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293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한번도 죽어 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서 죽은 사람, 죽어 나가는 사람을 보았을 때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기가 죽기보다 더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밤에 잠을 자면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라며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흔히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여기 벽이 하나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죽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문 이쪽은 삶이고 문 저쪽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면 삶과 죽음은 하나일 것이다. 이를 생사일여(生死一如)라고 한다. 놀랍게도 생사일여에 대한 게송을 발견했다. 생사일여..

숙명통 - 천안통 - 누진통을 바탕으로 한 부처님의 깨달음 과정

14. 바라문이여,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권태로움이 없었고 새김을 확립하여 미혹에 떨어지지 않았고 몸이 고요하여 격정이 없었고 마음은 집중되어 통일되었습니다. 1) 바라문이여, 나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난 뒤, 사유와 숙고를 갖추고 멀리 여림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에 들었습니다. 2) 바라문이여, 나는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와 숙고를 여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에 들었습니다. 3) 바라문이여, 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들었습니..

포말

이미 꽉 차 있는 바위 다른 것들 수용 못해 ‘나’라는 관념도 같아 ‘자아’는 집착의 포장 ‘절벽을 타고 떨어진 물줄기가 하얗게 포말(泡沫)을 일으키고’, 혹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과 같은 표현은 꽤나 시적이다. 포말은 사전적 정의를 보면, 물이 무엇인가에 부딪혀 생겨나는 거품을 의미한다. 유사한 표현으로 물방울이란 단어가 있다. 불교 경전에서 이 포말은 자주 사용되는 비유가운데 하나이다. ‘상윳따 니까야’에 '포말의 비유 경(Pheṇapiṇḍūpamasutta)’이 있다. 말 그대로 부처님께서 포말의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주신 경전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갠지스 강이 커다란 포말을 일으키는데, 눈 있는 자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요즘 케이블에서 인기 있는 방송은 아마 ‘나자연’일 것입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케이블 채널 이곳 저곳에서 봅니다. 우리나라 40대 시청률 1위라고 선전하는 나자연은 도시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홀로 산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까 하는 바램입니다. 나자연에서 어느 퇴역군인출신은 과거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오년 동안 누워 있다가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참으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자식에게만은 폐를 끼쳐 주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방법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업무로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요양원에 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지낸지 꽤..

매일 얼굴을 닦듯이 마음을 청소하라. (M15)

추론의 경 Anumāna sutta(M15) 비구는 이렇게 자신을 관찰해야 한다. ① 나는 악을 원하고 악에 사로잡혀 있는가? ② 나는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고 있는가? ③ 나는 분노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가? ④ 나는 분노하고 분노로 인해 원한을 품고 있는가? ⑤ 나는 분노하고 분노로 인해 집착하고 있는가? ⑥ 나는 분노하고 분노에 찬 말을 하고 있는가? ⑦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자에게 적대감을 일으키고 있는가? ⑧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자를 비난하고 있는가? ⑨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자에게 반박하고 있는가? ⑩ 나는 꾸짖음을 듣고 얼버무리고 분노와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가? ⑪ 나는 꾸짖음을 듣고 훈계에 동의하고 있지 않는가? ⑫ 나는 원한에 사무치고 저주하고 있는가? ⑬ 나는 ..

모든 니까야의 공통된 특징

모든 니까야의 공통된 특징 ​ 어느 날 양나라의 초대황제인 무제가 달마대사에게 물었습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우고 사경(寫經)하고 승려들을 출가시키는 일을 수없이 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합니다.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달마대사는 왜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했을까요.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의 주석에 따르면 달마대사가 양무제에게 보시한 공덕이 없다고 대답한 것은 보시했다는 ‘아상(我相)’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부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숫따니빠따(3편 5, Magha sutta)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영취산에 계셨다. 그때 마가라..

니까야(팔리어 경전)

니까야(팔리어 경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의 상좌부 불교권에서 주로 보는 불경을 말한다. 팔리어로 쓰였으므로 팔리 경전이라고도 한다. 니까야가 팔리어 버전이라면, 산스크리트어를 거쳐 한문으로 번역되어 한중일 등의 대승 불교에서 전해지는 한문 버젼이 아함경이다. 결국 니까야와 아함경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의 내용이 일치하지만 25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관계로 서로 다른 부분도 꽤 있다. 2. 니까야의 종류 4부니까야사진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나오는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이 번역한 니까야 니까야(nikaya)의 본래 단어뜻은 모임, 모음인데 길이나 주제나 숫자별로 경들을 모았기 때문에 경전의 이름이 되었다. 보통 5부 니까야라해서 5개로 나눈다. 1. 디가 니까야 : '디가..

스리랑카 비구니 승가 소멸에 대한 고찰

佛敎學報 第86輯 스리랑카 비구니 승가 소멸에 대한 고찰 * 이 논문은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6A3A02079749).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Grant funded by the Korean Government(NRF-2017S1A6A3A02079749). 김한상/한국외국어대학교 HK연구교수 I. 들어가는 말 II. 테라와다 불교의 남성중심주의적 성향 III. 힌두교의 반여성주의와 남존여비사상 IV. 아란냐까 전통의 대두 V. 나가는 말 이 논문에서 필자는 스리랑카의 비구니 승가의 소멸에 대해 탐구한다. 비구니 승가는 거 의 1200..

초전 법륜경

경전강독 1.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때 세존께서 바라나시 근처의 선인들이 머무는 사슴동산(녹야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다섯 수행자들에게 설법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여기에 양극단을 초월한 길이 있느니라. 그 양극단은 무엇인가. 그 한 극단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탐하는 것으로, 이는 세간의 저속한 것이고, 열등한 것이고, 가치가 없는 것이고, 위해로운 것이라 범부가 행하는 것이지 성스러움을 쫓는 성인이 행할 바가 아니다. 또 하나의 극단은 자신을 학대하고 고통을 주는 고행에 치우치는 것으로,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현명한 성인이 쫓을 바가 아닌 가치없는 것이요 위해로운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이 양 극단을 버림으로써 중도를 발견했으며 이 중도는 법안을 갖게 했고, 평화로운 적정을 가져오는..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26. 무상(無常)의 가르침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 26. 무상(無常)의 가르침 “늘 변한다는”는 변혁의 메시지 무상(無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항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모든 것이 변화의 여정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우리는 나날이 변해가며 또한 새롭게 태어나고 죽어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현재의 ‘나’가 10년 후 혹은 100년 후까지 지속되지는 않는다. 불교에서는 바로 이 변화한다는 사실만큼은 고정불변의 진리로 여긴다. 따라서 진리의 인장 즉 법인(法印)이라는 표현으로써 이것을 분명히 한다. 무상의 진리는 삼법인(三法印)의 가르침 가운데 최초의 것에 속한다. 초기불교는 이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진리에 근거한다. 무상의 진리는 결코 난해한 것이 아니다. 사실 변화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