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공간 54

승조 - 반야무지론

도인은 진리에 입각한 수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도를 위해서는 먼저 진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중요한데, 이 점은 도주님께서 1925년에 선포하신 「각도문(覺道文)」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무릇 성인의 경전은 문장의 색채를 구하지 않고 그 진리를 구하였으며 진인의 마음은 그 진실을 찾았지 겉꾸밈을 구하지 않았다. 물건의 사리를 구한다면 그 천연(天然)을 찾는 것이지 조작을 찾는 것이 아니다.”01 도에 대한 깨달음은 문장의 색채, 겉꾸밈, 조작을 버리고 진리, 진실, 천연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성인의 심법과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을 밝게 하여 참된 이치를 체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은 중국 불교 저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승조(僧肇)가 저술한 「반야무..

지혜의 공간 2020.06.14

연회국사,허응당 보우,서산 휴정,사명 유정,벽암 각성,남호 영기,청호,한암 중원,운허 용하,금오 태전,청담 순호,서운,임성,석주 정일,금하 광덕

역대조사연회국사緣會國師(8~9세기)신라의 고승이며 봉은사의 창건주. 당대의 고승 낭지스님의 사사를 받아 영축산에 은거하면서 늘「법화경」을 읽고 보현관행(普賢觀行)을 수행하였는데 정원 연못에 연꽃이 피어 항상 시들지 않았다. 국왕 원성왕이 상서러운 이적을 듣고 스님을 국사로 봉하였다. 한강 이남에 상서로운 흰 까마귀가 출몰한다 하여 상서로운 땅에 절을 짓고 연회국사께 주석케 하니 이 사찰이 바로 견성사이며 봉은사의 전신이다.(신라 원성왕 7년, 794) "삼국유사" 제8권 의 "연회도명 문수점"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승연희는 일찍이 영축산에 은거하면서 늘 "법화경"을 읽고 보현관행을 수행 하였는데, 정원 연못에 연꽃 몇 송이가 있어 항상 시들지 아니 하였다. 국왕 원성왕이 그 상서로운 이적을 듣..

지혜의 공간 2020.05.17

<불교에서 자성(自性), 그리고 불성(佛性)의 문제>

자성(自性, 산스크리트어 svabhāva)이란 본질, 실체, 본성 등을 의미하는 말로 불교 철학상 부정적 비판과 적극적 긍정이 동시에 이루어진 대표적인 말이다. 즉, 자성은 부정적 비판과 함께 적극적인 긍정의 입장에서 사용돼 복잡한 대승불교 철학의 양상을 드러낸다. ‘자성(自性)’이란 말을 산스크리트어로 ‘svabhava’라 하는데, 이는 ‘자신(sva)에게 고유한 성질(bhava)’이며, 자신의 본질, 본성을 갖는다는 의미의 말이다.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변하지 않는 존재성을 이르는 말로서, 다른 것과 혼동되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 만유의 독자적 본질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본성(本性)이 자성이다. 스스로의 성품은 자신이나 개인의 성품, 개성과는 다르다. 이는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변..

지혜의 공간 2020.01.26

<승조(僧肇)의 조론(肇論)>---승조(僧肇) 법사 이야기

---승조(僧肇) 법사 이야기--- 승조 법사 상 승조의 임종게 의 저자 승조(僧肇, 384~414) 법사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220~589) 후진(後秦)의 승려로서, 세속의 성은 장(張)씨였다. 그는 서역 구자국(龜玆國, 쿠차) 출신 역경승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년)의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구마라습을 따르는 문도가 3000여 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80여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다는데, 그중에서도 특출한 4명의 제자 도생(道生), 승예(僧叡), 도융(道融), 승조(僧肇)를 구마라습 4철(四哲)이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승조는 특히 논의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승조는 구마라습을 따라 후진의 수도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으로 가서 승예 등과 함께 구마라습의 역경사업에 참여해..

지혜의 공간 2020.01.26

“승려는 음식·옷·잠 부족해야 하고 신심·원력·공심은 꼭 가지고 있어야”

선수행 종가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하안거 중 일주일에 한번 쉬는 날 큰스님이 붓을 들었다 누에고치서 비단줄 뽑아져 나오듯 거침없이 줄줄줄 휘갈긴다 “승려는 음식·옷·잠 부족해야 하고 신심·원력·공심은 꼭 가지고 있어야” 3포, 5포 세대의 청년에 용기 강조 “포기조차 포기해야 길 열려” “한국 정치인들은 선거기술자에 불과 해가 비추고 싶은 곳만 비추지 않듯 덕성 있는 정치인 아쉬워” 덕지덕지 기운 15년 된 삼베옷 입고 젊은 후학들과 함께 하루 8시간 정진하고 농사지어 스님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법당 한쪽에 신문지를 까는 스님, 빨래집게가 달려 있는 긴 줄을 양쪽 벽에 연결하는 스님, 큰 한지 뭉치를 가져오는 스님, 정성 들여 간 먹물을 큰 그릇에 옮기는 스님, 여러 크기의 붓을 정리하는 스님…. “..

