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29칙은 대수 화상에게 “시방세계가 멸망하게 될 때 불성(본래면목)도 파괴되는가?”라고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대수법진 화상에게 질문했다. “시방세계가 종말하게 될 때 일어나는 맹화(猛火)는 일체의 모든 것을 불태워 삼천 대천의 시방세계가 멸망하게 되는데, 이것(본래면목)도 파괴됩니까?” 대수 화상이 말했다. “파괴된다.”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도 따라 갑니까?” 대수 화상이 말했다. “그도 따라 간다”
擧. 僧問大隋, 劫火洞然大千俱壞. 未審, 這箇壞, 不壞. 隋云, 壞. 僧云, 恁麽則隋他去也. 隋云, 隋他去.
대수 화상은 위산영우의 법을 이은 대안(大安: 793~883)선사의 제자 법진(法眞 834~919)을 말한다. 대수법진 화상에 대한 자료는 〈조당집〉 제19권, 〈전등록〉 제11권 등에 전하고 있으며, 〈고존숙어록〉 제35권에는 그의 법문을 기록한 어록도 1권 전한다. 이 공안은 〈전등록〉에 의거하고 있으며, 〈종용록〉 제30칙에도 인용하고 있다.
‘평창’에는 대수 화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대수법진 화상은 대안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60여명의 선지식을 참문하였다. 일찌기 위산영우 선사의 문하에 있으면서 불(火)을 관리하는 소임(火頭)을 보고 있었다. 위산 화상이 ‘그대는 여기 여러 해 있었는데, 불법에 대해서 전혀 질문도 하지 않는구나’하자,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할까요?’ 라고 하니, ‘그러면 무엇이 부처인가를 묻도록 하라’고 말했다. 대수 화상은 곧장 손으로 위산 화상의 입을 막아버리자 위산이 말했다. ‘이후로도 그대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린 사람을 과연 내가 만날 수 있을까?’ ‘그 뒤로 고향인 사천 동천(東川)으로 돌아가 붕구산 가는 길목에 차를 달여서 오가는 길손을 3년간이나 대접하고, 뒤에 세간에 나아가 대수산에서 법당을 열고 수행자를 지도 하였다’ 부처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벌써 부처를 대상으로 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객(主客)이 나누어지며, 진불(眞佛)이 아니다. 그래서 대수 화상은 부처나 불법을 대상으로 제시한 상대적인 차별심을 모두 쓸어버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본칙에 스님이 “시방세계가 종말하게 될 때 일어나는 맹화(猛火)는 일체의 모든 것을 불태워 삼천 대천의 시방세계가 멸망(劫火洞然 大千俱壞)하게 되는데, 이것(這箇)도 파괴됩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은 〈인왕호국반야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토대로 하고 있다. “겁화(劫火)의 불길이 훨훨 타니 대천세계를 모두 파괴시킨다. 수미산과 거해(巨海)도 마멸하여 남김도 없고, 범천(梵天)과 천룡(天龍), 모든 유정(有情)도 모두 파멸해 버리는데, 어찌 이 몸이 남을 수가 있으랴!” 이 게송은 〈조정사원〉 제2권에도 인용하고 있는데, 〈구사론〉 ‘세간품’에 “성주괴공(成住壞空) 삼재겁(三災劫)이 일어나면 일체가 파괴된다”는 말이 있다. 겁(劫)은 성겁(成劫), 주겁(住劫), 괴겁(壞劫), 공겁(空劫)의 사겁(四劫)으로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는 영원한 시간을 말한다.
본칙의 질문은 괴겁(壞劫)에 관한 것으로 삼재(三災)가 있다. 먼저 큰 화재(火災)로 전 세계를 불태워 버리고, 그 위에 큰 수재(水災)로 일체를 씻어버리고, 다시 큰 풍재(風災)로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공겁(空劫)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겁화(劫火)는 괴겁(壞劫)에 일어나는 화재(火災)를 말하며, 삼천 대천세계를 모두 불태워 버리기 때문에 어떠한 존재도 남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을 겁화통연(劫火洞然)이라고 한다.
