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스님 14

[2019년 10월호] 제따와나 선원장 일묵스님을 만나다 / 전현자

제따와나 선원장 일묵스님을 만나다 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 기자: 스님! 인터뷰 매우 고맙습니다. 깨달음이 뭡니까? 일묵스님: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번뇌 소멸입니다. 탐진치의 완전한 소멸. 그것을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진리를 깨닫는 것. 사성제를 깨닫는 것이라 말 할 수도 있는데 번뇌가 소멸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아마 깨달음이라고 표현할 때는 진리를 완전히 깨닫는다 이런 의미에 중점이 맞춰진 것이고 그걸 통해서 번뇌가 버려지고 괴로움이 소멸된다 이런 쪽으로 할 때는 좀 다른 쪽으로 이야기하는데 보통 깨달음이라고 할 때는 진리를 깨달아서 그 깨달음 자체가 번뇌가 사라져버린 것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괴로움..

불교관련 2022.08.14

사성제는 어떻게 삶과 수행의 기준이 될까?

HOME 출판 불서 사성제는 어떻게 삶과 수행의 기준이 될까? ‘사성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 / 일묵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오늘날 불교엔 초기불교, 남방 상좌부불교, 북방 대승불교, 선불교, 티베트불교 등 많은 가르침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각 가르침은 상당부분 일치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래서 불자들은 어떤 것이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인지 의문을 갖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 춘천 제따와나선원장 일묵 스님 역시 그런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 답을 얻기 위해 많은 스승을 만나 수행하고, 다양한 가르침을 탐구하면서 현대 불교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살폈다. 그 결과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은 ‘사성제(四聖諦)’임을 확신하게 됐다. ​ 그래서 ‘많은 불교 전통 가운데 공통되는 붓다의 근본 가르..

괴로움의 소멸, 진리로 가는 길

괴로움의 소멸, 진리로 가는 길 일묵스님 ‘사성제’ 출간 근본원리 ‘고집멸도’ 등 초기 불교 가르침 담아 “세상은 본래 불완전한 것 고통의 원인 집착 버려야”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괴로움을 마주하고,없애는 방법.삶의 바른 방향에 대한 완벽한 가르침. ​ 춘천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따나와 선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일묵스님이 붓다와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책 ‘사성제’를 펴냈다. ​ 다양한 불교경전을 연구해 온 일묵스님은 부처의 본래 가르침은 ‘사성제’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복잡한 ‘이론 체계’나 추상적인 ‘사상’을 벗어나 삶과 수행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실천적 가르침’이라는 것이다.2018년 춘천 남면에 제따나와 선원을 마련,대중들의 수행을 돕고 있는 일묵스님의 이번 책은 그런 가르침을 ..

20. 제따와나선원장 일묵스님

“자유로운 수행공동체 만들고파” 제따와나선원장 일묵스님 ‘주류’에서 ‘비주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릴 수 있는 권력과 혜택은 물거품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고 수많은 ‘소외’가 항상 주변을 맴돌게 된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류에 속하거나 또는 그 언저리에 머물기를 바란다. 부처님 역시 주류의 중심에서 비주류를 선택했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 정진한 끝에 구경각을 성취했지만 요즘 사람들이 부처님처럼 살기는 쉽지 않다. 제따와나선원장 일묵스님은 주류의 길을 버리고 비주류가 됐다.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이던 1996년 출가했다. 서울대 불교학생동아리를 이끌던 일묵스님을 시작으로 서울대생 7명이 집단 출가하고 그 후 3~4년간 서울대생 6명이 추가로 출가한 것은 불교계..

종교의 대사회적 기능

종교의 대사회적 기능 종교의 기능은 크게 본래적 기능과 수단적 기능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종교의 본래적 기능이란 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을 말한다. 이를테면 자기종교의 교리나 신앙을 통한 정신적 위안, 긴장 해소, 죽음에 대한 공포 극복 등이다. 종교는 본래 성스러운 세계에 대한 인간의 향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종교의 수단적 기능이란 종교의 본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말한다. 이를테면 종교의 제의(祭儀)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제의는 예배, 기도, 노래, 춤, 강설 등 다양한 행위로 나타난다. 특히 그 중에서 종교는 사회적 기제(機制)를 통한 표상으로 표출된다. 종교는 언제나 집단을 형성하여 움직인다. 그 때문에 때로는 종교권력과 국가권력 간에 대립하기도 하였..

마성스님 2021.01.03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1>

“이라 지칭할 때도 그것이 오직 하나의 경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매우 많은 경전의 집록(集錄)이다. 붓다는 생애의 대부분을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유행하면서 전도·교화하였다. 붓다는 이르는 곳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청중들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였다. 그 교설들은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가능한 한 간단명료하게 설한 것으로 보인다” 아함경이란 무엇인가 불교경전은 크게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두 가지로 구분된다. 두 가지 모두 ‘불교경전’이라고 불리지만, 그 성립사정은 전혀 다르다. 초기경전은 제1결집에서 정리된 ‘법(法)’을 기본으로 삼아 성립된 것이다. 그 ‘법’의 내용은 일찍이 붓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붓다의 입멸 직후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스승의 교설을 서로 확인하고 전승한 것..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산책] 나는 누구인가 ① 오온

초기불교의 기본 가르침은 교학과 수행의 둘이요, 교학은 온.처.계.근.제.연의 여섯으로 정리되고, 수행은 37보리분법으로 집약된다. 먼저 오온에 대한 개관을 해보도록 하자. 인류가 있어온 이래로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많은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당연히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셨고, 중요한 질문이기에 아주 많이, 그것도 아주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을까?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의 도처에서 간단명료하게 ‘나’는 ‘오온(五蘊, panca-kkhandha)’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몸뚱이, 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들(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蘊)의 적집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질 느낌 인식 심리현..

각묵스님 2020.11.22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산책]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무상.고.무아 각각 통찰하면 탐욕이 빛바래 해탈.열반 실현 이쯤에서 초기불교의 핵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초기불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이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며 시작(詩作)에 능했던 왕기사 존자는 (S8:8)에서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빠위밧자(pavibhajja)나 위밧자(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위밧자(vibhajja)라는 술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

각묵스님 2020.11.22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산책] 기본 가르침

부처님 원음, 모호하지 않고 명료 초기불교의 목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초기불교는 열반이라는 궁극적 행복의 실현을 근본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는 “열반을 실현하는 것(nibbana-sacchikiriya)이야말로 으뜸가는 행복”(Sn. 267번 게송)이라고 결론짓는다. 열반의 실현은 부처님의 지엄한 명령이기도 하다. 그러면 열반은 어떻게 해서 실현되는가? 열반은 당연히 수행(patipada, bhavana)을 통해서 실현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나와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를 우리는 교학(pariyatti)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는 불교의 교학과 수행 즉 이론과 실천을 갖추어야 한다. 이 둘이 없이도 열반은 문득 실현된다..

각묵스님 2020.11.22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4>

무아는 오온에 대한 집착 벗어나 자기중심적인 아집 버리는 것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은 ‘오온에는 아(我)가 없다(無我)’가 아니라 ‘오온은 아(我)가 아니다(非我)’라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다시 말해서 오온이라는 요소는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자유로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취지에서 보면 오히려 ‘비아(非我)’라고 표현한 쪽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다만 여기서 오온이 비아임을 논증하기 위한 논리적 전제로서 무아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 염리경(厭離經) (九) 如是我聞: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世尊告諸比丘: “色無常, 無常卽苦, 苦卽非我, 非我者亦非我所. 如是觀者, 名眞實正觀. 如是受·想·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