

七曜巡萬方 해와 달과 오성은 만방을 두루 도누나.

196) 김춘추공(金春秋公):604~661. 신라 제29대 왕. 재위기간 654~661년. 생존기간

603~661년. 아버지는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金龍春)이고 어머니는 진평왕

의 딸인 천명(天明)부인이다. 왕비는 김서현(金舒玄)의 딸로서 김유신(金庾信)

의 누이인 문명(文明)왕후이고, 그 사이에 문무왕과 김인문(金仁問) 등 여러 아

들을 낳았다. 신라 사회가 무열왕에서부터 ‘상대(上代)’에서 ‘중대(中代)’로 바뀐

다. 무열왕대에 백제를, 그리고 이어 문무왕대에 고구려를 패망시키고 삼국통

일을 이룩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후 대체로 무열왕의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여 중대의 번영기를 누리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197) 김유신(金庾信):595~673. 신라 때 장군. 본관 김해(金海).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

왕(金首露王)의 12대손. 아버지는 소판(蘇判)과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을 역임

한 서현(舒玄), 어머니는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이다. 진평왕 31년(609)

에 화랑이 되었고, 진평왕 51년(629)에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할 때 중

당(中幢)의 당주(幢主)로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선덕왕 11년(642) 압량주

(押梁州) 군주(軍主)가 되었고, 647년(진덕여왕 1) 1월 여왕을 폐하려고 난을 일

으킨 귀족회의 수뇌인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군을 토벌하였고, 648년에

는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이 되었다. 654년 3월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재상이던 알천(閼川)과 의논하여 김춘추(金春秋)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태

종 7년(660) 상대등에 올랐고, 신라 정예군 5만과 소정방(蘇定方)이 이끈 당나라

군 13만이 연합하여 사비성(泗沘城)을 함락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663년 8월

백제의 부흥군을 대파하였고, 668년 9월 나당 연합군이 평양을 칠 때 연합군 대

총관이 되었으나 왕명으로 금성에 남아 국방을 도맡았다. 고구려 정벌 직후 태

대각간(太大角干)의 최고직위에 오른 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함으로써 삼국통일을 완수하였다. 문무왕 13년(673)에

세상을 떠났다. 흥덕왕 10년(835)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되었다.

198) 조주 종심(趙州從稔)선사:778~897. 이름은 종심(從稔)이고, 시호는 진제(眞際)

이다. 그는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문하에 입문하여 남종선(南宗禪)의 법

맥을 이었다. 80세 때부터 조주성(趙州) 관음원(觀音院)에 머물렀기 때문에 호

를 조주(趙州)라 하였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시주를 권하는 일이 없어 고불(古

佛)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897년 120세로 입적하였으며, 제자들에게 사리를 줍

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특히 화두를 많이 남겨 후대 선승들의 수행

과제가 되었다.『벽암록(碧巖錄)』에 전하는 100개의 화두 중 12개가 조주의 것

으로, ‘무자(無字)’ 화두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가 유명하다.

199) 조주선사는 120년을 살았으므로 700갑자(4200년)를 살았다는 말은 맞지 않다.

그런데 700갑자를 살았다고 한 것은 탑기(塔記)의 내용 일부를 기록하고 있는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13에 의하면, “스님은 700갑자를 얻었을 것이다.”

(卍68 p.76a11. 師得七百甲子歟)라고 한 데서 기인한 것 같다. 한편 같은 책에 “스

님은 항상 말씀하시기를, ‘칠세의 아이가 나보다 낫다면 나는 그에게 물을 것이

요, 백세의 노인이 나보다 못하다면 나는 그를 가르칠 것이다.’”(卍68 p.76a23~24.

