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교리강좌 - 화엄사상(華嚴思想)
중국 화엄사상은 화엄종조를 중심으로 한 화엄종에서 본 『화엄경』의 중심사상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화엄종을 대성시킨 현수법장(643-712)의 화엄사상〔법계연기(法界緣起)〕을 대표적으로 일컫고 있다.
천태사상이 성구(性具), (성악)사상이라 한다면 화엄사상은 성기(性起), (성선)사상으로 중국불교사상사를 통해 쌍벽을 이루기도 하였다.
법장은 스승 지엄 존자의 화엄교학을 이어받아 오교판을 세우고 화엄을 일승 원교로 확정지었다. 아직 삼승을 상대하고 있는 법화〔동교일승〕와는 다른 별교일승이라는 최상위에 화엄을 올려놓고 있다.
경의 중심사상을 고찰함에 있어서 경의 제목〔經題〕을 통해서 대의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화엄경(華嚴經, Avatamsaka Sutra)은 갖추어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Maha Vaipulya Buddha Ganda Vyuha Sutra)이다. ‘대방광불화엄’을 설하고 있는 경인 것이다.
대방광하신 부처님을 갖가지 꽃으로 장엄한다는 뜻이다. 크고 반듯하고 넓다는 대방광은 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원력과 위신력이 무한히 크고 깊고 너르다는 것을 담고 있다.
그러한 무진 부처님의 세계를 보살 만행화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화엄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펴고 있기에 화엄경을 불타 자내증의 개현경이라고 한다.
경전 성립사적으로 볼 때 화엄경은 대승보살에 의해 새 불교운동이 한창 꽃피던 시대인 서력기원 후에 성립된 초기 대승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성도 직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화엄경을 설했다고 함도 이를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엄경』의 대방광불은 삼불원융(三佛圓融), 십신구족(十身具足), 융삼세간(融三世間)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琵盧遮那佛, Valrooana)이다. 석존(釋尊)이 곧 비로자나이며 노사나불이 곧 비로자나불인지라 법신, 보신, 화신의 삼불이 원융한 부처님이다.
이 화엄교주 비로자나불은 우주만상인 삼종세간에 두루해 계시는 변만불〔光明遍照〕이다. 그래서 화엄불은 정각불, 원불, 업보불, 주지불, 화불, 법계불, 심불, 삼매불, 성불, 여의불〔行境十佛〕이다.
뿐만 아니라, 중생신, 국토신, 업보신, 성문신, 연각신, 보살신, 여래신, 지신, 법신, 허공신〔解境十佛〕이다. 모든 것이 비로자나부처님의 화현 아님이 없다. 여래출현(如來出現)이며, 여래성연기 즉 성기(性起)이다. 우리 범부중생이 그대로 부처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위와 같은 대방광불의 세계를 문수, 보현 보살을 위시한 제보살들이 설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본원력과 위신력 그리고 보살 자신의 선근력으로 삼매에 들어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한 보살들이 부처님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세계가 보살행을 통하여 장엄되며, 그 보살행을 행함으로써 우리 범부중생이 바로 부처의 삶을 살게됨을 보이고 있다.
중생이 본래 부처이지만 그러나 중생은 바로 자기가 바로 부처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신심과 발심이 필요하다. 신심이란 자기가 부처인 줄을 확실히 믿는 것〔淨信〕이다. 이 신심을 성취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되고〔發心〕, 처음 발심한 때가 바로 깨달음을 이루는 때이다 〈初發心時便成正覺〉.
『화엄경』에서의 초발심은 보살계위중 최초의 단계인 초발심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으로 이어지는 화엄의 보살계위〔42位〕는 성불로 향해가는 인행이라기보다 정각 후의 보리행이며 불행(佛行)이다.
인과 과가 둘이 아닌 인과교철의 과행이다(대승보살계위로는 보통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4가행, 등각, 묘각, 구경각등 57위를 들고 있다 그러나 화엄경에서의 신(信)의 단계는 10신이 아니라 모든 보살도를 지지하고 있는 기반이다).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역참한 53선지식의 낱낱 해탈문도다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완전한 해탈문이며, 선재의 역참은 구체적으로 불세계를 구현시켜 나가는 역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사상을 보살사상으로 규정짓고도 있다. 그 가운데서도 십지행을 대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십지품」을 「입법계품」못지 않게 중시해왔던 것이다.
