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스크랩] 43. 摘茶更莫別思量 - 찻잎을 따면서…

수선님 2018. 3. 4. 13:28

찻잎을 따면서 다른 생각을 품지 않는다 - 연송집(聯頌集)

 

 

차나무에서 잎을 따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한가롭게 보입니다. 하지만 잎을 따는 당사자들은 열심히 잎을 따는 일 말고는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찻잎을 따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찻잎을 따면서 다른 생각을 품지 않는다(摘茶更莫別思量)"는 유명한 선어입니다.

 

이 문장의 대구는 "분명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곧 도량이다(處處分明是道場)"입니다. 현재 있는 곳이 어디든지 간에 자기가 존재하는 방식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수행하는 장소, 곧 도량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선어 "어디서나 주인답게 일을 하면 있는 곳이 다 참되다(隨處作主 立處皆眞)" 또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도량(步步是道場)"과도 상통하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잇을 때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전력을 다하면 자연히 즐거움을 느껴 사는 보람을 갖게 됩니다. 삶의 보람이란 스스로 찾아내며, 남에게 물어보거나 책을 보고 지식으로 배워서는 몸에 배지 않습니다. 사는 보람을 피부로 느끼고 몸으로 이해해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빅토르 프랭클(Victor Frankl) 박사는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을 무더기로 학살한 현장인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글자 그대로 지옥의 한가운데서, 그는 인간이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극명하게 겪었습니다.

 

그는 그 처참한 현장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빵을 서로 나눠 먹으면서 남을 위로하는 순수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체험을 통하여 인간이 사는 보람은 곧 "주는 것과 참는 것"이라고 그는 결론짓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품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생각하고 나서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숨쉬는 생명의 의식 그대로 행동할 때 순수한 인간의 자비심이 나오게 됩니다. 프랭클은 이 순수한 생명의 숨결을 '초월적 무의식'이라 불렀습니다. 이 무의식이 나타나는 것이면 어떤 지옥도 도량이 됩니다.

 

직장에서도 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 매일 빈틈없이 일한다면 사고나 부상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삶의 진정한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느끼는 보람이란 책상 위에서 배운 관념론에서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무게가 있어 보입니다.

 

松原泰道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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