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스님

[스크랩] 근기(根機)에 따른 불교의례

수선님 2018. 10. 7. 13:27

 

 

 

 

근기(根機)에 따른 불교의례

마성 지음

 

 

오늘의 한국불교에 있어서 재가 불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재가 불자를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에 일반 불자가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각종 사찰의 행사에 동참했을 때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찰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는 불공과 제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불교에는 행사와 제사는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법회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상당수의 사찰에서는 불공 · 기도 · 방생 등 각종 이름을 붙인 불사와 49재 · 천도재 · 위령재 · 수륙재 등 제사의례가 1년 내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가 이처럼 의례 불교화(儀禮佛敎化) 된 것은 조선시대라고 할 수 있다. 배불정책하의 조선시대의 불교는 교학(敎學)의 부진, 교단의 쇠퇴 등으로 말미암아 상층사회에 포교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한 의례불교가 크게 성행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의례불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의례요집(儀禮要集)의 새로운 정비가 몇 차례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의식집으로 <범음집(梵音集)>, <작법구감(作法龜鑑)>, <동음집(同音集)>, <일판집(一判集)> 등이 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안진호(安震湖) 스님이 1931년 <석문의범(釋門儀範)>을 편찬했다. 이 <석문의범>이 곧 현행 한국불교의 '의식(儀式)'인 것이다. 석문의범은 상하 2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편은 예경(禮敬) · 축원(祝願) · 송주(誦呪) · 재공(齋供) · 각소(各疏) 5장이고, 하편은 각청(各請) · 시식(施食) · 배송(拜送) · 점안(點眼) · 이운(移運) · 수계(受戒) · 다비(茶毘) · 제반(諸般) · 방생(放生) · 지송(持誦) · 간례(簡禮) · 가곡(歌曲) · 신비(神秘) 등 13장으로 편성되어 있다.

석문의범의 특징은 재래 불교의식집에서 강조한 의식음악인 범패(梵唄)의 기능보다는 지금까지 별도로 유행하고 있던 세분화된 의식문을 교리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간추려 재편성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중에는 아직도 비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비가 요망되고 있다.

사실 불교의례는 자행의례(自行儀禮)와 화타의례(化他儀禮)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자행의례란 수도(修道)를 위한 수행의례이고, 화타의례란 기원의례 회향의례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출가자가 재가자의 의뢰에 의하여 가지(加持)나 기도를 하고 그 선근(善根) 공덕을 사자(死者) 혹은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는 의례를 말한다.

여기서 석문의범의 예경 · 축원 · 송주 등은 모든 불자가 조석으로 행해야 할 자행의례이지만, 기타 시식 · 다비 · 방생 등은 화타의례에 속한다.

그런데 안진호 스님이 석문의범을 편찬하게 된 동기가 서문(序文)과 범례(凡例)에 나타나 있다. 이에 의하면 첫째 의식은 상근기(上根機)를 위한 것이 아니고 중류(中流) 이하의 근기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둘째 의식은 어디까지나 방편문(方便門)이라는 것이다. 염불과 참선도 방편인데 하물며 의식은 말할 나위 없이 방편 중에서도 방편임은 자명(自明)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불타 재세시의 교단 형태를 거의 원형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자행의례는 있으나 화타의례는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불교라는 종교가 발생하게 된 비경에서도 나타나 있다.

불타 재세시 인도에는 바라문교가 크게 성행하고 있었다. 바라문교는 철저한 계급제도 위에서 출발한 것이며, 종교적으로는 제사만능주의였다. 이러한 때에 활동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도 후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재래 바라문교, 즉 힌두이즘(Hinduism)에 정면으로 반박하였는데, ①계급을 반대했고, ②제사를 반대했으며, ③관념적 명상을 반대했고, ④행의식주의(行儀式主義)를 반대했으며, ⑤주정주의(主情主義, emotionalism)를 반대했고, ⑥ 비합리적인 고전(古典: 베다 등)을 반대했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어떻게 해서 변질되었는지 살펴보자. 일본의 불교학자 죽중신상(竹中信常)에 의하면, 불교교리는 3단계의 계정(階程)으로 변했다고 한다. 첫째는 자율자수(自律自修)의 수행 단계이며, 둘째는 수행의 공덕을 인정하고 자타공수(自他共修)의 형식을 취하는 단계이고, 셋째는 그 공덕을 타인에게 혹은 사자(死者)에게 회향하기 위하여 승려에게 의뢰하여 타수적(他修的)으로 추선공양(追善供養) 하는 단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불교의식도 교리변천과 함께 대자적(對自的) 단계에서 대타적(對他的) 단계로 변해 갔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방편문인 의식이 현재 한국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이는 어딘가 모르게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 수 없다.

불타의 가르침은 수행과 포교를 통해 전승된다. 그러므로 사찰의 기능 또한 수행과 설법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법회가 모든 불교의식보다 우위에 서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불교의식의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에 있어서 의례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례는 어디까지나 방편이지 본래의 진실한 교법(敎法)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도한 한국불교에서 행하고 있는 각종 제사의례는 분명 불타의 진의(眞意)에 위배되는 것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法)에 의지(의지)할 것이냐 방편문인 의례에 의지할 것이냐, 의례에 의지한다면 자행의례에 의지할 것이냐 아니면 화타의례에 의존할 것이냐는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부처님 마을 제59호, 1990년 9월호.]

 

 

마성스님 - 팔리문헌연구소장  

한국불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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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불사(原佛寺)
글쓴이 : 단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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