십지의 보살행은 10바라밀을 차제로 내세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또한 초지인 환희지에서 십대원을 세우고, 제2 이구지에서는 십선도를 행하며, 제3 발광지에서는 삼법인을 관하며, 제4 염혜지에서는 37조도품을 닦으며, 제5 난승지에서는 사성제를 닦으며, 제8 부동지에서는 무생법인을 얻으며, 제9 선혜지에서는 사무애지를 얻으며, 제10 법운지에서는 대법우를 내리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
근본불교 교설에서의 수행법에서 부터 일승의 실천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화엄대해에 어우러져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온갖 세계와 중생은 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현현이며, 무량 보살행으로 불세계가 구현되고 있음을, 중국 화엄교가들은 다 무진연기인 ‘법계연기(法界緣起)’로 설명하기도 한다.
법장은 화엄종의 종취로서 ‘인과연기 이실법계(因果緣起 理實法界)’〈探玄記 1〉를 주창하고 있다. 인과연기는 사(事)요 이실법계는 이(理)로서 이와 사가 둘이 아니며, 따라서 사와 사가 걸림없는 사사무애의 일진법계이다.
이 일진법계의 체는 일심(一心)이니, 화엄경의 대의를 ‘통만법 명일심’〔華嚴品目〕으로 간추림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며, 화엄의 수행법으로 법계관법을 시설한 것이다.
화엄사상에 있어서 그 우주관에는 사법계, 이법계,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 등의 네 가지 법계를 설정하여 설명하고 있다. 모든 우주는 일심에 통괄되고 있으며 이 통괄되는 것을 현상과 본체의 양면으로 관찰하면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첫째로, 사법계(事法界)는 모든 차별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事)란 현상, 사물, 사건 등을 뜻하는데, 낱낱 사물은 인연에 의해 화합된 것이므로 제각기의 한계를 가지고 구별되어 지는 것이다. 개체와 개체는 공통성이 없이 차별적인 면만을 본 것이다.
둘째로 이법계(理法界)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를 말한다. 이(理)는 원리, 본체, 법칙, 보편적 진리 등을 가리키는데, 궁극적 이는 총체적 일심진여이며 공이며 여여이다. 우주의 사물은 그 본체가 모두 진여라는 것이니, 개체와 개체의 동일성을 본 것이다.
셋째로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는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사건과 원리가 완전 자재하고 융섭하는 경계이다. 구체적인 사건은 어떤 추상적 원리의 표현이며, 원리는 현현하는 사건의 증거이다.
이와 사가 함께 있음으로써 더욱 의미있는 개념이 된다. 공불이색이며 공즉시색이다. 법장은 금사자장에서 금사자의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금이라는 금속은 이의 미분화된 본체를 상징하며, 사자라는 가공품은 분화된 사 혹은 현상인데, 사자자 금에 의존하여 표상되고 있음이 이사무애의 경계라는 것이다.
넷째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는 개체와 개체가 자재융섭하여,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하여 받아들이고 〔相入, 相容〕하나가 되어〔相卽〕원융 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이다. 일체의 대립을 지양한 화합과 조화의 모습이며, 걸림이 없는 무애자재한 세계이다.
이 사사무애의 세계는 이사무애를 바탕으로 하며 의지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깨달음의 세계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과 실천행을 통해 현현하는 세계이다.
이것이 화엄경에서의 부처님의 세계이며, 보살행은 바로 이 사사무애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중생은 보살행을 통해서 본래성불의 여래성을 구현한다. 이러한 법계를 관하는 관법을 중국 화엄조사들은 실천행으로 중시하였으니, 관법계가 다름아닌 입법계라 할 것이다.
화엄의 사시무애 무진 법계연기를 체계적으로 관찰한 구체적 설명이 십현연기(十玄緣起)와 육상원융(六相圓融) 설이다.
십현은 십현문(十玄門)이라고도 하며 열 가지 십오한 이론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화엄에서 열(十)이라는 숫자는 원만구족을 뜻한다.