常自謂曰, 七歲童兒勝我者, 我卽問伊, 百歲老翁不及我者, 我卽敎他.)라고 하였다. 그

러므로 일곱 살과 백 살을 같은 나이로 여긴다는 말이 와전되어 700세를 산 것

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200) 개(開)법사: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12. 무위도식설에 대해

묻는다. 그대 불제자들은 편안하게 노는 백성이 되어 누에도 치지 않고

밭도 갈지 않고 남에게 옷과 음식을 받는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에 따른 괴

로움을 당하고 자주 궁핍하기에 이르니 그 폐단이 크지 않은가?”

曰, 爾浮圖輩, 逸爲遊民, 不蠶不耕, 而衣食於人. 故民被其惱,

屢至於窮, 其爲廢也, 不亦大哉?

답한다. 승려의 임무는 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있으니,

법을 널리 펴서 혜명(慧命)201)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선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승려의 임무이다. 만약 이

와 같은 것을 잘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봉양을 받아도 부끄러움이 없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그 사람의 죄이지 어찌 부처님의 잘못이겠는

가? 맹자가 말하기를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들어가면 부모에게 효

도하고 나가면 어른에게 공손하며 선왕(先王)의 도를 지켜 후세의 학자를

기다리지만, (일없이 음식을 얻어먹을 수 없다고 한다면) 그대에게서 음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목수나 수레 만드는 장인들은 높이면

서 인의(仁義)를 실천하는 사람은 가벼이 여기는가?”202)라고 하였다. 이 말

은 도를 지키고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남에게서 옷과 음식을 받아

도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가난하고 넉넉함[貧富]은 각자에게 타

고난 분수가 있으니, 전생에 선한 종자를 심은 사람은 비록 날마다 소비하

더라도 여유가 있겠지만, 전생에 선한 종자를 심지 않은 사람은 비록 날마

다 모으더라도 부족할 것이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부처님을 보고도 예배하지 않고 스님을 보면 욕하고 헐뜯으며, 평생토록

한 푼도 베풀지 않았지만 몸을 가릴 옷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다면, 이것도

승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가?

曰, 僧之任在弘法利生, 弘法而令慧命不斷, 利生而使人人自

善, 是僧之務也. 苟能如是, 則可無愧於爲人之所奉矣, 苟不能

然, 是其人之罪也, 豈佛之過歟. 孟子曰, “於此有人焉, 入則孝

出則悌, 守先王之道, 以待後之學者, 不得食於子. 子何尊梓匠

輪輿, 而輕爲仁義者哉?” 此豈非以守道利人而可衣食於人乎?

夫人之貧富, 各自有素分, 宿有善種者, 則雖日費而有餘, 宿無

善種者, 則雖日聚而不足. 世有人焉, 見佛不禮, 見僧呵毁, 終

身而不施一錢, 衣不蔽形, 食不充口, 此亦因僧而致然歟?

201) 혜명(慧命):불법(佛法)의 명맥(命脈)이라는 뜻이다.

202)『맹자』「등문공장하(滕文公章下)」. 이 부분은 팽경(彭更)이라는 사람이 맹자에

게 “선비가 일없이 음식을 얻어먹어서는 안 된다.”(士無事而食, 不可也.)라고 말

한 것에 대해 맹자가 대답한 것이다.

13. 불교 사태에 대해

묻는다. 청정하고 욕심을 줄여 법을 위해 몸을 버리며 많이 듣고 힘써 기

억하여 후배들을 맞아 인도하는 것은 진실로 불제자들이 행해야 할 것이

다. 그런데 지금의 불제자들은 그러한 행실을 닦지 않고 도리어 스승의 법

을 더럽히고 있으니, 사람들이 불도(佛道)에 대해 물으면 마치 담장을 대하

여 서있는 것 같고, 부처님을 싼 값에 팔아 제 몸을 기르는 밑천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저들이 살고 있는 곳을 농막(農幕)으로 쓰고 저들을 사람

답게 하여 사민(四民)에 충당하여 임금과 나라를 보필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曰, 淸淨寡欲, 爲法亡軀, 多聞强記, 接引後來, 固釋子之行也.

