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修心訣)(12)
- 마음에 산란함 없는 것이 선정 -
- 마음이 어리석지 않음이 지혜 -
그래서 본체를 떠나지 않는 작용이므로
지혜는 선정을 떠나지 않았고,
작용을 떠나지 않은 본체이므로
선정은 지혜를 떠나지 않았다.
따라서 선정은 곧 지혜이므로
고요하면서도 항상 아는 것이고,
지혜는 곧 선정이므로
알면서도 항상 고요한 것이다.
그래서
조계스님이
‘마음에 산란함이 없는 것이 자기 성품의 선정이요,
마음이 어리석지 않음이 자기 성품의 지혜이다.
’한 말과 같다. 선정(遮)과 지혜(照)가 둘이 아니게 된다면 이것이 곧 돈문에 들어간 뛰어난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아울러 닦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고요함으로써 반연하는 생각들을 다스리고 그 다음에 깨어있는 정신으로
혼미함을 다스려야 한다고 하면서, 선후를 따라 다스려 혼미함과 산란함을 가라앉혀 고요함에 들어가는 사람은 점문의 열등한 근기의
수행이다. 그는 비록 깨어있음과 고요함을 평등하게 한다고 하지만 고요함만을 취하는 수행을 면하지 못하니, 어찌 깨달은 사람이
본래의 고요함과 본래의 앎을 떠나지 않고 자유롭게 두 가지를 함께 닦는 것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조계스님은 ‘스스로가 깨쳐서
수행하는 것은 따지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선후를 따지면 그는 미혹된 사람이다.’하였다.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진다는 뜻은 애써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무위라서 어떤 특별한 때도
없다. 즉 빛을 보고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그러하고, 옷 입고 밥 먹을 때에도 그러하고, 똥 누고 오줌 눌 때에도 그러하고, 남과
이야기할 때에도 그러하고, 내지 걷거나 서 있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혹은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언제든지 항상
그러하다. 마치 빈배가 물결을 따라 올랐다 내렸다 하고, 흐르는 물이 산을 돌아나갈 때 굽이돌아 가기도 하고 바로 흘러가기도
하듯이 마음마음이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무심하여 자유롭고, 내일도 무심하여 자유로워서 온갖 반연을 따라도
아무런 장애가 없고, 악을 끊거나 선을 닦는다는 생각도 없다.
만약 이처럼 깨달아서 고요함과 아는 것에 자유로워서
그
러므로 깨친 사람의 경지에서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의 저서
출처: Buddhapia, 김원각<시인·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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