지혜의 공간 2019.09.08

*경허 선사 일화[逸話]

경허 성우 대선사 경허 선사가 연암산 천장암 인근 지장암이란 토굴에서 머물 때의 일화다. 엄동설한의 한 겨울을 토굴에서 혼자 정진하며 지내기로 한 경허 선사는 낡고 헐어 벽에 틈이 벌어지고 문창이 뒤틀린 암자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장(佛藏)에 보관되어 있던 경전을 모조리 뜯어 풀을 바른 후 문이나, 벽, 방바닥, 천장까지 남김없이 바르는 것이 아닌가. 암자로 찾아간 제자들이 이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스님, 성스러운 경전으로 이렇게 벽과 바닥을 발라 도배 장판을 하여도 됩니까?” 경허 선사는 태연히 대답했다.“자네들도 이러한 경계에 이르면 이렇게 해보게나. ” 토굴로 찾아간 제자들은 스승의 깊은 경지에 삼배를 올리고 물러나왔다는 선화(禪話)다. 경허 스님의 이러한 경지는 불상을 올라타고..

지혜의 공간 2019.02.24

<화엄경(華嚴經) 보살 수행 52위(位)>

강화도 고려산 적석사 보살상 초기불교에서는 사문으로서 최고위인 아라한이 되기 위한 수행단계를 성문사과(聲聞四果) 혹은 사문4과(沙門四果)라 하고, 줄여서 4과(四果)라고 했는데,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의 네 단계가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수행단계를 세분해서 52단계로 나누었다. 을 보면,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단계를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의 52위로 나누었다. 이 52위 중 맨 처음인 십신(十信)은 부처님을 만나서 부처님을 따르고 믿는 것이 열 단계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면 불법 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는데, 거기에도 십주(十住)라는 열 단계가 있다. 그..

지혜의 공간 2018.12.09

<유식무경(唯識無境, 산스크리트어 vijñapti-mtrat)>

유식무경(唯識無境)은 오직 식(識)뿐이며, 보이는 대상은 실제가 아니다,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만법유식(萬法唯識)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여기에서 ‘식(識)’은 인식하는 주체에 해당하는 마음속의 인식작용인 심식(心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인식작용을 떠나서 별도로 인식의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심식은 마음의 구체적인 인식작용을 말한다. 따라서 대개 식(識)과 심식(心識)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고 여기서 ‘대상’이란 심식이 인식하고자 하는 그 상대가 되는 것을 말하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 유식무경이란 오직 식만 있고 (바깥)대상은 없다는 말이다. 헌데 여기에서 없다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은 내가 본 것처럼 그렇게 있지 않다”는..

지혜의 공간 2018.12.09

<자성(自性)과 무자성(無自性)>

같은 불교이지만 초기불교(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이 둘 사이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경전이 다르다. 초기경전은 소위 니까야(Nikaya)라 일컫는 오늘날의 남전경전(빠알리어 삼장)이고, 대승경전은 북방경전인 반야경, 열반경, 화엄경, 법화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이 불멸 후 500년경(AD1세기 전후)부터 새로 조성됐다. 따라서 초기불교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남방불교 지역에서는 지금도 대승경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추구하는 이념도 다르다. 초기불교에서 4성제(四聖諦)와 6바라밀(六波羅蜜), 8정도(八正道)를 강조했다면 대승불교에서는 공 ․ 가 ․ 중(空假中) 3제(諦)와 불성론(佛性論)를 내세운다. 그리고 초기불교에서는 자아(自我)나 영원불멸의 영혼을 부정..

지혜의 공간 2018.10.21

<자성(自性, 산스크리트 스바하바/svabhava)이란>

불교에서 자성(自性) 혹은 불성(佛性)의 유무 문제는 오랜 쟁점이 돼 왔다. 남전불교와 북전불교 사이의 논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북전불교 안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 돼 왔다. 자성 ‧ 불성의 존재에 대한 논의는 불교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이고, 어떻게 보면 불교의 근본을 흔드는 민감한 일이라서 찬반의 의견이 심각한 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는 상태에 있다. 우리나라에선 자성 ‧ 불성을 지지하는 쪽이 워낙 세가 커서 부정적인 의견은 소극적인 편이다. 산스크리트어 ‘svabhava’는 ‘자신(sva)에게 고유한 성질(bhava)’ 혹은 ‘자체의 고유한 성질’이며,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변하지 않는 존재성을 이르는 말로서, 다른 것과 혼동되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 ..

지혜의 공간 2018.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