법장(法藏)은 그의 화엄학개론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나, [탑현기]에서는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전자를 고십현, 후자를 신십현(新十玄)이라고 부른다.
신십현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 일당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이다. 이 중 광협자재문애문과 주반원명구덕문은 고십현에서의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과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을 변형한 것이니, 사사무애 연기라기보다 이사무애연기로 혼동하게 될까 염려해서이다.
또 유심회전선성문은 전체 연기문의 근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은밀현료구성문은 고십현의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 심현연기를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시구족상응문은 십현연기의 총설이다. 일체제법은 다 10의(十義 : 敎義, 理事, 境智, 行位, 因果, 依正, 體用, 人法, 逆順, 感應)를 동시에 구족상응하여 원만히 조화되어 있음을 말한다.
연꽃의 일례를 들어보자. 먼저, 연꽃은 우리에게 연꽃이라는 알음[知解]을 내게 한다. 여기서 연꽃 자체는 능전교(能詮敎)이며, 연꽃이라는 지해는 소전의(所詮義)이므로 연꽃이라는 하나의 사법(事法)에 교와 의가 동시에 구족해 있음을 알게 된다.<교의>.
또 이 연꽃의 모습은 사법이며 연꽃의 체는 이성이다. 연꽃은 사건과 원리의 양면을 구족하고 있는 것이다.<이사>. 또 연꽃은 인(因)이면서 과(果)인[인과] 등이다.
연꽃이라는 하나의 사법에 이러한 10의의 전세계가 동시에 구족해 있다. 연꽃과 같이 일체법도 다 서로 대립적인 모든 개념을 대표하는 이 10의를 동시에 구족하고 상용하여 있다.
둘째, 광협자재무애문은 연기 제법에 각각 너르고 좁은 광협이 있으면서도 무애하다는 것이다. 간격이 멀든 가깝든 간에 모든 존재들이 아무런 장애가 없이 서로 친교하다는 완전한 자유의 이론이다.
고십현에서의 제장순잡구덕문은 순(純)과 잡(雜)이 본분위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일념에 구족하여 원융무애함을 말한다. 순수한 것과 잡박한 것이 섞여 있으나 순수한 것은 순수한 대로 잡된 것은 잡된 대로 제 자리에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일다상용부동문은 하나의 전체가 서로 용납하는 신비이다. 하나는 전체에 들고<一入多>, 전체는 하나에 녹아있어<多入一> 무애자재하다. 그러면서도 각각 저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와 전체가 혼란되지 않는 상입(相入)의 소식이다.
상입이란 이것과 저것이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여 걸림 없이 융합하는 것이다. 흔히 햇빛과 형광등빛들이 서로 사귀어 무애교섭함에 비유하며, 조그만 카메라 렌즈에 산하대지가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고도 있다.
하나란 하나라는 자성을 가진 확정적인 하나가 아니라 연기한 하나이다. 여럿에 의해 포용되고 여럿과 동일한 하나이다. 의상(義湘)은 이를 수십전법(數十詮法)으로 설명하고 있다.
넷째, 제법상즉자재문은 모든 요소들이 서로 동일시된다는, 궁극적 차별로부터의 자유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다른 이와 동일시함으로써 종합적인 동일화가 이루어지니 독특한 대승의 실천이론이다.
서로 비춰보고 서로 동일시한 결과 우리는 함께 조화하여 움직인다. 두 가지가 하나로 융화하는 즉(卽)은, 우유와 물처럼 본래 하나가 아닌 것을 하나로 합일한 ‘즉’<二物相合>, 손바닥과 손등처럼 겉으로는 두 가지처럼 보이나 본래는 일체인 뜻으로 말하는 ‘즉’<背面相飜>, 물과 물결처럼 한 물건의 채 그대로가 다른 물건인 뜻으로 말하는 ‘즉’<當體全是> 등이 있을 수 있다.
바닷물과 파도가 다르지 않은 것처럼<水波不離> 당체전시로서의 이사무애가 상즉이며, 이에 의한 사사무애가 상즉이니 동풍에 의한 파도<東風波>와 서풍에서의 파도<西風波>가 서로 다르지 않음과 같다.
