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세상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체지를 갖춘 사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답] 그렇지 않다. 보지 못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보지 못했다 해서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첫째는 실제로 있으나 인연에 가리어진 까닭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사람들의 성바지의 시초나 설산(雪山)199)의 무게나 항하강의 모래 수효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있으나 알 수가 없다. |
둘째는 실제로 없는 것이니,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다. 마치 둘째 머리와 셋째 손 같은 것으로 이러한 것들은 가리어진 인연은 없으나 볼 수가 없다. |
마찬가지로 그대는 일체지를 갖춘 사람을 인연에 가리어진 까닭에 보지 못할 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
무엇이 가리어진 인연인가? 네 가지 믿음[四信]을 얻지 못한 채 마음이 삿된 것에 집착되는 것이다. 그대들은 이 인연의 가리움 때문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
[문]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여러 사람이 모여도 다 알 수 없거늘 하물며 어찌 한 사람이 다 알겠는가. 그러므로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란 없다. |
198) 찰제리․거사․사문․바라문․사천왕․도리천․마라․범천을 말한다. |
199) 지금의 히말라야(Himālaya)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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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모든 법이 끝이 한량없듯이 지혜 역시 한량없고 셀 수 없고 끝이 없다. 마치 함(函)이 크면 뚜껑도 크고 함이 작으면 뚜껑도 작은 것과 같다. |
[문] 부처님은 스스로 부처의 가르침만을 말씀하시나 다른 경서[經]에서처럼 약 짓는 법[藥方]200)․천문․수학이나 세속의 경건 등을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만일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가르침들을 무슨 이유로 말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아닌 줄 알 수 있다. |
[답] 비록 온갖 법을 알지만 필요하기에 말하고, 필요하지 않기에 말하지 않는다. 묻는 이가 있기 때문에 말하고 묻는 이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
또한 온갖 법에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위법(有爲法)이요, 둘째는 무위법(無爲法)이요, 셋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不可說法]이다. 이것들이 일체법을 포섭한다. |
[문] 열네 가지 난문[難]201)에 대답하지 않으셨으니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열네 가지인가? ‘세계와 나는 항상한가?’ ‘세계와 나는 무상한가?’ ‘세계와 나는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세계와 나는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은가?’ ‘세계와 나는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한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닌가?’ ‘죽은 뒤 영혼[神]은 뒷세상으로 가는가?’ ‘뒷세상으로 가지 않는가?’ ‘가기도 하고 가지 않기도 하는가?’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 몸이 곧 영혼인가?’ ‘몸과 영혼은 서로 다른가?’ 등이니, 만약에 부처님이 일체지를 갖춘 분이라면 이 열네 가지 난문에 어째서 대답하지 않으셨는가? |
[답] 이 일들은 진실이 없기 때문에 대답치 않으셨다. 모든 법이 항상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모든 법이 단절된다는 것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
이는 마치 쇠뿔을 짠다면 몇 되의 젖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는 따위의 물음과 같으니,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200) 범어로는 bhaiṣajya. |
201) 난(難, upārambha)이란 ‘논란,’ ‘이론(異論)’ 등을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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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끝이 없어 마치 수레바퀴와 같으니, 처음도 나중도 없다. |
또한 이런 물음에 답하게 되면 이득은 없고 잃어버리는 것만 있어서 사악함 가운데 빠질 뿐이다. 부처님은 이 열네 가지 난문이 항상 4제(諦)와 모든 법의 실상을 가리움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202)
건너려는 곳에 해로운 벌레들이 있는 물이라면 사람들을 건너가라고 하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해야 사람들을 건너게 하는 것과 같다. |
다시 어떤 사람은 “이 일은 온갖 지혜를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알지 못한다” 하는데,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까닭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
또한 어떤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하여 있다 하거나, 있는 것에 대하여 없다 한다면 이는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일체지를 갖춘 사람은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 한다. 부처님은 있는 것을 없다고 하지 않으며,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말씀하시거늘 어찌 일체지를 갖춘 분이라고 말하지 않으랴. |
마치 해가 높은 곳이나 낮은 곳만을 위하거나 평지만을 위하는 일도 없이 골고루 비추는 것 같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을 없게 하지도 않고 없는 것을 있게 하지도 않는다. 항상 진실한 지혜를 말씀하여 지혜와 광명으로 모든 법을 비추시니, 마치 한 길[一道]과 같으시다. |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물었다. |
“대덕이시여, 12인연(因緣)은 부처님이 지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가 지은 것입니까?” |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
“12인연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이가 지은 것도 아니니라.” |
부처님이 계시건 계시지 않건 태어남은 늙고 죽음의 원인이 된다는 이 법은 항상 결정되어 머무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 태어남은 늙고 죽음의 인연이 되며 나아가 무명(無明)203)이 모든 행(行)의 인연이 됨을 말씀하셨다. |
202) 14무기와 같은 질문에 빠지면 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
203) 범어로는 avidyā. 원래 불교철학에 있어서 무명이란 제법에 대한 무지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법의 존재방식, 곧 그 속성이 알려지지 않는 법의 특성을 가리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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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열네 가지 난문에 대해 대답을 하게 되면 허물이 생긴다. |
마치 어떤 사람이 석녀(石女)204)나 황문(黃門)205)의 아들이 큰가 작은가 예쁜가 미운가를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는 대답을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
또한 이 열네 가지 난문은 삿된 소견이요, 진실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참되고 진실된 것만을 가지고 말씀하시니, 그러므로 대답하지 않으신 채 그대로 두신 것이다. |
또한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는 것이 곧 대답이 된다.