今浮圖輩, 不修其行, 反汚師法, 人問其道, 如立面墻, 裨販如

來, 資養身命. 廬其居人其人, 以充乎四民之數, 而令輔弼乎君

國, 可也.

답한다. 기린과 난새와 봉황은 모여서 무리 짓지 않고, 한 척이나 되는

옥과 한 마디나 되는 구슬은 시장에서 구할 수 없다. 공자의 문하(門下)

에 3천 명이나 있었지만 철인(哲人)으로 불린 사람은 열 명뿐이요, 부처님

의 바다 같은 회상(會上)203)에 제일(第一)이라 불린 사람도 열 명에 불과하

다. 하물며 지금은 성인께서 떠나신지 더욱 오래되어 근기가 미약하고 열

등한데, 어떻게 사람마다 가섭(迦葉)204)의 청정한 행실[淨行]이나 아난(阿

難)205)의 많이 들음[多聞]과 같게 할 수 있겠는가? 공자와 안회가 떠난 지

천 년이 지났으나 안연(顔淵)206)이나 민자건(閔子蹇)207) 같은 이가 있었다

는 말을 또한 듣지 못했다.

승려가 승려다우려면 5덕(五德)208)과 6화(六和)209)를 구비한 후에야 그

이름에 걸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름과 실상이 부합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숲에는 재목이 못되는 나무가 있고 논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벼가 있으니, 설령 법에 맞게 받들어 행하지 못하는 자가 있더

라도 그들을 너무 심하게 미워해서는 안 된다. 다만 승려의 모습[形服]210)

를 통해서 점점 훈습하여 본성을 이루도록 하여 그 도를 잃지 않게 할 따름

이니, 어찌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의 법을 폐지할 수 있겠는가?

曰, 麒麟鸞鳳, 族不成群, 尺璧寸珠, 市不可求. 孔門三千, 稱

哲人者, 十人而已, 如來海會, 稱第一者, 亦不過十人而已. 況

今去聖愈遠, 根機微劣, 安得使人人, 如迦葉之淨行, 阿難之多

聞? 孔顔之後, 千載之下, 如顔淵閔子蹇, 亦未之聞也. 夫僧之

爲僧, 具五德備六和然後, 方稱其名也. 然名實相符者, 蓋難其

人矣. 林有不材之木, 田有不實之禾, 縱有不能如法奉行者, 不

可疾之甚也. 但令因其形服, 漸薰成性, 不失其道而已, 豈得因

其失而廢其法也?

203) 회상(會上):부처님이 설법하는 장소에 대중들이 모여든 것을 말한다. 여기서

‘바다 같은 회상’이라고 말한 것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바다같이 넓게 많이 있음

을 의미한다.

204) 가섭(迦葉): Mahākāśyapa. 음역하여 마하가섭이라고 부르며, 부처님의 십대

제자로서 두타제일(頭陀第一)이다. 바라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12세에 부모를 잃고 세속적인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아 아내와 함

께 출가하였다. 그 후 석가모니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선종(禪

宗)에서는 가섭이 부처님의 마음을 전수받았다고 여겨 초조(初祖)로서 숭앙하

고 있다.

205) 아난(阿難): Ānanda. 음역하여 아난이라고 부른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며,

부처님의 십대 제자로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다. 그는 대중들의 천거에 의하

여 20여 년간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으므로 다문제

일(多聞第一)이라고 불렸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500여명의 제자들이 왕사성

(王舍城, Rājagha) 칠엽굴(七葉窟)에서 모여 부처님의 설법을 결집(結集)할 때

아난이 암송하고 다른 사람들이 승인하여 경전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206) 안연(顔淵):공자의 십대 제자 중의 한 명으로 안회(顔回)를 말한다. 공자가 가

장 신임하였던 제자이며, 공자보다 30세가 어리지만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학

문과 덕이 특히 높아서 공자도 그를 가리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칭송

하였고 또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道)를 즐긴 것을 칭찬하였다. 젊어서 죽

었기 때문에 저술이나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207) 민자건(閔子騫):공자의 십대 제자 중의 한 명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므

로『논어』「선진」제4장에서 공자가 “효성스러워라. 민자건이여! 사람들이 그

부모형제가 그를 효자라고 칭찬하는 말에 트집 잡지 못하는구나.(孝哉, 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라고 칭찬하였을 정도이다.