다섯째, 은밀현료구성문은 숨은 것과 드러난 것이 각각 완전히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금사자를 예로 들면 우리가 사자로서 금사자를 볼 때는 사자뿐이며 금은 없다. 반면 금을 볼 때는 단지 금뿐이며 사자는 없다.
그러나 금사자는 엄연히 금과 사자가 합하여 성립된 것이다 [금사자장]. 반달은 예로 들면 반은 빛나고 반은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감춰진 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화엄현담]. 지구에서 보는 달은 큰 공 크기에 지나지 않으나 실제로 작은 것은 아니다.
달 자체가 늘거나 줄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보인다고 다 있는 것이 아니며, (예 : 신기루) 또 우리가 볼 수 없다고 다 없는 것도 아니다(부처님 세계),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주장이나 사고 또한 이러한 화엄의 총체적 사고방식을 가지도록 해야할 것이다.
여섯째, 미세상용안립문은 미세한 것의 무애한 신비이다. 무한세계가 작은 먼지나 티끌 속에 존재하며, 이들 세계의 일체 먼지 속에 또 다시 무한세계가 존재함을 말한다.
일곱째, 인다라망경계문은 인다라망의 비유에 의한 상호반영의 이론이다. 제석천궁전에 걸린 보배망의 각 보배구슬마다 서로 다른 일체구슬이 비쳐 무한 무진하게 교영하는 것 같이 법계의 일체도 중중무진하게 연기상유하여 무애자재하게 연기해 있는 것이다.
여덟째, 탁사현법생해문은 사실적인 설법으로 진리를 밝히는 것이니, 제연기법이 그대로 법계법문임을 말한 것이다. 모든 사사물물은 그 당체가 그대로 연기 현전한 것이므로 두두물물이 다 바로자나진법신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비유는 곧 바로 법의 상징이다. 법이 비유하고 비유가 곧 법이다. 그래서 화엄의 상징은 직현(直顯)인 것이다.
아홉째, 십세격법이성문은 십세(十世)가 시간에 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즉상입하여 하나의 총합을 이루지만, 그러나 전후장단의 구별이 뚜렷하여 질서가 정연한 것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각각 삼세가 있어 구세가 되고 그 구세는 한생각(一念)에 포섭되므로 십세이다. 또 일념을 열면 구세가 되므로 합하여 십세이다. 오늘의 나를 기점으로 보면 아버지는 어제이고 할아버지는 그제며, 아들은 내일이고 손주는 모래에 해당된다. 그제는 과거의 과거이고 어제는 현재의 과거이자 과거의 현재이다.
오늘은 현재의 현재이면서 과거의 미래이고 미래의 과거이다. 내일은 현재의 미래이고 미래의 현재이다. 모레는 미래의 미래이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 삽세에 각각 삽세가 있다고 말해지며, 이 구세가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으므로 합하여 십세가 된다. 그래서 일념이 무량겁이요, 무량겁이 일념이나 그러나 십세는 또 낱낱이 서로 혼잡함이 없어 완연히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
열째, 주만원명구덕문은 우주 법계에는 어느 한 사물도 스스로 혼자 생겨나거나 독립하여 존재함이 없이, 서로 주(主)가 되고 반(伴)이 되어 모든 덕을 원만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체와 객체, 주인과 수행원이 조화롭고 더불어 일하는 미덕을 완성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이는 고십현의 유심회전선성문을 개조한 것이니, 여기서 유심이란 여래장 자성청정심이다. 이 진여 일심이 회전하여 잘 연기의 제법을 성립한다는 뜻이니, 모든 법은 이 일심의 변화작용에 지나지 않으므로 유심인 것이다.
그런데 이 유심은 다시 여래의 과덕을 구족한 성기(性起) 구덕(具德)의 진여일심으로 해석됨으로써 사사무애법계연기의 신비를 드러내는데 손색이 없게 되었다.
십현연기와 아울러 육상원융(六相圓融) 또한 화엄무진연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또 다른 측면으로 중시되고 있다.
육상(六相)이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말한다. 이러한 세 쌍의 대립되는 개념, 모습이 서로 원융무애하는 관계에 놓여있어 하나가 다른 다섯을 포함하면서도 또한 여섯이 그나름의 모습을 잃지 않음으로써 법계연기가 성립한다는 설이다.