네 가지 대답이 있다. 첫째는 결정된 대답이니 ‘부처님은 제일가는 열반이자 안온이다’라고 함이요, 둘째는 뜻을 풀이해 대답함이요, 셋째는 되물어 대답함이요, 넷째는 그대로 두어 대답함이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그대로 두어 대답하신 것이다. |
그대가 “일체지를 갖춘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말은 있으되 뜻[義]이 없으니 크게 망령된 말이다. 실로 일체지를 갖춘 사람은 있다. 왜냐하면 10력(力)을 얻었기 때문이다.206)
또한 바른 곳[處]과 바르지 않은 곳[非處]을 알기 때문이며, 인연과 업보를 알기 때문이며, 선정과 해탈을 알기 때문이며, 중생 근기의 착하고 악함을 알기 때문이며, 갖가지 욕심과 견해를 알기 때문이며, 갖가지 세간의 한량없는 성품을 알기 때문이며, 온갖 것이 마침내 이르는 길을 알기 때문이며, 전생에서 행한 곳을 알기 때문이며, 천안(天眼)을 분명히 얻었기 때문이며, 온갖 누(漏)가 다했음을 알기 때문이며,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함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온갖 세계에서 상품의 법을 말씀하기 때문이며, 감로의 맛207)을 얻었기 때문이며, 중도(中道)의 법을 얻었기 때문이며, 온갖 법의 유위와 무위의 실상을 알기 때문이며, 삼계(三界)의 욕심을 영원히 여의었기 때문이다. |
204) 범어로는 vandhy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를 말한다. |
205) 범어로는 paṇḍaka. 남근이 제거된 남자 혹은 완전한 남근을 갖추지 못한 자를 말한다. |
206) 10력을 얻는다면 일체지인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07) 범어로는 amṛtara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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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 때문에 부처님은 일체지를 갖춘 분이시다. |
[문] 일체지를 갖춘 분이란 어떤 사람인가? |
[답] 으뜸가는 어른이며 삼계의 존귀하신 분이니, 부처님이라 부른다.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정생전륜왕(頂生轉輪王)208)께서는 |
해와 달과 등불의 광명 같으니 |
석가족의 귀하신 종족이며 |
정반왕의 태자님이시었네. |
태어나실 때엔 삼천세계의 |
수미산과 바닷물이 진동했으니 |
늙음과 죽음을 부수기 위하여 |
애민하시는 까닭에 세상에 나셨네. |
나면서 일곱 걸음을 걸으시니 |
광명이 시방에 가득 차고 |
사방을 보면서 크게 외치되 말하셨네 |
‘내가 모태에 나는 일은 다했노라.’ |
부처를 이루고는 묘한 법 설해 |
큰 소리로 법의 북 울리니 |
이로써 중생과 세간의 |
무명의 잠을 깨워 주셨네. |
이 같은 갖가지 희유한 일들 |
이미 나타내시니 |
208) 범어로는 mūrdhaja Cakravar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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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세상 사람들 |
이를 보고 모두 환희하더라. |
부처님의 장엄하신 몸 |
큰 광채, 보름달 같은 얼굴 |
남자나 여자나 어느 누구도 |
이를 보아 싫증내는 일 없네. |
태어나신 몸을 젖먹이여 키운 힘 |
만 억 마리의 코끼리보다 세며 |
신통의 힘이 위가 없으시고 |
지혜의 힘 한량없으셨네. |
부처님 몸의 큰 광명 |
불신(佛身)의 바깥을 밝게 비추니 |
부처님이 광명 속에 계심이 |
달이 광명 복판에 든 것 같도다. |
갖가지 욕설로 부처님을 훼방해도 |
부처님은 싫어하는 생각 조금도 없고 |
갖가지 좋은 말로 칭찬하여도 |
부처님은 기뻐하는 생각 없어라. |
거룩하신 자비로 일체를 보시고 |
원수도 친척도 균등하게 여기니 |
일체의 의식 있는 무리들 |
모두 다 이 일을 알고 있도다. |
인욕과 자비의 힘 있기에 |
능히 모든 것에 뛰어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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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건지기 위하여 |
세세(世世)에 애써 고통을 받으시네. |
그 마음 항상 일정하시어 |
중생을 위해 이로운 일 하시니 |
지혜의 힘은 열 가지요 |
두려움 없음의 힘은 네 가지라. |
함께하지 않는 특성이 열여덟이니 |
한량없는 공덕의 무더기라네. |
이렇듯 헤아릴 수도 없는 |
희유한 공덕의 힘 갖추셨네. |
사자가 두려움 없듯이 |
모든 외도의 법을 무찌르고 |
위없는 청정한 바퀴를 굴리시어 |
삼계의 중생을 건져 주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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