대개 모든 사람들은 우주는 파괴되어도 부처님이나 신(神)은 영원한 존재라고 믿고 있으며,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영원한 존재로서 천당과 극락에 간다고 믿고 있다. 종교의 목표는 영혼의 불멸(不滅)과 영생(永生)이며, 신(神)과 부처는 영원한 불멸의 존재로서 세계가 종말(終末)해도 신이나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과 천국으로 맞이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질문한 스님도 “겁화동연(劫火洞然)에 삼천 대천 세계가 모두 파괴되면 이것(본래면목)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인연으로 생긴 모든 존재는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생노병사의 무상한 존재인데, 본래면목도 함께 파괴 되는가 라는 질문이다. 즉 육체는 시절인연으로 죽어 없어지는데, 불성(마음)도 함께 파괴되는가? 육체와 마음(불성)을 나누고 불성을 영혼으로 착각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질문하고 있다. 즉 고정관념(常見)에 떨어진 것이다.
대수 화상은 “파괴되고 말고. 본래면목도 영원한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질문한 스님이 짊어지고 있는 영원한 존재라고 생각한 본래면목에 대한 집착과 착각을 떨쳐버리기 위한 자비심이다. 원오도 “구멍 없는 철추로 스님의 얼굴을 쳤다”고 평하고 있다. 불성(본래면목)은 중생의 생멸심(生滅心: 생사심)이 없는 자각의 주체이지 우파니샤드에서 주장하는 윤회의 실체로서 영원불멸의 존재인 영혼(Atman)은 아니다. 불성을 식신(識神: 중생심)으로 착각하면 정법의 안목 없는 불교인이고, 불성을 영혼으로 착각하면 불법을 모르는 외도가 된다.
스님은 “대천이 모두 함께 파괴되면 그(본래면목)도 함께 따라 본래의 공(空)으로 되돌아 갑니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즉 나는 지금까지 불성(본래면목)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일체의 존재와 함께 파괴되는 것입니까? 믿기 어렵다는 질문이다. 불법은 몸과 마음이 하나(身心一如)이며 본성과 형상이 둘이 아닌(性相不二) 경지를 설하고 있다. 혜충 국사가 “몸은 죽어 없어지지만 마음(불성)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들어 〈육조단경〉과 남방의 종지를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외도법을 불법으로 착각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대수 화상은 “그렇다. 본래면목도 대천세계와 함께 파괴되고 말고”라고 말했다. 불성(본래면목)은 번뇌 망념의 생멸심이 없고, 시작과 마침도 없이 대천세계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오는 “앞의 화살은 그래도 가볍게 박혔으나 뒤에 화살은 깊이 박혔다”고 평하고 있다. 대답은 질문속에 있다고 한 것처럼, 질문한 스님의 의문이 깊으면 깊을수록 대수화상의 대답이 깊이 골수에 박히게 된다.
‘평창’에는 다음과 같은 일단도 전한다. “훗날 어떤 스님이 수산주(修山主)에게 질문했다. ‘겁화동연(劫火洞然)에 대천세계가 모두 타서 파괴되는데 이것(불성)도 파괴됩니가?’ ‘파괴되지 않는다’ ‘왜 파괴되지 않습니까?’ ‘대천세계와 같기 때문이다’ ‘파괴된다(壞)고 말해도 사람들에게 장애가 되고, 파괴되지 않는다(不壞)라고 말해도 장애가 된다.’”
이 일단은 대수 화상의 대답과 반대로 대답하고 있다. ‘파괴된다’는 생각도 편견이요, ‘파괴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편견이다. 어떤 때는 긍정, 어떤 때는 부정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은 질문자의 견해에 따라서 방편으로 대답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성(본래면목)은 궁극적으로는 긍정(壞)과 부정(不壞)의 차별심(중생심)을 모두 초월한 경지이며, 일체의 만법과 하나 된 경지(萬法一如)에서 지금 여기 자신의 삶(일)을 지혜롭게 사는 자각의 주체인 것이다.
평창에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투자대동 화상이 이 스님을 통해서 대수 화상의 법문을 듣고 향을 올리고 절을 하면서 “서촉에 고불(古佛)이 출현 하였다. 그대는 속히 돌아가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스님이 다시 대수화상을 찾아 갔을 때는 이미 입적한 이후였다고 한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겁화(劫火)의 불빛 속에 질문을 던지니, 납승이 오히려 두 겹의 관문에 막혀 버렸구나.” 질문한 스님은 “불성을 파괴(壞)하는가? 파괴하지 않는가(不壞)”라며 차별심에 떨어진 것을 두 겹의 관문에 막힌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가엾다. 그 스님은 대수 화상이 ‘그도 따라 간다’는 한 마디를 듣고 깨닫지 못하여 만 리 밖의 투자산 대동화상의 말을 듣고 되돌아오니 대수화상은 입적했다. 쓸데없이 대수산과 투자산의 먼 길을 헛되이 애써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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