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해설

[스크랩] 입보리행론 해설 83. 오로지 중생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

수선님 2018. 10. 7. 11:56

입보리행론 해설 83. 오로지 중생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호계정지품에서 말씀하셨던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97   보살의 행에 대해

      수없이 말씀하신 것으로,

      마음을 닦는 행이

      확고해질 때까지 행해야 하네.

 

98   낮밤으로 세 번씩

      삼취경(三聚經)*을 독송하며

      부처님과 보살님께 의지하면

      남은 죄가 소멸되리라.

 

99   자의든 타의든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말씀하신 그대로를

      매순간,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네.

 

100   보살에게 배움이 아닌 것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그렇게 임하는 지혜로운 자에게

        공덕이 되지 않는 것은 없네.

 

101   직접이든 간접이든

        중생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면 행하지 말며,

        오로지 중생의 이익을 위하고,

        모든 행은 깨달음을 위하여 회향해야 하네.


선한 마음으로 중생을 대하고, 몸과 입과 마음의 세 가지 행위 모두가 중생의 이익을 위하고, 중생을 위해 회향을 한다면 중생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일체지를 얻는 원인이 됩니다. 또 한편으론 선업을 짓는 것입니다.

    

나가르주나는 [고귀한 화환]에서 “대지와 물과 불, 바람과 보병, 나무가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언제나 중생을 위하여 이 몸을 쓰이게 하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입보리행론]에서도 “지대를 비롯한 사대원소와 영원한 허공조차 무량한 중생 삶에 갖가지 바탕이 되게 하소서.” 하고 하셨던 것입니다.

    

수행을 하려면 선지식에게 의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버리고 취할 바를 보이시는 존재가 선지식입니다.

 

‘스승’은 명칭뿐만 아니라 선지식으로서 자질 역시 갖춘 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항상 선지식은 대승의 가르침에 정통하고, 보리심의 범행인 교학과 수행의 두 가지 덕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승의 가르침에 정통해야 합니다. 대승의 가르침에 정통하면, 소승의 가르침에도 정통합니다.

 

소승의 가르침에 정통하다 해도 대승의 가르침에는 정통하지 않을 수 있지만,

대승에 정통하면 당연히 소승에는 정통합니다.

 

그처럼 밀교에 정통하면 현교에 정통합니다.

현교에만 정통하다면 밀교에 대해 모를 수도 있습니다.

    

 

‘자격을 갖춘 상태’ 즉 위 단계의 교학과 수행을 갖추고 있으면 아래 단계의 법은 알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 단계의 법에 정통하다 해서 위 단계의 법을 알 수는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승의 가르침에 정통하고..”는 대. 소승의 길을 보임에 있어

정통하고 들음(문聞)의 덕을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보리심의 수행은 교리에 밝거나 배움의 덕이 있다 해도 수행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림 속의 꽃’과 같습니다.

 

‘그림 속의 꽃’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듯이 문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통달했다 할지라도

그 참뜻을 모른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들은 대로 성취하고 보리심을 발하여 범행에 머무는 스승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받들 수 있어야 합니다.

 

선재동자의 일대기에 실린 이 말씀은 [화엄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한국에서도 화엄경이 있지요?

[화엄경] 가운데 선재동자의 일대기에 있는 입법계품의 스승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할 것입니다.


* 삼취경(三聚經)

석가모니 부처님을 윗로 35분 부처님께 죄악을 참회하며 예경하고, 복덕을 수희찬탄하며, 보리심에 회향하는 내용의 짧은 경전이다. 산스크리트어본과 티베트어 번역본만 남아있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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