208) 5덕(五德):비구가 수행함으로써 얻는 다섯 가지 공덕으로서, 포마(怖魔)·걸사

(乞士)·정계(淨戒)·정명(淨名)·파악(破惡)이다. 포마는 비구계를 지키면 반드

시 열반에 들게 되므로 마군을 두렵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걸사는 위로는 부처님

의 지혜를 받들고 아래로는 음식을 구하게 되는 것이며, 정계는 청정한 계율을

지킬 수 있는 것이고, 정명은 깨끗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며, 파악은 번뇌를

끊게 되는 것이다.

209) 6화(六和):수행자들이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여섯 가지의 윤리덕목(倫理 德

目)이다. 즉 신화(身和)·구화(口和)·의화(意和)·계화(戒和)·이화(利和)·견화

(見和)이다. 신화는 부드럽게 행동하는 것이고, 구화는 자비롭게 말하는 것이며,

의화는 남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고, 계화는 함께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이화는

이익을 균등하게 가지는 것이고, 견화는 바른 견해를 같이 가지는 것이다.

210) 승려의 모습[形服]:원래 형복(形服)이란 ‘옷을 차려입은 모습’이란 뜻이지만,

글의 문맥에 맞춰 ‘승려의 모습’이라고 해석하였다.

14. 불교 무용론에 대해

묻는다. 불교의 책들을 살펴보건대, 허원(虛遠)211)한 데에 힘쓰고 적멸

(寂滅)을 숭상하고 있어서『소학(小學)』212)보다 배로 공부하더라도 쓸모가

없고,『대학(大學)』213)보다 더 고상하지만 실리가 없으니, 자신을 닦고 남

을 다스리는 방법이 되지 못할 것이다.

曰, 考其爲書, 務於虛遠, 崇於寂滅, 其功倍於小學而無用, 其

高過於大學而無實, 不可以爲修己治人之方也矣.

211) 허원(虛遠):허황되고 고원하다는 의미.

212)『소학(小學)』:송나라의 주자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소년들을 학습시켜 교

화시킬 수 있는 내용의 서적을 편집하게 하여 만든 것으로 주자가 교열(校閱)하

고, 가필(加筆)하였다. 1185년에 착수하여 2년 뒤에 완성하였다.

213)『대학(大學)』:유교의 성전으로서 사서(四書) 중의 하나이다. 본래『예기(禮記)』

의 제42편에 있던 것을 송(宋)나라의 사마 광(司馬光)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

서『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고, 그 후 송나라의 주자가『대학장구(大學章

句)』를 만들어 경(經) 1장(章), 전(傳) 10장으로 구별하여 주석(註釋)을 붙였다.

주자는 경(經)은 공자의 말을 증자(曾子)가 기술한 것이고, 전(傳)은 증자의 뜻

을 그 제자가 기술한 것이라고 하였다.

답한다. 책이란 도를 싣는 도구이며 널리 교화하는 방편이다. 그 책을 보

면 그 도가 따를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고, 그 예가 본받을 만한

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다. 그 도가 따를 만하고 그 예가 본받을 만하

다면 어찌 내가 익힌 것이 아니라고 하여 그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천하에 두 도가 없고 성인은 두 마음이 없다.”214)는 말을.