이 육상의 명칭과 연원은 [화엄경] [십지품]의 초, 환희지에서 보살이 일으키는 열 가지 대원 중 네번째 원에 해당하는 수행이리원(修行二利願)을 설하는 가운데 보이고 있다. 보살이 모든 바라밀행을 닦는데 이 육상의 방법으로 보살행을 원만히 수행함으로써 일행일체행(一行一切行)이 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십지품의 별행경인 십지경에도 보이며 십지경을 주석한 세친의 십지경론(十地經論)에서 육상이 보살수행에만 그치지 않고 일체제법에 다 통하는 것으로 논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다 총상 내지 괴상의 육상을 갖추고 있으며 이 육상은 서로 다른 상을 방해하지 않고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이 일체가 되어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육상교의의 이론적 조직은 십지경론설을 받아들인 정영사 혜원에게서 발아하여 지엄 [수현기, 오십요문답]을 거쳐 신라 의상[일승법계도]과 현수법장[화엄오교장, 탐현기 등]에 의해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육상을 집(屋居)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육상의 내용을 보면,
총상이란 일체 제법은 연기된 존재이니 여러 연이 모여 성립된 전체를 말한다. 하나가 많은 이름을 갖추고 있고, 하나에 많은 덕을 포함한 것이니 부분을 총괄한 전체가 총상이다. 별상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과 부분인 각각의 연으로서, 이 별상은 총상에 의지하여 전체를 완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집을 총상으로 하면 집을 구성하고 있는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이 별상이 된다.
우리 얼굴을 총상이라 한다면 눈 귀 코 입 등은 별상이다. 그러나 눈이 얼굴이고 얼굴속의 눈이다. 총상과 별상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원융이다.
동상이란 별상의 하나하나가 서로 어김이 없이 조화되어 전체인 총상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이상이란 별상이 서로 혼동되지 않고 조화되어 있으면서도 제각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상이다.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이 서로 화합하여 집을 이루는데 서로 연이되어 어긋나지 않음이 동상이며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이 각각 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이상이다.
눈 귀 코 입 등이 조화되어 얼굴모습을 이루고 있음이 동상이며, 눈 귀 코 입 등이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이 이상이다.
성상이란 부분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성립시키고 있음을 말하며, 괴상은 부분부분이 각각 자법(自法)에 머물러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말한다.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이 집을 이루는 역용이 성상이며, 그러나 대들보는 대들보 역할을 하고 기둥은 기둥역할을 하는 것이 괴상이다. 눈 귀 코 입 등이 서로 연기하여 얼굴 역할을 함이 성상이며 눈 귀 코 입 등이 각각 다른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이 괴상이다.
이들 육상은 차례로 보편성, 특수성, 유사성, 다양성, 통합성, 차별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다. 또한 육상의 관계를 체(體) 상(相) 용(用)으로 나누어보면 총상 별상의 2상은 연기 제법의 체의 측면이고 동상 이상은 상의 측면이며 성상 괴상은 용의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그리고 육상 가운데 총상 동상 성상의 3 상은 또 같은 관점에서 논의 되고 있는 것으로 이를 원융문(圓融門)이라 하고 별상 이상 괴상도 공통된 관점에서 파악된 것으로 이를 항포문(行布門)이라 한다. 이 원융문은 평등문이고 항포문은 차별문이다. 그런데 무차별의 원융문은 차별을 나타내는 항포문을 떠나있는 것이 아니다. 항포자체가 분명하면서도 항포가 곧 원융이 된다. 여기에 전체와 부분, 하나와 무량이 무애한 무진 법계의 연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만 이는 지혜의 경계인 것으로 증득을 통해 구현함을 요하는 것이다.