성인은 비록 천리나 떨어져 있고 만년이나 지났더라도 그 마음은 일찍이 달

랐던 적이 없다. 공자의 말씀에 “사사로운 뜻이 없고, 반드시 그렇겠다는 것

이 없으며, 집착함이 없고, 이기심이 없다.”215)고 하였고,『주역』에 또 “그에

게 등을 돌리고 있으면, 나가 없고 그의 뜰에 나아가도 남이 없다.”216)고 하

였으니, 나도 없고 남도 없는데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부처님의 말씀에

“나 없음[無我]과 남 없음[無人]으로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보리

(菩提)를 증득한다.”217)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성인이 살다간 시대는 다

르지만 그 마음은 같은 이유이다.

그대가 “허원(虛遠)하고 적멸(寂滅)하다”고 한 말은 삼장십이부(三藏

十二部)218) 가운데 어떤 전적(典籍)에 근거하여 말한 것인가? 대계(大戒)에

“효도하고 순종하는 것은 지극한 법도이니 효를 계(戒)라 이름하고 또한

제지(制止)라고도 이름 한다.”219)고 하였으니, 오로지 ‘허원하다’고 말해서

야 되겠는가? 『원각경(圓覺經)』에 “마음 꽃이 피어나서 시방 세계를 밝게

비춘다.”220)고 하였으니, 오로지 ‘적멸하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만약 불

교의 참과 거짓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글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니, 그 글을 살펴보지 않고 함부로 배척한다면 반드시 통달한 사람들

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천하의 문장을 다 읽지

않았으면 옛날과 지금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말을. 공자의

말씀에 “대저 효라는 것은 하늘의 법도이고, 땅의 의로움이며, 사람이 가

야할 길이다.”221)라고 하였으니, 어찌 지극한 도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감득하여 천하 모든 일에 마침내 통달한다.”222)고 하였으니, 어찌 밝게 비

춤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유교에서 말하는 ‘밝은 덕[明德]’223)은 곧 불

교에서 말하는 “오묘하고 순일한 밝은 마음[妙精明心]”224)이요, 이른바 “고

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득하여 마침내 통달한다.”225)는 말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고요히 비춤[寂照]’이다. 이른바 “자기가 착한 뒤에야 남의 착함을

따질 수 있고, 자기에게 악이 없는 뒤에야 남의 악을 바르게 할 수 있다.”226)

는 말은 우리 불교에서 말한 “악을 끊고 선을 닦아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말한 이치가 이미 같다면 가르친 자취인들 어찌

다르겠는가?

자기에게는 오로지 하면서 남에게는 소홀히 하며, 이것은 옳다고 하면서

저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통달한 사람

들은 오직 의(義)만 따를 뿐이니, 어찌 나와 남, 이것과 저것으로써 시비를

가리겠는가? 사람들에게 벼슬과 상으로 권하지 않더라도 풀이 바람에 쏠

리듯이 따라 교화되는 것은 유불도 삼교 가운데 불교만이 그렇게 할 수 있

다. 이는 우리 부처님과 같은 큰 성인이 큰 자비로 감화하기 때문이다.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천근한 말에서 살피기를 좋아하며 남의 악을

숨겨 주고 선한 일을 드러내었고,227) 우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했다

228)고 하니, 만일 순임금과 우임금이 부처님의 교화를 만났더라면 어찌 귀

의하고 찬미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방법

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이 부족한 것이다.

曰, 書者, 載道之具也, 弘化之方也. 見其書則知其道之可遵不

可遵, 知其禮之可慕不可慕也. 其道可遵, 其禮可慕, 則豈以

非吾所習而可棄之也. 君不聞乎? “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

夫聖人者, 雖千里之隔, 萬世之遠, 其心未嘗有異也. 孔夫子

之言曰, “毋意毋必毋固毋我”, 易又云, “艮其背, 無我也, 行其

庭, 無人也”, 無我無人, 何垢之有? 釋迦老之言曰, “無我無人,

修一切善法, 卽得菩提”, 此聖人之所以異世而同其心也. 所謂

“虛遠寂滅”之言, 三藏十二部中, 據何典而言歟? 大戒云, “孝

順至道之法, 孝名爲戒, 亦名制止”, 一向謂之虛遠可乎? 圓覺

云,“ 心花發明, 照十方刹”, 一向謂之寂滅可乎? 若欲驗其眞

僞, 必先審其書也, 不審其書而妄排之, 則必爲達者之所嗤矣.

君不聞乎?“ 未盡天下文章, 不得雌黃古今.” 孔之言曰,“ 夫孝,

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 豈非至道之謂乎.“ 感而遂通

天下之故”, 豈非明照之謂乎? 儒之所謂明德, 卽佛之所謂妙精

明心也, 所謂“寂然不動, 感而遂通”, 卽佛之所謂寂照者也. 所

謂“有善於己然後, 可以責人之善, 無惡於己然後, 可以正人

之惡”者, 與吾敎所謂“斷惡修善, 饒益有情”者, 何以異乎?

所言之理旣同, 而所敎之迹, 何以異乎? 專己略人, 是此非彼,

人之常情”也. 通人達士, 唯義是從, 豈以人我彼此而是非者乎?

使人不待爵賞之勸而靡然從化者, 三敎之中, 佛敎能然也. 蓋

以吾佛大聖大慈之所感也.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禹拜昌言, 若使舜禹, 遇佛之化, 則豈不歸美乎? 而以爲不可

爲修己治人之方者, 亦未之思也.

214) 장상영(張商英),『호법론(護法論)』권1 大52 p.637c4.

215)『논어』「자한(子罕)」

216)『주역전의』「간괘(艮卦)」에서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가

더라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

人 无咎)라고 하였다. 이 말은 보이는 것이 앞에 있어도 등을 돌리고 있으면 보

이지 않으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뜰에 나가더라도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뜻

으로서, 남과 등지고 있으므로 나와 남이 사귀지 않아 아무런 허물이 없게 된다

는 의미이다.

217) 자선(子璿),『기신론소필삭기(起信論疏筆削記)』권17 大44 p.387c26~27.

218) 삼장십이부(三藏十二部):삼장은 경장, 율장, 논장을 말한 것이며, 십이부는 부

처님의 가르침을 형식과 내용에 따라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십이부는 ①

경(經):경전에서 산문(散文)으로 설한 부분, ②중송(重頌):산문의 설법과 똑같

은 취지를 거듭 운문(韻文)으로 설한 부분, ③수기(授記):부처님이 제자에게 성

불의 예언을 내리시는 뜻을 서술한 부분, ④고기송(孤起頌):산문의 부분과 상관

없이 운문으로만 이루어진 부분, ⑤무문자설(無問自說):질문하는 자가 없는데

도 부처님이 자발적으로 설하신 부분, ⑥인연(因緣):어떤 사건이 일어난 인연을

설하시는 부분, ⑦비유(譬喩):비유를 설하신 부분, ⑧본사(本事):과거세의 일을

말씀한 부분, ⑨본생(本生):부처님의 전생을 설하신 부분, ⑩방광(方廣):문답을

통해 도리를 밝힌 부분, ⑪미증유법(未曾有法):부처님과 보살의 갖가지 기적을

기술한 부분, ⑫ 논의(論議):도리를 논의해 해석 설명하는 부분이다.

219)『범망경』권2 大24 p.1004a25.

220)『원각경』大17 p.920b17~18.

221)『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25년조에서 “대저 예라는 것은 하늘의 떳

떳한 도이고, 땅의 후한 덕이며, 사람이 행하는 길이다.”(夫禮 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라고 하였다.

222)『주역전의』「계사상전」제10장에 “역은 생각이 없고 함이 없어 고요히 움직이

지 않다가 감득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달하니, 천하의 지극히 신묘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

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与於此)라고 하였다.