즉, 화엄경의 십바라밀행을 예로 들면 보시바라밀과 지계바라밀 등이 각각 다르나 보시바라밀을 통해서도 불세계를 장엄할 수 있고 지계바라밀을 통해서도 부처님세계를 드러낼 수 있다. 화엄보살의 42계위가 분명하면서도 초발심주에서 처음 발심한 때가 바로 정각을 성취한 때이다. 일성일체성(一成一切成)인 것이다. 이 방편에 의하여 일불승에 회귀하여 불세계를 장엄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십현 육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법계연기는 상즉 상입의 도리가 바탕이 되고 있으니, 이의 논리적 근거는 삼성동이(三性同異)와 연기인문육의(緣起因門六義)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삼성동이설이란 사, 리 일체의 만유를 총괄하여 연기제법을 3종의 성질로 나눈 진여원성(眞如圓成)과 의타(依他) 소집(所執)의 삼성이 하나도 아니나 그렇다고 다르지도 아니함을 말한다. 진여는 불변(不變)이나 연을 따르는 수연(隨緣)의 성품이 있고, 의타는 연기에 의해 일어난 것이므로 가유인 사유(似有)와 무성(無성), 소집은 범부 망정에 의해 나타나 실체가 없으므로 정유(情有)와 이무(理無)의 성질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진여의 불변과 의타의 무성과 소집의 이무는 다른 성질이 아니니 이를 본삼성이라 하며, 수연과 사유와 정유 또한 다르지 아니하니 이를 말삼성이라 한다.
진의 본은 망의 말 일체를 포섭하고 있고 망의 말에는 진여의 본이 고루 미쳐 있으니 본말진망이 동일체로서 무애함을 말한다. 이는 유식교학의 삼성설을 자료로 하여 여래장사상에서의 진여수연설에 입각하여, 초월해야 할 범부세계를 화합해야 할 대립세계로 의미를 전환 하고는 진망이 교철하여 원융무애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삼성동이설이 괴상에서 설정된 것이라면 법계연기의 원인인 인의 육의를 밝힌 것이 연기인문육의이다. 진여에 수연의 뜻이 있기에 미계의 대립인 육문의가 나오는 것이다. 제법이 생기하는 원인에는 반드시 공유력부대연(空有力不待緣), 공유력대연(空有力待緣), 공무력대연(空無力待緣), 유유력부대연(有有力釜待緣), 유유력대연(有有力待緣), 유무력대연(有無力待緣) 육의를 갖추어야 한다.
인의 체가 공하고 유한 2문상에 각각 인에 힘이 있어 연을 기다리지 않는 경우와, 인에 힘이 있어도 연과 함께 만나 일어나는 경우와, 인에 힘이 없어 언제나 연을 만나야만 제법이 생기하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이 역시 유식교학의 종자육의(種子六義) <찰나멸, 과구유, 대중연, 성결정, 인자과, 항수전>를 전용한 것으로 종자육의가 아뢰야식에 포함되어 초월해야 할 망의 경계라면, 법장은 이를 극복되어져야 할 대립의 경계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하여 공유의 대립은 상즉(相卽)의 원리로, 유력무력의 대립은 상입(相入)의 원리로, 대연부대연은 동체이체(同體異體)의 원리로 해결하고 있다. 인이 연을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인과 연은 이체이다. 그러나 인이 연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인은 연과 동체가 아니면 아니된다. 연은 원래 인중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인과 연이 서로 유력 무력이 되는 것은, 인의 역용이 연으로 들어가고 연의 역용이 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상입의 관계가 생긴다.
그러나 인과 연이 다 공유 2의를 갖추고 있으므로 인유면 연공, 연유면 인공이 되어 인, 연은 체의 공유에 의하여 상즉의 뜻이 성립한다. 이 원리는 인과 연에 국한되지 않고 과에 대해서도 역시 적용되어 무진연기의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체의 공유에서 오는 상즉, 역용의 유무에서 오는 상입, 연의 대연부대연에서 오는 동체이체의 도리를 근거로하여 십현 육상과 같은 화엄의 무진 연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화엄의 사사무애 무진법계를 그대로 관하는 관법을 통해 무애자재한 경지에서 노닐게 함이 중국화엄교의 수행법인 것이다.
내가 본래불임을 철저히 자각함으로써 우리에게 본래 구족해 있는 불성을 여온없이 드러내는 것이 화엄의 보살행이다. 다른 이를 나와 동일시하고 나의 힘을 다른 이에게 미루어 주어, 다른 이와 함께하고 하나되었을 때 절대 독존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석존께서 탄생게에서 보여주신 "청상천하 유아독존"의 경계이리라.
해주스님
청도 운문사에서 출가, 공주 동학사강원대교과를 졸업하였으며, 동국대학교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화엄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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