223) 밝은 덕[明德]:『대학』「경문(經文)」에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그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자가『대학장구』에서 ‘밝은 덕’을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밝은 덕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서

텅 비어 있으면서도 신령하고 어둡지 않기 때문에 온갖 이치를 갖추어 있고 모

든 일에 응하는 것이다.”(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 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224)『수능엄경(首楞嚴經)』권2 大19 p.111a24~25.

225)『주역전의』「계사상전」제10장.

226)『대학』「전문」 제9장.

227)『중용』제6장에 공자가 순 임금의 덕을 일컬어 “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천

근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고, 남의 악을 감춰 주고 선한 일은 드러냈다.”(舜好

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라고 하였다.

228) 우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는데,『서경』「우서」대우모(大禹謨) 제21

장과 고요모(皐陶謨) 제1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15. 도・유・불 삼교의 같고 다름

묻는다. 도교, 유교, 불교의 같고 다른 점[同異]과 낫고 못한 점[優劣]은

어떠한가?

曰, 老與儒釋, 同異優劣, 如何?

답한다. 노자(老子)의 말씀에 “함이 없으되 하지 않음이 없고, 함이 있으

되 함이 없어야 한다.”229)고 하였고, 석가(釋迦)의 말씀에 “고요하지만 늘

비추고 비추지만 늘 고요하다.”230)고 하였으며, 공자의 말씀에 “역(易)은

생각도 없고 함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득하여 천하 모든 일에

마침내 통달한다.”231)고 하였다. 여기서 ‘고요하다’는 것은 감득함이 없었

던 적이 없는 것이니 곧 고요하면서도 늘 비추는 것이고, ‘감득하여 통달한

다’는 것은 고요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이니 곧 비추면서도 늘 고요한 것이

다. ‘함이 없으되 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고요히 늘 감득하는 것이고, ‘함

이 있으되 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감득하지만 늘 고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의거해보면, 도・유・불 삼교의 말이 완전히 부합하여 마치 같

은 입에서 나온 말 같다. 만약 이리저리 실천하고 같고 다른 점을 활용하려

한다면, 마음의 때를 다 씻어 버리고 지혜의 눈을 맑게 한 뒤에 대장경과

유교와 도교의 여러 서적을 모두 훑어보고 일상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생사

(生死)와 화복(禍福)의 일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남의 말을

듣지 않고도 스스로 머리를 끄덕이게 될 것이니, 내가 어찌 굳이 변론하여

그대의 귀를 놀라게 하겠는가?

曰, 老之言曰, “無爲而無不爲, 當有爲而無爲.” 釋之言曰,

“寂而常照, 照而常寂.” 孔之言曰,“ 夫易, 無思也無爲也, 寂

然不動, 感而遂通.” 夫寂然者, 未嘗無感, 卽寂而常照也, 感

通者, 未嘗不寂, 卽照而常寂也. 無爲而無不爲, 卽寂而常感

也, 有爲而無所爲, 卽感而常寂也. 據此, 則三家所言, 冥相符

契, 而如出一口也. 若履踐之高低, 發用之同異, 則洗盡心垢,

廓淸慧目然後, 看盡大藏儒道諸書, 參於日用之間, 生死禍福

之際, 則不待言而自點頭矣, 吾何强辨以駭君聽?

229)『도덕경(道德經)』제37장에서 “도는 함이 없으되 하지 않음이 없다. 임금이나 제

후가 이를 지키면 만물이 저절로 교화될 것이다.”(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

之, 萬物將自化)라고 하였다. 그러나 “함이 있으되 함이 없어야 한다.”(當有爲而

無爲)라는 말은 『도덕경』에 보이지 않는다.

230)『인왕반야경소(仁王般若經疏)』권2(大33 p.330b28)와『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

佛華嚴經疏)』권27(大35 p.705b23~24) 등에 보인다.

231)『주역전의』「계사상전」제1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